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HA CHONGHYUN

평생 회화의 본질을 연구해 온 단색화의 거장 하종현의 개인전이 2월 15일 국제갤러리 서울 전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종현의 작업과 사유를 일괄한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접합(Conjunction)〉 연작에서 파생된 〈이후 접합(Post - Conjunction)〉 시리즈의 신작을 대규모로 공개했다. 평면에 나무 조각을 덧입혀 새로운 의미의 회화적 평면과 색채를 탐구한 결과 그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또 하나의 회화언어를 구축했다. 전시는 3월 13일까지.

〈Post - Conjunction 10-2〉 혼합재료 244×366cm 2010

무 · 신체 · 모상의 앙상블 : 하종현 단색화의 세계화 시발(始發)
― 국제갤러리 근작전에 즈음하여

김복영 | 미술비평 ·  전 홍익대 교수

필자는 일찍이 하종현론을 여러 번 다루었으나 이번 국제갤러리 근작전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논조를 정제 보완하여 보다 상부한 정론(定論)을 내놓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이 일구어낸 가장 성공적인 장르의 하나인 단색화 세계화의 로드맵을 보다 앞당기리라는 기대에서다. 우리는 그간 K-팝이 우리의 전래적인 몸짓에서 시작해서 사운드와 스토리 패턴을 세계화해 이룩한 성취를 목격하면서, 가까운 장래 우리의 고급문화예술에도 이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로 우리 현대미술의 세계화 주자로서 단색화를 제1후보로 손꼽는 건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종현이 지난 2010년대 말 〈접합〉을 뉴욕근대미술관에 상재(上梓)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4월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베니스 팔라제토 티토(Palazzeto Tito)에서 회고전을 개최(예정)하는 것은 그의 화업 60년사의 쾌거로 기록될 것임은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기대해온 한국미술 세계화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글은, 이에 즈음해서 하종현이 화업 반세기에 일군 위업의 도정을 분석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우리 후세대 작가들의 귀감(龜鑑, paragon)으로 삼게 하려는 데 있다.

하종현 〈Post -Conjunction 21-201〉 혼합재료 73×61cm 2021

〈접합〉의 시원

작가의 작품 〈접합〉은 비유컨대 그의 유년 시절 토담(土垣)장이들이 생가 토담을 만들던 기억에서 시작했다고 유추해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겉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무(無)’에서 토담이 만들어지는 비밀스러운 이면(裏面)과 마침내 완성된 모습의 전면(前面)을 연속체로 다루고자 한 데서 단색화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그건 완성된 토담이 겉으로는 단아해 보이나 그 안을 파고들면 바탕인 대지가 있고 이를 기저로 쌓아 올린 시초의 흙담이 드러난다. 이 사실은 이면의 시초적 흙담이 전면의 토담의 여하를 결정짓는 실질이라는 걸 말해준다. 이게 없거나 부실할 때 토담은 존재하지 않거나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접합〉은 애초 완성된 토담이 아니라 무에서 토담이 만들어지는 전(全) 과정에 주목한 데서 이루어졌다는 걸 함의한다.

이를 단색화의 경우로 바꾸어 말해보자, 그건 회화의 한 장르로서 단색화의 절차와 방법으로 전유(專有, to appropriate)하려는 데서 그의 예술은 시작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독자는 이에 즈음해서, 이게 무엇이건대 그리 대단하냐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완성된 외관을 만들기에 앞서,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그래서 ‘무’라 할 ‘안(inside)’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 걸 강조하려는 데서다. 안을 파서 외관을 만드는 인탈리오(intalio) 조각가들처럼, 그 또한 화면의 전면을 일구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이면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표면의 가시적 효과는 인탈리오 조각에서 보듯, 처음부터 표면만을 다룰 때보다 형상의 가시적 효과가 말할 수 없이 증대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이 방법이 어디서 연유했는지를 생각하자. 우리의 전통적인 축조법(築造法)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성곽을 쌓을 때처럼, 우리의 전통 축조법은 어느 경우나 안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예를 보다 넓혀서 생각하자. 그럴진대, 우리의 세계이해는 하나를 다룸에 있어 완성에 이르는 도정을 중요시한다는 걸 잊지 말자. 이를 우리의 옛 기록이 상세히 일러준다. 이를테면 “하나를 시작할 때 비어있는 이면의 ‘허(虛)’와 ‘공(空)’으로부터 시작하고 ‘무(無)’를 고려하라(虛空與一始無同始 : 《三一神誥』 其一》)”는 것 말이다. 이 규범은 화면의 ‘전(前)’과 ‘후(後)’를 접합해서 이들의 총화가 ‘획(劃)’과 ‘면(面)’이 되도록 하라는 언명과 다름없다. 보이는 전면을 다루기에 앞서 보이지 않는 이면의 ‘무(無)’를 보다 중요시하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최고 경전의 명제인 “하나(전면)를 다룸에 있어 ‘이면’의 ‘무(無)’를 ‘마침(盡)’의 근본으로 할 것(無盡本 : 《天符經》)”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하종현은 유년기의 ‘토담유비(土垣類比)’에서 오늘의 단색화 기틀을 완성하는 지혜를 발전시켰다고 합리적으로 반추할 수 있다. 그의 이번 근작전이 어느덧 글로벌시대를 맞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이를 모멘텀으로 삼는 데 빠트림이 없어야 할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의 〈접합〉은 이를 염두에 두고 ‘배압법(背押法, a method to control foreground with the rear)’을 방법적으로 구사한다. 이 방법은 안료의 물성을 성긴 마대의 이면에서 전면으로 밀어내어 화면을 조율하는 차원에서 구축한다. 그의 배압법은 제1기(1970년대)에서는 화면의 바탕에다 개성이 강한 물질을 접합하다가 제2기(1970~1990년대)의 정착시대를 거쳐 제3기(1990~)에 본격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제2기에는 안료의 물성을 캔버스 뒷면에서 전면으로 배압하는 데 비해, 제3기에는 나무 합판을 일정한 크기의 얇은 직면으로 잘라 캔버스 천으로 싸서 먹이나 물감으로 칠한 후 화면의 전면에 순차적으로 부착하고 전면의 아래 혹은 가장자리에 색료를 추가하는 방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합판의 직면체에 의해 물감이 눌리거나 분출하는 일련의 매너가 일품이다. 아니 이러한 매너로 물성의 드라마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안료를 나이프로 스크래치하거나(〈접합 11-3〉), 오일컬러를 덧칠하여 표면의 율동을 다양화하는 변주가 가히 일품으로(〈접합 10-38〉)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근작들은 중기에 주로 하던, 마대를 전면과 이면의 사이에 두고 이면에서 전면으로 배압하던 방법을 구사하면서도 부조(浮彫)의 방법을 더해 돌출된 드라마틱한 배압을 아울러 시도한다. 이게 후기시대 〈접합〉의 다양하고 확장적인 모습의 단면이다.

〈Post -Conjunction 09-02(A)〉혼합재료 200×120cm 2009

한국적 사유의 세계화

중요한 건 하종현의 〈접합의 시대〉가 우리 현대미술의 세계화에 주는 시사다. 그건 앞서 언급한 것처럼, K-팝의 세계화를 넘어 우리의 고급문화예술 세계화 또한 이렇게 해서 하나의 패러다임 창조가 가능하리라는 합리적 예단이 아닐까 싶다. K-팝의 세계화가 애초 우리의 전통 팝 춤사위(Pop-choreography)에 의한 몸짓과 소리 패턴의 확장적 베리에이션에 있었다면, 작가의 단색화 또한 우리의 전통적 시각문화의 확장적 범주에 우뚝 세울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K-팝이 예컨대 강태홍 유의 가야금산조와 봉산탈춤, 나아가서는 한국고전 속악의 리듬 패턴에서 현저히 볼 수 있듯이, 하종현 유의 〈접합〉에서 보는 캔버스의 이면을 전면으로 확장하는 배압 방식은 일찍이 울산광역시 울주 천정리 암각화의 표면 뚫음 방식이나, 광주시 신창동 선사유적지(기원전 1세기)의 삼태극(三太極)의 우로보로스(uroboros, 원형상)는 물론 고구려 해뚫은 무늬 금동장식(AD4~5세기)과 백제 금관식(6세기), 나아가서는 주작 무늬의 와당(7세기)에서 완연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조망은 일찍이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는 물론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거쳐 겸재 〈금강전도〉에 이르는 주류회화의 근본정신이다. 이는 애초 우리의 유구한 이미지 창작사에서 볼 수 있는 소재의 위치설정은 물론 건축에서 목공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다(김복영 《눈과 정신》 한길아트, 446쪽 참조).

우리의 이러한 전래적 토착정신은 서구와 같은 기하문(幾何紋, geometrical pattern)에 의하지 않고 신체에 의한 모상문(模象紋, simulacral pattern)을 구축하는 게 특징이다. 차례로 모상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작위를 무(無)로부터 작동해야 한다(運身無成模象 : 《천부경》). 요컨대, 그 핵심은 우리의 ‘몸’을 ‘무’와 결부시켜 ‘상(象)’을 만드는 데 있다. 관념에 의한 서구세계의 ‘사상(寫象)’ 이미지 창조와는 궤가 정반대다. 우리의 토착 기법의 연원은 한국 전통세계관인 ‘무(無)’에서 세계화에 이르는 유구한 ‘현묘지도(玄妙之道)’의 가르침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문화예술은 회화의 경우, 화면을 그 이면인 무의 전조(前兆, omen)로 간주하는 데 특징이 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로버트슨(R. Robertson)이 처음으로 설파하고 오늘의 글로벌시대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투트랙에서 세계화를 찾는다면, 하종현 화백의 〈접합〉은 이 시대의 미술이 일구어야 할 전범(典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오늘날 양자시대(quantum era)의 과학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복합적 아우름(compositive convolution)’을 뜻하는 전일(全一, Holon)의 정신이 뒷받침하고 있다.

서구 미니멀리즘의 방법적 해체와 단색화의 세계화

하종현의 〈접합〉이 미술계에 널리 회자될수록 그 또한 현대미술의 선구로서, 아니면 이와 동렬의 작가로 소환될 게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하 화백은 일찍이 어느 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작가는 작품제작에서 물성 자체의 결과를 지켜보는 입장에 있어야 한다”라고. 이는 자신이 물성에다 부여하는 간섭을 최소화할 필요를 양자시대에 발맞추어 무의식적으로 역설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야말로 작품의 ‘모상(模像, simulacres)’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물성의 생성과 변형이 자연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도록 작위를 최소화할 것을 강조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이 언급이 시사하는 것처럼, 그의 단색화는 1970년대 서구의 ‘미니멀아트(minimal art)’의 대명사 격인 도날드 저드(D. Judd) 유의 ‘특수 오브제(object specific)’와 차별화를 방법적으로 지향해왔다. 미니멀아트가 서구 근대주의의 ‘표상(representation)’의 마지막 보루였다면, 그래서 회화에서 오직 ‘볼 것만’을 강조하는 환원주의를 현실화하는 절대무비의 평면이었다면, 하종현의 〈접합〉이 보여주는 ‘모상(simulacres)’은 서구의 표상에 의한 미니멀리즘을 무와 신체의 매개에 의해 방법적으로 해체한다. 아니 이로써 그는 글로벌시대의 세계화를 앞당기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Post-Conjunction 11-3〉혼합재료 120×180cm 2011

1935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한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역임했다. 밀라노 무디마 현대미술재단(2003), 경남도립미술관(200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2012)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으며, 뉴욕, 런던, 파리 등 전 세계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최근 소장된 파리 퐁피두센터를 비롯해 중국 박시즈 미술관, 네덜란드 보르린던 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홍콩 M+, 도쿄도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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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월간미술》 2022년 3월호 월간미술  ARTIST REVIEW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