[Review] 이주형 – Grid Landscape

이주형  __  Grid Landscape

갤러리 인덱스 10.8~20

이주형은 근작 <Grid Landscape>(2012~)에서 작가 특유의 고즈넉하고 적적한 풍경을 내놓는다. 수평과 수직의 선분 사이로 비치는 하늘과 산과 강은 같은 것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풍경인 것 같지만 언젠가 그 장소에 한 번쯤은 서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을 안겨준다. 창의 프레임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풍경이다. 카메라의 프레임과 창틀, 두 겹의 프레임을 통해서 돌연 삶의 한 모퉁이를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창문 앞에 서 있었을 개별 존재들의 긴 여운을 모아낸 듯 미묘한 밝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지의 경제성을 존중하는 작가이기에 단정하게 다듬은 화면은 과장됨이 없이 균형 잡힌 형태 속에서 단단하고 압축된 풍경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풍경 연작은 창의 블라인드와 커튼,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 드러내면서 감추고, 투과되면서 스며들고, 흐르면서 차단되는 빛의 변주는 수평과 수직의 틈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이뤄진다. 부분이 전체가 되고 전체가 부분이 되며 매우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분명 어떤 ‘장소’를 염두에 둔다. 그 ‘장소’란 원근법의 도움으로 뒤로 물러나 하나로 고정되는 시각적 환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현시(現示)되는 세계이다. 유일무이한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바라본 ‘이 풍경’인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유리 창문 너머의 ‘한 풍경’이 아니다. ‘이 풍경’이 ‘한 풍경’이 될 때 내게만 단독적인 풍경은 수만의 풍경으로 희미해지지만, 내게만 보이는 ‘이 풍경’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바람과 햇볕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표상이 된다. 어쩌면 풍경(風景)사진은 이 단어의 함의처럼, ‘바람이 만들어낸 경관’ ‘바람과 햇볕’이 담긴 사진일지도 모른다. 바람과 빛을 포착한다는 것은 창의 바깥과 안의 충돌이 빚어낸 흔적을 기입하는 일이다. 그리드로 분할되어 형과 색을 최소화한 미니멀한 이 풍경이 갇혀있지만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보이는 이유이다. 바깥으로 향하면서 안으로 열려있고, 바깥이 들어오게 하면서 안을 비우는 것. 풍경을 개념화하고 일반화하기에 바쁜 시각 위주의 우월한 주체는 오직         ‘TTL’(사진용어 Through The Lens)에 의한 빛의 양을 계산하겠지만, 이주형의 시선은 개방된 조리개처럼 빛의 밀도를 최대한 집적했다. 땅의 경관을 뜻하는 영어의 ‘Land Scape’의 한정된 의미만으로는 이주형의 사진은 도무지 해독되지 않는다. ‘이’ 풍경은 ‘그’ 장소에 있어야 비로소 열리는 풍경이기에.
최연하·스페이스22 큐레이터

 

 

[Review] 하태범 – 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

하태범  __  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

소마드로잉센터 10.9~26

하태범 작가의 개인전이 2014년 가을에 열렸다. 그간 사진과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화이트>시리즈 전시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터라 장르 변화의 색다른 시도는 예측할 수 없었다. 실상 조각을 전공했지만 독일 유학 후 한국에서는 줄곧 작품 결과물을 사진과 영상, 설치로 선보였다. 물론 작업 과정에서 조각적인 요소가 빠져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조각, 영상, 사진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발현을 예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엔 작년과는 또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 통상 작업내용을 관통하는 사유는 일맥상통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조각전시를 이끌어냈다.
이번 전시 역시 화이트의 네거티브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전시 자체에서 다양하게 어우러진 작품들의 화이트는 아름다운 한민족의 색일 수도 있고, 모든 긍정의 의미를 품은 색일 수도 있지만 실상 작가는 그곳에 또 다른 함정이 있음을 실토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어린이 난민구호물자를 모집하는 단체,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후원을 바라는 단체 등이 제작한 홍보영상을 가감 없이 작업의 일부로 노출시켰다. 그 영상은 결과적으로 화면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바로 그 단체로 연락을 하게끔 편집된다. 하지만 편집구성을 떠나 화면 속의 이미지들을 한 장 한 장 순차적으로 떠올려 본다면 그곳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천진난만한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내가 못살고 있고,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구나’ 라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는 이미지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간 하태범의 작업은 매스컴에 보도된 자연재해, 전쟁과 같은 재앙을 다루되, 모두 화이트로 탈색하여 그 사진으로 하여금 인간이 느끼게 되는 연민의 감정을 모두 제거했다. 즉, 그 연민의 감정이 화이트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탈색되기 이전의 실제 보도이미지를 보게 되더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감각해지는 인간 심리를 포착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총 4점의 화이트 조각은 모두 선진국과 좀 더 잘사는 사람들로부터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스컴 광고에서 따온 이미지들이다. 과거엔 인간을 둘러싼 모든 재앙에 무감각한 개개인을 되돌아보게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아이들’로 대상을 압축했다. 즉 하나의 대상으로 일관화했다는 것은 그간 온 지구에서 일어난 사고를 무자비하게 채취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그리고 전시된 조각 4점은 모두 난민캠프에서 따온 아이들의 이미지이지만 불쌍해 보인다기보다는 아름답거나, 용맹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가 접하는 아이들 이미지를 차용한 지원 광고를 통해 모두 ‘돕자’라는 심리를 발현하게 한 자와,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처롭게 해서 동조를 끌어내려 아이들의 이미지를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자, 또 그것을 외면하는 사람, 이러한 이미지 생산자, 소비자의 메커니즘에서 비켜나 있는 천진무구한 아이들. 이 모두 작가가 느끼고 재현하고 싶었던 감정 선이 아닐까.
올 한 해는 다사다난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가 예술의 영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반성한 해였다. 이를 계기로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어른, 어떠한 특정 외침을 정치적인 이슈로 오해하는 어른, 또 반대로 이를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로 가자며 따뜻한 메시지를 던지는 어른들…. 우리는 다층적인 각도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렇듯 하나의 색 혹은 하나의 이슈를 두고, 편협하고 일관된 논의만이 아닌 비록 하나인 것 같지만 그 안엔 무한히 다양한 측면의 상황과 레이어가 공존하고 있음을 각인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빛을 발했으면 한다. <화이트(2012)>, <화이트-사인(2013)>, <화이트-시선(2014)>, 화이트를 둘러싼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또 이러한 관념을 뒤틀어 우리 사회에 공존하는 심리를 더욱 심도 있게 이끌어가길 바란다. 벌써부터 또 다른 <화이트-…(….)>시리즈 작업이 궁금해진다.
이은주·아트스페이스 정미소 디렉터

[Review] 박경률 – 2013고합404

박경률  __  2013고합404

커먼센터 10.10~11.9

커먼센터 2층 본 전시의 마지막 방에서, 유리창이 있던 자리에 걸려 마치 엑스레이 필름처럼 내부와 외부를 뒤집은 듯한 겹드로잉의 인상에 대해 나는 이것이 회화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기록연구의 구조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의 불완전함 속에서 작가의 과제를 충실히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고백하고 그녀의 회화에 대한 고민을 잠시 회화 밖의 환경에서 동행하며 반쪽짜리 감상을 해보자 마음먹는다.
전시장 입구에서 검은 커튼(혹은 회화)을 마주한 당신은 그것을 열고 들어가기 전 어떤 ‘입장’을 선택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배우를 볼 것인지, 극을 빌려 구축된 무대의 문제를 관찰할 것인지 말이다. 이번 전시는 법정판례라는 텍스트와 그에 파생하여 펼쳐진 또 다른 영역의 무대, 그리고 추출된 결과로써의 회화, 세 가지의 굴절하는 축을 제시한다. 관객은 동선상 가장 먼저 어떤 글들을 만난다. 매우 중요하고 구체적인 프레파라트로서 이 텍스트는 글이라고 하기에는 제멋대로 부유하는 파편들이지만 주어진 단어 사이의 공백이 비극과 폭력의 서사임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사실’과 ‘증거’, 적용된 법령과 피고인의 가정환경, 사건발생 전후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 법정판례 자료이다. 사건에 대한 가장 이성적인 목적의 텍스트, 윤리적인 판단과 오해를 남기지 않아야 하는 객관적인 자료에서 동사와 형용사만 각각 남긴 종이 14장은 작가의 회화연구와 어떤 방향을 같이한다. 어떤 의미에서       ‘존속살해’라는 충격적 서사보다는, 범죄의 경우 공적인 합의를 위해 가장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사건을 “종결”시켜야만 하는 해부적 목적의 텍스트가 생산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주목할 만한 대상의 흡입력을 발견한다. 사건(회화)을 보는 우리는 사건(회화) 밖에 서 있다. 만약 우리가 현실의 비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가져와 그들의 서사를 확장하고 상상하고 변형하는 결론으로 본 전시를 관람한다면 각 과정의 구성체가 어떤 윤리적인 감정의 표면에서 쉽게 기화되거나 어긋나는 지점에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 전시에서 작가의 선택은 회화의 신체 밖으로 걸어 나와 다른 대상의 눈으로, 표면 밑의 회화적 사실과 과제를 관찰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1층의 둔탁하게 푸른 벽과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낮은 사운드(<Dramatic>(2014) 사각의 격투기장에서 사고로 선수가 죽은 경기를 모아 만든 영상과 중앙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흐르는 낮은 백색소음의 설치작업)는 극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드러나지 않고 적당한 거리의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높낮이 없이 제공함으로써 전시장에 제시된 여러 프레파라트의 편평함을 지지하기도 한다.
박경률은 올해 초 회화가 가지는 “무의식”의 영역, 때로는 애매모호하고 지나치게 남용된  ‘무의식’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가지고 질병을 겪고 있는 그의 손님들(치매노인)과 회화의 구조를 실험한 바 있다. 최근 그녀의 몇 가지 실험은 개개의 음으로 곡을 구성하지만 실상 곡의 음계란 무엇이었냐는 치밀한 분석과 분할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의 구현, 특히 회화의 문제에서 결과 이전의 과정을 분절하고 분석함으로써 직관과 객관의 변주를 확인하고 동시에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굴절과 선택을 시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는 사건을 가져왔지만 사건은 회화의 소재만이 아니라 회화를 보는 눈으로써의 목적에 충실했다.
이단지·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Review] 길초실 – Kiss & Fly

길초실  __  Kiss & Fly

원앤제이갤러리 9.2~10.4

미술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우리는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말처럼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사물들을 ‘미술’이라는 제도 안에 차용하여 변형한 것을 미술품이라 부른다. 이는 액자틀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든다. 길초실은 미술 제도의 경계나 관행 탐구에 천착해 왔다. 그의 작품은 조각이 아닌 조각이며, 회화가 아닌 회화가 된다. 이 지점에서 논리적 해설을 요구하는 관객은 갈피를 잃는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인 <Kiss&Fly>에서 작가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갖는 내적 흔적들을 차용하여 전시 공간이라는 물리적 상황 안에 재배치한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갤러리 공간에 헬륨가스를 채운 주황색 라텍스 풍선이 떠 있고, 구릿빛 동전들과 주황색 장미 꽃잎들은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계단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은 개구리 인형들이 걸터앉아 있다. 수수께끼를 내듯 배치된 오브제들과 함께 작가는 하나의 자작시를 적어 놓는다. 고양이와 개구리, 헬리콥터, 축구 경기, 마이클 잭슨이 일정한 논리적 연결 고리 없이 언급되며, 이 시는 ‘우리, 다시 무모해져 볼까 / 오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로 끝이 난다.
올해 4월, 길초실은 <한 시간 전시One Hour Long Exhibition>라는 퍼포먼스를 행하였다. 관객은 한 시간 동안 설치, 전시, 철수까지 시작과 완료를 모두 진행하는 압축된 전시의 전 과정을 경험하였다. 미리 짜인 극본이나 리허설 없이 일련의 자연스러운 행동들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전시라는 관행의 과정을 한 시간 동안 노출한다. 2009년 작품 <The breathtaking>에서 반짝이는 풍선 모양의 붉은 유리 호리병을 놓는다. 이 반짝이는 병 안에는 계룡산에 거주하는 무당들의 입김이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믿음과 상상력의 지점들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주술사가 유사하다고 말하는 길초실은, 주술사들의 에너지를 모아 자신의 미술작품으로 전환한다.
마르셀 뒤샹이 미술전시장에 변기를 전시했을 때, 우리는 이 변기를  ‘조각’으로 본다. 보는 행위는 사회적, 문화적 과정이며, 인간의 시각 경험은 무수히 복합된 다수의 현실일 뿐이다. 길초실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대한 놀이를 하며, 이를 자신의 ‘미술작품’으로 이름 짓는다. 장소나 물건의 흔적 혹은 역사를 작업에 활용하거나 보이지 않는 요소인 에너지, 공기, 기, 사운드 등을 매개로 하는 그의 작업은 너무도 기묘한 풍경이라 선뜻 판독되지 않는다. 그 조직은 파편화되어 있으며,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초실은 물체나 풍경 같은 사물이 갖는 내적인 힘을 발견하며 이를 연결시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든다. 이미지는 자유 연상 작용으로 또 다른 이미지를 불러온다. 이미지와 현실의 일치 여부는 이성이나 논리에 의해 검증되지 않는다. 길초실의 작업은 현실에 대한 해설이 아닌 은유이다. 작가가 만들어 내는 세계에서 일상의 오브제는 미술작품이 되고 미술전시가 된다. 작가에게  전시장은 일상 속 존재들이 새로운 역할극을 펼치는 극장이다. 작가는 관객이 미술을 제 일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걸 허용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또한 작가는 관객에게 미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양지윤·코너아트스페이스 디렉터

 

[Review] 김성윤 – Dead Man

김성윤  __  Dead Man

갤러리 현대 9.30~10.31

김성윤의 두 번째 개인전, <Dead Man>이 갤러리 현대에서 진행 중이다. 젊지만 작업 양이 결코 적지 않은 김성윤은 이 전시에서 기존 작업의 관심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약간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통해 김성윤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김성윤은 <Authentic>이라는 제목의 지난 개인전에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기법을 활용하여 초기 근대올림픽 선수 복장을 한 인물들을 그린 연작을 선보인 바 있다. 사전트라는 화가와 초기 근대올림픽 사이에는 시기 외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화가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를 임의적으로 결합하여, 낭만주의 회화의 통념을 비튼다. 그 통념이란 소재와 기법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그림 안에 화가의 독창적 내면이 표출된다는 생각이다. 김성윤의 작품에 독창성이 있다면 그것은 화가의 필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합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여전히 사전트의 기법을 따라 하지만, 지난 전시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가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의 소재 간 개연성이 훨씬  약해진 경향을 보인다. 지난 전시에서는 각각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들이 초기 근대올림픽의 종목들이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소재를 포괄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다. 예를 들어 그는 사전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에드 루샤(Ed Ruscha) 등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를 그리거나, 존경하는 화가나 동료 화가의 작품에 나오는 소재, 혹은 자신이 이전부터 취하던 소재를 다뤘다. 이 소재들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그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뿐이다. 대신에 이번 전시에는 이 소재들을 묶는 하나의 정서가 있다. ‘DEAD MAN’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전시는 전체적으로 묵시록적인 정서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개별 작품들은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물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다음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호크니, 발데사리, 루샤를 다룬 <좀비를 위한 연구> 연작에서 이 유명 화가들은 눈이 충혈되고 입 주변에 피가 묻어 있는 괴기스러운 좀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존 싱어 사전트>에서 사전트는 공포영화에서 좀비를 퇴치하는 도구를 양손에 들고 한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원색의 화려한 모습으로 유쾌하게 그려지곤 하는 김봉태 작가의 ‘댄싱 박스’가 김성윤의 작품에서는 생경한 조명을 받아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 그려졌다.
그럼 개연성 없는 인물과 사물을 통해 묵시록적인 정서를 만들어낸 김성윤의 저의는 무엇일까? 작가노트에서 그는 “묵시록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결핍된 것으로 인지하고 그에 대한 좌절감이 동력이 되어 만들어진다. 절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 파멸 뒤에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묵시록은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고 썼다. 이번 전시의 묵시록적 정서는 현실의 어떤 절망에 대한 메타포이며, 그가 이 절망을 드러내는 것은 화전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태우듯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긴 해도 그가 생각하는 현실의 절망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살아있는 화가들을 좀비로 만든 것은 낭만주의 회화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현실에 대한 메타포일까? 자신의 기존 작업에 영감을 준 화가를 좀비 퇴치사로 만든 것은 자기 회화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것을 예보하는 것일까? 그의 다음 작업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김시습·미술이론

[Review] 이피 – 내 얼굴의 전세계

이피  __  내 얼굴의 전세계

갤러리 아트링크 9.23~10.14

이피의 <내 얼굴의 전세계>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핑크색 작품의 제목이면서 전체 주제를 집약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몸과 얼굴로 대변되는 성적이미지와 정체성, 환영과 초현실을 섞은 ‘장소’에 시각적인 강렬성을 갖춘 세계상이 펼쳐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피에 따르면 <내 얼굴의 전세계>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장소”이자  “복잡다단한 시간과 사건, 인물, 관계, 사회구조가 새겨져”있다. 그런 ‘장소’의 몸들은 그 구축의 방법에서 부분과 전체의 조합이라는 ‘분절적 재현’의 조각을 사용한다. 만개한 꽃처럼 생명 발화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조각들은 세계의 욕망을 온몸에 부착한다. 인형과 시계, 알약과 향수, 목걸이와 입술, 꽃병과 장미 등 온갖 사물이 혼합 병렬된 이 다층적인 조각은 다양한 이미지와 형태, 장식, 패턴을 융합한다. 그것은 동일하지 않은 공간과 사건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임을 말하고 있다. <내 얼굴의 전세계>는 사물과 타자가 동시에 공존하는 다수의 공간과 그 타자가 나임을 보여주는 전략을 취한다. 이 공공의 타자들을 내 몸에 부착함으로써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를 감응하는 나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거대한 감각적 실체가 되어 물질화되는 동안 <내 몸의 전세계>와 <내 얼굴의 전세계>는 인간사원의 주술이나 기형의 기념비가 되었다.
이피는 내면이라는 주관이 물질과 타자에 대한 생생한 감응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그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전환시킨다. 가령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심해의 발광체와 같은 아름다움이 뭍으로 나오면 흉물스러운 것으로 변하는 것을 <내 몸의 전세계>와 연관시킨다. 심해가 무의식의 깊은 미망이고 여덟 개의 다리는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이피가 만든 환원은 거대한 무의식이 부풀어 오르는 기형의 어떤 것인가? 그러나 이피의 드로잉은 그러한 물질적 기형과 상상의 이면에 기계장치로서의 몸과 메커니즘이 순환한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작동되는 환영은 ‘자기’ 라는 탐구대상이 명확히 있는 환영이다. 그러므로 이피는 몸이라는 기계장치 속에 숨은 감각의 이면을 탐구하면서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금빛 세안>은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온몸이 금빛 물방울로 덮여있는 여인(독신기계)의 감각적 환영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울을 통한 나르시스이면서 모든 것이 흐르는 사물의 틈을 보여준다. 온몸에 흐르는 물은 육화가 진행되는 타자의 몸이면서, 물질의 몸이고 내 몸의 전세계이다. 이 사물의 틈에서 이피가 본 것은 색으로 표현한 존재 전체의 세계이기보다는 존재의 갈래를 보여주는 조형요소와 장치들, 부분과 전체가 기계처럼 환원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환원에서 이피가 진정으로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핑크로 표현된 육체에 가까운 색과 물질성, 나와 사물의 무분별, 이 모든 세계상의 전체를 아우르면서 구현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물들을 단일한 전세계로 보려는 욕망을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이피의 작업은 지적인 미술의 관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물과 존재의 색에 가까운 마력적인 핑크의 현상학에도 불구하고 이피의 작품은 그 단일성으로 인해 너무도 이성적이고 경쾌하다. 역설적으로 타자마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빨아들이는 강력한 접착이 전세계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류철하·미술비평

[Curator’s Voice] 선무 개인전 – 홍·백·남(紅·白·藍)

선무 개인전  __  홍·백·남(紅·白·藍)

중국 베이징 원전 미술관 7.27~8.27 / 트렁크 갤러리 10.30~11.25

“나에게도 부모님이 주신 심장이 있다. 누군가 그 심장 위에 빨간 휘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달아주었던 내 심장 위의 휘장은 떨어졌다. …(지금)… 온전히 나를 위해 뛰는 심장이 나에게도 있다. 나는 선무다.”
2002년, 대한민국이 붉은악마의 물결로 일렁이던 해에 선무는 남한에 왔다. 마치 북쪽의 집단체조를 연상시키며 모두가 하나 되어 외치는 ‘대한민국’은 선무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기에 북이나 남이나 별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비치기도 했다. 다만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연습된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북과 남 사이에 높게 쌓인 벽들이 서서히 선무의 눈에 들어왔다. 아직 대한민국에 초짜인 선무에게 한갓 볼 차기 게임을 놓고 밤새도록 광란하며 거리를 무리지어 싸돌아다니는 무정부 상태가 결코 옳을 수만 없는 일이었다.
선무가 북쪽을 벗어난 것은 세계가 세기말 몸살을 앓고 있던 1998년이었다. 남한 사회에서는 아직도 휴거(携擧)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며, 외환위기로 인해 새천년의 기대감이 상쇄되던 때였다. 남한에 들어오기까지 3년 반 남짓한 시간은 선무에게는 암흑기였다. 아시아의 덜 성숙된 몇몇 국가를 표류하며 20세기 야만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무지막지하게 팽창된 제도들에 의해 봉인된 삶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로 된 유리방에 갇혀 무수히 반복되어 반사된 헤아릴 수 없는 자신들에 의해 정작 나 자신의 실체가 실종되어버린,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유치된 자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에겐 동물처럼 오직 생존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아직도 이로부터 홀연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의 인생에서 유리방을 빠져나와 거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10여 년간의 남한생활이 30여 년의 북쪽생활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개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유하며 보낸 시간이 짧은 선무에게 전체주의의 환영과 지배와 피지배의 틈을 교묘히 노리는 욕심들의 악취를 떨쳐버리기는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남한에서의 시간은 여러 사람과의 상봉과 이별을 만들어주었다. 그 사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수차례의 개인전과 각종 국제전에 초대되어 뜻하지 않은 외국여행의 기회도 있었다. 이제는 몰래 숨어들거나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예술가의 자격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나름대로 지구인이 된 셈이다.
2014년 7월 27일, 선무는 또 하나의 소란을 겪었다. 베를린과 뉴욕 그리고 오슬로 등 외국 전시 및 행사에 초대된던 그가 올해에는 베이징의 한 비영리공간에서 초대전을 열 참이었다. 이를 위해 동료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봄부터 베이징에 들어가 이런저런 작업을 완성했다. 도톰한 도록이 인쇄되고 남북의 철조망을 재현한 공간 디스플레이도 끝났다. 천여 평의 전시공간에 울려퍼질 음향도 가수 강산에와 협업해 거칠지만 멋지게 제작되었다. 중국에서 붙여준 개인전 제목은 <홍·백·남(紅·白·藍)>. 남한과 북한의 국기에 들어간 세 가지 색을 상징으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선무의 활동을 부각시켰다. 이미 여러 통로로 각국 관계자들에게 초대장도 발송했던 터라 선무는 뉴욕 개인전 때보다도 더 들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전시 개막일, ‘전시봉쇄’라는 생뚱맞은 상황에 맞딱뜨려 다급히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물론 전시 개막 전후로 남북한 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경색되고 있어 중국의 정치적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중국 비영리 미술관의 지원을 받은 순수 예술활동이고 중국 당대미술가들의 발언 수위도 만만치 않기에 전시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었던 참이다. 미술관 입구의 커다란 현수막은 공안에 의해 철거되었고 개막연에 참석기 위해 미리 방문했던 사람들은 조사를 받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선무의 2014년 베이징 개인전은 중국 공안에 의해 전시공간 입구가 봉쇄되고 도록을 비롯한 관련 인쇄물을 압수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 후 잠시 베이징 선무 개인전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미술관이 폐쇄된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전시를 보았다는 사람도 몇몇 있었으나 미술관 측은 곧 다른 전시로 대체했다. 그리고 연일 중국 인터넷에서는 작가 선무에 대한 조회수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주변 정황을 정리해보니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선무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탈국경자’라는 신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베이징에는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도 살고 있다. 선무 또한 이미 북한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전에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 그래서 순탄치 못한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좋지 못한 기억들을 되도록 제어하며 차가운 과거가 아닌 지금과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남북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져 더 많은 삶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실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선무인 까닭이다.
아직까지 선무의 작품은 베이징에서 발이 묶여있다. 전시를 주최한 중국의 미술관 및 남한의 외교부나 통일부에서도 별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남북한 교류는 더욱더 아슬아슬한 살얼음 질곡을 디디고 있다. 선무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나 그 또한 막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별 방도가 없다. 다행히 중국 공안도 선무의 작품에 대해선 가타부타 간섭하지 않았으며 다만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돌연 전시행사만 봉쇄했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선무의 작품이 압수되거나 손망실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응원단도 오지 않은 뒤숭숭한 시점에 선무는 늦었지만 <귀국보고전>을 트렁크갤러리에서 연다. ‘탈북자’도 ‘새터민’도 아닌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새끼’로서 말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역사에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오락가락이지만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선무가 술 취해 부르는 애절한 애국가다. 특히 올해 베이징 전시를 준비하며 오가던 중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나란히 서 있는 대한항공과 고려항공 비행기를 보면서 이 요상한 애국가에 대한 감정이 더 애틋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징 전시에 출품할 작품으로 비무장지대에서 가져온 녹슨 철조망을 줄기 삼아 남북의 국화 및 야생화가 피어있는 꽃꽂이 작품 및 남북의 국기가 실루엣으로 엉킨 작품 등이 준비된 바 있다. 이미 탈국경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예술가로서 낡은 국가체제에 대한 애증이 증폭되었던 것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않은 세대들에게 민족분단을 초래한 엄청난 이데올로기 대리전은 괴상하게 부풀려지면서 실제 전쟁 경험보다도 더 두렵고 무서울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망각되거나 무시될 수도 있겠으나 아직도 일상이 자유롭지 못한 선무에게는 민족분단 해소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점점 안락에 빠져드는 자신의 삶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창백한 분단 상황에 휘말려 소모적인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 끔직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새로 꾸린 단출한 식솔과 동료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태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선무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이 행복이라면 행복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전부라면 살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이 아닌 나를 알았습니다. 이제 세상에 대고 소리칩니다. 나는 선무라고”

최금수·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20140722_163730전시_디스풀래이중

[Priview] 11월 – 1

강북의 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0.7~11.23

북서울미술관이 위치한 강북지역에 주목한 전시로 도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풍경들과 잊혀진 삶을 돌아보며 옛 서울의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강홍구 김정헌 안세권 원성원 유영호 정재호 정희우 이성국 작가가 참여해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도시화 과정에 본격적인 개발에서 비켜나 여전히 옛 삶의 모습을 간직한 곳들을 작품에 담아 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집들, 거센 변화 속에서도 간직해 온 삶의 모습들, 그리고 옛 도시에 얽힌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사진, 영상, 설치, 회화작품들과 함께 중계동 104마을에 관련된 아카이브를 구성하여 도시의 변화양상을 보다 다양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미 사라진,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그리고 곧 사라질 풍경들을 바라보며 옛 삶의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향수와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원성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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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희, O을 찾아서,  타일드로잉 140cmX80cm, 28개의 타일들, 2014

청춘과 잉여

커먼센터 11.20~12.31

<청춘과 잉여>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동시대적 시각성을 성취해낸 한국의 기성작가와 ‘바로 지금’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가 참여하는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 문화 낙관주의를 ‘청춘’으로 2010년대의 불안정함을 ‘잉여’로 상정하고 각기 다른 세대의 두 작가가 협업을 진행한다. 5개의 주제 (아시아의 문화, 90년대 트라우마, 신화와 테크놀로지, 유토피아/불가능성, 현대적 매체의 조건)에 대해 다른 세대의 두작가 박찬경-이완, 안규철-김영글, 정연두-백정기, 송상희-이자혜, 박미나-이상훈이 함께 이야기한다. 전시는 이들의 신작과 이에 연관된 구작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시대미술의 파편적 지형에서 1990년대로 소급해 약소한 계보를 찾아보며 1990년대 이후 한국 동시대미술 지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양상과 차이를 보여주고자 한다.송상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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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근택

유근택

OCI미술관 11.6~12.28

일상 속에 내재된 개인의 삶의 체험과 정서의 문제를 다루며 동양화 지평을 확장해온 유근택의 개인전, 그동안 개인의 일상을 다루어온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풍경과 그것에 맞물려 있는 개인의 삶을 통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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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민석

조민석

플라토 11.20~2015.2.1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건축가 조민석의 12년간의 작업을 돌아본다. 건축물 완성 이전의 구상단계와 건축물이 완성된 이후 단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된 건축물의 미래까지 시간 순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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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성훈

공성훈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10.14~12.28

전통회화를 고수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 공성훈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웅장하고도 서정적인 자연을 화폭에 담은 150호 대형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작품 에 담겨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대중과 공유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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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근영

자연 대 자연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10.17~12.14

풍경화’라는 개념으로는 그 의미를 포괄할 수 없는 유근영과 송창의 작품을 통해 회화적 깊이와 현실 인식을 인지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두 작가의 사유를 통해 이들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 혹은 자연을 연상케 하는 형상에 집중해 본다. 유근영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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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날드저드 (1)

도날드 저드

국제갤러리 10.30~11.30

1960년대 미니멀리즘운동의 주요한 개척자이자 비평가인 도널드 저드의 개인전. 대상과 재료에 있어 동일하고 일정한 방식의 단위 구조를 탐구해온 작가의 이번 전시는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개념을 강조하는 조각들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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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박병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서

리서울갤러리 11.12~18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화첩사생을 통해 내공을 키워온 작가들의 기획전시.  박병춘 조풍류 박영길 양광우 이현열 다섯 명의 작가가 여러 차례 여수를 방문하며 그린 현장 사생작품을 비롯한 30여 점의 산수풍경 작품을 선보인다. 박병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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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숙-성곡

김윤경숙

성곡미술관 10.17~12.19

개인의 기억을 객관적 사건에 투영시키고 작업을 통해 망각이라는 인간의 방어기제를 해체하는 김윤경숙의 개인전. 성곡미술관의 중견작가 지원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일회성이 강한 오브제인 얇고 약한 비닐테이프를 사용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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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세진-문신미술관

A View from the Other Side

문신미술관 10.22~11.20

한국, 핀란드 작가 12팀이 참여하는 전시로 시각적, 방법적, 개념적으로 연결성이 있는 작가들을 나라별로 한 팀씩 짝지어 진행된다. 각각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풍경’을 통해 한국과 핀란드 작가들의 시선의 차이를 느껴본다. 김세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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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안두진

안두진

부산 조현화랑 11.14~12.14

예술의 철학적 본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예술가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안두진의 개인전. <어떤 돌>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만들어낸 패턴의 관계망을 관통해 그 자체로 발생하는 회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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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남경민

남경민

사비나미술관 11.7~12.19

서양미술 속 대가들의 작업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화가의 일상적 삶과 내면의 세계를 표현해 온 남경민의 개인전. 2010년 이후 4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로 한국인의 철학과 정서를 탐구한 신작 15점이 출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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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스케이프)

김성수

갤러리스케이프 11.5~12.19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욕망과 그 이면의 공허함, 그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의 정서를 회화로 접근해온 작가 김성수의 개인전. ‘얼굴없는 장소들’이라는 부제 아래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지금 우리의 도시 풍경을 다룬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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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신당동

신당동-사대문 밖 사람들

충무아트홀 11.3~19

지역 문화자원을 발굴하자는 의미에서 기획된 전시로 추후 발전과 보존 가치가 있는 신당동의 모습을 문화적 차원에서 해석한다. 시장 상권에 기대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하고 시장의 조형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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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송원

모바일홈프로젝트

송원아트센터 11.21~12.19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20팀의 미술가, 건축가가 참여해 이동 가능한 공간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살핀다. 작가들은 각기 자신이 상주하는 장소를 기반으로 사회적, 물리적 맥락을 짚어 형상화하고 모바일홈의 실험적 사례와 대안적 모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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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백순실

김기철

블루메미술관 11.1~2015.1.4

지난 20년간 일관되게 소리를 조각의 재료로 다루면서 ‘소리조각’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김기철의 개인전. 침묵도 소리라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소리의 결말로써 침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소리에 관한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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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지연

김지연

전주 서학동사진관 11.15~30

<삼천원의 식사>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김지연의 사진전. 작가는 ‘삼천원’이라는 객관적인 액수가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 의미, 어떤 무게인지에 대해 질문하며 자본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땀과 밥과 꿈과 돈에 관한 소박한 기억들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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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소연

정소연

이화익갤러리 11.19~12.6

다장르의 작가로 불리며 여러 가지 새로운 흐름에 동참해 온 정소연의 개인전. 작가는 도감에서 차용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실현 불가능한 기호의 숲을 ‘네버랜드’라고 지칭하며 꿈과 현실이 해체된 우리 사회의 이면을 또 다른 현실로 표현한다.

[Priview] 11월-2

다른공기

스페이스비엠 10.24~11.23

회화라는 매체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김희연 이은새 최윤희의 3인전. <다른공기>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풍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이 생각하고 추구해 온 세계의 모습을 주관적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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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박부곤

박부곤

관훈갤러리 11.5~11

사진작가 박부곤이 경인 아라뱃길을 촬영한 사진을 통해 현대사회 이면에 도시권 개발과 파괴, 이상과 현실, 인식과 해석 사이의 문제를 제기한다. 개발인해 등장한 낯선 풍경과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인식의 한계와 불편함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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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후창

이후창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11.19~24

유리에 투영되고 굴절되어 분열되는 효과를 통해 인간의 타자성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이후창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시도로 거울과 특수유리를 이용한 입체 및 설치작업을 통해 유리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리조각의 영역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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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

권기철

인당박물관 10.21~11.23

대구 대구보건대학교가 진행하고 있는 지역 출신 예술가 후원 사업으로 이루어지는 작가 권기철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5개의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며 작가는 구상과 수묵추상을 아우르는 회화작업 230여 점과 설치, 입체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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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김용오-롯데

아트브릿지프로젝트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10.14~11.13

기업의 사회적 책임, 상생경영이 대두되는 요즘 새로운 방식의 상생 프로젝트. 12인의 작가가 만들어낸 35개 이미지를 중소 협력사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해 협력사들과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생산에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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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박윤희

박윤희

부산 티엘갤러리 11.7~25

작가는 검은색 유성매직으로 수없이 직선으로 그리는 기계적인 반복작업을 통해 현대의 도시풍경을 만들어낸다. 빌딩의 창문이나 입구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여백만 남기고 온통 빛과 그림자로 표현된 작품은 도시의 고독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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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DSC

이강원

갤러리 플래닛 11.7~12.5

특정 공간 속 사물들의 잔해와 파편의 이미지들을 모아 관념적인 풍경 이미지를 조각으로 만드는 이강원의 개인전 <풍경의 이면>. 네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대지, 물, 숲, 새 시리즈에 해당하는 조각작품 7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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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_145x112cm Mixed media on canvas 2014

여소현

가나인사아트센터 11.12~17

무채색의 배경과 인물로 시대의 우울과 불안. 슬픔을 표현하는 여소현의 개인전. 작가는 그림 속 인물을 통해 고통의 근원에 관해 사유하며 그 불안을 드러내는 이 시대의 우울한 상징적 존재들을 표현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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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차종례

차종례

대구 갤러리 분도 11.3~29

나무 합판을 층으로 쌓아 만든 부조를 벽면에 붙이는 작업을 진행해 온 차종례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미와 인공미의 순환적 결합을 보여주는 18점을 선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서 무한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조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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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1

이동수

가나인사아트센터 10.29~11.3

흔한 공산품을 작품을 하나의 존재로 해석하는 이동수의 개인전. 작가는 사물이 지닌 본질과 더불어 사물에게서 느껴지는 ‘정서적 공허함’의 간극을 ‘은유’로 플어내며 사물의 존재와 그에 관계된 것들이 결합되어 만들진 이미지 이면에 감춰진 세계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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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박수용

박수용

부산 갤러리 조이 11.19~12.19

자연의 이치와 교감을 주제로 생명 예찬과 순환을 이야기하는 박수용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돌과 브론즈를 결합해 표현한 ‘산수시리즈’와 토속적인 서정성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청산송 시리즈’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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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성석진-가비

달항아리와 몽중경

갤러리 가비 10.29~11.19

사발 두 개가 하나의 항아리로 변모하는 달항아리 작업을 이어가는 성석진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붓으로 켜켜이 쌓아가며 내면의 풍경을 그리는 구나영의 2인전. 먹빛의 숲과 밝은 빛으로 환하게 떠오른 달항아리가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성석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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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재신

집, 기억 속으로

갤러리 두 11.1~20

누구나 공유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자 지극히 사적인 기억을 품은 ‘집’을 주제로 김재신 박춘매 배종훈 이보윤이 이야기한다. 네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반추하며 ‘집’에 얽힌 다양한 기억을 풀어내고 함께 공유한다.김재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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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승신

이승신

갤러리 온 11.4~16

<고백, 마음속의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승신의 13번째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삶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며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그 끊임없는 삶,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바로 삶에 대한 애착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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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황미정

황미정

춘전 파피루스 갤러리 11.15~29

선물을 소재로 타인과의 관계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 황미정의 개인전. 작가는 요즘 세상의 각박한 인간관계와 대비되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물상자의 관조하는 마음으로 표현하며 희망과 치유의 바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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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김민경-몽마르트

김민경

부산 몽마르트르갤러리 11.18~27

<지각하는 공간>에 대해 연구하며 회화와 영상설치 작업을 병행해온 김민경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들을 반성하며 처음의 빛, 마음을 <새벽에너지>라는 테마로 이미지화해 아지랑이 같은 새벽기운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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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김병주-쌍리

김병주

대전 갤러리 쌍리 11.1~30

자신의 거주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꽃과 자연을 소재로 판화를 제작하는 김병주의 개인전. 작가는 손의 노동을 통해 꽃을 보았던 순간의 기억, 느낌, 감각, 분위기를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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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김성수

김성수

경주 예술의전당 11.11~30

전통가옥 지붕에서 볼 수 있는 기와에 조각과 색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김성수의 8번째 개인전. 작가는 세월의 흔적이 담긴 폐기와를 역사의 산물이라 생각하고 기와에 현대의 감성을 담아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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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영식_달에게_길을_묻다_45.5x53.0cm_캔버스에_아~

김영식

대구 갤러리 제이원 11.21~29

<달에게 길을 묻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김영식의 개인전. 작가는 사실풍경이 아닌 꿈속에서 바라본 몽환적 산수풍경과 지금까지 여행하며 직접 눈으로 보고 그려왔던 실경산수의 모습과 옛그림을 감상하고 얻은 경험들을 함께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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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오영재_초설01

오영재

부산 미광화랑 11.8~26

부산의 서양화가 1세대이며 초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오영재의 회고전이 열린다. 초기 작업부터 작고하기 직전까지의 작업세계 전반을 담은 총 30 여점의 작품을 통해 논리적으로 확고한 예술관을 정립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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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조상은

조상은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11.20~28

<상승과 하강이 뒤범벅된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조상은 개인전. 캔버스 속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시점으로 스토리를 구성하며, 이 여행에서 만난 각각의 이미지들을 상징적인 풍경으로 재조합하여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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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건

정하건

한국미술관 11.5~11

한국 서예계 원로인 송하건의 팔순기념전인 <송천 정하건 산수전>, 작가의 여섯 번째 전시이자 지난 고희전 이후 10년 만인 이번 개인전에는 행서, 해서, 전서 등 송천의 서예관이 깃든 다양한 서체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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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베르너사세-서촌재

베르너 사세

갤러리 서촌재 11.1~30

미술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독일작가 베르너 사세의 개인전. 작가는 민족 개념을 초월해 한국전통의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을 수묵으로 표현한다. 수묵화의 먹과 획, 힘의 조화를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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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강숙자

강숙자

상상갤러리 11.12~18

실크 천 위에 염색작업을 하는 강숙자의 개인전.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느낌과 자신이 견지해 온 신념을 파스텔톤의 부드럽고 은은한 색채가 깔린 비단위에 꽃, 여인 등의 형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섬세하고 또렷하게 나타낸다.

 

[Exhibition Topic]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4

Ghosts, Spies, and Grandmothers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한 <SeMA 미디어시티서울2014>(9.2~11.23)는 미디어라는 매체보다는
주제를 강조한다. 아시아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과연 아시아란 하나로 답할 수 있는 개념인가?
전시 제목이기도 한 ‘귀신 간첩 할머니’를 통해 해독해야 할 주술, 암호, 방언과 기억해야 할 섬과 산 같은 장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 모호해진 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귀신이 없어진다

강홍구  작가

청탁을 받아 이글을 쓰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아니다. 우선 비엔날레 종류의 미술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외 여러 비엔날레를 보고, 참여도 해보고 내린 결론은 그렇다.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전시는 대개 거창한 주제를 내걸고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모아 보여준다. 돈도 많이 쓴다. 그걸 다 집중해서 관심 있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애초에 관객이 전시를 어떻게 잘 보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 몇 명이 오느냐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래서 보고나면 화가 나거나 다리가 몹시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행히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규모와 짜임새 면에서 그렇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전시의 제목 때문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내 정서와 감각 등은 섬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버린다. 신안군의 작은 섬인 내 고향은 곳곳이 귀신 나는 곳이고 도처가 죽은 자들이 묻혀있던 곳이었다. 집마다 있던 성주, 조앙 등의 집안 귀신들 말고도 일종의 동네 귀신으로 탱자나무 길 아래 차일 귀신, 터진목에 애장터의 애기 귀신에다 뻘밭에는 도깨비들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화 피던 모래밭에는 6.25 때 철사에 손이 묶여 죽은 사람들이 영광에서 떼로 떠밀려와 묻혀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보았던 사람의 두개골은 돌을 던져도 잘 깨지지 않고 단단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넋을 건지는 굿이 바닷가에서 가끔 벌어졌고, 육탈을 기다리는 빛 바랜 초분이 밭 귀퉁이나 야산에 웅크리고 있었고, 어둡고 축축한 여름밤에는 안개 속에 도깨비불이 날았다.
귀신들을 잘 보고 만나는 사람들은 할머니들이었다. 밭 매고 집에 오다 보고, 날이 흐릿하고 빗기 품은 바람이 불 때 동네 고삿길에서 보고, 바닷가에 갯것하러 갔다 만났다. 간첩도 마찬가지였다. 섬 뒤로 펼쳐진 서해 바다가 간첩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특히 바로 옆인 임자도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조그만 섬에 전투경찰대 일개 소대 정도가 참호를 파고 몇 해 동안 주둔했던 것이다.
이 따위 경험들은 물론 전시와 직접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귀신과 할머니와 간첩’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정서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일종의 병적 고착이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못된다. 전시 제목만 들어도 어릴 적에 보던 서늘하고 으스스하지만 이상하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은 상엿집 분위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란 그럴 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언젠가 던져야할 좋은 물음이고 있어야만 할 전시였다.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전시의 짜임은 불필요한 오버 없이 담담했고 동선도 큰 무리는 없었다. 전체를 둘러보고난 인상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랐다. 상엿집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전시 제목인 세 단어가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를 보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다. 그러니까 전시 전체의 구성이 병렬적이었고 그것이 전시 전체의 의도였던 것도 같다.
좋은 작품이란 역시 일종의 질문이다. 답이 아니다. 하지만 비엔날레나 그룹전의 어려움은 작가들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이 전시도 일부는 그러했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이 언급한 양혜규의 작업은 내가 보기엔 그 깔끔함과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잘 쓴 답처럼 보였다. 양혜규의 작업은 평소에 해오던 작품의 무속적 변주이다. 양혜규의 작품들은 대개 무언가를 모으고, 움직이게 하고, 이동 가능하도록 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방울이라는 소재를 모으고,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고, 수동으로도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무속용 소도구인 방울을 이용한 잘 다듬어진 작업 그 이상 어떤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정보과잉 상태의 작품들에 관해서다. 그런 작품들은 거의 관습적으로 입체, 설치, 영상, 텍스트, 드로잉을 한 묶음으로 공간에 모아 동어반복 상태를 만든다. 물론 그 사이에 매체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말이 되풀이될 때 반복적 공허함도 매체에 따른 점층적 효과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메인 작품을 위한 장식으로 보인다. 때문에 오히려 작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만다.
다른 하나는 일부 작품들이 가지는 약간 과도한 계몽적 태도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조사했고 작업했기 때문에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보는 사람의 피로도를 높인다. 물론 전시 주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보와, 계몽과,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예민한 재고가 필요해 보였다.

쑤 위시엔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쑤 위시엔 <화산치앙>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김수남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김수남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불편함이 핵심이다
나는 미술관에서 비디오나 영상작업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상 하나만 보아도 힘든데 그걸 연속 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흥미 있었던 것은 영상들이었다. 여러 개가 있지만 몇 개만 들자.
우선 베트남 프로펠러 그룹의 <쿠치의 게릴라들>이 그렇다. 내용은 간단하다. 베트남 호치민시 외곽에 쿠치터널이라는 지하터널이 있다. 쿠치터널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과 싸우기 위해 복잡하게 판 이른바 땅굴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곳에서 요즘 서구의 관광객들이 총알 한 발에 1달러를 내고 AK47이나 M16을 쏜다. 특별한 연출도 없는 다큐멘터리이다. 모든 장면은 슬로 비디오로 상영된다. 관광객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총을 쏘고 그것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는 총구의 정면이다. 물론 방탄유리 뒤라고는 하지만 뭔가 불안한 느낌이 좀 든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웃고 총을 쏘는 관광객과 베트남전 당시에 만든 선전영화 내레이션이 부딪치면서 지극히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어쩌면 전쟁이 끝나고 통일을 이뤘으니 전쟁터를 관광상품화하는 여유를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는 내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핵심이다.
다음은 에릭 보들레르의 일본 적군파를 다룬 <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과 27년간 부재한 이미지> 라는 긴 제목의 다큐멘터리이다. 유감스럽게도 다큐가 너무 길어 다 보지는 못했지만 본 내용만으로도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다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화와 테러가 유사하다고. 이는 물론 적군파 전투원인 에키타 유키코가 썼다는 “혁명의 시나리오는 영화 각본과 같은 식으로 쓰여 있어야만 한다”에서 따온 것이리라. 영화가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검토하고 등장인물을 캐스팅하고, 스태프들을 모아서 촬영하듯이 테러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테러는 목표물을 정하고, 어떻게 작전을 펼칠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자금과 테러리스트들을 모은 뒤 실행한다. 물론 테러에 재촬영이란 없다. 그리고 피차의 목숨이 걸려있다. 섬뜩했다. 테러를 일종의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시각 자체가 무섭다. 아니다. 이건 인간이 세상 모든 일을 해나가는 기본적인 태도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는 시나리오를 쓴다. 글로 쓰건 상상하건 꿈을 꾸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행한다.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한다. 예술이란 어쩌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실패한 시나리오에 대한 보상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렇다. 그래서 테러에 대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다큐란 실패한 테러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젊은 시절 기사만 보아도 충격적이었던 적군파 사건이 수십 년이 지나 미술관 속에 들어왔다. 냉전, 혹은 열전의 일부였다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지만 여운은 간단치 않다.
다음으로는 미하일 카리카스의 <소리 내는 아이들>과 김인회를 비롯한 무속 연구가들의 굿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소리 내는 아이들>이라는 작업이 흥미를 끈 것은 살풍경한 배경과 아이들 사이의 기이한 대비도 대비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소리가 무당들의 무가와 겹쳤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과정들이 일종의 굿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속 연구가들이 기록한 굿은 내가 서울에 와서 보았던 퍼포먼스에 가까운 굿들보다는 훨씬 굿 같았다. 굿의 원형들이 담긴 비디오들은 상태가 나빴지만 매력적이었다. 물론 너무 많아 다 보지 못했다. 정말 필요해서 열리는 굿판과 행사로서의 굿 사이의 어마어마한 차이-그걸 아우라라고 해야 할지 절실함의 차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그리고 김수남의 사진뿐만 아니라 직접 연관이 없을지라도 이갑철의 신기어린 사진들과 육명심의 인상적인 무당 사진들이 같이 전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물론 전시장에서 만난 디렉터의 말처럼 굿 영상물과 사진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래 몇 해 동안 고향인 신안군을 촬영하느라 섬을 돌았다. 섬에도 이제 귀신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더 이상 귀신을 보지 않는다. 산 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친인척 누가 죽었다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던 할아버지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이들도 없다. 귀신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기억하고 호명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전시도 마찬가지다. 이름 부른 메아리가 얼마나 멀리 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아인의 식민지 경험과 냉전과 열전, 20세기에만 거의 1억 명 이상이 강제로 죽은 곳에서 그 피해자, 여성, 고통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디렉터의 표현대로 그들이 보내는 주문과 암호와 방언은 마땅히 기억되고 해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과도한 사명감이나 자신감, 혹은 이 전시와 상관없이 요즘 일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죽은 자들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리라. 언젠가 거대한 규모의 넋 건지는 굿이 진도에서 벌어져야겠지만 그때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산자의 부끄러움과 겸손함일 것이다.
참, 섬 주변에 간첩도 없는 것 같다. 배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 섬까지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소식도 끊긴 지 오래이다.●

프로펠러 그룹  비디오 20분4초 2012

프로펠러 그룹 <쿠치의 게릴라들> 비디오 20분4초 2012

필라 마타 듀폰트 (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와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

필라 마타 듀폰트 <이상적인 포옹>(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북한A>와 <북한B>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