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VIEW

염치

한참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몇 번째.
그날 기자는 취재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사고가 일어났음을 전해들었고, 분명히 구조 작업을 벌여 인근 항구로 이송 중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냥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취재에 나선 것으로 기억한다. 2년이 지난 지금, 300명이 넘는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선생, 누군가의 친구….
일면식도 없고, 인연을 맺은 이도 없지만 어디서 그저 스쳐 지나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이들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전시장에서 관람객으로 만났을 수 있었을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사진으로만 미술관 앞에 있는 분향소에서나 만날 수 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밑바닥을 봤다.
살아있는 자들의 세치 혀로 누군가는 망자와 그 유족을 모욕했다. 누군가는 그럴 듯한 말로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음에 수렴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발언은 정치적이라고 했고, 위로는 배와 함께 침몰했다.
그러니 애당초 망자와 유족을 위로한답시고 허락된 지면에 이 글을 쓰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경기도미술관 앞 분향소를 다시 본다.
2주기 추모전은 <사월의 동행>(경기도미술관, 4.16~6.26)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황석권 anarchy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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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게임

원고 청탁을 위해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는 지금 옥바라지 골목에 철거가 진행돼 내일 통화하자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최근 리슨투더시티는 지역 주민, 예술가들과 함께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우연찮게 이번 호에 소개되는 작가 이정배의 <씨앗 프로젝트>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1908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사들이 모진 고문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했던 곳이자,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른 곳이다. 이들의 가족들은 형무소 맞은편 자리에서 옥바라지하며 그들과 함께 고통과 설움을 나누었다. 바로 그 장소가 옥바라지 골목이다.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이 골목에는 100년 가까운 세월과 수많은 이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며칠 전 방문한 옥바라지 골목은 을씨년스러웠다. 아파트 재개발로 철거가 예정된 이 구역은 현재 대부분 빈집으로 곳곳에 출입금지 띠가 둘리어 있었다. 하지만 18가구 약 40여 명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재개발 반대 여론을 수용해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개발 조합과 종로구가 이에 반발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이번 5월 28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의 주제가 ‘용적률 게임’으로 정해졌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에서(지하 제외) 건물 각층의 면적을 합한 총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용적률은 건축물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수치다. 최근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에 들어설 현대자동차 신사옥의 높이가 105층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층인 123층의 롯데월드타워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어마어마한 높이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800%로 올려준 대가로 현대차로부터 1조7000억 원을 기부받는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땅의 효율성을 따지자면, 땅값이 올라갈수록 용적률 싸움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가치도 현재 롯데캐슬 아파트 네 동과 저울질 중이다. 씁쓸하지만 용적률 게임은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이슬비 drizzles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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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이미지

ⓒBen Gillin

그림으로 말해요

지난 해 말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이었다. 얼굴 표정을 설명하는 이 표현이 한 해 동안 사용이 크게 급증하거나 이슈가 된 단어로 선정됐다니 어딘가 미심쩍다. 그러나 이 단어를 표현한 그림문자를 보면, 누구나 ‘아하!’하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픽토그램의 하나인 이모지(Emoji)가 언어표현으로 인정된 이 사례는 ‘문자’의 범주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겐 ‘이모지’보다 ‘이모티콘’이란 말로 익숙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모티콘이 부호를 조합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면 이모지는 그림문자에 가깝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메신저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긴 문장으로 적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단순한 아이콘을 한 번의 터치로 표현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국내 메신저 카카오톡에 따르면 매월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메시지에 주고받는 이모지 수는 약 20억개라고 한다.(《앱스토리》 2016년 2월호 참조) 엄청난 수치가 증명하듯 이모지는 어느새 생활 속 문자가 되었다. 공산품이 된 이미지에는 개성이 드러나는 글의 뉘앙스는 없다. 그러나 그림문자는 계속해서 알파벳을 확장하고 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메신저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이모지 사용을 넘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간혹 이모지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까지 있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이모지 폭이 넓어지면서 그림문자는 점차 일차적이고 단순한 표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미국의 웹디자이너인 벤 길린(Ben Gillin)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소재로 한 이모티콘 킴은지(Kimunji)를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언뜻 정치적 풍자로 보이지만 실상 그의 화살은 “미국 헐리우드의 모델 겸 배우인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500여개의 이모지인 ‘키모지(Kimoji)’에 열광하는 대중에게 있다. 언어유희를 통해 만들어진 이 이모지는 정치인과 연예인을 연결해 놀이를 제공함과 동시에 가벼운 사회적 풍자를 제시한다. 깊고 무거운 장편의 비평문에서 짧은 단상을 적는 SNS의 글을 넘어 이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기 표현이 이뤄진다.
임승현 shlim987@gmail.com

 

HOT PEOPLE 최재은

“DMZ라는 추상적인 공간”

올해 5월 28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리는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최재은이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참여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칠레 출신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총감독으로 선정됐으며, 주제는 ‘Reporting from the Front’로 정해졌다. 출품작은 최재은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반 시게루와 협업한 <夢의 庭園(Dreaming of Earth)>이다. 건축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설치 및 영상, 슬라이드, 문서 등의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DMZ(비무장지대)내 13개의 공중정원과 군사분계선 근처에 높이 20m의 전망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작품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최재은 작가를 만나 출품작과 전시 참여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DMZ의 생성 과정에 대한 아카이브를 제작할 예정입니다. 러일전쟁부터 역사 공부를 했는데 우리가 현재까지도 이렇게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나 싶어서 좀 슬픈 감정이 들더군요.” DMZ에 대한 역사공부를 통해 작가가 느낀 감정이 ‘슬픔’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식민지배, 광복,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의 역사와 그 역사의 결과물로서 DMZ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점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최재은 작가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몰입’이라고 했다. 다른 역사와 문화권에서 성장한 작가와의 협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DMZ가 분단의 상징보다는 생명의 보고라는 점을 더 선명히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터 컸겠다는 것이 그와의 대화에서 느낀 점이다. “DMZ는 치열한 공간이에요. 남북이 70년 가깝게 서로에게 적의(敵意)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잖아요? 정말 ‘징그럽고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에요.” 서로에게 고정된 시선은 그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한다. 최재은 작가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들여다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현실인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의 구체적인 면모를 들여다봐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도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DMZ는 굉장히 추상적인 공간이에요.”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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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설치 작품 스케치. DMZ프로젝트 실물의 1/200 규모로 설치될 예정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국제갤러리 제공)

 

HOT PEOPLE 안혜령

공격적으로 달려온 리안갤러리 10년

23년여간 컬렉터로 활동해오던 안혜령 대표. 그가 대구에 있는 시공갤러리를 인수해 2007년 3월 리안갤러리를 개관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컬렉터였던 그가 갤러리 오픈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시공갤러리 폐관을 아쉬워한 대구지역 미술 관계자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2007년 10월 리안갤러리 창원에 이어 2009년 11월에는 미술시장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서울 청담동에 LEEAHN on road 공간을 마련해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작가와 작품을 홍보했다. 이어서 2013년 1월에는 경복궁 옆 서촌 문화지구에 리안갤러리 서울을 신축, 개관해 규모를 확장했다. 그렇다고 갤러리의 거점을 서울로 완전히 옮긴 것은 아니다. 안 대표는 “대구에는 그림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 컬렉터가 많다. 그분들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된다”며 대구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그동안 전시했던 작가들의 작품 및 소장품(데이비드 살르, 앤디 워홀, 키키 스미스, 데미안 허스트, 알렉스 카츠, 프랑크 스텔라, 백남준 등)으로 구성된 〈10주년 기념전〉(리안갤러리 대구, 3.2~4.15)이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열린다는 점 역시 대구를 향한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트바젤 홍콩〉 참가준비로 바쁜 와중에 기자와 만난 안 대표는 화랑을 운영하며 그간 겪은 어려움에 대해 “오픈 당시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엄청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랑 한 장뿐이다. 그만큼 우리의 신용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리안갤러리를 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안 대표는 “지금까지 갤러리를 알리는 데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전속 작가들을 꾸준히 늘려갈 계획”이라며 “‘좋은 작가를 양성하는 갤러리’ ‘작가들이 전시하고픈 갤러리’라는 평을 듣고 싶다. 리안갤러리 출신 작가들이 해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이제 리안갤러리는 세계 주요 갤러리 대표 및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들려야 하는 곳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 이에 걸맞게 해외 주요 아트 페어에도 꾸준히 참가해 한국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갤러리 운영의 원동력으로 꼽은 안 대표와 리안갤러리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본다.
곽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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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 〈10주년 기념전〉(3.2~4.15) 전시광경

 

HOT PEOPLE 임근우

072-075 핫피플-최재은 리안 임근우(엡손)ok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국립춘천박물관(3.7~4.3) 춘천문화예술회관(3.7~3.18) KT&G상상마당 춘천(3.7~4.6)갤러리 4F(3.7~4.6) 춘천문화 예술회관(3.7~3.18) 전시전경

〈임근우의 ‘춘천 고고학적 기상도’ 5色〉

선사고대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고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업세계를 펼치는 작가 임근우가 그의 고향인 춘천에서 대규모 전시를 이어간다. ‘춘천의 선사 고대문화, 예술로 꽃피우다’라는 주제하에 열리는 〈임근우의 춘천 고고학적 기상도 5色전〉은 춘천지역 박물관 미술관 및 갤러리 등 무려 5곳에서 동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 300여 점을 한 번에 만나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로 조명 받고 있다. 이에 전시장을 찾는 관객이 많은 토요일(3.26, 4.2)에는 아트투어 셔틀버스를 운행해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5곳에서 연이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행사도 진행한다.
규모가 가장 큰 전시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춘천에서 출토된 선사 고대 유물이 설치된 상설전시장에 춘천의 대표 청동기 마을인 천전리를 탁본한 그의 작품 〈천전리 평면도〉(1994)를 배치한다거나 도기 조각을 사용해 오브제를 중첩시키는 작업을 선사시대 도기와 함께 배치해 현대미술과 고대 문화유산의 협업을 이뤄냈다.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임근우의 초기작을 포함한 대형 회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춘천미술관에서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경기장에 설치한 작품인 〈다리 밟기〉를 공간에 맞게 재설치하는 등 설치작품과 아카이빙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를 꾸몄다. 다른 두 곳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의 회화와 조각을 밀도 있게 관람할 수 있다. 임근우는 춘천 지역의 중도, 신매리, 천전리나 전곡리 등 고고학 발굴 현장에 직접 참여하며 옛것과 현재가 만나는 환경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25년간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라는 제목을 모든 작품의 명제로 삼았다. 이를 통해 흘러간 시간을 발굴 및 조사하는 고고학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예측하는 기상도를 연결해 현재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인류학적 상상의 시간을 제공해 일종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임근우는 1958년 태어났으며 서울, 춘천, 부산, 바르셀로나, 베이징 등에서 총 4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4년 MBC미술대전 대상, 1995년 제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춘천=임승현 기자

 

REGIONAL NEWS

전시2

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진행 중인 퍼포먼스 모습 아래 서울 이포갤러리에서 열린 〈동방으로부터〉 전시전경

전주

통일의 염원을 싣고 철의 실크로드로 달리다
‘동방으로부터’ 여정단 리포트 전 열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10인의 예술가가 모여 문화 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문화교류 프로젝트 철의 실크로드 ‘동방으로부터’〉(이하 ‘동방으로부터’)(단장 심홍재)를 진행했다. 그간의 과정을 정리하는 전시가 서울 이포갤러리(3.25~31)와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청년회관(4.5~13)에서 연이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방으로부터’ 여정단의 활동을 담은 영상과 각국 현지인들이 적은 평화통일 염원 메시지를 소개했다.
‘동방으로부터’ 여정단은 세계에서 가장 긴 유라시아철도를 이용해 국제 사회에 통일 염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목적으로 전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퍼포먼스 작가 심재홍을 중심으로 한 10인의 국·내외 예술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23일 전주 치명자산 천주교 성지에서 발대식을 갖고 11월 20일 부산을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바르샤바, 프라하, 베를린, 암스테르담, 브뤼셀, 런던을 거쳐 스페인 마드리드와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순회했다. 지난 1월 18일 서울역에서의 행사를 끝으로 48일간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이들은 사전 제작한 통일 만장과 현수막을 설치해 세계 각국의 현지인이 한국의 분단 상황을 인식하도록 하고 바닥에 깔린 한지에 메시지를 적게 했다. 염원을 담은 한지를 태우는가 하면, 현지인들의 메시지를 담은 죽부인을 치켜세우는 플래시몹 등을 진행하였다.
행위예술가 심홍재 단장을 비롯해, 오광해(한국화가), 김석환(행위미술가, 화가), 김서연(사진가), 심인(스크립터), 김방진(루게릭 퍼커션)이 한국에서 출발했고 유지환(행위미술가, 화가), 조성백(행위미술가, 조각가), 전영지(무용가), 링천(행위미술가, 화가)이 파리에서 합류했다. 현재 ‘동방으로부터’ 여정단은 2017년 리스본에서 시작해 유럽을 거쳐 인도와 중국을 잇는 2차 여정을 기획하고있다.
최정환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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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주_rois Clarins
프랑스 화가의 ‘한국방문기’
한불 수교 130주년〈클로드 게나르가 그리는 한국이야기전〉열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광주 프랑스문화원(원장 최승은)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히 올해는 광주 홀리데이인 호텔과 연계해 넓은 장소에서 행사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광주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클로드 게나르가 그리는 한국이야기: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다전〉은 외국인 눈을 통해 우리 모습을 되돌아본 기회였다. 프랑스문화원 내부 벽에 내걸린 A4용지 크기 작품 50여 점은 프랑스 출신 화가 클로드 게나르(Claude Guenard)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산, 광주 등을 돌며 만난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유니폼을 입은 회사 여직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인, 시장 상인 등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프랑스 화가의 ‘한국 방문기’인 셈이다. 재미있는 건 작품 소재가 모두 잡지이거나 광고용지라는 점이다. 지면 전체를 잉크로 덮지 않고 사인펜으로 쓱쓱 그리듯 가벼운 표현 기법을 사용한 게 특징이다. 그런 효과 덕분에 광고의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충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한복 주름, 얼굴 표정 등 디테일이 살아있다. 마치 캐리커처를 보는 듯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클로드 게나르는 화가이자 모험가로 불린다. 젊을 땐 링 위에서 복서로 활동하기도 했고 국립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아프리카에서 20여 년간 미술을 가르친 경력이 있다.
박진현 《광주일보》 기자

광복 이후 한국 조각의 영향력
〈故 김영중 조각가 특별전〉열려

광주_평화행진곡전남 장성 출신 고(故) 김영중 조각가(1926~2005)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이 3월 5일 시작해 5월 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우호(又湖) 김영중-평화행진곡’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 70여 점과 설계도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다.
우선 전시실을 방문하면 높이 2m의 막대 모양 작품(작품명 미상·1985)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추상적 요소가 강한 이 작품은 그가 추구했던 이상향을 보여준다. 마치 연기가 땅에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형상이다. 전시장은 ‘구상 인체조각’, ‘용접조각과 생명’, ‘가족과 공동체’, ‘비상’ 총 4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초창기 작품이 주로 전시된 ‘구상 인체조각’에서는 전시 주제이기도 한 〈평화행진곡〉(사진)을 볼 수 있다. 나팔을 부는 여인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조각 특유의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운 조형미가 돋보인다. ‘용접조각과 생명’ 에 전시된 ‘기계주의와 인도주의’(1962)는 삭막해 보이는 작품을 새싹과 씨앗 모양의 조각으로 덧입혀 희망적인 메시지를 구현했다. 전시 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김영중의 작품세계가 ‘가족과 공동체’로 넘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따라 일렬로 나열한 높이 약 50cm 크기의 조각은 모자(母子) 또는 가족을 입체적으로 단순화한 형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영중 예술세계의 종착점은 ‘비상’ 섹션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넘어 희망을 잃지 않기를 꿈꿨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불굴의 조각상〉(높이 1m)과 광주문예회관에 설치된 〈예술+행위+도약〉은 이런 그의 염원이 잘 드러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 홍윤리는 “김영중 선생은 광주비엔날레 창설 주역이라는 점에서 광주와 매우 인연이 깊다”며 “광복 이후 한국 조각예술을 대표한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중은 1948년 서울대 미술학부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으며 전후 홍익대에 편입해 김환기(회화), 윤효중(조각)을 사사했다.
박진현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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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임호  50.5×38cm 캔버스에 유채 1952

임호 <흑선> 50.5×38cm 캔버스에 유채 1952

부산 토박이 작가들의 ‘향토적 서정성’
〈부산 토박이. 토벽동인의 재발견전〉열려

부산시립미술관(관장 김영순) 소장품 기획전시 〈부산 토박이. 토벽동인의 재발견전〉이 1월 28일부터 4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1953년 부산토박이들로 구성된 ‘토벽동인(土壁同人)’의 예술의식과 그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토벽동인회의 작품 40여 점과 함께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미디어로 구성됐다.
6·25전쟁 시기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던 예술 활동의 부흥기를 맞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가들로 부산은 포화상태였으며, 참담한 피란생활 중에도 예술가들의 활발한 소통과 교유가 이뤄졌다. 이 시기 부산 토박이인 김경, 김종식, 김영교, 김윤민, 서성찬, 임호로 구성된 ‘토벽동인’이 결성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미술을 흡수함으로써 그들만의 미의식을 정립했다.
‘토벽동인’은 전쟁 발발로 타지에서 피란은 예술가들이 대거 유입되자 부산미술계가 위축됨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들은 현실 중심의 지역 풍토를 확실하게 인식하려는 목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토벽이라는 이름도 ‘토박이’라는 의성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토벽동인’ 소속 작가들의 작품이 공통된 방향성을 뚜렷이 드러내지는 않지만 대체로 현대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서정성과 순박함을 띤다. ‘토벽동인’의 활동은 이른바 ‘향토적 서정성’을 지향하며 서구에서 전래된 서양화를 한국적 풍토에 맞게 토착하려한 지역 최초의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의 활동과 예술의식을 지역에 한정 지어서만 평가한 점은 아쉽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토벽동인’이 지역미술의 한계를 넘어 민족미술의 원형을 추구하는 큰 지향점을 두고 결성 및 활동했다는 점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은경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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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대구 (2)

〈 dreaming book-바다 〉 종이 590×620×525cm 2016

읽을 수 없는 책, 사회를 담은 책
10회 맞은〈유리상자-아트스타전〉

대구 중구에 위치한 봉산문화회관(관장 김순희)은 자치 행정단위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수많은 시설 중 하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지역 공공 아트센터와 비교할 때 공간과 프로그램에서 특별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전시실은 유리상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기획전시는 매번 관심이 집중되었다. 〈유리상자-아트스타전〉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1년에 한 번씩 공개 모집을 통해 전시 작가를 선정해왔다.
2007년에 시작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10주년을 자축하는 동기에서 올해는 공모가 아닌 초대전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월 19일에 시작하여 4월 17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시는 현대미술가 이지현의 〈dreaming book-바다〉다. 책이나 옷과 같은 기성품을 보풀과 구멍을 내고 해체하여 작품으로 만드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력에 특별히 기록될 만한 대규모 작업을 벌였다. 그는 자신이 임시로 거주하는 제주도 바닷가 작업실에서 수천 페이지 분량의 책을 한 장씩 뜯어서 패널과 비슷한 쓰임새로 이어 붙여 책 형태와는 전혀 다른 입체 조각을 완성했다. 그것은 실제 크기의 배가 되어서 천장에 매달렸다. 전시 공간 바닥은 섬과 섬 사이에 파도가 넘실대듯 높낮이를 달리한 설치물이 펼쳐졌다. 전시 표제가 그대로 가리키듯,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몽환적인 바다가 유리상자를 채웠다.
책은 사람들이 그 속에 담긴 정보를 읽고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이지현의 책은 읽을 수 없게끔 변형을 가하여 책과 종이 그 자체의 물질성을 더 강조한다. 원래 효용이 상실된 부분을 미적인 의미로 보충하는 이 과정은 어떤 책을 원 재료로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책이 사회 현실과 예술의 역사에 비친 콘텍스트를 이끌어내는 셈이다. 그러나 이 설치작은 알 듯 말 듯한 암호로 가득 찬 개념미술이라기보다 정보의 바다를 헤치고 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볼거리란 점에서 공공 미술관의 기획으로 합당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윤규홍 예술사회학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7

봄밤, 연애소설 읽는 사람들

봄이라서인가, 서점 신간코너에 연애소설들이 수두룩하다. 이 분홍빛 장르는 진부하도록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변함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란 걸 모르지는 않는데, 그래도 뭔가 그 앞에 두어야 할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인 성인들이 아닌가 싶다. 한창 사랑을 찾아 헤맬 때도 연애소설엔 손을 댄 적이 없건만, 요즘은 이런 책들을 슬쩍슬쩍 들춘다. 어떤 밀어들이 연애라는 중차대한 행위를 이끌어가나 힐끗거리면서.
그 이유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을 1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선정해서 2주에 한 권씩 읽고 격주 월요일마다 작업실에서 모인다. 밤은 이야기와 함께 더욱 짙어진다. 연애를 이야기하는 밤이라니, 다시 못 올 시절이다. 참가인원은 모두 넷이다. 소설 쓰는 남자와 소설을 쓰고 싶은 두 여자, 그리고 연애가 하고 싶은 한 여자. 이들이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사랑이 간절하거나 사랑에 대해 쓰거나 썼던, 사랑이 더 이상 없다고 믿고 있거나, 사랑보다 더 다급한 게 있다고 믿는 정도.
작년 3월말부터 시작했으니 딱 1년을 맞았고, 그 사이에 스무 권의 소설을 읽었다. <롤리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휴먼 스테인>, <개선문>, <순수박물관>, <나를 보내지마>, <슬픈 짐승>, <단순한 열정> … 이런 소설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읽는 소설은 거의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걸 빼놓고 어떤 소설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소설에서 인간의 태도와 심리, 선택의 문제 등을 환기할 수 있는 드넓은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하지만, 그 정도로 깊이 있게 쓴 연애소설은 손에 꼽힌다. 책을 읽어갈수록 다음에 읽을 책을 선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일 년 동안만 해보자던 모임을 당분간 더 지속하기로 했다. 시즌2를 위한 열 권의 책을 선정하면서 모르긴 해도 심중에서 꿈틀거림이 있지 않았을까? 쓰는 자로서 사랑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던 1년 동안, 나는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되새겼다. “정말 내가 그때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평생 가져갈 것 같다.
작업실에서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 외에도 ‘소설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이 모임도 15회를 넘겼으니 벌써 1년 반을 함께해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인 것은 같지만 소설클럽은 참가자들이 번갈아가며 발제를 맡는다. 각자 개인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고 토론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함께 소설을 읽고 책 이야기하는 모임을 소설 애호가들의 유별난 취미라고 치부할 법도 한데, 소설클럽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독서 모임을 찾는다면 꾸준히 참가하고 싶다고 말이다. 소설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출판계는 만날 우는 소린데, 이토록 열렬히 독서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 또한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요즘은 ‘함께’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는 것, 함께 여행을 가는 것. 분명, 혼자 하는 행위와 다르다. 처음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있었다. 시간 낭비는 아닐까,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고역이랴, 취향도 관점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일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경험이 전무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등등 염려는 끝도 없었다.
1년이 지난 후 모임의 행로를 더듬어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건 ‘함께’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서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집중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일상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혼자 하는 독서라면 혼자 납득하고 감동받은 데서 끝났을 테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정보와 경험과 해석과 감성은 사람 수만큼 배로 커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이렇게 재밌구나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 문학과 삶을 논할 때는 일상에서 긁힌 감정들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책은, 언제나 많은 덤을 주었다. 함께 읽는 건 ‘세 번의 독서’다. 책을 세 번 읽는 것이다. 책을 펼치고 혼자 읽어가는 첫 번째 독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확장되는 두 번째 독서 외에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온다. 바로 독서모임을 하고 난 다음 날이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 ?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감정, 혹은 내가 집중했던 소설 속 디테일 등 – 이 가볍게 정리되면서 나만의 작은 결론에 이른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물처럼 솟는다. 손이 근질거리는 그 느낌이 좋다. 소설의 깊은 곳에서 내 삶이 만개하는 것 같다.
달콤한 작업실 7어쨌건 이야기한다, 우린. 소설에 대해. 이 소설로 인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예민해졌던가. 소설이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임을 함께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복잡한 층과 결의 삶의 영역에 말없이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면 속닥속닥 들려온다. 목청 높여 밀려들어온다. 누군가에겐 캐시미어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는 이야기들. 배꼽 잡고 웃게 만들다가 글썽글썽 눈물짓게 만드는 이야기들. 내 곁에 고여 있는 이야기의 강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근다. ●

ART BOOK

사유할 수 없는 유령의 공간

조르조 아감벤 지음/윤병언 옮김《행간》자음과 모음 2015

금세기 테크놀로지로 명명된 판타지의 세계는 무한으로 열려 있다. 결코 의심치 않는 기술적 형이상학의 (비)현실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 주체로서의 존재와 위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기술의 환영 속에서 우리는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를 만나며 자본주의의 페티시즘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모든 (비)현실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에게는 결코 사유될 수 없는 빈 공간이다. 그에게 모든 (비)세계는 유령이자 오드라덱의 모습으로 현시된다. 아감벤은 《행간》에서 유령이라는 주제를 통해 왜 우리가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묻는다. 《호모 사케르》,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등의 저자이자 정치철학자로 유명한 아감벤의 《행간》은 예술에 대한 비평과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분석과 방대한 문헌학적 조사를 통한 예시와 수사로 가득 차있어 해석하기 만만치 않은 책이다. 행간(行間)으로 번역된 스탄차(Stanza)는 시(詩)의 거주지이자 피난처가 되는 공간으로, 행과 행 사이의 경계를 의미하며 이 경계공간에서의 비평이 곧 이 책의 핵심이다. 그는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판타지이자 비현실, 비장소의 이미지인 유령에 대해 4부에 걸쳐 설명하며 소유할 수 없는 것의 향유(시, 예술)와 향유할 수 없는 것의 소유(철학)에 대한 미학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
1부 ‘에로스의 유령’에서는 중세시대 정오의 악령으로 대변된 나태와 게으름이 어떻게 사랑의 열정인 에로스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뒤러의 <멜랑콜리아>는 단지 중세의 금기된 상징인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상실과 연관된다. 우울증은 뿌리칠 수 없는 성적 욕망과 닮아있는데 그는 이 우울, 멜랑콜리아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마치 잃어버린 대상처럼 보이게 하는 상상력에 가깝다고 보았다. 영혼의 촉수로서 우울은 유령과 줄곧 함께해왔으며 꿈과 사랑, 그리고 고귀한 창조 행위에 깊게 관여해 왔다는 것이다. 2부 ‘오드라덱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상품과 페티시즘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여성(어머니)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남근의 부재가 바로 특정한 물건에 대한 페티시즘(주물)이 되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추진축이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의 생산품이 사용가치를 벗어나 단지 껍데기인 비물질적 환영의 기호가 되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주물이 된 것처럼 상품은 이미 이미지로서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품의 주물화(페티시즘)가 만국박람회를 통해 예술작품과의 경계를 허물어 예술이 20세기 모더니티를 위한 대가로 자기부정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상품이 단지 교환가치에 머물지 않고 댄디와 같이 사용가치를 넘어 우아함과 과분함을 목적으로 하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즉 비현실의 전유를 가능케 하는 초월적 대상인 예술적 장난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3부 ‘말과 유령’에서는 1200년대 궁정연애시에 나타난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를 통해 페티시가 어떻게 이미지가 되었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가 사랑한 이미지는 욕망의 기호 아래 놓이는 것으로 인간의 영혼 속에 기억된 흔적이다. 이미지는 심장이 아닌 뇌실, 즉 뇌 속에 위치한 환상적인 영(fantastikon pneuma)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육체인 심장과 정신인 뇌를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즉각적 감각기관인 프네우마(정령으로 생명체인 정자와 정기를 의미함)는 자연의 영과, 생명의 영, 감각의 영을 연결하여 물질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인 유령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환상적인 영인 프네우마를 통해 에로스가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를 오가며 우울증과 에덴의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프네우마의 ‘영’은 단지 육체의 대척점으로서의 영혼이 아닌 두 세계, 형이상학적인 파열의 결합을 시도한다. 4부 ‘퇴폐한 이미지’에서는 기호학을 통해 스핑크스를 분석한다. 수수께끼의 상징은 기의를 갖지 않는데 오이디푸스가 그 수수께끼를 풀었기에 그 자체로 언어적 파열과 혼돈, 카오스를 가져다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감벤은 기호학이 기표와 기의에 대한 낡은 경계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오이디푸스(지성)가 아닌 페티시즘과 상징의 은유인 스핑크스의 판타지로 인도한다고 보았다.
사유할 수 없는 빈 공간을 사유하고자 한 아감벤의 대(大)여정은 주체와 세계 모두 결핍된 판타지의 세계에서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테크놀로지의 판타지에 달라붙은 기계-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아감벤이 이미 1977년에 예견한 대로 유령의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우리가 과연 비현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물음이 마치 유령처럼 여기저기로 떠다닌다.
백곤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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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6)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
겸재 정선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표작 16점을 테마로 조명했다. 책에서 저자는 정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로 지칭하며 서양화법을 국내로 들여와 진경산수화풍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북촌 336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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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5)예술가의 뒷모습
세라 손튼 지음/배수희 옮김
‘미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데미안 허스트 등 현재 전 세계 미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33인의 작가를 통해 살펴본다. 정치, 친족, 숙련 작업이라는 3개의 표제로 접근해 미술가들을 비교·대조한다.
세미콜론 584쪽·2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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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4)나를 설레게 한 유럽 미술관 산책
최상운 지음
유럽의 대표 미술관에서 살펴봐야 할 작품을 소개하는 예술기행서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작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유명 미술 작품의 매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소울메이트 42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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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0)이주헌의 ART CAFE
이주헌 지음
미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자유롭게 써내려간 에세이 책이다. 《ART CAFE》라는 책 제목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기존 책에 있던 긴 호흡의 글들을 빼고 단상 형식의 글 19편을 한 장으로 엮어 개정판을 발간했다.
미디어샘 30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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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4)코끼리의 방
전영백 지음
‘건축-공간-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설치작업이 관람자에게 시각적 차원을 넘어 몸으로 체현되는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공간을 다루는 작가 10인의 작업세계를 5가지 테마로 나누어 집중 탐색하였다.
두성북스 292쪽·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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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9)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DW 깁슨 지음/김하현 옮김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과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시민 28명을 직접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뉴욕이 겪어온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눌와 40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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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3)디자인 뮤지엄, 여기
이현경 지음
한 나라의 디자인 역사, 성격, 이념을 배울 수 있고 일상생활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디자인뮤지엄을 소개한다. 뮤지엄 건축의 배경 및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정보, 뮤지엄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안그라픽스 312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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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1)철학이 있는 도시
우석영 지음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미술작품 50여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다룬다. 그림 읽기를 매개로 휴전 후 한국사, 당대의 한국, 도시,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논의한 사회비평서다.
궁리 32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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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예술 판독기
반이정 지음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라는 관점으로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을 깨고자 했다. 판독 대상은 언론 보도, 영화, 광고, 상품 등으로, 그 안에 나타난 예술적 속성을 찾고 그에 따른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본다.
미메시스 360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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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7)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마틴 베일리 지음/박찬원 옮김
1980년대부터 반 고흐를 연구해온 저자가 소개한 해바라기 정물 연작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1부에서는 작가 생전에 해바라기 연작이 탄생한 과정을, 2부에서는 사후 그 작품들이 현재의 장소에 옮겨지게 된 여정을 살펴본다.
아트북스 322쪽·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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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2)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이연식 옮김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으로,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서양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려준다.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사를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재승출판 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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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8)비밀의 미술관
최연욱 지음
블로그에 ‘서양화가 최연욱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미술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서양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화가와 그의 작품 주변의 이야기들을 모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생각정거장 288쪽·15,000원

ART JOURNAL

취임 3개월 맞은 마리 관장 비전 밝혀
국립현대미술관 목표와 4대 중점과제 발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취임 3개월을 맞아 3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립현대미술관 목표와 4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마리 관장은 이날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 미술의 시스템을 세계화하여 동시대 문화의 중심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발표한 4대 중점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장기 관점의 강좌, 토론, 심포지엄 등 학예 분야의 지적 의욕을 고취하여 연구부문을 체계화하고 독자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둘째, 모든 미술관 출판물을 조율, 감독하여 출판물 품질에 대한 기준을 통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한다. 셋째, 기관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강화, 체계화하고 4관 체재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넷째, 대국민 서비스 확대를 위해 고객관계관리(CRM)와 정보관리를 통합하고 소장품과 아카이브의 디지털 품질과 접근성을 개선한다.
이날 마리 관장이 거듭 언급하며 강조한 말은 “학예사 전문성 강화”다. 작가, 큐레이터, 역사가 등 전문인들 간의 지적네트워크를 형성해 미술관과 국내외 지적 영역을 연계하는 가교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연중 전시회 수를 줄여 전시의 기획력 강화 및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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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주제발표

예술의 역할에 질문을 던지다
〈2016 광주비엔날레〉주제 발표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지난 3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6 광주비엔날레〉(9.2~11.6) 전시주제 및 행사 기존구성을 발표했다. 전시주제인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는 12세기 페르시아 철학자인 소흐라바르디가 착안하고 프랑스 철학자 앙리 코르뱅이 다듬은 개념에서 착안했다. 예술이 미래의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역할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이번 주제는 예술 자체의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감독의 이러한 해석은 곧 전시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마리아 린드 <2016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비롯해 최빛나, 마르가리다 멘데스, 아자 마모우디언, 미셸 웡 등의 큐레이터 팀과 미테-우그로 지역협력 큐레이터가 참여했다. 마리아 린드는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매달 4개의 지역 밀착 프로그램을 미테-우그로와 공동 실시하며, 지역 대안학교와 연계해 진행하는 ‘인프라 스쿨’, 다양한 국가의 100여 개 비영리 예술기관 및 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 등 전시가 열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전시에 흡수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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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시티 간담회

화성인의 언어로 본 미지(未知)의 시간
〈미디어시티 서울 2016〉전시 주제 및 참여 작가 발표

지난 3월 8일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6〉 기자 간담회에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백지숙 예술감독 등이 자리한 가운데 전시 주제 및 참여 작가를 발표했다.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전례 없이 서울시립미술관 전관이 활용된다. 전시 제목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따온 화성인의 말로, 미래의 언어 혹은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는 과거나 현재의 언어를 표현한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쟁, 재난, 빈곤 등 사회문제를 어떻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맥락 안에서 펼치는 동시대 작가들의 상상력에 주목한다. 나아가 미디어가 접목된 예술언어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미래를 제안한다. 또한 비정기 출판물 《그런가요》를 발간하고 작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여름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해 한시적 행사라는 비엔날레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다. 백지숙 예술감독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며 여성 작가와 아프리카 및 중남미 작가들의 비율을 늘릴 예정이다”고 밝혔다. 현재 참여 작가는 총 30명이 확정됐으며 최종 작가 50여 명의 명단은 6월 중에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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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한국적 정체성의 새로운 실험
김수자〈현대차 시리즈 2016〉선정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작가로 김수자가 선정됐다. 전통과 현대, 특수성과 보편성을 넘나들며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통해 치유와 재생의 문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김수자의 이번 신작은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선보인다.
최종심사에는 선정위원장 김성원을 비롯해 고동연, 조선령, 바르토메우 마리, 강승완, 이지윤 등 총 6인이 참여했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의 작가추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선정했다.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현대자동차가 우리나라 대표 중진 작가에게 대규모 신작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기 연례 프로젝트다. 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작업 활동에 새로운 전환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됐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이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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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미술제 (1)

한국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다
〈제34회 화랑미술제〉열려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회장 박우홍)와 코엑스가 공동 주최한 제34회 화랑미술제가 3월 2일 VIP오프닝을 시작으로 3월 6일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작년보다 2개 갤러리가 늘어난 89개 화랑이 참가하면서 500 여명의 작가가 250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다. 화랑협회 측은 폐막 후 발표한 자료를 통해 판매 작품수와 금액은 작년과 비슷했다고 밝혔다(600여 점, 37.5억(추정)). 미술시장이 불황인 것을 감안하면 수치상 판매가 저조한 편은 아니라는 평이다. 올해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공동 기획으로 특별전 〈나의 공간, 나의 취향〉을 꾸며 미술에 대한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30만원 이상 200만원 이하 가격대 작품을 선보이며 기존의 미술애호가를 넘어 새로운 미술 컬렉터를 유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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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잠들어 있던 조선의 유물 빛을 보다
4만 5000여 점의 왕실 유물 일반에게 최초로 선보여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최종덕)은 조선 왕실의 보고(寶庫)인 수장고와 보존 과학실을 관람할 수 있는 ‘수장고·보존 과학실 공개 행사’를 연 4회 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일반에 개방하여 유물 관리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겠다는 취지다. 프로그램은 유물의 유형별 보관 및 보존처리 방법 소개, 수장고 관람과 유물 모형 보관방법 시연, 보존처리실 탐방 등으로 구성된다. 3, 9월은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8, 12월은 중학생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인원은 10명씩 제한한다. 3월 30일 부터 진행되는 첫 행사 신청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www. gogung.go.kr)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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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수상소식
〈제28회 이중섭미술상〉〈제7회 일우사진상〉〈종근당 예술지상 2016〉

사진작가 배병우가 〈제28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작가가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는 것은 1988년 상이 제정된 이래 처음이다.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8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수상 기념전과 함께 열릴 예정이다.
또 하나의 사진상 수상 소식도 있다.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시행하는 〈제7회 일우사진상〉의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출판 부문 한성필, 전시 부문 윤진영, ‘올해의 특별한 작가’로 보도사진 부문에 김성룡이 선정됐다.
‘출판 부문’ 수상자에게는 독일 핫체칸츠 출판사에서 단독 작품집 출판과 일우스페이스 개인전 개최 기회를 제공하며, ‘전시 부문’ 수상자에게는 작품 제작 활동비와 일우스페이스에서의 개인전 개최를 지원한다. 보도사진 부분 수상자에게는 3,000만 원 규모에서 전시 또는 출판 활동을 작가와 협의해 지원한다. 한편 올해로 제5회를 맞이한 〈종근당 예술지상 2016〉의 최종 3인 작가로 김수연, 박광수, 위영일이 선정됐다. 이들은 매년 1,000만 원씩 3년간 창작지원금을 제공받고, 지원 마지막 해에 선정 작가전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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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주 (2)

미술에 질문을 던지다
조기주 개인전과 책 출판 동시에

조기주 단국대 교수가 르네상스부터 입체주의까지의 서양미술사를 살펴본 《이유 있는 미술시간》(노스보스 336쪽· 25,000원)을 출간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미술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아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냈다. 전체적으로 연대기적 구성이지만 때로는 미술사조 전반을 설명하고, 때로는 특정 작가 분석에 집중해 미술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한편 책 출간에 맞춰 동명의 개인전을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양재동에 위치한 한전 아트센터에서 열었다. 시멘트를 사용해 산업 생산물을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2분 30초 길이의 애니메이션 (〈Mother- Daughter-2016’〉)도 함께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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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철 (2)

이 시대의 타인은 누구인가
이갑철 사진집《타인의 땅》출간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시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 이갑철이 1988년 서울 인사동 경인 미술관에서 열었던 개인전 〈타인의 땅〉과 동명의 제목으로 사진집(《타인의 땅》 열화당 192쪽· 50,000원)을 출간했다. 〈타인의 땅〉은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한국사회의 모순된 일상을 담은 시리즈 사진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타인의 땅〉이란 제목에 대해 “격변하는 삶의 배경에 스미지 못한 개인들의 이물감에 대한 술어”라고 밝혔다. 1980년대의 현실을 담은 사진은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세상에 나와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며 현재의 타인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편 책 출간과 함께 갤러리 나우에서 책에 수록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전시가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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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건축전

한국 도시건축의 숨은 동력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한국관 주제 발표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5.28~11.27) 한국관의 주제와 계획이 공개됐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김성홍은 신은기 안기현 김승범 정이삭 정다은 등의 공동큐레이터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3월 11일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국관 주제를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용적률 게임’이란 한정된 대지에 최대의 건물 면적을 요구하는 건축주,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질을 추구하는 건축가(사), 이를 통제하고 조율하는 법과 제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범사회적 현상을 말한다. 큐레이터 팀은 그동안 서울지역의 건물 약 60만 동의 용적률 게임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도시 속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건축에서의 도전과 결과를 보여줄 예정이다.
한편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칠레 출신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총감독을 맡았고 전체 전시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이다.

BRIEFING

사회와 호흡하는 미술

잡지는 표지가 특히 중요하다. 표지 이미지가 책의 얼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표지는 그달 책의 주요 내용과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보통 작가 얼굴이나 작품 가운데서 표지를 선정하기 마련인데, 너무 밋밋하거나 강렬해도 안 되고, 너무 선정적이거나 상업적인 냄새가 짙어도 안 된다. 그러니 이미지 선정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호 표지는 작가 임옥상이 1989년 제작한 <하나됨을 위하여>. 한지를 부조 형식으로 캐스팅해서 떠낸 후 그 위에 채색한 이 작품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얼리즘의 복권전>에 출품됐다. 주먹 불끈 쥐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고무신 발로 철조망을 성큼 뛰어넘는 주인공은 ‘故 늦봄 문익환(1918~1994)’이다. 종교학자(목사)이자 시인이었으며 열렬한 통일운동가였던 그는 1989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투옥됐다. 요즘은 대통령도 ‘통일 대박’이란 말을 대놓고 하는 시절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1988년 늦봄, 문무대 입소하는 날 교문 앞에서 문익환 목사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대학교 1학년 남학생은 예외 없이 교련수업 일환으로 1주일 동안 문무대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2학년은 전방 군부대에 입소했다. 그때는 그랬다.
한편 <하나됨을 위하여>는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시대정신전>에 출품될 뻔했다. 그런데 시대착오적인 사전검열(?)에 걸려 결국 전시되지 못했다. 끝내 공식적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시개막 직전 이 작품을 미리 본 청와대 관계자의 외압이 있었다는 뒷얘기가 돌았다. 한 20년쯤 후에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다. “그때는 그랬다”고.
이번 특집 ‘도시재생’은 임승현 기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만들었다. 영국에서 유학한 임 기자는 영국 건축가 그룹 ‘어셈블’이 2015년 터너프라이즈를 수상한 것에 주목했다. 여기에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이슈를 덧붙여 특집으로 발전 시켰다. 얼핏보면 미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모티프 같지만, 사회와 호흡하는 미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서울의 옛 그림과 현재 모습을 비교 답사하는 이태호 교수의 ‘진경산수화 톺아보기’ 역시 어느 때보다 각별히 읽혔다. 더불어 특집에 소개된 윤동주문학관은 도시재생의 의미를 넘어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되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초간본 모습 그대로 재출간된 것도 그렇지만, 이번호 표지 주인공 문익환 목사가 윤동주 시인과 절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이 더욱 애잔하다.
마지막으로 <리얼리즘의 복권전>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신생공간 전시 <서울 바벨>에 대한 아티클을 눈여겨 읽어주기 바란다.
“이 날선 미술운동을 둘러싼 현대사의 맥락도 복권해야한다. 어느 때보다도 혁명적인 미술이 필요한 작금에 ‘민중미술’이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는 추억의 사조로 다루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 김미정
“이들이 예술계를 의식하는 예술인이고 예술계의 법칙에 적응하려 한다면 동호회 활동과의 차이(우위)도 증명하는, 즉 미학을 가시화하는 책임도 스스로에게 있음을 고민해야한다.” – 신현진
수전 손택의 명저 《사진에 관하여》 옮긴이 후기에는 “수전 손택은 ‘인용구로만 이뤄진 비평문, 그래서 무심코 일어날지 모를 감정이입까지 배제된 비평문’을 쓰고 싶어 했지만 때 이른 죽음으로 그런 비평문을 완성하지 못한 ‘W. B.’, 즉 발터 벤야민의 못 다 이룬 꿈을 ‘자기 식’대로 되받아 수행한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오더라. 나도 흉내 내봤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COLUMN

미술시장 실태조사, 국내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담다

2007년 미술시장이 최대 호황을 이뤘다가 다음 해인 2008년 급하락하는 등 시장 전망 예측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장 현황에 대한 객관적 통계자료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2009년 처음 진행된 미술시장 실태조사는 이후 매년 국내 미술시장 규모를 추정하여 공표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7번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미술시장 실태조사는 주요 유통영역의 판매 실적 및 공공영역의 구매 실적을 조사하여 각 영역별 판매 및 구매 실적을 집계하고 여기서 중복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여 국내 미술시장의 총 규모를 추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요 유통영역이라 함은 화랑, 경매회사, 아트페어를 말하며, 공공영역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건축물 미술작품,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을 포함한다. 작품 판매 금액 이외에 시설, 인력 등 일반 현황과 재정 규모 현황도 조사하여 시장 규모를 대표하는 지표들을 함께 발표하고 있다.
2009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주요 유통영역의 조사대상 모집단 수는 화랑 183개에서 433개, 경매회사 9개에서 10개, 아트페어 29개에서 35개로 전체 221개에서 478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모집단 수로 보면 화랑 증가가 가장 두드러지며, 아트페어는 매년 늘어나다가 2013년과 2014년 개최 수가 동일해 정체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어 민간과 공공에서 전시공간이 두루 확대되는 추세를 볼 수 있다. 조사를 통해 추산된 2014년 미술시장 규모는 작품 거래금액 기준으로 약 3,496억 원, 작품 수 기준 2만6,912점이다.
총 집계액은 주요 유통영역 중 화랑, 경매회사, 아트페어 판매 금액과 공공영역인 미술관, 건축물 미술작품, 미술은행 구입금액 중 화랑의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를 통한 작품판매금액, 미술관의 화랑, 경매회사, 아트페어를 통한 작품 구입금액, 화랑의 아트페어 참가 판매금액, 미술은행의 현장구입제(아트페어를 통한 작품 구입)를 통한 작품 구입금액을 제외하여 추산한 금액이다.
작품 거래금액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내 미술시장은 2010년 이후부터 2013년까지 침체를 거듭하다 2014년 반등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단색화에 대한 주목, 경매회사의 실적 성장 등이 반등을 이끈 원동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열기가 다음 해로 이어져 2015년 실적은 더 큰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세계 미술시장이 호황을 이어온 반면 우리나라 미술시장 규모는 축소를 거듭하는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에 긴 침체기를 끝내고 그래프가 상승 쪽으로 돌아섰다는 면에서는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시작 이후 절정기였던 2010년 시장규모인 4,836억 원에는 아직 못 미치는 수준으로 미술시장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요 유통영역에서도 경매시장이 전년 대비 31.5% 성장한 것에 비해 화랑은 5.3% 증가에 그쳤고, 아트페어는 5.6% 감소하여 영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경매회사와 아트페어 모두 상위그룹 위주로 판매금액이 증가하고 있어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미술시장 실태조사는 시장 관계자들이 체감하는 시장의 변화를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목적이다. 현재까지는 목적에 맞게 그 역할을 달성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가 구조화된 조사지로 진행되다 보니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데이터에 비해 공표시기가 늦고, 변화하는 미술시장을 빠르게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거시통계의 관점에서 국내 미술시장을 추정하는 유일한 조사로 작품 거래가 오픈된 경매회사 위주의 시장규모에서 좀 더 발전하여 주요 유통의 다른 영역인 화랑과 아트페어에서 판매되는 규모, 미술관 구매 실적 등을 모두 포함하여 시장규모를 추정해낸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조사들과는 차별화된다. 판매실적을 잡을 수 있는 유통 경로는 대부분 조사되기 때문에 조사가 가능한 시장 규모는 대부분 커버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사 초기에는 조사 응답률이 저조하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응답률도 높아지고 있고, 일부 영역은 전수조사가 되고 있어 조사 신뢰성도 향상되고 있다. 앞으로도 미술시장 실태조사는 변화하는 미술시장을 수치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조금은 느린 듯 보여도 착실히 그리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담아내어 건강한 미술시장을 조성하는 데 튼튼한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소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산업기반실 조사평가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