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삶의 표현들은 데이터로 기록되고 정보, 생명, 정치는 이를 관리하고 경작하며 채굴한다.
또한 책상에 앉아 구글맵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오늘날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데이터를 해독하고 처리하는 패턴 인식에 달려있다.
넘실대는 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Hito Steyerl–A Sea of Data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이번 개인전에서 오늘날 또 하나의 현실로 여겨지는 디지털 기반 데이터 사회를 새롭게 바라본다. 전시 제목인 ‘데이터의 바다’는 그의 논문 「데이터의 바다: 아포페니아와 패턴(오)인식」(2016)에서 인용한 것으로, 디지털 자본주의와 네트워크화된 공간 속에서 디지털 문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이미지, 시각성, 세계상 및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폭넓은 사유와 성찰을 함축하고 있다.
예술, 철학,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영상과 글로 후기 자본주의의 사회, 문화, 경제적 상상을 심도 있게 탐구한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디지털 시각 체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명명되는 시대에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망라하는 23점의 작품들 사이를 헤엄치며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내려보길 바란다.
1부 ‘데이터의 바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SNS에 업로드하는 사진들은 빅데이터로 저장되고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 재조정되어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작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성찰적으로 재사유할 것을 권유한다. 아울러 시뮬레이션 가상공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미술의 유형과 동시대 미술관에 대해서도 작가적 견해를 던진다.
<야성적 충동>(2022)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라이브 컴퓨터 시뮬레이션, 가변 시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이미지 CC 4.0 히토 슈타이얼. 작가, 앤드류 크랩스 갤러리, 뉴욕 및 에스더 쉬퍼, 베를린 제공.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탐욕, 야망, 두려움으로 인해 시장이 통제 불능이 되고 미친 듯이 날뛰는 현상을 일컫는다. 영상은 한 TV 프로그램이 양치기 리얼리티 쇼를 제작하기 위해 스페인의 작은 산골 마을에 들어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TV 쇼는 이내 팬데믹 때문에 중단되고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대신 “크립토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동물 전투 메타버스를 제작하게 되자 현지 양치기들은 이러한 상황에 맞서 싸우며 구석기 벽화가 그려진 신비로운 동굴을 중심으로 양치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종간 상호교류의 힘을 불러온다.
2부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
사적·공적 데이터가 수집·등록되고, 감시 카메라가 도처에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숨을 수 있을까? 작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데이터 수집과 시각적 감시에 대항하여 안 보일 수 있는 방법과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디지털 시각장에서는 해상도를 통해 파악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보이지 않게 되고, 픽셀보다 작다면 카메라의 응시를 벗어나며 시각장에서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데이터로 필터링 되지 않으면 디지털 가시성의 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기계다.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2013)
단채널 HD 디지털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15분 52초.
작가, 앤드류 크랩스 갤러리, 뉴욕 및 에스더 쉬퍼, 베를린 제공.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등록되고, 감시 카메라가 도처에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위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디지털 시각 체제의 특이성을 간파한다. 이러한 데이터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소외된 존재는 디지털 이미지의 위상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미지 스팸, 즉 작가가 강조하는 “빈곤한 이미지”와도 같다.
3부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러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히토 슈타이얼은 우리가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웹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에 의해 내장되고, 감시받고, 조정당하고 심지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헬 예 위 퍽 다이(Hell Yeah We Fuck Die)>(2016)
3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35초,
작가, 앤드류 크랩스 갤러리, 뉴욕 및 에스더 쉬퍼, 베를린 제공.
<헬 예 위 퍽 다이>는 2010년부터 5년 동안 빌보드 차트 노래 제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영어 단어를 그 제목으로 한다. 기술 유토피아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술과 전쟁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했다.
4부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이동하고 자유로이 순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세상에서 주요한 정보와 가치는 이미지와 데이터로 떠돌아다닌다. 슈타이얼은 국가에서부터 사랑에 이르기까지, 공적 영역에서부터 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흘러가고 순환하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순환주의’로 명명한다.
<유동성 주식회사>(2014)
단채널 HD 디지털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30분 15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온타리오 미술관 전시 전경, 토론토, 2019.
작가, 앤드류 크랩스 갤러리, 뉴욕 및 에스더 쉬퍼, 베를린 제공.
사진: Dean Tomlinson. © Art Gallery of Ontario.
‘나는 유동성 주식회사이다. 우리의 혈관과 두 눈과 터치스크린과 포트폴리오(직업)에 있다.’라고 한 언급은 ‘유동성’과 ‘액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이 시대의 순환주의가 우리의 신체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데이터 기반 사회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5부 ‘기록과 픽션’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 실험을 기록과 픽션, 진실과 허구의 맥락에서 보여주며 작가의 현재 다큐멘터리적 시선의 출발을 좋는다.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은 주로 유대인, 흑인, 이민자 등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목소리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반유대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 인종과 종교를 내세우는 근본주의 같은 신화론들이 현실 속에 침투하고, 어느 순간 권력을 장악하는 불합리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다.
<비어 있는 중심>(1998)
16 mm 필름(비디오로 재생), 컬러, 사운드, 62분. 작가 소장.
아카데미 데어 쿤스테 베를린 전시 전경, 베를린, 2019. 작가 제공.
작품은 독일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과 국회 의사당 사이의 공간, 즉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는 공간을 ‘비어 있는 중심’으로 바라보면서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도시 모습과 새로운 경계가 중첩되는 과정을 8년에 걸쳐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동, 서베를린을 나누는 경계의 끝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검문소와 감시탑, 지뢰로 대변되는 이 공간은, 누구도 살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텅 빈 국경의 가장자리가 되었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 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연계 행사인 전문가 강연과 라운드 테이블을 놓치지 말자!
- 「2010년대 중반 이후 히토 슈타이얼의 디지털 이미지와 컴퓨터 기반 테크놀로지: 존재론, 유물론, 정치」
강연자: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
일시/장소: 2022. 6. 10. (금) 15:00 / MMCA필름앤비디오 - 「’추방된’ 기술 존재자들의 생태정치학을 위하여」
강연자: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문화/과학』 편집인)
일시/장소: 2022. 6. 24. (금) 15:00 / MMCA필름앤비디오 - 「보리스 아르바토프 재방문: 히토 슈타이얼과 순환주의(circulationism)의 재발명」
강연자: 김수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학과 교수)
일시/장소: 2022. 7. 8. (금) 15:00 / MMCA필름앤비디오
글: 문혜인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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