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진상태
BEHIND A WORK

1975년 서울 출생. 경험으로 알게 된 사물들에 자신의 관심사를 투사하여 발음체로 전환, 그것들을 공간에 재배치하는 음악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주로 해체된 하드디스크와 연결될 수 있는 물질들을 조합해 자신의 메인 악기로 연주하고, 랩톱, 라디오, 자동차 경적으로도 연주한다. 기획자로서는 2008년부터 즉흥음악 공간 ‘닻올림’을 설립해 현재까지 연주회를 이어오고 있으며, 페스티벌 ‘닻올림픽’을 2012, 2013, 2017년 기획, 진행했다.

사진 박홍순

워킹페스티벌 오브 사운드 2022 〈ㄷ7ㄴ〉 문래예술공장 공연 전경 2022.9.3

해체된 하드디스크와 사물들로 이루어진, 정체가 불분명한 장치의 표면에 소리가 모이고 흩어진다.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기록된 소리가 사물에 투사되고 그것이 다시 현재의 소리와 빛과 충돌할 때 관객들은 단순한 청취를 넘어선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 그가 즉흥적인 소리를 만들거나 어떤 순간을 ‘우연히’ 기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우연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처럼 그의 사운드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찰나의 시공을 가리키고 있다.

우연과 순간의 틈새

염하연 기자

실험음악가, 즉흥연주가, 사운드아티스트, 퍼포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사물들을 사운드로 변환해 공간에 배치하는 퍼포먼스는 분명 ‘실험’, ‘즉흥’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느 분야에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음악의 정의는 달라진다. 음악계에서는 ‘실험음악, 즉흥음악’, 미술계에서는 ‘사운드아트’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실험’은 실험을 하는 찰나의 순간에만 ‘실험’이다. 실험이 반복되어 재연되다 보면 일종의 성공 공식이 굳어지게 되는데 좋게 얘기하자면 작법, 나쁘게 얘기하자면 박제된 가능성이 되어 버린다. 나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고 그 사이를 순환하며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어떤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저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음악의 정의는 연주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경우 사운드는 주로 미술관 안에서 작품과 조응하는 형태로 접했기 때문인지, 야첵 스몰리키와 협업한 공연 〈ㄷ7ㄴ〉(문래예술공장)은 음악이라기보다 ‘경험’처럼 느껴졌다. 대사는 없고 음악만 있는 연극 무대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ㄷ7ㄴ〉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공연인가?
필드 레코딩 작업을 하는 야첵과는 2019년 12월 스웨덴에서 열린 미디어 고고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났다. 그 행사 첫날 솔로 공연을 했고, 야첵은 내 공연을 도왔다. 공연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는데 이후에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곤 했다. 워킹 페스티벌 오브 사운드 20221의 참여가 확정될 즈음 야첵은 자신의 전자기장을 감지하는 녹음 방법으로 나에게 협업을 제안해왔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공연을 구성했다.
워킹 페스티벌 오브 사운드 2022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이번 공연 〈ㄷ7ㄴ〉을 위해 야첵은 밴쿠버 시내에 있는 여러 일렉트릭 디바이스들–ATM,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자판기, 가로등–의 내부 기판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의 소리들을 녹음할 수 있는, 픽업 코일로 추정되는 마이크와 함께 바깥의 소리들을 녹음할 수 있는 마이크 녹음 소스를 실시간으로 받아 재가공한 소리 채집의 여정을 촬영한 비디오를 내게 보내왔다. 나는 이 파일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기반으로 ‘작곡된 즉흥 연주’를 했다. 1시간의 러닝타임 안에서 첫 35분은 야첵의 소리를 시작으로 서로의 소리를 충돌 없이 5분씩 배치했다. 이후에는 야첵의 사운드를 내 시스템 안으로 집어넣어 서서히 그 음량을 늘려 섞어, 일정 구간에서는 하드디스크가 온전히 그의 소리만으로 기능할 수 있게 했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고 작업 스타일도 다르지만, 공연에서는 두 사람이 시공간과 소리를 자연스럽게 공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1분씩 우연한 순간을 녹음해 매일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는데, 나름의 방법으로 ‘소리의 듣기’를 능동적으로 실천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내 작업에도 모종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 방식을 야첵도 나와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작법에 있어서 나와 야첵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사운드와 조명의 활용으로 단조로운 흑백의 무성 영상에 서사와 긴장감이 생기고, 그 공간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단독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의 막바지에 공간에 개입한 조명도 공연을 ‘경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 중 하나가 작가가 만든 고유한 디바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에서 사용한 디바이스는 네 대의 하드디스크를 중심으로 만든 악기다. LCD 프로젝터의 외부를 뜯으면 내부에 RGB 프리즘이 있는데, 이 프리즘을 사용해 공간에 빛을 반사시켰다. 이런 시각적인 연출에 있어서는 나와 함께 ‘중간자’라는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경 작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인경은 슬라이드 필름 프로젝터를 기반으로 빛들을 변형해 퍼포먼스를 한다. 나는 퍼포먼스에서 추출되는 소리를 증폭시켜 사운드의 재료로 삼고, 김인경은 내가 만드는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 보려는 시도를 확장할 계획인지.
하드디스크 셋업을 영사기(projector)화하는 프로젝트를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드디스크 내부는 의외로 빛을 반사시키기 좋은 재질로 되어있어 빛을 이용하기 좋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자’라는 것에 항상 끌리는데, 이 부분도 영사기화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기보다는, 사운드에서 시작한 관심이 시각적인 부분으로 옮겨가는 과정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작가이자 공간 운영자, 기획자이기도 하다. 즉흥음악 공간 ‘닻올림’을 시작한 지도 거의 15년이 되어간다.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06년 11월 갔던 도쿄 공연에서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 大友良英)2의 사무실 겸 공연장인 ‘GRID605’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5~6평 규모 오피스텔 공간에서 공연하는 셈인데, 청취자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긴장되는 부분도 있지만 작은 공간에서만 느껴지는 밀도는 ‘공연장’이라고 생각해 왔던 개념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마침 나도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공연을 내 사무실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고민은 많았지만 2008년 2월 첫 닻올림 연주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0회 이상 공연을 기획했다. 즉흥음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매개로 다양한 예술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닻올림’은 즉흥음악의 매력이 밀도 있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규모 공간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소규모 공연장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지속가능성을 담보로 큰 공연장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청취의 경험이 가능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운영하고 있다. 공간의 밀도가 높은 만큼 공연자와 청취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소리를 섬세하게 듣는 경험이 가능하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최대한 수평적인 위치에서 협연할 수 있는 것이 즉흥 협연의 매력인데, 가능한 한 여러 조합들을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최대한 편안하게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려 한다.

‘닻올림’과 연계한 페스티벌 ‘닻올림픽’을 2012, 2013, 2017년 세 번에 걸쳐 진행했다.
‘닻올림픽’은 문래예술공장과 동료들의 큰 도움으로 많은 국내외 음악가들이 참여했던 즉흥음악 페스티벌이다.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참여 음악가들이 원하는 무대를 꾸며보려 애썼고,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다양한 작법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서 풍성한 무대를 꾸며주었다. 또한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하고 있던 사운드아트 워크숍 ‘문래레조넌스’ 참가자들과의 무대, ‘닻올림’에서 이어지고 있던 즉흥 협연 모임 참가자들의 세션 등 관심 있는 사람들의 참여도 이끌어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했다.

10월에는 ‘닻올림’에서 어떤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지.
10월 7일에는 독일 쾰른 출신의 트럼페터이자 신시사이저 연주자인 Udo Moll과 한국의 대금/소금/생황 연주자인 백다솜의 듀오, 독일 쾰른에서 오래 거주했지만 중국 베이징 출신인 Echo Ho의 솔로 무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오는 Joël Lavoie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10월 28일에는 랩톱 노이즈 연주자인 장희진 씨와 공동 기획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조율, 박민희 씨가 출연할 예정이다.

공연 기획자, 연주자, 그리고 생업까지 세 가지의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원동력…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일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고, 혼자 잘나서 되는 일도 없다. 운이 좋아야 그 일이 ‘되는 일’이 되는 것인데, 나는 여태껏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운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닻올림 연주회 148회〉 2022.8.4 (연주자: 민트 박, 안효주 사진: 진상태)
〈닻올림픽 2017〉 2017.11.12 (연주자: 가와구치 타카히로, 홍철기, 최준용 사진: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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