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한반도 오감도

아르코미술관 3.12~5.10

 

강성원 미학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반도 오감도> 귀국전이 열렸다. 귀국전만을 보고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부족할 수 있지만, 한반도의 ‘근대적 일상’과 관련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실제 살아가는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낯선 전시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쉬워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귀국전을 보고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어서 다른 국가관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귀국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 지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번 건축전 총감독인 렘 쿨하스가 국가관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건축에서의 ‘근대성의 흡수:1914~2014’ 문제였다. 이 주제로 그는 “우리는 어떻게 살기 원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관 커미셔너인 조민석은 “계속 앞만 보고 질주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 공회전하고 있는 현재의 전 지구적 문화상황에서는 매우 시기적절한 장치였다”며,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계속되는 반목 정치는 해묵은 망령과 편견,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낳았다. 너무 많은 경우 남북한이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단순하게 편향된 모습으로 그려져 한반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내재한 가능성과 복합성을 보지 못하게 했다. 한국관은 건축의 눈을 통해 남북한의 일상적인 공간과 영웅적인 기념비들을 새로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민석은 이 전시 또한 공회전으로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렘 쿨하스가 던진 과제이기도 했기에, 이 전시를 정치적으로 야심찬 기획전이 되게끔 구상했다. 그러면서 ‘근대성의 흡수’ 문제를 남북한 공동전시로 풀고자 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북한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정이 났고 전시는 다르게 준비됐다. 결국 시인 이상의 <오감도>처럼 “건축관 구성도 얼기설기 파편적일 수밖에 없는 자료들을 통해” 하게 된다. 큐레이터들은 미친 듯이 북한 건축 자료를 리서치할 수 밖에 없게 됐는데, 어찌됐건 배형민 큐레이터의 냉철함으로 리서치의 광기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북한문화에 대해 특별한 공감으로 지속적 관심을 가졌던 전 세계 북한 연구자들의 자료를 거의 전부 리서치했고, 의도한바 전시내용을 얼마만큼 풍부히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큐레이터들의 종합평가를 거쳐 자료가 전시 구성물로 들어왔다. 이들 큐레이터의 자료에 대한 평가, 공감 능력이 이 전시의 백미인데, 북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보편적인 지성의 수준에서 볼 때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연구들에 대해 편견 없이 제대로 된 분별력으로 구분해냈고, 자료들 하나하나가 전시 전체에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일정한 ‘의미화’로 매개될 수 있도록 최선의 협업과 판단의 구체성, 집중력을 발휘해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기왕의 자료로 부족할 경우 새롭게 전시 콘텐츠들을 주문, 제작했는데, 이때도 큐레이터들이 요구한 정치적 문화적 가이드라인이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 내용은 이중의 서사층위로 구성돼있다. 2개의 층위 모두 패치워크(깁기)로,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방식이며, 하부 층위는 남북한의 일상적 공간(건축)에서 근대성 흡수를 향해 나아가는 ‘사건’들에 대한 조감적 서사이다. 상부 층위는 남과 북이 지녀온 근대성의 고민들을 시선의 동일 지평에서 보고자 하는 ‘노력’의 서사로 구성했다. 이 이중의 층위 속에 북한 건축가의 부재를 대체할 패치워크로 수집, 제작된 자료들이 우연적으로 연계돼 있지만 ‘리서치 인 액션’(Research in Action)이라는 심사평에서도 보이듯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남북한의 ‘근대적 생활의 고투에 담긴 진정성’이 새로운 ‘의미의 성좌’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남북한이 각각 다른 설계로 근대적 삶을 계획했지만, 이 삶들은 각각이 고투의 진정성을 지니고 헤쳐 온 삶이며, 이것이 한반도 근대의 얼굴이었다는 ‘공감적 사고’에 대한 요청이 이 전시가 담아낸 비전의 의미로 나타난다.
전시물 각각의 상징성과 알레고리는 전시 구성에 메타포로 얽혀들며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콘텍스트의 일부분을 형성한다. 그래서 남북한이 근대성을 흡수해온 모양새 (생활의 요구와 의미)는 각 자료들 속에서 개인의 특별한 경험으로 어른거리거나 동시에 전체가 하나인 ‘근대라는 강가의 삶’이 그려져 한반도의 근대적 삶이 표현된다.
<한반도 오감도전>에는 이러한 역사가 향하는, 이 강의 양안에서 내달리는 인간의 삶의 애끓는 목적에 대한 비난도, 삶의 목적이 진정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강경한 언급도 없다. 하지만 전시는 남북한 각각의 삶에 대한 조감적 공감에 바탕해 ‘근대적 인생’의 이름으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용서할 수 있는 ‘인간적 근거’를 찾아 나섰다. 남북한의 다름은, 한국전쟁은, 근대성의 흡수라는 거대한 동아시아적 혼란한 역사의 일부요, 거기서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각자의 터전에서 과제가 있었고, 이런 특수한 역사적 경험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도록 했다. 이 의지가 전시미학으로 적정하게 제대로 표현됐다.
“이러한 거대한 역학 속에서 남한과 북한은 각각 현대사의 신화를 창조했다.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지구상 최후의 공산국가이며, 이상사회임을 자처한다. 남한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강국으로 눈부시게 도약한 지난 세기 최고의 성공신화를 일궈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분명 모종의 진실이 있다.”
배형민 큐레이터의 이 말대로 <한반도 오감도전>은 모종의 ‘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전시는 특정한 정치적 해석을 주입하지 않고, 근대성의 역사가 울림으로, 마음으로 전달되도록 우리 삶의 심금의 저 밑바닥을 두드리며, 거기 희뿌옇게 가라앉은 진실을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내는 방법으로 우리의 공감능력을 일깨운다.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이상하지만 담대한’ 미덕이다. 전시 공간 한가운데 배치된, 전시도록 맨 중간 페이지에 들어간, 도쿄 UIA 콘퍼런스(1980) 후 열린 남북한 건축가들의 합동 송별파티 사진 한 장은 이 전시구성과 전시물의 서사가 추구하는 ‘의미’를 응축한다. 배형민은 “<한반도 오감도>는 이상의 <오감도>와 한국관의 탄생을 통해 미완의 역사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상에서 김수근, 김석철, 그리고 조민석까지 건축에 대한 열망의 고리를 이어 모종의 역사적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전시 ‘프롤로그’에서 ‘삶의 재건’, ‘모뉴멘트’ 그리고 ‘경계’에 이르는 길은 근대성을 향한, 근대성의 흡수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생활상의 동경과 인간적 고뇌의 오감도요, 남북한에서의 저 지난 삶에 대한 그저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을 위해, 근대성에 내재된 메커닉한 추상성과 죽음 같은 긴장관계들이 ‘리서치 인 액션’으로 탐색됐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말하고 싶은 큐레이터들의 ‘의지’의 강렬함과 진정성으로 인해 인간이 집요하게 목적을 실현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서블라임’(Sublime)의 후광이 전시 자료들 위로 떠오른다.
큐레이터들의 이런 정신은 그간 남북한의 공동체적 삶을 위해 노력해왔던 다양한 국내외의 관심과 탐구, 행동의 역사를 전시 콘텐츠의 중심축으로, 즉 근대 문화사의 내밀한 중심계보로 성공적으로 연계하고 있으며, 확고하고 탁월한 안목에 의해 ‘사건’(남북한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사실들, 결과물들)의 성격이 지닌 역사철학에 대한 공감적 구별을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출품된 문훈의 <샤면 해체주의>에서 보듯 실제로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사실들 간의 일종의 연금술적 미학적 조화도 이끌어냈다. 내용과 형식에서 절합적이되 정신에서 일관된 비전을 놓치지 않고 전시 전체에 투영한, 그래서 클래식한 전시였다.
총감독이 “비엔날레라는 새 기계를 통해서 새 가치를 만들자”라고 밝혔듯, 비엔날레라는 대형 행사의 인류사적 의미는 어떠한 구체적 이해관계도 전제하지 않은,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의 지원과 정치적 배려가 공공선의 발전을 위해 주어진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때 비엔날레의 기획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전시 조직자의 인문적 자질과 전시내용의 공공적 질이다. 그래야 비엔날레는 성공한다. 비엔날레와 비엔날레 기획은 그 자체로 예술이요 인문학이다. 이번 <한반도 오감도>는 이러한 비엔날레 전시가치를 정공법으로 계승한 유니크한 전시이다.

위 사진가 신경섭(왼쪽 벽면)이 촬영한 전후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오른쪽페이지 사진, 회화, 영상, 건축모형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