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조종성

이동시점은 상상의 발판

서울 한성대입구역 인근 갤러리 버튼에서 선보인 렌티큘러 작업은 동양화가로 알려진 조종성의 작업 면모에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렌티큘러에 엿보이는 집 형상의 구조물은 관람객의 움직임과 보는 각도에 따라 투명한 케이스가 씌워졌다 벗겨졌다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이 투명하기 때문에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규제와 개입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실상 조종성의 작업에서 이동시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서 마치 작가가 그림 속에 직접 들어가 산과 산 사이의 풍경을 거닐듯이 산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서 이동하고 상상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동시점 자체는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계속 변화하는 산세들을 하나로 모았다가 펼쳐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서양의 원근법이 고정된 장소에서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동양의 전통적인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를 담아낼 수 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전통은 조금 특별하다. 보통 한국화에서 전통을 말할 때 화법이나 색채, 문양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종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자연적인 지형과 기후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오히려 전통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거 산세를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던 다양한 시점이 오늘날에는 고층빌딩이나 엘리베이터 등 현대 건축물을 통해 경험하는 시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건축의 대표적인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 기와보다 남향집이 더 전통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지역적 특성상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지어도 남향집이 많다.”
사실 무엇이 동양적인지, 서양적인지 구분하기 애매모호해진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엔 우리의 전통보다는 서구의 문화, 그리고 현대적인 것이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조종성은 “자연 환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지역의 문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다”며 “역사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 간의 가치를 동등하게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시각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에는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건축 모형 뿐 아니라 집의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삶을 껴안은 장소인 집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좋은 경관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옆에 두고 보기 위해 경치가 뛰어난 곳에 정자를 짓지 않았던가?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집이라는 메타포는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시공간을 담아내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예술가이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종성은 고민이 많다. 우리의 삶에서 규제와 개입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와 그 잔재 청산 문제, 분단 이후 한국과 미국의 관계, 독재 권력과 지금의 정치 관계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견고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게 이동하며 숨은 시점을 포착해내고, 우리만의 시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슬비 기자

조종성은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회화과와 한성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상하이, 파리 등지에서 개최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5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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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agaINst space, len. 05>(사진 맨 왼쪽) 렌티큘러 45×45cm 2014 갤러리 버튼에서 열린 개인전<상자 안의 고양이>(6.5~26) 광경

 

[World Report] 8th Berlin Biennale for Contemporary Art

비엔날레라는, 이제는 익숙한 형식의 전시행사는 논쟁과 그로 인한 담론 형성이 주된 목적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5월 29일 개막해 8월 3일까지 열리는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bb8)를 둘러싼 호불호의 논쟁이 격렬하다는 소식이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자제하고 지적이고 진지한 감상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 주로 출품된 이번 베를린비엔날레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섬세하게 변주된 다양한 층위의 담론

신원정  미술사

2년을 주기로 베를린 미술현장의 여름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의 한복판에는 바로 ‘베를린비엔날레’가 있다. 8회째를 맞은 올해의 비엔날레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최종 선정된 콜롬비아 출신 캐나다 큐레이터 후안 A. 가이탄이 제시한, 19세기 독일의 정치 및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코스모폴리탄인 빌헬름과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를 2014년의 베를린에서 재조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시 프로젝트 제안서는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난 5월 28일 개막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전시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례적인 전시공간이다. 베를린비엔날레에서 전시 장소의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행사 주관기관이자 도시의 심장부라 할 미테 지역에 자리한 쿤스트베르케 전시관 외에 어떤 다른 장소와 지역을 선택하는지가 비엔날레 총감독이 미리 하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기 때문이다. 올해 비엔날레는 쿤스트베르케 외에 서베를린 깊숙이 위치한 달렘 박물관과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데 미테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전의 비엔날레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달렘 박물관의 비엔날레 세션은 유명 작가를 다수 포함하고 있고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 의도에도 가장 잘 부합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근원지라 해도 무방할 만큼 달렘 박물관의 의미는 크다. 베를린과 포츠담의 경계선에 위치한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은 분단 시절 서베를린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손꼽혔지만 통일 후에는 변두리가 되어버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베를린 중심부의 전시기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베를린의 한복판에서 남서쪽 가장자리로 지축을 옮긴 이번 비엔날레는 미테나 크로이츠베르크처럼 화려하고 자유분방하며 소위 ‘핫’한 지역 대신 전원적이고 부유하며 보수적 분위기의 서베를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허름하고 훼손된 버려진 건물이나 가능한 한 뜻밖의 장소를 택해왔던 그간의 행보와는 달리 전통적인 박물관을 주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색적이다. 이번 전시 주제 또한 흥미롭다. 동서 냉전기간 높은 장벽이 도시 한복판을 관통했던 베를린은 독일 분단의 역사와 아픔의 흔적을 생생히 간직한 채 통일 후 조국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독일인들의 의지와 노력이 특히 건축적인 부분에서 열매를 맺은 도시이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당연하게도 베를린, 더 나아가 특히 치부를 포함하는 독일의 역사를 주요 테마로 삼았고 그래서 ‘베를린영화제’처럼 베를린비엔날레 역시 정치성이 기저를 이뤄왔다. 강한 정치성의 표방과 사회비판 성향은 그간 전 세계적인 비엔날레의 홍수 속에서도 베를린비엔날레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는 지난 회차의 비엔날레에서 그만 극단에 치우치고 말았다. 시위 운동가들이 쿤스트베르크 주전시실을 점령했던 제7회 베를린비엔날레는 정작 미술은 없고 정치만 보인다는 혹평을 받았고 심지어 비엔날레의 폐지가 거론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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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넬 <무역> 특별 제작한 쿠바산 목재 액자 10점(왼쪽 벽); 드로잉 약 48점(오른쪽 벽); 가운데 책상 위 오브제, 그래픽, 작가의 책 3권과 사운드트랙, 쿠바산 금속바 위 텍스트, 종이 위 디지털 프린트 가변 크기 2014

전년 대회의 위기를 극복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2014년의 베를린비엔날레는 선동적인 외침 대신 섬세하게 변주된 다양한 층위의 담론으로 채워진 모습이다. 식민지 상황을 겪은 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5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글로벌리즘에 대한 비판적 조명과 포스트식민주의적 담론이다. 지적 유희로서의 현대미술 감상을 강조하는 큐레이터의 의도는 다수의 전시작에 드라마가 빠지고 담백함과 절제가 전시장 분위기의 주조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디오작업의 수가 준 대신 종이를 매체로 하는 소규모의 작품이 훨씬 많고, 수집과 아카이빙을 키워드로 하는 작업이 많은 것도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고 하겠다. 베를린 자유대학 캠퍼스에 인접한 달렘 박물관 건물에는 아시아미술관과 민속학박물관 그리고 유럽문화박물관까지 총 3개의 전시기관이 들어서 있다. 현대미술과 민속학적 유물을 융합시키려는 큐레이터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의 민속유물과 고미술품 사이에 끼어든 현대미술 작품들에서 위화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식물도감과 표본을 연상시키는 알베르토 바라야(Alberto Baraya)의 <비교 연구, 인조식물 표본>(2002~현재)에서는 18~19세기 새로운 종의 발견자들에 의한(또는 이들을 위한) 드로잉과 오늘날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상징하는 인조식물이 유리진열장 안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정교함 덕분에 마치 생화처럼 여겨지는 조화는 자연과 인공의 가상 대치를 통한 원본과 모조품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고무하고, 박물관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런 모조품이 갖는 가치에 대한 숙고를 촉진한다. 흔한 교통표지판처럼 여겨지는 베아트리스 곤잘레스(Beatriz González)의 설치작업 <특별한 사진들>(2014)은 자세히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픽토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간을 메고 홍수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나 사체를 나르는 사람 등 열악한 환경의 콜롬비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담겨 있다.
플래시 전구를 사용한 카르스텐 횔러(Carsten Höller)의 <7,8헤르츠>(2001/2014)는 달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장소 특정적인 작업 중 하나이다. 작가는 콜럼버스 미대륙 발견 이전 시대 금 골동품 전시실의 조명을 7과 8.6헤르츠 사이의 진동수로 깜박이도록 조작했다. 안구를 격렬히 자극하는 무한 스타카토의 섬광은 원래 박물관 소장품인 황금빛 미술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한편 기존의 전시품과 새 미술작품의 경계도 허물어 버린다. 작은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설치작업 <무제>(2014)는 그 전시실의 원래 주제였던 테마를 작가 개인의 작업으로 흡수해버렸다. 예전부터 벽에 설치되어 있었던 안내판 위 문구 ‘유럽의 영향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는 작가가 따로 첨가한, 현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예를 들어 세관을 통과하는 수입 과일들) 및 오브제(유명 상표의 운동화 등)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수준 높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중심부와 동떨어진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등한시되어 온 달렘 박물관을 베를린비엔날레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동시대미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새로운 담론 형성의 장을 마련한 비엔날레 총감독 후안 A. 가이탄의 용감한 시도에 대한 평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신진 작가가 중립적 화이트큐브가 아닌, 기존의 제도적 전시 공간에 자신의 작업을 채우는 경우 그는 과연 독자적인 색깔과 목소리를 살려낼 수 있을까.《  쥐트도이체차이퉁》의 비평가 카트린 로르히는 저명한 미술관에 전시할 기회를 얻었을 때 주최 측이 요구하는 규범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입장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현대미술과 민속 유물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성공적인 나머지 관람객이 자칫하면 상설전시품 속에 위화감 없이 섞여 있는 비엔날레 출품작을 간과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개인적으로 특히 아쉽게 느껴진 부분은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장을 다 돌고 났을 때 좋은 작품이 적지 않았음에도 딱히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작업이 떠오르지 않았던 점이다. 관심의 집중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인해 모든 혹은 여러 작품에 골고루 힘을 분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모든 작품이 비슷한 강도의 (희미한) 인상을 남기게 된 것은 전시기획자 입장에서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치열한 철학·정치·사회비판적 고민을 절제된 제스처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밀도 있게 풀어내려 한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흥미롭게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호평과 혹평 그 어느 쪽이든 단편적인 평가에 그치지 않고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강점은 이런 모순성과 시끌벅적한 문제 제기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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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아비디 <펀랜드(카라치 연작 중)> HD 비디오, 칼라, 사운드(비디오 스틸) 2014  Courtesy Bani A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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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 수하일 <사색하는 주인공> 프로젝트 2013  Courtesy Mariam Suhail; GALLERYSK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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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베를린비엔날레 예술총감독 후안 A. 가이탄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바란다”

bb8 (2)이번 비엔날레는 특히 국제적, 다문화적으로 느껴진다. 참여 작가 선정기준은 무엇이었나.
일부는 예전에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된 작가들로 그들과는 그간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지적 토론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어 초대한 작가도 많다. 넓은 시각으로 전시에 어울리는 작업을 선정했기 때문에 선정된 작가들이 국제적인 면면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국가성이나 지역성 측면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개별 작가가 개인적 관심사와 흥미를 작업을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주요 전시장이 서베를린에 위치한 점은 이전 비엔날레와 완연히 차별되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이 된 미테 지역뿐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도시 전체로 전시의 포커스를 확장하고 싶었다.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과 달렘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바탕으로 현재 미테 지역에서 보이는 18/19세기의 부흥운동과 같은 경향을 능가하는, 더 광대한 전망과 가능성을 창조하고 싶다.
달렘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비유럽권 미술품과 민속학적 컬렉션을 보유한 달렘 박물관은 매우 흥미로운 장소이다. 방문객들이 여느 미술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기 소장품에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비엔날레 전시 외에도 박물관 상설전을 구경하며 현대미술과 민속학적 유물 간의 전시 및 수용상의 차이점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거다.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를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방법은 현대미술이 전시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민속학적 유물들은 전시 기획상 좀 더 특별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상이한 두 대상이 한 장소에서 만나면서 발생하는 현상들, 예컨대 얼마나 이단적인 전시방법이 각각의 맥락에서 다르게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그때 사용된 장치들로 인해 미술품과 유물을 대하는 관람객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경험이다.
광활한 쿤트스베르케 미술관의 주전시실이 소규모 작품들로만 채워진 광경은 놀라움을 넘어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비록 개별 크기는 작지만 작품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거대한 군(群)을 이루는 모습을 보라! 우리는 논제라는 관점에서 미술작품에 접근했으며 또한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데 드는 시간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종이를 매체로 한 작업이 특히 많이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사회·정치적 비판의 목소리가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미술매체로는 드로잉만한 게 없다. 어떤 작업이든 시작 단계와 아이디어의 윤곽을 잡아가는 과정에 드로잉이 있다.
화려함과 스펙터클 대신 절제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택한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 특유의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대한 제스처와 시각적 이미지의 과잉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한국적인 모습이 아닐지? 내가 생각하는 독일의 정서는 좀 다르다. 이번 비엔날레는 지적이고 주의 깊은 감상을 요하는 작업들로 변주되었다. 이를 통해 대규모 전시에서 놓치기 쉬운, 느린 템포의 명상적이고 축약적인 미술에의 접근을 이루었다. 소비와 토털패키지적 체험을 추구하는 현대미술계의 자본주의적 욕구에 지나치게 부합하는 거대 제스처를 지양하는 전시가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였다.
관람객이 전시에서 어떤 인상을 받기를 바라는가.
이번 비엔날레는 미술이 현재 처한 응급상황을 조명하고 특히 예술의 비판적 역할과 기능, 즉 우리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발달시키고 촉진하는 길을 열어줄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다. 방문객들이 비엔날레라는 형식으로 열리는 전시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베를린비엔날레가 끝난 후 어떤 개인적인 계획이 있는가.
거의 2세기 동안 실종 상태인 고야의 머리를 찾는 탐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베를린 = 신원정 통신원

후안 A. 가이탄(Juan A. Gaitán, 1973년생)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과 밴쿠버 에밀리 카 미술디자인인스티튜트 출신의 작가 겸 미술사학자이다. 웨스트 프런트 협회 임원 및 밴쿠버 모리스 & 헬렌 벨킨 아트갤러리 객원 큐레이터(2006~2008), 로테르담의 비테 드 비트 현대미술센터 큐레이터(2009~2011),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아트 칼리지 겸임교수(2011~2012)를 거쳤다. 전시 기획 외에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온 그는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프랑스 댕케르크 노르파드칼레 현대미술 지방재단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강성원의 인문학미술觀] 정체성

한국 근현대미술, 정체성의 갈등 현장

미술이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필자는 100여 년이라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시공간 속에서 예술가들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주제별로 살펴보고 그것이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보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미술사적 접근보다는 인문학적 접근에 가깝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 개인의 정체성과 시대적 요구 사이의 갈등 관계 속에서 작가들이 예술가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그들의 경험을 어떻게 작품에 반영했는지 주목한다.

강성원  미학

이 글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의식’과 ‘고민’이 ‘작업’에 나타나는 바를 주제별로 살피고자 한다. 사실 이러한 관심은 어찌 보면 비평가들이 해 온 비평방식의 전제이거나 주제가 있는 기획전에서도 보이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주제로 작품을 파악하는 방식이 관행적이 되면서 놓쳐버린 매우 중요한 지점들이 있다고 여겨지기에 한국미술 전체를 대상으로 주제별로 다시 읽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작가가 작업에서 표현하는 미적, 일상적 경험과 판단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른다. 성장 문화와 구가하고 지향하는 생활도 작가별로 다양하다. 새로운 비전을 향한 계기도 나름대로 특별하다. 이런 다양성과 차이들은 새로운 미적 차원에서 작가의식이나 주제의식으로 전환되고 응축된다. 작가마다 공유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같은 시대라도 다른 시대상황인식을 보일 수 있거나 가족관이나 성(性)정체성, 역사관이나 문화관, 민족관 등에서 다른 마음과 생각을 내비칠 수 있다. 여기서는 작가의식이 펼쳐지고 전개되는 작업상 ‘문제의식’의 지평과 비전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과 얽힌 맥락들을 드러내고 그 내용을 다시 지난 100여 년의 시공간이라는 위상적 퍼스펙티브로 수렴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매체가 ‘행위’든 ‘설치’든 또는 ‘평면’이든 작품주제가 창작방법을 통해 드러나는 ‘의미의 차원’이야말로 작품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작품주제가 작가나 평론가의 전시서문 글 속에서나 작품제목 정도로만 인지되거나 상품가치 인증을 위한 문화적, 기술적 참조 곧 배경 정도로만 문제시되고 있다. 물건 혹은 상품인 ‘작품 자체’의 이미지보다 가치 있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의 콘텐츠는 작품이 말하려고 하는바 ‘내용’이자 내용을 작품으로 만드는 ‘창작방법’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근대미술 도입부터 지금까지 작가들이 작품의 주제와 소재, 매체와 방법을 고민하던 문제의식의 큰 흐름이나 구체적 사례 혹은 연관성을 보려고 한다. 암암리에 혹은 의도적으로 상업적인 요소를 포함할지라도 작가는 자신의   ‘콘텐츠’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삶을 어떻게 대상화 하는지, 공공에 말 거는 방식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그리고 작업에 임해 자연과 사회에 대한 느끼는바 내용–이런 태도와 방식이 공공가치인데–을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투’, 작가적 정체성이 담긴 내용과 형식에 대한 작가의 고유한 가치론이 작품을 예술의 차원에 진입시키며 예술을 인문학적 정신의 산물로 만든다.
한국 미술사의 표상은 작가나 작품의 연대기가 아니라 작품에 깃든 생과 사, 인간과 문명과 자연에 대한 문제의식의 차원에서 나와야 한다. 작품이 지닌 결과적인 내용의 예술적 가치가 ‘미적 차원’이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작가의 마음이 ‘미적 문화’인데, ‘미적 차원’ 속의, ‘미적 문화’ 상의 작가적 고심(苦心)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치 있고 그래서 미술사와 미술의 ‘문화적 콘텐츠’와 ‘미술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물건’은 이러한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다. 물건인 ‘작품’은 일종의 하드웨어이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물건 그 자체로 하나의 특별한 미술관이다. 작가는 자신의 개별 작품, 곧 개별적인 특별한 미술관의 연속 생성을 통해 자신만의 미적 콘텐츠를 연구하며 생성시켜나간다. 그 결과가 작업의 진정한 콘텐츠인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다. 작가가 주제와 창작방법으로 해 온 일들의 성격을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프로젝트나 프로그램 혹은 엔터프라이즈(기업충동)의 기획성을 띤다. 이번 시도는 이런 ‘일’, 곧 작품이라는 미술관에 ‘사회적 차원’의 내용을 자신만의 전시연출 방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의 미적 차원과 미적 문화를 서로 매개하고 맥락화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들이 행한 기획의 전체상을 ‘작품 주제’라는 연결고리로 매개해보려는 것이다. 필자는 작품 주제들 가운데서도 특히, 여기서 한국 근현대미술사 아카이브의 새로운 정립방법을 논하는 것이 아니기에, 본인이 선호하는 주제들을 선별했다. 주제 범주들은 사실상 서로 연결된 문제여서 편의상 큰 틀의 분류를 가능하면 유지하되 필자의 관심에 우선하는 주제영역만을 살펴볼 것이다 .
작업에는 작가의 몸과 마음 문화의 특별한 역사와 방향성이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한편 생활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이데올로기적 교육의 틀에 갇혀 있거나 체화되지 않은 사회적, 정치적 반향을 담기도 한다. 어쨌든 작가는 그야말로 무언가를 공공화하기 위해, 가치를 얻기 위해, 가치론을 인정받기 위해 이전 생의 전 역사와 이후 생의 전 계획을 투여한다. 게다가 모든 작업은 비참하고 비굴한 사회에 대한 나름의 엄중한 저항이다.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런 이해를 전제로 다룰 주제 범주는 크게 1) 개인적 조건이나 지역적,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작가의식,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 문제의식과  2) 인간과 자연, 사회와 문화, 사건이나 사물의 체계 혹은 상태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태도, 마지막으로 3) 예술과 가상의 문제 등 예술적 소통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 등이다.  이 같은 주제들을 따라가기 위해 작가의 진술을 우선적 자료로 검토할 것이다. 작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화하려 했던 부분, 곧 작가 자신의 특수한 표현이자 그가 속한 사회 전체의 특수한 표현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생활관계와 생활요구의 측면에서 이 내러티브들을 파악할 것이다. ‘작업’과 ‘진술’을 매개해 작업이 생산되기까지의 미적 문화에 놓인 생(生)의 발로(發露)의 내적, 외적 계기들과 지향성이 그려내는 그림을 볼 것이다.
지향에서 표현되는 정체성이란 본래 이중적 기능을 지닌 개념이다. 정체성은 주어진 역할과 기대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동일시의 개념인 동시에 이러한 동일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른 비전을 바라보는 개인과 사회의 저항적 자의식이기도 하다. 정체성은 고착적이거나 불온하다. 특히 우리처럼 전통에서 현대로의 이행이 제국주의적 식민지 시기와 겹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민족 분단과 냉전적 이념대결을 겪고 있는 사회의 개인은 정체성 인식이 선명히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다. 개인은 혼란과 불안, 긴장 속에서 사회생활을 유지한다.
이 장(章)에서는 작가 개인의 작가적 정체성 문제를 주제로 작가의식과 시대의 요구가 맞물려 갈등하는 지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정체성 개념의 이중적 기능에 대한 작가의식은 특히 미술작품에선 명료하게 드러나고 근대초기 이후 거의 모든 작업의 근본적 문제의식 혹은 기본적 태도로 나타난다. 따라서 맨 먼저 이 문제를 관통해나가야 전체 주제들이 역사적으로 제대로 맥락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 동일시와 저항 의식
요즈음 포스트콜로니얼 담론 같은 다양한 이슈들에서는 마치 유목적 이주 개념이 탈근대성의 마지막 대안처럼 제시되면서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점차 무의미해지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느 때보다 전 지구적으로 민족적, 문화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국경을 벗어날 때 국가적 아이텐티티를 보증하는 도규멘트 없이 갈 수 없는 것이 현재 인류의 생활세계이다. 근대적 국경이 확정된 이후 그럴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한 개인의 사회적 존재를 공인해주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 그 시스템에서 증명하는 개인의 자기동일성 증서를 요구하지 않는 생활세계, 진공의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권 없는 도경(渡境)은 밀입국이요 범죄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소위 주민증이나 시민증 없이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주민증이나 시민증 없는 개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실체적 존재의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게다가 알다시피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아이덴티티 도규멘트를 관리한다. 이러한 의미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는 개인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근본 귀속, 특정 사회의 구성원의 자격을 표시한다. 정체성 아이덴티티 없는 개인은 ‘자연상태’의 인류에 불과하다. 아이덴티티 표지가 없는 자는 법에서 규정하는 의무와 권리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해당 공동체 윤리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데 저항한다면, 그는 스스로 추구하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대개 민족적 정체성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한편 자신의 국가를 선택할 여지는 있으나, 지배 정권과 체제의 존속과 번영이라는 이해관계에서 반체제적이라고 규정될 때 그는 불온한 ‘개성’이 된다. 주어진 국가적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다면 내국에서는 체제전복자요 외국에서는 망명자이거나 무국적자로 누구도 그의 생명을 보호할 공적 필요가 없다. 체제 내의 생존이란 한 개인의 생존의 시작이자 끝이다. 생의 성취와 비전의 모든 전망은 체제 내에서만 전개가 가능하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고, 더군다나 민족문화는 피의 계보 문제 같은 것이어서 민족적 정체성의 새로운 기획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민족문화는 인류에게 생명의 기원이나 원죄 같은 것이다. 혹 어느 옛날 북구 유럽의 전설적 숲, 중국의 태산, 동화 속 지하 동굴 세계, 무지개 너머 인류의 마지막 땅이 있거나, 아직 어떤 인류도 발 딛지 않은 지구 같은 별이 있어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모세의 탈애급에서처럼 새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구에서 국가 영토가 아닌 곳은 없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과 침략 등 제국주의적 식민화로만 다른 국가의 영토를 침탈할 수 있다. 변할 수 있다. 수호지의 양산박은 이제는 불가능하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서구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이식으로 아시아의 제패를 노렸다. 본토인과 내지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기제를 작동시키려 했다.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과는 별도의 정체성 규정개념이었다. 강대국의 꿈은 일찍이 일본의 근대적 기획의 큰 틀이었다. 내지(內地) 작가들은 일제 식민체제하에 동화되어야 했다. 근대적인, 자유와 평등의 개인에 대해 알자마자 내지인 정체성과 근대 가정과 사회구성원 정체성, 동시에 전통의 계승자이자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투사의 정체성을 자신 안에,  자의식 안에 공존시켜야 했다.
한국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면서 강대국을 향한 근대화 발전을 추구했다. 부국강병과 체제이념 확립을 향한 정권의 국가 정체성 구축 요구는 서구 강대국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념을 빠르게 삶의 지표로 끌어들였다. 미국의 제3세계 근대화 발전모델을 바탕으로 미국식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독립국가 국민으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고 현대문화뿐만 아니라 민족문화도 부국강병과 자주적 주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적, 역사적 정당성 토대로 생활세계에 접목됐다. 이후 거센 민주화운동 물결 속에 민족문화의 민중적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움직임, 나아가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의 홍수 속에서 결국 작가들은 ‘작가적 정체성 갈등’ 자체를 그림의 시작으로, 주제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최진욱의 <그림의 시작>과 박재철의 <난 나비야> 혹은 원성연의 <Piling Yes-terday>나 김광열의 ‘분홍색 그림’ 시리즈에서처럼 작가들은 스스로 작품을 통해 자가 치유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의 작업에선 인물, 물체 등을 어떤 특정한 배경/풍경 속에 배치시켜 어떤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 작업의 스타일을 바꾸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그동안 해오던 서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데에 있다. 동시에, 나 자신의 현실, 나와 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관계, 거기에서 생기는 갈등, 감정을 넘어서 더 깊은 순수한 내면의 세계로 가고 싶은 필요가 새로운 그림을 시작하게 한 것 같다.” (김광열)
작가들은, 아니 작가들만이 내 정체성이 왜 그래야 되는지를 물을 수 있다. 묻는 일을 ‘일’로 할 수 있다. 예술의 특권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아니면 이러한 정체성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세계시민’이 되는 길뿐일 것이다. 코스모폴리타니즘(사해동포주의)은 세계시민권자의 정체성으로만 작동된다. 세계시민권자의 영토는 문화적 영토이다. 한국 작가로서는 백남준이 대표적으로 세계시민의 문화권 특권을 얻었다 할 수 있다. 그의 발언과 태도들은 이런 특권을 누리는 자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자유로웠지만, 실제 그의 생활은 세계시민의 문화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떠돌아야 했고, 세계시민으로서 동·서양 문화의 다양한 정체성을 이종교배하는 작업을 그만두지 못했다.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보거나 한국인이 보거나 그는 한국인이자 외국인이었지만, 백남준 자신은 스스로를 한국인이자 세계시민으로 여겼을 것이다. 떠돌면서 지독히 공허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 작가들의 작가의식에 은폐된, 거대하고 조용하나 미세한 자기분열을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정체성 강요는, 체제 순응적이든 파괴적이든, 이러한 정체성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작가들의 작업기제로 작동하며 이들의 모든 작업을 둘러싸고 있다.

박재철 난나비야!
박재철 <난 나비야> 한지에 수묵채색 70×70cm 1998

한국 미술가들의 민족·문화적 고민
일제 식민지시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우리 미술가들도 서구적 미술가로서의 작가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것은 유학과 독서 등 매체를 통해 서구문물을 접하면서 갑작스레 서구적 작가의식이 생겨났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기 때문이다. 서구적 작가의식이란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가의 창조성, 개성을 예술의 근본으로 여기는 태도 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런 의식은 동양 예술가에게도 전통적으로  요구됐던 사항이다. 개성이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을 좋은 그림으로 치는 기준은 동양화론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미 일정 정도로는 지금의 서양식 작가관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식이 어느 정도로는 존재했지만, 그래도 새삼스레 ‘드러났다’는 것은 서양적 대상 선택과 대상의 재현 방법, 서양식 재료의 장인적 마스터가 예술가가 그려낸 ‘미적 차원’이 생활세계를 뛰어넘은 인간 정체성의 ‘진실한’ 무엇이라고 보는 예술을 위한 예술관의 일정한 태도와 접목되면서 동시대의 근대적 예술관으로, 당시의 공적인 서구적 작가의식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에서다. 근대 초 우리 작가들의 서구적 작가의식이란 결국 전적으로 새로운 예술관의 이식이나 수용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식으로 달구어진 작가의식이다. 하지만 바로 이래서 당시의 작품들은 습작에 가까워 장인적 기량에서나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을 창작방법으로 체계화하고 전수하는 차원에서, 세계의 거장들이라 평가받는 작품들과 동등하게 견주기는 힘들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서구 역사에서도 20세기는 사회생활의 전 분야에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 시대였다. 모진 격랑의 시대였다. 더군다나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은 도처에서 전쟁과 파괴, 학살이 자행되고, 작가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잿빛 산문의 세계에 대응해 새로운 기법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대상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넘어 리얼한 현실세계를 대상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화단에 인상주의, 표현주의, 상징주의적 작풍과 유사한 작업이 많았다는 것은, 이들이 바로 이런 화풍을 일본에서 보고 배운 것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인상주의나 상징주의, 표현주의 화풍이 주관적 시선에서 인물과 정물, 풍경을 스케치풍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유화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인물이나 실내 정경, 집, 길 등을 스케치풍으로 그려내기가 수월했기 때문에도 그렇다고 보인다. 이 시기는 근대미술 발전도상의 첫 신(scene)으로 작가의 정체성 혼란이 작품 생산의 질을 넘어 짓누르던 때였다.
작가들은 일본 식민지체제의 내지인으로 오랜 기간 장인적 기술의 연마나 연구, 오랜 공을 들인 기념비적 대작을 생산할 방법은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문화의 정체성만은 간직하고 싶었겠으나 일제는 지방색 차원에서는 이를 허용하되 민족적 주체성 차원에서는 반체제적이라고 탄압했다.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가 되겠다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좌파 진영에서는 반민중적이라 비판하는 가운데, 작가 대다수는, 실제로 당시 제국주의적 친일 관피아가 아니라면, 이른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홍보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싶지 않아도 대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마찬가지로 좌파 문화예술계의 활동에 굳이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시대에 전업 작가의 삶이란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나마 작가로서의 명맥을 이어갈라치면 관전에라도 출품하거나 주류매체에 삽화라도 그리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이상은 원대하고 자유로웠으나 실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인데, 바로 그만큼 이들의 작품은 정물이나 실내, 소녀, 부인상 혹은 가로변이나 풍경 스케치 등을 위주로 한 소품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박수근이나 이중섭, 김환기나 장욱진의 작품들이 천재적 장인정신 화가군의 반열을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들어서는 결국 백남준이나 이우환 등 해외에서 그들의 지적문화 수준에서 함께 어울리고 성장한 작가들이 우리 미술계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하는 현실이 생겨나고, 이 상황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도 국내 작가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에서 자신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의 핵심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우리 미술의 역사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근현대 미술의 역사는 우리 작가들의 피와 땀과 생활에의 의지, 자기보존의 논리, 그로부터 피어난 치열한 삶의 궤적이자 문화요, 우리가 소중히 보존하고 이어나가야 할 우리 정체성의 보루이다.

분노(sc)_합성
백윤문 <분노> 비단에 채색 191×151cm 1935

정체성과  예술가의 역활
백윤문의 작품 <분노>를 보면, 그것이 그림 속 일본인의 분노이건 조선인의 분노이건 상관없이, 당시로서는 드문 작가의식을 담아낸다. 우리 근대화단의 친일 작가로 분류되는 작가들도 작품 속에 일본인을 등장시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백윤문은 일본화풍의 감각에 조선 풍속화의 모티프를 앉히고 일본인과 조선인이 일상에서 어떻게 보면 투정 어린 싸움을 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분노’라는 제목을 붙였다. 백윤문도 국화(國畵)의 발전방향을 모색했던 것이 분명한 것 같고, 전통의 계승과 외래 화풍인 일본화풍의 접목을 시도했던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식민지체제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이 그림에서처럼 내지인 본토인 하면서 깊이 얽혀 살며 사소한 문제들에서도 부딪혔을 실제 생활모습을 그렸다.
대부분의 근대 작가들은 향토성(민족적 정체성)을 화두로 삼을 때 우리끼리의 생활모습, 그중에서도 시골풍경과 조선 사람들을 주제로 한다. 아니면 구본웅의 주장에서처럼(구본웅의 1934년 조선미전 전시회평) ‘조선인의 생활의 모던화’에서 향토성을 파악한다. 올바른 우리식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길을 발달한 근대조선의 거리모습, 서구식 실내정경과 정물표현에서 보았다. 그런데 실제 구본웅 작품의 정수는 친구이던 이상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대개 이 작품에서처럼, 그림 공부를 위한 유학이 작가의 개성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작가의 예술적 개성을 살리기 위해 굳이 유학을 갈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 이인성의 예술관에 가깝다. 이 문제는 구본웅의 개인 처지(신체상의)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인물화 속 이상의 태도나 모습에 작가 말대로 생활의 모던화가 표현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우리 작가들 작품 중에서 우수한 것은 구본웅의 이 작품처럼 이인성의 예술관에 가까운 것이 많다. 나혜석의 작품들이야말로 구본웅의 주장에 해당된다고 보이지만, 그녀의 작업에 엿보이는 ‘생활의 모던화’ 표현은 피상적인 인상의 문제일 뿐이다.
“이 사람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양행(洋行)할 심산도 있으나 양행한 결과에 자기 작품대성(大成)의 표가 생길는지요? 이것도 중대한 문제의 하나로 생각하며 양행은 현대 인간의 간판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마는 나는 그렇게 양행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도리어 자기 예술상 개성을 죽이지 않는가 하는 위험한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자기 향토를 영원히 떠나서는 도리어 실망성이 생기리라고 생각됩니다. 근본적 색채는 어머님의 뱃속에서 타고 나온다” (이인성, <조선화단의 X광선>,《   신동아》, 제39호, 1935)
이인성이 이런 의도하에 야심 찬 대작으로 준비한 것이 <경주의 산곡에서>이다. 그런데 사실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는 강한 지역적 토속성을 띠면서 일제가 민족성이라는 개념 대신 강제하던 ‘지방색’이 많이 묻어난다. 그리고 구본웅이 ‘조선인의 생활의 모던화’라고 했던 주장에 걸맞은 작업들은 이인성의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성과 구본웅, 나혜석의 작품에는 공통적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강한 예술적 성취의 욕망을 지니면서, 유학을 통해서건 국내에서 습득한 것이건 예술로 개인의 개별성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의지이다. 예술을 매개로 멋진 근대적 세계시민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한 정서로 충만돼 있다는 점에서다.
아래 글은 당숙 구본웅에 관한 구광모 씨의 기록이다. 그가 직접 목격한 상황은 아니요, 구본웅의 생각이라는 부분도 구광모 씨가 개연적인 상황으로 붙인 것 같지만, 구본웅과 나혜석, 이상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실제 나혜석과 구본웅, 이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예술가적 자의식의 면모는 이 광경에서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월(나혜석) 선생님은 그림으로 나타내는 자아와 글로 나타내는 자아가 서로 다르신 것 같아요. 그림으로 보면 매우 서정적인 분 같으신데, 글로 보면 매우 투사적이세요. 그렇죠? 정월은 대답 대신에 그렇다고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이상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요즘 시를 열심히 쓰고 있어요. 물론 습작이지요. 그런데 선생님. 조선어로만 글을 써야 될까요? 일본어나 영어나 불어로도 쓸 수 있으면 더 좋지. 정월의 이러한 답변에 구본웅은 이의를 달았다. 조선에서 일어로 시와 소설을 쓰면 현재는 물론 후세에까지 친일파 문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월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가설일 수 있겠지만 편협한 생각이야. 편협한 여론에 밀려 창작력을 소실하면 안되지. 우리가 조선 사람만을 위해, 또는 조선 사람에게만 보이려고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예술은 영원한 것이고 국가나 사회라는 벽을 뚫고 갈 보편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야. … 정월의 힘있는 조언에 이상은 크게 고무되었다. … 그러나 구본웅은 이상과 정월의 정정서가 이해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해방될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이 남긴 일본어 작품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 것인가? 친일 문학인으로 낙인찍힐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편견과 몰이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이상의 시공간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일부 반일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그들의 생명이 마감될 때까지 완고하게 지켜간 시간적인 편견과 조선반도라는 지역적인 편협성을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구광모, <友人像과 女人像, 구본웅 이상 나혜석의 우정과 예술>,《   신동아 논픽션》, 통권 518호, 2002)
향토성 문제를 둘러싼 당시의 상황을 두고 김복진은 “조선의 미술이 이민 미술과 대립하며 항쟁하는 데에 가장 많이 그 힘을 의촉(依囑)하고 자부하였던 향토성은 자본주의 문형으로 하여 지역선(地域線)이 무너지며 이민 취미로 말미암아 개변되어 가는 도정에 서 있다. 조선미술의 유일한 무기는 이와 같이 하여 나날이 좀이 먹어가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김복진, <조선역사 그대로의 반영인 조선미술의 윤곽>,《   개벽》, 1926.1)

5. 구본웅 우인
구본웅 <우인상>캔버스에 유채 65×53cm 1935

식민지 시기 최초의 개인전을 연 사진작가 정해창도 “나도 한때 허탕한 남자로 자처하고 일생을 방종하게 지내보겠다던 청춘도 있었으나 그것도 전생에서 팔자를 타고나야 되는 모양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싱거운 노력 같기도 하나, 갈 길이 이뿐이므로 아니 갈 수도 없는 것이라 내 발이 닿은 곳마다 기왕 지나온 노중(路中)에서 묻고 붙은 여러 가지 흙덩이가 사방에 떨어지니 새 친구는 반갑게 보아주지 않는 것이다. 묵은 친구들은 비웃고 있는 것이다”(정해창, <여인의 행색과 매화장, 사조>,《   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집》, 1958, pp.15~16)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정해창도 역시 과거와 현재 사이에 걸쳐진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두고 고민했다. <정물>은 작가의 정체성 확립의 문제를 두고 고민한 그만의 방식을 드러낸다. 스스로의 고민을  ‘정물적(靜物的)’ 인 관조의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여인의 인물 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그의 거의 모든 작품사진에서  대상과 소재, 주제는 사진 속 세계에 갇혀 영원히 고착된, 잃어버린 이야기의 고향이듯 고색창연한 미학적 구도 속 대상들로 정물화 (靜物化)된다. 장면들은 식민지 지식인의 애잔하고 불안한 정조(情調)로 물든다. 그는 이 애상(哀想)을 근대적 풍경을 구성하는 세련된  정취의 미학으로 포착한다.
“정해창의 정물사진에 나오는 소재는 … 근대화된 일상을 보여주는 소품과 장승과 한복을 입은 목각인형처럼 조선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소재로 나눌 수 있다. 후경에 램프와 석고상, 전경에 파이프케이스와 파이프, 영문서적을 펼쳐놓아 구성한 사진은 … 서구화된 … 정해창 자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두가지 소재들이 서로 뒤섞여 한 화면을 구성하기도 했는데, 이런 현상은 근대화된 삶을 살면서도 작품에서는 전근대적인 소재를 통해 향토색을 추구했던 근대 화가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분열상이기도 하다. 정해창의 사진에서 장승과 한복을 입은 인형은 조선색을 강화하기 위해 등장한 소재라기보다는 알레고리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유지현, <정해창의 예술사진>,《   무허 정해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집》(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편), 2007)
여기서의 알레고리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징의 의미일 것이다. 비빔밥 정신이 아닐진대, 알레고리를 통해서나마 정체성의 위상학을 획책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비빔밥 정신’이란 표현은 백남준이 멀티미디어의 특성을 정의하면서 빗댄 말이다. 게다가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안다,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고 우리나라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사실 백남준은 6·25전쟁 중 벌어진 비참한 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신이 어느 편인지 알 수 없게 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 모든 것에 대해 판단유보하게 됐다고도 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스스로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서는 불굴의 비빔밥 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초기 퍼포먼스에서도 그가 벌인 ‘행위’와 ‘사건’은 그 자신이 직접 겪은 이주적, 이민자적 복합적인 문화적 상황들을 비빔밥적(?)으로 동·서양의 문화를 관통해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수행과정이었고, 특히 1970년대 이후 백남준의 작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빔밥 정신으로 동·서양이 혼합돼있다.
이에 반해 김환기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지만, 그리고 김환기의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 또한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작업의 정체성, 한국미술의 위상이 가장 고민에 찬 부분이었다. 그도 자신이 선택한 결론을 믿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김병기는 말한다. “우리들 현실의 면모    (面貌)는 부단히 변모(變貌)해 가고 있다.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슬기롭게 몸부림치는 현실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다. 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이러한 현실성과의 연관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의 저 광야와도 같은 환경 속의 나의 현실성은  나로 하여금 보다 내부에로의 침잠을 가져왔고 또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는 필요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닫혀있던 창문이 밖을 향해 열린 느낌이다. 나는 밖으로 나와야 했고 우리들이 당면한 현실과 부딪쳐야 했다.”
정체성 갈등을 구체적으로 다시 보면 특정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지구상 모든 개인의 사회적 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곧 개인이 오로지 한 개성으로서 세상에 취할 수 있는 권리, 곧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자 하느냐, 아니면 사회구성원인 개인에게 사회가 부여한 역할, 곧 의무를 이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런 요구가 ‘나의 정체성’의 문제에 연관돼 있다. 예술가에 대한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 의무 요구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향한 정체성 요구에 배치된다. 개인이 공동체에서의 모든 의무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그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래서 그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도외시한다면, 그의 권리는 파렴치해지고 만다. 그는 어떻게든 ‘역할’을 맡음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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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창 <정물> 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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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부처> 혼합재료 1974/2002 Ⓒ Nam June Paik Estate

강성원은 1955년 출생했다. 서강대 사학과,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를 수학했다. 그림마당 민 기획실장, 도서출판 재원 기획실장, 일민미술관 기획의원, 인문학박물관 학예실장, 사무소 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됐으며, 1999년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 여성미학의 사회사》(사계절), 《시선의 정치》(시지락),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 등을 펴냈다.

Kim shin’s design essay 1

‘누끼’ 사회

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어떡하다 보니 방송 출연을 하게 됐다. 어떤 공방을 찾아가 제작 과정을 촬영하는 거다. PD가 오더니 ‘누끼’로 간다고 한다. ‘누끼!’ 잡지 밥 좀 먹은 나도 누끼는 좀 아는데. 그 PD가 방송 촬영에서 누끼는 어떤 과정을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라 나중에 편집할 때 순서를 맞추고 일단 되는대로 찍는 거라고 설명해준다. 잡지 편집에서는 사진 속 대상을 가위로 오려내듯 따내서 배경을 날려버리는 걸 뜻한다.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거 같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하다. 방송이든 인쇄 미디어든 중요한 건 최종 결과물이다. 어떻게 촬영하든 최종 결과물이 대중에게 어색하지 않고 이해할 만하면 된다. 누끼란 결국 맥락을 제거하는 것이 아닐까.
방송에서는 어떻게 촬영했든 최종 편집에서 그 흐름이 자연스러우면 된다. 일단 많은 내용을 찍어서 재료를 풍부하게 만든 뒤 취사선택하고 순서를 좀 바꿔주면 얼마든지 매끄러운 이야기와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누끼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악마의 편집’을 가능케 하는 건 바로 이런 식으로 그 복잡한 맥락을 제거해서 메시지를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편집에서 누끼란 특정 피사체만을 따로 떼어내 배경과 분리함으로써 그 피사체의 사회적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전쟁터 속 군인도 누끼 따버리면 평온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누끼의 또 다른 목적은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복잡한 배경을 제거하면 피사체는 눈에 더욱 띄게 마련이다. 스튜디오에서 모델들은 늘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 벽면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누끼 따기 쉽게 말이다. 패션 잡지 표지 속 여신들을 보라. 아무것도 없는 흰색 바탕 위에 누끼 따진 상태로 하얀색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고 있지 않은가. 이는 마치 미술관의 흰색 벽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과 같은 것이다. 예술의 탄생 자체가 바로 이 누끼의 과정이다. 인물화와 조각은 그것이 원래 놓인 위치에서 미술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즉 누끼 따짐으로써 그 사회적 기능과 역사적 맥락을 상실하고 말았다. 순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디자인은 미술관에 입성하고자 더욱 처참하게 누끼 따졌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이 1934년에 개최한 최초의 디자인 전시는 <기계미술전>이다. 이 전시에는 프로펠러, 볼 베어링, 스프링 등이 전시되었다. 그것들은 각각 비행기, 공장의 거대한 기계와 같은 기능적 맥락에서 벗어나 추상적 형태의 순수한 미적 가치만이 돋보이도록 철저하게 누끼 따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미술관에 들여놓는 일은 고상한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에게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누추한 사물에서 최소한의 미적 가치만을 누끼 따서 전시함으로써 자존심의 상처를 피할 수 있었다. 이는 무슨 뜻인가? 미술관에 전시된 디자인으로는 그 진정한 뜻을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능적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내용은 증발하고 오직 형식미만 남았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맥락을 제거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해도를 낮추거나 편협한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대하게 만들려고 하거나 누군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할 때 사람들은 그를 누끼 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나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 후보들의 TV토론을 보면서 그런 유혹에 빠진 후보를 보았다. 그는 청문회나 법정의 피고인에게 질문하듯 상대 후보에게 자꾸 “예” “아니오”로 답하라고 종용한다. 예, 아니오의 강요는 맥락 없는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누끼 따기형 질문이다. 상대 후보자가 대답을 회피하고 상황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은 맥락을 회복하려는 방어 행위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앞뒤 맥락을 다 알아야 한다. 누끼 딴 피사체의 배경을 살려야 하고, 문장의 앞 뒤를 충분히 들어야 하며, 사물이 위치한 생활 공간을 다 보아야 한다.
방송, 잡지, 책, 미술관 등 모든 미디어에서 누끼는 필수적이다. 미디어는 비싸기 때문이다. 지면, 시간, 공간이 부족하다. 모든 정보를 다 담을 수는 없다. 간추려야 한다. 미디어의 누끼 행위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대신 시청자, 독자, 관객도 모든 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정치적 대립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기보다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이 누끼 행위가 성행한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언제든지 나도 누끼 따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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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최초의 디자인 전시 <기계미술> 광경

[Art Book] 여기, 아티스트가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다

안희경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아트북스 2014

paris 743이 책은 2010년 5월부터 2011년 6월까지《월간미술》에 연재된 안희경 씨의 현대미술의 거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엮은 것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아네트 메사제, 윌리엄 켄트리지, 키키 스미스, 강익중, 제프 월, 무라카미 다카시 등 그 이름만으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는 본지에 연재되었던 원고를 바탕으로 내용과 사진을 보강하고, 인터뷰 형식의 글을 산문체로 풀어냈다. 당시 담당기자로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소감을 물었다. “쓸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견딜수록 양파처럼 벗겨져 나가는 세상에 대한 제 시각을 표현할 수 있어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안 씨는 인터뷰에 참여했던 작가 모두 이번 책 출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추가로 요청한 사진을 보내주었다며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몇몇 독자에게서 반응이 있었다며 이들이 책을 통해 자신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섭외과정에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 ‘미친’ 섭외력이 어디서 연유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제 소개를 비롯해 작품에 대한 제 의견이나 서구와 다른 한국적, 동양적 시각에 대한 이야기 등 되도록 많은 내용을 섭외 이메일에 담아요.” 진실된 마음을 최대한 전하려 노력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섭외과정은 그들이 세상에 대해 던진 메시지에 대한 안 씨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일링을 해도 그들과 만나는 약속을 잡기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메일을 보내고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이후 파리에서 그의 전시를 관람하던 중 우연히 마주쳤다고. 그 자리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찾아와서 인터뷰할 수 없냐는 제안을 받고 좌절했는데 이후 켄트리지가 뉴욕 전시를 열며 맨 처음 연락한 이가 바로 안 씨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난 작가에게서 느낀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만나기 전, <785시간>이라는 그녀의 공연을 봤어요. 그 무대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을 마주하며 상대가 스스로와 마주하도록 거울을 들어 비춰주는 사랑 가득한 치유사의 모습이었어요. 다들 마리나와 마주 앉았다 일어나면서 눈물을 쏟았죠. 마리나는 상대의 온 감정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한 몸으로 공감한 거예요.” 이런 안 씨의 공감은 기사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기사를 읽은 마리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나보다. “마리나의 스태프 한 명이 제게 귀띔하더군요. 마리나가《월간미술》 기사의 영역본 프린트를 흔들며, 모두에게 그랬대요. “나의 인터뷰 기사는 이래야 해”라고요. 하하.”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의 안부를 묻는 거장 8인과의 대화’이다. 말 그대로 작가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 경고 또는 제안 등을 의미하리라. 그들이 미술을 통해 세상에 하고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안 씨는 “작가 자신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일상,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목격하는 것들이 바로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아네트 메사제도 모든 아이디어는 그녀의 하루에서 온다 했어요. 강익중의 경우도 숙련된 그 시간을 지나서 무심하게, 굳이 하려 하지 않아도 되어지는 그런 작업으로 가려 한다고 했거든요.” 결국 예술가의 생활이 곧 작업인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기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문구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이다. 미술이, 작가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88세인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이 그러더라고요. 젊어서는 세상의 진보가 직선으로 뻗어간다고 믿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추의 운동(pendulum)’이라고. 결국 관성을 끊는, 그러니까 억압이 억압으로 되갚아지는 반복된 힘의 역사가 아니라 힘을 흡수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거라고요.” 간디가 그랬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그랬으며, 강익중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안 씨는 “‘변화’는 한 개인의 완전한 변화에서 출발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작가의 1차적 발언을 담은 책이다. 비평적 시선보다는 작가의 생각이 날것 그대로 실린 셈이다. “작가의 말은 작품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답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작가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제일 조심했던 부분이 ‘저는 당신의 작품이 이런 의미를 전달한다고 여깁니다. 맞죠?’라는 식의 접근이에요. 물론 비평의 영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작가의 말에 더 집중해서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봐요.“ 답을 미리 생각하고 그것에 작가의 생각을 끼워넣는 일종의 오독(誤讀)을 경계하자는 의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대신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작가를 물었다. “정말 만나고 싶은 분은 제임스 터렐입니다. 그리고 지금 런던 서펜타인갤러리에서 다시 3개월 쇼를 열고 있는 마리나요.”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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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9)미술품감정학-진위·가격감정과 위작의 세계
최병식 지음

미술비평, 경영, 박물관 정책 등을 연구해 온 저자가 해외를 직접 방문하고 7년간  감정 시스템과 판례 등 다수의 사례를 수집, 분석한 책. 미술품 감정의 기초개념부터 진위감정의 판단 방법과 과학적 분석의 세계적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동문선 438쪽·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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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1)이미지 인문학1
진중권 지음

디지털 생활 속에서 이미지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철학사의 근본적 단절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면서 변화하는 미학적 패러다임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인간에 대해 살펴본다.
천년의상상 336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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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3)기억하는 드로잉:서용선 1965-1982
김형숙 지음

인간과 자연, 역사와 사회의 관계를 표현하는 작가 서용선의 창작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는 책. 작가의 학생 시기 드로잉 자료를 기반으로 일기장, 작가노트, 가족 및 친구와의 인터뷰를 더해 예술가 서용선의 창조성의 원천을 탐색해본다.
교육과학사 380쪽·1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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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7)톡톡! 미술가에 말걸기
류한승, 박순영 지음

현재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35세 이하 젊은 작가 16인의 작업에 대한 솔직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작가중심, 사실 중심 인터뷰를 지향하며 작가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페도라 프레스 304쪽·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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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8)미술품 잔혹사
샌디 네언 지음/최규은 옮김

1994년 독일의 한 미술관에서 윌리엄 터너의 작품 2점이 사라졌다. 이 작품 회수 과정에 중심 역할을 한 저자가 미술계 뒷이야기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미술품 도난과 추적 과정을 생생한 문장으로 풀어내 미술에 문외한인 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미래의창 223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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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0)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코코 지음/이연석 옮김

그리스신화를 소개한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저자의 두 번째 명화 해설서. 성서의 내용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다. 그림 속 성경 이야기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일본인의 시각으로 해석한 독특한 해학이 돋보인다.
북폴리오 260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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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2)Great Art 시리즈3  세계의 디자인
필립 윌킨스 지음/박수철 옮김

1860년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인 디자인 명작 94점을 800여 장의 일러스트와 함께 연대순으로 소개한다.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기술 및 재료를 상세히 서술하여 지난 150년의 디자인 발전 과정의 핵심을 살펴본다.
시그마북스 256쪽·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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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2)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지음

미술작품들을 통해 경제학적, 경제사적 개념과 사건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저자는 서구의 성화에 묘사된 독점과 담합부터 경제 대공황과 뉴딜정책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을 중심으로 풀어낸 경제사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맥락을 짚어본다.
이다미디어 375쪽·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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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6)장미의 열반
김아타 지음

자연드로잉 프로젝트를 통해 구도자의 자세로 예술을 천착해 온 사진작가 김아타의 산문집. 작가의 철학적 고뇌와 일상 속에서 깊어지는 사유를 차분하고 일상적인 어조로 풀어냈다. 글 사이사이에 배치된 작가의 작품은 글의 깊이를 더한다.
박하 44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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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4)중국 고대미술사
이동민 지음

중국 미술사를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했다. 저자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대인들의 의식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고대 중국인의 관념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를 도기, 청동기, 무덤 벽화 등 17개의 장르로 나눠 설명한다.
수필과 비평사 299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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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5)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황인범 지음

도편수이자 목수인 저자가 서촌에 위치한 로버트 파우저의 ‘어락당’을 전통 한옥 맛을 살리면서 현대적 삶이 어우러지게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적었다. 각 건축요소의 개별적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한옥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돌베개 336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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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로고 디자인의 비밀
빌 가드너 지음/옮긴이 이희수

아이덴티티 개발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인 저자와 세계적명성의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노하우를 공개한다. 브랜드에 대한 리서치부터 아이디어 창조 과정과 시각적 구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3단계로 정리하여 설명한다.
아트인북 216쪽·32,000원

[Art Journal]

장욱진의 예술정신을 잇다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개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장욱진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기리는 미술관이 6월 13일 개관식을 갖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개관했다. 개관전은 이보다 이른 4월 29일에 개막했다.
현재 미술관은 유족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으로부터 기증 받은 장욱진의 벽화, 유화, 판화, 먹그림 등 23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개관전은 장욱진의 대표작 60점을 전시하는 <장욱진 명작 60선>과 기증작 중 21점을 선보이는 <기증소장품전> 그리고 <건축자료전>이다. <장욱진 명작 60선>은 하늘, 나무, 집, 사람의 네 가지 테마로 구성했다.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은 연미복을 입고 보리밭길을 걸어가는 신사 장욱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작은 크기(14.8×10.8cm)에도 불구하고 주목된다. 전시실에 작은 보리밭을 조성하여 관람객이 이 보리밭을 지나 자화상과 대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 눈에 띈다(오른쪽 사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 영구 설치되어 이번에 일반 관람객에게 처음 소개되는 두 벽화(<동물가족> 과    <식탁>)은 인간 장욱진의 삶과 작가로서 그가 견지한  태도가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으로. 생전에 작가가 주로 작업하던 덕소 화실 벽과 부엌에 그려진 벽화로 벽 자체를 떼어내 전시되었다.
최페레이라 건축(최성희, 로랑 페레이라)이 설계하여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한 미술관 외관은 장욱진의 <호작도>에 그려진 호랑이 형상을 본땄다. 이 건물은  한국적 향토미와 서구적 모더니즘을 접목해 토속적이면서 계산적인 구조의 장욱진 그림과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은 앞으로 장욱진의 예술정신을 이어가는 국내외 현대작가 주제기획전, 시민과 함께 하는 전시와 행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양주시립 미술창작스튜디오를 산하 기관으로 두고 신진작가들을 지원하는 777레지던스와 중견작가를 조망하는 장흥조각레지던스를 운영하며, 기획전, 오픈스튜디오를 포함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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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인물

하모니즘, 완전한 합일의 세계

김흥수 화백 별세

하모니즘 창시자’ 김흥수 화백이 6월 9일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영결식은 6월 13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조강훈 한국미술협회 이사장과 정관모 전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한국미술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박광진, 유희영, 허계 원로작가와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 김 화백이 생전 애착을 보였던 어린이 영재미술교실을 거쳐간 제자 60여 명 둥이 참석했다. 고인은 서울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되었다.
고인은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의 추상화를 대비해 그리는 등 상반된 두 면을 한 화면에 조화시켜 완전한 합일을 나타내는 독특한 조형주의(하모니즘) 화풍을 창시하여 국내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제지간으로 만난 부인 고 장수현(1962~2012) 김흥수미술관 관장과 4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1992년 부부의 연을 맺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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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한국 조각과 미술이론의 발전을 위해

‘2014 김세중조각상’  수상자 선정

김세중기념사업회(이사장 김남조)가 주최하는 ‘2014 김세중조각상’ 수상자로 본상에 정현, 청년조각상에 최수앙, 한국미술 저작 출판상에 김달진이 선정됐다. 김세중조각상은 한국 현대조각 제1세대 작가인 김세중(1928~1986)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올해로 28회를 맞이했다. 심사위원으로 조각상 부분은 이종각, 김인겸, 정형민, 박숙영, 김복기가 맡았고 저작출판상 부분은 이어령, 오광수, 이기웅, 최열이 참여했다.
본상 수상자 정현은 철도 침목, 도로포장용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 용도 폐기된 재료로 강한 생명력을 표현하며 문명과 인간실존의 문제를 다뤄왔다. 최수앙은 극사실적인 인체 조각으로 사회구조의 모순과 소모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김달진은 ‘김달진자료박물관’에서 간행한 출판 프로젝트로 학술적·공공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선정되었다. 시상식은 6월 23일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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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2)

‘광주정신’을 탐색하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

광주비엔날레 창립 20주년을 맞아 예술비엔날레 전시와 함께 대규모 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그후>를 개최한다. ‘달콤한 이슬’은 망자에 대한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감로도에서 빌린 것이다. 1980년 광주의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하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의 현장을 시각미술로서 풀어낸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광주정신’을 탐색해 나가기 위해 전시, 강연 시리즈, 퍼포먼스의 3개 방식으로 다각적 접근을 시도한다. 전시는 8월 8일부터 11월 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계속되며 ‘국가 폭력’을 주제로 광주와 유사한 경험을 지닌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의 작품을 연결한다. 또 저항미술 작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루쉰의 판화 100점을 선보인다. 강연 시리즈는 올해 1월부터 시작하여 10월까지 각 섹션의 해당 전문가와 시민이 활발한 토론을 진행하며 광주비엔날레 폐막식에 맞춰 광주발 매니페스토형태로 선포될 예정이다. 특별 프로젝트는 윤범모 책임큐레이터를 비롯해 총 8명의 협력 큐레이터 체계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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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1)

조각에 특화된 비엔날레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 열려

창원시가 주체하고 창원조각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제2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9월 25일부터 11월 9일까지 ‘달그림자’라는 주제로 열린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11개국의 작가 42팀이 참여하여 창동지역에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통적 조각의 의미를 넘어 퍼포먼스, 지역 아카이브, 시민참여형 작품을 선보여 조각 영역의 확장을 모색한다. 또한 창원에서 열리는 여러 지역 축제와의 연계를 통해 도시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전시 장소에 따라 차이를 주어 돝섬에서는 생태환경 복원 건축 조각을, 마산항 중앙부두에서는 공공조각과 시민참여미술을, 창원시립문신미술관에서는 예술성 높은 현대조각을, 창동 일대에서는 도시재생 및 공동체 미술 관련 작품을 각각 배치한다. 최태만 예술감독은 비엔날레 주제인 ‘달그림자’에 대해 “마산 합포구 영월대에서 착안한 것으로 일상 속에서 비치는 예술이라는 메타포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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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2)

익살 속에서 고독을 이야기하다

윤길현 개인전 <남자들의 소소한 이야기>

조각가 윤길현의 10번째 개인전이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남자들의 소소한 이야기>(6.18~23)라는 주제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현실을 전했다.
우리시대 남자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은유적 장치를 활용하고 있다.  “남자하면 외로움, 고독, 눈물이란 단어가 연상된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금전적 궁핍과 사랑에 서툴렀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서툰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에 등장하는 우산은 언제 거친 비바람에 찢어지고 망가져버릴지 모를 현실의 위태로운 상황을 이야기한다. 또한 책의 이미지는 힘겨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써내려간 과거의 일기처럼 일상 속에서 작가가 다져온 삶의 의지를 반영한다. 작품 속 남자들의 표정에는 외로움과 고단함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배어있다. 미묘한 시선과 웃음은 다소 익살스럽게도 보이지만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체득한 표정으로 이해된다.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번 전시는 남자들의 삶의 여정에 대한 작가의 수다라 하겠다. 삶의 무게를 수용하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 남자의 모습을 익살과 해학이 깃든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작가 윤길현은 전주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KIAF, 화랑미술제, 지붕전, 전주조각회전, 미술관은 놀이터전 등 다수의 기획 초대전에 참여하였다. 전주=최정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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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의 변화

오광수 운영위원장 사퇴

전시감독 선정 문제로 논란이 있어왔던 부산비엔날레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6월 20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8월 부임한 오 위원장은 당시 전시감독 선정 투표에서 전시기획자 김성연이 1위로 나오자 2위 득표자인 프랑스 기획자 올리비에 케플랑과 공동감독을 하라고 김씨에게 요구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김성연의 공동감독체제 거부와 문화단체의 반발로 공동감독 진행은 무산되었고 미술계 및 부산의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오 위원장 사퇴 요구가 잇따랐다.
한편 부산비엔날레의 비민주적인 운영과 불공정한 감독 선정을 문제 삼으며 국내 및 세계적으로 보이콧 운동을 전개 중인 부산문화연대 측은 오광수 위원장 사의발표 이후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혁신 의지를 분명히 하고 개혁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보이콧 운동을 철회할 생각이 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부산=김은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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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3)

장애미술을 위한 신호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

<제1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가 6월 6일부터 14일까지 문화역서울284 전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장애인과 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개선 및 대중화와 장애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들 작품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88명의 장애작가의 작품이 22개 갤러리와 협력해 소개됐으며, 장애작가와 비장애작가의 콜라보레이션 전시도 선보였다.
이번 행사에는 총 1,577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아트페어를 통해 총 11점, 경매를 통해 총 27점이 판매됐다. 장애인창작아트페어는 이번 행사를 발판으로 타 아트페어와 차별화된 성격을 견지해 미술분야의 다양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장애인 미술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역량있는 작가 발굴에 계속적으로 기여할 계획이다. 김최은영 예술감독은 “장애인 미술 사상 국내 최초로 개최된 이번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반작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고 문화역서울284의 틈새 공간 곳곳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자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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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3_민중미술심포지움

민중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열다

민중미술 2014 잠수함 속의 토끼전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현실 인식과 사회발언을 현재 우리 시대의 문제로 제기 한 기획전시가 열렸다. 2014 민중미술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민중미술 2014 잠수함 속의 토끼전>(6.10~7.20)이 그것으로 부산의 원도심 지역 일대 갤러리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갤러리, 스페이스 닻, 미부아트센터 등에서 전시가 열리며 기획전시 외에도 민중미술 심포지엄, 홍성담 작가와의 만남, 미술관기행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민주공원전시실에서는 홍성담 작가 특별전이 열렸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홍성담 기획전으로 작가는 동북아시아 역사문제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룬 <야스쿠니의 미망> 연작 50여 점을 선보인다. 부산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에서는 강영민, 낸시랭 등 팝아트 작가들이 참여한 ‘팝아트와 친구들의 위장취업’,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갤러리와 스페이스 닻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들’이라는 타이틀로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민중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보여준다. 부산=김은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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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 (1)

한국과 이집트 여가수의 만남

광주시립미술관 중동현대미술특별전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겪은 한국과 이집트의 여가수 이난영과 움쿨숨(Oum Kulthoum)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오는 7월 13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국내 최초 아랍 주제 대형전시인 중동현대미술특별전 <상실과 사랑의 노래전>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두 여가수의 가상만남을 통해 ‘상실과 사랑’이라는 한국과 아랍의 공통된 정서를 현대미술로 표현했다. 이란 출신 세계적인 예술영화감독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 <2013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 대표작가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등을 비롯해 중동지역 작가 18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샘 바더윌(Sam Barda-ouil·레바논)과 틸 펠라스(Till Fellrath·독일)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지난 2010년 아랍의 재스민 혁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이난영과 이집트의 국민가수 움쿨숨을 불러들였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전시 중간 이난영과 움쿨숨 두 가수의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더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시장에 들어서면 사진 속 움쿨숨이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는 <Ruins in Space>와 이난영과 움쿨숨의 노래 영상이 교차적으로 상영되는 전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참여작가 가운데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는 이란 출신 쉬린 네샤트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쉬린 네샤트는 미술가 겸 영화감독으로 <1999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00 광주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9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번 광주전에서 선보이는 비디오 설치작품 <격동(Turbluent)>(1998)은 명확하게 이분법적인 거대한 흑백 대비와 사운드를 통해 이슬람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젠더와 권력이라는 주제를 묵직하게 제시하고 있다. 베이루트 출신인 레이드 야신(Raed Yassin)의 <Ruins in Space>(2014)는 완전히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두 명의 무희를 ‘우주’라는 낡은 위성전파를 통해 연결시켜 공간을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박진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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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지 (1)

페리지 홀 앤 갤러리(Perigee Hall&Gallery) 개관

음악과 미술로 거리를 좁히다

페리지갤러리가 5월 26일 서울 서초동의 KH바텍 사옥에  개관했다. 2013년 5월 음악연주공간 페리지홀을 오픈한 지 약 1년 만이다. 김종숙 KH바텍 사회공헌(CSR) 본부장은 “중견작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공간으로 전시장을 운영할 것”이라며 “40대 작가를 중심으로 중견작가 전시를 꾸준히 진행하겠다”고 갤러리의 계획을 밝혔다. 페리지는 서로 다른 궤도를 돌고 있는 지구와 달이 가장 가까워지는 근지점이란 뜻으로 음악, 미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자 이름 붙였다. 페리지 홀 앤 갤러리는 기존의 틀에 박힌 형식을 깨고 열린 예술공간을 추구한다. 개관전은 김기라의 개인전 <마지막 잎새>(아래 사진)로 7월 31일까지 열린다. 공연장에 비해 전시공간이 작은 편이라 1층 로비와 홀까지 전시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 중이다. 이후에는 권오상,  홍경택 작가의 전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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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갤러리 (1)

갤러리 온유 개관

지역주민의 열린 사랑방

경기도 안양의 한 병원건물 지하에 갤러리온유가문을 열었다. 문화예술 기반이 취약한 지역사회에 전시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게 한다는 취지로  4월 10일 세워졌다. 임산희 대표는 두 달여간 갤러리를 운영하다보니 주민들이 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것 같다”며 ”다양한 행사를 통해 갤러리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티 클라스, 벼룩시장 등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해왔으며 앞으로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보통 갤러리의 휴관일이 월요일 것과 달리 이곳은 화요일과 수요일 휴관한다. 월요일에 환자가 가장 많이 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병원에 들른 환자들이 전시를 통해 잠깐이나마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바라는 갤러리의 운영철학이 담겨있다. 현재 <송필용, 박성태, 최철의 3인 (6.19~7.28)이 열리고 있고, 8월에는 허명욱 작가의 사진전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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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의 공익적 활용을 위한 첫걸음을 떼다

가나문화재단,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사재로 출범

DF2B0143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사재 3억 원을 털어 가나문화재단(이사장 김형국)을 설립했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은 20여 년간 수집한 230여 점의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을 기증하고 매년 3억~5억 원으로 추산되는 재단운영비도 출연키로 했다. 화랑주가 공익성을 바탕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해외에선 전례가 꽤 있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바이엘러미술관이나 프랑스의 매그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재단 측은 앞으로 레지던시, 전시, 출판, 교육 및 홍보, 그리고 기금마련과 후원회 구성을 위한 기타 부대사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중장기 사업으로 가나현대미술관(가칭)을 건립하기로 했다.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을 지낸 김형국 초대 이사장(사진)은 “이번에 기증된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중에는 우리 근현대미술사에 남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작품도 있다”며 “올해 연말쯤 기증작 중 일부와 오윤, 정종여 등의 미공개 작품을 발굴하여 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재단설립이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구비되었으나 소프트웨어가 부재한  우리 공공미술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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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3)

예술원의 어제와 오늘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주년 기념전 열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년을 기념해 <어제와 오늘전>을 4월 17일부터 7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했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우리나라 예술의 향상과 발전을 도모하고 예술가를 우대하기 위해 1954년 문을 열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예술원은 한국 미술계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우리 화단의 맥을 이어왔으며, 오늘날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1979년부터 매년 근현대미술사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미술전을 통해 한국미술 발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왔다.
이번 전시는 예술원 미술분과 작고 회원 35명과 현 회원 22명의 대표작품 79점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의 유서 깊은 전통을 계승하는 전시이자,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이다. 또한, 대한민국예술원 60년사와 작가들을 예우하고 축하하는 미술계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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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3)

박서보의 삶을 파헤치다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 발간

싱가포르 출판사 booksactually에서 작가 박서보의 삶과 예술을 연대기적으로 짚어낸 책,
《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2013)를 발간했다. 이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1980년대 이후의 삶과 작업 일대기를 당시 있었던 굵직한 사건, 행사, 전시 이미지와 젊은시절의 인물사진과 함께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 케이트 림     (임연기)은 박서보와 심도있는 인터뷰를 수차 진행했으며 작가의 말을 바탕으로 그의 젊은시절을 독자에게 가감없이 전한다. 영문으로 발간되어 국제 미술시장에 박서보를 알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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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15)

자금성의 레드를 말하다

사진가 송영숙, 《THE RED》 발간

자신만의 스타일로 폴라로이드 프로세스를 완성한 작가 송영숙이 1998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던    <송영숙 사진전> 전시작을 비롯해 당시에 촬영한 폴라로이드 원본을 중심으로 구성한 사진집         《    THE RED》가 출간되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자금성의 모습을 재해석한 53점의 이미지를 작가 주명덕이 선정해 기획 편집하고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문화비평가 홍가이의 글이 실렸다. 한편 이 책은 가현문화재단이 사진 출판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1979년부터 사진 출판을 선도해온 도서출판 시각을 인수한 후 발간한 첫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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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술3

신미술회 창립 40주년 맞아

<제61회 신미술회전>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신미술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제61회 신미술회전>이 열렸다. 신미술회(회장 이승환)는 1974년 2월 설립된 한국신미술회를 모태로 하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창립전을 시작으로 한국 구상미술을 주도해왔다. 이러한 토대에는 당시 한국구상미술의 대표 작가인 박득순 김창락 김인승 안재후 등 창립회원의 역할이 컸다. 신미술회는 프랑스의 쇼몽시와 캐나다의 토론토 초대전을 비롯한 해외 초대전과 부산, 대구, 광주, 김천 등 각 지역의 미술관과 유명 갤러리 초대전을 통해 한국 구상미술계 발전을 촉진하는 데 앞장서왔다. 현재 8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며 회원 각자가 왕성한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