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Magnum Contact Sheets

위 피터 말로

위 피터 말로 < Margaret Thatcher, Blackpool, U.K, 1981 > 아래 토마스 횝커 〈 9/11, New York, USA, 2001 〉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월 16일부터 4월 16일까지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의 속살을 파해치는 전시, 〈매그넘 컨택트 시트(Magnum Contact Sheets)〉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전 세계 동시 출간된 동명의 사진집이 계기가 되었으며 전시로 컨택트 시트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컨택트 시트는 최종 결정된 사진 이전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특히 주목된다. 컨택트 시트의 의미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매그넘 포토스 사진가들이 들여다 본 시대의 거울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훔쳐보는 즐거움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

2016년 새해 벽두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매그넘 작가들의 밀착인화전시가 개최됐다. 전시 소식을 듣고 바로 든 생각은 “매우 ‘의아한/희귀한’전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매그넘’ 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진집단이다. 그 멤버 중 몇몇은 사진역사에 매우 뚜렷한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이미 유명한 사진가들의 ‘사진적 속살’을 드러내는 전시이니, 한편으로는 희귀한 일일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한 전시라 생각했다. 동시에 고맙기도 하다.
2016년은 사진이 탄생한 지 명실공히 190년이 되는 해이다. 1839년 8월 19일 다게르가 프랑스 국가로부터 자신의 기술을 공인받기 13년 전 그의 동업자였던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 1765~1833)는 이미 인류 최초의 사진술(헬리오그래프(L’heliographs), 니엡스가 ‘태양이 써놓은 문자’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을 어느 정도 성공시킨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 사진술은 촬영된 상(Image)이 완벽하게 정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 원본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사진술이 인류 최초의 것임이 분명하다. 언뜻 이 두 개의 사건은 전혀 관계 없을 듯하지만, 이번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의 근간이 ‘밀착’이기에 내게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니엡스가 처음으로 촬영하며 느꼈을 터이지만, 사진을 만드는 일은 대상에 밀착하는 일이다. 더욱이, 현상된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지 위에 포개놓고 확대기로 빛을 주어 대상의 본모습을 재현하는 일 역시 밀착해서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은 어쩔 수 없이,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그 대상 앞에 서는 것이다. 대상이 지닌 사회적 기호성이나 조형성은 그 앞에 선 작가의 카메라가 구획하는 대로 형성된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회화가 비어있는 타블로에 ‘더하는 작업’이라면, 사진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빼내는 작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판단은 맞다. 이미 구성된 세계 속에서 자신이 쥐고 있는 카메라의 파인더에 들어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축소 복제해내는 사진술의 신묘함은 그 이론을 뒷받침할 것이다. 이러한 사진 구성의 기초적인 문제를 잘 아는 사진가는 그래서 자신이 구성할 화면의 안과 밖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 컷의 사진 안에서 작가에 의해 재구성될 세계에는 그 작가의 의식세계가 그대로 반영된다. 이러한 우리의 사진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컨택트 시트(Contact Sheets)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밀착인화의 폭로
사진에 밀착인화(contact print)라는 개념은 매우 전-디지털리아(pre-digitalia)적이다. 이는 네거티브 필름(negative film)을 사용하여 촬영하는 방식에서 시작했다. 사진가들이 그동안 밀착인화를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밀착인화를 해야 바르게 볼 수 있어서인데,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어 온 유리건판 혹은 네거티브 필름 방식의 이미지는 대상이 가진 밝은 면은 어둡게 기록하고, 어두운 면은 밝게 기록했다. 따라서 보통의 시선으로는 그 네거티브필름을 보고 찍힌 사물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따라서 이 네거티브한 이미지를 다시 포지티브한 이미지로, 다시 말해 본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밝기로 전환하는 장치가 바로 인화(印畵, print)다. 우리가 보통 사용해 온 필름이 네거티브 재현 방식이기에 이를 다시금 네거티브 재현 방식을 가진 인화지에 옮겨 놓고 빛을 주면 그 이미지가 포지티브(positive)로 변환되는 까닭이다.
두 번째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한 필름에 여러 장이 촬영되는 경우 그중 잘된 것을 고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그넘 출신 사진가들이 주로 사용한 카메라는 라이카이다. 이는 독일인 기계공학자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 1879~1936)에 의해 설계되어 1925년부터 시판되었다. 라이카 (라이카라는 이름에 이미 카메라라는 뜻이 들어있다. 라이카(Leica)는 ‘Ernst Leitz’와 ‘Camera’의 합성어다)는 당시에 사용되던 세로가 70mm인 영화용 필름을 반으로 잘라서 35mm 크기의 필름을 만들고 그 안에 24mm×36mm 크기의 촬영사이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필름을 돌돌 말아 쇠로 된 통에 넣어 36번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최근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소형(35mm) 카메라 필름이다. 이러한 형식의 필름이기에 이제 사진가들은 마치 전장(戰場)에서 기관총을 다루듯이, 카메라에 필름을 장전하고 동일한 대상을 향해 여러 번 셔터를 누를 수 있게 허락받은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진은 단지 공간을 구획하며 시간의 단면을 고착하던 틀에서, 흐르는 시간의 차이를 함께 기록하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1초에 수 컷 혹은 수십 컷을 찍는 디지털카메라가 있지만 말이다. 심지어 1초에 일 조 번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최근에 발명되기도 했다. 이렇게 촬영된 필름에서 자신이 원하는 한 컷의 장면을 얻는 일은 그간 사진가가 사물을 보며 추측했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일이 될 수도 있다. 소위 셀렉트(select)라는 의미로 작가의 밀착인화에서 잡지 혹은 신문에 게재할 한 컷을 선택하는 과정은 때로는 커다란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진가의 의도와 달리 전혀 다른 장면의 사진을 선택하는 편집자를 만나는 경우 신경전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이 한 말로 유명해진 “결정적 순간(Images a la sauvette)”이라는 표현이 한편으로는 사진 작업에 매우 소중한 방식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든 형식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즉, 여러 컷의 사진과 매우 많은 수의 필름을 사용한 사진가가 그것을 재확인하여 골라내는 작업을 할 때 촬영 당시의 역할보다 편집하는 능력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매그넘에서 카르티에 브레송의 역할도 그러했다. 르네 뷔리(Rene Burri, 1933~2014)의 회상에 의해 알려진 것처럼 매그넘 사무실에 있던 그의 책상 위에는 늘 다른 사진가들이 촬영한 밀착인화 더미가 놓여있었다. 그가 다른 사진가들의 밀착인화를 마음껏 살펴보는 특권을 누렸으며, 동시에 그는 다른 사진가의 “결정적 순간”을 ‘결정’하는 역할도 한 것이다. 바로 밀착을 통해서 말이다.
또한, 밀착인화는 폭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한 롤의 필름에 찍힌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찍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으며, 작가가 한 대상에 어떻게 접근해 들어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으며, 어떠한 성격의 사진가인지도 대략 알아챌 수 있다. 나아가 사진가가 무슨 필름을 썼는지, 그 필름의 현상을 제대로 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가 필자에게는 매우 희귀하며 의아하게 느껴진 것이다. ‘다 보여주겠다’고 하니 그렇다. 대체로 유명 작가의 경우 자신의 촬영방식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다. 사진가 강운구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기업비밀”이다. 기업비밀은 한번 노출되면 따라 하기가 너무도 쉽기에 가능한 한 자신만의 것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 나아가 어떤 작가들은 아예 촬영한 필름을 현상하여 네거티브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컷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된 몇몇 필름을 모아 밀착인화를 만들어 마치 자신의 촬영이 매우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모든 비밀이 들어있는 곳이 바로 컨택트 시트이기에 전시를 살펴보는 내내 즐거웠다. ‘훔쳐보는 즐거움’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터.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사건 혹은 사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앞에서 흥분에 떨려 집념을 불살랐을 사진가들의 내밀한 면을 엿보는 일이 어찌 야릇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

매그넘 (19)

EXHIBITION FOCUS 2015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부산시립미술관이 1999년 지역의 청년 작가를 발굴해 지원하고자 기획한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이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이같은 시도는 단순히 청년 작가를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역미술의 잠재력을 확산시키고 부산 미술의 풍부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다. 올해 선정 작가인 박상은 송기철 송진희 이은영 4인의 인터뷰와 함께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를 짚어보고 향방을 모색하는 글을 통해 부산미술의 가능성을 주목해보자.

미래의 지역미술과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

김만석 미술비평

반복된다는 것은 아직 이 세계가 완전한 파국으로 끝장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가 되돌아온다는 감각은 삶의 지속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바로 그 때문에 불투명하지만 모종의 희망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반복은 일종의 미래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이미 시작했지만, 항상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르게 시작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반복은 형식적으로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출발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이 도착하는 지점 역시 같은 장소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연되고 연기될 따름이다. 설령, 어떤 존재가 같은 장소에 동일한 방식으로 도착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기왕의 영토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도착한 그 장소를 낯설게 만들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요청하고 촉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술 장 내에서 정기적인 반복을 정기전이라고 명명할 때, 그것은 그 단체가 지향하는 규범화된 의미나 고착화된 질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복이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조형언어의 자리를 내부에 함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사정이 정기전을 통해서 미래와 희망을 예감하게 하는 밑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지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가 2015년을 기준으로 13회째를 맞이했다. 1999년 출발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16년간 지역미술의 ‘저변’에 대해 탐문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사고하는 데에 기여해왔다고 하겠다. 특히 미술관이 지역미술의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1998년 이듬해부터 바로 청년 작가들 지원에 나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시립미술관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역미술에 대한 상상은 ‘불모’ 담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왔는데, 이는 ‘지방’을 통치의 대상으로 구조화하려는 다종다양한 역사적 전략에 따른 내부 식민화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지역 인력풀이 왜소화되는 구조를 피하기가 어려웠으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부정이나 배타적 지역주의가 나타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시립미술관의 등장은 이러한 대립적 구도를 비켜서 청년 작가들에게 지역미술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중심과의 매개 없이 다양한 조형적 실천 현장과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이 IMF라는 전대미문의 ‘환란’으로 규정된 시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환란’이라는 수사적 표현은 결코 과장일 수 없지만, ‘불모’ 담론이 횡행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축소된 것을 떠올리면, 그 한가운데서 탄생한 시립미술관과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젊은 작가 새로운 시선>과 같은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은 지역미술의 미래와 희망을 가늠하게 하는 표지라고 해도 과언일 수 없다. ‘작가’ 생산 자체가 위축되는 시기였고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일 자체가 힘겨운 상황에서 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의 작업을 연구하고 이를 지역사회와 한국 사회 전체에 알리는 과정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작가로 활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뼈대의 하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을 현장으로 한 대안공간들의 활동 역시 청년 작가들에게 중요한 기반과 자산으로 받아들여졌음은 물론이다. 대안공간과 미술관 각자가 지향하는 활동과 역할이 일치할 수 없지만, 시립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지역의 청년 작가들에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극과 힘을 준 것은 분명하다.

미술관의 도약을 기대하며
그렇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의 이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기획을 단순히 지역 시립미술관의 기능 가운데 하나로 간주해선 안된다. 정치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립미술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이상, 이 기획은 단순히 새로운 조형언어를 소개 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그 이상의 차원을 함의한다. 이 전시가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을 경유함으로써 반복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반복 자체가 거꾸로 미술관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청년 작가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반복이 미술관의 지속과 미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작가 배출의 중요한 제도인 ‘미술대학’의 위축은 미술관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구조를 뛰어넘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교육부의 예술대학에 대한 압박이 꾸준히 이루어져, 통폐합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역 미술대학은 실질적으로 미술학과의 ‘폐지’를 선고한 상황이어서 청년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연구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일은 이전보다 그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기획 자체가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밑받침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창조경제의 광범위한 도입 역시 지역 청년 작가들의 창조적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지역 미술의 근간에 중요한 사안이다. ‘굴뚝 산업’에서 ‘굴뚝 없는 산업’으로의 전환에 예술의 창조성이 널리 요구되는 실정이고 지역의 산업이 ‘환란’을 통해서 ‘재구조화’된 이후 문화예술이 지역 산업의 한 뼈대로 구성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치경제적 동학의 핵심이 바로 청년 작가들의 인프라와 생산에 연결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창조경제가 예술가들에게 신뢰할 만한 산업의 형식일 수는 없다. 다만 국가 차원의 이러한 요구가 왜곡된 방식(창조산업은 독려하되 창조적 인력을 생산하는 학문과 실천은 폐지)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기왕의 청년 작가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은 요식적인 차원을 넘어 심화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청년 작가들의 예술적 창조성을 지역과 한국사회 그리고 글로벌한 맥락에서 구성하고 논의하고 알리는 작업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지역미술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수행되어온 ‘부산학’의 성과와 시립미술관의 독자적인 연구 성과 축적을 통해서 지역미술이 주체화될 수 있는 새로운 맥락들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결코 짧은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국적 차원의 미학 생산 방식을 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의 수준을 포괄하는 미학이나 문화연구는 시립미술관의 체제와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할뿐더러 활동 반경 역시 기존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식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맥락만 살펴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왜관에서부터 식민지, 광복, 6?25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서 부산이 항상 가시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교류와 만남의 장이었다는 사실 역시 부산시립미술관에 이러한 기반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기반의 중추가 예술을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청년 작가들이고 이들이 부산 문화 전체의 미래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귀가 없을 것이다.
혹여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들을 호출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다만 기왕의 미술 장이 갖는 폐쇄성이나 한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차원의 용법 정도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기할 필요가 있다. 청년 작가에 대한 지지와 응원은 그들의 작업이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15>에 참여한 송진희의 작업은 ‘아카이빙’ 작업이 갖는 형식을 전유하면서도 그것을 작가라는 위상으로 독점하고 편집하여 제시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성매매 경험 여성’과 ‘일반시민’, ‘예술가’, ‘활동가’를 수신인으로 이들이 다시 완월동 ‘성매매 경험 여성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녀들로부터 발신된 편지들을 받아 전시장에 펼쳐 놓았지만,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그녀들 스스로가 누구나가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자신을 일종의 ‘문서고’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가시화되거나 왜곡된 형상화를 통해서만 드러났던 그녀들의 삶과 목소리가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거나 대변되는 대신 능동적으로 문서고를 구축하도록 요청됨으로써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의 자리를 그녀들과 나누는 데에 이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들이 두런두런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을 작품화할 수 있는 것은 송진희 작가가 청년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에 없던, ‘작가’의 영역을 진정한 의미에서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바로 문서고(형상화의 가능성과 가시성의 자리)라면, 미술대학의 위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은 자명하다. 송진희 작가가 취한 전략들이야말로 다른 의미에서의 동료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문가 체제나 탁월함의 기예는 그것대로, 이와 달리 시민들의 삶의 탁월함을 생산하는 작업은 또 다른 방식을 통해서 모두 응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동일한 도착점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는 청년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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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범창살 철제대문 가변설치 2015 (왼쪽) 벚나무 설치 2015

<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 방범창살 철제대문 가변설치 2015 <자유를 위한 최소 소건>(왼쪽) 벚나무 설치 2015

송 기 철
1982년 태어났다. 동의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의대학교 효민갤러리에서 석사학위 청구전을 열었으며 (구)백제병원에서 열린 해체둔벙전에 참여했다.

주로 개념적인 작업을 선보였는데, 최근 강조하고 있는 대립적/모순적 상황에서 ‘빼기’의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계선 흐리기>는 물고문을 하는 장면과 심폐 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각각 A3용지 앞뒤에 인쇄된 작업이다. 소생 기술의 발달이 장기이식 기술의 발전과 동일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소생 기술은 장기 보존 기술이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술이다. 마찬가지로 전쟁포로를 잔혹하게 고문해 얻은 정보는 많은 수의 아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술로 작용한다. 따라서 전혀 다르게만 보이던 두 행동 이면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하나의 기저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 대면하게 되는 대립적 상황에서의 선택은 거짓 선택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빼기’는 어떠한 선택을 하든 결과가 같을 것이라는, 거짓 선택의 종속에서 과감히 우리의 선택을 빼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설치, 영상, 사진작업을 한 공간에 선보였는데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는 창살이라는 오브제를 공중에 매단 작업으로,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계급적 아파르트 헤이트의 유령은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며 사회-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를 무수히 생산한다. <자유를 위한 최소 조건>에서는 나무로 비유된 배제된 자들이 자신을 구속하는 내장으로써의 뿌리를 불태운다. 이것은 배제된 자에서 사회-정치적인 주체로 이행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벌거벗기는 공간>은 버스터 키튼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그 사회-정치적 주체가 계급적 아파르트 헤이트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세계를 창출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창살 사이에 있는 철제 대문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벌거벗기는 공간>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작업들 또한 각자 다르게 작동하면서도 이러한 주제 맥락 안에서 이야기들을 채우며 이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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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버스 위에 흑연 가변설치 2015

<망각은 없다> 캔버스 위에 흑연 가변설치 2015

이 은 영
1982년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 국립고등미술원에서 학사, 석사 과정과 스위스 제네바고등미술원(HEAD) CERCCO 석사 연구과정을 마쳤다. 제네바 Milkshake Agency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징성이 강한 드로잉 작업은 어떤 배경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이미지들은 대부분 내가 일상생활에서 수집한 것들인데 나의 기억과 상상을 합친 결과물이다. 상징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한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중의적인 알레고리의 특성을 가지는 작업들이다. 개념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소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작가가 제시하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전시되는 장소에 따라 관람객은 이미지의 개념을 자신이 가진 복합적인 지식과 상황에 맞춰 변화시킨다. 나는 그 개념에 대한 정의의 자의적이고도 타의적인 변화 혹은 변질이 흥미롭다. 그것은 비단 작업의 해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지금 보고 믿는 것들의 근본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면 한다.

산과 물결의 일부를 표현한 작업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2015년 4월 개인전을 준비하며 제네바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가 세월호 1주기 였다. 그리고 그 즈음 유럽으로 넘어오려던 수많은 난민선이 지중해에서 전복되었다.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나 8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나는 어떠한 것을 할 수 있을까. 오랜 생각 끝에 내가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로 사람들과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다만 단면적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하고 생각하게 하며 토의하게 하고 나누게 하는 것이 민주사회구성원이자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넘쳐나는 비극에 담담해진 사람들의 감정을 조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자극하고 예민하게 하는 것. 그 사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5년 5월 제네바 개인전 때 원래 하려고 했던 벽화 대신 그려넣은 작업이 <+4038m> 이다. 스위스인들에게 산이란 오직 스위스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스위스사람들은 내가 만약 그들의 공간 속에 산을 그려 놓는다면 당연히 스위스산이며 내가 그들의 자연에 심취하여 산을 그려놓다고 생각할 것이라 예상했다. 에베레스트 8,848m-몽블랑 4,810m=4,038m. 지구 반대편 네팔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없이 각자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 우리에겐 멀고 낯선 것에 대한 차이, 그리고 눈앞에 놓인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에 취해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과의 간극에 대해, 스스로 믿고 정의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세라믹으로 바다의 수면들을 재현한 연작은, 각기 하나하나의 작품에 붙여진 이 숫자들은 세월호와 난민선이 전복된 날짜들이다. 네모난 블록형태는 분절된, 그러나 결국 모두 연결되어 공공의 기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마치 이 세상 모든 바다가 이어져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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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프린트 80×145cm 2014 아래 (오른쪽) 비디오 3분30초 2015

< Anxiety-아스팔트 > 디지털 프린트 80×145cm 2014 아래 <누군가의 상처 1>(오른쪽) 비디오 3분30초 2015

박 상 은
1988년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2012년 효원문화회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 <Blue Whale>을 열었으며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립미술관 금련산갤러리,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14 <무빙트리엔날레-메이드인 부산>에 출품했다. 제7회 국제비디오페스티벌 우수상을 수상했다.

피부묘기증(피부를 긁거나 스치는 등의 경미한 외부 자극에도 붉게 부풀어 오르는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독특한 증상은 남과는 다른 특이점이다.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몸에 새기거나, 아스팔트, 매립지의 균열 현상과 개인의 상처를 교차시키기도 했다. 작가 자신과 외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설명해 달라.
작품을 봤다면 느껴지겠지만, 피부묘기증이 있다 해도 이렇게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물리적인 아픔이 수반된다. 내 작품은 이 아픔을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껴지는 촉각적인 아픔이 그들의 상처가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한낱 이런 행위를 통해 나와 관람자가 공감하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겪는 복합적인 상처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Anxiety>는 성과사회 속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매립지의 균열 이미지와 연결한 이야기다. 이전 작품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의 몸을 빌려 보여주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대인의 불안과 매립지의 균열 그리고 나의 몸 이렇게 새 개를 연결시킨 것이다. 갈라지는 땅과 부어오르는 내 몸, 그리고 현대인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영상작업과 사진 작업에는 특별한 내러티브가 엿보이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작품의 주제는 ‘세 젊은 여성의 상처’다. 이 세 명의 여성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주위에서 ‘걸레’, ‘남자 이용해먹는 나쁜 년’ 소리를 듣거나 혹은 ‘처지에 맞게 살라’는 얘기를 들으며 상처받는 여성들이다. 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중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적인 사정을 발견했다. 비록 남과 공유되지 않는 특수한 경험, 즉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패턴이지만 그 아버지란 존재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면 이 문제는 단순히 이들만의 어떤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돌아가는 패턴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 작업과의 연장선에서 이들의 상처를 공유하며 치유해 나가는 것도 작업의 과정으로 보고 싶었다. 이전엔 촉각적인 아픔이 느껴지는 불편함이었던 데 반해 이번에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은 이 패턴을 보여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몸을 통해 발언하는 방식, 특히 피부묘기증이라는 신체적 특징이 지금까지 작가로서 차별화된 지점이라 하겠다. 한편 이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고 불합리한 지점들에 저항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어려움이 컸다. 개인적으로는 신체작업을 하면서 신체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었고 해체할 수 없었다. 노출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아마도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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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봉투, 테이블, 의자 등 설치 2015

<완월동 편지> 종이, 봉투, 테이블, 의자 등 설치 2015

송 진 희
1982년 태어났다. 대안공간 반디, 요코하마 AAA갤러리, 아르코미술관, 김해 문화의전당, 미부아트센터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생활예술모임 ‘곳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은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이다.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을 말해 달라.
작년 5월 완월동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곳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완월동의 보이지 않는 역사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성매매 경험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성산업과 여성의 삶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 이곳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바깥으로 매개하는 통로, 사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완월동 편지>이다. 완월동이 성매매 집결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배제되는 것, 사라지는 것, 기록에 남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갈증이 늘 있었고, 완월동이라는 장소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일반인이 성매매 경험 여성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인 참여자들이 그들에 대해 발언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완월동 편지>에 참여자 과반수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언어를 담아서 답장을 보낸 것이라. 그 내용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성산업에 관해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은 추측, 낙인, 이슈화하기에서 끝나버린다. 추측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깐 성산업에 관해서 ‘생각’하는게 어렵다는 말과 같다.
왜 생각하지 않냐고 다그치기보다는 그 문제를 일상적인 차원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자들의 편지에서 ‘부담’이 느껴졌다면 ‘생각’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을 스스로가 수행해야 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 주변의 성매매장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편지,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 보는 편지, 재개발 풍경과 완월동을 연결하는 편지, 그 자체가 그 부담을 뚫고 나온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작업은 작가 개인의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다. 완월동을 포함한 성산업,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응답하는 ‘공동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작가는 공동의 기록이 가능한 사이-공간을 가꾸는 매개자이자 안내자이다. 없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이슬비 기자

WORLD REPORT | BRISBANE 8th Asia Pacific Triennial of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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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최정화 < Alchemy > 아크릴 LED조명 가변설치 2015 < Cosmos > 2015 아래 < Mandala of Flowers > (바닥 설치) 플라스틱 병뚜껑 2015 ‘APT KIDS’ 프로그램으로 출품된 작업. 개막식에서 아이들이 최정화의 작품을 이용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1993년 처음 개최된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APT)>가 올해 8회 대회를 맞았다. <APT>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이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아시아 국가를 리서치하여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려는 취지에서 설립한 전시다. QAG와 현대미술관(Gallery of Modern Art)에서 열린 <APT8>(2015.11.21~4.10)에는 특히, 한국의 최정화, 양혜규, 정은영 작가가 초청받아 그 의의를 더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APT8>의 현장을 현지 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한다.
현지취재, 사진=황석권 수석기자

전시장에 펼쳐진 아시아의 미술지도

황석권 수석기자

한국보다 1시간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Brisbane).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번째 규모의 도시인 이곳은 1859년부터 퀸즐랜드(Queensland)의 주도였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대부분 태평양과 인접하여 놀라운 자연풍광을 뽐내는 골드코스트(Gold Coast)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도심에도 이런 광경 못지않은 문화적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한국에선 초겨울인 11월이 브리즈번에선 여름이다. 이곳의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브리즈번 강을 건너자 퀸즐랜드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 QAG)과 현대미술관(Gallery of Modern Art, GOMA)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주변에 문화 콤플렉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번 <APT>가 열리는 두 미술관을 비롯, 박물관과 과학관, 주립도서관, 대규모 공연장(QPAC)이 강변의 산책길에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하다 바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of Contemporary Art, APT)>는 바로 QAG와 GOMA에서 열린다. APT 측은 1993년 처음 열린 <APT>부터 지금까지 이 행사를 통해 소장품을 확충해왔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와 차별성을 갖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차별점은 몇 가지 더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APT KIDS’를 1999년부터 전시에 적용해왔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 출간과 원거리 거주 아이들을 위한 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는 ‘APT CINEMA’를 열어 동시대미술과 영화(영상)의 조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운영방식을 이어온 <APT>는 지금까지 누적관람객 240만여 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56만여 명이 다녀가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시 형식에서도 차별점은 드러난다. 트리엔날레 형식을 취하지만 전시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 여기엔 루벤 키한 (Ruben Keehan) QAG 아시아담당 큐레이터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리서치에 근거한 학술적 연구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전시에서는 큰 주제하에 작품을 늘어놓는 형식보다 상이한 작업을 비교하면서 보는 데서 유의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전시기획팀의 의도가 숨어있다. 어떻게 보면 미술 빅이벤트들이 주제로 내세우는 ‘표어’들은 관람객에게 선입견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이 비슷한 평가를 내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APT8>이 주제를 드러내지 않기에 오히려 관람객은 스스로가 나름의 주제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관람객은 주제를 찾고, 주어진 맥락을 따라야 하는 스트레스 없이 전시장을 누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 형식이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것은 마치 아시아의 지도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는 <APT>가 꽤 오랜 기간, 그리고 지속적으로 아시아 지역 작가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를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출품작가를 보면 이른바 지역적 치우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터키부터 ‘중동’으로 불리는 서아시아, 인도 및 중앙아시아, 그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이 있는 동아시아까지 아시아 지역을 섭렵해 보여준다. 따라서 주제에 따른 동선에 맞춘 디스플레이 방식을 취하지 않는데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국가가 메인 공간을 차지하는 법도 없어 전시는 ‘비교’를 통한 관람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작가 칼리얀 조쉬(Kalyan Joshi)의 <Hanuman Chalisa>(2015)나 몽골의 노민 볼드(Nomin Bold)가 제작한 <Tomorrow>(2014) 같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신화적 상상력 가득한 작품을 만나다가 필리핀 작가 라야 마틴(Raya Martin)의 <Now Showing>(2008) 같은 일상을 담은 영상작업을 보게 되는 식이다.
전시 장소별로 몇몇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자. 우선 QAG. 이곳에선 이른바 토속적(vernacular)인 작품이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종족성이나 민속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이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동시대미술과 어떤 영향관계에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인 대니 멜러 (Danie Mellor)의 <Deep(forest)>(2015)은 작품 그 자체와 디스플레이가 마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정글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도 작가의 토속성 짙은 작품도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힌다. 앞서 소개한 대니 밀러의 작품과 비교하여 볼 때, 각 원주민 종족 고유의 종교성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칼파 파투아(Kalam Patua), 푸슈파 쿠마리(Pushpa Kumari), 만투 치트라카르(Mantu Chitrakar) 등의 인도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과 요소, 그리고 사건이 담긴 작품을 출품했다.
GOMA는 설치와 영상작업이 주를 이뤘다. 대부분 아시아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 사회상이 담긴 작업이었다. 중국 류딩(Liu Ding)의 <New Man>(2015)이나 필리핀 키리 달레나(Kiri Dalena)의 <Erase slogans>(2015), 뉴질랜드 안젤라 티아티아(Angela Tiatia)의 <Edging and seaming>(2013)이 그예다. 만나기 힘들었던 아시아 여러 국가의 작가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미얀마 민테인숭(Min Thein Sung)의 <Another Realm(horse)>(2014)은 만화를 출력해 부착한 벽면 앞, 천으로 외관을 덮은 군마상 작업이며, 네팔 힛만구룽(Hit Man Gurung)의 <Yellow helmet and gray house>(2015), 파키스탄 하이데어 알리 얀(Haider Ali Jan)의 <Laughing>(2008) 연작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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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 Sol LeWitt Upside Down-Structure with Three Towers, Expanded 23 Times > 알루미늄블라인드 637.5×1127×707cm 2015

혼융, 그 자체로 정체성이 되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서 3명의 작가(양혜규, 정은영, 최정화)가 출품했다. <APT>는 첫 대회부터 한국작가가 꾸준히 참여했던 바, 양혜규와 최정화의 작품은 퀸즐랜드미술관 로비에 설치됐다. 양혜규의 출품작은 <Sol LeWitt Upside Down-Structure with Three Towers, Expanded 23 Times>(2015)다. 작가가 솔르윗에게 헌정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밝힌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표현방식인 블라인드를 연결하여 구축했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에 설치된 이 작업은 하부 풀(pool)에 놓인 다리를 지나며 감상할 수 있다. 10m 폭에 3m 높이의 규모로 QAG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최정화의 작품은 바로 옆에 설치됐다. 그의 <Alchemy>(2015)와 <Cosmos>(2015) 또한 양혜규 못지않은 규모인데, 플라스틱 체인이나 구슬 등을 엮은 형형색색의 줄을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형태다. 정은영 작가는 국극 배우의 세계를 조명한 <Act of Affect>(2013)를 출품했다. 전시기획 담당자는 “관람객들이 한국인의 삶, 특히 한국여성의 삶에 접근하게 하고 싶었다”는 취지를 밝혔다. 또한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작품의 디스플레이에 있어 강렬하고 성숙함이 발현되어 매우 세련됐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앞서 전했듯 <APT>의 차별화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최정화의 작업도 전시와 아이들 프로그램에 동시에 출품됐다. 전시 오픈식이 끝나고 작품 아래에 마련된 원형의 놀이터는 최 작가가 마련한 여러 크기와 형태의 플라스틱 병뚜껑을 맞춰 색다른 형태를 만들며 노는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주정부 문화부 장관이 이곳을 직접 찾아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체험하는 광경은 이례적이었다. 이처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여느 미술 빅 이벤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키한 큐레이터는 아이들을 미술관의 중요한 관람객으로 대하고 있다며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환영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람객은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없다면 전시장을 찾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예술작품은 관람객을 만날 특별한 기회를 놓칠 것이다. 아이들은 본디 창의적인 존재다. 그리고 어른이 거부하는 예술의 형태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시대미술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람객이다.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예술을 접하는 기회의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생각하고 있다”고 <APT>가 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중요시 하는지 설명했다. 그래서 매회 <APT>는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출품하는 작가를 선정한다고.
전시를 둘러보면서 <APT>가 왜 아시아미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지 매우 궁금했다. 역사적으로 백호주의가 기승을 떨친 전력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랜 기간 이진 이민정책이 가져온 문화의 혼융이 이제는 바탕에 깔릴 정도가 되었을 것이고, 시장의 시대에 접어든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서구이자 아시아라는 묘한 정체성을 가졌기에 “이 지역이 걸어온 문화적 정체성의 혼재와 전이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스스럼이 없다”는 점을 오히려 강점이자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유진상, 《월간미술》, 2016년 1월호, 104쪽) 즉, 그들은 여러 문화의 혼융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분석에 대해 전시장에서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동의했다. 더불어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가 그토록 발견하려 발버둥친 아시아성에 대한 단서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APT8> 같은 전시는 모호하고 좀처럼 그 외양을 드러내지 않는 ‘아시아성’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서구의 시선으로 보는 아시아미술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루벤 키한, QAG 아시아담당 큐레이터) ●

니콜라 몰레(Nicolas Mole)  2015

니콜라 몰레(Nicolas Mole) < They Look at You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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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 강에서 바라본 GOMA전경

브리즈번 강에서 바라본 GOMA전경

interview

“아시아 미술의 특징은 오랜 역사와 빠른 변화의 조합”

루벤 키한(Reuben Keehan) QAG 아시아미술 담당 큐레이터

1993년에 시작된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PT)>는 한국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우선 <APT>를 소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다.
<APT>는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아시아 국가의 미술에 초점을 맞춰 3년마다 퀸즐랜드미술관이 주최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전시는 갤러리 내부 기획으로 열리며, 다수의 출품작을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다.
1993년 처음 열렸으며 서구의 미술관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국가의 미술을 선보였다는 독특한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전시의 규모와 시야를 넓혔다. 1회 <APT>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남태평양과 동남아,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미술에 초점을 맞췄다가 제2회 <APT>부터는 이들 국가를 포함해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참여국을 넓혔다.

알려졌다시피 일반적으로 큰 미술이벤트는 특별한 주제를 내건다. 그러나 <APT>는 이러한 주제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전시의 특별한 주제를 표방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APT>가 매우 복잡 다양한 세계 미술작품을 아우른 학술적 연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국가에는 약 45억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따라서 특정 주제에 맞는 특정 작업을 찾는 것보다 상이한 작업들끼리 대화하게끔 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해서 인도 토속미술 옆에 전시된 최정화 같은 작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세계의 예술을 비교하는 것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이번 <APT8>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 인접국가의 동시대미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연구를 통해 발견한 아시아의 정체성과 아시아 작가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를 말하라면 아시아를 통틀어 발견되는 ‘융합’의 다른 정도라고 하겠다. 아시아는 수천년 동안 문화와 언어 그리고 전통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구화는 이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현상인데 작가들이 서구의 재료 혹은 테크닉을 이용하더라도 각자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한 차별화된 시각에서 작업한다.
간혹 작가들이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와 관련 있는 이슈를 서구의 기법을 이용해 작업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동시대의 이슈를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이 내가 아시아 미술 전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이다. 나는 동시대 아시아미술 전문가로서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미술에 특별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여기는 세계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지역이며 새로운 경향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미술계는 기반이 잘 구축된데다 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동시에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몽골 등지에서도 다양한 미술의 출현을 목격했다. 아시아의 오랜 역사와 빠른 변화의 조합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는 매우 낯설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은 유럽에서 온 정착민, 원주민, 그리고 1970년대부터 유입된 이민자, 즉 라틴아메리카, 중동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 인접국가 등지에서 온 이들의 미술이 혼융된 매우 독특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관람객이 <APT>에서 목도하는 바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은 국제적이지 않아, 해외에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라고.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국제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의 강점은 앞서 말한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후 APT의 행보에 대해 묻고 싶다.
8회 <APT>를 개최하고 이제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 상태다. 다음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다만 각 <APT>는 그 자체로 독립된 전시이지만, 연속된 전시이기도 하다. 다음 전시를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당장 할 일은 리서치 진행 계획을 수립하고 과거 22년간 전시를 녹여낼 수 있는 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브리즈번=황석권 수석기자

ARTIST ESSAY 문화가 이어지는 낭만의 성(城), 라 나풀(La Napoule)

위  나무  가변설치 2015 아래  설치장면 2015

위 < Je Suis… > 나무 가변설치 2015 아래 < Je Suis… > 설치장면 2015

예술적인 공간에서 받은 영감

조숙진 작가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젠가 내 집을 짓게 된다면 침대 위에 하늘이 보이는 창을 만들어, 밤이 되면 까만 밤하늘에 수놓인 별을 바라보고, 비가 오면 창에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도 보고 빗소리 들으면서 잠들 수 있는 그런 창을 만들리라 꿈꿨다. 경계를 나누는 담은 없애고, 집 앞마당에 커다란 나무를 심어 어릴 적 타고 놀던 것과 같은 간단한 그네를 달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동네 아이들이 탈 수 있게 말이다. 작은 문고리까지 직접 디자인해 집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살아가는 동안 이 꿈은 가끔씩 되살아나곤 했다. 남프랑스 ‘라 나풀 (La Napoule)’이란 성(chateau)에 자리한 아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약 한 달간 그곳에 머물면서 다시 그 꿈을 떠올렸다.
지중해 바로 옆에 있는 이 성은 14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한 부부-헨리와 마리(Henry and Marie Clews)-가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에 구입하여 약 18년 동안 함께 디자인하고 개조해가며 증축했다. 헨리는 뉴욕의 부유한 은행가(banker)의 아들로 잠시 은행가로 일하다 조각가가 됐고 마리는 이 성의 완성을 위해 디자인과 조경을 틈틈이 공부했다고 한다. 이 성은 원래 헨리의 작업실겸 부부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됐고, 가까운 예술인들의 모임공간으로도 쓰였다. 그러다가 1923년 헨리가 세상을 떠나자 마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1951년 라 나풀 아트 재단(La Napoule Art Foundation)을 만들었고. 이후 대중에 공개됐다.
이 성 중정에 세워진 건물의 중심에는 아치형 문이 있다. 문 위를 장식한 돌에는 ‘ONCE UPON A TIME…’ 이라 새겨져 있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산책하다 보면 당시 그들의 시간과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화려하고 장중하게 조각된 나무 문, 아치형 창문, 돌기둥, 나무책장 등 건물 세부와 가구 장식에는 H, C, M 또는 H, M 의 이니셜이 새겨져, 두 사람이 협력자로서 함께 의논하며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두 사람의 이니셜은 동반자로서 살아온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깊은 사랑을 상징하는 듯하다. 헨리의 작업실에는 그의 작품부터 의자에 걸쳐진 그가 입던 베이지색 작업 재킷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다.
나에겐 발코니가 있는 제일 좋은 침실을 준 대신, 약간 작은 작업실이 주어졌다. 이 아름다운 곳 주변에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소음과 소형 비행기의 소음을 2주간 견디다, 조용한 작업실을 요청했다. 결국 공사현장과 좀 더 떨어진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작업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작업실 창문으로 지중해의 맑은 물속을 내려다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니 내 안에 죽어있던 어떤 생명이 살아나듯 에너지가 샘솟았다. 세찬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즐거웠다. 마음이 충만해지고,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곳 정원은 영국식 정원처럼, 이곳저곳에 낭만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있었다. 철학가의 길, 소극장, 작은 규모의 클로이스터도 정원 주변에 세워졌다. 정원처럼 작가들의 작업실도 각기 다른 모습이다. 옛 소극장이 현재는 작가의 작업실과 갤러리로 나뉘어 쓰인다. 어떤 작업실은 등대처럼 둥근 돌탑 꼭대기에 있어 좁은 나선형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어두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면 만나는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탑 꼭대기 둥근 방, 돌 벽에 뚫린 작은 창문들,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파란 바다 때문이다. 어떤 작업실은 사각형 돌탑에 풀밭으로 된 너른 발코니까지 있어 탁 트인 지중해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위치, 크기, 형태, 풍경이 모두 다른 작업실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기 다른 특징이 살도록 꾸민 헨리와 마리의 창의적인 생각이 이룬 재미난 공간들이다.
난 이 낭만적인 성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해변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모래 위로 쓸려온 나무, 플라스틱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올 땐 열린 마음으로 새 작품 구상이나 스케치를 하리라 맘먹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니 점차 작품방향이 명확해져갔다. 많은 사람이 라 나풀은 깨끗해서 아무것도 주을 것이 없다 했지만, 이 아름다운 곳에도 버려진 물건이 있고, 버려진 공간이 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남부 프랑스에서 작품에 빠져 지냈다.
그곳에 머물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성 안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돌탑을 방문했다. 탑 옆에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지하 문이 열려 있어 조금은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난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 속에 돌무덤 2기가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었다. 마리와 헨리가 그곳에 안치돼 있었던 것이다. 돌무덤에는 그들의 개인적 특징과 취향을 반영한 돌조각이 새겨져있었다. 돌조각은 익살스럽기도 했지만, 전체 분위기가 숙연하고 낭만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그들의 죽음과 지고한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돌 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보이는 파란 바다의 움직임은, 공간의 정적과 어둠과 대비돼 더욱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의 염원대로, 무덤은 반쯤 열어놓았고 꼭대기에 그들만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 두었다. 헨리와 마리는 그들의 영혼이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그 비밀의 방에서 영원히 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의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이 내게 아주 가깝게 다가왔다. 그들이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만들어간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내가 품어온 꿈을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집을 짓겠다는 나의 어릴적 꿈이 단순히 내가 살집이 아니라, 이렇게 앞으로 올 세대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애에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능력과 순수한 열정이 있는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꿈을 이루어도 좋을 거 같다. 많은 작가가 혼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하고, 예술적인 공간에서 영감을 받으며 작업한다면, 우리의 감성을 울리는 따뜻한 작품, 닫힌 생각을 열리게 하는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뉴욕 웨스트 빌리지 ‘코넬리아 스트리트 카페’에서 한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부모가 자식들을 예술가가 되라고-시인이든 화가든, 음악가든-부추긴다면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나는 이 말에 깊이 동감한다. 분명 부정적, 폭력적인 에너지는 창의적인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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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did you leave or what did you lose? 〉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5 (photo by Rollin Leon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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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did you leave or what did you lose? 〉(부분)

조 숙 진 Jo Sookjin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와 플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를 졸업했다. 서울 뉴욕 파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8년 하종현 미술상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NEW FACE 2016 박지나

현실에 드러난 불가능한 존재

작품과 시(詩)의 교집합을 찾으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지만 박지나 작가라면 그 둘을 온전히 작업의 모티프로서, 도구로서, 매체로서 작용하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조소와 사진을 전공하고, 시를 쓴다. 그래서 박 작가의 작업은 조각과 사진, 그리고 시적 언어의 상징성과 압축 등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듯하다.
<다섯 개의 비와 강>(2012)은 못과 방울을 붙여 제작한 오브제를 한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작품이다. 그녀의 작업에 등장하는 ‘못’과 ‘방울’은 매우 일상적인 사물이며 그 형태와 용도, 성질이 공고하여 그것들이 작업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이에 대해 박 작가가 말한바는 이렇다. “못은 확실한 것, 그것의 끝에 ‘결합’한 방울 형태는 ‘허공’”이라고 하고, 이 둘을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대비되는 이 둘이 ‘결합하여’ 자신의 의미를 지우기도 하지만, 지워도 흔적으로 올라오기도 한다”고.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물었다. “이원 시인이 서문을 빌어 해주신 말씀이었어요. 이에 덧붙여 제 작업은 ‘극단적인, 그러니까 가장 먼 것 두 개를 닿게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가장 먼 둘이 이어지는 데도 이분법적이지 않다’고 말이죠.” 그러니 작가는 못의 다른 의미를 제시한다기보다는 그저 그 둘이 어떻게 있는 지를 봐주는 것, 그것을 관람객에게 주문하고 있을지도. “그래서 그 다른 성질의 두 사물이 같은 재료와 색으로 이뤄져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거죠.” 대립과 무화. 만남 그 자체를 발견한 작가는 이것이 마치 ‘비(雨)’와 같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라 고백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시’를 쓰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유난히 언어에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를 하면서 몇 번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자신 속에 자기가 아닌 것을 품고 불가능성을 드러내면서 존재한다는 것이 제 작업의 내용입니다. 그렇게 불가능성으로 존재할 때 사물은 사물 이상이 되고, 사물들이 서로에게 열어주는 공간에서 무엇이 발생하는 지 어떤 낯선 사건을 일으키는 지 관찰하고 발견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박 작가의 작업은 적확한 언어 사용을 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세계의 명확한 규정이 아닌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긴 언어라는 도구가 언제 견고하고 명확한 의미의 테두리를 만들었던가? 이는 미술사에 남은 수많은 작품이 언어의 불완전성을 근간부터 흔들었던 바에서도 입증된다. 그 사이의 간격은 상징이나 은유 등이 메운다. “시나 작품 모두 대상을 하나의 고정된 것으로 규정짓지 않죠. 어떤 대상을 지식의 대상으로 소유하지도 않고요.” 동의하는 제스처로 보였지만 다음의 말을 이어갔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것은 제가 그때그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 위해서예요.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은 존재가 기댈 수 있는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고요. 불가능성에 대한 방어가 아닙니다.”
그 불가능성을 시각화한 근작은 <계단을 세모로 만들기 시작할 때>(2015)가 아니냐고 묻자 “오르내리기 불가능한 계단을 설치하고 이와 병렬로 사진 촬영한 같은 형태의 계단 사이에는 ‘불가능의 견고함’ 혹은 ‘불안정한 견고함이 존재합니다.” 그 어느 하나의 요소만이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 4월 8일부터 29일까지 최정아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 준비에 한창인 박 작가는 여전히 “자신 안에 타자를 품고 존재하는 방식”을 화두로 삼고 있단다. 그래서 ‘시’를 쓴다. 그것이 사진으로 혹은 조각설치로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황석권 수석기자

박지나
1978년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Brooks Institute of Photography, Digital Imaging, 홍익대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2014년 SPACE22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총2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다수의 그룹전과 기획전에 참여했다.

 피그먼트 프린트 100×150cm 2012

<다섯 개의 비와 강> 피그먼트 프린트 100×150cm 2012

 

NEW FACE 2016 박여주

공간 너머의 공간

공간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 공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조직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인식을 통해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박여주는 지속적으로 공간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작업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기하학적 구조물에 가깝다. 작가는 개선문, 리알토 다리 등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종교적이거나 역사적인 공간에서 작업의 모티프를 가져왔다. 기존의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작업에 어떤 내용을 삽입하기보다 소거하는 방식으로 공간과 그 형태에 집중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스케일의 새로운 공간으로 치환시켜 관람객의 낯선 경험을 유도한다. 작업은 일상의 공간 속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를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작업 자체가 일상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 구실을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자체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특히 박여주는 문, 계단 등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지 않는 경계의 공간을 탐닉한다. 작가는 이 공간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이 공간을 넘어가면 다른 세계로 갈 것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최근 문화역서울 284와 재능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신작은 설치 구조물 대신 기존 건물, 특히 계단에 조명을 설치해 낮과 밤 사이의 시공간을 의미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제안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조명이 등장한 것은 2013년 사루비아다방 개인전부터다. 구조물 설치만으로는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요소가 제한적이고, 관람객의 몰입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이때 조명은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며,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장치이자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치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재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구사구용(九思九容)전>(1.19~2.28) 출품작 <수태고지 Ⅱ> 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잉태 사실을 알리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배경이 되는 건축 구조물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이 구조물에 홍등가 특유의 붉은색 조명을 설치했다.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순간에 가장 세속적인 공간을 결합하며 박여주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유학 이후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성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그렇다고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30대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박여주의 작업은 서구적인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국내 활동을 하면서 한국적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묻자 작가는 유학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양적인 공간의 요소가 드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구식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전통적인 한옥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작가가 한국적 공간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강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박여주는 요즘 문래동 철공소의 오래되어 빛바랜 철문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앞으로 그녀는 회화에 다시 주목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슬비 기자

박여주
1982년 태어났다.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2010년 슬레이드 예술대학(The Slade School of Fine Art, UCL)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3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夜想>을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경기도미술관, 서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창문과 조명에 라디언트 라이트 필름 2015 재능아트센터 설치 장면

< Magic Hour >창문과 조명에 라디언트 라이트 필름 2015 재능아트센터 설치 장면

NEW FACE 2016 박광수

선(先) 긋고, 선(線) 채우기

“선을 긋다”는 관용구는 어떤 인물이나 단체의 경계를 확실히 지을 때 사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박광수의 드로잉은 ‘선을 긋기’보다 ‘선을 그리는’ 혹은 ‘선을 만드는’ 행위에 가깝다. 그의 작업은 가늘거나 굵고, 짧거나 긴 선의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모호한 공간을 이뤄낸다. 각 선은 그들이 캔버스라는 제한된 공간에 놓이는 순간, 저마다의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선의 역할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오히려 눈을 감은채 부분 부분을 더듬으며 형태를 찾아가듯 작가는 밑그림 없이 선을 그려간다. 선을 그리고, 그 선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선을 더한다. 적재적소에 균일한 선이 위치하지만 일관된 선의 반복이 지겹고 심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리듬감 있는 표현과 구성을 위해 작가가 직접 제작한 도구가 한몫을 한다. 스펀지로 삼각형태의 펜촉을 만들고 이를 각목에 붙여 덧칠할 수 있는 다양한 굵기의 펜을 고안했다. 펜 제작은 드로잉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구체화됐다. 주로 수첩이나 작은 종이에 드로잉을 해온 작가는 2012년을 기해 몸의 부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화의 크기 확대는 자연히 공간과 배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드로잉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아 평면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런데 작가 박광수는 왜 드로잉을 고집할까? 선은 분명 표현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선은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많다. 기호처럼 단순한 묘사가 가능한 기본단위가 선이다. 면보다 선이 이야기 전달에 효과적이다. 공간을 모두 장악하지 않지만 가득 메울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캔버스, 펜, 색의 한정을 조건으로 걸고 그 안에서 변주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유희로서 즐기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드로잉의 활용을 통해 드로잉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한다. 작년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선보인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의 경우 음악을 함께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 드로잉보다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가능하고, 내러티브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종이 위에서 못다펴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물론 그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이야기를 뿜어낸다. 그는 이야기를 굳이 숨기지 않지만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새, 나무, 숲 등 익숙한 자연의 소재를 배치하여 비일상적인 공간을 구성해냄으로써 이질적인 공간을 만든다. 여기에는 다각의 시점이 공존하며, 현재성을 뒤흔들며,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선이 채워낸 구상적이지만 추상적인 〈좀 더 어두운 숲〉으로, 긴장감 넘치는 흑백의 비현실적 〈빈 허공〉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관객은 그 안에 서있는 또 하나의 ‘선’이 된다.
임승현 기자

박광수
1984년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 갤러리 비원에서 열린 첫 개인전 〈2001: A SPACE COLONY〉 이후 4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다수의 그룹전과 협업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며, ‘금호영아티스’로 선정되어 1월 8일부터 2월 24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전시광경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전시광경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5

같이 식사할래요?

이따금 사람들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런데 식사는 어떻게 해요? 늘 사먹어요? 점심과 저녁 모두?”
“그게… 해먹기도 하고, 사다 먹기도 하고 그래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대충 먹고요, 아니면 그냥 굶어요…’다. 한 블록만 걸어나가도 낮이건 밤이건 맛집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그만큼 맛집이 많다고 소문난-연남동에 살면서도 밥 먹는 일은 매일 고민되는 일이다.
처음엔 점심 한 끼는 만들어 먹을 계획이었다. ‘원플레이트 퀴진(one plate cuisine).’ 접시 하나에 담기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식사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메뉴도 짜고 레시피북도 만들었다. 핫플레이트와 전기밥솥을 포함해서 프라이팬, 냄비, 국자와 집게 등 몇 가지 기구들도 구비해두었다. 그러나, 먹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재료 준비- 조리-식사- 뒷정리로 이어지는 과정이 길고 번잡했다. 작업실에는 싱크대도 조리대도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음식이라 해도 너저분한 상황을 초래했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음식냄새가 나는 것이 무척 거슬렸다. 음식 냄새가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책이다, 책.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다, 어느 소설가의 북 콘서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작업실을 구한 그 소설가는 작업실에서는 집필 외의 활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도 작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생활의 흔적이 끼어들지 않는 무균의 장소로 남겨두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 소설가의 목소리에 깊이 감화했다. 그리하여 원플레이트 퀴진의 생활화를 선언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작업실에서는 절대 요리를 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도, 가끔씩 뜨거운 밥과 가벼운 반찬들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나 간단하고 심심하게 만든 파스타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 끼를 때우려고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나, 이 동네에는 심심하고 가벼운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음을 깨닫고 서운할 때를 대비해 냉장고에는 몇 가지 재료들이 늘 구비되어 있다.
얇게 저민 마늘과 흑후추, 올리브오일로 맛을 낸 파스타. 리넨 클로스를 깔고 파스타를 그득 담은 접시를 놓고 커트러리를 얌전히 놓는다. 여기에 바게트 몇 조각을 곁들인다. 타임이나 바질을 좀 뿌리고 싶지만 이 정도도 근사하다. 밥을 먹고 싶다면 잡곡밥에 김, 명란젓, 가벼운 절임채소만 있으면 된다. 적당한 크기로 썬 양배추를 마늘기름에 볶아 향을 내고 간장(폰즈소스도 좋다)으로 간한 다음,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면 완성되는 양배추 볶음은 따뜻한 반찬으로 아주 좋다. 작업실에는 늘 차가 있으므로 오차즈케도 만들 수 있다. 밥에 일본 증제녹차를 붓고 명란젓, 오징어젓갈을 곁들이거나 와사비향이 나는 후리가케를 조금 뿌리면 담백한 한 끼가 된다. 근처 빵집에서 사온 바게트의 속을 갈라 버터를 바르고 치즈와 햄을 넣어 간단 샌드위치도 만든다. 프랑스에서 점심식사로 늘 먹던 장봉뵈르(jambon beurre) 샌드위치-바게트를 반으로 잘라 버터와 햄을 넣은 것-는 서울의 점심으로는 왜이리 부실할까…. 늘 그 생각을 하면서.
반면, 절대로 식당에 가지 않고 작업실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있다. 치즈를 듬뿍 잘라 넣고 화이트와인을 조금 넣어 끓인 다음 바게트와 감자를 찍어넣는 퐁듀다. 풍듀에는 내 첫 프랑스 체류지인 안시에서 보낸 겨울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시는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며 알프스 자락 끝에 있어 겨울이 특히 아름답다. 안시의 대표메뉴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르블로숑, 에멘탈, 콩테 치즈를 섞어 끓인 뒤 빵과 야채를 찍어 먹는 사부아식 퐁듀(fondue savoyarde)였다.
겨울은 퐁듀 팟과 워머를 꺼내는 시기다. 친구 몇과 단출한 모임을 계획하고 곧바로 떠올린 음식이 퐁듀였다. 보통은 몇 가지 음식을 테이크아웃해서 펼쳐놓고 먹고 마시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을 위한 작은 식탁을 차리고 싶었다. 연희동 사러가마트에서 에멘탈, 그뤼에르 등 몇 가지 치즈와 빵, 감자 등을 샀다. 와인은 친구들이 준비할 터였다. 작업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벨기에산 경성치즈와 스모키 모차렐라도 꺼냈다. 화이트와인을 조금 붓고 네 종류의 치즈를 섞어 냄비에 넣고 끓인다. 빵도 깍둑썰기, 찐 감자도 깍둑썰기다.
뜨겁게 데운 냄비를 가운데 두고 모두 둘러앉아 먹는 음식에 나는 특별한 애착을 느낀다. ‘원플레이트 퀴진’은 혼자 먹는 한 접시의 음식이지만 ‘원팟 퀴진’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먹는 식사를 뜻한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뜨거운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 시간이 아닐까? 그 따뜻함이 나는 늘 간절하다.
치즈가 바글바글 녹아 서로 엉길 즈음, 퐁듀팟에 옮기고 손님들 앞에 내놓았다. 약간 어두운 조명과 촛불 속에 겨울이 깊어간다. 뜨거운 치즈와 차가운 와인. 이 정도의 요리라면 작업실에 잘 어울리지 않은가. 밤이 깊어가는 만큼 와인잔도 비어간다. 이야기가 길어져도 괜찮다. 치즈는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

CRITIC 아티스트 파일 2015: 동행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5.11.10~2.14

 

정연심 홍익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국립신미술관이 함께 기획하는 큐레이션 프로젝트 ‘아티스트 파일’은 지난 여름 일본에서 먼저 전시된 이후 (일본 국립신미술관 2015.7.29~2015.10.11)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일본 국립신미술관은 보통 미술관과 달리 컬렉션을 하지 않고 주로 기획전 중심으로 일본 국내외의 동시대미술을 활발히 소개하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최근 지어진 미술관답게 대형 조각 및 설치를 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영상, 설치 작가들에게는 좋은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지난 몇 년간 두 미술관은 공동으로 ‘아티스트 파일’을 진행하면서, 특정 주제를 제한해서 선정하지 않고 말 그대로 아티스트들의 개별적 작업을 ‘파일’이라는 제목 아래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는 동시대 한일 작가들의 집단적 발언보다는, 개인적 육성과 반응을 더욱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개의 퍼즐이나 콜라주를 나열하는 다소 병렬적이고 주제 면에서 취약한 일면을 보인다. 2015년 아티스트 파일 전시에는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12개의 개인전(총 200여 점)이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넓은 공간감을 지닌 신미술관에서는 개인전에 가까운 스케일을 자랑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전’과 같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쿄, 뉴욕, 베를린, 런던 등을 베이스로 하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동시대 미술가들에게는 그들 특유의 작업방식과 공통된 ‘의식’과 같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 여섯 명은 개인과 사회의 심리적 관계와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이 일으키는 긴장 등을 여러 매체를 통해 되짚어 본다. 집단적인 ‘파일’이 아닌, 작가 개인이 취하는 섬세한 방법론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통분모를 도출하려는 시각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신미술관의 연구원인 요네다 나오키가 도록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일본 작가들은 예술 오브제의 사물성과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이미지의 역학 관계에 천착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는 2015년 아티스트 파일의 주축을 이루는 기슬기, 이성미, 이원호, 이혜인, 임흥순, 양정욱의 작업에서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흔히 엿보이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보지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이면들을 레이어드처럼 풀어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벌어지거나 동시대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인 양상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일상의 민낯이다. 그것은 주변 공간과 불편하고 낯설게 관계를 맺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슬기의 사진작업인 <Unfamiliar Corner>는 틈 사이의 공간이나 벽 등에 살짝 남겨진 신체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파편화된 신체(the body in pieces)처럼 불안정한 심리적 요소를 더한다. 사진 속에 있는 이의 긴장감은 보는 이에게 호기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기슬기의 익숙하지만 낯선 심리적 자극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경험한 이성미의 디아스포라적 시선과 마주한다. 이성미는, 교통사고로 깨진 자동차의 유리 파편들을 일일이 손으로 붙여 기억과 시간성을 작품 속에 구현하였다. 이성미의 작업은 ‘여성적 글쓰기’처럼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치환되었다. 유리 자체에서 나오는 비색의 독특한 색감은 고려청자의 마티에르처럼 묘한 잔상을 남긴다. 작가는 향으로 연기 작업을 하거나 다양한 드로잉 작업을 통해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에 성공적으로 동화하지 못하고 주변화된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기록한다.
이성미의 작업이 깨진 유리라는 다루기 위험한 재료를 주요 속성으로 사용한다면, 이원호는 ‘냄새’라는 후각과 ‘박스’라는 아슬아슬한 집이라는 공간을 재료로 삼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신작인 <부(浮)부동산> (2015)은 한국과 일본의 노숙자들이 사용한 바 있는 종이박스로 제작한 것이다. 그는 노숙자들이 집으로 사용하는 종이박스를 직접 구입하면서 이러한 매매과정을 모두 기록해 공개하였다. 그 집은 우리 사회에서 직면한 ‘부동산’이 상징하는 여러 가치를 생각하게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숙자들을 만지기조차 꺼리는 세태 속에서 투명인간으로 남아있는 홈리스를 연상시킨다.
현재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이혜인은 여행과 야외 사생을 통해 밤에 그림을 그리거나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이어나간다. 그는 작품 제목처럼 <수상한 야영객>(2013, 2015)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행위보다는 우연적 환경 속에서 장소의 기억을 더듬어 나간다. 어색한 붓 터치는 어눌한 말하기처럼 낯설다. 신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도중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비념>(2012)과 <다음 인생>(2015)을 통해 역사를 둘러싼 개인과 사회의 기억을 구현해냈다. 한편, 양정욱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단상들을 먼저 텍스트로 쓰고 이를 키네틱한 조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을 제작하였다. 영상작업과 사진, 설치 등이 많은 이번 전시에서 반복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양정욱의 작업은 음악적인 리듬감으로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 작가들의 작업을 세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런던에 거주하는 요코미조 시즈카의 사진작업에서 소름끼치게 언캐니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직접 유령을 본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Phantom> 사진들은 관람자들을 관음증적인 관찰자로 변화시켜 타자성을 경험하게 한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는 도미 모토히로가 레디메이드를 이용해 오브제의 관계성을 탐색한다면, 고바야시 고헤이는 일상의 사물과 언어의 관계성을 개념적으로 다루고, 데즈카 아이코는 직물을 해체한다. 그리고 모모세 아야는 배우의 몸짓, 목소리, 편집 과정 등을 통해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정치성을 폭로하고, 미나미카와 시몬은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캔버스에서 추상으로 환원시키는 연작들을 선보인다. 이들 12명의 작가는 한국과 일본 태생이기는 하지만 여러 도시를 베이스로 활동하므로 다른 동시대전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아티스트 파일’은 “지역적인 것, 세대적인 것, 이산적인 것”이 묘하게 만나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을 발언한다.

위 양정욱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 가변설치 2015

CRITIC 이준 즉흥환상곡-漁

페리지갤러리 1.7~2.25

정수경 미학, 미술이론

갤러리의 아담한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조금은 몽환적인, 작품들이 내뿜는 소리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뿌연 음향이다. 굳이 사운드아트라 할 것은 없지만, 이준은 소리를 이용한 작업을 유독 좋아한다. 그러나 그 음향은 조성음악처럼 편안하게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혹은 격앙시키는 유가 아니다. ‘즉흥환상곡’이라고 해서 쇼팽류의 음악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미디어와 데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그에게 즉흥은 랜덤 알고리듬에 가까우며, 환상은 머릿속에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 것보다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의식과 질서를 헝클어뜨리고, 그래서 현실 감각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데 가깝다.
음향의 이 같은 탈의식 효과 속에서 눈이 공간을 더듬으며 작품에 다가가게 된다. 전체적으로 유난히 눈에 띄는 장치는 ‘회전판’들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회전판 위로 펜, 연필 등이 남기는 흔적 역시 인터넷 포털을 통해 전달되는 실시간?혹은 시간차-데이터에 따른 ‘즉흥’적인 것이다. 즉, 작가가 통제력을 상당부분 상실하는 것, 그것이 즉흥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것이 작가가 정교하게 고안하고 통제한 틀/형식과 호응하면서 특별한 울림과 의미를 발생시킨다. 즉흥은 작가의 통제력 상실과 이어져 있지만 그 상실 역시 작가의 의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실은 작품과 공간을 장악한 보이지 않는 손이며, ‘즉흥’은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기획에 종속된 하나의 ‘의도된’ 효과이다. 과연 이준은 즉흥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세상이다. 선진자본주의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상인 대한민국, 서울. 그 세상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표면 뒤에 놓여 있는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은 비가시적인 힘들의 곡선과 불균형. 아파트 밀집도, 환율, 주식, 실업률 등등. 그러나 그는 그것을 찬찬한 관조의 대상으로, 의식에 각인되는 정적인 형식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그것이 원래 지닌, 쉽게 붙들리지 않는 속도감을 더한 동적인 미디어아트 설치의 형식으로 제시했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회전은 눈만큼이나 마음까지 어지럽게 흔들며 갑갑함을 더한다.
그 어지러움은 작품에서 시작하지만, 관람자들의 마음속에서 배가될 지도 모를 종류의 것이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힘들고 어지러운데, 예술마저 어지러워야 할까 싶은 마음으로 곁으로 걸음을 옮기면, “러브 미 텐더~.” 느리고 낮은, 둔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의식을 더욱 끌어내린다. 다정하게 마음을 흔들기보다는 왠지 욕지기가 날 것 같은 그 템포, 그 울림. 다가가 유리진공관 속을 들여다보면, 거무튀튀해진 인간 피겨들이 음파의 진동에 따라 날카로운 압정과 뒤엉켜 오르락 내리락 튕긴다. 진공관 밖에 서 있는 피겨는 그 불편한 공간을 벗어나 우아하게 서 있다. 뭘까.
또 그 옆에는 연도들이 적혀 동심원으로 구획된 회전판 위에 무채색의 크고 작은 피겨들이 놓여 있고, 그것이 LP 판처럼 돌아가는 가운데, 금붕어가 들어있는 비커를 가운데 두고 스피커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의 곳곳에 물고기들이 등장하는데 대략 뭔가 매개하는 중간자의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이 하는 일이 명확히 보이는 건 전시장 가운데 놓인, 물고기 두 마리가 물거품 대신 뻐끔거리며 내놓는 말풍선이 등장하는 TV 어항이다. 포털에서 전송된 검색어들이 그 출처를 알리는 단어와 함께 물고기가 말이라도 하듯 말풍선으로 전달된다. 세상에, 머리 나쁘기로 유명한 붕어들이 세상과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에게 세상에 관한 정보들을 전해준다. 믿어도 될까? 불편한데, 머리가 멍해서 깊이 생각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제대로 낚인 듯하다. 작가의 낚싯바늘에.
이준은 그간 미디어 포털의 메커니즘을 거리를 두고 보여주는, 대체적으로 유쾌한 시청각효과들을 산출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그에 비해 이번 전시에는 유쾌한 설치들 속에 불안과 불편을 심어두었다. 물고기와 피겨가 은근히 강한 비판적 힘을 발휘한다. 분명 인간 형상이고, 하여 인간세계의 압축판이지만, 바보라는 붕어들만큼의 활성도 갖지 못한 무기력한 존재들. 피겨들은 오직 작가가 미리 짜놓은 판 속에서 회전, 혹은 진동에 따라 수동적 움직임을 얻을 따름이다. 노이즈와 음악의 중간쯤 되는 음향 속에서 ‘저건 현실 속 우리와 다를 바 없어’라고 느끼게 되면 이준의 이번 작업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 된다. 이제 어쩔 것인가. 빙글 도는 회전판 같은, 다람쥐 쳇바퀴보다 더 납작해져버린, 수치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폐쇄순환회로를 어떻게 벗어날까? 과연 벗어날 수는 있을까. 이준의 답이 궁금하다.

위 이준 <레치타티보: 물고기의 목소리_ZFB600>(앞) 투명 LCD 어항, 자작나무, 금붕어, 컴퓨터 비전 시스템, 인터넷연결,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뉴스헤드라인, 날씨정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