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같은 언어, 다른 문화, 하나의 전시

<비엔나 베를린-쉴레에서 그로스까지 두 도시의 미술전>이 베를린(2013.10.24~1.27)과 비엔나(2.14~6.15)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비엔나와 베를린의 예술을 통한 교류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로 20세기 초 근대미술을 매개로 두 도시가 주고받은 영향과 그 전개의 차이점 등을 보여준다. ‘독일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문화적 차이가 확연한 두 도시의 거리와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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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벨베데레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비엔나 베를린 두 도시 이야기전> 전시 광경 © Belvedere, Vienna.
위.비엔나 벨베데레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비엔나 베를린 두 도시 이야기전> 전시 광경 © Belvedere, Vienna.

 

같은 언어, 다른 문화, 하나의 전시

박진아  미술사

베를리니쉐 갤러리 시립미술관과 오스트리아 국립 벨베데레 갤러리는 사상 최초로 비엔나와 베를린의 근대미술이라는 공통 주제로 협력 기획한 <비엔나 베를린-실레에서 그로스까지 두 도시의 미술전(Vienna Berlin: The Art of Two Cities. From Schiele to Grosz)>을 베를린(2013.10.24~1.27)과 비엔나(2.14~6.15)에서 차례로 개최한다. 일찍이 19세기 말엽부터 국제적 메트로폴리스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라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한 두 도시 사이에서 활발히 전개되던 창조적 교류관계를 새롭게 고찰해보는 전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세기전환기 무렵, 비엔나와 베를린 두 메트로폴리스가 문학, 무대예술, 음악 영역에서 강도 높은 예술적 실험과 상호협력 관계를 이루었던 사실은 근대문화사 연구와 문헌을 통해서 잘 알려져있다. 미술영역에서도 이 두 도시는 긴밀한 창조적 협력관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오늘날까지 미술사학계에서 사각지대로 남은채 더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하여 베를리니쉐 갤러리와 벨베데레 갤러리는 이번 전시 <비엔나 베를린-두 도시의 미술전>을 기획해 20세기 초엽 미술과 장식예술 영역에서 이 두 메트로폴리스가 지닌 공통점, 차이점, 창조적 교류활동과 상호영향 성과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공유하는 독어 문화권이지만 두 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은 매우 다르다. 독일어만을 사용하며 단일민족 의식을 지녔던 독일과는 달리,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일찍이 중세부터 서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국의 변함없는 고도(古都)였다. 중유럽권과 발칸을 포함한 동유럽권에서 온 이민자들로 수도 비엔나는 인구구성 면에서나 언어 면에서 다인종·다언어가 들끓던 다문화 멜팅포트였다. 도시 풍경도 널찍하게 뻗은 블르바드 대로와 위풍 당당하고 육중한 낭만주의풍 건축물에서부터 초현대식 신건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공존하는 베를린은 그 첫인상부터 남성적이다.
반면, 바로크풍의 휘황찬란한 장식과 아르누보 곡선 장식의 건축으로 수놓아진 비엔나는 한결 여성적 인상을 준다. 두 도시 시민들의 성향도 매우 달랐다. ‘베를리너는 합리주의 지향적이고 실리주의적이며 흘러간 과거에 대한 감상주의를 질색하고 급속으로 미래를 향해 질주하려는 침착 냉정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반면, 비엔나인들은 아늑함을 좋아하고 사탕발림 대화와 세련된 사교생활을 중시하는 오연하고 퇴폐적인 사람들’이란 평판을 받았다.
20세기가 개막하자마자 비엔나는 베를린보다 앞서 중유럽권 예술의 허브(hub)로 급부상하며 유겐트스틸과 아르누보, 표현주의를 두루 실험하며 베를린으로 전파했다. 독일 모더니즘의 기수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는 “1908년 ‘비엔나 공방운동(Wiener Werkstätte)’은 과거 비엔나 시각문화 정신을 이어받아 이 시대에 이룩할 수 있는 시각언어와 색채로 활력있고 우아하고 생의 환희를 환기시키되 절제있고 공격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비엔나다운 양식을 이룩했다”(<Die Architektur auf den Ausstellungen in Darmstadt, München und Wien>,《   Kunst und Künstler》, 1908년 제6년 12번 호, pp.491~495)고 칭찬하면서 비엔나 공방운동을 독일 모더니즘이 본받아야 할 미적 모델이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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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 라세르스타인 <식당에서> 1927년 © Private Collection, Photo: Studio Walter Bayer.

상반된 성향의 두 도시
하지만 베를린의 미술가들은 문화정책 기관에서 수입을 인가한 근대주의 미학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베를린 분리파는 한결 반항적이고 전투적인 성향을 띠었는데, 특히 막스 페히스타인(Max Pechstein)과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는 과거 정부주도하에 창설된 베를린 분리파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신베를린 분리파(Neue Berlin Secession)를 창설하고 독일적 근대미술운동을 표방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오이겐 슈피로(Eugen Spiro)나 막스 리버만 (Max Liebermann)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파리 인상주의에 기대어 초기 베를린의 미술정체성을 구축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친불(親佛)주의 유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비엔나에서는 프레데릭 모튼(Frederic Morton)의 소설《  황태자의 마지막 사랑(A Nervous Splendour)》풍의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대기를 감싼 가운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문학, 사상, 미술에 폭넓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ilmt), 에곤 실레(Egon Schiele),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안톤 파이스타우어(Anton Faistauer) 같은 화가들은 모두 정신분석학에서 언급하는 성적억압과 무의식의 관계를 그림으로 탐색했는데, 그래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회화 속에는 공손을 우선하는 구시대적 예의범절과 적대적 정면충돌을 기피하는 비엔나인들의 오랜 집단적 무의식이 억압되었다가 폭발 직전의 순간에 이른 듯 팽팽한 긴장감이 담겨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은 나란히 싸우다 패망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두 국가에 실존적 위기였음과 동시에 두 도시를 더 가깝게 연결해준 촉매제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전달된 표현주의 회화에 담긴 인간본능과 무의식이라는 주제는 어쩐지 합리적이고 냉철한 사고방식을 지닌 베를린 화가들에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했다. 그 대신 베를린 화단에서는 루드비히 마이드너(Ludwig Meidner), 콘라드 벨릭스뮐러(Konrad Felixmüller), 루돌프 벨링(Rudolf Belling) 같은 신예 베를린 표현주의 화가들을 발굴해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광란의 시기를 목도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이라는 포장지로 미화하기보다는 무자비하게 전개되던 근대 도시의 변화상과 그 속을 배회하는 도회군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미술은 본질적으로 도시미술(urban art)이라 했다. 만사가 합리적 이득에 입각해 좌지우지되고, 수많은 익명의 도시인이 공생하며, 초고속 개발과 변화가 가능했던 베를린은 분명 오랜 역사와 전통의 무게를 못이겨 정체돼버려 ‘죽어가는 도시’ 비엔나보다 근대적 생리가 잘 갖춰진 도시였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다시 한 번 경제회복을 서두르던 베를린의 모습은 신즉물주의 회화 속에서 신시대 대중교통, 공장, 레스토랑과 카페, 상가와 아케이드로 북적대는 거리와 그 속을 배회하는 도시빈민과 익명의 군중이 얼버무려진 대도시 풍경화로 기록되었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의 신즉물주의 회화 속에는 당시 무대예술의 중심지로서 베를린인들이 자각했던 문화적 우월감이 드러나 있다. 화가들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큐비즘의 조형언어를 즐겨 차용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예컨대 오토 딕스(Otto Dix). 루돌프 슐리히터(Rudolf Schlichter), 게오르크 그로스(George Grosz), 알베르트 파리스 귀터슬로(Albert Paris Gütersloh), 안톤 콜릭(Anton Kolig), 로돌프 바커(Rudolf Wacher)는 그 같은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이들의 회화에는 메트로폴리스 베를린 특유의 거침없는 대립적 성향과 전투적 성향이 엿보인다.
급속한 근대화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는 법이던가. 전에 없이 커진 사회문제도 떠안고 있었다. 더 벌어진 빈부의 격차, 구시대와 신시대 간의 갈등, 도시빈민으로 내몰린 수많은 군상과 그들의 고통을 더 첨예하게 경험한 베를린의 화가들은 날 세운 사회비평적 관찰 결과를 사실주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베를린의 도시 변화상을 날카로운 눈으로 포착했던 크리스티안 샤트(Christian Schad)는 실은 오스트리아의 사회비평적 화가 헤르베르트 뵈클(Herbert Boeckl)로부터 크게 영향 받았다.
전통의 고도시 비엔나의 미술계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타고난 성향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비엔나는 이제 미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 미의 역영에서 베를린이 비엔나를 제치는 날이 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미적 본능이란 손톱만큼도 없이 오직 분석적이고 실리적이어서 한 톨의 상상력도 없는 베를린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노력 끝에 비엔나를 제쳤다. 정신적 노력이 천부적 재능을 능가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비엔나의 여류 미술평론가 베르타 추커칸들(Berta Zuckerkandl)은 1889년 빈분리파(Wiener Secession) 출간 예술평론지《   베르사크룸(Ver Sacrum)》에서 이렇게 한탄하는 글을 썼다. 100년 전과 현재,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쌍의 오드커플처럼 매우 다른 기질과 세계관을 지닌 두 도시 비엔나와 베를린은 미술의 생산지이자 창조적 중심지로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125년 전, 저물어가던 비엔나의 예술적 우세를 탄식했던 추커칸들이 우려했듯, 또 “오스트리아의 미래는 과거에 있다”고 비엔나 출신의 카바레 휴머리스트 헬무트 콸팅거가 풍자했듯이 비엔나인들의 집단적 무의식은 흘러간 과거의 영광과 황홀이란 향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조나 레러(Jonah Lehrer)는 창조성의 비결을 논한 책《  이매진(Imagine)》에서 문화와 출신 배경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도시 속 마찰’이 벌어지는 환경 안에서 창조적 생산력이 늘어난다고 했다.
일찍이 20세기 초 비엔나와 베를린에서 ‘문화계에서 성공하려면 메트로폴리스로 나가라’고 했다. 대도시와 창조적 생산력 사이의 연관관계를 암묵적으로 시사한 것이었다. 그래선지 오늘날 수많은 야심찬 젊은 미술인은 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인터넷 스타트업을 꿈꾸는 인터넷 전문가들 역시 속속 베를린으로 가 창업한다.
현재 유럽연합 내 실질적 정치주도국이자 경제최강국이 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예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소프트파워 1번지로 재부상했다. 20세기 미완의 과제를 풀면서 ‘영원히 건설 중인 도시’임을 베를린은 재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

오토 루돌프 샤츠  1929년 Belvedere, Wien, © Michael Jursa.

오토 루돌프 샤츠 <풍선 장수> 1929년 Belvedere, Wien,© Michael Ju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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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원으로 위장한 신전통주의자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1950년대 말 오넷 콜먼(Ornette Coleman), 세실 테일러(Cecil Taylor)로부터 시작된 소위 아방가르드 재즈의 파장은 그 음악을 무시하려던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지속적이었다. 평론가 존 타이넌(John Tynan)은 이 음악을 두고 ‘안티-재즈(Anti-Jazz)’라고 불렀지만 1960년대 재즈의 기수였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마저
이 기류에 합세함으로써 아방가르드는 이름 그대로 1960년대 중반 이후 재즈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은 위태로웠다. 왜냐하면 이미 비틀즈이후로 새롭게 변모된 로큰롤은  재즈 연주자 대부분이 무시했던 1950년대의 단순한 모습에서 벗어나 재즈가 청중에게 제공했던 만족감의 대부분, 그러니까 음악의 역동성과 즉흥성을 대신해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재즈는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길을 택하고 있었으니 재즈 시장의 자멸은 불 보듯 자명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재즈-록 퓨전으로 급선회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마일스가 록 혹은 솔(soul) 음악의 힘을 빌려 재즈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했던 시도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마일스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갈래를 쳐나가기 시작했다. 마일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칙 코리아(Chick Corea)가 이끌었던 그들의 밴드들은 이 시기 재즈보다는 록에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였으며 재즈와 팝 음악이 뒤섞여 재즈의 즉흥연주가 거의 질식된 스무드 재즈가 등장했을 때 재즈의 외연은 확대를 넘어 거의 해체되어가고 있었다.
이 무렵 재즈의 전통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인물들은, 역설적이게도 아방가르드 재즈 진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문 닫은 재즈클럽들을 대신해서 맨해튼 남쪽 소호가 혹은 브루클린 공장 지대의 다락방을 그들의 작업실 혹은 공연장으로 개조하여 평론가들로부터 ‘로프트 재즈(Loft Jazz)’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으면서 퓨전시대에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재즈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재키 바이야드(Jaki Byard)는 1920년대 할렘 스트라이드 피아노와 당대의 전위 재즈 기법을 연결했으며 색소폰 주자이자 작곡가인 앤서니 블랙스턴(Anthony Braxton)은 재즈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적대 음악을 아방가르드 빅밴드 음악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성격은 음악학자 존 스웨드(John Szwed)의 지적처럼, 아울러 평론가 휘트니 발리에트(Whitney Balliett)가 오넷 콜먼을 “진정한 혁명가들이 그렇듯이 원시인으로 변장한 지식인”이라고 평했던 것과 유사하게, “돌격대원으로 가장한 신전통주의자들”이었다.
그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은 테너 색소폰 주자 데이비드 머리(David Murray)였다. 그의 사운드에는 1960년대 프리재즈 세대의 마지막 인물 앨버트 아일러(Albert Ayler)와 아치 셰프(Archie Shepp)의 영향이 확연하지만 그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폴 곤잘베스(Paul Gonsalves), 벤 웹스터(Ben Webster), 콜먼 호킨스(Coleman Hawkins)의 주법을 복원함으로써 테너 색소폰의 계보를 하나로 연결했다. 피카소의 <비스킷이 있는 정물화>를 표지로 내건 머리의 앨범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비조(鼻祖)를 통해 색소폰과 재즈의 본질을 들여다본 역작으로, 데이비드 머리는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 콜먼 호킨스가 1948년에 남긴 최초의 무반주 테너 색소폰 독주녹음 <피카소>를 8중주를 위한 7악장의 모음곡으로 확대해 모든 재즈란 사조, 스타일과 상관없이 현대적이며 전위적이란 명제를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였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재즈의 역사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와 같은 순수 복고주의자들의 냉소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포함한 인습타파주의자들이 가장 진지한 재즈의 옹호자였다는 점은 부인할 길이 없다. ●

머레이2데이비드 머리 8중주단
〈피카소 Picasso〉 (DIW/ DIW-879)
휴 레이긴, 라술 시딕(이상 트럼펫), 크레이그 해리스(트롬본), 제임스 스폴딩 (알토 색소폰), 데이비드 머리(테너 색소폰),
데이브 버럴(피아노), 윌버 모리스 (베이스), 타니 타발(드럼)
1992년 9월 녹음

Art Journal

근대 파리의 삶을 서울에서 엿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전> 역대 최대 규모로 선보여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이후 새로운 흐름을 선보인 미술가들과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개최했다. 5월 3일부터 8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展>이 그것. 국내에서 오르세미술관전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네 번째지만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전시에서는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거장들의 회화를 비롯하여 조각, 공예, 드로잉, 사진 등 175점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이 선보인다.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오딜롱 르동의 <감은 눈> 등 모네의 후기 작품부터 광학적 시각을 반영한 신인상주의, 도시와 문명을 떠나 원시적 삶을 찾아 나선 폴 고갱과 퐁타방파,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세잔을 비롯하여 세기말적 시각을 반영한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후기 인상주의를 풍미했던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강렬한 색채와 평면적인 화면으로 자연의 구조와 원시적 삶,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이들의 작품은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또한 인상주의 이후 다양한 줄기로 변천하는 미술의 흐름은 근대의 기틀을 다지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후기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과 더불어 이번 전시는 건축 드로잉, 사진 등을 통해 19세기에 새롭게 정비된 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로 불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초상화와 드로잉, 아르누보 공예품들은 이 시기 파리인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외에도 화폭에 담긴 파리인들의 거리의 삶, 근대성의 상징으로서 에펠탑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포착한 작품들을 통해 근대 도시 파리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전시 개막에 맞추어 내한한 오르세미술관 기 코즈발 관장은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해외에서 진행했던 전시회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동안 특별 관리된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은 반출 금지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며 “이번 전시가 해외 첫 나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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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회화의 모색

커먼센터 개관전 성황리에 막 내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작은 금속 공장들 사이의 한 건물에서 지금, 여기의 회화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렸다. 커먼센터 공식개관을 알리는 전시 <오늘의 살롱>(3. 27~5.18)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회화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로 총 69명의 작가들의 회화 150여 점을 전시했다.
벽이 유난히 많은 커먼센터 전시장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전시로 드로잉을 포함 크고 작은 규모의 평면회화가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전시 의미에 대해 커먼센터측은 “오늘, 한국의 회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동시대의 미술에서, 미술사를 저술하거나, 매체에 기반을 둔 전시를 꾸리는 것을 ‘촌스러운’ 일로 여기는 동안, 단색화와 민중미술 이후 몇몇 선배의 활약이 있었음에도, 전반적으로 최근까지 한국 회화의 역사는 파편적으로 이어져왔다. 그렇기에 현재의 회화적 상황을 조망하고 점검할 수 있는 형식적 얼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시서문에 밝히고 있다. 전시장에는 작품과 작가를 알리는 어떠한 표시도 없었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한 장의 종이에 전시도면과 작가 이름과 작품명을 나열한 것이 전부. 이러한 전시구성은 생경한 공간에 놓인 회화만을 돋보이게 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커먼센터에서는 참여 작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토론은 회화에 드러나는 재현, 망상, 의식체계와 형태 표현, 서사와 가상성, 이미지 구축을 위한 행위 등 6가지 주제로 진행되었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커먼센터는 미술가가 운영하는 공간을 표방하며 3년간 버려졌던 건물에서 전시를 시작하였다. 커먼센터는 기존의 미술관, 갤러리 혹은 대안공간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미술 전시공간을 모색하고자 개관한 공간으로 ‘센터’라는 명칭을 달았다. 이곳은 독립출판지《  도미노》의 동인 함영준 씨가 디렉터를 맡고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김형재, 미술가 이은우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개관전 이후 6월에는 네덜란드 작가 마크 오스팅의 개인전<one more time>과 칼아츠 그래픽 디자인 단체전이 비슷한 시기에 개막하여 6월 29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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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기록을 담다

KT&G 상상마당 춘천 개관

KT&G 상상마당이 서울 홍대, 충남 논산에 이어 지난 4월 29일 세 번째 공간을 춘천 의암호 주변에 개관했다. 개관전은 2013년 3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진행된 <KT&G 상상마당 춘천 기록 프로젝트 “기억하다”>의 결과물을 토대로 기획됐으며 사진가 염중호가 참여한 <내 눈앞에는 오로지 창의 푸른 커튼뿐이었다> (4.29~6.15)와 김인숙, 김명권 이상규가 참여한 아카이브 상설전 <봄내의 기억과 기록>이 전시된다.
전시가 진행되는 KT&G 상상마당 춘천 건물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김수근이 1980년 설계한 춘천시 어린이회관과 인근 강원도 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김수근 건축의 특징인 붉은 벽돌과 자연주의 미학이 드러나는 건축물로 큰 보존가치를 지님에도 그간 시설 노후로 공간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개관전에서 염중호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건축물의 모습을 닳거나, 구석이 부서진 벽돌, 오래된 게시판 위에 남아있는 포스터 종이 등 놓치기 쉬운 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봄내의 기억과 기록전>에서는 KT&G 상상마당춘천의 리모델링 과정을 담은 사진과 역사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춘천의 이야기를 어르신들에게 듣고 기록한 후 춘천 어린이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해 직접 재현해보도록 하는 설치작업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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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독일의 최신 경향 소개한다

독일계 화랑 보데갤러리 개관

미술시장의 장기 불황으로 국내 화랑들의 해외 진출이 주춤하다. 이미 진출한 갤러리들이 해외 지점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외국 갤러리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 독일계 화랑이 대구에 지점을 열어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구 대명동 산기슭에 자리 잡은 보데(Bode)갤러리가 그곳이다. 일종의 스페이스 프로젝트 성격을 띤다. 보데갤러리가 개관하면서 하리 마이어(Harry Meyer) 초대전을 선보였다.
지난 4월 16일에 시작하여 한 달 동안 이어진 개관 전시회의 주인공 하리 마이어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서 풍경을 묘사하는 회화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보데갤러리 본점이 위치한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하리 마이어는 본인의 발걸음이 닿은 자연 경관을 매우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캔버스 위에 풍부하게 남은 물감의 질감은 과감한 색의 선택과 선명한 붓놀림 자국으로 관객에게 에너지가 꿈틀대는 느낌을 전한다. 그는 서구 미술사에서 알프레드 뒤러 이후 전통적인 풍경화에 내재된 이성적인 계산 가능성을 배제하고 자연 그 자체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런 재현 방식은 동시대미술에 의하여 그 의미가 흥미롭게 해석되고 있다.
보데갤러리는 6월 전시로 독일 조각가 클레멘스 하이늘(Clemens Heinl)의 입체작업 개인전을 준비했다. 대구에 독일갤러리 지점이 대구에 개관한 일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외국 화랑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전시 활동의 근거지를 두게 되었다는 점은 국내 미술시장의 판도 변화와 더불어 지역문화 분권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사례로 읽힌다. 대구 보데갤러리는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독일의 예술 경향을 직접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현지에 진출시키는 일을 다각도에서 진행 중이다. 대구=윤규홍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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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조선화 145x523cm,1958년

월북화가의 미술사적 여백 어떻게 채울 것인가

정종여 100주년 기념 세미나 열려

월북작가 청계 정종여(1914~198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5월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정형민) 덕수궁관에서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 가천대 윤범모 교수는  ‘남북종화의 혼합 혹은 소야(疏野)’라는 주제로 정종여의 예술세계를 조명했으며,《  아트인컬처》 김복기 대표는 정종여의 활동면모와 미술사적 평가를 다루었다. 그리고 청계의 손자인 정단일 씨는 2013년 부산 토성초등학교에서 발견된 정종여의 <독수리>, <지리산> 대작 2점을 비롯해 최근 1년간 정종여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발굴한 성과와 작품 목록은 정리해서 발표했다. 발표자들은 아직 정종여의 생애와 예술세계가 상당 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많은 작품 및 자료 정리가 여전히 미술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2013년부터는 유족과 연구가들이 기념 사업회를 발족하고 작품 조사 발굴 등 재조명 작업을 펼치고 있다.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한 정종여는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을 차지하는 등 동양화단의 촉망받던 신예작가로 산수, 인물, 화조, 풍속화, 불화 등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분방한 필력과 섬세한 사실 묘사력을 겸비한 화가였다. 해방 직후 진보적인 미술단체에서 활동했으며, 6·25전쟁 때 공산 치하의 서울에서 부역 활동을 하다 9·28수복을 전후로 북으로 건너갔다. 정종여는 북한에서도 정통 수묵 산수화와 섬세한 필치의 사실적인 채색화에 모두 뛰어난 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그는 북한에서 1947년 평양미술대학을 창설하고 북한이 민족적 주체적 양식이라 내세우는 조선화 분야의 이론적 체계를 구축했다. 1974년 공훈미술가, 1984년 인민미술가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 만수대창작사 소속으로 활동했다.
월북 이후 한국에서 ‘금기(禁忌)의 작가’로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88년 해금조치 이후 1989년《  월간미술》에서는 그를 <해금작가 작품 발굴> 시리즈의 첫 번째 화가로 조명했으며 같은 해 서울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첫 회고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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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방의걸  (2)

60년의 화업을 조명하다

원로화가 목정 방의걸 화백 개인전

오랜 세월 한국의 산수를 화폭에 담아온 목정 방의걸 화백이 5월 14일부터 19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에서 11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산수화와 문인화에 대한 깊은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수묵 산수에 문인화적 요소가 공존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방의걸 화백은 서양화로 미술에 입문하였지만 홍익대학교 재학시절에 한국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과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영향을 받아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방 화백은 은사인 이상범 교수의 “우리의 그림에 우리 분위기와 우리 공기, 우리 뼛골이 배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어떤 미술형식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산과 들에서 만나는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풍경을 화면에 담아왔다.
방 화백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나는 거창한 회화적 이론이나 철학적 사상도 없다. 다만 그리고 싶어 그리고 그냥 그린다. 그림으로 ‘시’를 쓰고 삶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상념 속에서 끌어내어 그림으로 말을 한다. 그러므로 나의 그림은 곧 나의 심상의 언어요 삶이라 하겠다” 면서 모든 사람이 작품에 친근하게 다가서서 기쁨과 감동을 공유해야 한다는 작업관을 이번 전시에서도 진솔하게 드러내었다.
방의걸 화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전주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지냈고, 2003년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전주=최정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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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회화성

이현무, 2014 아마도 사진상 수상

<제 1회 아마도사진상>에 작가 이현무가 선정됐다. 작가는 디지털 복제시대에 사진의 고유성과 회화성에 대해 고민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필름 사진이 아닌 페이퍼 네거티브에는 사진의 원본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다. <제1회 아마도사진상>은 아마도 예술 공간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심사위원으로 윤범모, 유진상, 오형근, 신수진, 서진석 관장이 참여했다. 수상자에게는 1만 U.S달러(한화 약 1000 만원)의 상금이 수여되었고 아마도 예술공장에서 전시기회가 주어졌다. 이현무의 개인전은 5월 19일부터 6월 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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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승예_인물사진9 이만나_얼굴사진

신진작가들의 도약을 위한 기회

종근당 예술지상 선정작가 김효숙 박승예 이만나

한국메세나협회가 주최하고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가 주관, 종근당이 후원하는 ‘2014 종근당 예술지상’ 작가로 김효숙, 박승예, 이만나   (왼쪽부터)가 선정됐다. 2012년 제정된 ‘종근당 예술지상’은 최근 2년간 주요 국공립 및 비영리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와 비영리전시공간의 전시회 참여작가 중 만 45세 이하의 회화작가를 지원대상으로 작가 3명에게 창작지원금과 전시 기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김효숙, 박승예, 이만나는 올해 158명의 대상자 가운데 2차례에 걸친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이들은 앞으로 3년간 매년 1000만 원씩 모두 30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고 작업하며 2016년 선정작가전을 통해 그 결과물을 선보이게 된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앞으로 장기적으로 작가를 지원하고 대상 부문도 조각, 사진, 설치미술 등으로 다양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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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우 PO1 100x133cm Pigment Print 2014

현대 기계도구의 시간적 단명

막스 드 에스테반, 갤러리 나우 작가상 수상

사진 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나우(대표 이순심)가 주최하는 제6회 ‘갤러리 나우 작가상’에 스페인 출신 막스 드 에스테반(Max de Esteban)이 선정됐다. 수상을 기념해 막스 드 에스테반의 개인전이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막스 데 에스테반의 연작 <단명(Only the ephemeral)>은 예술 소통과 제작을 위해 쓰였던 구식 기계들을 엑스레이 사진으로 촬영해 제품 내부에 구조적으로 남아있거나 없어진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 사진은 제품의 개별적인 특성을 제거함으로써 부패와 죽음을 포괄적으로 상징한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은 “현대 기계도구들의 시간적 단명성을 통찰하는 미학, 이미지를 구현하는 탄탄한 구성력, 전체적으로 현대사진의 트렌드를 견지하면서도 아날로그 전통성의 감각을 선보인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 상은 2009년 다양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 사진예술의 새로운 변화와 활로를 여는 것을 목표로 제정됐다. 1회 수상자 이상엽, 2회 신은경, 3회 이준, 4회 파야, 5회 캐서린 넬슨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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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원길 (1)

하늘을 담다

자연미술 작가 전원길 개인전

자연을 화폭에 담는 작가 전원길의 개인전 <하늘, 안으로 들어오다>가 5월 9일부터 6월 1일까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동탄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화성시문화재단이 가정의 달 특별전으로 준비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푸른 바탕으로 하늘을 연상시킨 <영원한 풍경> 연작을 선보인다.
평론가 윤진섭은 그의 작품에 대해 “전원길의 예민한 감성은 아마도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의 사물들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 같다. 거기에는 길이 있고 그 길은 감각적인 붓질로 이루어진 색의 계조(gradation)로 이루어져 있다. 전원길이 그려내는 이 환상적인 풍경은 현실의 자연을 떠나 이상향의 세계를 그리는 작가의 내면적 풍경이다”라고 말했다. 화성시문화재단은 전시기간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자연에 새로운 해석을 더한 작품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전원길은 1999년 첼시미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18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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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자작나무이야기 116.7X91.0 혼합재료

푸른 빛의 자연

김연화 개인전

김연화의 개인전이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충무아트홀 충무갤러리에서 열렸다. <자작나무 이야기 “블루에 취하다”>란 타이틀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푸른 빛으로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자연의 강, 바다, 하늘의 파란색이 조금씩 다르듯 작가 역시 자연을 표현하는데 공통된 푸른색을 사용하지만 같은 빛깔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벽, 하얀 자작나무, 영롱한 달빛을 그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 소외, 고독의 감정에 쉬어갈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 가상과 실재 사이를 오가는 풍경이 쪽빛과 합쳐져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는 김연화의 14번재 개인전이다. 이외도 작가는 200여회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LG, 중구문화재단, 숭실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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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보타닉

식물과의 교감을 그리다

보타니컬 아트 공모전 수상작 전시 열려

한국식물화가협회에서 주최하고 253년 전통을 가진 파버카스텔(대표 이봉기)이 주관, 서울여자대학교 플로라 아카데미가 후원하는 <제6회 보타니컬 아트 공모전> 수상작 전시가 5월 14일부터 20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자연친화적인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자 2009년부터 파버카스텔과 한국식물가협회가 뜻을 합하여 추진하고 있는 행사이다. 공모 참가자들은 파버카스텔의 알버트 뒤러 색연필로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식물’을 표현했다. 보타니컬 아트란 식물학적인 미술화를 뜻하며 꽃을 식물학적 시점에서 관찰하고 이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그림을 말하지만 정밀한 묘사보다도 미학적 교감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전시의 대상 수상의 영광은 리기다소나무를 그린 이정인에게 돌아갔다. 꽃양배추를 그린 송은영은 금상, 감을 그린 손미숙과 에스포스토아 쿠엔테리를 그린 최백선은 은상을 수상했다. 이외 32개의 작품이 당선되어 함께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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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세월호 (2)

아픔을 함께한다

세월호 참사 추모전 열려

수원민족미술인협회와 세월호를 생각하는 미술인들이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의 영면을 빌고,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구조와 사람을 밝혀내길 원하는 마음을 모아 세월호 참사 추모전 <세월아 세월아 가슴 아픈 세월아>를 열었다. 전시 작품은 5월 10일부터 수원역 광장 시민분향소 앞에, 5월 24일부터 6월 10일까지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일대에 프린트아트 야외설치 형식으로 설치된다.
협회 측은 “분향소를 찾는 많은 국민과 유가족들이 안식을 찾고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가 매순간을 기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아픔을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권은비, 손현선, 오은주, 이오연, 이윤엽, 정세학, 최정숙, 황정경 등 참여작가 35명의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미술인들의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