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오완석

전시장 프로필

“나의 관심 주제는 ‘0과 1’, ‘+ -‘, ‘육체와 정신’, ‘직전과 경계’를 통해 바라본 있음과 없음 이다. 작업방식은 평면에서 형상을 오리거나, zero base 퍼포먼스를 하고, 타 작가의 다음 작품에 크기대로 케이스를 만들고, 포장된 상자를 뒤집어서 그것이 가진 외부를 포장한다.”
– 오완석

공간을 만들다, 사유하다 그리고 살피다

“작업은 장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완석 작가에게 작업에 대한 정의를 부탁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대뜸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그의 작업이 개념미술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형적 의미보다는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작품의 요소 주변을 거닐면서 그 사이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하기에 그랬다. 따라서 오 작가에게 관람객의 반응과 사유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오 작가가 말을 이었다. “이는 지리적 위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 위치 같은 것입니다. 이 심리적 위치를 기본으로 하여 ‘있음’과 ‘없음’이라는 맥락으로 인식이 확장되는 환경을 만들면, 두 발로 서 있거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처럼 다양한 가능성으로 ‘생각을 만드는 장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을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관객과 장소가 만나서 인식이 확장되는 환경을 작업합니다.”
오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지각되는 공간과 그 안에 직접 들어섬으로써 새로이 생성되는 공간과 개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난감함, 당황스러움 등이 예상됐다. “물론, 관객의 반응, 저도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말은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거나 유도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2012년 작, <중요한 생각만 하는 네모>의 경우 대전에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씨에서 전시에 앞서 작가 9명을 대상으로 미리 실험을 했습니다. 전시장 바닥에 실을 네모모양으로 펼쳐 놓고 중요한 생각을 하는 곳으로 지정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서 있는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나오죠. 실험은 한 시간 정도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며 욕하는 사람, 등을 떠밀어도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며 화이트홀이라고 말하는 사람, 시덥지 않게 보는 사람, 들어갔다가 좋지 않은 기억이 생각났다며 실을 헝크러뜨린 사람 등 다양했습니다.” 작가 자신도 실험 대상이었는데 네모 안에 들어가 앉아있거나 왠지 모르게 그 위를 넘어가게 되지 않고 주위를 돌아가게 되었다고. 이 작업은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이 전시공간과 유리된, 그러나 연약한 재료로 만들어진 경계를 넘어 완전히 다른 공간임을 인식할 때 벌어지는 현상을 경험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 <case>를 대상으로 벽면에 “ __가(이) 작품을 만든다면 그 크기는 _×_×_cm이다.”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관객이 사이즈를 적어 내게 했다. 관객이 써낸 사이즈에 맞는 상자를 제작, 전시장에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대부분이 숫자였지만 가끔 “거짓말로 치수를 대답했다”, “난 글 쓰는 사람이다”, “인격을 담는다” 등의 대답도 있었다고. 미술에 대한 상상을 유도하고, 작품 제작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끔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case>를 보고 머릿속에 어떤 형상을 떠올린다는 의미는 새로운 무엇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비슷한, 존재하는 무엇을 떠올린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술에서 ‘창작’이, ‘관념의 형상화’가 바로 이러한 내용이 아닐까? 공감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저 또한 이 작업을 두고 미술 그 자체의 시스템을 작업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크기를 정확히 하는 것은 이 작업에서 중요하지 않은 작은 부분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작업으로 펼쳐놓는 작가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현실의 생활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 “전시장에 작업이 올라가는 것 자체로 작품이 팔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시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마음에 불안감이 듭니다.” 이 불안감은 현재 우리 미술시장과 문화예술 풍토에서 작가가 극복하기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올해 오완석 작가가 이 불안감을 극복하는 과정은 하반기에 대전 쉐마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오완석은 1983년 태어났다. 충남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2013년 카페 안도르에서 첫 개인전 <0 + – -0>을 열었다. 또한 <닫힌 스튜디오>(스페이스 씨, 2012), <집 그리고 길>(대전시립미술관, 2013), <흔들리는 경계>(테미예술창작센터, 2014), <빛2014, 하정웅 청년작가초대전>(광주시립미술관, 2014) 등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4 하정웅 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전에서 작업하고 있다.

36.5 _ metronome sound, objet _ 영상설치 _ 2013

< 36.5 > metronome sound, objet 영상설치 2013

 

CRITIC 한반도 오감도

아르코미술관 3.12~5.10

 

강성원 미학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반도 오감도> 귀국전이 열렸다. 귀국전만을 보고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부족할 수 있지만, 한반도의 ‘근대적 일상’과 관련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실제 살아가는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낯선 전시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쉬워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귀국전을 보고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어서 다른 국가관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귀국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 지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번 건축전 총감독인 렘 쿨하스가 국가관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건축에서의 ‘근대성의 흡수:1914~2014’ 문제였다. 이 주제로 그는 “우리는 어떻게 살기 원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관 커미셔너인 조민석은 “계속 앞만 보고 질주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 공회전하고 있는 현재의 전 지구적 문화상황에서는 매우 시기적절한 장치였다”며,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계속되는 반목 정치는 해묵은 망령과 편견,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낳았다. 너무 많은 경우 남북한이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단순하게 편향된 모습으로 그려져 한반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내재한 가능성과 복합성을 보지 못하게 했다. 한국관은 건축의 눈을 통해 남북한의 일상적인 공간과 영웅적인 기념비들을 새로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민석은 이 전시 또한 공회전으로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렘 쿨하스가 던진 과제이기도 했기에, 이 전시를 정치적으로 야심찬 기획전이 되게끔 구상했다. 그러면서 ‘근대성의 흡수’ 문제를 남북한 공동전시로 풀고자 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북한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정이 났고 전시는 다르게 준비됐다. 결국 시인 이상의 <오감도>처럼 “건축관 구성도 얼기설기 파편적일 수밖에 없는 자료들을 통해” 하게 된다. 큐레이터들은 미친 듯이 북한 건축 자료를 리서치할 수 밖에 없게 됐는데, 어찌됐건 배형민 큐레이터의 냉철함으로 리서치의 광기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북한문화에 대해 특별한 공감으로 지속적 관심을 가졌던 전 세계 북한 연구자들의 자료를 거의 전부 리서치했고, 의도한바 전시내용을 얼마만큼 풍부히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큐레이터들의 종합평가를 거쳐 자료가 전시 구성물로 들어왔다. 이들 큐레이터의 자료에 대한 평가, 공감 능력이 이 전시의 백미인데, 북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보편적인 지성의 수준에서 볼 때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연구들에 대해 편견 없이 제대로 된 분별력으로 구분해냈고, 자료들 하나하나가 전시 전체에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일정한 ‘의미화’로 매개될 수 있도록 최선의 협업과 판단의 구체성, 집중력을 발휘해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기왕의 자료로 부족할 경우 새롭게 전시 콘텐츠들을 주문, 제작했는데, 이때도 큐레이터들이 요구한 정치적 문화적 가이드라인이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 내용은 이중의 서사층위로 구성돼있다. 2개의 층위 모두 패치워크(깁기)로,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방식이며, 하부 층위는 남북한의 일상적 공간(건축)에서 근대성 흡수를 향해 나아가는 ‘사건’들에 대한 조감적 서사이다. 상부 층위는 남과 북이 지녀온 근대성의 고민들을 시선의 동일 지평에서 보고자 하는 ‘노력’의 서사로 구성했다. 이 이중의 층위 속에 북한 건축가의 부재를 대체할 패치워크로 수집, 제작된 자료들이 우연적으로 연계돼 있지만 ‘리서치 인 액션’(Research in Action)이라는 심사평에서도 보이듯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남북한의 ‘근대적 생활의 고투에 담긴 진정성’이 새로운 ‘의미의 성좌’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남북한이 각각 다른 설계로 근대적 삶을 계획했지만, 이 삶들은 각각이 고투의 진정성을 지니고 헤쳐 온 삶이며, 이것이 한반도 근대의 얼굴이었다는 ‘공감적 사고’에 대한 요청이 이 전시가 담아낸 비전의 의미로 나타난다.
전시물 각각의 상징성과 알레고리는 전시 구성에 메타포로 얽혀들며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콘텍스트의 일부분을 형성한다. 그래서 남북한이 근대성을 흡수해온 모양새 (생활의 요구와 의미)는 각 자료들 속에서 개인의 특별한 경험으로 어른거리거나 동시에 전체가 하나인 ‘근대라는 강가의 삶’이 그려져 한반도의 근대적 삶이 표현된다.
<한반도 오감도전>에는 이러한 역사가 향하는, 이 강의 양안에서 내달리는 인간의 삶의 애끓는 목적에 대한 비난도, 삶의 목적이 진정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강경한 언급도 없다. 하지만 전시는 남북한 각각의 삶에 대한 조감적 공감에 바탕해 ‘근대적 인생’의 이름으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용서할 수 있는 ‘인간적 근거’를 찾아 나섰다. 남북한의 다름은, 한국전쟁은, 근대성의 흡수라는 거대한 동아시아적 혼란한 역사의 일부요, 거기서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각자의 터전에서 과제가 있었고, 이런 특수한 역사적 경험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도록 했다. 이 의지가 전시미학으로 적정하게 제대로 표현됐다.
“이러한 거대한 역학 속에서 남한과 북한은 각각 현대사의 신화를 창조했다.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지구상 최후의 공산국가이며, 이상사회임을 자처한다. 남한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강국으로 눈부시게 도약한 지난 세기 최고의 성공신화를 일궈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분명 모종의 진실이 있다.”
배형민 큐레이터의 이 말대로 <한반도 오감도전>은 모종의 ‘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전시는 특정한 정치적 해석을 주입하지 않고, 근대성의 역사가 울림으로, 마음으로 전달되도록 우리 삶의 심금의 저 밑바닥을 두드리며, 거기 희뿌옇게 가라앉은 진실을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내는 방법으로 우리의 공감능력을 일깨운다.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이상하지만 담대한’ 미덕이다. 전시 공간 한가운데 배치된, 전시도록 맨 중간 페이지에 들어간, 도쿄 UIA 콘퍼런스(1980) 후 열린 남북한 건축가들의 합동 송별파티 사진 한 장은 이 전시구성과 전시물의 서사가 추구하는 ‘의미’를 응축한다. 배형민은 “<한반도 오감도>는 이상의 <오감도>와 한국관의 탄생을 통해 미완의 역사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상에서 김수근, 김석철, 그리고 조민석까지 건축에 대한 열망의 고리를 이어 모종의 역사적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전시 ‘프롤로그’에서 ‘삶의 재건’, ‘모뉴멘트’ 그리고 ‘경계’에 이르는 길은 근대성을 향한, 근대성의 흡수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생활상의 동경과 인간적 고뇌의 오감도요, 남북한에서의 저 지난 삶에 대한 그저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을 위해, 근대성에 내재된 메커닉한 추상성과 죽음 같은 긴장관계들이 ‘리서치 인 액션’으로 탐색됐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말하고 싶은 큐레이터들의 ‘의지’의 강렬함과 진정성으로 인해 인간이 집요하게 목적을 실현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서블라임’(Sublime)의 후광이 전시 자료들 위로 떠오른다.
큐레이터들의 이런 정신은 그간 남북한의 공동체적 삶을 위해 노력해왔던 다양한 국내외의 관심과 탐구, 행동의 역사를 전시 콘텐츠의 중심축으로, 즉 근대 문화사의 내밀한 중심계보로 성공적으로 연계하고 있으며, 확고하고 탁월한 안목에 의해 ‘사건’(남북한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사실들, 결과물들)의 성격이 지닌 역사철학에 대한 공감적 구별을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출품된 문훈의 <샤면 해체주의>에서 보듯 실제로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사실들 간의 일종의 연금술적 미학적 조화도 이끌어냈다. 내용과 형식에서 절합적이되 정신에서 일관된 비전을 놓치지 않고 전시 전체에 투영한, 그래서 클래식한 전시였다.
총감독이 “비엔날레라는 새 기계를 통해서 새 가치를 만들자”라고 밝혔듯, 비엔날레라는 대형 행사의 인류사적 의미는 어떠한 구체적 이해관계도 전제하지 않은,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의 지원과 정치적 배려가 공공선의 발전을 위해 주어진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때 비엔날레의 기획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전시 조직자의 인문적 자질과 전시내용의 공공적 질이다. 그래야 비엔날레는 성공한다. 비엔날레와 비엔날레 기획은 그 자체로 예술이요 인문학이다. 이번 <한반도 오감도>는 이러한 비엔날레 전시가치를 정공법으로 계승한 유니크한 전시이다.

위 사진가 신경섭(왼쪽 벽면)이 촬영한 전후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오른쪽페이지 사진, 회화, 영상, 건축모형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됐다

CRITIC 최헌기 CUI XIANJI 1994-2015

성곡미술관 3.20~5.31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작업을 볼 때 작가의 개인사를 얼마나 고려해야 하는가. 이때 작가의 삶에 미치는 사회, 정치적 영향은 어떠한가. 사회의 체제에 따라 개인에게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에 큰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체제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정도가 크다. 중국 작가의 경우, 작가의 삶을 정치와 멀리 놓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작품에는 작가의 개인적 표현 및 취향보다 사회에 대한 내용이 많다.
1962년 태생의 최헌기는 중국 작가이나 한국인이기도 한 이산(離散) 작가이다. 두 문화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체험을 표현한다. 소수민족이 겪는 정체성 갈등, 보이지 않는 구조적 불이익과 그에 대한 저항, 사회주의 교육과 그 이념적 혼란, 전통에의 향수와 급변하는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등이 작품에 그대로 보인다. 한마디로, 체제가 강요하는 가치와 전통의 기준에 반발하는 저항정신과 도전의식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작품들이다.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그가 전시에서 다루는 작업의 스펙트럼과 재료는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 중국의 다변하는 정치상황과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전형적인 화가라 본다. 1990년대 추상화는 그가 가진 화가로서의 진면모를 잘 보여준다. 풍경에 기반을 둔 그의 추상화는 강렬하면서도 정제된 색채감, 대담한 마티에르, 그리고 역동적 필력과 함축된 시적 공간을 표현한다. 체제에 억압된 작가의 저항력과 대륙적 기질이 서구 모던아트의 새로운 기운을 만나 벌이는 격렬한 몸부림인 듯하다. 유화의 표면은 격정과 희열, 그리고 갈등과 화합을 무겁게 담아낸다.
이렇듯 회화의 물리적 조건을 지키던 작가가 그 한계를 전격 벗어난 것은 대략 2007년경부터다. 그림의 평면과 프레임을 이탈하는데 그 방식이 무척 저항적이며 공격적이다. 회화의 추상적인 붓터치는 직설적인 말 낙서(‘狂草’기법)가 되었고, 그림의 은유적 공간은 액자를 벗어난 실제 공간으로 확장됐다. 그림의 틀과 면을 탈출한 광기를 보듯, 그가 화가로서 지켜왔던 ‘감각 논리’가 자체 발동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대형 설치작인 <붉은 태양>(2013)에서 그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형상을 조각으로 만들고 낙서와 광초(狂草)를 허공에 갈겨놓았다.
그러한 일련의 실험적 설치작업은 본업이 화가인 최헌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림을 둘러싼, 그림에 대한, 그림을 위한 그의 발언일 뿐이다. 고전 액자를 오브제로 활용, 여러 겹의 투명 사천으로 감싸고 그 위에 물감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렇듯 반투명한 초상화를 통해 그가 보여주는 것은 난독의 정체성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 체제와 개인 사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관계는 그 작업이 나타내는 난독과 불통의 내용이다.
그렇기에 대규모의 작품 <설국>(2015)에서 회화로 돌아온 작가의 ‘발언’을 본다. 작가의 실험적 광기는 다시 회화 면에서 안정을 찾은 듯, 평면을 이탈한 뜻모를 광기의 낙서는 무채색의 함축적 붓질에 잦아들었다. 시끄러운 몸부림과 질러대던 고함은 회화의 평면공간에 안착해 묵직한 음성으로 공명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납득하려는 작가의 분투는 이제 미적 평안을 찾은 듯하다.

최헌기 <위대한 광초(Great Cursive Writing)> 혼합재료 2013

CRITIC 잭슨홍 Cherry Blossom

시청각 3.19~4.26

방혜진 미학
<Cherry Blossom>의 천태만상 인물들은 다양성과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유형으로 재빨리 분류된다. 구분점은 노동과 여가, 생산과 소비의 행동 양식. 철저히 차별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의 위용은 이 소박한 한옥 내에도 어김없이 무차별적이다.
그러나, 인형 눈을 붙이고 있는 뒷방 할아버지에게 애틋함이나 경의를 품고, 만화책을 끼고 누운 남자에게 분노나 경멸을 품을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의 현대판이라 할 이 군상을 도덕적 메시지로만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이 전시가 벗어나고자 하는) 폐쇄적 시야일 것이다. 단적으로, 이 일련의 인물 묘사는 명백히 노동의 경건함만큼이나 빈둥거림의 유쾌함을 예찬하고 있다.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왁자지껄 펼쳐진 이들을 공간 내 위치로 분류해보면 어떨까.
1) 한옥 실내에 자리 잡은 셋(할아버지, 슈퍼맨 복장 아이, 속옷 차림 남자), 2) 마당과 마루에 걸쳐, 즉 실내/실외의 전이 공간에 위치한 셋(야쿠르트 아줌마, 발버둥치는 아저씨, 운동복 차림의 여자), 3) 실외에 선 택배기사와 선녀. 여기에 번외로, 우리의 현실을 관망하고 있는, 저 높이 걸린 ‘조상님’의 사진.
시선의 문제는 사진 속 인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 공간을 재분배하는 것은, 언뜻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정교하게 인물들을 가로지르는 시선 교량술이다. 1)의 시선은 각자의 물건에 집중돼 있다. 세상은 그 물건 속에 매개된다. 2)의 시선은 실내/실외의 교차로 요약된다. 실내에 머무르려는 남자와 그를 끌어내려는 아줌마의 힘겨루기(어쩌면 그녀는 노인과 더불어 이 집안의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일지도 모른다)가 그렇듯. 또한 이 소동에는 무심히도, 다만 외부에서 당도할 상품을 반기는 젊은 여성이 그렇듯. 3) 한편 그녀의 시선을 받고 있는 택배기사는 정작 옥상에 강림한 선녀에 홀려 있다. 선녀의 눈길은 이 실외의 바깥, 한옥 너머로 향한다.
오래된 주택가 한옥에 터를 잡은 시청각은 그간 휴먼스케일의 건축물이 갖는 조건을 활용하거나 희석시키는 전시를 펼쳐왔다. 공간의 특성은 부득불 작품의 물리적 크기와 배치는 물론, 높낮이가 각기 다른 댓돌과 문지방을 통과하는 관객의 호흡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역과 건축물이 환기하는 역사성은 장소특정성을 시청각 전시의 전제이자 제한처럼 만들기도 했다. 바로 여기, 잭슨홍은 장소성을 확인하고 확장하여 역으로 공간을 회복시킨다. 최근 에르메스 매장의 디스플레이 작업에 주력해온 그는 (납작한 쇼윈도와 대구(對句)를 이루듯) 과장된 부피와 조야한 색채의 인물들을 시청각 공간에 디스플레이한다. 과도하게 구체적인 인물들이 진입하자, 즉 거주지로서의 성격이 극단에 이르자, 과밀한 공간은 도리어 여백의 추상성을 복구한다. 쇼윈도 디스플레이가 매장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위치한 채 외부의 행인들을 내부로 유인하거나 적어도 욕망하도록 만든다면, <Cherry Blossom>의 인물상은 시청각을 한옥 주택으로 읽으려 드는 관객에게 장소의 내밀함 너머를 그리도록 이끈다.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전시장 입구에 선 택배기사의 뒷모습으로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만든 것은 중요한 전략이었다. (노동/여가의 분류 역시, 그의 작업복이 출발점이었다.) 박스 하나를 들고 허겁지겁 들어선 외부인, 이 한옥의 일상이 낯선 이를 따라 집안 풍경을 둘러본 관객은 그의 시선이 머문 옥상으로 향한다. 바깥을 조망할 수 있는 곳. 바로 시청각의 첫 번째 전시에서 비가시적 인왕산을 향해 잭슨홍이 배를 띄웠던 그 장소 말이다.
<Cherry Blossom>이 구축하는 인물과 공간 역학은 현실과 미술계를 재조망하려는 시도가 되며, 잭슨홍과 시청각의 지정학이 된다.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치열한 망상이다.

위 시청각에서 열린 잭슨홍 개인전 <Cherry Blossom> 광경

CRITIC 김윤호 ㎡

아뜰리에 에르메스 4.4~5.31

신혜영 미술비평
김윤호의 사진작업은 어쩌면 줄곧 ‘풍경’과 ‘사진’에 관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근대화로 인해 빚어진 도시 외곽의 불균형한 풍경을 담아낸 초기작들에 이어, 사진 매체의 본성과 그 관례적 사용을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풀어낸 메타비평 작업들이 주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풍경사진’에 대해 말한다.
김윤호의 신작 <㎡>는 자연을 담은 풍경사진 연작이다. 넓게 펼쳐진 대지와 멀리 보이는 하늘이 2:1의 황금률(golden rule)에 따라 안정적으로 구성된 각 사진은 원근법에 충실한 전형적인 풍경화/풍경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선명한 람다프린트를 플렉시글라스에 압착해 완성한 매끈한 이미지는 별다른 보정이나 조작 없이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풍경사진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포착한 농업용 토지와 그 주변 풍경에 관한 사진들이다. 게다가 대부분 경작 중이거나 수확을 앞둔 풍요로운 모습이기보다는, 휴지기이거나 방치된 모습이어서 전반적으로 그 느낌은 황량하고 쓸쓸하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 농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었을 김윤호의 이 사진들은 언뜻 미국 서부지역의 개발상을 기록한 19세기 지형학 사진이나 이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양상으로 주변 풍경을 담아낸 1970년대 신지형학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김윤호의 <㎡>는 (신)지형학 사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지미술이나 개념미술 작가들처럼 자신의 의도에 따라 특정한 행위를 가한 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기서 그 행위는 사진 이미지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임의의 방식으로 1㎡의 면적을 표시하는 것으로, 각 사진에는 반사된 거울이나 나뭇가지, 끄나풀, 막대 같은 주변 사물들로 작가가 표시한 유사한 형태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더불어 결과물인 사진의 크기 역시 1㎡ 면적으로 일정하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작가는 – 논밭의 수확량을 기준으로 한 ‘마지기’나 ‘평’이 아닌 – 공시지가의 기준이 되는 ‘제곱미터(㎡)’를 강조함으로써, 농토마저 언제든지 다른 용도로 전환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난개발 현실을 암시한다. 무계획적인 도시 확산으로 수많은 농토가 이미 사라졌거나 앞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사진을 (수직으로) 걸지 않고 (수평으로) 눕힌 작가의 설치방식은 특히 흥미롭다. 개별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사진 속 농지의 공시지가를 좌대의 높이로 환산하여 그 위에 사진을 올려놓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높고 낮은 사진-좌대를 돌아다니면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동시에 지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리고 본래 농토가 지닌 생산적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부동산 가치, 그리고 그러한 부동산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예술적(미학적) 가치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중적인 역설을 강조한다. 수확량이 많은 농토의 가격이 반드시 높지 않은 것처럼, 비싼 땅이 반드시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사진’의 형식을 빌려 또 한 번 이 사회 이면의 불편한 ‘풍경’과 예술 매체로서의 ‘사진’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김윤호 개인전 <㎡> 광경

CRITIC 경현수 형태와 색채/ Debris Debris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4.4~24  신세계 아트월갤러리 1.26~4.19

오세원 독립 큐레이터
경현수의 회화는 대중적인 이미지나 컴퓨터 등의 일렉트로닉스를 바탕으로 추상의 표면적 양태를 모의 실험하던 네오 지오(Neo Geo, 신기하학적 개념주의 혹은 시뮬레이션아트)의 계보를 잇는다. 그는 도로, 위성 사진, 코스피지수의 변동 그래프 등과 같은 성장의 척도를 알려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작업에 의한 동시대적 표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는 풍요로운 과잉시대를 담아내던 뉴페인팅의 조형언어를 활용하는 것과는 달리 – 정확하게는 신자본주의 시장경기와 맞물려 돌아가는 ‘광택의 효과’의 허무함을 조금은 거부하는 – 의도된 몇 가지 장치를 추가했다. 그는 화면 내 복합적으로 보이는 변증적 요소들간 긴장을 조성하면서 과정의 수고와 진중함으로 내러티브의 단순성을 순화시키고 있다.
그는 회화의 평면이 가진 이중성, 가상과 현실의 이중성을 신기술적 표면과 함께 극도의 아날로그적 노동 집약과정을 통해 드러내고, 더하여 캔버스 작업화면의 미세한 차이들을 만들어 회화적 강렬함을 전달한다. 작가의 데이터화된 날카로운 직선과 편편하게 채색된 무결점 이미지기하학 화면은 일견 컴퓨터 드로잉의 산물 같지만, 아크릴물감의 물성 자체와 물리적 높낮이를 통해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밀도가 생겨 시각적 환영이 노출된다. 도시의 길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인상에 의한 미디어의 수치와 신기술적 형식은 흔적과 참조로만 남아있고, 직선의 냉정함과 면의 분할로 집요하게 재구성된 이미지 자체도 추상표현적 물성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그리고 매체에서 오는 원색적인 컬러감은 CMYK의 컴퓨터 색감을 쫓아가지만 온전하지 않고 의도로만 남는다. 결국 현실이 미디어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시 은폐하는 것이 증명된다.
최근 스페이스 윌링앤딜링과 신세계 아트월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경현수 작가의 작은 ‘역사’를 보여준다. 설치작업을 주로 하던 그가 디자인적인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다가 2010년 즈음부터 시작한 회화작업인, 경부고속도로와 데브리스, 그리고 코스피 연작을 어떻게 융합·진화시켜나가는지를 설명해준다. 경현수 작가가 주로 쓰는 조형적 방법은 해체 또는 파괴, 그리고 재구성이다. 코스피지수나 경부고속도로, 데브리스 연작을 보면 코스피 변동지수나 사소한 색 조각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해체되며, 재구성된다. 작가는 1년치의 코스피지수를 수집하고, 그래프 변동을 선과 색의 이진법 감성언어로 전환하며, ‘질리지 않는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신중히 ‘기다리는 수고’를 쏟아 붓는다. 이 모든 것은 어차피 캔버스 작업으로 전환되면서 흔적으로만 기능을 하고 사라질 소모품이다. 신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포용하며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가 데이터들을 재구성할 때는 ‘태고의 미’를 추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해체된 이미지들이 최초 레퍼런스가 되거나 또는 첫 이미지와 유사해지는 지점, 이미지 보편성 같은 난해한esoteric ‘미’의 지점을 찾아 미궁에 빠지는 수고를 기꺼이 해낸다. 그는 이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변증의 과정을 거치고,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최상’의 발색지점 찾기 및 ‘고르게 펴 바르기 신공’을 쌓기 같은 숙련된 행위를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작가는 일련의 치열한 자기만의 실천과정(practice)을 거치고 있고, 과잉경쟁을 벗어나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노동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의 즐거운 노동을 꿈꾸게 한다. 실천이 체화된 작가의 활동은 이제는 주춤거림이나 쉬어감은 있어도 멈춤은 없는 것이다.

위 경현수 <Debris_경부고속도로>(맨 왼쪽) 2015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광경

CRITIC 이은 나의 바다

갤러리 이도 3.25~4.5  갤러리 이듬 4.9~5.10

 

박현수 전 갤러리 잔다리 기획이사
회화를 전공한 이은은 도자를 매개로 자신의 언어를 찾는 작업의 문맥을 이끌어 왔다. 이번 전시는 벽의 파편, 언어의 파편들로 축적된 벽 작업으로 채워졌다. 작가는 전체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로서 온전한 하나의 개체들을 전체의 화면으로 이식했다. 색을 머금은 조각들은 화면을 구축하는 단위원소로 배치되거나 콘크리트 판에 박혀 벽의 일부가 되었다. 도자 조각에서부터 길가에서 채집된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조형적 단위체들은 화면 안에서 부조적 회화로서 새로운 전환의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중 <바다_기억> 시리즈는 도자 조각들을 전면 가득 빽빽이 배치함으로써 일정한 운동성이 느껴지는 추상적 패턴의 표피를 이뤄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수많은 조각의 이어짐으로 표면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구현되는 리듬은 회화적 텍스트로 읽힌다. 화면의 리듬과 질서는 표층을 구성하는 동질적 단위체 간의 접합면에 위치한 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선들로 더욱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위의 증식과 확장의 해석으로 유추되는 운동성으로 보여지기보다는 주어진 한계상황에 대한 긍정적 인지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된 시간 위에 덧씌워진 동일성의 굴레를 극복해가는 과정의 족적에 더욱 가깝다. 작가가 반복적 노동의 집적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계는 바로 분절된 소리와 같이 그 자체로는 의미를 생성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세상을 향한 하나의 문맥이 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때 경계를 상징하는 벽은 시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아닌 시공간이 만나 실체화되는 현실의 장이며 동시에 일상의 파편들이 충돌하고 간섭하는 치열한 생성의 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2013년부터 선보이는 문자시리즈는 <바다_기억> 작업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시도라고 하겠다. 바다시리즈의 반복적 행위가 가져다주는 리듬과 질서는 새로운 형태의 개체적 언어 조각으로 대치되었다. 이전의 단위원소 군집에 의한 추상적 표면은 보다 구체성을 띤 형태로 벽면을 구성했으며 조밀한 표층은 벗겨지고 마감되지 않은 메마른 콘크리트 벽체 위로 소리의 조각들이 자리 잡았다. 한글의 음소와 원형의 점은 문자작업에서 선택된 조각들이다. 음소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음운의 최소 단위이며 의미를 분화시키는 소리의 단위이다. 이 최소 단위들은 콘크리트 벽면 안에서 회화적 조형요소로서 배경과 함께 또 다른 텍스트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되찾아가는 지속적인 작업의 문맥은 회화적 텍스트를 함의한 콘크리트 벽면 작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실의 표피를 채웠다 벗겨내며 더듬어 발견되는 흔적을 찾아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행위는 삶의 지속을 위해 죽음을 반복하는 살아있는 것들의 순환적 구조와 닮아있다. 이러한 굴레를 긍정하며 무수한 파편들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모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미의 판 위에 언어로서 존재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시도는 세상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고 고유한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물음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부단한 반복을 통해 축적되어온 작가의 문맥들이 총체적인 자기인식의 장으로서 입체적인 접합을 포괄한 관계의 장을 향해 나아갈 것을 기대하며, 도자의 재료적 한계를 작업의 구조적 특이성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실현해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게 된다.

위 갤러리 이도에서 열린 이은의 개인전 광경

CRITIC 박대조 Where do we go now?

갤러리 나우 4.1~14

조관용 미술비평
박대조의 어린아이는 작품에서 어른과 대립하는 아이콘인가? <테러 2>(2008)나, <태안기름 유출>(2008) 등의 작품에서 어린아이는 폭력이나 사고로 인해 훼손된 자연을 무표정한 눈으로 직시하는 아이콘으로 비치지만, 실존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부조리한 삶의 양상과 대립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아이콘과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테러의 현장은 박대조의 작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기도>(2012)에서 두손모아 기도를 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나, <누구를 위하여>(2008)의 창백한 낯빛을 띤 유약한 모습에서 보듯이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하는 초인과도 같은 순진무구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나는 누구인가>(2012)에서 어린아이와 자연 풍경이 하나로 오버랩되고 <염원-트랜스페어런시>에서 어린아이와 도시 풍경이 하나로 오버랩되는 이미지에서 보듯이 어린아이와 자연 풍경은 동일한 실체이며, 또한 도시 풍경도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의미한다. 즉 어린아이의 실체는 인간과 자연 풍경이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노자가 말하는 “덕은 만물을 기르며, 덕을 두터이 지닌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으며, 음양의 조화가 완전한 상태가 된다”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에 <테러 2>나 <태안기름 유출>에서 보이는 무표정한 어린아이의 실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듯 박대조의 작업은 노장(老莊) 철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된 정신을 수묵화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먹과 한지는 <누구를 위하여>에서 보듯이 대리석에 음각과 채색으로 대체되거나, <염원>(2010)에서 혼합재료와 조명으로 대체된다. <염원-트랜스페어런시>에서 보듯이 입체렌즈와 배면조명과 색상변환장치를 통해 대체된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그의 작업에서 고형 물질인 대리석과 조명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물질인 빛을 통해 에너지에서 물질로, 물질에서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킴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합일 상태를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의 눈동자 렌즈는 마치 사진기의 렌즈를 연상시키며 한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향하게 한다.

위 박대조 <나는 누구인가> 비단에 채색, 배면조명, 색상변환장치 2012

CRITIC 김수자 Diary-Existence

금호미술관 4.2~12

이태호 미술비평, 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일기-존재(Diary-Existence)>라는 바느질 작품으로 유명한 김수자의 개인전이 지난 4월 2일부터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열렸다. 김수자의 이번 전시가 특히 의미가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지난 15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일상성(日常性)을 통한 존재(存在)’에 대한 의미를, 회고전 형식의 전시를 통해 집대성했다는 점에서였다. 마치 수틀에 자수를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놓듯이, 캔버스 위 바느질을 통해 작가가 십수년간 지속적으로 파고든 ‘일상성과 존재’에 대한 물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영감(靈感, inspiration)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탁기에서 옷가지를 꺼내다가 무심코 바라본 구겨진 한 장의 셔츠로부터, 인생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작가의 대표작 <Diary-Existence>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김수자의 작품을 접했을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여성성’이라는 느낌은 바로 ‘바느질’에서 연유할 것이다. 바느질은 여성성의 상징이자 초기 페미니즘 미술이 등장한 1970년대부터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이 시도했던 제작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여성과 여성미술이 타자로 인식되던 그 당시의 성차별 문화와 남성중심 화단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미술은 결국 대표적인 남성양식이었던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귀결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역할과 지위, 여성 개인의 자아문제 등 성적인 편견과 성역할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했다. 하지만 김수자 작품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바느질’은 여성성의 상징적인 행위로서 일정 부분 여성성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비판적인 의식이나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 등에 주목하는 것이 주요목적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바느질을 통해 드러난 김수자의 작품은 캔버스에 작업하는 행위 자체를 통한 물성(物性)의 발현이자 동시에 자아 발현의 공간, 삶과 인생의 흔적과 일상의 흔적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수자의 바느질은 오히려 더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작가만의 언어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수자의 바느질은 일상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뿐만이 아니라, ‘옷’이라는 객관적 실체와 ‘존재’라는 주관적 지각에 대한 명상언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배경의 붓질과 바느질, 물성과 정신이 공존하는 합일 공간으로서 김수자의 작품에는 작가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내면세계가 ‘옷’과 ‘의자’라는 조형성과 ‘바느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돼고 있다. 동물과 인간의 동작 변화를 사진으로 찍어 움직임을 체계화했던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로코모션(locomotion) 기법이나 눈속임 회화를 위한 일루전(illusion) 혹은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김수자의 바느질 기법은 촉각적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적 요소로서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치 마르셀 뒤샹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를 연상시키는 김수자의 작품들은 캔버스에 등장하는 환각적인 ‘옷’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동시성’이라는 개념뿐만이 아니라 공간을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했던 입체파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간의 동시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김수자에게 바느질을 통한 ‘옷’과 ‘의자’라는 조형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자 작품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주제이며 정신성의 발현과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김수자의 <Diary-Existence>에 나타난 셔츠 한 장에서 일상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 부재의 무거움이 존재와 부재 사이에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존재와 부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존재는 부재의 그림자이고 부재 역시 존재의 거울에 비친 불완전한 자아(自我)이자 동시에 영원한 타자(他者)이기 때문이다. 상반된 개념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쪽이 있어야만 다른 한쪽 역시 존재 가능한 상호보완적인 개념인 것이다.
‘인생(人生)은 존재와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던 작가 김수자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위 김수자 <Diary-Existence> 시리즈 혼합재료 2014

CURATOR’S VOICE Afterpiece 막후극

인사미술공간 3.27~5.1

예희정 독립 큐레이터
우리(남선우, 예희정, 최유은)는 2014년 인사미술공간(이하 인미공)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다. 어느 날 각자의 질문을 모아보다가 비슷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한 과거의 전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더듬더듬 알아갈 수 밖에 없음에 대해 얘기하던 날이었다. 선택적으로 기록·수집된 아카이브와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과 달라지는 기억을 참조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원전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우리는 미술 실천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의 현재 위치와 연결되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어떤 ‘계기’와 단절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해소하고자 흘러간 시간을 되짚고 의미를 복원하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전시의 일회성 때문에 기록과 기억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기록과 기억을 임의적으로 선택, 재구성함으로써 미래인-상대적인 차원에서-이 과거를 받아들이는 다양한 태도를 펼치고자 했다. 앞선 궤적을 이탈할 수 있는 일종의 ‘이어달리기’인 셈이다.
1층에 들어서면 이정자가 발굴한 <None-passbox>와 <Sextans>를 볼 수 있다. 창고와 에어컨을 가리던 미닫이 벽을 떼어 전시장 입구에 세웠고 정면의 가벽은 예각으로 절단해 열었다. 개관 이래 켜켜이 쌓였을 페인트와 못 자국도 벗기고 긁어냈다. 이 공간을 거쳐간 무수한 전시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 오직 개인의 신체적 활동에 의지해 과거를 추적한 것이다. 이 작업은 전시 중간에 복원되고 기록물의 형태로 변모해 마치 아카이브 전시처럼 재배치될 예정이다. 파트타임스위트는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신작 <한 개 열린 구멍>을 제작했다. 인미공의 아카이브를 선택적으로 수집, 촬영한 것을 새로 기록한 영상과 함께 편집한 비디오작업이다. 가까운 과거에 제도에 맞춰 행했던 실용적 행위를 되짚으며 이를 유산으로 삼은 동시대미술 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문한다.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은유하는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유리테이블은 전시를 철수하면서 나온 못 박힌 각목을 쌓아 만들어서 어설프고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들이부어져서 얽히고설키는 페인트는 뜻밖의 효과를 자아내며 이들이 짜는 ‘새로운 판’을 기대하게 만든다.
김민애와 이수성은 조각가가 겪는 현실적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시가 끝난 후에는 물리적으로 반드시 이동할 수밖에 없는, 본래의 존재 맥락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덩어리들이 그것이다. 김민애에게는 이전 전시 혹은 작업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오직 작가의 기억에만 의존해 예전 작업에 대한 상황적 문맥을 되짚고 싶었다. 작가는 반투명한 플라스틱 커튼에 자신의 첫 개인전 <익명풍경>(2008)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인쇄한 <너머, 장면>으로 답했다. 쉽게 읽을 수 없는 이 기억의 레이어들은 2층 공간을 가로지르며 이수성의 작업과 대면한다. 이수성은 일전에 다른 전시에서 ‘테크니션’으로서 만든 검정색 오벨리스크를 2014년 시청각 개인전의 입구에 세웠다. 과거의 작업을 다른 의미로 현재에 다시 안착시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전시가 끝나고 나면 볼륨이 상당한 작업들은 대부분 해체하는데 가끔 일부분만 떼내서 보관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실제로 보관하고 있었거나 혹은 제작 노트와 기억에 남아있던 이 기념물들을 조건 삼아 신작을 제작했다. 모든 작업의 제목에 ‘Mark II’가 붙은 이유다.
김진주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인미공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기록과 본인의 기억을 돌이켜서 이 기관의 과거 현장을 다시 펼쳐달라고 부탁했다. 문자화/이미지화되는 과정에서 탈락한 전시의 요소들을 리메이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재현, 계승되는 차원으로 읽히는 것을 원치 않았고, 기록과 기억의 유산을 곱씹으며 획득한 영감을 다른 이와 주고받을 수 있는 창작의 교환 가능성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관람객은 <기억하기의 권리를 위한 계약서>를 통해 작가의 중개로 기획자와 실제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옥상에 설치된 조각에는 화구와 술잔, 약숟가락이 붙어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낸다. 그것은 주변의 다른 소리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치 이곳에서 벌어지는 미술활동의 미미한 파동처럼. 이 작품의 제목은 <바람은 기억하고 잊는다> 이다.

위 이정자 <None-passbox> 벽면 자르기(각도 60도 범위), 혼합재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