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BRING TO LIGHT-새롭게 그리고 드러내기

프람프트 프로젝트 1.11~2.26
송희정 | 스페이스 소 디렉터

류노아 〈Youth〉(사진 왼쪽) 캔버스에 유채 125×160cm 2020,
이시산(사진 앞) 〈Neo primitive_chair 02〉 알루미늄 60×60×135cm 2022 프람프트프로젝트 전시 전경 2023

미술계 종사 여부와는 별개로 미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새로운 전시 공간의 등장은 늘 반갑고 그 공간을 통해 어떤 새로운 작가와 작품, 전시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필자의 게으름과 정보력의 한계로 개관한 지 몇 개월이 지난 뒤 프람프트 프로젝트(Prompt Project)라는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되었고 전시장의 방문은 그러고도 다시 몇 개월이 지나 이번 전시를 통해서였음을 고백한다. 5명의 참여작가 중 여러 전시를 통해 작품들을 봐온 (필자에게는) 낯익은 이름들과 (필자에게만) 낯선 이름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번 전시는 낯익은 이름의 작가들의 어떤 작품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궁금함에서 출발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전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러한 생각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프람프트 프로젝트의 설립 취지 및 본 전시의 기획의도에 일단 부합한다.
작년 4월에 개관한 전시 공간 프람프트 프로젝트는 “전시 공간이자 차세대 감각을 다루는 창작 인큐베이팅 플랫폼으로서 동시대 아티스트의 작업을 신선한 큐레이팅과 연출로 관객들에게 영감과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고자 함을 설립 의도로 밝히고 있으며 이번 “《Bring to Light-새롭게 그리고 드러내기》(이하 《Bring to Light》)전은 프람프트 프로젝트 갤러리의 취지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음을 전시 서두에 설명하고 있다. 이쯤에서 ‘Bring to Light’가 왜 갤러리의 설립 취지와 닿는지가 궁금했는데, 갤러리 이름인 ‘프람프트(Prompt)’가 라틴어 ‘Promptus’의 어원에서 출발하여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빛으로 이끌어 세상에 드러내다(bring to light)”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곧 전시 공간의 방향성을 의미하며 “동시대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소개와 더불어 아직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차세대 작가들을 발굴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자 한다”는 목표의식으로 이어진다.
전시는 내부 계단으로 연결되는 2, 3층과 지하 1층, 총 세 개 층, 두 개의 공간에 작가 5명의 회화와 가구이자 조각이 완벽한 벽면으로 마감된 공간이 아닌 크고 작은 창들, 계단과 기둥, 천장이자 바닥인 구조 일부를 덜어내 만든 공간들 곳곳에 놓여 전시장이라기보다는 마치 생활공간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이러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작품을 관람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나의 공간에, 나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다시 본 전시 타이틀 ‘Bring to Light’가 와닿는다. 참여작가들 및 작품들 간의 주제나 관계는 다소 느슨하지만, 전시 기획 의도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각각의 작가를 프람프트 프로젝트의 공간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전시의 구성과 공간의 연출을 통해 드러난다.
2층과 3층으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초곡리의 기능을 잃은 가구이자 조각, 이시산의 의자와 스툴, 김기드온의 스툴과 벤치들이 벽에 걸린 류노아의 회화를 두고 각기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2020년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4명의 작가와 달리 류노아는 활발히 활동을 하다 한동안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머물며 수학한 뒤 지난해 귀국 후 첫 개인전을 가지며 국내에서의 활동 재개를 알렸다. 미술사 속 고전 회화에서 등장할 법한 인물들 및 잘 알려진 고전의 도상을 가져오되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삶과 죽음, 영원성과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를 화면 안에 재구성하여 제시하는 류노아의 회화는 소위 ‘요즘’ 회화들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표현방식이나 이야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그리고 새롭게 보게 한다. 화면 속 영원성과 유한성은 초곡리의 버려진 의자들의 재조합에서 다른 형식을 입는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삼는 의자들은 한때 또는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유용했지만 그 쓰임을 다해 혹은 이제 관심에서 벗어나 버려진 의자들이다. 오래되고 녹슬어 다리와 등받이가 떨어져 나간 의자의 부분 부분을 레진에 가둠으로써 작가는 시간과 관계의 유한한 모습을 영원하게 만들고자 한 듯 보인다.
기능을 잃은 초곡리의 의자들이 조각이 되었다면, 김기드온과 이시산의 의자와 벤치, 스툴들은 본래의 기능을 놓지 않되 기존의 사물들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작품이 놓인 평범한 공간을 ‘새롭게 그리고 드러낸다’. 금속을 재료로 하되 철제 와이어를 펜 삼아 도면상의 XYZ축을 이동하고 쌓아 올려 구조를 구축하는 김기드온의 의자들은 금속선이 만들어내는 선과 선 사이의 공간을 다른 질감의 재료인 면과 폴리에스테르 선들로 채워 면을 그리고 만들어 놓는다. 그의 가구가 금속과 섬유라는 서로 다른 재료의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면 이시산은 알루미늄으로 실제 나뭇가지나 줄기를 캐스팅하여 금속의 표면에 나무의 질감을 입히는 방식의 결합을 시도한다. 나무의 나이테가 좌석이 되고 나뭇가지가 다리와 등받이가 되는 의자와 스툴들은 벽에 걸린 그림들 속 나무들과 조응하는데 일견 가구라기보다는 조각처럼 보인다.
지상과 지하층으로 크게 나뉘는 전시장의 주요 벽면에 자리한 작품은 조효리의 대형 회화들이다. 3D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하고 그린 ‘디지털상에서 존재하는 공간’ 즉 가상의 공간과 대상을 캔버스 화면 위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설명되는 조효리의 회화들은 캔버스 위에 붙어 불룩 튀어나온-부조라 불릴 만한-물감 덩어리들과 아예 화면 밖으로 나온 조각들 때문에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내 앞의 실체와 화면 속 가상의 대상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치 구조의 아케이드에 놓인 그림 속 그림 너머가 궁금해 작품의 뒤로 가면 앞의 그림에서 상상하지 못한(하기 어려운) 공간을 만나게 되고, 전시장의 벽면이 아닌 공간에 놓인 이 얄팍한 화면이 만들어내는 경계의 실체 앞에서 무한한 가상의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회화와 조각, 가구를 그리고 만드는 다섯 작가의 작품이 “프람프트 프로젝트에서 색다르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을 함의”한다는 전시 타이틀 《Bring to Light》를 지팡이 삼아 공간 곳곳에 적절히 설치된 작품을 짚어보는 재미를 보다 많은 관객이 경험할 수 있었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전시를 통해 그 재미가 점점 더 증폭되어 가기를 바란다. 프람프트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이곳을 통해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들을 위해서도.

조효리 〈Fire〉(사진 왼쪽) 폼보드에 유채, 스테인리스 스틸 113×60×40cm 2020 프람프트프로젝트 전시 전경 2023
김기드온 〈WMAC#2: Steltman〉 철제 프레임, 폴리에스테르 로프 45×50×65cm 2022
초곡리 〈소싯적(The Youth)〉 버려진 의자들, 레진 45.5×69×7cm, 31.5×11.5×4.2cm, 39.5×42.5×89cm, 35.5×29×5cm, 45.5×28×6cm 2022
사진 제공: 프람프트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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