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하늘; 그 안에 나와 너, 우리, 그리고 삶. ‘바이런 킴’
하늘; 그 안에 나와 너, 우리, 그리고 삶. ‘바이런 킴’ 인터뷰
꽃무늬 셔츠를 입은 작가가 성큼성큼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17년간 일요일마다 하늘을 그려온 작가 바이런 킴. 소박한 정서와 개인적인 글을 그림에 담아낸다. ‘소소한 일상 속의 작은 변화들’을 연결해 우리의 ‘삶’을 그려내는 작가다.
그는 한국인 부모를 두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다. 평생 미국에서 살았으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1993년에 (<제유법>)시리즈를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 샌디에고 현대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구겐하임 재단 펠로우십(Fellowship)의 순수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엔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런 그가 7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국제갤러리에서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일요일 회화>) 연작과 (<무제 (…를 위하여)>)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전시가 모두 ‘하늘’을 그린 작품들이다. ‘하늘’을 그리는 특별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나.
“ 하늘은 모든 사람이 친숙해 하는 대상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하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막상 하늘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우리들 곁에 항상 존재하지만, 왜 파란색인지, 어디에서 끝나는지 등 하늘의 ‘본질’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나는 하늘의 이런 모든 성질이 너무나 놀랍다. 굉장히 흥미롭다. 하늘은 개개인의 작은 ‘일상’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무한성’을 지닌다. 나는 극민한 것과 무한한 것을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하늘이 이를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게 삶이지 않나. 나는 내 삶 속의 일상적인 장면을 표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림 위에 쓰는 글도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은 사소한 글이다. 이런 글들은 결코 성의 없음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적어 커다란 의미의 ‘삶’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17년간 매주 일요일에 그림을 그려왔다. 매주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꾸준히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
” 대부분 일요일에 그리지만, 꼭 그날에 그리는 건 아니다. 해외에 가는 경우나 매우 바쁠 땐 다른 날에 그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나씩 그리려고 노력한다. (<일요일 회화>) 는 그 아이디어 자체에 의미가 있다. ‘Sunday painting (일요일 회화)’이라고 하면 아마추어다운 경향이 짙다. 나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 사소함, 아마추어다움을 기저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무슨 말이냐면,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소박한 모습을 담고 싶다. ‘Nothing special (특별함 없이)’. 그림 위에 쓰는 글도 일부러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시도한다.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상관 없다. 나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노트이기 때문이다. 알아듣지 못해도 된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은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하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인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국제갤러리 3관에서 선보이는 (<무제 (…를 위하여)>)시리즈는 도시의 밤하늘을 그린 작품들이다. 낮 하늘이 아닌 밤하늘을 그린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덧붙여, 기억에 의존해서 그린다고 했는데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는지 궁금하다.
“ (<무제 (…를 위하여)>) 연작의 하늘은 도시의 밤하늘이다. 시골같이 뻥 뚫린 넓은 하늘이 아니다. 빌딩에서 나오는 수많은 불빛의 영향을 받은 좁은 하늘이다. 그럼에도 도시의 밤하늘은 사람들의 흔적을 담아 아름다운 빛을 낸다. 나는 인간의 흔적이 밤하늘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부제는 지인들의 이름으로 개인적이고 친밀한 의미를 담았다.
밤하늘을 보던 그 순간, 어떤 장소와 시간이었는지 기록해 두진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순간의 밤하늘을 ‘기억’해서 그린다. 대부분 전날이나 그 전 주에 보았던 밤의 하늘이다. 기억에 남은 시각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회화’로 표현한다. 사진을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는 게 더 낭만적이지 않나.
지금 진행하는 연작 시리즈 외에 구상 중인 다른 시리즈가 있나? 앞으로 작업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 두 가지 작업을 구상 중이다. 하나는 ‘Bruise(멍)’ 시리즈로 이미 진행중이며 다른 하나는 앞으로 해볼 계획이다. 아직 구현하지 않은 두 번째 계획은 개인적으로 매우 다채로운 작품을 해보고 싶다. 나는 멜랑콜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밝은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선데이 페인팅은 매우 잔잔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다음 작품은 밝고 원색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덧붙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는 이런 말을 했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당신이 보는 게 당신이 보는 것이다” 빨강과 노란색을 사용했을 때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빨간색과 노란색 그대로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멍 시리즈 그림을 본 적 있다. 400 인종의 피부색을 그린 <제유법>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멍 시리즈는 (<제유법>) 시리즈의 연장선인가?
“ 아니다. (<제유법>) 시리즈와는 관련 없이 시작했다. 멍 시리즈는 미국 시인 칼 필립(Carl Phillips)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 내용은 이렇다. 이른 아침, 창문에 빛이 새어 들어와 시인은 잠에서 깬다. 그는 옆에서 자는 애인의 몸에 든 멍을 본다. 시인은 그 멍의 색깔이 시간에 따라 변할 것을 연상하는데 여기서 그가 쓴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멍 색깔이 시간이 흘러 피부에서 떠오른다. 색은 황색에서 보라색, 그리고 푸른색으로 변해간다. 시인은 그러다가 색을 연상하는 데에 한계를 느껴 잘 보이는 쪽 눈을 가리고 잘 안 보이는 쪽 눈을 사용하여 창밖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본다. 짧은 시였지만 나는 이 시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덕분에 시를 읽은 후, ‘멍’의 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멍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성질을 떠나 그저 멍의 ‘색감’에 매료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색들은 밤하늘의 색과도 비슷했다. 밤하늘을 그릴 때 가끔 멍이 가진 색깔들을 연상하기도 했다.
즉, 멍이 가진 실제적 상징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색감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했다. 많은 사람은 내 초기작업을 떠올리며 그 연장선으로 ‘피부’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 사회에 전쟁, 테러 등 폭력적인 사건들이 빈번해서인지 나의 작업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막상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5년 전에 읽은 짤막한 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 내 작업에 더 관심을 가져주는 거니깐 나는 오히려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