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yungkoo 

ARTIST REVIEW

인간과 동물, 상상 속 캐릭터의 신체를 탐구해온 이형구는 2004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해온 100여 점의 작품을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Ⅳ-이형구〉(3.29~8.7, 부산시립미술관)에 담았다. 전시의 초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골조는 전시장에 옮겨진 ‘아니마투스 실험실(Animatus Lab)’과 아카이브에서 이루어졌을 연구의 결과로, 그의 작업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해부학, 생물학, 고고학에 기대어 다종의 신체를 탐구해온 작가의 작업은 현재 신체의 구조에서부터 점차 추상화하고 있다.

이형구는 1969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며 뉴욕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공부했다. 2004년 개인전 〈The Objectuals〉(성곡미술관)와 단체전 〈젊은 모색〉(국립현대미술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인전 〈The Homo Species〉를 거치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 개인전 〈PENETRALE〉(2019, P21)과 〈화학적인〉(2021, 두산갤러리)을 열었다. 2002년 조앤 미첼 재단상을, 2007년 제39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되돌아오는 몸, 이형구
최희승|두산갤러리 큐레이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IV-이형구〉는 미술관 2층의 전체 전시실을 사용하여 충분한 규모로 작가를 다루었고, 미공개 작품을 포함한 78점을 선보이며 이형구의 작업세계를 샅샅이 꺼내 보여주고자 했다. 공간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연대기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시리즈별로 구성하여 작업에 따라 적합한 환경 안에서 관람객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작가의 대표작인 〈ANIMATUS〉(2004~2015) 시리즈로 문을 열어 〈The Objectuals〉(1999~2010), 〈Eye Trace〉(2010), 〈MEASURE〉(2013~2014), 〈Face Trace〉(2011~2012) 시리즈를 비롯하여 최근 작업인 〈Chemical〉(2021~) 시리즈까지 묵직하게 펼쳐졌다. 전시 공간 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아카이브 테이블 위에는 작가의 초기작을 비롯하여 작업 메모나 드로잉, 읽거나 모아둔 자료, 재료, 모형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편 이번 전시장 입구 천장을 가득 채워 존재감을 발산한 부산시립미술관 커미션 신작 〈Pink Vessel〉(2022)과 작가가 〈ANIMATUS〉 시리즈의 시작이었다고 밝힌 〈Homo Animatus〉(2004)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인상 깊어 기억에 남았다. 공기가 계속해서 주입되는 구조를 지닌 합성섬유 위에 실리콘을 발라 만들어진 〈Pink Vessel〉은 매끈하게 굽이진 선홍빛 외형으로 신체 내부의 기관을 단번에 떠올리게 했다. 초기의 〈ANIMATUS〉 시리즈와 이 작품을 함께 보니, 이형구가 몸을 다뤄온 20여 년 여정의 고리로 보이기도 했다.

부재로써 존재를 불러오는 몸
전시실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작업은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는 〈ANIMATUS〉 시리즈이다. 〈Homo Animatus〉를 제외하고 1점의 드로잉과 7점의 조각이 첫 번째 공간에 설치됐는데, 전체적으로 검고 어둡게 연출되어 고고학 박물관을 연상시켰다. 익히 알려진 이 시리즈에서 이형구가 집요하게 천착했던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몸에 대한 상상과 탐구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들을 자신의 실험실로 데려와 그들의 ‘없는 골격’을 추적해나간다. 직립을 위한 척추, 자유롭게 이족 보행하는 골반과 다리뼈, 터무니없이 커다란 손과 손톱, 심지어는 골격의 표정에 이르기까지 착실하게 그것을 우리 눈앞에 ‘있도록’ 만들었다. 작업을 거듭 볼수록 미세한 이음새를 이루는 철사와 작은 금속들, 좌대의 생김새, 그 위에 조각이 놓여 있는 방식 등이 뼈의 형태보다 눈에 들어오는 이유 또한 그것들이 전부 가상의 몸을 실재하도록 만드는 역설의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The Objectuals〉 시리즈의 사진과 〈Eye Trace〉와 〈MEASURE〉 시리즈의 입체 작품이 연속적인 공간에 전시되는 일은 이형구의 주제가 신체의 과장에서 확장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드러내고 있기에 흥미로웠다. 특히 〈Fish Eye Gear〉(2010)에서 머리 양옆에 어안 렌즈가 달린 전신 방호복이 텅 빈 채로 걸려있는 모습이나 누군가가 착석하거나 배를 대고 눕는다면 이내 기능을 할 것처럼 보이는 〈Mirror Canopy〉(2010), 〈Creeper〉(2010)의 경우 그것이 인체를 전제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에 모여든 많은 관람객의 경험이나 체험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기에, 몸이 부재한 이형구의 조각은 다시 어떤 몸을 기다리는 상태의 조각이 된다. 구체적인 예시로 〈MEASURE〉의 영상 속 작가의 퍼포먼스를 접한 뒤 〈Instrument〉(2014) 시리즈를 보게 된다면 손으로 단단히 쥐었을 부분, 어깨와 발등에 살짝 걸었을 부분, 발밑에서 바닥과 경쾌한 소리를 만들었을 부분들로 다시 관찰하며 자꾸만 거기 없는 신체를 불러내는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발과 눈, 부분으로서의 몸
이와 같이 몸이 부재에 이르더라도 그것과 분리할 수 없는 이형구의 조각들은 막상 실제의 인체와 만나게 되면 익숙한 사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임을 변이시키기도 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도중 아카이브 테이블의 작은 드로잉 한 점이 문득 눈에 들어왔는데, 어떤 인물이 발에는 오리발을, 머리에는 이형구의 시각 장치를 착용한 채로 파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이다. 오리의 물갈퀴로는 인간의 발이 낼 수 없는 움직임을 얻었을 것이고, 눈으로는 평소와는 다른 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이 드로잉을 힌트로 이번 전시에서 이형구 작업의 특정한 부위 즉, 발과 눈에 주목했다고 하면 비약적일까? 실제로 그의 전반적인 작업에서 발은 무게 중심의 축이자 동세를 만드는 전제가 되기도 하고, 개체의 습관과 문화를 드러내는 지표가 될 때도 있으며, 발굽으로 리듬을 만드는 악기가 되기도 한다. 지면과 가까운 위치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이자 한계인 몸을 어떻게 인식하고 조련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는 시작점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시각 구조의 집약체인 눈은 이형구의 작업에서 질문을 유발하는 구심점이다. 〈The Objectuals〉 시리즈에서의 얼굴이나 드로잉, 〈Face Trace〉 시리즈에서 유난히 낯설고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왜 작가는 곤충이나 물고기의 시각체계를 가져보려 하거나(〈Eye Trace〉) 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 것일까(〈MEASURE〉). 그리고 일시적으로 다른 생물이 된 이후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Backwards〉(2001)의 경우 영상 속 작가는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역행하는 시각 장치를 착용하고 뒤로 걷는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시간이 지나 몸이 적응할수록 그 육감을 완벽히 익히는 일을 지속하지 않는다. 마치 기존의 눈으로 되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는 다른 생물 되기를 통해 얻었던 감각을 그저 다른 종류의 것으로 두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첫 공간의 검은색과 대조적인 흰색으로 시원하게 트인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소개하는 〈Chemical〉 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의 주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작업에서 이형구는 다양한 질료들을 접하고, 접붙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한한 우주처럼 팽창하고 위성을 끌어당기는 작업의 기저에는 몸이라는 주제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현미경을 사용하듯 미세하게 들여다보거나, 돋보기로 부분 확대하는 몸은 그것의 원래 상태를 예측하고 감지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어쩌면 오랜 시간 미술사의 주요한 이슈로 다루어진 신체와는 달리 이형구에게 몸이란 현재의 지면을 딛고 있는 솔직한 육체이자 우리의 정신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작가에게 몸이라는 개념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그 변화하는 몸을 정직하게 탐구해 나가는 힘이 이형구의 세계가 믿음을 획득하는 강력한 방식 중 하나라는 점이다.

〈Pink Vessel〉 합성섬유, 실리콘, 안료, 에어레이션, 공기압 센서, 호스, 와이어, 공기 385×1560×680cm 2022

〈Geococcyx Animatus & Canis Latrans Animatus〉(사진 앞)
레진, 알루미늄 스틱, 스테인리스 와이어, 스프링, 유채 44×130×41.5cm, 75×18×46cm(각) 2006

〈MEASURE〉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8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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