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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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Net-Being > 폐집어등, 소금, LED, 스테인리스 스틸, 진동자, 스피커, 앰프 가변설치 2016 아래< Net-Being > 폐집어등, 나무상자, 폐선, 무빙라이트, 스테인리스 스틸, LED 가변설치 2012

혹시 어두운 밤바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밝히는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을 본 적이 있는가?
먹고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자들이 벌이는 사투는 그렇게 목격자와의 거리만큼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부지현의 집어등은 그렇게 ‘바다의 별’이 되었고, ‘절제’를 눌러 담은 용기(容器)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담담한 태도로 ‘확장된 판화’의 형식이 되어버린 작가의 집어등에 불을 밝혀본다.

반사하고 비추며 연결되는 인드라망

이나연 미술비평
보들레르의 통찰: “미미하고 아주 적을지라도 ‘현대사회’에 존재할지 모를 신비로운 미적 요소를 밝혀내는 데 투신하는 것보다 그저 ‘현대사회’는 모조리 추악할 뿐이라 단정짓는 일이 훨씬 쉽게 마련이다.” 덧없음 안에서도 영원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작가의 사명이란, 아름답지 않은 현실에서 끝끝내 실 한 오라기만큼의 단서를 찾아내, 그 한 오라기의 실로 옷을 짓는 일일 것이다. 밤바다가 유난스레 아름다워지는 시기. 오징어잡이 배들이 바다로 나가는 시즌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서로 거리를 두고 오징어가 걸린 그물을 거두어 올리는 배들을 육지에 자리 잡고 관망하노라면, 수평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놓인듯 보인다. 하늘과 바다를 잇는 오징어잡이 배에서 밝힌 등. 집어등이라 불리는 이 기능적인 조명은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배경삼을 수 있다는 기막힌 조건을 이용해 한철 눈부시게 빛난다.
부지현은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로서 집어등에 관심을 둔다. 양성주광성을 가진 어류를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도구의 조형성에 사로잡혔다. 그에겐 이 집어등이 ‘바다의 별’로 보였다. 혹자에겐 판화를 전공한 작가가 2003년부터 판화작업으로 주로 찍어낸 어선이 있는 풍경에서 2007년 집어등 설치로 넘어간 경계가 당혹스러울 만도 하다. 그런데 동판화로 형상화된 집어등을 그리던 시기를 넘어가면서, 집어등에 다시 배의 이미지를 판화로 새기던 중간지점이 있다. 설치작을 소개하던 초기인 2007년에 사용하던 집어등에는 일일이 에디션을 단 어선이 찍혀 있었다. 2008년 이후론 레디메이드 폐집어등 자체로 설치에만 주력하지만, 기성품인 집어등에는 마치 판화처럼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어떤 의미로 모든 공산품은 ‘찍어낸다’는 점에서 판화와 닮았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확장된 개념의 입체판화”다. 그렇게 판화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설치의 일부분으로 넘어간 집어등은 바람, 수조, 모래, 소금, LED 등을 만나며 번번이 신비롭게 확장됐다.
그의 작업을 처음 본 건 2013년 여름이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제주도에서 드문 화이트큐브 공간을 가진 노리갤러리에 들른 참이었다. 문을 통과해 상자 같은 공간으로 들어갔더니 포그머신에서 나온 안개가 투명한 판으로 가로막힌 너머공간에 가득했다. 그리고 안개 사이로 어렴풋하게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집어등 한 줄이 보였다. 안개가 걷혀 시야가 확보되려나 했더니, 다시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집어등은 아스라해졌다 선명해졌다를 반복했다. 그 좁고 폐쇄된 공간에 장대한 바다의 야경이 꾸려졌다. 그의 작업은 이상화된 바다의 모습을 닮았다. 하지만 바다도 집어등도 절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시 작가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불빛이 굉장히 밝고 뜨거움을 주는 고통의 물건”인 것이다. 생존을 위한 밥벌이 공간인 동시에 목숨을 위협하는 공간인 바다에서 뜨거움을 견디며 오징어를 길어올리는 노동의 심상을 부지현의 작품에서 찾기는 어렵다. 굳이 구분짓자면, 바다라는 현장에 침투한 노동의 정서를 전달하기보다는, 바다라는 자연과 어울리는 인공의 미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시도다. 그래서 작가는 바다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해 거울을 등장시킨다. 상을 똑같이 비추는 거울이 실제로는 허상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물건이라고 봤을 때, 집어등의 아름다운 표면을 비추는 가짜 이미지를 통해 그 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게다가 거울은 반사되는 표면의 뒷면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는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재료이기도 하다. 이 아이러니에 진지한 의미를 담아 끌어들인 거울조차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도 작품에 한걸음 더 다가가 깊이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집어등의 경우야 부지현의 트레이드마크겠지만, 거울을 재료로 삼은 작가는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쿠사마 야요이의 <거울방>과 김수자의 <숨쉬기-거울여자>다. 거울이 제공하는 공간의 확장성과 반복성에 착안해 환상적인 연출을 한 이 두 작가의 작업 방식에 견줘 부지현의 거울은 좀 더 개념적이다. 사진작가 다니엘 커클라(Daniel Kukla)의 <가장자리 효과(The Edge Effect)>와 설치작가 엘리슨 쇼츠(Alyson Shotz>의 <거울 펜스>가 부지현이 사용하는 방식의 거울에 보다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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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폐집어등, 나무상자, LED, 거울 실크스크린(100/100) 가변설치 2007 갤러리 모앙 설치광경

담담하게 감정을 자극하다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 다시 자연의 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식이다. 2013년 시작된 <존재의 그물망(Net-Being)> 시리즈에도 아크릴 미러가 등장한다. 물과 빛, 거울, 유리표면 등 반짝이며 반사되는 많은 요소가 반사하고 움직이고 비춰내고 빛을 내면서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 그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들을 풀어내고 지휘하는 작가에 의해 하나의 섬세한 공간이 탄생한다.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의 거울을 논하자니 다시 야요이와 김수자의 거울과도 깊은 연관성을 찾을만 하다. 그러자니 넓은 그물의 코마다 구슬이 달려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비춘다는 인드라망이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에 무엇 하나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고,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작가는 2016년 2월, 제주현대미술관에 두 점의 설치작품을 소개했다. <존재의 그물망>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갤러리, 발 디딜 공간없이 넓은 바닥 가득 하얀 소금을 채웠다. 파란 워셔액을 넣은 집어등 두 개가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노끈에 덩그러니 매달린 듯-사실은 집어등은 노끈과 별개로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와이어에 연결돼 있다- 설치됐다.
널찍한 하얀 바닥에 가는 선과 여린 푸른 빛과 푸른 액체가 어우러지는 이미지는 정갈하다. 미니멀하다는 표현이 어울림직도 하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전구를 늘어뜨린 작품 <무제(북녘)>가 떠오르기도 하고, 작가가 그간 해온 작업들-각을 딱딱 맞추고 나열한 다수의 집어등-과 상당히 큰 차이가 포착되기도 한다. 비워내는 경지에 이른 대가의 일필을 보는 기분도 든다. 따지자면, 집어등이라는 소재의 내외부를 집요하게 탐구한 세월만 이미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집어등에 관해서라면 감히 마스터라는 칭호를 부과해도 무리는 없지 않겠는가. 사실 이 설치는 2010년 갤러리도올에서 소개한 <휴>와 궤를 같이한다. 관객이 들어갈 수 없도록 갤러리 바닥에 소금을 깔고, 오른쪽 모퉁이에 집어등의 무덤을 쌓아뒀다. 엷은 푸른빛이 사그라질것만 같은 여리여리한 구조물을 자연광이 비추는 설치다. 관객은 육지에서 먼 바다를 내다보듯, 거리를 두고 집어등 무덤을 보게 된다. 역시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로스의 초상)>가 떠오를 만한 조형미에 한국적이고, 제주적인 자연의 서정성이 보태진다. 결과물 자체만 보면 쿨해 보이는 작품의 안쪽에는 바로 그 서정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의중이 숨어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영감을 얻은 소재를 사용하며, 제주를 기반으로 작업 활동을 이어나간 작가에게, 고향에서 본인이 느끼는 정서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주된 관심사였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의 슬픔과 척박한 삶의 고충, 고립된 갑갑함과 자연이 주는 위협 등의 부정적인 요소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서를 안개 속에 파묻힌 집어등처럼, 아스라하고 담담하게 숨겨둔다. 숨어 있어 궁금해지고, 단정한 절제가 깃들어 아름다운 작품은 그래서 역으로 극적이다.
최근 부지현의 관심은 집어등과 거울에서 확장돼, 소리와 소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가 닿은 듯하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또 다른 설치작은 그간 해온 작업의 모든 요소가 총망라돼 있다. 각을 맞추고 일정 부피를 가지고 깔린 소금바닥 프레임 위로 푸른 LED를 장착한 집어등이 열을 맞춰 정렬했다. 숨비소리, 파도와 바람소리가 섞여 편집된 음향이 공간에 퍼진다. 작가의 작품 대부분에 붙은 ‘휴(休)’의 감각이 몸으로 들어오는 듯한 공간이다.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잠시 잊고, 그저 눈앞의 미를 감상하며, 편안함을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내게 드는 감정은 안심이었다.
묘하게 마음이 놓이고, 내려놓은 마음 때문인지 가지런한 소금턱에, 푸른 빛에 쉽게 감동하고 만다. 아마 작가가 전달하려던 서정의 기운이, 동향 사람인 나에겐 좀 더 절절히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보조장치 없이, 일정한 수분을 접착제 삼아 그 두께와 각을 유지하는 하얀 소금의 존재감이 위태로워서 더 고와보였다. 익숙한 듯 새로운 소리가 감정의 폭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감정을 담아 풍경을 표현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풍경에 감성을 담는 일’이란 표현을 글로만 읽으면 인상주의 시절의 케케묵은 작품 해설 같다. 그런데 정말로 부지현은 현대미술의 언어로 자신이 느낀 풍경에 대한 인상을 풀어낸다. 신인상주의를 넘어서 대체할 새로운 용어를 찾느라 분주해진다. 제안해보는 표현 하나. ‘설치된 인상주의(Installed-Impressionism)’는 어떨까.
작가의 인상이 시작된 근처 바다로 나가 한 번 더 깊이 고민해 볼 참이다. 힌트를 내비쳤지만, 그가 보고 지낸 바다와 내가 보고 지낸 바다는 똑같은 제주바다다. 곧 오징어잡이 철이 시작될 테고, 부지현의 눈도 나의 눈도 한결 즐거워질 일만 남았다. ●

부 지 현 Boo Jihyun
1979년 태어났다. 제주대 미술학과(서양화 전공)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미디어프린트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부터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내를 비롯해 중국, 타이완, 폴란드 등지에서 열린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중앙미술대전’ 입선, 제주도미술대전 대상(이상 2003), ‘ASYAAF PRIZE 7’(2008)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와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EXHIBITION TOPIC brilliant memories:with

북서울 (10)

위 박재영〈 DownLeit Memory Simulator Vol.1 〉 DC 기어드 모터, AC 기어드 모터, 멀티채널 영상, 자동차 엔진, 향 150×450×140cm 2016, 아래 박문희〈 사막에서 핀 생명〉 강화플라스틱 위 모래채색, 자동차 부품, 혼합재료 440×700×200cm 2016

서울시립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공동 주최하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동행전〉이 3월 22일부터 4월 21일까지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다. 올해 2회째를 맞은 이번 전시에서는 공모한 사연 외에 작가와 탈북 새터민 등의 사연도 다뤄 자동차와 인간의 특별한 ‘동행’을 이어가고자 했다. 참여한 12팀 작가들의 설치, 영상, 조각 작품 등 12점이 소개된 이번 전시를 통해 점차 확대되어 가는 미술과 기업의 공생관계를 확인해볼 수 있다.

협업과 공존의 방식

안소연 미술비평
미술과 다른 영역의 만남 자체로 이목을 끌며 이슈를 만들어내던 때도 지났다. 미술의 오랜 폐쇄적 전통에서 벗어나 일상에 깊이 연루될 것을 자처한 수많은 미술가의 노력으로 ‘미술’과 ‘미술 아닌 것’의 연대가 가능하게 됐고, 이러한 결탁은 단순히 작가의 흔적을 제거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입장들 안에서 숱한 협업자의 개입을 불러왔다. 서구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현실 혹은 현실문제에 동화된 작가들이 일상의 다른 영역과 곧잘 왕래했으며, 이는 20세기 이래 몇 차례 등장했던 아방가르드적 사유에 기대어 각 영역의 진부한 경계를 허무는데 일조했다. 이제 단순한 결합을 넘어선 협업과 공존의 방식이 동시대 미술의 세련된 미덕처럼 제시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공동 주최한 전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동행〉은 미술과 기업의 만남이라는 일련의 협업 조건에서 비롯된 예술적 실천 내지는 형식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논점들을 제공한다.

사물, 상황을 매개하는 형태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프로젝트는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다. 기업과 소비자를 매개하는 방안으로 채택된 이 예술적 실천은 2015년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timeless village전〉을 시작으로 역동적인 사회의 표피 아래 가려진 한 개인의 사라져갈 기억과 작은 역사를 조명한다. 이를테면 이 프로젝트는 자사의 자동차에 얽힌 사용자들의 사연을 공모하고 채택된 사연을 소재로 한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형태와 태도를 아우른다. 이는 단지 하나의 사물이 정의되는 진부한 의미나 낭만적인 수식어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개별적 상황들을 환기한다. 따라서 기업의 대량 생산품이자 현대인의 사적 소유물인 자동차를 소재로 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주체와 그들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가 근거리로 포착된다. 전시 제목이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동행〉인 것도 그런 의미의 타당성을 한껏 뒷받침해준다. 실제로 전시에 참여한 12명의 작가는 여러 관계와 상황의 틈새에 개입하는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행보를 보여준다.
정연두의 사진 콜라주 작업 〈여기와 저기 사이〉는 자동차에 얽힌 어느 탈북 새터민의 기억(사운드)과 1990년대 한국사회 중산층의 마이카 문화 단면 (이미지)을 중첩해 놓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들이 겪는 각기 다른 상황의 층위를 들춰내듯, 정연두는 여러 장의 사진을 부분적으로 잘라 몇 개의 공간 층을 유지한 하나의 꽉 찬 풍경으로 재구성했다. 풍경의 익숙한 표피로부터 내부의 낯선 상황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작가의 시선은 여기와 저기 사이에 어중간히 서있는 관객들에게 가공된 이미지가 시사하는 권력의 기호와 소박한 진실의 격차를 미묘하게 드러내 전달한다. 이때 상황을 매개하는 사회적 산물로서의 자동차는 여러 입장을 대변하는 표상으로 작용한다.
한편 박경근의 2채널 영상 〈1.6초〉는 최첨단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스펙터클한 기계 장치들에 주목했다. 영상의 거대한 수직적 스케일과 화면 속 기계가 뿜어내는 시청각적 효과들은 적어도 현재를 매개로 한 과거와 미래의 역사를 꽤 근거리에서 체감하게 한다. 전형적인 수직적 기념비 형태를 띠는 김기라×김형규의 〈잘자요 내사랑!!〉도 자동차라는 하나의 사물이 함의하는 집단적 기억의 외피와 그 내부에 공존하는 익명의 작은 역사들을 주목한다. 어쩌면 전준호의 〈타틀린, 코발트 블루, 나부의 쏘나타〉도 일상의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현재의 3차원적 실재 안에 여전히 작동 중인 무명의 실존 기념비로 세워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서울 (3)

이주용〈 창 너머의 기억〉 메탈, 인조 털, 합판, 아크릴 물감, 홀로그램, 레이저, 플라스틱 꽃 180×150×190cm, 120×100×160cm 2016

북서울 (6)

2층 전시장 전경

협업, 차이를 함의한 타인과의 공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은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적인 조건에서 출발한다. 기업과 예술가의 협업이라는 조건 하에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 현대자동차라는 기업 브랜드를 공통의 소재 및 매체로 다룬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몇몇을 제외한 작가 대부분은 현대자동차를 소유한 소비자와의 소통을 수반한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대상에 접근해 가는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은 현실과 관계 맺는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태도와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작업을 통해 협업의 관계가 나이브하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협업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통해 충분한 만남과 소통의 방식을 생산해냈다. 그렇듯 차이를 전제한 소통의 미덕이야말로 협업과 공존의 가장 적절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협업하는 방식을 기존 작업의 맥락에서 구체화한 작가도 있다. 그동안 〈아트 택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홍원석은 이번 프로젝트 사연자의 구형 그랜저 2.0을 이용해 〈아트 택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타인의 물건과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 참여형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는 타인들의 접촉과 교환을 직접 주선하며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소소한 실천을 기록해갔다.
다운라이트 디렉터로 전시에 참여한 박재영의 〈DownLeit Memory Simulator Vol.1〉은 일종의 기억 환기장치다. 한 개인의 특정 기억을 복구하기 위해 제작된 이 기계장치는 그 쓸모에 비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사연자와 관련된 특정 기억을 환기하는 심리적 기계장치지만, 사실 전시를 통해 타인의 자리에서 우연성에 기반을 둔 채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 우연성이란, 과거 다다이스트들의 전략처럼 수많은 차이와 간극을 내포한 것이며 동시에 미끄러지는 의미의 연쇄로 뜻밖의 공감과 소통의 방식을 고안해내는 실체다. 이처럼 미술과 기업의 협업 방식을 직접적으로 다룬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동행〉에서는 협업의 주체들이 각각의 상황에 매우 능동적으로 개입돼 있다. 그 말은 차이를 내포한 협력과 공존을 뜻하는데, 결국 사회적 틈새에 섬세하게 개입할 수 있는 예술의 유연한 태도야말로 이러한 협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

 

EXHIBITION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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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최진욱 <서서히>(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194×518cm 2013 <북아현동4>(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12 아래 오치균 < First Ave >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100×200cm 2014

최진욱 개인전 <서서히> 인디프레스 4.1~21
& 오치균 개인전 <New York 1987~2016> 금호미술관 3.4~4.10

 

화가 오치균과 최진욱. 사실 이 두 중견 작가의 작업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인다. 회화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지점이 두 작가의 작업을 함께 살펴볼 때 새로운 흥미를 일으키지 않을까? 오치균은 표면의 강렬한 질감을 통해 강한 인상을 전달하고, 최진욱은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정치적인 이슈를 이끌어낸다. 필자는 이들의 작품을 토대로 비평에 대한 딜레마를 털어놓으며, 비평의 역할을 성찰한다.

말수가 적은 회화와 많은 회화 앞에서, 비평의 딜레마

반이정 미술비평
한 면 위에 담긴 공간적 의사소통을 텍스트라는 시간적 의사소통으로 번역하기. 회화에 대한 평론을 이처럼 단순히 정의해도 무방할 거다. 감상을 돕자고 출현한 게 평론일진대 평론이 감상에 걸림돌과 부담 요인이 될 때가 실로 많다. 이는 주어진 지면을 채워야 비로소 완성되는 평론의 생리와도 연관이 깊다. 이걸 평론의 딜레마라 불러보련다. 동일한 작품에 전혀 상이한 여러 해석이 나오긴 어렵다. 해서 새 필자는 앞선 필자들의 인용문, 그림의 주제와 연관된 참고 문헌의 장황한 나열, 종래 해석을 살짝 비튼 동어반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지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니 쥐어짜낸 문장으로 분량을 채운 평문이 쉽게 출현한다. 이런 일은 실로 흔한데 이런 현상을 평론가의 인습이라 해도 괜찮겠다. 그래서 주제에 큰 편차가 없는 어떤 작가에 대해 동일한 필자가 여러 차례 평문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평소 믿는다. 이런 사정이야 어떠하건 작품이란 평론과 한 묶음으로 유통되는 형편이다.
이 같은 작품-평론의 유통 구조, 견제 받지 않는 평론가의 인습 등으로 인해 동어반복적인 평론과 비문에 가까운 ‘읽히지 않는’ 평론은 제재를 받지 않고 계속 생산되는 거다. 오치균과 최진욱은 미디어 친화적인 화단에서 생존한 중견 회화 작가이지만, 이 둘은 상이한 지평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자료에 따르면 둘은 같은 기획전에 함께 묶인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새로운 동향과 전망을 끌어내는 데에 역점”을 두고 기획되었다는 25년 전 <바람받이-1991년의 동향과 전망展>(서울미술관 1991년)에서 30대 중반이던 둘은 그들의 현재를 예고하는 원형을 보여준 바 있다. 세잔 풍의 붓질로 연희동 습작을 남긴 최진욱과 안료의 재질감을 살려 용산과 무악재를 재현한 오치균은 그들의 원형을 확인시킨다. 인습적인 회화의 관행에서 벗어난 실험성 때문에 둘은 당시 주목받은 걸 것이다.
오치균과 최진욱을 말수가 적은 회화와 많은 회화로 도식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사연이 화면 위에 깊이 스며있다손 쳐도 오치균의 완성도는 요철감이 지배하는 그림의 평면에서 9할이 결정된다. 반면 최진욱을 설명하는 용어는 무척 많다. ‘감성적 리얼리즘’ ‘신비하고도 과학적인 리얼리즘’ ‘개념적 회화’ ‘생태적 회화’에 이번 개인전에선 박찬경이 ‘사건 실재주의’라는 신조어까지 추가했다. 이처럼 다채로운 개념이야 어떻건 최진욱의 작업관은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구상과 추상, 정치성과 순수예술 사이를 반복하는 작가적 태도로 요약될 게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의 뉴욕 체험기를 다룬 오치균의 개인전을 보면서 나는 수첩에 ‘인상주의’라 적은 후 “이건 좀 구식 비유인가?” 하며 주저하기도 했다. 그의 호소력은 언어적 해석보다 체험을 통한 공감이 크다. 아트페어는 흔히 3강 구도의 풍경을 보여준다. 극사실주의, 팝아트, 안료의 재질감이 강조된 회화가 그 3강이다. 안료의 재질감이 주는 직감적인 호소력은 대중적 미술행사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된다. 오치균은 아크릴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혼합한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 그린다고 알려졌다.
뉴욕 체류기 ‘회고전’을 다룬 이번 전시에서 나는 1995년 전후의 그림을 편애했는데, 오치균 화면의 촉각성이 내게 남긴 첫인상이 1995년 무렵 어느 전시장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차량 매연과 눈이 뒤섞인 우중충한 도로의 질감을 회화로 묘사하지 않고 안료로 대체하고 있었다. 재현 대상을 묘사가 아닌, 안료의 대체로 완성한 그림의 호소력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간명하게 간파될 수 있다. 나는 여태 오치균을 다룬 평론을 한 번도 읽어본 바 없었다.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예상대로 그 많은 평론이 유사한 논평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내가 주저하면서 메모했던 인상주의에 대한 언급마저 이미 다른 필자가 남겼다. 설명 없이 화면의 재질감으로 평가해도 될 오치균에 대해,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필진이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아트인 아메리카》 편집장(리처드 바인), 서울미대 교수(정영목), 문학평론가(김우창), 소설가(김훈), 이번 개인전에선 뇌과학자(정재승)까지 가세했다.
각계 인사의 평가를 듣고 싶은 당사자의 심정은 알겠으나, 언어의 풀이보다 화면의 물성으로 승부수를 두는 회화도 있는 법인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다. 정재승은 작품론을 부탁받은 모양인데 ‘작가와의 대화’로 글의 형식을 변경했다. 그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아마 종래의 해설들과 상이한 해석을 보고 자기 전공을 살려낼 도리를 순진한 그로선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짧은 논평만 남기련다. 임페스토는 그의 브랜드가 됐지만 1995년 뉴욕이 2015년 뉴욕보다 훨씬 깊다. 지인의 조언을 빌리면, 작품이란 게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라 근작에선 오치균 브랜드만 강조된 느낌이다. 그가 1995년의 미학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게다.

오치균   캔버스에 아크릴 169×111cm 1995

오치균 < Houston Street > 캔버스에 아크릴 169×111cm 1995

주관적인 확신을 넘어
오치균의 필진 구성과 대조적으로 최진욱 미학은 심광현 개인이 독점하다시피 공급했다. 형용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최진욱의 그림은 화면보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평론이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번 전시에선 박찬경이 글을 썼는데, “최진욱의 작품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목적으로 써선지 심광현의 ‘잘 읽히지 않는’ 난문보다 훨씬 낫고 신작보다 포괄적인 작가론에 집중한 글이다. A4용지 11매 분량의 서문은 뒤로 갈수록 잘 읽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에게 그림은, 오늘의 생활 속에서 매순간 살아있는 실제 사건들의 연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정체성을 지니기 이전에 있는 어떤 복합적인 상태이며 주객관이 만나는 충만한 장소이다.” 같은 문장을 보자. 언어 사용을 생업 삼는 비평가의 직감으로 말하자면, 저 입증 불가능한 문장은 어떤 의미가 담겼을 테고, 어떤 미적 공동체에선 의사소통 때 사용될 게다. 그렇지만 저런 평가 방식 혹은 의사소통은 확장성을 지니지 못한다(대중에 대한 확장성이 아니라, 미술 전공자 집단에 대한 확장성을 말하는 거다). 나는 최진욱의 작품 혹은 평론이 독보적인 혹은 폐쇄적인 소수의 미적 공동체가 나누는 반증불가능한 주관적 미감이자 개인적 확신이라고 판단한다. 때문에 리얼리즘에 뿌리를 둠에도 확장성이 낮다. 이건 숙제다. 이를 어쩔 건가? 전시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자.
박찬경은 “북아현동을 걷는 교복 입은 소녀들의 모습에서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묻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난감해진다. 이렇게 되묻자. <북아현동4>(2012)로부터 세월호를 떠올리는 남다른 미적 감성의 공동체가 있을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같은 이치로 절대 다수의 ‘미술 전공자 그룹’은 그런 연상을 떠올리지 못할 테고 이는 최진욱에 대한 몰이해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교감의 총체적인 엇나감은 작가가 풀어야 할 몫이지 수용자의 과제가 아니다. 문제는 최진욱의 작업과 평론의 대부분이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주관적인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확장성의 문제가 <북아현동4> 한 점에만 걸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개인전 제목으로 쓰인 400호 캔버스의 <서서히>도 보자. 이 그림은 친구 부친상을 기초로 완성한 2008년 개인전 <88만원 세대>에 출품된 <메멘토 모리 2>라는 그림을 2013년에 재구성한 거다. 작가의 진술에 따르면 2012년 대선 때 정권이 교체되리라 확신한 작가는 이명박 시대를 땅에 묻는 의미를 담으며 그리고 있었단다. 정권교체에 실패한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적 장례 풍경에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풍경을 이입시킨 셈인데, 박찬경은 이 작업을 “일상과 정치의 감각적 지적 일치라는 최진욱의 오랜 시도가, 이 그림을 통해 이제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격찬한다. 다시 북아현동 여고생 그림과 세월호 연상 작용을 환기해보자. 일상적 장례식 그림이 정권교체의 은유임을 작가의 진술이나 전시 서문을 통해 가까스로 확인한들 “음. 그런 거였군”하고 만다. ‘사실 확인’ 이상의 감정이입이 어렵단 말이다. 이때도 감정이입의 실패는 둔한 미감의 결과이기 보다 작가의 리얼리즘이 반증불가능한 주관적인 확신에 기초해서라고 나는 본다. 나는 차라리 최진욱의 완성도가 그의 치열한 정치성과는 별개로, 디테일이 결여된 붓질과 자의적 채색에 있다고 본다. 요컨대 <북아현동3>(2011)에서 여고생 다리의 빨간 채색이나 <서서히>에서 분홍색 봉분 같은….
비평을 위해 작가의 진술과 남이 써둔 비평을 두루 검토하는 사전 작업이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굳었건만, 지리멸렬하고 불필요한 인습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두 작가를 해석하기에 앞서 통 읽히지 않는 평문들(최진욱)을 살피거나, 거의 유사한 해석을 살짝 바꿔 반복하는 이름만 다른 필자들의 평문들(오치균)도 봐야 했다. 이럴 때면 위기론에 에워싸인 평론의 역할이 차라리 침묵인 것도 같다. ●

최진욱  캔버스에 유채 160×117cm 2008

최진욱 <알바천국2> 캔버스에 유채 160×117cm 2008

 

 

NEW FACE 2016 윤대희

숨겨진 불안

사전적으로 ‘편안하지 않음’을 뜻하는 ‘불안(不安)’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안고 가는 숙명 같은 것일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살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만큼 불안은 일상적이다. 누구는 불안으로 인한 심적 부담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반면, 누구는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전환하여 적당한 긴장감을 즐기기도 한다.
윤대희는 작가노트를 통해 밝혔듯 불안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다. 그렇다면 그는 앞서 이야기한 불안을 대하는 유형 중 후자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이 가장 일상적이며 가장 밀접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고 드로잉했죠. 그러면서 불안감이 삶에 생산적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나 윤 작가의 작업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닌 작가와 관계 맺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을 느끼기에 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감정을 작업으로 표현할 때 처음에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죠. 그러나 현재는 개인과 외부의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속에서는 불안을 해소하고 다른 불안을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셈이죠.” 그렇다면 작가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직업적 역할(작가), 가족으로서의 역할(아들) 혹은 이성관계 등에서 역할이 많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작업에서 점점 더 많은 등장인물과 상황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자신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고, 그가 만난 ‘그 누구’일 수도 있다. 윤 작가는 이에 동의하며 작업이 내러티브를 함유하면서 지금의 인물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설명했다.
윤 작가의 캔버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콩테의 단일한 색상과 거친 표현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마치 낙서화에 등장하는 누구 같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이지만,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오히려 더 극명하게 다가온다. 윤 작가는 재료에 의한 차이를 부정했다. “큰 화면에 작업을 하기 전에 드로잉 해놨던 것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화면을 다시 구성하는데 그 과정에서 완성될 작업의 분위기를 상상해 재료를 선택합니다.”
몇 차례의 투병 시기를 거쳤다고 고백한 윤 작가는 당시 사회활동과 타인과 관계 맺음에 제약받는 것이 심적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경험이 지금 작업의 계기가 됐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프로그램 입주작가인 그는 8월에 열리는 개인전 준비로 여념이 없다.
그와 헤어진 뒤 생각해보니, 인터뷰하면서 윤 작가가 불안해 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가 애써 숨긴 것인지 알 수 없다.
황석권 수석기자

자라난다자라난다자라난다_171x306cm_charcoal on paper_2014

<자라난다자라난다자라난다> 종이에 목탄 171×306cm 2014

윤대희
1985년 태어났다. 인천대 조형예술학부(서양화 전공)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서울과 인천, 의정부 등지에서 열린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7기 입주작가다.

 

NEW FACE 2016 정희정

태움과 채움 사이, 우연과 계획 사이

아직 20대인 젊은 작가가 산과 향(香)을 좋아한다. 작가 정희정이 이러한 취향을 갖게 된 데에는 집안환경의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는 산을 좋아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매주 산에 올라가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냈다. “자연은 언제나 내 기분을 좋게 하는, 행복한 추억이 가득 배어 있는 공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정희정의 산수화는 사실적 표현에 근거한 형상이라기보다 본인의 경험과 기억을 담아낸, 그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친가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종갓집이며 할머니,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사실은 작가의 곁에 늘 향이 있게 했다.
붓과 먹의 농담으로 무한한 표현이 가능한 점이 동양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하는 작가. 하지만 지금은 ‘붓’이 아닌 ‘향’으로, ‘물’이 아닌 ‘불’로 그림을 그린다.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선을 불과 향이라는 제한된 재료로 해결함으로써 작가는 자신만의 운용법을 고안했다. 불붙은 향은 시간차를 두고 한지에 머물며 각양각색의 그을음을 생성해 내고, 그 흔적은 먹과는 또 다른 느낌의 농담과 선염을 만들어 낸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지의 질료적 특성이 불과 만나 일궈낸 결과다. 켜켜이 쌓인 한지 조각은 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요하는지 짐작하게 하고, 그 사이로 비치는 그을린 흔적은 시간의 층위를 말해준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로 생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일”이라며 말하는 작가의 표정은 생기가 넘쳤다.
작가는 숙련된 감과 우연적 효과에 의지해 형상을 표현하는 데 반해 그것을 시각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장기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작업의 의미를 도출해간다는 점이다. 정희정의 이러한 면모는 작품 〈Burning of ridge〉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작가는 한지가 아닌 신문지와 유명 외식 브랜드의 포장지를 태웠다. 이는 작업 방향을 소멸과 생성이라는 근원적 요소에서 현대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 예컨대 단순 노동자나 일용직에 대한 사회적 편견, 청년 취업문제 등으로 선회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고심해왔다며 사실 오브제 작업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시도였다고 한다.
“산수만 하는 작가로 고착화되기에는 아직 젊지 않나요”라고 웃으며 되묻는 작가의 모습에서 말하지 않은 얘깃거리가 아주 많아 보였다. “하지만 제 안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고 싶어요”라며 조심스레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신중한 성격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현대미술 전시도 되도록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작업으로 풀어냈는지 해석하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다. 동양화의 무한한 변신과 확장이 정희정의 손에 들린 불과 향에 의해 어떻게 흘러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곽세원 기자

정희정 (7)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태우다, 태어나다〉 전시 광경

정희정
1988년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5년 OCI미술관에서 〈태우다, 태어나다〉 제하의 첫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제11회 겸재진경미술대전 특선, 2014년 제1회 Campus10 ART Festival @ Hanhwa63 신진작가전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4년 2015 OCI YOUNG CREATIVES에 선정됐다.

 

CRITIC 오승우

광주시립미술관 3.2~4.27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오랜 역사로 전승되는 지역 화맥도 그렇지만 한 가계(家系)에서 예술가들이 3대 이상을 이어간 사례는 흔치 않다. 예향이라 일컬어 온 호남 화단에서 조선중기 공재 윤두서 일가나 조선 말 소치 허련 일가와 더불어 근현대기를 잇는 호남 서양화단의 대부 오지호 화백 일가도 그 귀한 예의 하나이다. 오지호 일가의 대맥을 이은 오승우 화백 초대전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있었다. 지난 3월 2일부터 4월 27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오 화백에게는 1996년 광주시립 미술관에서 <한국의 100산>으로 초대전을 가진 지 20년 만의 자리다.
이번 전시는 오 화백의 70여 년 화업을 망라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른 것은 대학 입학 전인 1949년 작을 비롯해 1950년대 ‘국전’ 출품작으로 집중했던 불상과 불교 소재 위주의 <한국 전통문화> 탐구, 실재 대상에 상상력을 가미해 초현실적 분위기가 살짝 풍기는 1960년대 구상회화, 1980~1990년대 연작 주제로 다루었던 <한국의 100산>, 1996년 1년간의 중국 체류기간 작업을 포함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동양문화의 원형’ 찾기,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십장생> 연작 등 시기별 관심사를 따라 큰 화업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화백의 회화세계를 크게 보면 역시 ‘문화의 원형’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가 두드러진다. 이는 화업의 밑뿌리를 단단히 다짐으로써 독창적 회화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예술의지의 집약이라 여겨진다. 또 한국 구상화단의 거목인 부친 오지호 화백의 그늘에서 벗어나 결이 다른 회화세계를 펼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 점은 먼저 타계한 아우 오승윤 화백이나, 3대째인 아들 병욱과 상욱에게서도 마찬가지고, 현재 미술 수업기에 있는 4대째 손자 주성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집안 내력인 정신과 작업의 뿌리는 중히 여기면서도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회화로서 어떻게 발현시켜내는가 하는 저머에선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뚜렷한 주관과 족적을 남긴 부친의 영향은 화업의 대를 잇는 자손에게는 후광이면서 동시에 묻혀서는 안 되는 그늘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부친의 활동에 누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세계를 열어야 한다는 작가로서 고뇌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초기 수업기에 부친의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이 자연스레 배어나기도 하지만 일찍이 20대 청년기부터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회화세계를 모색하는 데 열의를 쏟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도 포함된 1950년대 불상과 법당 등 불교 소재 작품들이 그런 초기작업의 예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찌감치 부친의 자연예찬과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셈인데, “원색적인 색채의 조화가 강렬하고 원시적인 미를 느끼게 하는” 불교미술에서 자연의 광휘 못지않은 회화적 묘미를 발견한 듯하다.
해남 대흥사, 김제 금산사, 구례 화엄사, 법주사 팔상전, 통도사 금강계단 등 고찰의 불상과 불단, 고색단청을 두른 법당 건축이 주된 대상들이다. 그 노작들로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과 29세 어린 나이에 추천작가로 인정받았고, 이어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고궁 고적들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오 화백의 긴 회화 여정에서 초기에 속하는 이들 불교·고적 소재의 작업들은 풍경으로서 대상이기보다는 한국적 조형미나 건축미의 화제로 즐겨 다루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특징은 이후 <동양문화의 원형>이나 <100산> 연작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만큼 부친의 감흥 위주 회화와는 달리 견고하게 엮인 의식과 화폭의 조형적 결합에 더 천착했다고 볼 수 있다.
오승우 화백의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창작의지는 화업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떠났던 1974년 1년간의 유럽 여행 중에 더욱 강고해졌다.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장엄한 건축물들과 조각상들을 비롯해 신필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예술품을 본 후로” 극심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런 실의를 딛고 새롭게 찾아 나선 것이 한국의 산천을 제대로 답사하고 그 기운을 체득하기 위한 100산 연작이었다. “산을 그리는 것은 조국을 그리는 일이다”는 생각으로 1983년부터 13년에 걸쳐 가까운 북한산, 관악산을 비롯 백두산, 한라산, 오대산, 월출산 등 전국 곳곳의 산들을 찾아 150여 점의 대작을 그려냈다. 대부분 굵고 힘 있게 내리긋는 붓질과 갈필의 거친 획들 위주로 산의 큰 골기를 잡아내면서 계절마다 또는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들로 장대한 진경을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 같은 뿌리에 대한 천착은 우리 문화와 연원을 맺고 있는 동일 문화권으로 확대된다. 우리와는 문화와 정서가 다른 서양미술의 아류가 되느니 “동양의 원형은 동양의 고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6년 1년여간 중국에 머무르며 자금성, 이화원 등 옛 영화의 기념비적 조성물들은 물론 실크로드의 명사산, 운강석불사 등 곳곳의 고대 유적?유물들을 현장 사생으로 교감코자 하였다. 구도승과도 같은 집념은 중국을 넘어 몽골 보구도한궁,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 인도 타구르바리사원 등으로 이어져 풍토와 민족은 다르지만 우리 문화와 연관을 가진 아시아 문명의 보고들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오승우 화백이 집중했던 연작 중에서 가장 근래의 주제는 ‘십장생도’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민속신앙처럼 각인된 장수다복의 염원을 옛 민화나 궁중회화의 도상과 구성을 재해석해 자유롭게 풀어낸 그림들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천지산천과 갖가지 동식물들이 피안의 이상향에서 평화롭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이다. 어쩌면 체력이나 시력이 예전 같지 않은 여건과 긴 화업인생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택한 또 다른 원형 찾기 시리즈라 하겠다. 70여 년 화업을 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 초지일관 자연 대상의 감각적 외피나 감성적 흥취의 묘사가 아닌 문화나 의식의 근원과 원형을 탐구해 온 원로 화백의 한평생 구도(求道)의 길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위 오승우 <고루(통도사)>(맨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1960 (목포자연사박물관 소장)

CRITIC 강운 Play : Pray

사비나미술관 4.6~5.6

황록주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구름’ 하면 누가 뭐래도 작가 강운이었다. 가뜩이나 남보다 한 자 짧은 이름에 단호히 ‘구름 운(雲)’ 자 하나를 각인하고 태어난 이답게 그의 그림은 일생의 숙명처럼 오랜 시간 구름을 담아냈다. 그가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남도의 맑은 하늘은 그런 그에게 단 하루도 똑같지 않은 모습을 펼쳐 보이며, 무한히 건져 올릴 이미지를 선사했다. 덕분에 우리도 그의 그림을 보면 여간해서 잘 올려다보지 않는 하늘을 가만히 선 채로 만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디지털 미디어가 실제의 삶을 속속 대체하는 세상에서 작가 강운이 보여주는 구름의 모습은 여전히 회화라는 오랜 인간의 활동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그 자체로 그림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강운의 구름이 변했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한 순간의 형상을 숭고하게 드러내는 구름을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 아름답게 정지된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물과 공기와 자연의 거대한 힘이 강력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이전의 회화는 사라졌다. 그의 구름은 더 이상 커다란 화폭 가득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 보았던 그 구름이 아니라,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하늘이 아니라, 사이사이로 바람이 넘나들고 한 겹 한 겹 시간의 흐름이 쌓여 있는 추상화된 공간으로, 그의 작업은 어느새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지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래도록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오일 페인팅을 과감히 멈추고, 화면에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인 구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고향의 한지를 평면 위로 불러들였을 때, 눈과 마음이 기억하는 것을 따라 붓을 옮기던 화가에게 구름과 하늘은 이제 더 이상 정지된 이미지이거나 기어이 도달해야 하는 어떤 형상이 아니라, 차분히 순리에 따라 호흡과 숨결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작가는 화면 안에 이미지를 가두는 붓질을 넘어서서, 잘게 조각낸 한지를 한 장 한 장 붙여가며 구름과 하늘, 바람과 시간을 스스로 드러나게 만든다. 이미 존재하던 모습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 모습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운이 그리는 구름은 수증기가 덩어리로 응결되어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물질을 주어진 조건에 따라 무한히 변화하게 만드는 자연의 이치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매체다. 매일 오전 한결같이 반복하는 수행적 작업의 결과물인 <물 위를 긋다> 연작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그날그날의 온도와 습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단 한 줄의 넓은 붓질은 변화의 한가운데서 질서를 찾고 그 이치를 넘어서 생동하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강운은 그가 온 인생을 통해 짊어지고 사는 한 없이 가벼운 구름을 통해 서서히 하나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위 강운 <공기와 꿈>(왼쪽) 캔버스에 염색한지 위에 한지 2015 위 강운 <물 위를 긋다> 종이에 담채 2015

CRITIC 강석호

스페이스비엠 3.17~4.17
양지윤 코너아트스페이스 디렉터
강석호는 17년간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에 토르소를 반복적으로 그려 왔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골라 얼굴과 팔다리를 트리밍한 인물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캔버스 속 정치인과 스포츠맨들은 목걸이나 권투 글러브, 무궁화나 넥타이 같은 액세서리들과 함께 웅변적이거나 서사적인 손동작으로 제 사회적 위치나 정체성을 드러냈다. 연작은 옷의 패턴이나 손의 제스처에 담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화였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작업해 온 40여 점의 토르소 작품과는 다른 회화작품 4점을 선보였다. 작업실의 흰 벽에 걸려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크무늬 재킷을 조명과 구도를 약간씩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몸은 사라져버린 채 껍데기가 되어 벽에 걸린 옷. 작가는 제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각각의 캔버스에 옮겼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벽에 붙어있는 재킷은 “본다는 것의 다름을 가능하게 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사진의 질감과 실재 사물의 질감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사진을 회화로 옮기는 방식과 실제 사물을 회화로 옮기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생명이 없는 사물이라 할 지라도,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는 시간이나 빛에 따라 다른 모종의 기억들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강석호는 아버지의 재킷을 바라보며 이에 대한 변화하는 기억들과 감정들을 4개의 캔버스 안으로 포획한다. 화가는 회화 안에서 사물의 내부에 담긴 실재들을 연다. 화가는 캔버스 위에 남겨진 붓과 물감의 움직임으로 사물에 대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사물을 옮기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 행위라는 과정의 결과로 파생되어진 흔적이 이미지라면, 난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과정 속에서 재료와 혀의 형식에 대한 나의 독백은 감정의 언저리에 걸쳐져 있는 작은 파편들에 대한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 작가 노트 중에서
강석호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캔버스 속 이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로 회귀한다. 사물을 이미지로 옮기는 행위, 옮겨진 이미지와의 관계, 옮기는 행위의 의미들 그리고 그 새로운 조합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부단한 질문이다. 결국 캔버스 속 이미지는 언제나 ‘그 무엇’의 이미지일 뿐 ‘그 무엇’ 자체일 수는 없다. 회화 속 이미지가 지닌 숙명에 대한 예술가의 고민이다.
‘반복’은 이런 고민에 대한 강석호의 사유 방식이다. 강석호는 ‘뒷짐 진 남자의 뒷모습’ 을 70점 그리고, ‘벽에 걸린 재킷’을 4점 그린다. 사물의 특정적 시간 상태와 작가의 감성적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인상을 반복적인 이미지들로 포착하는 행위는 강석호가 이미지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회화 속 이미지와 사물 자체의 차이를 수행하듯이 드러낸다. 그 회화들은 이미지를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를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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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 <무제>
캔버스에 유채 2016
위 강석호 <무제>
캔버스에 유채 2016

CRITIC 서혜영 하나의 전체-긴밀한 경계

갤러리 소소 4.16~5.15

이윤희 미술사
벽돌 모양의 특정한 단위들이 증식하여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서혜영의 작품은 비유들로 가득하다. 각종 경계를 이루는 것들, 예컨대 인간과 자연, 안과 밖, 회화와 조각 등의 대비적인 것들이 그의 벽돌 모양에서 만난다. 네모라는 기본 조형 단위는 각종 기하추상 작품에서 너무도 많이 본 것이지만, 그것이 특이하게도 서로 어긋나게 쌓아 올려지는 벽돌의 모양이기에, 그리고 벽돌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연관되는 것이기에, 그의 작품 앞에서는 절로 많은 연상작용이 펼쳐진다.
관객은 아무런 정보가 없이도 그의 작품을 벽돌 형상을 반복한 것, 벽돌이 쌓아올려진 벽 등으로 인식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미술가들이 더욱 선호한 것은 가로?세로선의 교차로 이루어진 격자(grid)일 것이고 이는 어지러운 자연 세계를 질서지우는 보편의 장치라는 함의를 갖는다. 그런데 서혜영이 구축하는 벽돌모양은 격자와 비슷하지만, 단지 세로선의 어긋남이라는 작은 변이를 통해 격자가 가진 기하적 보편성을 인간의 층위로 가져온다. 그가 벽돌의 단위를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수많은 재료적 개념적 바리에이션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라인 테이핑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이 박스를 쌓아 올리기도 했으며, 또 어떤 때는 조명을 감싸는 실용성과 장식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입체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바닥에 깔리는 평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매끈하게 커팅한 스테인리스 스틸을 다양한 채색으로 마감한 입체작품들이 벽면에 설치되었다.
이 작품들은 분명 입체작품이지만 상당한 회화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구상단계에서 회화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벽돌 형상으로 이루어진 면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선원근법이 적용되었다. 관객과 가까운 쪽의 벽돌이 가장 크고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도록 만든 면들이 입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입체들은 실제보다 더욱 깊어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원근법은 평면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회화적 착시 기법이지만, 입체에 이를 적용해 기이하게 왜곡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체작품이 보여주는 회화적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네 면의 벽이 있는 건축물처럼 구성된, 그러나 과장된 원근법으로 인해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형상들은, 단일한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서로 뒤섞여 있다. 분명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입체물들이 마치 서로 다른 광원의 빛들이 만나는 것처럼 서로 교차되고 중첩되는 것이다. 각각의 원근법적 소실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입체물들이 서로 교차되어 기이한 공간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면들이 이중 삼중 사중으로 중첩되는 지점들이다. 마치 같은 색 물감을 묻힌 붓을 여러 번 교차했을 때 더 진한 부분이 발생하고 다른 색의 물감을 중첩하여 새로운 색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벽돌 색면의 교차는 회화적 붓질과 같은 색채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회화와 조각의 고전적인 경계에 대한 개념적 의심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 아니라, 인간 역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벽돌, 평면이 아닌 입체에 적용된 원근법적 고려, 단단한 입체가 상호 교차되는 방식, 이러한 모든 요소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공간성의 경험이다. 설치된 크고 작은 작품들은 삼차원의 공간을 회화적으로 비틀고 있다. 의심할 수 없이 단단하고 확실한 벽돌 한 장으로 시작한 그의 작품은, 튼튼하게 쌓아 올리는 벽돌다운 방식을 견지하면서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차원의 문법을 삼차원 세계에 적용해 증폭되는 의심의 세계가 독특하고 기이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위 서혜영 <ectype H>(왼쪽) 철, 분채도장 2016

CRITIC 박형근 Tetrapode

자하미술관 4.1~5.1

고원석 전시기획
어딘가에 실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찾아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이 견지해온 가장 오랜 방법론일 것이다. 때문에 사진가들에게는 현실을 기록하는 매개체로서의 이미지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지하고 해독하는 특별한 감각이 내재되어 있다. 그 감각이 향하는 방향들이 사진작업의 미학적 독창성을 결정하는 토대일 것이다.
박형근의 전작들을 주목하게 된 건 그의 사진이 무거운 현실과 역사를 기록하되 사실에 대한 발언을 철저히 제어하고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놓는 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 속 피사체들은 대부분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들이었지만 그 역사의 무게는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전에 나는 그것이 그의 사진이 대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보는 사람의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었다. 그건 관념의 재현이기보다 몸이 찾아낸 풍경들의 묘사에 가까웠다.
이번 개인전에서 박형근은 시화호 근처의 풍경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전부터 유지되어 온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단단한 기저를 이루고 있지만, 피사체의 구성은 전보다 더 편안해진 느낌이다. 과거의 사진들은 자신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미학적 정체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고밀도의 것들이었다. 종종 그는 잘 보이지 않는 설치의 방법으로 풍경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그러한 조밀한 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 많은 사진이 대상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는데, 정작 그 대상은 일정하지 않다. 로드킬 당한 짐승의 사체와 같이 강력한 리얼리티부터 가벼운 개입을 통해 초현실적으로 변해버린 풍경까지, 다양한 것들이 등장한다. 이는 그가 시화호 주변이라는 대상을 명료한 메시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며, 오히려 더 많은 얘기를 개입시키고자 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작업의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시화호라는 대상에 담긴 통사성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주 4·3 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같은 무거운 역사의 이미지와 관계하며 중년에 접어든 작가의 호흡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상 대신 대상과 접속하는 어떤 영역을 재현하고자 했던 그의 전형적 태도가 조금 다른 구성과 방식으로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있다. 화면 구성의 통일성과 피사체의 일관성이 와해된 대신, 사진들이 담지하고 있는 시공간의 정체성은 더 분명해졌고, 이미지의 지속성은 더 길어졌다.
이를 작가가 성취해낸 새로운 미학적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은 정작 자신의 작업이 획득하게 될 새로운 해석의 여지까지 염두에 두기 어렵다. 작가의 작품이 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기획력의 부재가 아쉬운 전시다.

위 박형근 <Fishhooks>(벽면) C-프린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