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OK] 사회적 존재로서의 예술

사회적 존재로서의 예술


이동연 지음 《예술@사회》 학고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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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발간된 이동연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교수의 《예술@사회》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처한 상황을 서술하고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책이다. ‘예술과 노동/예술과 복지/예술과 도시재생/예술과 시간/예술과 검열/예술과 행동/예술과 기술/예술과 거버넌스’라는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주제와 관련된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올바른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 예술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증거로 예술과 돈을 분리하는 경향 때문에 예술가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거나 받지 못하는 점, 늘어난 정부 소유의 창작 공간이 오히려 예술가의 자생적 공간을 해침으로써 자립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 점, 예술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진 않는다. 위기 ‘덕분에’ 예술가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예술 노동의 사회적 자본’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추리 미군기지 건설 반대 예술행동, 용산 참사나 세월호 침몰,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사회 문제에 ‘파견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시민혁명에 앞장섬으로써 예술이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으며 그 실천적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예술가의 노동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돕는 예술 정책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창작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박정희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예술에 대한 검열의 계보를 음반, 웹툰, 영화, 게임을 예로 들어 정부의 통제를 매우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2011년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이 졸속으로 만들어져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함을 지적하고 정책의 패러다임이 구제에서 권리로, 선제적 대응으로, 함께 상생하는 것으로 변화하기를 촉구한다. 더불어 현재의 예술 정책은 예술 거버넌스가 실종된 위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하는데, 이를 극복할 방향으로 거버넌스의 철학과 담론을 지속적으로 토론할 것, 예술 거버넌스 매개의 중심에 예술가가 있을 것, 예술의 지원 체계 안에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 기업의 참여를 독려할 것 등을 제안한다. 나아가 최근 이슈가 되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 현상’도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새로운 기술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만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그보다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기술혁명이 가져다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라고 주장한다.

‘예술 노동’의 특수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이루어져 예술가들이 적절한 보상, 지원 아래 인정받을 수 있기를 촉구하는 책의 메시지는 사실 교과서적인 담론에 머물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답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 예술이 처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이를 방지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사안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다. 책에서 저자는 예술은 ‘특수한’ 노동 형태이며 ‘특수한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예술의 특수성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예술이 현재 처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통해 ‘생각하고 상상하고 계획하는 예술가의 시간’이 의미 있는 노동의 시간이며 눈에 보이거나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어도 예술적 효과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를 바란다.

또한 서문에서 저자는 그간 책을 어렵게 쓴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쉽게 쓰려 애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여러 미학자의 이론을 인용했음에도 어렵지 않게 읽혔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궁금한 일반인, 내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예술가, 예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이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 한 권으로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침반 역할은 분명 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정하윤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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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New Museum Triennial 2018

 New Museum Triennial 2018 Songs for Sabotage

Haroon Gunn-Salie(남아프리카공화국) 〈벽〉(바닥 설치작업) Clan Dayrit (필리핀)&Violet Dennison(미국) 〈M.O.O.P〉(사진 뒤 벽면 설치작업) 2018 Seagrass collected in the Florida Keys, resin and electrical metallic tubing conduit, Dimensions variable ㅑ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저항과 프로파간다

서상숙 | 미술사

 

Wilmer Wilson IV(미국) 〈Nev〉 나무에 스테이플과 피그먼트프린트 243.8×122×3.8cm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CONNERSMITH, Washington D.C.

 

최근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중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람(백인)을 기다리던 젊은 흑인청년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매장 직원은 그들이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렀다. 두 청년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백인여성에 의해 그대로 촬영되었고 배포되어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필자는 그중 한 명이 남편이 가르치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영대학을 졸업한 재원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이것이 피부색이 검은 그들이 미국에서 처한 절대적인 운명이다.

Manuel Solano(멕시코) 〈I Donʼt Know Love〉 캔버스에 아크릴 171×202cm 2017 Courtesy the artist

이 같은 일은 인종 및 여성 차별주의자로 극우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정권하에서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추방되고 합법이민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편하며 흑인은 범죄자로, 여성은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그들의 위치를 재점검당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뉴뮤지엄에서 한창 진행 중인 트리엔날레 <저항의 노래들>에 출품된 흑인 작가 윌머 윌슨 4세(Wilmer Wilson IV, 1989~)의 작품들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작가가 사는 필라델피아 거리의 자동차 윈드쉴드에 끼워놓은 광고지, 거리의 벽이나 전봇대에 스테이플로 찍어 고정시켜 놓은 전단지들을 거두어 확대,  합판 위에 붙인 후 공업용 스테이플을 촘촘히 박았다. 은빛의 철로 만들어진 수천수만 개의 스테이플은 조명 아래에서 물결 같은 그림자를 만들며 그 뒤에 숨은 흑인 형상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부분만 그대로 노출된다.


Zhenya Machneva(러시아) 〈CHP-14〉 면, 리넨, 합성섬유 135×190cm 2016 Courtesy the artist

<Nev>(2017)에는 흑인남자의 늘어진 두 손과 샴페인 병만이 드러나며 <Afr>(2017)에는 한 손엔 총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은 총을 쏘는 듯한 제스처를 한 흑인의 손이 노출되었다. 죄 없는 흑인청년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뉴스를 본 후 이 작품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벽에 세워진 윌슨의 스테이플 작업 바로 앞에는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놀이터의 그네 세트가 설치되었다. 위에는 빨간 벽돌 한 장이 놓여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순간 벽돌은 떨어져 아이의 머리를 칠 것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흑인 여성작가 다이아몬드 스팅리(Diamond Stingly, 1990~)의 작품 <E.L.G.>이다. 그 작업 옆에는 태풍이 지나간 후의 잔재를 보는 듯한 노르웨이 작가, 티릴 하셀크니페(Tiril Hasselknippe, 1984~)의 미니멀한 메탈작업 <발코니(Balconies)>(2018) 시리즈가 전시장의 침묵 속에서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를 언급한다.


Tomm El-Saieh(아이티) 캔버스에 아크릴 243.8×365.7cm 2017~2018 Courtesy the artist and CENTRAL FINE, Miami Beach

이번이 4회째인 뉴뮤지엄의 트리엔날레는 2011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만든 용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급과 그들의저항(sabotage)을 주제로 한다. 정규직을 가질 수 없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노동계층,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희망을 버린 사람들, 여성(가정주부, 미혼모 등), 노숙자, 실업자, 임시직장인을 비롯 고학력의 예술인, 작가, 프리랜서, 대학의 시간강사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밀려난 숙련공 등이 프레카리아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극대화에 따른 이 같은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스며들며 전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불안을 이용한 신국수주의의 등장마저 부추기고 있다.

알렉스 가텐필드(Alex Gartenfeld,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와 함께 이번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은 게리 캐리온-무라야리(Gary Carrion– Murayari)는 전시 카탈로그에서 스탠딩의 이론을 인용하며 이번 트리엔날레가 “자본주의의 특성인 착취와 지배의 구조에 대한 저항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두 큐레이터는 지난 3년 동안 24회에 걸쳐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포함,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방문했다.

페루 작가 다니엘라 오르티즈 (Daniela Ortiz)의 50×30×30cm 크기의 세라믹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관람객들. 벽에 설치된 브라질 달톤 파울라(Dalton Paula)의 작품도 보인다(사진: 서상숙

6명의 미국작가를 비롯 전 세계 19개국에서 선정된 25세부터 35세까지의 참여작가, 컬렉티브, 그룹 등 26명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에서 실제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하다. 전시작의 80% 이상이 이번 트리엔날레를 위해 만들어진 신작이며 참여작가 대부분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갖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하룬 군-살리 (Haroon Gunn-Salie, 1989~)는 머리가 없는(혹은 잘린) 남성 17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조각을 광산에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설치한 작품 <센제니나(Senzenina, 남아공의 반인종격리정책 노래)>(2018)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17명씩 두 곳에서 파업을 하던 34명의 광부가 경찰에게 총살당한 마리카나 참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미술,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다

컬렉티브 KERNEL(그리스) 〈As you said, things resist and things are resistant〉(사진 왼쪽 바닥설치작업) 알루미늄, 구리, 철, 혼합재료 500×200×170cm 2018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근 미국의 주요 전시에 수직, 도자기, 태피스트리 등 노동집약적 핸드메이드 작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이번 트리엔날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 작가 제냐 마치네바(Zhenya Machneva, 1988~)는 하나 둘 사라지는 소련의 공장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흰색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의 수직 작품(<CHP–14>(2016)) 등 태피스트리 시리즈로 소련의 몰락을 조용히 증언한다. 필리핀의 시안 데이릿(Cian Daylit, 1989~) 역시 태피스트리로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되새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공예적 작업과정을 택함으로써 신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더불어 미술작품까지 대량생산,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상황에 저항한다.

다니엘라 오티즈 (Daniela Ortiz, 1985~)는 페루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들은 오티즈에게 페루로 돌아가 출품작을 만들도록 요청했다. 오티즈는 뉴욕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모형에서 머리를 없앤 <콜럼버스>(2018) 등 스페인 식민정치에 망가진 페루의 과거와 현재를 50cm 높이의 실내장식용 작은 도자기 시리즈로 고발하고 있다.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거침없는 붓질과 화려한 색조로 그려낸 작가들의 페인팅도 아름답다. 아이티 출신으로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톰 엘-사이아(Tomm El-Saieh, 1984~)의 환상적인 추상, 트랜스젠더로 의료 조치를 거부당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눈이 먼 멕시코 작가 마누엘 솔라노(Manuel Solano, 1987~)가 기억으로 그린 인물화, 미국 흑인여성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표현한 하와이 출신의 제니바 엘리스(Jenniva Ellis, 1987~)의 오일 페인팅, 축출된 독재자 무가베의 얼굴을 그린 짐바브웨의 그레샴 타피와 냔데(Gresham Tapiwa Nyande, 1988~), 케냐의 체무 녹(Chemu Ng’ok, 1989~) 등의 작품들이다.

뉴뮤지엄 트링엔날레 전시 광경 Photo: Maris Hutchinson/ EPW Studio

비디오작업으로는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는 쉔신(Shen Xin, 1990~)의 한국어로 상영되는 비디오 <나이팅게일의 도발(Provocation of Nightingale)>(2017~2018)이 1층 로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이밖에 홍콩의 왕핑(Wong Ping, 1984~), 중국의 쑹타(Song Ta, 1988~) 등 중국작가 세 명의 비디오가 선정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진단하는 정기전인 뉴뮤지엄의 올 트리엔날레는 전통적 방법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선호함으로써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시대를 주제로 한 지난 2015년 트리엔날레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뉴뮤지엄의 외진 계단 한쪽에는 알제리아 작가, 리디아 오라만(Lydia Ourahmane, 1992~)의 작업 <유한성(Finitude)>(2018)이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소리의 울림으로 벽에 칠해진 석회가 서서히 떨어져 바닥에 가루가 쌓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한 작가들의 저항과 프로파간다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잘못된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하는 힘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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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숙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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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TOPIC 제2회 광주화루

한국화의 정체성과 젊은 모색

김상철 | 동덕여대 교수

전은희 〈오래된 집 – 만석동〉 한지에 채색 162×454cm 2018(최우수상)

광주화루가 올해로 2회를 맞았다. 지난해 출범한 광주화루는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중 한국화만을 공모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색일 것이며, 중앙-서울/수도권이 아닌 광주라는 지역에서 전국 규모의 대단위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점 역시 특기할 사항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광주화루가 우리가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심사방식으로 공정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점들은 광주화루가 지니고 있는 특징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 미술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화는 여전히 정체성 문제와 더불어 침체와 부진이 만성적인 현상으로 고착되고 있다. 더불어 여타 사회문제와 같이 문화의 중앙 집중현상 역시 날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과거 명실상부하지 못했던 공모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채 불식되지 못한 현실에서 과연 공모전이라는 고전적 형식이 유효한가 하는 점 역시 충분히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화루가 반가운 것은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회의와 비판에 앞서 실천을 통한 타개를 모색하고, 비판을 통해 대안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김선영 〈비워지는 시간〉 장지에 채색 145.5×336cm 2017 (우수상)

이번 제2회 광주화루는 ‘한국화의 미래 지향적 비전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가 또는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화 진흥에 기여할 수 있는 작가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한국화 공모전을 개최한다.’라는 기본 취지로 진행되었으나, 작년과 달리 작가상 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공모에 의해 김민호, 김선영, 박병일, 박재철, 전은희, 정경화, 조민아, 진희란, 한상아, 한승엽 등 10인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정경화 〈별이 빛나는 밤에 Ⅱ〉 종이에 먹과 금분 136×276cm 2018

선정된 작가들의 면면은 실로 다채롭다. 수묵과 채색이라는 한국화의 전통적 장르 구분을 두루 포괄함과 동시에 이질적인 재료와 표현을 통해 새로운 전형을 선보이기도 한다. 작가 개개인의 개성을 차치한다면, 이들의 작품을 통해 오늘의 한국화가 지니고 있는 전반적인 경향과 면모, 그리고 지향을 일정 부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점은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방만한 작업들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적 장식을 차용하되 이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해석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상호 이질적인 재료의 혼용을 통칭하는 혼합재료의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설사 다른 재료를 사용했더라도 근본적인 조형 심미에서는 전통적인 그것을 원용하거나 주관적 해석을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공공적 가치와 덕목을 전제로 한 전통회화의 조형 내용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경험이나 일상적인 삶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점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더불어 비록 지필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지만 과거의 중봉을 전제로 한 선의 조형에서 벗어나 다분히 구조적이고 묘사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진희란〈한계령길〉 순지에 수묵담채 160×150cm 2017

박재철〈비천한 길 Ⅰ〉 한지에 먹, 채색 130×162cm 2017(대상)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박재철의 경우 내밀한 개인의 일상사를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화면은 일종의 채집증적인 집요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무엇인가에 육박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힘을 보여준다. 비록 수묵 담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는 바에 대해 충실하고 집중함으로써 회화 본연의 힘을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민호의 작업은 동일한 대상에 다양한 시점을 반복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오묘한 시각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특히 목탄 등을 차용한 작업의 구조는 흑백으로 이루어져 수묵을 연상케 할 뿐 아니라 실상과 허상, 현상과 본질 등 수묵 본연의 정신을 새삼 상기시키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정경화의 작업은 극히 섬세한 수묵의 운용을 통해 밤하늘의 별자리를 감성적으로 표현해냈다. 그의 작업은 수묵에 대한 풍부한 해석력과 재료에 대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선영의 경우 채색을 전제로 하지만 필의 흔적을 살린 표현주의적 화면으로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고 있다.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호흡을 반영하며 이루어지는 속도감 있는 필의 구사는 그의 작업을 굳이 채색으로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개성적인 것이다. 박병일의 작업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담묵의 정교한 구사로 탄탄한 구성력을 확보하고 원근을 배제한 평면적 구성으로 화면을 확장시키고 있다. 마치 탈색된 것과 같은 무채색의 수묵 화면은 매우 풍부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수묵의 확장된 해석이라 할 것이다. 전은희의 경우 일상적인 구석, 혹은 소외된 공간에 대한 집요한 표현으로 채색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낸 경우이다. 삶에 대한 애잔한 회상과 그 기억을 반추하는 감성적 접근은 평범한 대상을 특별한 공간으로 치환시키며, 그것은 과장이나 수식과 같은 기능적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요함과 성실함을 통해 구축되어 독특한 가치로 전해진다. 조민아는 익명의 개인을 통해 현대인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물들과 공간 설정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들을 전해주고 있다.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화면 구조는 그것이 일정한 서사적 내용들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 등에 맞춰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진희란의 작업은 산수에 대한 변용이다. 어떤 부분은 실경산수를 연상케 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극히 관념적이고 전형화된 모양으로 표출되기도 하는 이색적이고 신비한 표현은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수묵담채의 고전적 표현 양식을 이처럼 개별화된 개성으로 표출해낼 수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상아의 경우 광목을 통한 수묵의 운용을 통해 표현력을 극대화하고 작위적인 것과 무작위적인 것의 대비를 통해 매우 사변적인 화면을 구축해내고 있다.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담묵의 점들과 강한 발묵의 대비는 수묵의 신선한 해석으로 다가온다. 한승엽은 다분히 객관적인 시점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이를 점묘로 구축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복적인 작업의 결과를 통해 구축되는 화면은 객관적인 사실성의 왜곡을 통한 보는 재미와 더불어 수묵 특유의 깊이 역시 확보하고 있다. 특히 바탕색의 변화를 통해 수묵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방식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적이고 담백하며 정교한 화면에 돌연 등장하는 아비의 존재는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는 오브제 같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작가의 이야기를 견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눈길을 끈다.

조민아 〈하나 둘 셋〉 장지에 채색 162×130cm 2018(우수상)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수상작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그러나 일관된 방향성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실험의 양상이나 서구 현대미술을 추종하는 경향은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인 재료나 조형원리, 혹은 심미적 내용들에 바탕을 둔 개별적이고 개성적인 표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수묵과 채색이라는 경직된 장르 구분 없이 상호 융합을 통해 분방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이 특징이다. 광주화루의 취지가 ‘한국화의 미래 지향적 비전이나 새로운 방향성의 제시’라 한다면, 이번 수상작들은 조심스럽지만 그 성과의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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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EOPLE]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2017년 촛불혁명이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면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또한 국민 모두의 박물관으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출발점에 2017년 11월 취임한 주진오 관장이 있다. 정권 교체 후 역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수장을 맡은 주 관장은 역사학계의 논의를 수렴하며 박물관의 설립 취지와 운영 방향을 다시 가다듬고 있다. 제주4·3 70주년 기념 특별전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가 열리고 있는 박물관에서 주 관장을 만나 이번 전시와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SPECIAL ARTIST] 김호득

 
작가 김호득은 한국 회화사의 지평을 넓혀온 인물이다. 지필묵이라는 전통을 바탕으로 설치에 이르기까지 형식의 영역을 확장시켰고, 내용면에서도 ‘폭포’로 대표되는 자연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그림은 자연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과 원숙한 감각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특유의 필력으로 ‘현대적 동양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동양회화의 동시대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획득한 김호득의 작품세계를 탐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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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환영을 빨아들이는 공간

박영택 |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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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득 〈계곡〉(오른쪽) 광목에 먹 119×251cm(각) 2017

나는 김호득이 1990년대 초반에 자연을 소재로 그린 일련의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산과 계곡, 풀들의 형태를 슬쩍 빌려 그 생명체들이 마냥 뒤척이는 기미, 격렬한 떨림과 동세를 전달하는 그림이었다. 그것을 가능한 한 온전히 전하려는 붓과 먹, 간간이 개입한 채색은 대단한 테크닉과 통감각적인 맛을 안겨주는 것이어서 눈이 번쩍 뜨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의 그림 소재는 줄곧 자연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 즉 자연을 떠난 적이 없다. 좁게는 산, 계곡, 물, 폭포, 들, 풀, 꽃에서 받은 인상인데 단지 형태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퍼드덕거리는 떨림이나 기미를 낚아채는 그리기로서, 일종의 비시각적인 것의 가시화란 난제를 필획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본다. 사실 모든 그림이란 궁극적으로 가시성의 세계를 매개로 비가시성의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지 않은가? 작가는 이후 바람, 빛, 속도와 시간, 문자, 혹은 움직임과 같은 세계로 적극 옮겨갔지만 이는 자연의 구체적인 형태를 매개로 하는 작업과 항시 반복되고 있다. 사실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좀 애매한 편이다. 왜냐하면 그가 즐겨 그리는 <폭포>를 예로 들면 그것이 자연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결국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형(形)으로부터 애초에 떠나 있는 것이자 그것이 목적은 아니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이른바 모더니즘에 입각한 추상은 아니다. 그가 평면성이나 물성, 극도로 환원적인 성격의 회화를 지향한 적은 없다. 극소의 필흔과 온통 먹으로만 채워진 종이나 수조작업 역시 자연현상을 환기하거나 보이지 않는 자연의 미세한 기운과 관자의 신체를 상통하게 하려는 배려이기에 그렇다.

김호득 〈흔들림 – 문득〉 가변설치 2018 〈산산물물〉이란 타이틀로 열린 갤러리분도 개인전 설치광경

초기에 그의 작품의 모티프는 자연풍경이지만 결국 화면 위에 남는 것은 선과 먹의 흔적이고 그것들이 요동치면서 자연의 한 순간의 생동함을 펄떡거리는 생선처럼 안기는 그림이었다. 폭포와 계곡, 세차게 흐르는  물, 시커먼 바위, 산과 나무, 풀과 꽃이었다. 그리고 구름과 바람, 먼지와 열기 같은 것들로 나아갔다. 그림 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는 뚜렷하지 않은데 작가는 하나의 물체를 표현함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 최소한의 요약을 추구하며, 좁게 끌어안으면서 그 본질을 건드리고자 했다. 그래서 자연을 보는 시점을 극단화하면서 관자의 눈과 몸을 대상의 내부로 ‘확’ 끌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매우 미시적인 접근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무서운 속도감이 있고 세찬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불고 나무와 풀들이 뒤척이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소리, 벌레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자연계의 모든 살아있는 것이 부산스럽게 피어오르고 흔들리고 살아나는 그런 소리, 모종의 기미와 운동과 호흡과 떨어댐을 작가는 몸으로 따라간다. 결코 고정시킬 수 없는, 지속적인 흐름 속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계의 안타까운, 조바심 나는 현전이다. 그림은 결국 한 작가의 몸의 더듬이가 포착한 세계상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예민한 감성과 몸, 신경으로 포착하고 떠낸 세계를 표현해내는 데, 기술하는 데 먹과 붓을 사용하고 그 재료가 더없이 그 표현을 용이하게 해주거나 효과적이라고 보는 이다. 그리고 그 붓과 먹을 쓰되 좀 재미있게 질리지 않게 상투적으로 고정되거나 관습화되지 않게 변화를 거듭해온 이기도 하다. 이 점이 그의 돌올한 존재감이다. 동양화란 결국 선의 예술이다. 그 선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단지 사물의 외형을 지시하거나 표현하는 데 결코 머무르지 않는 그 선은 묘사를 뛰어넘어 어떤 기품의 경지로 내달린다. 보여줄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근원을 향해 마구 질주하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먹이 붓에 의해 한지/광목의 표면(내부)으로 잠식해 들어가면서 멈춘 어떤 상황성을 안기는데 그게 흡사 자연에서 받은 인상이 되고 자연과 생명현상의 장엄하고 신비하며 뜨거운 어떤 순간을 목도케 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고 정신적 활력을 건드려서 고양된 정서와 쾌감을 준다. 그림이 표면이 아니라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어디론가 활달한 정신적 비약을 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닌 궁극의 지향점이었다고 본다. 그림은 매개가 되고 고리가 되어 관자들은 이를 징검다리 삼아 저 세계로 비약하는 정신적 활력을 갖는 것, 따라서 그림은 망막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마음 안에서 요동치는 것 말이다.

김호득 〈문득 – 폭포 ㄱㄴ〉 캔버스에 먹 130×162cm 2011

그는 동양화 재료를 확장시킨 대표적인 작가로 기억되지만 여전히 지필묵이 중심이다. 먹의 깊은 어두움과 붓 내지는 먹과 물을 실어 나르는 여러 재료(일부러 망가트린 붓과 딱딱한 종이의 단면, 콩테, 손가락 등)를 가지고 한지, 광목천, 갱지나 캔버스 천 위에 생생하고 격렬하게 더러 침잠되고 더없이 고요하게 흔적을 남긴다. 생천에 아교 칠을 하거나 아예 그 천 자체에 직접 시술하기도 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입자가 성글고 평평한, 이미 포근한 색 자체가 깃든 광목을 즐겨 사용한다. 광목은 일정한 두께를 지닌, 바탕 면 자체가 오브제로 가설되어 필과 먹의 얹힘을 종이와는 달리 보여준다. 광목은 흡수하기보다는 뱉어내는 편인데 그것이 신체의 감각을 필선으로 전달하는 데 용이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나아가 한지를 뭉친 종이죽에서 먹을 머금은 한지를 구겨서 뭉쳐놓은 것, 종이죽을 계속 칼로 이겨서 도마 위에 찰떡처럼 붙여놓은 오브제나 먹물 묻은 종이를 구겨 응고시키고 나무판에 붙여놓아 수묵을 오브제화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리기보다 훨씬 촉각적이고 생생한 손의 감각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니까 손가락과 손바닥의 힘이 묘하게 조절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인 상황 아래 기기묘묘한 형태를 지닌 것들이 불쑥불쑥 나온다. 이후 공간으로 나아가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성을 극대화하게 되는데 2009년부터 본격화되는 입체와 설치작업이 그것이다. 사실 이 시기부터 그는 ‘측량할 길 없는 근원적 생명’이란 주제의 작업을 공간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나 마음의 흔들림, 그리고 우주의 기운과 삶을 관계 짓는 사이, 우연히 떠오른 생각 혹은 찰나적 깨달음 등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보는데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그림에 반영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그것이 공간에 설치화, 오브제화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해 보인다. 일정한 크기의 광목이나 한지를 빨래처럼 널고 그 아래쪽에 먹물을 풀어놓은 수조를 만들어놓는 식이다. 잔잔히 흐르는 물,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을 보는 이들에게 고요히 목도하게 하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느끼게 하는 등 주어진 공간에 있는 관중의 몸을 감싸는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라는 그 찰나의 시간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이를 지바 시게오는 “한지, 물, 먹 따위 한없이 비물질화되기 쉬운 재료를 써서 공간의 움직임, 흔들림, 혼돈을 억제하려 시도한다.”고 평한다. 관자의 신체가 공간에 투여되고 여기에 놓인 오브제들과 공모관계로 엮이는 상황 설정이 작가의 의도인 셈이다. 이는 결국 물질과 비물질,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겪게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의 가능태로서의 공간, 생성태로서의 활성적 공간, 무한한 잠재성으로 들끓는 공간 연출이다. 지극히 얇고 어둡고 몇 개의 단서 같은 붓질이 던져진 것들 사이에서 마구 피어나는 활력의 미세한 흐름을 감지하게 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이 설치가 그의 그림과 같은 어법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김호득 〈겹 – 사이〉 광목에 먹 74×121cm 2013

묘사를 뛰어넘은 선(線)의 경지 이번 갤러리분도에 전시된 작업은 2014년 전시와 거의 동일해 보인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그려낸 산수화의 변형된 그림은 흡사 겸재의 금강산 그림을 연상시키는데 화면 가득 필세만이 차있다. 평면작업과 설치작업이 함께 선보이고 광목에 힘찬 필선 몇 개로 그려진 그의 대표작 <폭포>도 빠짐이 없다. 지바 시게오의 표현대로 “폭포의 형태가 아니라 폭포가 있는 공간 전체를 표현”한 그림으로서 “어떤 형태가 되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움직이는 사물이 되고 있다.” 작가는 광목 위에 검은 먹과 붓질 그리고 물을 가지고 모종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고 그 행위가 화면에 모종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와 무관한 상도 아니다. 광목천의 표면에 응고되고 스며들고 들러붙은 얼룩들이 그대로 매력적인 상황, 사건을 만들어낸다. 우리들은 기꺼이 누런 광목천 위에 먹물이 문질러지고 스며들고 번져나가거나 튕겨진 자취를 통해 모종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다. <폭포>라는 제목을 달았기에 이를 통해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물줄기와 그 굉음, 부서지는 물보라, 그로 인해 움찔하는 내 몸이 감각들, 주변의 자연공간의 떨림을 추체험하게 된다. 화면은 무한한 생성과정을 가장 간소한 꼴로 보존하며 일종의 역동적 이미지로서 무한한 풍부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는 일부분만 보여주는 전략이다. 나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보여주는 것보다 상상하게 하는 것이 그 대상을 좀 더 잘 보게 하는 일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기억을 반추시키고 꿈꾸게 하고 회상과 여운 속에서 사물과 대상을 추려내게 하는 것이다. 망막으로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시(視)욕망을 짐짓 억누르고 망막 이외에 몸이 지닌 다양한 감각기관과 정신적 활력을 통해 상상하고 지각하게 한다. 나는 이 폭포 그림과 같은 것이 그가 제일 잘하는 영역이라고 본다. 사실 그는 이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 윤규홍의 지적처럼 그는 “자신의 패턴으로부터 진화되어 나온 새로운 패턴이라는 역설”을 시도하는 작가다.

김호득 〈폭포〉 광목에 먹 120×81cm 2017

우리 화단에서 많은 이가 김호득을 “한국 동양화계가 처해있는 난관을 헤쳐 나갈 남다른 처방전을 가지고 있는 작가”(박춘호)로 인식하고 있다. 동양화를 동시대의 현대미술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욕망이 큰 그는 그런 시도를 지속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새삼 그의 1990년대 초 이후 작업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의 현란한 여러 시도가 동시대 현대미술과의 여러 유사성 아래 풀려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독자성은 자연에서 받은 감흥을 그만의 필력으로 전달하는 데서 나오는 감각인데 그것이 이후 동시대 현대미술에서 엿보이는 유사한 설치, 연출 작업들과의 친연성 아래 풀려나오는 것은 다소 아쉽다.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통해 이미 익숙해진 타 장르와 엇비슷한 것을 시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양화작업의 현대화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동양화의 현대적 작업’ 이란 과제 같은 것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하여간 그래서인지 그는 여전히 그의 득의작이라고 여기는 <폭포>( 구체적인 자연이미지를 매개로 한)를 빼놓지 않고 선보인다. 나는 그 <폭포>가 시간이 지나고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아주 곤죽이 될 때까지 나아가는, 현기증 나는 경지를 만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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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호 득 

1950년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관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0여회 개인전을 열었다. 제22회 금복문화상, 제15회 이중섭미술상, 제2회 토탈미술상, 제4회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했다.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를 정년퇴직하고 현재 경기도 여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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