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WIEN 브루노 지론콜리

〈Ohne Titel(Untitled)〉1975–1976, Sammlung Sigmund, Niederösterreich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Bruno Gironcoli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은 작가가 세상을 등진다. 2010년 74세로 타계한 원로 조각가 고(故) 브루노 지론콜리 (Bruno Gironcoli, 1936~2010)도 그랬다.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이름은 세계 미술계에서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그의 회고전(2.3~5.27, Wein MUMOK 루드비히 근현대미술관) 부제가 ‘쑥스러운 조각가’였던가!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가이면서도 드로잉을 독립된 작업으로 병행한 그의 유작이 소개됐다. ‘은둔형 작가’였던 그는 세상에 없어도 그의 사색의 흔적은 이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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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는 조형한다

박진아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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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조각가 브루노 지론콜리는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오스트리아 미술계 인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국제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앙망하며 베니스비엔날레 대표작가 선정이라는 영광을 애타게 기대하던 당시 유망 신세대 작가들은 실망했다. 발칙・도발적인 콘셉트와 충격적인 비주얼의 설치작업과 퍼포먼스 작업에 경도된 젊은 콘셉추얼 작가들에게 주목하던 당시의 미술계와 언론도 의외라고 평했다. 그해 나는 영국의 한 미술 잡지에 기고할 기사를 쓰기 위하여 브론콜리의 작업실에서 작가를 인터뷰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대표 작가 선정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아프리카 원시조각과 가면 컬렉션으로 빼곡한 아틀리에서 앉아있던 그는 “나의 자르디니 전시는 우연(Zufall)일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2010년 74세로 타계한 원로 조각가 고(故) 브루노 지론콜리(Bruno Gironcoli, 1936~2010)는 20세기 오스트리아의 대표 조각가 중 한 사람이지만 국제 미술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리츠 보트루바(Fritz Wotruba, 1907~1975) 교수의 뒤를 이어 1977년부터 30년 넘게 빈 미술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Wien)의 조각학과를 이끌었지만, 그는 빈 프라터 공원 뒤 뵈클린슈트라세에 자리한 커다란 아틀리에에서 두문불출 작업에만 몰두한 은둔의 예술가였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 특유의 육중한 대형 금은도금 조각은 때론 폭과 높이가 7-8m에 달할 정도로 초대형이어서 운반이 어렵기로 악명 높았는데, 그 점 또한 여간해서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해외 미술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 한 한 이유였다.

〈Ohne Titel(Untitled)〉 1997,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Wien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지론콜리는 양차 대전 사이 격동의 시기인 1936년에 오스트리아 남부 소도시 빌라흐(Villach)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금속 공방에서 금은세공을 배웠다. 청년 금속세공 장인 지론콜리는 1957년 빈 응용미술대학(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unst Wien) 회화과에 진학하며 순수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가 지망생들이 그러했듯 장래 화가가 될 꿈을 지니고 있던 젊은 지론콜리는 미친 듯이 스케치와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캔버스 스트레칭, 틀 짜기, 프라이머 밑칠 작업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회화를 위해 실은 조각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는 잠시 회화과 수업을 멈추고 파리로 건너가 1년 동안 당시 프랑스 예술계와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접했다. 특히 이 파리 체류기는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을 직접 보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분야가 조각임을 깨닫게 해준 분수령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인체 조각의 부피를 2차원에 가까울 정도로 납작하고 가늘게 깎고 제거했다가 다시 부피를 가하여 조형하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3차원 조각의 ‘변신(transformation)’ 콘셉트에 깊이 감명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지론콜리는 1960년대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30년 동안 철사와 폴리에스터를 주재료로 삼아 조각과 설치물을 꾸준히 제작하면서 그가 말한 이른바 ‘소외된 인생 속의 파편들을 공간 속에 펼치고 배열한, 세심히 고려된 표면들 (surfaces of considerations)’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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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

〈Entwurf zur Veränderung von Säule mit Totenkopf(해골로 기둥을 바꾸기 위한 디자인)〉 철분 페인트, 종이에 잉크와 과슈 61.8×89cm 1971 Courtesy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und Kunstbau München ©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GMBH / ESTATE BRUNO GIRONCOLI / GESCHÄFTSFÜHRERIN CHRISTINE GIRONC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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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60~70년대 빈에서는 아르눌프 라이너와 귄터 브루스가 거리와 공공 장소에서 스스로의 몸을 자해하는 극도로 격렬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는 사이, 전설적인 갤러리 네히크스트 상크트 슈테판(Galerie nächst St. Stephan)을 주축으로 한 빈 제1구역 화랑가에서는 조각가 발터 피힐러와 건축가 한스 홀라인이 반(反)미학주의 팝 댄디파를 이끌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을 싹틔우고 있었다. 지론콜리는 빈 악쇼니스무스(Wiener Aktionismus) 정신으로부터 영향은 받았지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고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유입된 개념주의 국제 사조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20세기 후반기, 과거에 대한 향수가 채 가시지 않은 오스트리아에서도 나치정권의 잔재와 가톨릭 문화를 뒤로한 채 경제
재건을 위한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쟁 원리, 대량생산과 대량소비형 경제, 대중적 팝 문화가 일상을 적셔들어 갔다. 지론콜리는 가볍고 경쾌하지만 깊이 없는 대중소비재와 플라스틱 신소재에 담긴 팝 미학에 매료됐고, 그래서 조각의 형태를 잡는 주소재로써 폴리에스터를 주저없이 포용했다. 폴리에스터 합성 폴리머나 유리섬유로 조각의 기초 골조와 모델을 만드는 작업은 본래 20세기 산업디자이너들이 모크업(mock up)이나 제품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작할 때 쓰던 기법이다. 이렇게 폴리에스터와 금속광택제를 다룬 것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지병으로 오래 고생했음에도 그는 이 20세기 기적과 편의의 신소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Entwurf zu Polyesterfigur(폴리에스터 형상을 위한 디자인)〉 철분 페인트, 종이에 잉크와 과슈 87×110cm 1965 개인소장 Photo: © Galerie Elisabeth & Klaus Thoman/Jorit Aust ©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GMBH / ESTATE BRUNO GIRONCOLI / GESCHÄFTSFÜHRERIN CHRISTINE GIRONCOL

지론콜리가 본래 금은세공 장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던 만큼 그의 조각 양식은 지극히 디자인적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겸 디자인 이론가인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는 디자인적 요소가 짙은 그의 작품을 3차원으로 펼쳐 놓은 미래주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interactive storytelling) 조각화라고 해석한다. 관객의 시야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래 비전 내러티브가 달리 전개되며 마치 조각으로 된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감흥을 자아낸다. 공상과학 영화나 악몽에 나올 법한 미래 디스토피아 속 괴물 기계에 에델바이스 꽃, 포크와 숟가락, 옥수수, 갓난아기, 개, 원숭이 형상 같은 지극히 진부한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배열해 놓았다. 인간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을 가진 외계인이 만든 듯 금은으로 말끔히 마감된 폴리에스터 조각 몸체는 어쩌면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은의 케이스 속에 플라스틱 부속과 금속 회로를 채워넣은 ‘겉 다르고 속 다른’ 각종 21세기 모바일 스마트 디바이스에 대한 은유는 아닐까.

처음부터 지론콜리의 드로잉은 조각을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다. 흔히 조각가에게 스케치와 드로잉은 최종 조각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착상 또는 창작 프로세스를 위한 준비 과정이지만, 그는 조각과 드로잉을 각기 독립된 창조적 결과물로 보고 평행으로 작업했다. 조각과 대조적으로 드로잉의 장점은 비현실적이고 때론 초현실적인 그의 상상력과 착상을 종이 위에서 맘껏 발휘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조각은 동역학, 정역학, 중력, 균형 등 온갖 물리적 조건을 절충해야만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종이 위 드로잉의 세계란 실현 불가능한 물리적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롭고 제약 없는 ‘사색의 장소(areas of reflection)’였던 것이다.

전시전경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지론콜리가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의 문학에서 깊이 영향 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각 <유리관 속의 모형(Modell in Vitrine)>에
‘머피(Murphy)’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는 동명의 새뮤얼 베케트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체로 흔들의자에 앉아 무사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며 은둔하는 소설 속 반(反)영웅 머피는 어찌 보면 예술이라는 보호장치 덕분에 바깥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던, 민감하고 섬세했던 조각가 자신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론콜리는 소설 속 주인공 ‘머피(Murphy)’로 화하여 조각을 ‘조형(morph)’하고 정해진 형상과 심볼 언어를 반복해 사용하여 조각에 등장시킨다.

고통이라는 ‘인간적 조건(human condition)’에 대한 그의 사색은 과슈 드로잉 작품 <체육 시간(Turnstunde)>(1970)에서 체육 교사의 구령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런가 하면 <푸른색의 개 디자인(Entwurf, blauer Fluschi)>처럼 인간에게 시달리거나 유린당하는 동물이나 고문당하는 인간이 폭력적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가 매 조각작품에 반복해 사용한 이른바 ‘백설공주 모티프’ – 에델바이스 꽃, 개, 옥수수, 웅크린 아기, 전구, 하트, 스와스티카, 마돈나 등등 – 는 죽은 듯 얼어붙어 보이지만 공상과학 연재 드라마에 고정 배우들이 재출연하듯 죽었다 되살아오는 망령들이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음과 다름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백설공주(Snow White)란 ‘저승에서 돌아온 자(revenant)’, 눈만 감으면 보이는 악몽에 대한 은유다.

〈Figur mit ovalförmigen Hängeteilen(정지된 타원형의 조각 형상)〉(사진 가운데), 1984–1990,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Wien © mumok, Photo: Stephan Wyckoff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지론콜리는 자신의 작품 속에 담긴 상징이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훌륭한 미술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관객의 심기를 건드리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전자세계(Elektronische Welt)>(제작년도 미상)는 개인 모바일 기기의 보편화와 네트워크 사회, 4차 산업혁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가상현실 같은 신유행어가 만연하는 21세기 현대인에게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 보라고 재촉하는 것은 아닐까? 기이하고 압도적인 조각작업 만큼이나 방대하고 아리송한 브루노 지론콜리를 드로잉 도제사로서 재점검하는 전시 <브루노 지론콜리-쑥스러운 조각가(Bruno Gironcoli, Shy at Work)>는 빈 루드비히 근현대미술관(MUMOK –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에서 2월 3일부터 5월 27일까지 진행된다. ●

브루노 지론콜리는 1936년 오스트리아 남부 빌라흐(Villach)에서 태어났다. 인스부르크에서 금세공을 배웠으며 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ünste Wien(빈 응용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빈 미술아카데미 조각과의 수장이 됐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Grand Austrian State Prize(1993), Austrian Decoration for Science and Art(1997), Prize of the city of Vienna for Visual Arts(1976) 등을 수상했다. 2010년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Wiener Zentralfriedhof(빈 중앙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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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MICHIGAN & NEW YORK

 

Nabil Mousa

American Landscape: An Exploration of Art & Humanity


Trigger: Gender as a Tool and a Weapon


문화계를 강타한 성추문 사건의 본질은 불평등한 성의식과 그로인해 빚어진 권력의 남용이 아닐까? 성의식은 생물학적 의미에서 사회학적 의미로 일찌감치 바뀌었으나 그것이 전통적 가치관과 윤리관이 견고한 집합체인 사회에서 용인되기란 난망한 현실이다. 그래서 미술관이 먼저 움직였다. 게이아티스트 나빌 무사(Nabil Mousa)의 개인전(2017.11.17~4.8, 아랍아메리칸 국립미술관)과〈Trigger전〉(2017.9.27.~1.21, New Museum)은 성소수자 작가와 격렬한 젠더 논쟁의 지금을 보여준다. 다양성과 차이의 존중은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 조건이다. 미술이 사회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 두 전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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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 무사(Nabil Mousa) 〈미국의 지평(American Landscape) #22〉 캔버스에 유채 120×152.5cm Photo courtesy of Arab American Nation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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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술의 메인 스트림에 들어선 L.G.B.T.Q. 작가들

서상숙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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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연쇄 고발운동인 “미 투(Me Too, 나에게도 일어났다)” 운동이 최근에는 성소수자도 동참, ‘그에게도 일어났다’는 뜻의 “힘 투 (Him Too)”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는 지난해 가장 많이 검색된 ‘올해의 단어’가 “페미니즘”이라고 발표했다. 그 배경에 미투운동과 더불어 성소수자와 여성 그리고 이민자들의 인권 보장을 약속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선전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너진 데 대한 실망과 분노가 섞여 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남성/백인/ 시스젠더(cisgender: 사회적 성과 생물학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들) 우월주의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세기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이제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사회적 성, 즉 “젠더(gender)”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었다.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등 모든 젠더에 대한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페니미즘 논쟁이 한창이던 1970년대, 작가 주디 시카고는 여성의 생식기를 도자기로 형상화한 <디너 파티>를 발표해 성차별을 논의했다. 이 작품은 현재 브루클린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되어가는 요즘 젠더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 격동의 시대에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근 미국의 메인 스트림 미술관에서는 L.G.B.T.Q.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그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스미소니언 계열 미술관 중 하나인 아랍 아메리칸 국립미술관(Arab American National Museum, Michigan, AANM)에서 4월 8일까지 열리는 아랍계 게이 작가 나빌 무사(Nabil Mousa)의 <미국의 지평: 미술과 인간성을 탐구함(American Landscape: An Exploration of Art & Humanity)전>, 그리고 1월에 막을 내린 뉴뮤지엄의 <방아쇠: 도구와 무기로서의 젠더(Trigger: Gender as a Tool and a Weapon)전>이 그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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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 무사 〈미국의 지평(American Landscape) #45〉 캔버스에 유채 162.5×135cm Photo courtesy of Arab American National Museum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를 근거로 활동하는 나빌 무사는 시리아에서 태어나 1978년 기독교인인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작가로 2000년 아랍인으로서는 물론 작가로서도 드물게 커밍아웃했다. 무사는 게이로서, 그것도 아랍인 게이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며 겪은 삶을 담은 페인팅 시리즈 <미국의 지평>(2008~2012)을 전시하고 있다. AANM이 기획한 첫 게이작가전이다. 전시장소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미시간 주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타임스 및 아트 인 아메리카 등에 크게 소개되었다.

이 시리즈는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삼아 그 위에 경계 및 위험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낡은 청바지, 남녀 화장실 표지, 임산부, 시리아의 심벌 등이 거친 붓질로 그려져 있다. 시리즈 #1의 붉은 스트라이프는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남자 화장실 표지로 채워져 있고 왼쪽 상단의 사각형 안은 미국의 주를 뜻하는 별들 대신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수학에서 같은 값을 뜻하는 노란색 등호(=)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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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콸스(Christina Quarles 〈아름다운 애도(Beautiful Mourning)〉 캔버스에 아크릴 121.9×152.4cm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David Castillo Gallery Collection David Castillo, Miami

뉴뮤지엄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방아쇠: 무기와 도구로서의 젠더(Trigger: Gender as a Tool and a Weapon)전>을 열어 큰 관심을 모았다. L.G..B.T.Q.I. 즉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트랜스젠더(Transgender), 양성애자(Bisexual), 퀴어(Queer), 인터섹스(Intersex) 작가 및 컬렉티브들의 지난 10년간 작업을 모았다.

뉴뮤지엄이 설립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트리거전>은 미술계의 가장 새로운 흐름을 최전선에서 포착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뉴뮤지엄의 전통을 이은 전시다. 40명의 참여작가 연령은 25세부터 60대 중반까지 세대를 넘나든다. 야심만만한 이 전시는 권위 있는 미술기관에서 기획하고 전시함으로써 미술계에서 그들의 존재 및 능력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성(性)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넓혀 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반화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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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보드리/리나티 로렌즈(Pauline Boudry/Renate Lorenz, 2007년부터 협업)
〈독성(Toxic)〉 Super 16mm film transferred to HD, 13 min. 2012 Courtesy the artists, Ellen de Bruijne Projects, and Galerie Marcelle Alix

그림, 조각, 비디오, 설치, 사진, 퍼포먼스, 공예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에 걸쳐 남성 대 여성이라는 기존의 두 가지 성 체계는 물론 나아가 성의 구별 자체를 깨트리려는 언-젠더링(ungendering) 혹은 유동적 성(gender-fluid)을 표방하는 작업들이 미술관 3개 층에 걸쳐 전시되었다.

뉴뮤지엄은 198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작가들의 서베이전 <연장된 감성들: 현대미술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Extended Sensibilities: Homosexual Presence in Contemporary)>를 기획, 전시했고 이어 <차이점: 표상과 성(Difference: On Representation and Sexuality) 1984-85>, <홈 비디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HOME VIDEO: Where We Are Now) 1986-87,>, <나쁜 여자들(Bad Girls) 1994> 등 성소수자들의 작업을 소개해왔다.

이번 전시의 새로운 점은 게이와 레즈비언은 물론 트랜스젠더와 퀴어, 그리고 인터섹스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남성(He) 여성 (She)의 이중체계를 넘어서 최근 “그들(They)”로 불리길 바라는 “유동적 젠더(Gender- Fluid)”의 대두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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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라라 셀프(Tschabalala Self)〈(사자나 말의) 갈기(Mane)〉 캔버스에 린넨, 유채, 파스텔 2016 Lewben Art Foundation Collection. Courtesy the artist; Pilar Corrias, London; T293, Naples and Rome; and Thierry Goldberg, New York. Special thanks to Pilar Corrias and T293

27세의 흑인작가 샤발라라 셀프(Tschabalala Self, 1990~)의 페인팅은 여러 개로 자른 조각들을 바느질로 이어붙인 일종의 콜라주 혹은 아상블라주다. 화면에 나타난 형상은 그만의 아바타로 여자와 남자 혹은 성별이 불가능한 인물들이 서로 엉켜 있다..

네이랜드 블레이크(Nayland Blake, 1960~)는 전시 중 ‘노멘(Gnomen)’이라 이름 붙인 곰과 들소의 하이브리드 의상을 입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털이 많은 동물 의상을 이용한 롤플레이 <퍼르소 (Fursona)> 작업이다. 털의 부드러움이 주는 ‘포함’ ‘돌봄’ ‘측은지심’ 등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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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세이블 엘리스 스미스(Sable Elyse Smith)〈풍경III(Landscape III)〉 2017   || (가운데) 아니카 이(Anicka Yi) 〈한사람을 위한 테이블(슬픈 카페에서)(Table for One(at the sad café))〉 2011 || (오른쪽)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만난 모든 여성이다(I’m Every Woman I Ever Met)〉2011
“Trigger: Gender as a Tool and a Weapon,” 2017. Exhibition View: New Museum.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이번 전시에 초대된 유일한 한국인이자 지난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휴고 보스상 수상전으로 관심을 모은 아니카 이(Anicka Yi, 1971~)의 2011년작 두 작품은 침묵 속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투병 비닐에 진공 봉인된 진주목걸이를 역시 투명한 플래스틱의자에 앉히듯 걸쳐 놓은 <한 사람을 위한 테이블(슬픈 카페에서)>, 벽에 반달 모양의 플렉시 글라스를 설치하고 껍질땅콩과 진주 목걸이를 진공 포장해 길게 늘어뜨린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만난 모든 여성이다”는 고정된 사회관념 속에 갇힌 여성성의 숨 막힘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업들은 2010년 시스젠더 규범성이 포함된 군사기밀을 위키리크스에 유출한 트랜스젠더 군인 첼시 매닝 스캔들에 반응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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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천작업) 조시 파우트(Josh Faught) 〈마브 디케이드(The Mauve Decade)〉2014 || (사진 위) 시몬 리(Simone Leigh) 〈영양교환(trophallaxis)〉 2012 || (사진 맨 오른쪽) 시몬 리 〈컵보드IV(Cupboard IV) 〉 2015
“Trigger: Gender as a Tooland a Weapon,” 2017. Exhibition View: New Museum. Photo: Maris Hutchinson / EPWStudio

 

울리케 뮐러(Ulrike Mller, 1971~)의 작은 기하학적 추상들도 원색적인 이미지와 계속해서 움직이는 비디오의 소리가 섞인 전시장에서 무인도처럼 고요하다. 뮐러는 페니미스트 젠더퀴어 컬렉티브인 LTTR과 1970년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운동의 슬로건과 이미지를 찾아내는 협업 프로젝트 “허스토리 인벤토리(Herstory Inventory) 2012”등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참가작이 게이들의 선정적인 이미지를 다루고 있고 순수미술로서의 작품 수준을 따지기에 앞서 너무나 절실한 작가 개개인의 메시지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조앤나 버튼(Johanna Burton)은 전시도록 서문에서 “이 전시는 퀴어전도, 트랜스젠더전도 아니다. 이 같은 이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성별의 불안정함과 성별을 통합, 혹은 몽땅 거부하는 방식을 포함하는 현상에 일종의 통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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