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RE

2022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소용돌이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지만 고유의 액체는 한 방울도 갖지 않는다.
소용돌이는 절대적으로 비물질적이다.”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나선은 안과 밖을 가두지 않고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얽히게 한다. 극단의 대립과 의식마저도 소용돌이 속에서 샅샅이 흩어지거나 연루시키며, 안정적이고 균질한 원의 평면으로부터 들떠 오르는 카오스적 사건을 주관한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무한한 흡입력만 발휘하는 하나의 검은 태양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의 주제 〈나선(Gyre)〉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가 기독교 문명의 멸망과 불길한 새 시대를 예언하며 쓴 시 「재림 The Second Coming」에서 유래한다. “나선처럼 점점 넓어지는 원을 그리며 빙빙 돌다 보니, 매는 매부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예이츠는 과거 문명과 새로운 문명이 교차하는 격렬한 움직임을 두 원뿔의 나선 이미지로 그려낸다. 중앙의 통제가 사라진 세상에 만들어진 더 큰 소용돌이는 다수의 태양을 만들어 내고 그 경계에서 새로운 감각과 사용법을 일깨운다.

김윤철,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 2018

김윤철 작가의 독창적인 키네틱 오브제들은 ‘부풀은 태양’, ‘신경’, ‘거대한 야외’라는 세 주제를 서로 이어 매듭처럼 얽히게 한다. “그의 기계는 어떤 흐름에 구조적으로 열려있는가? 그 기계는 그런 흐름을 어떻게 조직하는가? 그 기계는 자신을 관통하는 이 흐름에 어떤 조작을 수행하는가? 세계는 이 기계에 대해 어떠한가?”라는 질문은 이안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은 그의 기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국관 내부는 우리의 행성 지구를, 그리고 그 너머는 우주를 암시한다. 넘쳐나는 파도, 흩어지는 먼지들, 지구 표면의 대류, 나무 사이를 지나는 수많은 빛의 파편들, 바닷가의 느린 소용돌이들 속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나선과 소용돌이를 본다. 지구 생활자들인 관람객은 그 공간의 주인이 되어 드넓은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김윤철, 채도, 2020

부풀은 태양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인 태양은 노년으로 접어들수록 점차 부풀어 오르며, 마침내 태양이 종말 할 때 흩어진 태양의 먼지들이 응집하여 새 행성이 된다. 태양의 부풂과 흩어짐을 하나의 렌즈로 삼아 바라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신경

한국관을 하나의 얽힌 몸으로 상상해 볼 때, 작품은 핏줄처럼 흐르고 신경처럼 얽혀있다. 거대한 호흡 속에서, 관람객은 은유와 상징을 넘어 모든 것이 융합된 세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바깥

소용돌이와 소용돌이의 경계 위에서 생과 사는 순환한다. 작가는 인식할 수 없는 바깥의 흔적과 징후를 실제 물질들을 통해 분별하고자 시도한다.

채도 V (Chroma V)
2022, 235x800x225cm 크로마틱 키네틱 설치
폴리머, 알루미늄, 아크릴, 폴리카보네이트, 모터, 마이크로 컨트롤러, LED

충동 (Impulse)
2018, 230x200x200cm
비맥동 펌프, 솔레노이드 밸브, 마이크로 컨트롤러, 아크릴, 알루미늄

태양들의 먼지 (La Poussiere de Soleils)
2022, 260x150x100cm
LPDS 용액, 아크릴, 모터, 마이크로 컨트롤러

현장드로잉

작가 l 김윤철은 작가이자 전자음악 작곡가로서 설치뿐 아니라 드로잉, 글쓰기,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는 물질을 작품의 주제이자 재료로 삼으며 다양한 학제간 경계 위에서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물질의 실재와 잠재성을 탐구한다.

예술감독 l 이영철은 큐레이터, 평론가, 그리고 도시 공공 디자인의 전문가로서, 계원예술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1993년 뉴욕 퀸즈 미술관에서 ‘Across the Pacific’의 공동 큐레이터로서 전시 기획을 시작으로 다수의 기획과 예술감독을 맡았다.

글: 문혜인
자료: 한국문화위술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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