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전화위복의 기회로

지난해 10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불미스런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무려 8개월 이상 관장 공석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래도록 진행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당연히 (누가 됐던지) 절차에 따라 후임 관장이 부임하면 상처를 봉합하고 미술관을 조속히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했을 테니. 하지만 관장 임용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계의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체부는 6개월 걸린다던 공모기간에서 두 달이나 더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9일이 돼서야, “그 동안 진행되어 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채용절차와 관련하여,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공모 등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조 제5항)」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선발시험위원회가 추천한 채용 후보자 중에서 적격자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채용 후보자 중에서 채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한편, 문체부는 현재 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기획운영단장을 중심으로 미술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라는 짤막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며칠 후엔 문체부장관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밝힘으로써 미술계를 다시 한 번 혼돈에 빠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보낸다. 사실 우리는 서너 달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내용과 포맷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신임 관장 인터뷰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우리 편집부는 ‘침몰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인양하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가제(假題)로 정하고 앙케트를 실시했다. 결국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언수위를 낮추기는 했지만, 그 만큼 이번 사안을 아주 심각한 상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나온 김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침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문지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도 여러 통 받았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애꿎게 《월간미술》이 동네북 신세가 된 것 같았다. “멀쩡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왜 침몰했다고 단정하느냐” 또는 “관장이 없어도 오히려 미술관이 예전보다 더 잘 돌아 가더라”는 반론부터 “설문 내용이 편파적이고, 뭔가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설문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돼느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쾌해서 답변을 거부한다”는 불평불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런 상황자체가 쪽팔리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반면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답변 회신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미술인의 관점이 극명하게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우리는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나 뾰족한 묘수를 내놓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뻔하고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이런 문제는 누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적어도 《월간미술》 독자라면, 어느 때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앞날을 예의주시 해야 할 것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COLUMN

계층화에 감싸인 ‘이우환 공간’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전위적 작품과 사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관주의와 표현의 독재를 당연시하는 서구작가들의 태도와 달리 이우환은 사물을 사물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그들과 변별되는 지점을 자신의 세계로 승화시킨 성과를 거두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고 사물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풍요롭게 만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경직된 감성과 사유를 넘어서서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이우환 작업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1967년의 <관계항>과 오늘 부산시립미술관 앞 잔디밭 이우환의 <관계항>. 그리고 ‘이우환 공간’에 놓인 설치작업과 평면작업들은 과연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우환 공간’ 개막 전후로 쏟아진 온갖 이론들과 상찬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질케 폰 베르스부르트 발라베’의 저서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의 결과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나 천착의 결과를 읽지 않았거나 이우환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1967년 이후 그의 작품에선 별다른 변화를 목격하기 힘들다. 그 후의 시리즈 형식 평면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변화 없음을 두고 뭐라 한다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잘라 말하거나 위의 책이라도 읽기를 요구할 것인가. 그러나 작품은 책을 읽고 연구한 후에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장대로 정말 있는 그대로를 그 순간에 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대로 보라는 지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하고 그 말이 가진 의미 안에서 작품을 보게 하려 한다. 말하자면 그의 반복을 정당화하고 반복에서 보이는 차이를 첨예화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개념을 이해시키려 한다.
‘있는 그대로’는 시간의 현재성, 현장이 가진 지금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읽는 중요 태도이고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 던진 의미이지만 이미 1967년에 있었던 일이며 그 이후 몇몇 작품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오늘, 여기서 그때의 작품을 재현하면서 지금의 작품이며 지금의 공간과 시간에서 경험하기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작품을 보고 경험하는 현재가 아니라 지나간 의미를 되새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 없는 것을 앞에 두고 변화를 읽어야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은 강제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이제 생경함과 전위성과 현재성을 잃었다. 반복의 지루함과 반복을 새로운 이해로 강요하는 억지만 남을 뿐, 새로움은 거기 없다. 어느 작가가 40여 년 전의 작품을 재연하면서 그것이 새로운 것이며 새롭게 읽히는 것이며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이미 그의 작품엔 권위에 기댄 요구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발언과 평가적 차원의 이론적 고찰이 그의 작품을 감싸고 있으면서 그의 작품을 보지 못하게, 읽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과 설명에 의해 이해될 뿐, 여기서 그의 작품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 없다. 그의 작품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있는 그대로’는 그의 작품을 자신 스스로 보기를 거부하며 이론적 배경으로 그의 40여 년간의 작품을 합리화하고 있다. 작품을 대하는 현재의 경험이라는 시간성의 문제는 이제 그를 다른 작가와 변별하기에 충분치 않다. 그것은 어느 작품에서나 가능한 일반적인 지각이론일 뿐이다.
재현의 대상을 벗어난 것이 그의 작품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복제하는 듯한 재연은 재현이 아닌 것일까. 그의 이론적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을 자신이 복제하는 것도 실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복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가 주장하듯 시간의 현재성의 경험으로 정당화된다. 이우환의 ‘반복에 대한 차이’의 옹호는 《이우환》을 쓴 ‘질케 폰 베르스부르트 발라베’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의 옹호는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향유할 만한 계층의 ‘이우환’ 상품화를 은폐하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일 뿐이다. 그의 작품이 던지는 의미가 상품화로 사물화되어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시대를 사물화하는 데 왜곡되게 방기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의미 생성의 자율성으로 혹은 자율적 의미존재로 보는 것은 작품을 정의하는 통상적 특징이다. 그러나 작품의 자율성은 근대의 산업화에 따른 대중화와 함께 일상성의 사물화와 작품의 사물화에 반항한 성과이다. 오늘날 미술작품에서 쉽게 목격하는 카툰, 삽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적 취향이나 그런 특징이 강한 작품들은 형식과 내용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아트페어, 미술관의 팔리는 그림을 부추기는 기획전을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일상과 미세담론의 전면 등장이 거대담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반작용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근대에 대한 반작용의 하나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성향도 이제 일상의 미세한 반응까지 상품화하는 세태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때로 이 시대 작품이 가지는 이런 특징에 위험스러운 세태를 역설적으로 읽거나 형상화하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그대로 증명하는 것일까. 그것은 억측일까.
그런 안타까운 희망도 숨기기 쉽지 않다. 예술의 자율성은 근대의 예술적 성과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충실한 표현의 성과이다. 그것이 근대기 삶의 일상성에 대응하는 성과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작품에서 읽히는 자율성의 포기와 퇴각은 예술의 사회적 임무를 해체하거나 상업성에 감염된 탓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인기 작가들의 팔리는 작품은 어떤 전위성, 어떤 성찰도 없지만 마치 한 시대의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자율성을 덧붙여 소비하고 있다. 자율성은 이제 우리 미술계의 허위의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우환의 자기복제는 자기유일성뿐 아니라 오늘의 예술 자체의 유일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던한 지금에도 그가 현대적 작가일까. 그러나 40여 년간 같은 작품을 두고 현재성, 유일성의 부정이라는 화두는 허황되다. 자기복제와 자기인용으로 계속되는 이우환의 작품은 이제 자신의 자리에 대해 물어야 한다. 유수의 외국 공간에서 전시를 했다는 경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기회가 그의 총체적 성과에 대한 평가에 다르지 않지만 여전히 그가 하고 있는 반복은 지루하다. 그 지루함을 정당화하려 하지 말고 생경한 있음, 있는 그대로의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우환의 예술적 이념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그의 반복되는 특징은 작품의 자율성을 확보하기보다 세상의 흐름을 타고 상품으로서 가치를 확보하려는 것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 있다. 자율성에 대해 우리 사회 엘리트층의 소유욕과 그들의 소장품 가치의 영구화 혹은 보증으로서 ‘아름다운 가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예술품에 대한 통속적 의식일 뿐이다. 예술은 이제 삶의 성찰이 아니라 상류층의 취향을 마치 대중이 지향할 가치인 양 기만하는 허위의식의 하부구조가 되고 만다. 소위 인기 작가들의 자기복제에 대한 정당화 주장은, 특히 이우환의 경우, 그 역시 자신의 세계를 정치, 경제 산업화의 하부 사물로 취급하는, 스스로 그것에 복속시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작품을 상품으로 소비해야 하는 화랑이나 투기 대상이 된 작품을 소장한 재력가나 엘리트층의 요구는 상품으로서 가치의 문제로 당면한 그것의 정당화를 위한 논리이지 작품의미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복제는 이미 어떤 전위성도 가지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에서 차이 운운하는 것은 발표 당시에 가질 수 있는 태도나 의지이지 그것이 몇 십 년간 복제되고 고가의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면 당연히 작가는 이런 흐름에 반응해야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건물, ‘이우환 공간’은 작가의 설계와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여 만든 것이며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일이다. 작가의 기질과 완벽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없어진 중세의 교회나 절을 보는 듯하고 철저하게 현실과 분리된 공간을 꿈꾸는 특정장소로 독립되어 있다. 그 안의 공간 역시 성스러운 어떤 것을 보듯, 작품은 진열되었고, 자기연출이 과도한 공간은 작품을 만나기보다 우선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타자와 만나려 한 것이었을까.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차이와 반복에서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가 서구 현대미술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려 한 지점일까. ‘이우환 공간’과 작품은 철저한 분리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경계인으로서 그는 자신을 어느 곳에도 정착시키지 못하고 끝내 자신의 공간을 타자와 분리하고 자신의 작품을 유폐시키고 미술계를 계층화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 소수는 이 사회의 상층부로서 갖춘 사람들이며 그들만이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며 미술의 이해와 감상과 향유는 고급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 같다. 그의 공간이 주는 위화감은 그동안 미술관 내에 설립을 반대했던 부산 작가들이 했던 점이다. 미술관 부지 내에 건물을 세우고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런 우려가 상쇄되거나 은폐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논리는 노예상태에서라도 먹고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자기기만이자 허위의식과 다르지 않다.
미술관 부지 안의 독립된 건물, 그의 명성과 초빙에 값하는 대접이라 하겠지만 현대미술에서 그가 추구하는 ‘있는 그대로’의 의미망을 벗어나는 짓이다. 예술과 일상의 분리, 삶과 사유의 분리를 거부하는 것들이 현대미술이고 전위였으며 많은 작가와 이론가들이 그것에 주목하고 온전한 삶과 예술의 관계를 담론화하려 했다. “이 세대의 비평가들은 규범과 대서사의 개념, 그리고 근본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유일한 행위자로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해 비판”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이름을 단 건물은 이제 미술관 내의 모든 작품과 단절되고 그 자신만의 공간이 되어 타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고 있으며 그 분리는 작품 의미의 차이가 아니라 유명 작품과 아닌 것으로 속악하게 나눠지고 있을 뿐이다.
볼거리로 변한 이우환, 스펙터클의 한 지점이 된 부산시립미술관, 그것은 다른 말로 상품화된 이우환과 상품이 된 미술관이다. 삶의 구체적 장소인 부산이라는 지정학적 장소가, 사유의 가치를 위해 만든 미술관이 상품이 되어 진열된 셈이다. 상품은 사유가 아니라 소비이며 돈의 가치로 계량화된 사물이다. 세상의 많은 것이 상품으로 둔갑해서 대중적 호응과 이윤을 창출한다지만 미술관과 하나의 도시가 상품이 되는 사태에 대해서 왜 염려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작품을 가진 자들에게는 작품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겠지만 그의 의미는 이제 장사치들의 볼거리를 전시하는 진열대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며 그 보증으로 미술관이 버티고 선 꼴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볼거리는 곧 남루해지고 새롭지 않은 새로운 상품으로 대체된다는 인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언론조차 분리되는 미술계, 사회계층의 고착화 징후에 대해 지적하려 하지 않는다. 유명 인사에 경도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이 시대 미술계의 극단적 분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의 이론도 그의 이야기도 이제 반복에 의해 통속화되고 독립된 건물처럼 그의 작품과 공간은 우리 사회 상층부의 취향을 보여주는 표지가 되고 있다. 대중적 볼거리로 만든 듯 하지만 그것은 시혜와 특권의식이자 미술계 내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인식이란 다름 아니라 삶의 인식, 그들이 가진 이름으로 세상을 보는 인식일 뿐이다. 권력과 인식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보는 이의 방법의 고급화란 그저, 허위의식일 뿐이다. 사원이 된 ‘이우환 공간’은 분리된 욕망에서 예술의 계층화를 부르는 통속화에 다르지 않다. 나는 이것을 이우환의 포퓰리즘이라 생각한다. “포퓰리즘 미술은 단순함을 특징으로 광범위한 대중에게 다가서며, 브랜드화한 이미지를 통해 상업대중문화와 적극 관계를 맺는다”는 그 이상이 아니다.
강선학 미술비평

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5

말의 사용, 미술비평의 문제

여전히 글로벌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이들이 국제미술계 (international art scene)라는 실체는 모호하지만 경쟁 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미술 장(場)을 가로질러 다니고 있다. 또 여전히 세계 곳곳에 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전시(말 그대로 ‘펼쳐 보이기’) 이벤트가 만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체감컨대 2000년대 초반을 ‘큐레이터의 황금시대’로 변조한 전시기획 열풍은 한풀 꺾였고, 아트 비즈니스 광풍이 ‘미다스의 손’처럼 모든 것을 도금할 기세로 미술 구석구석까지 덮쳐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파악하기 쉽지는 않지만, 우리 곁에서 솔솔 다른 국면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바로 한국 미술계에 덧씌워진 ‘비평의 위기’라는 지겹고 둔한 수사학을 뚫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미술비평’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육성책이 새 빛의 파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하나금융그룹과 맺은 업무협약(MOU)에 따라 ‘세마(SeMA)-하나 평론상’을 제정해 공모에 들어갔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미술비평 활성화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안다. 개인이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기성세대 비평가로서 다음 세대 작가 및 비평가와 함께 하고자 ‘2015 비평 페스티벌’을 기획해 6월 중순 실행시켰다. 이 사례들은 형식과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지금 여기 미술 장에서 비평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그것의 독자적 역량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점에서는 달라지는 미술패러다임의 시그널일 수 있다.
동시에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여기 미술계에서 비평의 모색은 현실사회의 문제적 징후들과 결부시켜 생각할 만한 테제로 부상한다. 비유하자면,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피부가 벗겨진 채 서로 살을 부비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사회생활에서 겪는 고통이 커지고, 그 민감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말들이 횡행하고, 실제로 지극히 평범(하다고)한 사람이 분노조절에 실패해 이유 없고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 반대 현상도 있다.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마구 쓰는 존댓말,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공허한 직위들, 시도 때도 없고 의미도 없이 내뱉는 과잉 언사가 넘쳐나는데, 그 비약적인 말들은 결국 우리의 삶이 얼마나 혹독하고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한지 보여준다. 그만큼 우리가 날것의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세상에 대한 큰 공포로 소극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는 지난 시기 정체되고 외면 받았던 비평이 최근 관심사로 부상한 맥락을 이와 결부시켜 생각해본다. 요컨대 핏빛 살벌한 날것의 세상과 피부가 벗겨진 우리 사이에 ‘말’이라는 거즈, 중간재, 매체가 다시금 관건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 말을 어떤 시각, 판단, 해석, 서술, 의미화, 발화의 테크네(Techne) — 이것이 단순한 비난이나 비판과는 전혀 다른 비평의 몫인데– 를 따라 사용해야 세계가, 우리 자신이, 사물이, 예술이, 현상이 온전하고 온건하게 상대와 맞닿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현실에서 말의 힘은 약만이 아니라 독(毒)을 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때 청년세대담론의 젊은 기수라 불린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년논객 한윤형의 잉여탐구생활》에 넋 놓고 감정이입하는 순간, 당신은 논객도 독자도 뭣도 아닌 그냥 ‘잉여’다. 또 예컨대 당신이 세간에 유행어로 떠돌고, 정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한 청년세대의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현상을 ‘내 얘기’라고 동조하는 순간, 당신은 그냥 삼포를 내면화한 세대원 중 하나에 불과해질 위험이 있다. 애초 그 말들은 비판의 생산성, 판단의 시의성, 변화의 잠재성을 내적 힘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이 특정 발화자/주체의 이름 아래서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해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익명은 부지불식간에 잉여의 기만적 위안에 젖어 퇴행해간다. 과거에는 목에 걸린 떡처럼 갑갑하게 짓누르던 잉여적 삶이, TV 예능프로그램처럼 재미있는 미션이 주어지고 독특한 취향과 기질을 구사할 수 있는 생활 형태로 여겨지며 사람을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또 공동체의 지속, 사회 안전망, 보편적 복지에 관한 국가 책무와 공적체계의 기능을 두고 국민으로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놓친 채, 운명론으로까지 비약한 사회의 부정적 현상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동일시하게 된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것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아서이고, 내가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없는 것은 내 형편상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서라는 식으로 말이다. 마치 그런 일들이 국가와 사회의 공적시스템이 책임지고 지켜낼 공공의 몫이 아니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운인 양 말이다. 그럴 때 말의 힘, 이를테면 비판의 자생력과 변화를 향한 인식의 활동성은 현실 순응적 기만으로, 집단적 자포자기의 마취로 전도되며 한껏 독을 피워 올린다. 그리고 그 독이 점진적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과 세상을 찌른다.
말이 무서운 것은 이런 점에서다. 즉 말은 현상을 설명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더 나은 세계 또는 온당한 삶의 구조 짓기와 실체 채우기를 위해 우리가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말은 아주 간단히 우리를 염세주의 혹은 자기파괴 역장으로 밀어 넣는다. 또 쉽게 스스로를 현상 판단과 문제 제기의 주체 대신 연민의 대상이나 피동성의 자리로 몰아넣는다. 지금 여기 한국 미술계가 새삼 미술비평을 중요한 실천 영역으로 재인식하고, 그 영역을 새로운 기능과 방법론으로 충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즉 이렇게 말의 힘이 약과 독이라는 양면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미술비평의 근본적 자리와 역할, 나아가 비평의 미래지향적 용도와 실천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청년/젊은/신진미술가들이 기성미술세대의 예술적, 미학적 담론 및 사회 일반의 뒤섞인 담론으로부터 건강함은 취하고 독소는 제거하는 가장 탁월하고 유효한 방법으로 ‘비평’을 추천한다. 단지 미술 창작의 후위(rear-garde)로서 미술 이론적 글쓰기 혹은 개별 작품의 해석과 해설로서 미학적 언술을 넘어, 세대와 집단의 인식을 가늠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근간의 활동으로서 말이다. 직업으로서 비평가와 전문 영역으로서 비평에 한정하지 않고, 준거집단의 정신구조와 행동양식을 뒷받침하는 원천으로서 ‘말의 사용’을 연구하고 다양화하고 깊이 있게 하는 일 말이다.
그런데 미술비평을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말의 차원과 범주로, 지각의 발화와 영향의 청취가 뒤얽혀 돌아가는 힘의 정치학이자 ‘말을 빼앗긴 익명’이 ‘판단력의 주체’가 되는 존재론적 모험임을 이해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목소리와 화법과 음색과 언어습관을 근거로 서로를 구분하고,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다. 그 구분 가능성과 특정성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고, 개인으로서 다른 무엇과도 나눌 수 없게 한다. 그럼 미술비평은 어떤가? 구어든 문어든 그것의 말은 각자의 개인성을 가지며, 서로 통약 불가능한 요소들로 나뉘는가? 우리는 그만큼 미술의 장에서 말을, 담화를, 언어를, 문체를 발전시켜왔는가? 어린 화가의 말, 늙은 큐레이터의 화법, 기성 비평가의 문체, 40대 미술이론교수의 논리, 신입 화랑 직원의 대사, 노회한 컬렉터의 이야기 등등으로 분화되고 다양화하는 말들의 세계가 있는가 말이다.
고백건대, ‘2015 비평 페스티벌’을 열기 전까지 내게는 한국 미술계 청년세대와 관련한 편견이 있었다. 나의 선배들이 자주 말했고, 그 와중에 내게도 자연스러워진 편견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티도 안 나는데 힘들기만 한 걸 못 참고,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미술비평 같은 건 하려 하지 않는다. 다들 화려한 전시기획을 하고 싶어 하지’가 그것이다. 이 편견 때문에 젊은 미술세대에게는 비평 욕망이 별로 또는 거의 없으리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비평 페스티벌’의 와중에 알게 된 현실은 청년미술세대 중에 꽤 많은 이가 미술비평을 원하고, 실제로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힘듦이 아니라 ‘해도 무의미해지는 것’이고, 그들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스타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비평을 업으로 삼아 밥 먹고사는 평범한 현실’이다. 이는 바우만(Z. Bauman)이 짚은 바, “사회적 추방”1을 공공연하게 상연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TV 쇼 프로그램을 싫든 좋든 내면화한 동시대 젊은이들의 공통된 삶의 생리이자 욕망의 규모로 보인다. 즉 거의 모든 삶의 국면이 오디션 경쟁처럼 절박하고, 한 스테이지를 거칠 때마다 반드시 탈락자나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세상 메커니즘에 익숙해진 세대의 그것인 것이다. 누군가는 그로부터 무슨 힘 있고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미술비평이 나오겠는가를 물을지 모른다. 또 무슨 주체적이고, 인식과 감각 지각의 차원에서 고도로 분할된 말의 사용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그런 못미더움과 의구심은 접어둬도 좋겠다. 내가 접한 젊은 미술세대의 비평은 대체로 논리 구성과 분석력과 성실성 면에서 꽤나 학술적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그들의 언어 사용은 장르, 매체, 동서양, 비평대상 등에서 상당히 유연하고 열려 있었다. 그 학술적 면모와 오픈마인드, 그리고 지적 활동의 유연성은 단언컨대 그 세대가 처한 현실 환경이 그/녀에게 준 비평적 능력이고, 그/녀가 그 현실의 가두리에서 절박하게 조합해낸 말의 유형이다. 바흐친(M. Bakhtin)의 언어이론을 따라 말하자면, 지금 여기 젊은 미술세대의 비평 언어는 “인간 활동의 여러 영역에 관계하는 참여자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구어적・문어적) 발화의 형식”2 중 하나로 기성 미술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 형식을 이룬 8할이 다소 씁쓸하게도 생존경쟁의 현실이고, 평범한 삶을 향한 작은 꿈이라도.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1 지그문트 바우만, 함규진 역, 《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2009, p. 56.
2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ㆍ박종소 역, 《말의 미학》, 길, 2006, p. 349.

사진 미술평론가 강수미가 총괄기획한 <2015비평페스티벌>이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렸다. 첫째날 비평워크숍에 참여한 강수미

HOT PEOPLE Daniel Buren

다니엘뷔랑 인물 (1)

 철, 프렉시글라스, 접착제 바른 하얀비닐, 거울 217.5×217.5cm 2015

< The grid with 49 squares in frame, work in situ, Seoul NO.6 > 철, 프렉시글라스, 접착제 바른 하얀비닐, 거울 217.5×217.5cm 2015

무한의 영역으로 ‘현장’을 바꾸다

‘인 시튜(in situ)’, 8.7cm로 정확히 구획된 흰색과 원색의 줄무늬. 이는 다니엘 뷔렝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연관 검색어’다. 그의 약력을 보면 거주 및 작업 장소는 늘 ‘in situ’, 즉 현장이다.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늘 ‘현장’에 있는 그가 개인전을 위해 서울의 ‘현장’을 찾았다.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VARIATIONS, 공간의 미학전〉(6.6~8.8)을 위해 내한한 다니엘 뷔렝을 만났다.

작업에서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중요하다. 이번 전시에서 공간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점은 무엇인가?
313아트 프로젝트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면 유리가 있는 갤러리 앞쪽은 보도와 가까이 붙어 있다. 반면 갤러리의 내부는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에 가깝다. 보통 작가들이 내·외부 공간을 철저히 구분해서 막는다든지 공간 내부만을 활용하는 데 비해, 나는 닫힌 내부공간을 막기보다 밖과의 소통을 위해 오히려 구멍을 뚫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313아트프로젝트는 건물 입구의 전면유리가 이미 그 구멍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문에 있는 ‘인 시튜(in situ)’ 작업이 중요하다. 거울을 사용해서 길과 갤러리 안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내부 작업도 거울을 많이 사용해 야외의 길이 내부에 비춰지도록 표현했다. 외부의 길이 갤러리 내부에 있다고 보았다.

‘인 시튜’는 전시기간이 지나면 해체되어 사라지는 현장 작업이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만으로 작업을 보는 관객이 늘었다. 이러한 관람 자세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부터 사진으로 작품을 보는 풍조는 있었다. 여행 할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사진을 통해 작품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잘못됐다. 사진 속 작품과 실제 작품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사진 이미지로만 보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수단 이상은 될 수 없다.

관람객이 확장된 것은 사실 아닌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실제로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확산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다. 이미지로만 작품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덧붙여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전파되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예전에는 나의 작품을 보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작품을 카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 지 1분만 지나도 영감을 얻거나 혹은 카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 작업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카피했다는 점이다.

큐레이팅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작가와 큐레이터 사이의 개연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개인전의 경우는 예술가가 기획부터 작품 제작 전체에 관여하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필요 없다. 그러나 그룹전은 다양한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조율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1970년에 쓴 에세이 〈Fonction du Musée〉에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

줄무늬에서 흰색과 함께 사용되는 원색을 전시하는 나라의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다고 들었다. 색 배열의 의미가 궁금하다.
50년간 항상 색과 함께 작업했다. 예술가는 ‘비주얼 아티스트’다. 색이야말로 예술가가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색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추함 혹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색은 유일하게 말로써 개념 설명이 불가한 구성요소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사과색과 자두색 사이 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설명할수록 꼬인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유를 담고 있는 것 또한 색이다. 어떤 작품이더라도 색은 그 자체만으로 살아있다. 나의 경우, 하나의 색을 사용할 때는 이전부터 어떤 사용체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형태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 색들이 새로운 하모니를 구성한다. 작품에 사용하는 색을 전시하는 나라 언어의 알파벳 순으로 나열함으로써 나의 취향을 철저히 배제한다. 같은 색을 쓰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오더를 사용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달된다. 색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이야기하고 나는 그것을 펼쳐놓을 뿐이다. 나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색의 순서를 골라달라고 할 때도 있다.

당신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거부로 해석된다. 당신의 작업이 꾸준히 변화해왔다고 하지만 큰 그림 안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생각이 유지되고 있는것 아닌가?
큰 틀에서 본다면 맞다. 작업을 하면서 더 나은 해결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이어가고 있다. 50년간 작업하면서 나는 특정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 나만의 방식을 고집해왔다. 작업이 객관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객관적 지표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작업이 미술사적 연대기 안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99%의 작가가 근대미술이 추구해온 ‘자율성’을 지닌 작업을 한다. 어떤 화이트큐브에 걸어도 무관한 작업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율성’을 가진 작품은 폭력적일 수 있다. 미술이 ‘자율성’을 갖지 않는 이상 판매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당연한 순리이다. 나는 1% 속에서 작업한다. 물론 나 또한 작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공간과 함께 존재했던 작품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감각은 더욱 무겁다. “한때의 그것이었던” 콘텍스트가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임승현 기자

Daniel Buren 다니엘 뷔렝 프랑스 설치미술가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중반 반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05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10여 차례 베니스 비엔날레 및 카셀 도쿠멘타에 참가했다. 2012년 파리 그랑팔레 <모뉴멘타전> 2014년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Like Child’s Play, Works On-site> 등의 전시를 이어오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6월 10일부터 8월 8일까지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개인전을 이어간다.

SIGHT & ISSUE

위 박선기 〈조합체-출현 1506〉(가운데)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 나일론 줄 500×500×500cm 2015 아래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아뜰리에 (1948)를 재현한 모습

위 박선기 〈조합체-출현 1506〉(가운데)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 나일론 줄 500×500×500cm 2015
아래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아뜰리에 (1948)를 재현한 모습

〈Esprit Dior-디올 정신展〉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6.20~8.25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문을 열다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Esprit Dior-디올 정신전>(6.20~ 8.25)이 주는 첫인상이다. 이 전시는 상하이 도쿄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를 찾았다. 이번 전시의 수석 큐레이터인 플로렌스 뮐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이 패션 문화 건축 등 창작활동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이번 전시는 크리스티앙 디오르부터 이브 생 로랑, 장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까지 크리스찬 디올의 역대 디렉터들의 의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작가 6인(김동유 김혜련 박기원 박선기 서도호 이불)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이 주를 이루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상하이와 도쿄에서 열린 전시와 비교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전시는 ‘파리’ ‘디올 아틀리에’ ‘베르사유: 트리아농’ 등 10개의 소주제로 구성했다. 디올의 화려한 의상과 그와 어울리는 작품의 조화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했다. 참여 작가 선정에 대해 뮐러는 “한국 미술 전반에서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를 골고루 배치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하며 작가들이 “디올 세계의 은밀한 내용을 잘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그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찾은 미술과 패션의 접점을 강조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서도호의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은 디올의 꾸뒤르 하우스 탄생의 상징적 공간을 투명한 천을 통해 파사드를 넘어 집 내부까지 투과할 수 있게 대규모로 설치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패션계의 모습과 유사하다. 패션 공방도 마치 연금술의 과정처럼 복잡하고 은밀하다. 작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초상화를 선보인 김동유는 전체 수작업으로 정말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긴 제작기간과 장인정신을 요한다는 것은 오뜨꾸뛰르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오뜨꾸뛰르 전시는 시각미술의 옷을 덧입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브랜드 홍보를 교묘히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파인아트를 어설프게 혹은 끼워 맞추기식으로 더하면서 전시내용과 메시지가 모호해지기 쉽다. 그러나 <Esprit Dior-디올 정신전>은 국내에서 최근 잇따라 열린 패션전시 중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디올’이 지닌 오뜨꾸뛰르의 화려함과 그와 어울리는 작가의 신작을 함께 배치하고 패션 전시만이 구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디스플레이를 더했다.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하며 상업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디올 가든’ 섹션의 경우, 김혜련의 12폭 회화인 <열두장미·꽃들에게 비밀을>로 벽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디올의 덩굴 장식 무도회 드레스, 은방울꽃 자수로 장식한 헤어네트 머리장식 등을 중앙에 세웠다. 여기에 천장과 바닥에 하늘빛 화면을 배치해 정원의 느낌을 살렸다. 비록 일차원적인 디스플레이일 수 있지만, 시각적 유흥은 탁월했다. 또 디올의 상징적인 패션으로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한 ‘뉴룩’을 입은 마네킹을 시대순으로 일렬 배치하며 그 맞은편에 전면 유리를 두어 마치 런웨이 양쪽에서 모델이 걷는 듯 보이도록 한 ‘디올 얼루어’ 섹션의 디스플레이는 ‘쇼’적으로도, ‘뉴룩’의 역사를 전달하는 데도 탁월하다.
물론 동시대 작가들과의 협업 외에 ‘디올의 정신’을 드러내는 일반적 구성 방정식도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당대 교우했던 작가들과 함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한 ‘디올과 예술가 친구들’ 섹션은 예술과의 패션의 고리를 드러낸다. 물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경우는 미술계와 보다 직접적인 체험적 경험이 있다. 그는 패션계 입문 전, 1928~1934년까지 2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 ‘올랑 프티트’라는 발레작품의 디자인, 세트, 작곡까지 직접 했을 만큼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뮐러는 이점에 주목했다. 디오르는 피카소처럼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주로 젊은 작가들을 도왔다.
“당시 젊은 작가였던 자코메티의 개인전, 주목받지 못하던 달리의 3번째 개인전이 디오르가 운영하던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곳에서 판매한 자코메티의 <Le Table>을 현재 퐁피두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예술적 감각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 큐레이팅의 중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각 주제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공간 활용 방법도 눈에 띈다. DDP는 이미 다수의 패션 전시가 열린 공간이다. 자칫 유사한 디스플레이로 비슷한 시각적 패턴을 제공하기 쉽다. 둥근 형태의 건물이라 회화작품은 가벽을 설치해 디스플레이할 수밖에 없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체가 조망되는 등 전시장으로서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뮐러는 “천장이 높고 매우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점이 오히려 좋았다. 공간이 넓다보니 마네킹을 세웠을 때 원근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서 웅장한 연출이 가능했다. 패션 전시에서 마네킹은 하나의 조각이다. 넓은 공간은 공간감까지 느낄 수 있으므로 오히려 전시를 꾸리는 입장에서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웹사이트(espritdior.com)를 통해 사전 예약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또한 전시와 동시에 크리스찬 디올은 크리스챤 드 포잠박이 설계하고, 피터 마리노가 인테리어를 맡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하우스 오브 디올’을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오픈했다.
임승현 기자

디올 (22)

창립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찬 디올 디자이너의 대표적 의상을 입은 마네킹이 일렬로 서있다.

디올 (3)

서도호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 혼합재료 2015

디올 (9)

플라워 드레스 뒤로 김혜련의 <열두 장미·꽃들에게 비밀을〉 (캔버스에 유채 225×100cm 2015) 12점이 걸려있다

 

HOT ART SPACE

프리다칼로_소마 (16)

프리다 칼로_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소마미술관 6.6~9.4

멕시코의 대표적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소개하는 전시다. 작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 즉 디에고 리베라와 당대 멕시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여 그녀를 역사와 주변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또한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 <프리다>, 다큐멘터리 영상, 그녀의 장신구, 의상 등을 함께 선보여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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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개인전
박여숙화랑 5.22~6.21

<Somebody>로 명명된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예의 몸을 둘러싼 작업과 맥락이 연결되어 있다. 다만 문신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전 작업에 비해 분리된 몸의 형상의 집합이 생성하는 또 다른 형태에 천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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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 (2)

이환권 라선영 2인전
카이스갤러리 5.28~6.26

형태를 길게 늘여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이환권과 A4용지 크기의 인간 군상을 제작한 라선영이 <조각과 사람사이, 조각, 사람이 되다, 사람, 조각이 되다전>을 열었다. 두 작가는 모두 일상의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지만 내용과 표현에서 확연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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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훈_사비나 (2)

성동훈 개인전
사비나미술관 6.12~7.12

철을 주된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Fake of the Kingdom>. 신작 20점을 소개하면서 철과 함께 슬러지(용광로 찌꺼기)와 청화백자를 융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 특유의 양괴감과 새롭게 도입한 재료가 어우러져 이전 작업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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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원_오뉴월 (3)

홍진훤 개인전
스페이스 오뉴월 5.29~6.20

<Last Nights>로 명명된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에 드러난 고속도로 휴게소 풍경은 낮과 밤이 사뭇 다른데 그 모습이 작가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조명이 꺼지고 사람이 사라진 휴게소의 민낯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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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준

박민준 개인전
두가헌갤러리 5.27~6.28

총 28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라포르 서커스>로 명명됐다. 7년간 뉴욕에서 거주해온 작가가 귀국 후 갖는 첫 개인전. ‘라포르’는 사람 사이의 긴밀한 교감 혹은 상호신뢰감을 의미하는데 서커스 단원이 갖는 그것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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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세계 (3)

멘토링전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6.2~7.6

부산지역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고 작업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기획전시. 이들은 비평가, 전시기획자 등과 매칭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올해는 유은석, 윤주, 이선옥, 임현정, 정안용이 참여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아르코 (2)

니나 카넬 개인전
아르코미술관 5.29~8.9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스웨덴 태생의 작가 니나 카넬이 아시아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전시명은 <Satin Ions>. 작가는 지하 매설 케이블 신작을 비롯, 찰나와 비가시적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 작품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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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철철_포스코 (4)

철이철철_사천왕상에서 로봇 태권브이까지
포스코미술관 5.27~7.7/7.17~8.13

포스코미술관 개관 20주년과 미술관 이전을 기념하는 전시로 서울과 포항에서 각각 열린다. 철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한 전시장에서 소개한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

SIGHT & ISSUE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조선백자〉

백자_이대박 (7)

관념과 수사를 지운 조선백자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5.27~2016.1.30

근래에 조선 백자와 관련된 전시를 여럿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청화백자전>와 호림박물관의 <백자호전>, 서울미술관의 <백자예찬전> 등이 그것이다. 이화여대박물관이 개관 8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조선백자전>(5.27~2016.1.30)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한 형태와 순백의 색감으로 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백자다. 또한 ‘관조’나 ‘고요’와 같은 키워드와 더불어 한국적인 미, 한국성에 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온 것도 백자였다. 그래서인지 백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그려졌다. 본래 백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실용적 차원의 물건이자 유교적 이념을 투여하는 상징적 매개이기도 했다.
그런데 1930년대 그 백자는 조선의 중요한 전통으로 불려나왔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몇몇 일본인의 심미감이 작동한 결과이다.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의 안목의 산물이었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백자는 조선의 의미 있는 미술품이자 전통이 된 것이다. 그러한 동양주의의 담론 속에서 김환기, 도상봉과 같은 작가들이 즐겨 그렸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몇몇 작가가 백자의 백색을 원용한 단색의 추상화를 그렸다. 오늘날도 여전히 백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줄을 짓고 있으며 대표적인 전통으로 호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전통이라고 여기는 백자를 둘러싼 표상과 개념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리라. 어떤 고정된 전통문화 원형론이나 본질론에서 벗어나서 ‘골동이 되어버린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주체가 경험하는 당대성으로 인해 가능하다. 그간 백자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나 과잉된 관념적인 수사는 백자와는 다소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서구현대미술과 전통을 결합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 아래 재단된 혐의도 있고 타자들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욕망으로 형성된 것이기도 했다. 한국미와 이의 현대화란 문제를 다분히 조선조 문인의 미적 취향, 백자 등으로만 제한해 소재주의화하거나 전통을 박제화 시키는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화여대박물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는 백자에 들러붙은 기존의 선입관이나 여러 수사를 지우고 오로지 백자 그 자체만을 차분히 감상하게 해준 전시다. 어떠한 수식도 없이 ‘조선백자’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선 전시공학적인 측면에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고 전시된 백자의 양과 수준이 일품이다. 시기별로, 종류별로 분류된 600여 점의 백자를 찬찬히 감상하게 해준 이번 전시는 백자만을 중심으로 꾸민 최대 규모의 전시로 기억될 것 같다. “500여 년간 조선이 추구했던 왕조의 이념과 예제 준행의 실천과정에서 만들고 진설했던 백자의 결백하고 견실한 격식과 그리고 상층부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애호하고 실용했던 풍부한 조형미를 다채롭게 펼쳐보이”고자 한 이 전시는 전시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조선시대 백자의 용도, 기형, 문양 등을 시기별로 되돌아보게 한다. 기존에 백자에 들러붙은 모든 수사와 욕망을 모두 지운 자리에서 오직 저 순연한 순백으로, 혹은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백색의 변주 앞에서, 기이한 기형의 오묘함 앞에서 말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백자철화운용문호(누끼요청)

<백자철화 운룡문 호> 높이 45.8cm 조선 17세기 (보물 제645호)

백자청화 국화문병

<백자청화 국화문 병> 높이 36.4cm 조선 19세기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형민 관장이 직무정지에 이어 불명예 퇴진한 이후 8개월을 끌어오던 신임관장 선임은 문체부의 최종 후부 부적격 판정으로 결국 재공모로 가닥을 잡았다. 유일한 국립미술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이 오랜 기간 공석인 사태에 미술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미술계에 대한 모욕이라는 성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지금을 위기로 규정하고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미술계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우선 설문을 통해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각을 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짚어본다. 그리고 문제 원인 해소를 전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신임 관장의 요건, 즉 디렉터십에 대한 박신의 경희대 교수의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시대에 걸맞은 미션과 비전을 가진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신임 관장이 갖추어야 요소에 대해 일갈한다. 이번 인사 파문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알려진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의 글도 싣는다. 이와 더불어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이 보내온 제언도 읽어보시길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시대 한국미술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다만 그 실체가 작금의 관장 인사 사태로 드러났다는 점이 유감이다. 선장 없이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정상 항로로 진입하도록 유능한 선장 선임을 촉구한다.

초유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사태,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건을 두고 미술계가 시끄럽다. 매끄럽지 못한 인사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미술계는 “미술계를 무시한 처사”라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미술계는 오늘의 파행은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책임운영기관 제도’ 도입 당시 이미 예고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로부터 서울관 건립, 그리고 최근 관장 재공모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주요 사건을 연보로 정리했다.

2006. 1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체제로 전환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 여부를 놓고 치열한 찬반 논의를 벌인 끝에 2006년 1월 1일자로 책임운영기관제를 도입했다. 책임운영기관 제도란 “정부가 수행하는 사무 중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쟁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무에 대하여 기관장에게 행정 및 재정상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운영 성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미술계 내부에서도 “기관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극대화된 수익성 추구로 인해 예술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선 바 있다.

2009. 1
국군 기무사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로 선정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에서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서울시내에 국립미술관을 조성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오랜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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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배순훈 제17대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선임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전문경영인이 관장에 선임되어 화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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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서울관 설계공모 당선작 발표

2010년 2월에 공모한 서울관 건축설계공모에서 민현준 홍익대 교수의 설계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설계도 (4)

2011. 6
서울관 기공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공식이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각계 인사 6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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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배순훈 관장 사퇴

임기를 3개월 남긴 배순훈 관장이 전격 사퇴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름을 ‘UUL’로 지은 것에 대해 질타하는 국회의원과 이에 답변하던 배 관장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고 이것이 사퇴를 촉발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2012. 1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정형민 교수 선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보존센터 건립 추진 발표

정형민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가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 정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여성 관장이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청주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활용, ‘국립미술품 수장·복원센터’(가칭)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정형민 2

UUL 국립현대미술관 UUL국립서울미술관 브랜딩

2012. 8
서울관 건축현장 화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건립현장 이미지1

2013. 5
국립현대미술관 신규통합 MI 발표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 청주관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한 새로운 통합 MI(Museum Identity) ‘MMCA’를 발표했다. ‘MMCA’는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의 이니셜 약자다.

2013. 1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개관전 <시대정신>, 학연 논란 및 출품작 철거 외압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 <시대정신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전시 출품 작가가 특정 학교 출신에 치우쳤으며 개관전에 걸맞은 전시 내용과 수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게다가 일부 작가의 작업이 전시 직전 외압에 의해 철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시대정신 (1)

2013. 12
한국미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규탄대회
성명 발표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TF팀 구성 발표

국립현대미술관은 12월 3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일각에서 일었던 개관전 작품에 대한 균형성 미흡과 과천관과 덕수궁관 등에 대한 배려 미흡 지적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기구를 구성하겠다”며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4. 10
정형민 관장 정직(직위해제)

10월 10일 감사원은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학예사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 지인 2명을 합격시켰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감사원은 정 관장에 대해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16일 정 관장에 대해 직위해제 조치했다.

2014. 11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 개막

2015. 1
관장 공모(~2.9) 원서 접수

‘관피아’ 논란으로 신설된 인사혁신처를 통해 신임 관장 공모를 실시했다. 총 1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 2
관장 선임을 둘러싸고 잡음

자칭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를 위한 범미술행동 300’은 관장으로 선임되지 말아야 할 10대 사양 인물을 발표했다. 또한 관장 공모에 지원한 이 중 정계 출신 인사가 포함되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으며 일부 후보자의 과거 이력과 로비 등이 입길에 올랐다.

2015. 3
최종후보 최효준 윤진섭으로 압축

2015. 6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결정

P1070657문화체육관광부 6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공모 등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법적 근거로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조 제5항)을 들었다. 이에 다음 날 최종후보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서울시내 모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체부로부터 자진 사퇴를 종용받았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또한 그는 “인사혁신처의 심사를 적격으로 통과했음에도 문체부에서 이를 거부한 것은 하자가 없는 인사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전례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문체부 장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 “인사혁신처는 후보자를 추천하고, 적격자 여부는 주무부처에서 최종 결정한다”며 “문체부 임용심사위원회에서 문화예술계 의견,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당시의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적극적인 업무추진력, 창의성과 혁신적 마인드 등 변화와 진취성이 요구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재공모를 추진키로 의결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최 전 관장이 주장한 ‘사퇴 종용’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며, 사전통보 과정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발표될 경우 후보자가 명예 또는 경력 훼손을 걱정해 스스로 사퇴하는 방법이 이야기됐다”고 밝혔다. 이후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개방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정리・황석권 수석기자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재정비, 디렉터십에 달렸다

박신의 미술비평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을 기점으로 그 위상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서울관 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감을 기대 이상으로 올려놨다. 가장 큰 수확은 북촌이라는 위치에 따른 대중적 접근성에서 이루어낸 감동적인 변화다. 과천 시절을 생각한다면, 과연 대중의 머릿속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가 있었을까 싶지만, 서울관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니 말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파격적인 후원까지 생각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전에 없던 화려한 변신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성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여겨져 안타깝고 불안하다. 그런 인식은 변화에 값하는 우리 미술계의 내부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여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연유한다. 서울관이라는 존재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여러 가지면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정작 이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여 그렇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중적 시선만이 아니라 국제미술계의 시야에도 노출도가 높아졌다. 그에 상응하는 내부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모처럼 얻어낸 행운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 아닌 염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디렉터십의 요구와 맥락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관 개관전 사태로 당시 정형민 관장이 직위 해제되면서 불명예 퇴진한 마당에, 미술계 전문인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적 요구와 당위성 때문에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이 필요한 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관장 선임이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지만, 누가 선임되든지 디렉터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디렉터십이란 단적으로 말해 관장이 발휘하게 될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미술관 운영에서 관장의 역할과 그에 따른 조직 운영의 문화, 관리 의사소통 절차, 그리고 조직 내 역학관계를 헤아리는 일이다. 물론 리더십은 비단 리더만의 일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내에서도 각각의 업무에 따른 역할과 수행과정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봐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리더십을 말한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예술분야에서의 리더십은, 예술적 리더십(artistic leadership)의 영역으로서,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발휘된다.
무엇보다도 국립현대미술관에 요구되는 예술적 수월성은 전시 및 소장품 활동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현대미술의 경쟁력을 키우며 진흥을 꾀하기 위한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와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경영 효율성은 서울관을 비롯하여 과천관, 덕수궁관, 그리고 2017년 개관 예정인 청주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 4관 체제와, 창작스튜디오와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등의 하부 관리시설을 보유하는 방대한 규모의 조직에 대한 합리적인 운영 및 경영 성과 관리 역량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우리에게 디렉터십을 이야기할 만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 답이 시원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관장을 보면 주로 미술사나 미술평론 분야 인물이 담당해왔다. 경영 역량보다는 전시기획 역량에 따른 개인적 성향을 드러냈고, 3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서 충분한 디렉터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중간에 배순훈 관장과 같이 기업 경영인 출신이 발탁된 바 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모두 성취할 만한 인물이 없었고, 그런 면모는 어떻게 보면 초기적 양상이라고 양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모든 역량을 갖춘 완벽한 디렉터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술계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헤아릴 수 있는 역량과, 조직 운영 훈련을 거친 경영 역량을 겸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시급한 사안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두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실제로 미술관 성과(관람객 수, 전시 개최횟수, 재정 효율성 등)도 본질적으로는 전시와 소장품, 연구기능의 수월성이 전제되는 것이어서, 현대미술의 수월성과 경영 성과가 분리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변화 주도의 리더십과 관리 능력의 배합
이상적인 디렉터십을 거론할 때 리더십과 관리(leadership and management)의 차이를 살피는 것은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관리란 제도와 규칙, 구조에 초점을 두고 통제와 지휘를 행함으로써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목표로 하는 경우다. 리더십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구도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변화와 혁신을 꾀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유형이다. 관리는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 미시적인 계획인 반면, 리더십은 거시적인 계획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따라서 관리는 ‘일’이나 ‘성과’를, 리더십은 ‘사람’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관리는 책임을 요구하지만, 리더십은 사람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더욱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관리적 기능보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십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션과 비전을 먼저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홈페이지에 미션과 비전은 제시돼 있지 않다. 대개 미술관은 대내외 환경이 바뀔 때마다 미션과 비전을 교체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번이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역적 맥락만이 아니라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안팎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현실과 도전 과제는 무엇이고 국제 현대미술의 동향 속에서 어떠한 전략이 필요한지를 고심한다면, 그리고 대중의 문화향유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증진을 추구한다면 미션과 비전의 맥락은 힘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업무별로도 미션과 비전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시와 소장품 정책,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미션과 비전은 활동의 목표이자 기준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디렉터십은 각 분야별 책임자가 갖는 전문성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주고, 그들 스스로 자기 발전과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력은 상승하고, 소장품의 수준과 관리 역량은 높아질 것이며, 에듀케이터의 미술관 문화 활동은 큰 호응을 받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직이 갖게 될 전문성은 곧 디렉터십의 권위이고, 미술관 경쟁력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후 전망할 조직의 성격도 디렉터십에 부과된 주요 과제라 하겠다. 책임운영기관제는 일반 행정기관보다 폭넓은 조직・인사・예산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한편, 성과의 책임 및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성 및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직을 보면 책임운영기관제를 수행하는 기관치곤 뚜렷한 실행체계가 눈에 띄지 않는 중성적인 모습이다. 성과에 대응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 차원의 맥락이 거의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전시 기획에서의 전략도 현재 조직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기업 후원이 지속되고, 문화재단을 통해 수익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디렉터십의 대응은 준비돼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이러한 정황은 책임운영기관제라는 체제보다는 법인화에 걸맞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추후 국립현대미술관이 법인화로 갈 수 있을 만큼 내적 역량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되물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라도 강력한 디렉터십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지만 홈페이지에 역대 관장의 연혁이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관장의 존재는 미미하다. 과연 이 미술관이 관장의 역할을 중시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디렉터십을 이야기하고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긴급 앙케트, 국립현대미술관을 진단한다

전임 관장의 불미스러운 퇴진과 장기간의 공석 끝에 관장 재공모 논란에 휩싸인 국립현대미술관의 현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한 《월간미술》은 미술관계자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14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했고, 이중 60명이 참여했다. 설문은 총 25개 항목으로 구성됐으며 4개 카테고리로 나눴다. 첫째 ‘관장 재공모와 관련된 긴급 현안’, 둘째 ‘표류하는 MMCA’, 셋째 ‘MMCA 전시에 관하여’, 넷째 ‘서울관에 관하여’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의견을 들었다.
설문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이번 문체부의 관장 재공모 방침을 ‘잘못된 일(78.3%)’로 받아들였으며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문화체육관광부(68.8%)’로 돌렸다. 이는 재공모 결정까지 8개월이 걸려 관장 공석이 장기화한 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며 더욱이 문체부 장관이 나서서 외국인 관장까도 고려한다는 의사를 피력해 논란에 더욱 부채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장 선출방식 문항에는 ‘현행(공모제)유지’(28.8%), ‘추천제’(27.3%), ‘임명제’(19.7%) 순으로 답했다. 하지만 현 관장 선출방식인 공모제에 대해선 ‘반대’(63.3%)가 ‘찬성’(28.3%)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공모제가 가장 공정한 선출방식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현행 공모제에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재공모를 통해 선임될 관장이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으로는 ‘미술(관)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81.8%)을 압도적으로 주문했다. 이는 관장의 유형을 묻는 후속 문항에서 압도적 응답을 받은 ‘국내 미술현장 전문가형’(80.0%)과 응답률이 비슷해 미술인들이 바라는 관장은 미술현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입증했다. 재공모를 두고 미술인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선 ‘모르겠다’(48.0%)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시위형식의 집단행동’과 ‘사태관망’이 각각 26.0%로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최종 후보로 거론되던 후보자에 대한 신뢰가 두텁지 못했고, 재공모로 가닥이 잡히면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신임 관장 선임에 더욱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항목에는 10점 만점에 ‘4점’(38.3%)과 ‘6점’(33.3%)이라고 응답한 이가 많았다. 미술계 내부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계를 대표한다고 보느냐는 문항에는 ‘그렇다’(67.2%)가 ‘그렇지 않다’(25.9%)를 크게 앞질러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과는 별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계에서 갖는 의미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재 위기’(82.8%)라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했으며 위기를 야기한 문제점으로 ‘관장의 장기 공석’(31.6%). ‘전시내용과 수준’(30.1%)을 꼽은 이가 많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만족도 문항에는 10점 만점에 ‘6점’(45.0%), ‘4점’(28.3%)으로 대답한 이가 많아 전시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줬다. 불만족의 이유로는 ‘기획력 부재’(66.7%)를 첫손에 꼽았다. 이는 ‘전시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점’을 묻는 항목에 ‘기획 전반의 책임 및 자율성 보장’(56.4%)이 다수의 응답을 획득한 것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개관한 서울관에 대한 만족도는 앞선 항목의 만족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 10점 만점에 ‘4점’(39.0%), ‘6점’(32.2%)으로 응답한 이가 많았다. 접근성과 부대시설(60.7%), 설립(존재) 자체(32.1%)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으나 전시에 대해선 불만족(69.2%)이란 응답이 70%에 육박했다. 즉 하드웨어에 대한 만족도를 콘텐츠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접근성(79.7%)을 서울관의 최고 장점으로 꼽았으나 전시 및 프로그램 과잉에 따른 질적 저하(42.9%)를 부정적 평가항목으로 선택한 이가 많은 것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번 설문을 통해 확인된 것은 미술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우리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바를 결코 경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술계, 그리고 동시대 미술문화를 상징하는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관 개관으로 외형적인 성장은 가시화했지만 그러한 성장에 걸맞은 전시 등 미술관 본연의 기능은 미흡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인 대부분은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학예기능의 역량 강화를 꼽았다. 이번 신임 관장 재공모 결정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상급기관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와 정치력 부재를 드러냈다. 이는 전시를 비롯한 미술관 고유기능에서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제도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빚어진 결과라 하겠다.
황석권 수석기자

<설문 참여 60인>
강선학 강재현 고충환 김달진 김동일 김만석 김민기 김 석 김승영 김용익 김윤경 김정헌 김지연 김지원 김학량 남선우 노순택 노형석 류병학 문혜진 박소현 박영숙 박우홍 박인권 반이정 배종헌 백 곤 백기영 변길현 서상호 서준호 손성진 송미숙 신승오 안경화 안규철 안인기 양은희 양지윤 유진상 윤규홍 윤우학 이명옥 이선영 이영란 이영주 이용우 이태호 임근준 임종은 장동광 정정엽 정준모 정진우 조광석 조은정 채은영 최금수 최 열 하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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