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30~5.3
미술관은 삭는 미술을 품을 수 있는가
노해나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Exhibition

에드가 칼렐〈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1/2026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6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보관된 예술 작품이라도 그 재료 물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변하고 부식되거나 탈색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다. 어떤 물질이건 시간이 지나면 그 생애주기에 따라 노화된다는 원리를 우리는 알고 있지만, 미술관은 작품이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을 경계하고 노후화를 지연시키거나 손상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이하 《소멸의 시학》)에서 제안하는 ‘사라지는’ 작품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니 ‘삭는 미술’은 미술관에서 다루기에 난감하고 혼동을 야기하는 말 아닐까. 삭고 있는 미술을 전시한다는 기획은 미술관 관계자들을 여러 방면에서 분주하게 만든다. 삭고 있는 작품은 미술관이 지켜오던 규칙과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전시는 물리적으로 변하는 작품, 사라지는 작품, 소멸하고 있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 정의하고 “Sak-da”로 표기한다. ‘삭다’라는 말은 단지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데, 소멸과 동시에 분해자 매개자에 의해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되는 생산을 내포한다. 또한 ‘삭다’는 썩는 현상과 다르며, 발효라는 특유의 과정이 연상되는 용어로 제시된다. 즉, 삭는다는 것은 분해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양소들이 생산되는 발효처럼, 미생물, 곰팡이가 사방으로 뿌리내리며 요소를 변화시켜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형태 전환의 축제성, 떠들썩함이 있는 분해의 향연의 이 현상, ‘삭다’라는 과정에 내포된 탈바꿈과 전환의 움직임, 생성의 잠재성을 《소멸의 시학》은 말하고자 한다.1 전시는 분해와 생성이 대립하거나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과정이 아니라 동시 발생하며 분해와 생성의 순환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고자 한다. 따라서 ‘삭다’로 개념화하는 것은 어떤 미술을 정의하겠다는 의지라기보다 분해와 생성의 경계가 와해된 상태, 그것을 다루는 작품이 인간중심의 사고, 분류체계에서 벗어난 지혜와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전시된 작품들이 보여주는 분해와 생성의 과정은 작은 존재, 비인간의 행위들에 주목하게 하며 걷잡을 수 없는 물질들의 웅성거림을 예견한다. 그래서 전시는 순환 리듬을 닮아 있는 물질과 자연의 재료, 공감각을 동원하는 물성의 작품을 제시한다.

여다함〈향연〉마 실, 황동선, 모래, 향, 조명기구 34.5×24.5×22cm 2025
무대 구상 협업: 김종범(레어바이크) 사진: 코코아 픽쳐스(김윤재) 제공: 작가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코끝에 닿는 축축한 흙 내음이 신체를 일깨운다. 안개처럼 깔린 흙 내음은 친숙하고 편안한 감각을 준다. 전시는 보기를 대신해 감각하는 물질로서 다가온다. 미술관의 활동이 오랜 기간 시각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다른 감각들은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렇기에 전시장 공간에서 흙의 촉감과 내음을 불현듯 마주하게 한 것은 물질을 감각하라고 권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즉 눈으로 보는 대신, 신체의 감각경험으로 온전히 닿게 하는 것을 의도한다. 그뿐 아니라 전시장 입구에서 촉감 속지도와 접근성 영상을 안내하고 있어 다양한 감각을 가진 관람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전시장의 동선을 배려한다. 이는 미술관 정책의 변화를 반영하지만, 기획의 측면에서 시각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감각에 집중하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볼 수 있겠다.

아사드 라자〈흡수〉네오소일(neosoil) 2026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6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은유로서의 토양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고 있거나, 과일과 채소는 마르고 비틀어지며 부패하면서 스스로 그 물질의 생애주기를 살고 있다. 이렇게 썩는 것, 부패하고 소멸하고 있는 물질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으로의 회귀를 연상시킨다. 그렇기에 전시는 토양이라는 물질을 그 중심에 두고, 토양의 감각을 활성화한다. 낙엽, 곤충, 식물의 소멸, 동물의 배설물, 떨어진 열매들이 토양으로 돌아가고, 균류에 의해 분해되고 흡수되는 작용을 하는 토대가 흙이다. 전시는 분해와 부패라는 소멸의 원리를 생명과 생산을 위한 순환의 감각과 매개하는 물질로 토양을 내세운다. 물질적 재료로써 흙을 사용하며, 또 흙은 소멸, 죽음, 그 이후의 순환과 재탄생의 역할을 함의하기도 한다. 아사드 라자(Asad Raza)의 〈흡수〉(2026)는 이러한 전시의 개념을 폭넓게 아우른다. 도시 서울에서 나온 여러 폐기물과 쓰레기, 잔여를 흙과 뒤섞은 ‘네오 소일’은 도시에 기여하고 활동하는 행위자를 알아차리게 한다. 이 전시장에서 다양한 물질의 부산물들이 흙으로 돌아가고 미생물과 뒤섞여 새로운 토양이 되는 중이다. 오픈콜로 모집된 토양을 돌보는 경작자들은 흙 내부를 뒤집고 갈아엎으며 흙에 사는 미생물과 폐기물, 잔해들의 분해를 촉진한다. 이들은 흙을 돌보는 일꾼이면서,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며 표정과 몸짓을 보이는 퍼포머로서 미술관에 삶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이러한 상호 작용 속에서 흙의 무기질, 잔해, 경작자, 관람객, 이 모두는 작가의 의도를 떠나 서로 동참하며 그 마주침의 경험을 간직한 채 함께 만들어 가는 민주적 참여자가 된다. 이렇게 전시를 땅으로 형상화할 때, 삶의 연속과 자연 순환의 원리는 전시를 지배하는 흐름이 된다.
전시장의 생동하는 물질들
《소멸의 시학》은 인간 주체를 벗어나 행위하는 물질을 다룬 만큼, 그 소멸의 이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생동하는 물질을 공간에 펼쳐놓는다. 작품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물성으로 돌아가자면 그것은 재료일 것이다. 근래 다수의 작가들이 인공 합성 재료보다 재료의 변형과 물질의 생애주기를 수용하고 상대적으로 변형에 취약한 자연 물질,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소멸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경향이기도 하다. 이은재의 회화는 달걀노른자로 만든 템페라를 활용하여 작가가 목격한 삶과 기억의 층위를 재현하며 바래고 퇴색되는 이미지를 그린다. 또 이은경의 비정형 회화는 작가가 발굴한 원석 재료와 템페라를 섞어 쌓으며, 종국에는 긁히고 벗겨져 지질학적 표면을 닮은 추상에 이른다. 미술관의 벽을 채운 벽화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스피룰리나로 그려져 점차 퇴색되고 만다.
높은 벽을 지나면 연약하고 섬세한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의 ‘프레카리오스’ 연작(1966~)이 있다. 칠레의 해변에서 폐기물, 잔해를 발견하고 이를 이어 붙인 작은 조각은 취약한 사물들의 미학을 보여준다. 연약한 지지체와 섬세하게 파장을 이루는 선의 긴장감이 주는 미학은 파괴된 생태계에 대한 돌봄의 윤리란 사라져가는 것을 길어 올리는 실천에 있다고 말한다. 작은 것에 주목하는 힘을 느꼈다면, 곧이어 전시장을 채운 향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차례다. 어둠에서 넘실대는 향의 춤, 여다함의 〈향연〉(2025)을 마주한다.
여다함은 뜨개질로 향로 모양을 만들며 그 형상을 관찰하고 일지에 그날 날씨와 온습도, 바람의 세기를 기록했다. 향로의 실이 풀린 사건은 파타고니아에서 빙하가 쪼개지는 현상으로 연상되고, 어느 날은 구름의 형상으로 이어지기도, 산불이 있었던 날로 기억되기도 하며, 작가가 목격한 해프닝과 함께 기록되기도 한다. 매일 하는 뜨개질은 일상과 대기, 날씨의 흐름과 함께하는 삶의 리듬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대기에 대해서 생각할 때쯤, 유코 모리(Yuko Mohri)의 〈분해〉(2025)에서 익어가는 과일들이 만드는 빛과 소리,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과일에 꽂힌 전극은 빛과 사운드로 변환되어 다양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분해〉의 제작 배경이 되었다는 일본의 전통 불화 〈구상도〉, 즉 육신이 소멸하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은 신체의 부패, 분해란 죽음의 고요함이라기보다 꽃, 풀, 나무, 개, 새, 구더기 등의 생물들이 제멋대로 떠들썩하게 벌이는 활동의 연쇄라는 사실이다.2 김방주의 〈벌목과 불〉(2025)은 전시 이후에 미술관에서 나온 폐기물을 땔감으로 태우고 남은 재를 그대로 쌓았다. 폐기물을 태운 재는 소멸한 이후의 물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열이 지나간 잔여물이다. 작가가 겪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겹치며 바닥에 낮게 깔린 재는 작품으로 거듭나며 죽음과 삶의 연속을 말한다. 작가들이 다루는 소멸하는 물질 뒤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장면은 인간의 삶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물질이 소멸하듯, 신체를 가진 인간은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전시는 삶의 이야기를 은근히 드러내고 삶의 연속 안에 미술이 있음을 이해하도록 한다.
삶의 연속성을 담아내는 일은 전시장과 다음 공간 사이의 정원에서도 이어진다. 마치 대기의 흐름처럼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미술관 안이면서 밖이기도 한 정원에는 야외 설치 작품인 고사리의 〈초사람〉(2021~2026), 김주리의 〈물 산〉(2026)이 흙의 토대 위에 놓였다. 낮과 밤,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에 작품과 자연은 경계 없이 그대로 풍경이 되어 간다. 무시간성으로 간주하던 화이트큐브의 전시장은 비로소 물질과 대기의 흐름, 삶의 시간이 개입될 수 있는 장소로 전환되며, 거부할 수 없는 죽고 사는 이야기들이 가까스로 전해진다.

유코 모리 〈분해〉 과일, 나팔 스피커, 앰프, 컴퓨터, 아크릴, 전구, 앤티크 테이블 가변 크기 2026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6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사리〈초사람〉국립현대미술관·공원·운동장에서 제초된 풀, 나뭇가지, 마끈
10×10×10cm, 60×40×40cm 2021~2026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6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분해하는 힘
창조하는 인간의 증거로서의 ‘작품’이 삭아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품’이 허물어진 곳에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불고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다시 ‘작품’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때 그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3
전시되는 작품의 ‘분해하는 힘’은 미술관의 유지, 관리, 보존, 소유의 관점에서 과연 작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라는 논의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부패하고 변하는 작품은 습기 가득하고 동일한 상태로 ‘삭다’의 현상은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물질적, 신체적 반응이기에 미술관의 기존 관습은 산사태처럼 무너진다. 자연의 순환 과정, 변화의 과정을 들여온 전시는 기관의 제도와 법 그 자체가 변화해야 함을 역설하며, 부패하는 힘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전시는 미술관을 전제가 아니라 질문을 받는 주체로 바꾸고 있다. 물질들이 가진 잠재적 힘을 미술관은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물질이 번식하고 변하고 반응할 때 미술관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 변한 작품은 작가만의 것인지, 그리고 그 작품은 미술관이 소유할 수 있는지, 인간의 역사와 같은 궤적을 그렸던 미술관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마지막 전시장은 체제를 재편하고 변화를 일으킨 작품의 배경과 역사를 포괄한다. 전시의 질문에 답을 주는데, 이는 삭는 미술이 그 자체로 존재의 가치를 지니고 미술관은 유연하게 변화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 이러한 응답으로 댄 리(Dan Lie), 에드가 칼렐(Edgar Calel)의 작품은 하나의 풍경 안에 놓인다. 리와 칼렐은 미술관이 어떻게 물질-사물-작품을 다뤄야 하는지 제안한다. 댄 리의 〈목격자〉(2025)는 액체가 담긴 도자기 안에서 발효하고 있는 곰팡이, 박테리아 등 미생물에 의해 변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술관에 미생물, 곰팡이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 환경으로 탈바꿈할 것을 권유한다.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1/2026)는 테이트모던의 수집 방침을 바꿔놓은 사례이기도 하다. 칼렐은 과테말라 선주민인 카치켈 부족으로 그의 작품은 선조들의 지혜와 의례를 참조한다. 돌 위에 놓인 과일과 채소는 마르고 즙이 흐르며 작품의 유지를 곤란하게 한다. 마야의 사고와 관습에 따르면 작품은 물리적 형태가 아닌 그 정신으로 해석되는데, 테이트모던은 부족 공동체의 정신을 따르고 그에 대한 경의로써 작품의 소유가 아닌 관리의 형태로 수집의 위상을 바꾸었다. 전시는 작품의 이력을 언급하며 미술관 제도를 변화시킨 지점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구체적 실천은 얀반에이크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인 미래 재료와 그린레시피랩의 협업으로 진행된 재료 실험, 그리고 사회적 발효라고 부르는 다양한 관계들의 협업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전시에 마련된 워크숍은 이러한 분해의 질서와 소멸의 감각을 손으로 만지거나 경험하게 한다. 그것은 지식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가장 교육적이면서 삶 속으로 흩어지는 방식일 테다.
전시는 묻는다. 미술관은 삭는 예술 작품처럼 기존에 정의할 수 없었던 미술을 수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양한 가치와 삶의 공존을 보호하는 수호자, 협력자가 되어 나아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 급진적인 질문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물질, 신체들의 고유한 리듬과 삶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시도일 것이다.
1 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박성관 옮김 『분해의 철학』 사월의 책 2022 p.346
2 위의 책 p.49 참고
3《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전시 리플렛 국립현대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