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지난달 말, 이탈리아 베니스 주스티니안 궁전Ca’ Giustinian에서 개막식을 가졌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묻게 된다. 인간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무엇이 삶을 구성하고, 무엇이 식물과 동물,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가? 행성과,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전 지구적으로 가장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며, 예술도 끈질긴 질문세례를 피할수는 없었다. 이러한 질문들은 단절된 과거를 딛고 모든 가능성이 작동하는 세계로,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의 세계로 예술과 예술가를 초대한다. 

마법의 세계에서 모든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되며 무언가 혹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삶은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과해 다양한 빛깔로 재창조된다. 또 다른 세계의 변형된 신체와 새롭게 정의된 존재들은 함께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책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로부터 시작되는 《The Milk of Dreams》는 무한한 꿈의 세계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

김윤철,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 2018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황금 사자상’은 영국관의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 OBE RA (b.1962)와 본 전시 및 미국관 대표 작가인 시몬 리Simone Leigh (b.1962)에게 수여되었다.  위 사진은 소니아 보이스가 상을 수상하는 모습.

© Andrea Avezzù;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소니아 보이스는 흑인 영국 여성 주체성을 위한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보이스는 1980년대 흑인 영국 미술 운동의 핵심 인물로 성별과 인종에 대한 그녀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왔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협업하며 정체성의 수행 방식과 사회적 관습의 작동 원리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소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다. Feeling Her Way는 설치 작품으로 다섯 명의 흑인 여성 뮤지션들의 보컬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그들의 소리는 화려한 벽지로 도배된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작가는 다양한 세대의 흑인 여성들과 협력하며 소리를 통해 침묵의 역사를 다시 읽을 것을 제안한다.

Sonia Boyce
Errollyn, Jacqui, Poppy, and Tanita stills from Feeling Her Way
4 screen synchronised HD video with audio.
12 minutes 28 seconds.
Courtesy of the artist © Sonia Boyce

Still from Feeling Her Way: Jacqui
2022. Single screen HD video with audio.
7 minutes 53 seconds.
Courtesy of the artist © Sonia Boyce

Still from Feeling Her Way: Tanita
2022. 2 screen video with audio.
10 minutes 49 seconds.
Courtesy of the artist © Sonia Boyce

전시전경 ©Cristiano Corte


시몬 리는 시카고 출신의 예술가로 조각, 설치, 비디오, 공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흑인 여성의 주체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소외된 그들의 경험을 사회의 중심으로 소환한다. 덕분에 미국관에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로서 작업을 소개할 수 있었다. 리의 대규모 조각 작품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재료와 방법을 통해 토속적인 건축과 여성의 신체에서 파생된 형태들을 결합한다. 전시는 이질적인 역사와 서사를 혼합하며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낸다, 전시 제목인 주권Sovereignty을 갖는 것, 주권자가 되는 것은 타인의 권위, 타인의 욕망,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역사의 저자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 대한 자치와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Simone Leigh
Façade 2022
Thatch, steel, and wood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Simone Leigh
Last Garment 2022
Bronze 54 × 58 × 27 inches
Courtesy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Simone Leigh
Anonymous 2022
Glazed stoneware 72 1/2 × 53 1/2 × 43 1/4 inches
Courtesy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Simone Leigh
Sentinel 2022
Bronze 194 × 39 × 23 1/4 inches
Courtesy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이번 수상자가 모두 (공교롭게도, 의도했든 안 했든) ‘흑인’이자 ‘여성’인 이유로 다수의 매체들은 이를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소개하고 소비한다. 시몬리와 소니아 보이스가 비엔날레가 개최된 이래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란 사실은 사실 놀랍지도 않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질 수 있는 꿈의 우유가 넘실대기를 바라면서 오히려 특정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지, 학습된 알고리듬의 재현으로 끝난 것은 아닐지 하는 의문이 문득 들지만 어쨌든 오늘날 필요한 서술이자, 효과적인 전략임에는 틀림없는듯하다.

글: 문혜인
자료: British Council,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Boston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