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PARK HYUNG GEUN

‘Jejudo’로 시작하는 제목이 붙은 〈Forbidden forest〉 연작과 〈Bleak Island〉 연작은 ‘낭만적인 낙원’의 표피 밑에서 여전히 역동하는 잔혹한 근현대사를 응시한 결과다. 개인전 〈차가운 꿈 Bleak Island〉(2021, 대안공간 루프)로 묶여 제시된 두 시리즈는 작가의 고향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자본의 이권다툼과 패권싸움의 요충지라는 실상을 암시한다. 그가 17년여간 직시한, 매스컴이 덮어씌운 이상적인 프레임을 걷어낸 풍경의 황량한 민낯을 이제는 우리가 바라볼 때다.

〈Forbidden forest-3〉 C print 150×190cm 2010

역사를 사진으로 표상하기 - 박형근의 〈Bleak Island〉

최연하 | 독립큐레이터ㆍ사진평론

#1. 사진과 관광의 섬, 제주

사진술이 세상에 선보일 즈음에 픽처레스크 회화 양식이 유행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찾는 관광문화가 성행하였다. 새로운 풍경을 직접 확인하려는 대중의 열망이 사진 발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사진 발명가 중 한 사람인 톨벗(William Henry Fox Talbot)도 1833년 이탈리아 코모호수(Lago di Como)를 여행하던 중 사진(촬영)에 대한 욕망이 일어났다고 고백한 바 있다. 톨벗은 1840년에 사진술을 공표한 후 관광객과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사진술을 이용하도록 권유했는데, 톨벗이 자신이 발명한 사진 기법에 대해 표현한 말들을 옮겨본다. “진실되고 충실하게, 그리거나, 모방하는 것”, “자연 화학의 무한한 힘에 의해 영향받고 흔적이 남겨진 그림이자 소묘다. 이것은 자연이 모방할 수 없는 연필”을 예술가에게 빌려준 것이다.1 톨벗의 사진에 대한 묘사는 ‘진실되고 충실한 흔적’으로서의 사진의 어떤 힘을 보게 한다. 이 글의 주제인 박형근 작가의 사진을 지금, 다시 깊게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개 한국인에게 제주도는 ‘관광과 사진의 섬’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진술과 관광산업이 비례해서 발전한 사실,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고 남기려는 열망에 제주도는 당연히 사진이 많은 섬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으로 사진과 관광의 숙명적인 관계를 짚어본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방침이 발표되기 전까지 ‘신혼여행지는 제주도’라는 공식이 있을 만큼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 받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들 속엔 성산 일출봉과 유채꽃밭, 한라산의 설경과 목장의 한가로운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했고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포즈로 이곳이 바로 제주임을 증명하듯 사진을 찍었다. 개중에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해녀를 모델로 캐스팅해 제주 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굴진지 입구에서 실루엣으로 촬영한 사진은 압권이었다. 사진 공모전 당선작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와 주제로, ‘동굴진지’와 ‘해녀’는 제주의 단골 표상이었다(촬영자나 모델은 ‘동굴진지’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을지, ‘동굴진지’는 최근까지 포스팅 된 자료에서 그저 사진 찍기에 좋은 ‘포토존’으로 언급되었다).

사진과 관광, 제주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에게 기생한 것일까. 제주도의 숙명 즉, 관광의 흔적은 사진으로 남아 배포되었고 제주는 그저 자연경관이 뛰어나 휴가를 보내기에 좋은 풍요로운 땅으로 그동안 무수히 재생산, 가시화, 유통되었다. 적어도 제주의 역사가 수면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말이다. 기실 제주가 우리 미술계 전면에 등장한 시기는 강요배, 김영갑으로부터 그 기운이 올라오다, ‘4·3 특별법 제정’ 이후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고, ‘4·3항쟁 70주년’ 행사가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확대된 2018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작가가 제주를 ‘촬영’하고,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했다. 좀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제주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제주는 사진과 기록, 기억의 섬으로, ‘다크투어리즘’ 관광 상품으로 계속 개발 중이다.

〈Jejudo-16, 협재〉C print 120×154.5cm 2007

#2. 제주  - 역사를 사진으로 표상하기

제주에서 나고 자란 박형근 은 2005년부터 제주를 다시 촬영한다. 대상-풍경의 표면 해상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대형카메라와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다. 사진은 표면만 찍을 수 있기 때문에(표면을 우선 재현하기에), 표면이 품은 정보를 세세하게 필름에 기입(inscription)하는 것이 작가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무언가를 ‘새겨넣는(inscription)’ 행위는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각인(刻印)된 흔적이기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억 작용에 힘을 주는 ‘기입’ 행위가 중요한 이유이다. 사진에 “실재”를 찍을 수 없기에, ‘실체’하는 표피를 고밀도로 담아 지난 백 년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기.

박형근은 이 섬의 표면에 새겨진(남겨진) 흔적과 무늬를 찾아 나선다. “식민지 군사시설, 파괴된 마을, 민간인 학살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연에 의해 가려졌다. 대신에 자본과 욕망에 기반한 관광산업과 개발이 섬의 표면을 변화시키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원시성에 가려진 제주도의 이면, 그늘, 지하로 진입하려는” 2 작가의 사진 작업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현재진행형으로서 ‘4·3’은 제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처럼 깊고 어둡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 어두운 동공을 살펴야 했다. 제주 사투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듯, 제주의 100년은 이해의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가 그 실체가 드러날수록 아연실색하여 말을 잃게 하는 엄청난 실재이기 때문이다.

〈Jejudo-6, 다랑쉬〉 C print 120×154cm 2008

〈Jejudo-81, 일출봉〉 C print 120×154.5cm 2019

〈Jejudo-48, 대정〉 C print 120×154.5cm 2021

〈Jejudo-18, 용설란〉 C print 120×154cm 2009

박형근의 사진-길을 따라가 보자. 4·3 특별법 제정 이후,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던 망각된 주체들이 제주의 검은 바위, 깊은 숲, 하얀 파도에 부딪혀 태고의 몸짓을 보내오니 사진 보기를 멈추게 된다. 제주에 입도(入島)하기 위한 첫 관문인 제주공항은 일본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든 공항으로, ‘4·3’ 유해 발굴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당시에는 정뜨르(‘들판’이라는 뜻) 비행장이라 했고, 1982년에 국제적인 비행장으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활주로 밑에 잠든 수많은 4·3 당시 희생된 영혼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 이어 렌터카를 타고 대정 인근 송악산으로 가면 알뜨르(‘아래 벌판’이라는 뜻) 공항 터가 보인다. 풍광이 뛰어난 관광 명소 송악산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뚫어놓은 동굴 15개가 있다. 특수 잠수정을 숨겨둔 곳이다. 승생악 복곽진지, 가마오름 주 저항진지, 서우봉 해군 특공대 기지, 섯알오름 전진 거점, 송악산 해군 특공대 기지, 일출봉 해군 특공대 기지, 송악산 지네형 진지(요새) … 등에 일본군이 구축한 동굴진지가 무려 448개에 달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인상 깊어 찾아본 ‘다랑쉬 오름’은 4·3항쟁 때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된 곳이다. “오름에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하여 이름 붙인 ‘다랑쉬’ 오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이 박형근의 사진 속에서 빛의 언어로 잠들어 있었다.

작가의 〈Forbidden forest〉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숲 ‘곶자왈’을 촬영한 것이다. 제주의 숲을 이르는 말인 ‘곶자왈’은 ‘암반 위에 형성된 숲’이라는 의미로, 실제로 울퉁불퉁하게 형성된 용암대지 사이로 나무가 뿌리를 내려 지금의 숲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들이 서로의 몸통을 껴안고 뿌리는 얽히고설킨 채 오랜 시간 땅과 하늘을 연결해 섬의 호흡을 가다듬게 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별히 작가의 사진 중에 〈용설란〉에 눈길이 멈추는 것도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용설란에 얽힌 사연 때문이다.

나고 자란 곳이 제주도인 박형근에게 이 섬은 숙명처럼 제 상처를 드러낸다. ‘뭍’사람들에게는 휴양지(vacance)로 둔갑하여 관광을 재촉하지만, 원주민에게는 ‘나 좀 제대로! 봐달라고 울부짖는’ 공백(vacancy)의 섬이다. 역사의 공백을 구조화하는 방법으로 알랭 바디우는 ‘사건의 충실성’을 거론했는데, 공동체와 동시대성의 (불)가능한 지점을 위해 중단 없이 노력하는 것이 작가의 윤리이고, 재현의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의 실재를 자꾸 말하는 자가 사진가가 아닐는지. 사진은 흘러간 역사를 항상 ‘지금, 여기’로 되돌아오게 한다. 박형근이 20여 년간 제주도를 촬영하고 애도의 시공을 열은 이유이다.


  1. 제프리 배첸, 김인 옮김 《사진의 고고학》 이매진 2006 pp.98~103
  2.  박형근의 작가 노트에서 발췌

〈Jejudo-8, 알뜨르〉 C print 120×154.5cm 2014 앞의 박형근 작가

박형근은 1973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시각미술대학원에서 이미지&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전 〈RedLights〉(2019, 갤러리인덱스), 〈Recent project: flurry〉(2020, P&C 갤러리), 〈세 번째 달〉(2020, 문화공간새탕라움), 〈차가운 꿈〉(2021, 대안공간 루프) 등을 열었다. 근래 기획전 〈공간기억〉(2019, 김중업박물관), 〈금호영아티스트: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2019, 금호미술관), 〈이토록 아름다운〉(2021, 부산시립미술관), 〈SYMBOLS and Iconic Ruins〉(2021, 아테네국립현대미술관, 그리스) 등에 참여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온 연작 〈Forbidden Forest〉와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지속해온 〈Bleak Island〉 연작으로 제12회 일우사진상 출판 부문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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