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ART SPACE

김주현 (1)

김주현 개인전
갤러리 시몬 3.12~5.15

이번 개인전 제목은 <나선연구>로 명명됐다. 익히 알려졌듯 작가는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점 선 면을 마치 기하학적 연구의 결과물처럼 보여준다. 이에 관람객은 마치 우주 혹은 물리학적인 공간을 연상하게 된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다양한 모형과 드로잉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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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2)

한반도 오감도
아르코미술관 3.12~5.10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황금사자상 수상 한국관 귀국전>인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당시의 전시를 재현했다. 100년에 걸친 남북의 건축적 현상과 진화 과정에 대한 연구결과를 담은 이 전시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타이틀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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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1)

노벨로 피노티 개인전
서울미술관 2.28~5.17
1966년과 1984년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을 수놓았던 작가의 첫 한국전시다. 대리석과 청동을 소재로 한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미술관 전관과 더불어 야외에도 작품을 설치, 산책하듯 그의 작업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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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2인 (2)

1981년 5월 27일
아라리오뮤지엄 in Space 3.4

한국 실험미술의 태두 김구림과 시인이자 《공간》편집장을 지낸 조정권 2인이 펼치는 퍼포먼스.
타이틀에 적시된 날짜에 행해졌던 퍼포먼스를 재현한 것으로 아라리오뮤지엄이 들어선 舊 공간사옥 내 소극장의 재개관에 맞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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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크뇌벨 (2)

이미 크뇌벨 개인전
리안갤러리 서울 3.5~4.18

‘알루미늄 회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작가의 근작 7점을 선보이는 전시. 전후 독일 추상조각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대담한 형태와 원색을 구사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든다.

KIM SHIN’S DESIGN ESSAY 9

창조 적당히 합시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미팅을 하려 경복궁역에서 내려 서촌을 걸었다.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 상권이 엄청나게 뜬 곳이다. 중국과 한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인왕산과 북악산, 경복궁과 사직공원, 옛날 도시형 한옥과 골목길이 있는 예스러운 곳이다.
그러나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싶다. 어지러운 간판들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단 하나 거리의 간판 디자인만 빼놓고 말이다. 간판 속 한글 서체는 모두 대학에서 정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디자인한 거다. 그렇지만 옛날에 디자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간판장이들이
간판 만들 때보다도 더 형편없어진 거 같다. 왜 그럴까?
옛날에는 무식한 간판장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멋을 부려가며 글자를 만들지 않았다. 옛날부터 내려오거나 그 시대에 널리 쓰이는 글꼴을 선택해서 글자를 만들었다. 전화 취급소나 버스표 판매소를 알리는 양철간판, 이발소나 쌀집, 도장집을 알려주는 나무입간판, 아무 장식도 없는 백색 바탕에 고딕체로 중량감 있게 쓴 메인 간판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정도에서 벗어난 못났거나 요란한 간판을 보기 힘들었다. 그건 그걸 쓴 사람의 솜씨라기보다 전통과 시대의 솜씨다. 개성의 과시나 열정적 창조 따위는 주인이, 동네 사람이, 그리고 간판장이 스스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창조적인 능력이 없어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간판이 없다는 건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는가! 아니 오히려 “창조하라”는 사회적 강요가 없기 때문에 간판들은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국이 창조로 먹고사는 나라인 양 떠드는 오늘날의 간판을 보라. 대개는 붉은 색, 파란색, 노란색, 심지어는 핑크색 또는 무지개색, 그라데이션 효과를 바탕으로 글자가 쓰였다. 또는 업종을 표시한다고 간판 배경에 시골의 목장이나 음식이 끓고 있는 찌개, 소, 돼지, 생선 따위가 인쇄돼 있다. 상점 간판 하나에 심벌, 업종 관련 사진, 글자, 타원과 같은 그래픽 요소, 게다가 글꼴마저 여러 가지, 온갖 색상들로 무질서를 넘어 방종, 방탕,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산업혁명시대의 수준 낮은 바로크 스타일을 보는 것 같다. 글꼴은 또 어떤가? 개성이 지나치다고 하는 건 과분한 평가다. 그냥 수준 이하의 글꼴이 수두룩하다.
글꼴 회사들이라고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글꼴의 가치를 몰라주니 돈 주고 사지 않는다.
또 영문 알파벳에 견주어 너무나 많은 수의 글자를 디자인해야 하니 생산성과 효율이 떨어진다. 한글 서체는 오로지 한국시장에서만 팔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상품이다. 그러니 생산하는 모든 서체를 다 완성도 높고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건 불가능하단 걸 인정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낙서한 것 같은 글꼴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구색을 갖춰야 해서, 고객이 다양한 걸 찾으니까 라고 변명하지 말자. 왜냐면 불행하게도 어떤 상점 주인이나 간판업자는 그런 형편없는 글꼴로 간판을 만들어 시민들의 눈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간판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서 이런 걸 이슈로 삼는 건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선이 안 되는 걸 넘어 나빠지기까지 하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안을 낼 능력이 없다. 단지 창조의 압박, 다시 말해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내부, 또는 외부의 강요로부터 초연해질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사실 거창한 창조는 그다지 필요 없다. 글자를 쓰고 읽는 대다수 사람은 글꼴이 많지 않은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상점 주인도 간판업자도 이상한 글씨가 있어서 골라 쓴 것이지, 없었다면 아마도 더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단순한 명조체 같은 글꼴로 간판을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상품의 구색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면 기본 글꼴에서 조금만 변화를 주어 출시하는 건 어떨까? 차별성과 동시에 완성도도 높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성과 창조에 매달리다보면 사람이 손으로 쓴 흘림체 같은 걸 바탕으로 한 글꼴 만들기의 유혹에 빠져들고, 괴물을 낳기 쉽다. 창조의 압박이나 경쟁 없이도 아름답고 정겨운 간판세계를 만들었던 옛날 사람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부럽다. ●

위 정희우 <종로의 나무간판> 시리즈 2014 갤러리 그리다에서 열린 개인전(2014.11.26~12.7) 광경 작가는 종로의 나무간판을 탁본으로 떠내 전시장에 나란히 걸었다.

ART BOOK 오롯이 그림과 마주하기

박현정《혼자 가는 미술관》 한권의책 2014

박현정 (1)미술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거기서 거기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자기만의 감정을 독자에게 강권하기 일쑤다. 그림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는 책이 무자비한 명화 이미지와 자기 자랑 하기식 글이면 상황은 더하다. 특히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이 마치 미술 감상의 보편타당한 명제인 듯 논하는 어조를 띠면 독서의 피로감마저 느낀다. 그런데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감상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낸다면 상황은 다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작품과 독백하고 싶은 독자에게 전하는 미술이야기는 흥미를 일으킨다. 오히려 저자와 그림이 나누는 대화를 읽어내려가며 독자 또한 그림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만든다.
혼자 가는 미술관》의 저자 박현정은 “독자를 의식할 여유가 없다”며 개인적인 자기의 미술 감상을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간다. “그림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쓰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영영 모르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일단 글을 쓴다. 그 다음에 고쳐 쓰기를 하면서 작품을 제작한 작가 생각을 자주 했다”면서 책을 쓰게 된 자전적 동기를 말했다.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이 책의 주안점은 어떤 콘텍스트를 떠나 작품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에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에 관한 글, 도록에 실린 논문을 참고해서 객관적인 정보 전달도 꼼꼼하게 보탰다. 자연스러운 감상과 작품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가 골고루 조화를 이뤄 각각의 맛이 살아있는 글이 되었다. 이와 같은 글쓰기는 저자의 전작(《 아트 도쿄》공저)이나 역자로 참여한 서양미술사 책과는 거리가 먼 글쓰기 방식이다.《 아트 도쿄》의 경우, 일본에서 7년간 유학을 한 저자가 미술사를 공부한 남편과 함께 쓴 책으로 도쿄 미술관을 소개하는 기행서다. 저자는 오랜 기간 논문을 작성하며 막연히 다양한 글쓰기를 꿈꿨다. 필자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원에서 각각 “대한제국의 왕실상징 문양인 오얏꽃”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전시관”에 대한 석사논문을 썼다. 오랜 기간 학술적인 글쓰기를 하다 보니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에 목말라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오얏꽃 문양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혼자 가는 미술관》에 등장하는 전시와 작가는 저자의 전공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천경자, 배영환, 서용선 같은 한국 근현대 작가들, 프랜시스 베이컨, 빌 비올라 같은 해외작가가 그의 책에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담으며,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목을 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미술전문가와 비전문가 구분 없이 책을 읽는 독자가 작품 자체를 경험 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책을 쓰면서 “논문이 ‘오얏꽃 문양에 관한 고찰’이었다면 이 책에 실린 ‘오얏꽃 문양,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라는 글에서는 가능하다면 독자들이 그 꽃이 탄생한 시대에 고종이 겪은 고뇌를 짐작해보거나 하나의 사물로 오얏꽃을 보고 만지고 감각하게 되기를 바랐다. 우연히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지나치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 새겨진 오얏꽃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독자를 상상해 봤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들썩하게 전시장에서 그림과는 무관한 수다를 떨며 그림을 본체 만체하는 일부 관람객의 모습을 떠오른 것은 왜일까. 따듯한 봄날, 진정 그림이 고픈 이에게 저자가 들려주는 은밀한 속삭임은 ‘혼자 그림 보기’의 좋은 멘토이자 친절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승현 기자

박 현 정 Park Hyunjung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지바현에 거주했다.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과정을 거쳐 도쿄예술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아트, 도쿄》(공저), 번역한 책으로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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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0014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혜진 지음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비평계를 살펴보며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쟁점을 분석한다.
현실문화 320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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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48새로운 창의적 공동체
알린 골드바드 지음/임산 옮김
지난 30년간 시각예술가, 미디어예술가, 공연예술가가 이룩한 성과를 연구해온 저자가 창의적 노력을 통해 합의와 실행 가능한 비전을 내세우며 공동체를 구성해나가는 예술가들의 공동체 연대 문화를 연구한 책이다.
한울아카데미 352쪽·2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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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61아트마켓 홍콩
박수강·주은영 지음
아트바젤 홍콩을 신호탄으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선 홍콩의 아트마켓을 집중 분석한다. 홍콩의 미술시장 발전 현황을 살펴보고, 시장을 이끄는 대표 갤러리와 비영리 전시공간을 소개한다.
아트북스 26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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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0995그린다는 것
노석미 지음
선명하고 풍성한 색감으로 상상력과 재치가 넘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작가 노석미가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전한다. 직접 그린 그림과 글로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10대와 일반인에게 신선한 자극을 전달한다
너머학교 184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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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56처음 만나는 미학
노영덕 지음
이해하기 어려운 미학을 입문자의 입장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술한 책. 일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딱딱한 이론 위주의 소개가 아니라 대중매체인 영화를 끌어들여 설명한다.
알에이치코리아 40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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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54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오은영 지음
마술을 단순한 오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미술에 얽힌 역사, 이를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 명화 속에 등장하는 마술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마술사의 관점에서 시대의 특징들을 짚어 나간다.
북산 264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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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61예술이 되는 순간
필립 드 몬테벨로, 마틴 게이퍼드 지음/주은정 옮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과 미술평론가인 두 명의 저자가 세계 각지에 있는 유명 미술관을 찾아가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담았다. 전문가의 시선을 버린 애호가로서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 공감대를 형성한다.
디자인하우스 248쪽·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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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60이성의 눈으로 명화와 마주하다
쑤잉 지음/윤정로 옮김
그림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시대상은 물론 철학적 사상을 살펴본다. 특히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린 여러 작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은 그림에 숨어 있는 의미를 자세히 파악하려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그마북스 432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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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0997서양미술사
A.N 호지 지음/서영희 옮김
근현대의 서양 회화사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서양미술사 개설서이자 입문서.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주요 회화운동을 대표 작가와 다양한 작품 이미지를 통해 설명한다.
미진사 220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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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58빛, 제스처, 그리고 색
제이 마이젤 지음/박윤혜 옮김
세계적 사진작가인 저자가 사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빛 제스처 색이라는 세가지 요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사진에 대해 논한다. 사진 찍는 기술보다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담은 세계관을 표현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시그마북스 264쪽·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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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46그림 앞에서 관상을 읽다
신민 지음
소규모 갤러리의 인턴으로 시작해 현재 한 갤러리의 기획실장으로 일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아트 에세이. 갤러리의 모습과 큐레이터의 삶을 영화, 드라마 등과 비교하며 써내려간 30편의 짧은 글로 생생하게 소개한다.
교보문고퍼플 241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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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63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최성웅 옮김
출간과 함께 귀스타브 플로베르 대상을 비롯한 7개 문학상을 석권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모네의 수련으로 유명한 지베르니 마을과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예술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달콤한 책 464쪽·13,000원

 

ART JOURNAL

토론을 전시하다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열린 예술가들의 이중고〈썰展〉

(본 토론 및 전시에 참여하지 않고 쓴 글임을 먼저 밝힘-필자) 예술가가 하는 일은 비유 대상을 들어 설명하면, 사회 운동가의 모습을 닮기도 하고, 개인 사업가의 정체성과 흡사하기도 하다. 벌이는 가두투쟁보다 시위를 결정하기까지 안에서 이뤄지는 회의가 더 길고 힘든 일이란 걸 운동 당사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 그렇다. 자신이 품은 창작의욕과 연주와 실행의 만족에 앞서 그 일을 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 더 힘든 게 오늘날의 예술이다.
지난 2월 24일부터 3주간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열린 〈썰展〉은 예술가의 이와 같은 이중고를 자기반영 식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에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집단이 참여했다. 로컬포스트, 썬데이페이퍼, 원네스가 그들이다. 이 세 그룹은 현대예술의 영역 내에서 시각 혹은 공연예술 장르에 걸쳐 활동하는 단체들이다. 로컬포스트는 정보화시대의 뉴미디어를 통해 창작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므로 의사 결정과 운영에서 민주주의와 다원화는 이 예술집단의 기본 태도를 이룬다. 현대미술가가 모인 썬데이페이퍼는 그들이 정해놓은 전시 원칙에 따라서 활동하는 집단이며, 음악과 문학, 미술의 상호 교류를 추구하는 원네스는 몇 년 동안 지속적인 열기를 이어가는 장르 간 예술의 한 사례이다.
〈썰展〉은 그들이 각자 벌여 온 ‘투쟁 혹은 사업’ 물증으로서의 문헌자료가 전시 공간에 배치하고, 토론을 통한 예술계의 환류를 시도했다.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필자의 추론은 이와 같은 시도가 비판적인 관점에 맞추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뒤늦은 유행으로 퍼진 융합 또는 통섭의 기본 개념을 제시한 괼벨키안 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한 엠마뉴엘 월러스틴의 진보적인 실천으로부터 비롯됐다. 예술계에서 쉽게 접하는 통합의 사례들과 달리, 그 원래 의미는 기존 질서의 재구축에 있다. 예컨대 미술잡지와 신문, 상업화랑, 문화재단은 문화권력이라는 이념형으로 설정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썰展〉은 그런 상투성을 뛰어넘어 참여자의 노고가 담긴 아카이브를 충실히 소개하며 토론장에서 합의된 전제를 가장 세련되고 유용한 방식으로 재구축하는 일을 계속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구=윤규홍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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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미술제 (2)

봄맞은 미술시장, 활기차게 시작하다
제33회 화랑미술제, 작품 거래액 작년보다 상회

(사)한국화랑협회와 코엑스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33회 화랑미술제가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코엑스 D홀에서 열렸다. 87개 화랑, 400여 명의 작가 작품 3200여 점이 출품된 이번 화랑미술제의 총 판매액은 38억5000만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작년 판매총액 37억 여원을 약간 웃도는 것이다. 관람객은 3만2000여 명이 다녀갔다.
화랑협회는 이에 대해 “단색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이 거래되었다. 이는 몇 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의 적절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올해 화랑미술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년에 도입했던 ‘집중조명작가제도’를 이번에는 10명으로 늘리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여러 화랑이 중복 출품하는 것을 방지했다. 이는 화랑과 작가 모두가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균형있는 미술시장 발전을 도모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취임한 박우홍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위상을 재정립하고 미술시장 내부 및 작가와 수요자들과의 관계 형성을 다시 해보려 한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한편 3월 20일에 있었던 VIP 오프닝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위 사진 가운데),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 금융위원회 신제윤 前위원장 등 주요인사가 참여해 행사의 의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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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을 담다
강요배〈제27회 이중섭미술상〉수상

강요배 (5)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제27회 이중섭미술상>에 독창적인 정신세계를 작품에 녹여내는 작가 강요배가 선정되었다.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되며 시상식과 수상 기념 특별전 개막식이 오는 11월 5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강요배는 23년 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 제주의 자연 풍경을 담아내는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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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작가들의 도약을 위한 플랫폼
〈종근당 예술지상 2015〉

〈종근당 예술지상 2015〉에 안경수, 이채영, 장재민이 선정됐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주)종근당과 (사)한국메세나협회,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가 공동으로 신예작가 발굴 및 지원과 대안공간 운영 활성화를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2014~2015년 주요 국공립 및 비영리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와 대안 공간 및 비영리전시공간의 전시회 참여 작가 중 만 45세 이하의 회화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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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사진작가로의 도약
노상익 박찬민 이상엽, 〈제6회 일우사진상〉수상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제6회 일우사진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의 주목할만한 작가’ 출판부문 노상익(왼쪽), 전시부문 박찬민(가운데), ‘올해의 특별한 작가–자연 및 생태 다큐멘터리부문’에 이상엽이 각각 선정되었다. ‘출판부문’ 수상자에게는 독일 핫체칸츠 출판사에서 단독 작품집 출판과 일우스페이스에서의 개인전 개최 기회를, 전시 부문 수상자에게는 작품 제작 활동비와 개인전을 지원한다. 또한 ‘올해의 특별한 작가’에게는 3000만 원 규모에서 전시 또는 출판 활동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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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술계 별들의 전쟁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올해의 작가상 2015〉후보로 선정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김정배)이 SBS문화재단(이사장 이태영)과 공동 개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5〉의 최종 후보작가 4인(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사진·왼쪽부터))이 발표됐다. 후보작가는 ‘올해의 작가상’ 운영위원회가 위촉한 추천위원단의 추천을 받고, 박만우(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주디 킴(구겐하임미술관 협력 디렉터/아부다비 프로젝트 총괄 디렉터), 안드레이 마티노브(모스크바비엔날레재단 제네럴 디렉터), 마이클 고반(LA카운티미술관 (LACMA) 관장), 티에리 라스파히(리옹현대미술관 관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작가 인터뷰 및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 선정했다. 후보작가 전원에게는 〈올해의 작가 2015전〉에 참여할 기회와 도록 제작 후원이 제공된다. 또한 SBS문화재단 후원금 각 4000만 원씩 수여된다. 한편 이들 중 최종 선정된 수상 작가를 대상으로 SBS에서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영한다. 〈올해의 작가상〉은 작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후보작가 작품을 전시했으나 올해는 전시장소를 서울관으로 옮겼다. 전시는 오는 8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된다.
〈올해의 작가상〉은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할 작가들을 지원 및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2012년부터 SBS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문경원 전준호(2012년), 공성훈(2013년), 노순택(2014년)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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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1)

임상진 선생의 추상정신을 조망하다
〈임상진전〉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려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장석원)에서 〈임상진전〉(3.6~4.19)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고인의 유족이 2014년 미술관에 기증한 임상진(1935~2013)의 유작 27점 중에서 12점을 선별해 기획했다. 기증작은 작가의 활동 초기인 1950~1960년대 앵포르멜 성향의 작품과 2000년대 흑백 톤의 대형 추상작품으로, 특히 작가 연구자료로도 가치가 있는 1958년과 1960년 작품이 이번 전시에 소개되어 주목된다.
임상진의 초기화풍은 전후 유럽의 앵포르멜 성향을 보였고 한때는 하드 에지류의 기하학적 성향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는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만년에는 단순화, 단일화된 흑백의 추상성으로 정신적 절대성을 추구했다.
임상진은 1960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성남고, 한성여고, 수도여사대 부속고, 중경고에서 교사를 지냈고 1974년부터는 추계예대에서 부교수, 1982년에 전북대 미술교육과 초대 교수로 부임해서 2000년까지 미술학과에 재직했다. 〈악뚜엘전〉, 〈한국현대작가 동경전〉, 〈파리비엔날레전(1967)〉, 〈상파울루비엔날레전(1969)〉, 〈조선일보 현대작가전〉, 〈회화 오늘의 한국전〉 등에 출품했다.
전주=최정환 통신원

EDITOR’S LETTER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14년이 지났네요. 2001년 9월11일, 세계가 놀란 세계무역센터 폭파·붕괴 사건이 일어 난지 말입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3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지요.
여객기가 쌍둥이 빌딩에 처박히던 때 맨해튼은 이른 아침이었어요.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에서 저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아파트 상가 호프집에서 생맥주 잔을 부딪치고 있었고요. 공교롭게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당시 저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CNN 화면을 보면서 낄낄댔고, 심지어 ‘우와~(멋있다)!’라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처음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까닭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실 호프집 TV에서 긴급속보로 접한 뉴스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선뜻 믿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똑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면서 차츰 제정신을 차렸답니다. 이처럼 9.11은 한동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얼이 지나치면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오사마 빈 라덴’, ‘알 카에다’, ‘테러’, ‘이라크’ 같은 낯선 말들이 뉴스에서 오랫동안 회자 됐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종지부를 찍는듯했지요. 하지만 사정은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IS’, ‘참수’, ‘화형’, ‘보복’… 처럼 더 무시무시한 용어가 새로 등장했으니 말입니다. 전선戰線도 미국을 넘어 유럽 등 전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만 짓고 있던 우리도 이제 이 싸움이 남의 일이 아닌 처지가 됐습니다.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했다는 ‘김군(君)’ 소식 들으셨죠?
잘은 모르지만, 이 전쟁의 본질은 (극악무도한 일부) 이슬람 테러집단과의 단순한 싸움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21세기에 벌어지는 종교전쟁인 동시에 뿌리깊은 역사의 갈등에서 비롯된 문명의 충돌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때, 앞서 언급한 모든 사건의 중심에 ‘이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더군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슬람과 그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부랴부랴 특집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시사주간지도 아닌 미술 전문지에서까지 웬 이슬람 타령이냐고 불편해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미술 역시 세상만사의 한 부분입니다. 미술과 사회를 따로 떼어 놓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이번 특집기사가 그동안 잘 몰랐던 이슬람과 그 문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글 제목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을 인용했습니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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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이번 이슬람 미술 특집기사는 이슬람 전공자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임 교수는 이슬람문화 용어 사전 집필에 참여해 이슬람 문화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특히 본문 글제목을 아랍 문자로 표기해주었다. 부산외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아랍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랍세계의 헌법 번역과 이슬람법 샤리아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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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문현주
대구미술관 홍보마케팅팀장
대구미술관 문현주 팀장은 바쁜 와중에도 침착하고 꼼꼼하게 취재진을 응대하고, 기자간담회를 무리없이 진행했다. 대기업 홍보팀을 박차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미술관 개관때 부터 미술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대구미술관의 영문 MI(부처 아이덴티티)인 ‘dam’을 보고 ‘수자원공사 건물’이냐고 진지하게 묻던 한 관객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앞으로 대구미술관의 존재를 제대로 알리는 유능한 홍보우먼으로 남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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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47이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마감 직전 지면상 불가피하게 원고 분량이 늘어날 때가 있다. 순발력 있게 글 내용을 보완해준 노고에 감사드린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 미술사학과에서 현대미술과 사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와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대학(SAIC)에서 강의했으며, 스마트 미술관과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AIC)에서 큐레이터 경력을 쌓았다.

 

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2

양극화의 미학, 미술경향의 문제

1965년 출간돼 프랑스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은 지금 여기 20~30대 독자가 읽어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 젊은이가 국내 예술대학 과/또는 유학을 마친 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 연극, 패션, 무용 전공자라면, 그래서 남보다 나은 아비투스를 취득했고 세련된 감각을 가졌다고 자처한다면 더 그럴 것이다. 특히 연남동, 서촌, 경리단길, 한남동 등 소위 ‘핫 플레이스’가 마치 자기 취향의 고향, 자기 라이프스타일의 최신 버전, 자신의 미적 커뮤니티 혹은 심적 게토로써 감각의 쾌적함과 심리적 안락함과 지적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느낀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 형편, 경력, 지위를 볼 때 학생 때부터 갈고 닦은 자신의 미시전공/오타쿠적 지식과 아방가르드/앞서가는 안목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못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녀에게 《사물들》은 씁쓸한 일기장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상품사회가 제공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자신과 통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궁핍이 “그들의 현실이고”1 오늘 여기 88만원세대의 수입은 고사하고 신분조차 불투명한 젊은 예술인들의 현실이니 말이다.
이와 같은 간극, 즉 사물에 대한 취향의 사적 정치경제학과 사물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적 부와 권력의 불일치, 예술적 삶을 향한 꿈의 질적 수준과 예술을 전유할 수 있는 물질적 역능 사이의 낙차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크고 깊어졌다. 그 간극은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배태한 극단적 양극화가 그 간극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그 간극, 또는 양극화는 특히 요즘 뜨는 감각과 훈련된 열정, 디지털미디어 기반의 다원적 정보력과 의사소통능력을 지닌(이런 능력은 큰 잠재력이지만 현실 자본이나 힘으로 교환되는 행운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청년세대에게 치명적 내상을 입히거나 강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능 면에서나 성실함에서나 그것을 소유하고 누릴 자격을 갖췄다고 자신하는 그/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SNS를 보면 나보다 못한 이도 가진 욕망의 대상 획득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런 경우 그/녀는 점차 위축되고 자신과 세계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기에 이른다. 혹은 반대로 과도하게 외부에 개방된 채 무조건 승자나 강자를 따라 하고 보는 카피캣(copycat)이 된다. 나는 여기에 한국현대미술의 어떤 문제를 결부시킬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한국의 젊은 미술가(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보면, 그 간극은 하부구조적 원인의 단계를 넘어서 문화적 표현의 꼭짓점까지 차올랐다. 이름 붙이자면 ‘미적 경향의 양극화’ 내지는 ‘양극화시대의 양극화된 미술 경향‘이다. 첫째로는 만든 이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사적으로 내밀한 부분에 연결되는, 내향적이고 스케일이 작으며 멜랑콜리한 미술이 있다. 또는 그런 속성을 대중문화 속 이른바 ‘병(신)맛’ 코드나 ‘비주류/비정상’ 기호로 덧씌워 자신과 같은 심리 및 처지에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 증폭시키는 미술이 있다. 둘째로는 문화적 주도권이든 경제력이든 현실 사회에 강한 우세종의 미술, 대표적으로 테리 스미스가 컨템포러리 아트 유형으로 꼽은 리모더니즘(remodernism), 레트로 센세이셔널리즘(retro -sensationalism), 스펙터큘러리스트 아트(spectacularist art)2 중 하나를 부단히 학습하고, 내면화하고, 재-재생산함으로써 그 일원이 되려는 미술이 있다(지난 글에서 청년작가들에게 전위적이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보유하고 있냐고 물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틈은 없지만 이 현대미술 유형은 대체로 과거의 유력 미술 유령들을 오늘의 글로벌미술시장에 맞게 재생한다. 기품 있으면서 섹시하고, 전통적이면서 센세이셔널 할 수 있게 ‘복고(retro-)’라는 위약과 ‘장관(spectacle)’이라는 강장제를 써서. 그러니 그것을 흉내 내는 새로운 세대의 미술은 낡은 미술 유령의 출몰을 뒷바라지하는 꼴이다.
어쨌든 위 첫 번째 미술은 젊은 미술가들이 사회경제구조가 초래한 양극화에 대해 무력한 소외 또는 자발적 잉여생산 및 소비의 방식으로 응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미술은 정반대로 그 양극화 또는 간극을 양성하고 고착화한 문화예술경제의 패권적 기제를 영리하게 마스터하고 점유,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주인미술(라캉의 ‘주인담론’에 유비하자면)로 거듭나고자 하는 양태다. 그런 면에서 이 두 미술의 방향은 분리된 노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미술계에는 가령 현재는 우세종 미술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예외적 스타일이나 별스러운 취미라며 하루아침에 각광 받을 기회가 널려있다. 두 노선이 얼마든 뒤섞이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미적 경향의 양극화’ 문제를 젊은 미술가들에 한정하지 않고 한국현대미술 전반이라는 큰 틀에 맞추면 무엇이 보이는가? 막대한 물량 공세로만 구현 가능한 스펙터클 미술 기획안, 시쳇말로 ‘몰빵’에 가까운 ‘선택과 집중’ 정책을 통해 발탁한 스타 아티스트, 그/녀에게만 몰리는 재정 지원과 미술제도적 후원, 그런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문화예술지식 및 현장 경력에 독점적 지위 부여, 그것을 우월하고 유효한 것으로 가공해줄 수 있는 미술계 내부 전문가의 영향력 행사. 이렇게 다양한 성부(聲部)의 여러 박자가 긴밀하게 울려 퍼지면서 한국 미술계의 소위 ‘상위 1%(객관적 통계가 없으니 양극화를 표상하는 사회적 수치를 빌리면) 컨템포러리 아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이는 짧게는 최근 몇 년, 길게는 10여 년 사이에 만들어진 현상이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 리움, 에르메스코리아, 양현재단, 일우재단,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아라리오, SBS, CJ, 현대자동차, 하이트 등을 통해 이뤄진 각종 미술사업, 즉 전시, 컬렉션, 상, 오디션, 국제교류, 작품 위촉, 출판, 국제비엔날레와 레지던시, 국제미술시장에서의 판매, 경매, 프로모션, 협업 사례에 등재된 소수의 작가/심사자/결정권자 이름과 그들의 작품/프로젝트를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 이름들과 사업들이 한국현대미술의 우세종이다.
그런데 위의 장면과는 반대로 보이는, 그러나 분명 동시대의 조건 속에서 동시대미술의 일부로 공존하는 미술 종(種)이 있다. 의식적으로 넝마주이의 질료와 방식을 써서 약함, 부적응, 결여, 궁핍, 불완전, 불안정, 버려짐을 드러내고 그렇게 해서 소수자적 감수성과 삶의 방식에 어필하는 작업이 그에 속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철 지났거나 폐허로 취급됐을 장소를 서로 알음알음 협력해 주변부 예술공간으로 변용하고 운영하면서 기업의 자본이나 공적 제도의 지원 대신 자생력과 문화예술 힙스터의 지지를 양분 삼아 커가는 미술 시스템도 있다. 그리고 뻔한 예가 되겠지만, 셀 수도 없이 많은 미술가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합당한 자리도 없이 각자의 현존으로 각자의 미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실에 고독하게 앉아 40년째 사군자를 연마하는 이서부터 공동체에 기여하는 미술을 실천하고 싶어 자비를 들여 강화도 섬 주민들의 미적 일상을 신문으로 만드는 이까지 말이다. 이들은 싫든 좋든 한국의 상위 1% 현대미술과는 현재로서는 다른 지점에 있다. 아니, 사실은 사회에서 말하듯 그 1%를 떠받치고 있는 99%의 나머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도 어떻든 충분치 않은 사회적 인정과 경제 형편에 고통 받고, 스타 아티스트의 휘황찬란한 행보와 작품 앞에서 쪼그라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를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앞서 말한 젊은 미술가들의 현실과 어려움은 특정 세대가 아니라 대다수 미술인이 겪고 있는 현실이고 문제다. 문제는 가진 기성세대와 못 가진 청년세대, 의식과 취향이 ‘꼰대’인 이들과 그에 앞서가는 이들의 미학적 갈등이 아니다. 조건 설정에 따라 그것들은 얼마든 바뀌고 뒤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기형적으로 양극화된 미적 경향을 문화 경쟁력을 빌미로 내속시키는 미술계 상하부구조다. ‘세계적 미술관’ ‘국제적 지명도의 작가’ ‘글로벌 전시’ ‘명품’ ‘저명 전문가’ 같은 둔한 수사학 뒤에서 다수의 다종다양한 미술가능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든 꿈에서 깨 짚어야 한다.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1 Georges Perec, 《Les Choses: Une histoire années soixante》, 1965, 조르주 페렉, 김명숙 역, 《사물들》,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pp.20~23.
2 Terry Smith, 《What is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pp.267~268. 참고할 것.

HOT PEOPLE 박우홍 제 17대 한국화랑협회 회장・동산방화랑 대표

代를 이은 畵商, 화랑협회 수장이 되다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33회 화랑미술제> 전시 포스터
위 2014년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광경. 박 회장은 “임기 중 <KIAF>를 재설계할 것”임을 밝혔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2월 12일에 열린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이하 ‘화랑협회’) 정기총회에서 제17대 화랑협회장에 선출됐다. 국내외 경제 침체로 우리 화랑가의 표정도 그리 밝진 못한 터라 더욱 막중한 책임이 지워진 지금, 3년 임기를 시작하는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화랑협회가 1976년 출범할 당시에는 회장을 맡은 이의 화랑에서 곁방살이를 했는데, 현재 회원화랑 수만 14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전 선배들의 공이지요”라고 인터뷰의 운을 뗐다. 그러나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화랑협회의 위상에 걸맞은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다. 박 회장은 현재 우리 미술시장이 봉착한 어려움의 원인을 분석했다. “우리 시장이 협소한 것은 잘 알려졌지요. 그런데 주변국인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상황도 매우 안 좋아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아트바젤 홍콩>이 성황을 이루며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죠. 그러니 우리 작가를 아시아에서 열리는 다양한 아트페어에 소개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럴 때 자국 시장에서 받쳐줘야 하는데 구조적 문제로 그러지를 못하고 있어요.” 작금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다.
불황도 문제지만 시장 상황의 왜곡으로 화랑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도 큰 문제다. 박 회장은 이를 선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한 사회에서 화랑문화가 성숙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일고 있는 특정 장르에 대한 열풍은 설익은 감이 없지 않아요. 이를 뒷받침할 전시와 비평적 논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장의 열풍은 거품과 같아서 금방 꺼져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그는 한 단체의 수장으로 정책 입안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박 회장은 현재 입법부는 물론, 정책 입안을 담당하는 주무부서도 화랑계를 불신하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화랑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임기 중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화랑협회가 문화예술 분야의 한 축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상인들의 이익단체로 치부하는 시선을 느낍니다. 그간 쌓이고 쌓인 불신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겠죠.” 이를 타개해 이후 화랑계를 이끌어갈 세대들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 역량을 기울일 것을 출마소견서에 적시했던 박 회장이다.
우리 미술시장을 몇몇 대형 화랑이 장악한 상황과 경매사와의 갈등도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이 문제에 대해 박 회장은 회원 화랑의 의견수렴을 적극적으로 해 하나 하나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컬렉터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화를 지향하되, 질이 담보되며, 일반인이 컬렉터가 되는 데 있어 높은 문턱을 의식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작가의 유족이나 컬렉터의 기부문화 활성화와 그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올해 시장을 예상해달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더 떨어질 것은 아니나,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덧붙여 <화랑미술제>나 향후 열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변혁을 예고했다. “특히 <KIAF>는 적극적인 모멘텀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에 7개국(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 호주) 화랑협회와 머리를 맞대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묘안을 찾고 있습니다. 상호 단체가 주관하는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한 컬렉터를 연결시키는 등의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그러면서 KIAF의 재설계도 임기 내에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 맡겨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박 회장의 부친은 화랑협회 2, 6대 회장을 역임한 박주환 전 동산방화랑 대표다. 지금도 고미술 전람회를 기획할 때면 부친에 대한 헌정전으로 생각한다는 박 회장이다. 이번 회장직 선출로 우리 화랑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父子) 회장이 탄생했다. 2대에 걸쳐 화랑을 운영하는 그에게 현재 화랑계의 가업화(家業化) 상황에 대해 물었다. “우리 화랑은 당대에 한 작가의 특정 작품 경향을 트레이드마크화해 올인하는 경향이 있어요. 외국의 경우 할아버지 대에 상대하던 작가가 손자 대에 이르러 큰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래서 화랑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후대에 이르러 평가받을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대를 이어 지원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화랑의 역사가 오래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굴 작가가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미술관이나 비평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 셈이다.
새로운 수장의 선출로 화랑계가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미술계의 한 축으로서 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황석권 수석기자

박 우 홍 Park Woohong
1952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이사 및 부회장(1997~2002),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2002), 한국미술품 감정평가원 감정위원(2005~2014), 한국화랑협회 부회장(2009~2012)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동산방화랑 대표를 맡았다.

SIGHT & ISSUE 故임영방 제12대(1992~1997)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대쪽 같은 작은 거인의 귀천

지난 1월 31일, 관장님 부음을 접하고 잠시 멍해졌다. 언제나 찾아뵈면 반가이 맞아주실 줄 알고 바쁘다는 핑계로 뵙기를 미루고 시간을 보내다 관장님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아뿔싸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 삶에 있어 은인 같은 분이 있게 마련이다. 내게 임영방 관장님은 은인을 넘어 부모님 같은 분이다. 세상의 고마운 분들로부터 늘 은혜를 입어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추고 살고 있지만 관장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마친 나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불러 학예실장이라는 과분하고 무거운 짐을 주셨다. 그 부름에 조금이라도 답하고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부딪쳤다. 가끔 힘이 들고 어려운 기색을 보일라치면 저녁에 퇴근하면 소주 한잔하자고 슬그머니 이끄셨다. 허름한 대폿집에 들어서면 늘 미술관 직원들이 함께 있었다. 미술관 구석구석에서 소리 없이 자신의 일에 열심인 직원 몇을 저녁 술자리에 불러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때는 엄한 관장이 아니라 동지적 관계(?)에서 새로운 미술관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자리였다. 덕수궁미술관 시절부터 근무해온 그들에게 관장님이 그리는 선진적인 미술관의 시스템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설명하시면서 함께 새로운 미술관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하셨다.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귀천과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그런 소탈한 분이셨다. 그런 관장님이 2015년 유난히 매섭던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봄이 오려는 즈음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관장님은 늘 섬기고 따르던 하느님의 품에 안기어 행복하실지 모르지만 속세에 남은 장삼이사들은 그 서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사실 임영방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임무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어렵던 시절 홍콩과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남다른 기회에 대해 국가와 민족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는 우선 학문적으로 보면 한국미술사에 근대적 개념의 미학과 미술사의 개념과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근대기 지식인이었으며, 국민을 계몽해야 한다는 의지로 지사적 실천을 행했다. 하지만 그는 인문학이라는 틀을 지키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학문적 원칙주의는 그의 삶에서도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가치와 철학에 따라 주도적으로 원칙을 만들고 이를 스스로 지킨 사람이다. 그 원칙 때문에 때로는 오해도 샀지만 자신의 원칙을 잠시 미룰지언정 허무는 법은 없었다. 이런 그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지키면서 힘들고 때로는 거추장스러웠을까, 아니면 행복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원칙의 삶을 살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사표이자 대한민국에서 21세기까지 존재한 마지막 선비였다.
특히 한국 미술관에서 임영방은 변곡점이다. 그 이전의 미술관은 근대적인 미술관 아니면 개발도상국가형 미술관이었다면 그 이후의 미술관은 현대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미술관으로 전이해나간 과정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는 큐레이터 중심의 미술관을 꿈꾸었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삶과 유리된 구름 위의 미술을 세상의 미술, 사람들의 미술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가 학문과 삶에서 추구했던 것처럼 미술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그 가치와 격이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고 그 이듬해 <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을 논란을 물리치고 개최했다. 단색조회화라는 전대미문의 집단 개성화된 한국화단에 다문화적 당대미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국미술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일으켰다. 또 <민중미술 15년전>을 열어 산발적인 미술운동차원의 미술을 한국미술사에 편입시켰다. 또 <올해의 작가>라는 제도를 통해 미술의 영역을 확대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기를 희망했다. 또 <일본현대미술전>을 통해 정치와 문화를 구분해서 일본을 대하고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고자 했다. 사실 그는 오늘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건립에도 막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광복 후 홍콩에서 동문수학한 후배 백남준과 함께 이탈리아와 베니스시를 설득하고 한국 정부를 이해시켜 건립 예산을 확보하기까지 안살림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격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킨 1995년의 광주비엔날레도 그의 작품이다. 첫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장으로 그는 자신의 유학시절 인맥과 경험을 최대한 가동시켜 척박한 불모의 땅에 비엔날레라는 씨앗을 움 틔웠다. 이후 그가 떠난 후의 광주비엔날레를 떠올려보면 그의 혜안과 지도력 그리고 실천의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미술사에서 그의 족적을 살펴보고 이를 서술한다는 것은 내겐 역부족일지 모른다. 미술사, 미학 등의 이론분야는 물론 문화정책과 박물관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론 또는 책상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긴 문화운동가였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단구의 거목이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개화된 가풍으로 인해 열린 세상을 누구보다 먼저 접한 그. 지사적 자세로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헤쳐 나오면서, 가끔은 기뻐했으나 많은 시간을 통분하고, 혹은 질주하고, 때로는 돌아오면서 역사와 현재의 화해를 통해 미래를 그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임영방 관장에게 가장 큰 힘은 거침없는 용기와 강단 있는 명철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굽히지 않는 자신감과 소명의식이었다. 이런 지사적 풍모와 대쪽 같은 그의 기개는 조선 선비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관장님을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드리고 나서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계실 적 그리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던 제가 이제야 깨우쳤지만 결코 관장님처럼 격과 결이 있는 삶을 살 수 없음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부디 누구도 당신이 세운 올곧은 뜻을 거스르는 자 없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평안하소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식을 마치고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식을 마치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임 영 방 Lim Youngbang
고 임영방(1929~2015)은 경기도 인천 출생이다.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1871~1940년 사이 파리시의 공공건물 내의 벽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대학 및 인문대학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미술제를 이끌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저서로는 《서양미술전집》 《미술교육》 《현대미술의 이해》 《미술이 걸어온 길》등과 중세부터 바로크시대까지 시대별로 미술을 정리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중세미술의 도상》 《바로크》가 있다. 서울신문비평상(1986), 프랑스 일급문화예술훈장(1996), 제3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 문화훈장(2006)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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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50년 동안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기리며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제가 스무 살 학생 때였으니 벌써 50년 전 일입니다. 그 당시 저는 미술대학에 대해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니 당연히 미술에 관련된 논의가 활기차게 흘러넘치고 ‘미술로 세상을 열어’ 갈 저에게 빛이 되어줄 곳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허기진 지식욕을 채워주기에는 실기 위주의 미술대학 분위기는 기대와 영 딴판이었습니다. 게다가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매 학기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할 때 선생님이 미술대학(저에게)에 나타나셨습니다. 지성적인 면모의 패션, 걸음걸이까지 멋지던 선생님은 저에게 막연히 동경하던 미술의 나라 프랑스 그 자체였습니다. 해맑은 미소는 말할 것도 없고 서투른 모국어까지 멋있어 보였으니 선생님의 뭔가가 제게 씌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학보사 편집을 맡고 있던 저를 선생님은 퇴근길에 자주 데리고 다니시면서 세상 보는 시각을 넓혀 주셨습니다. 심지어 동베를린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저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졸업한 뒤 한참 지나 문리대 미학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당신이 원하던 인문학의 자리로 옮기신 것을 축하드렸지만 당신은 그래도 미술대학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셨으니 보람 있는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특별한 인연이 다시 시작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님으로 재직하실 때였습니다. 과천의 산속에 뚝 떨어져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관장으로 계시면서 〈휘트니 미술관전〉과 〈아! 고구려전〉 등 몇 개의 특별전으로 미술관의 대중화에 대성공을 거두셨습니다. 그 직후에 당시 운동권미술인 ‘민중미술’ 전시회를 개최한 것은 선생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큰 결단으로 지금도 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주위에는 불온한(?) 민중미술전을 열지 말라는 따가운 시선과 만류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한 시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의 개최를 밀고 나가셨습니다. ‘민중미술’은 허구가 아니라 분명히 이 땅에서 만들어진 리얼리즘미술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빛나는 업적은 은퇴 후 세검정 시절에 이룩한 인문학적 저술 활동입니다. 르네상스미술과 중세미술, 바로크미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800~1000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저작들을 80세 전후의 고령에 펴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아깝게도 선생님은 낭만주의 미술에도 손을 대시다 영면하신 걸로 전해 들었습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들은 저희 제자들이 능력이 되는 대로 출판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러한 저술은 그 자체로 인문학적 학술활동으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미술의 지평을 인문정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 미술학도로써 또 제자로써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많은 일을 하시면서 알게 모르게 후학들에게 모범으로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 인간이 참다운 스승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은사로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저희 제자로서는 정말 행운입니다. 저희는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선생님의 인문정신의 가르침을 우리들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김정헌 작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스승의날 모임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앞줄 왼쪽부터 김정헌, 임영방 부부, 안필연, 뒷줄 왼쪽부터 최태만, 임옥상, 박영남)

스승의날 모임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앞줄 왼쪽부터 김정헌, 임영방 부부, 안필연, 뒷줄 왼쪽부터 최태만, 임옥상, 박영남)

 

SIGHT & ISSUE 함창예고을-금.상.첨.화錦.上.添.畵

비단과 술이 익는 마을, 함창의 미술프로젝트

우리나라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벌어진 지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조용히 진행돼 왔다. 조용하게 진행됐다란 말은 기획 특성상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미술계 안에서 작가들과 기획자에게만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다. 미술공간과 행사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예술계의 관심도 당연히 여기에 맞춰져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생산(작가의 창작), 소통(전시와 비평), 수용(관객의 반응)의 세 꼭짓점 중에서 주로 생산 장소로 쓰이던 곳에 나머지 요소를 불러들인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의 마을프로젝트는 작년에 발주한 사업 가운데 가장 크게 진행되는 행사다.
<함창예고을-금.상.첨.화>라는 표제를 붙인 프로젝트는 비단 위에 꽃을 얹었다는 금상첨화(錦上添花)에서 꽃 화(花)를 그림 화(畵)로 바꾸었다. 예부터 뽕나무와 누에를 키워서 비단의 고장으로 이름 높은 이곳에 그림까지 더한 마을을 일군다는 뜻의 ‘금.상.첨.화(錦.上.添.畵)’는 프로젝트 전체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함창 간이역 앞에 세워진 육근병의 미디어아트 작품은 누에고치 형태로 상주시 함창의 장소성을 함축해 보여준다.
전체 둘레길은 육근병과 오승환의 작품이 설치된 함창역을 <금상첨화> 가운데 ‘금(錦)’으로 잡고, ‘상(上)’에 해당하는 가야마을에 정의지, 양현진, 오유경과 김경아, 이창호, 프로젝트팀 2반(최혜정, 달문, 나다), 가야사랑마을공작소, 김성석의 작업이 들어갔다. 읍내 전통시장의 담벼락과 아케이드 천장에 각각 백용성과 이강준의 벽화와 조형물이 ‘첨(添)’을 이뤘고, 마지막 ‘화(畵)’에는 가장 많은 작가(이재형, 고순정, 윤동환, 라온(이미정, 신순단, 박남규), 김승영과 박기진, 김석환, 있다1(최정은 등)과 2(요아킴 등), 상주예총 협업, 안경진, 이승원)이 들어갔다. 이는 미술의 각 분야에 더하여 공연, 출판까지 아우르는 총체 예술의 성격을 띤다.
상주 특산품인 비단과 더불어, 전쟁 직후부터 ‘세창도가’란 명성을 쌓으며 함창에서 번성하던 양조업이 자취를 감춘 지금, 함창프로젝트는 양조장 폐건물을 예술공간으로 되살려냈다. 모두 여섯 개의 복합전시공간으로 변신한 이곳은 예컨대 김승영, 박기진 작가의 협업 <술도가>(술을 빚어내는 집이란 뜻으로, 지역에서는 ‘술도가이’라는 발음에 가깝게 쓴다)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맥락을 얻었다. 무엇보다 함창마을프로젝트가 큰 조형물을 놓거나 선전 문구를 뿌리는 식의 자치단체 홍보수단으로 변질되는 선례를 따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이는 출발 단계에 선 이 프로젝트가 아직도 원 거주민에게는 예술마을 정착이건 관광산업 혹은 양조업의 부활이건 하나의 활력 요소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함창=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육근병 <터> 철근 철판 FRP 영상설치 310×230×290cm 2014 함창역 앞에 설치됐다

육근병 <터> 철근 철판 FRP 영상설치 310×230×290cm 2014 함창역 앞에 설치됐다

 

HOT ART SPACE

가나아트콜렉션
가나인사아트센터 1.27~3.16

인사동 가나아트센터가 내외관을 리뉴얼하고 <가나아트콜렉션전>을 전관에서 진행한다. 1월 27일부터 3월 16일(<고암 이응노전>은 3월 1일까지)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한국근대조각전>, <근대한국화 4인전>, <해외작가전: 기억과 체험>, <외국인이 본 근대 풍물화전> 그리고 <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전 1930~1950s>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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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혜 (1)

양주혜 개인전
신세계갤러리 본점 1.22~2.25

<시간의 그물>을 타이틀로 한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30여 년간 해온 색점작업으로 구성됐다. 그를 대표하는 바코드 작업과 더불어 ‘지난 시간을 지우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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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1)

최선 개인전
송은아트스페이스 2.13~3.28

제12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작가인 최선의 이번 전시 제목은 <메아리>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와 연관있는 재료를 이용하거나 다양한 외부인을 제작 과정에 적극 참여시켜 완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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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

텍스트 콜라주
경남도립미술관 1.29~5.13

윤성지 이광기 조은지 3인의 작가가 참여해 현대미술에 일반화된 소재인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문법을 거부하는 텍스트가 이미지화될 때 벌어지는 다양한 미적체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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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_일우 (6)

Play with Drawing
일우스페이스 1.8~2.25

19명의 작가가 드로잉 및 설치작품 60여 점을 선보인 전시는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참여해 세대별로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날것’의 성격을 지닌 드로잉의 매력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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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연 (4)

김부연 유작전
갤러리 팔레 드 서울 1.28~2.10

뜻밖에 요절한 故 김부연(1969~2013)의 유작전이 열렸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세계를 화면에 옮겼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업은 순수함과 밝음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번 유작전은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개최한 것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