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안진선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

무음산방 2.7~19
조현아 | 기자

안진선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 무음산방 전시 전경 2023

공기가 차서 부푼 공, 금속의 자바라다리 위에 얹혀 있는 검은 천, 시멘트 덩어리, 종이로 만든 커다란 관과 화물차 고정 벨트, 얇은 함석판. 이 모든 것이 작은 공간에서 달달 떨리고 있거나, 달칵거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안진선의 개인전은 ‘미술 전시’라기보다 도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대충 몰아넣은 작은 창고의 재현에 가까워 보였다. 개별 작품의 크기에 비해 작품 간의 거리가 좁고, 작품들이 유리창 맞은편에 옹기종기 배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그러니까 인체의 크기에 맞먹는 길이와 높이를 가진 사물들 사이에 전시장의 얇은 유리문을 열어 바깥의 소음과 진동을 옮겨오게 된 감상자는 작품 사이를 게걸음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만일 그가 하나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보장된 전시장과 단단하게 고정된 작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욱 공간에 거의 딱 들어맞는 크기로 ‘헐겁게’ 배치된 사물들을 보고 즉각적인 불안함을 느꼈을 테다.
〈흰 공〉(2017)은 한강공원이나 건물 위, 하늘 위의 플래카드에 붙어 있을 법한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부피와는 달리, 작품은 잘게 흔들린다. 벽에 박힌 나사에 감긴 투명한 낚싯줄만이 이 공을 일정한 자리에 붙들어두는 유일한 고정 방식이다. 그 앞의 〈흔들리는 땅〉(2023)은 길거리 좌판처럼 높낮이가 다르게 얼기설기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여 세게 밀면 쓰러질 것만 같다. 그 옆의 〈고가다리〉(2023)는 시멘트와 아이소핑크, 작업대가 묘한 합을 이루고 있어서 다른 작품들보다는 튼튼해 보이지만 그것이 완벽한 부동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는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5개의 조형물은 우리의 거주 조건을 이루는 것들의 샘플로서, 우리를 다시 한번 여느 도시 한가운데 놓인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공중에 가설된 혼합재료 덩어리 위에서 흔들거리는 지하철 한 칸 속에 서 있는 감각. 잠시 선 차 안에 앉아, 멈춘 채 가만히 있는데도 다른 차량들의 속도 때문에 몸이 떨렸던 기억. 검정색 아스팔트 위를 바삐 걷다가 싱크홀 같은 절망의 소식을 보고 단단한 길이 푹 꺼지는 것 같이 ‘울렁거렸던’ 순간. 굳건해 보이던 세계가 실제로는 얼기설기 땜질이 된 금속과 목조,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했다가 이렇게 떨고 있는 도시의 표본을 볼 때 다시 상기한다. 특히 비스듬히 서있는 〈고가다리〉는 도시 곳곳을 무리하게 이어내고 있는 철교와 육교와 대로의 한 토막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생각보다 허술하게 건설되어 고가다리가 무너지고 그곳에서 벌어진 추락사고 소식을 기억 속에서 소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하나의 작품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느끼는 불길한 기시감은 2023년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든 안정된 자아와 육체와 환경을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를 거듭하는 개인사와 공명하며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고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진선이 선택하고 조합한 물질 덩어리들은 보는 이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작가가 작품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계산해놓았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작품이 그리 위협적인 물체가 아니라는 지각 때문에 관람자는 압박감을 느낄지언정 공포감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 폐기되거나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작품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우리가 전시장에서 ‘그들’을 만나는 순간, 그 사이의 긴장감은 몸에 미묘한 잔상을 남긴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뉴스들을 따라가면서도 기술 발전과 온갖 새로운 것들의 속도에 좌절하는 불안전한 몸은 점차 몸 자체의 경험을 소진하여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몸으로 변화하고 있다. 안진선이 구성한 ‘움직이면서도 멈춘’ 공간에서 우리는 발밑의 지층에서 도시 전체를 감싸는 케이블 같은 물질들의 전모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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