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이 나》

부산현대미술관 2025.11.29~3.22
소멸 아닌 축소로 – 다른 도시 상상하기

강재영 기자

Exhibition

강해성 + 문소정 + 한경태 〈이동하는 모듈러 만물상〉 2025
《나의 집이 나》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은 동시대 미술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다학제적 연구를 중심으로 펼쳐온 연례전이다. 인류가 마주한 문제를 고찰하는 실험 공간을 표방하는 이 전시의 이번 주제는 ‘도시의 위기’다. 2023년 ‘자연과 인간’, 2024년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이어 인구 감소, 지역 소멸, 주거 위기, 고령화, 돌봄의 재편 등 21세기 도시가 마주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건축’이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전시를 꾸린 김가현 학예사는 이러한 도시의 현실적 문제를 ‘역설적 위기’로 진단한다. 여기서 역설이란, 성장을 위해 짜인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인구가 감소하며 발생하는 도시 축소(urban shrinkage)를 가리킨다. 그는 이어 “도시는 축소의 언어로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축소지향적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현대 도시를 새롭게 보기를 제안한다.

전시는 학예사의 명명처럼 ‘건축전’의 성격을 띠며, 시각예술의 카테고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선정된 10개 팀 가운데 7할이 건축을 다루는 프로젝트 팀이다. 도시 문제를 다루는 데 ‘건축’이라는 도구는 가장 직관적이고 종합적이며, 마치 해결 가능성을 내포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다학제 연구는 ‘축소지향적 도시’를 구성하기 위한 서로 다른 제안들로 읽힌다. ‘축소지향’의 방법론으로는 크게 연대와 돌봄이 제시된다. 남은 자들이 독립하고 연대를 통해 돌봄을 나누는 일은 건축적 차원에서 ‘작은 집’, ‘돌봄이 닿는 거리’, ‘적정 규모의 건축 실험’, ‘관계-리듬-기억을 다시 짓는 공간적 서사’ 등으로 번역된다.

서울퀴어콜렉티브 〈우리는 모두 팔십에 서로의 요양보호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2025

유림도시건축 〈인피니트 루프: 도시연대기〉2025

광주 ‘바림’과 ‘오버랩’, 태백 ‘날땅비엔날레’, 서천의 《둔주》전 등 몇 년간 로컬에서 이어지는 여러 실천을 주목해 왔던 기자에게 이번 전시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지역 문제를 글로벌 실천과 시의적절하게 엮어내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의제 설정과 문제 정의 능력에 거는 기대도 있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미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2024)에서 로컬리티 문제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다룬 바 있다. 앞선 전시가 미셀 드 세르토의 전술론을 빌려 로컬의 탈중심적 실천들에 주목했다면, 이번 전시는 설명했듯 ‘건축’을 실천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이제 전시를 돌아볼 시간,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압축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시는 부산 혹은 소멸 위기 도시의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거나 재현하는가. 둘째, 작업들은 예술이라는 인간의 감각과 사유를 통해 이 문제를 새롭게 감각하게 하거나, 도약의 단서를 만들어 내는가. 지금부터 주요 작품을 간략히 소개하며 전시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즉 축소지향적 도시에서 돌봄과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펼쳐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축소지향적 도시의 면면
유림도시건축의 〈인피니트 루프〉(2025)는 조형적 장치로 ‘도시라는 집’의 감각을 되살린다. 투명한 터널은 내부-외부, 도시-자연의 경계를 흐리며 비움이 만들어 내는 공간성을 체험하게 한다. 구체적 데이터나 사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축소의 조건에서 ‘집’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몸의 동선으로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전시의 큰 흐름과 잘 맞물린다.

서울퀴어콜렉티브의 〈우리는 모두 팔십에 서로의 요양보호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2025)는 돌봄을 가족 제도나 행정 서비스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제도 밖 관계들이 이미 만들어 온 상호부조의 풍경을 전면에 놓는다. 서로 등을 지고 교차하며 균형을 잡는 좌석 구조는 축소된 도시의 모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관계가 도시를 구축한다는 도시 이론과 겹쳐 읽히기도 한다. 여기에 퀴어로서 노년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노년=돌봄’이라는 현실이 특정 집단에게 얼마나 먼저, 얼마나 무겁게 드리워지는지가 드러난다. 공간 가운데 놓인 조형물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야만 하는 퀴어 돌봄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한쪽의 라디오 부스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노년 돌봄에 대한 경험이나 생각을 녹음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고, 남겨진 목소리는 전시장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돌봄과 연대의 핵심은 ‘관계의 재편’이라는 점을 가장 힘 있게 전달한 작업이다.

강해성+문소정+한경태의 〈이동하는 모듈러 만물상〉(2025)은 차에서 지내며 전국의 골목을 누비는 조상하의 이동식 철물점 ‘청춘 만물 트럭’을 전시장으로 옮겨 왔다. 작가들은 이 만물상을 ‘이동하는 돌봄’의 모델이자 축소지향적 거주의 한 형태로 해석한 듯하다. 트럭을 중심으로 1층은 만물상과 나눔받은 세간살이로 구성한 조각들, 나눔받으며 수집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청춘 만물 트럭’ 주인의 ‘방’을 재현한 공간에 들어가 볼 수 있다. 구성된 조각들은 디자이너(강해성), 조각가(문소정), 건축가(한경태)가 부산 시내를 돌며 시민들과 물물교환해 얻어 온 것들이다. 그렇게 물물교환한 물건들에 담긴 작은 이주의 역사와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은 영상과 조각으로 치환됐다.

랩.WWW 〈함께 짓는 도시〉2025

리슨투더시티의 〈임장크루-갭투-초품아-마피-강남불패: 지역소멸과 욕망의 도시〉(2025)는 한국이 직면한 부동산, 즉 집값 문제를 머신러닝을 활용한 인포그래픽 무빙 이미지와 단어 게임, 용어집 등으로 변환해 낸 작업이다. 강남 3구와 부산 해운대의 실거래가를 병치하고, 관객이 화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격이 튀어나오듯 만든 이미지는 마치 시사 잡지 한 페이지를 펼친 듯하다. 작품명에 나열된 ‘갭투, 초품아, 마피, 강남불패’ 같은 단어는 부동산을 향한 한국인의 세속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런 단어들이 미술관 한쪽 면을 차지할 때 만들어지는 이질감 자체가 관객을 절로 ‘자기 객관화’하게 한다. 부산 집값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서울 집값 그래프의 가파른 상승이 부산 시민을 놀라게 하는 건 덤이다.

리슨투더시티 〈임장크루-갭투-초품아-마피-강남불패:
지역소멸과 욕망의 도시 부동산 신조어 용어집〉 2025 사진: 강재영

공감각의 〈변화하는 도시, 다시 쓰이는 삶〉(2025)은 부산 원도심 중 하나인 영도마을을 소멸하는 공간이 아니라, 성장과 쇠퇴가 교차하는 유기체로 읽어낸다. 흔히 ‘아시바’라 불리는 비계로 만든 파빌리온 구조는 ‘변화 중’인 영도의 모습을 상징하면서도 관객의 동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비계 구조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마다 삐걱대는 소리는 미술관의 맥락을 잠시 잊게 하고, 부산의 어느 골목을 걷는 듯한 감각적 전복을 만들어 냈다. 부산 출신 세 건축가의, 부산을 사랑하는 시선이 가득 담긴 작업이었다. 공간 곳곳에 배치된 영상에는 영도와 보수동의 골목, 항구 풍경이 관조적으로 담겨 있었다. 소멸 위기 지역이 비계를 통해 재구축될 때, 부산 사람들에게 이 경험적 풍경은 어떻게 감각될까. 말 그대로 자신이 밟고 보고 눕는 땅을 재경험하고 재인식하며, 재맥락화하게 되지 않았을까. 관객은 “여기는 어딜까”, “초량? 자갈치?” 하며 마음속에 새긴 기억 속 부산을 자연스레 꺼내 놓고, 영상 앞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소멸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관람객의 손글씨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모습을 보며, 작품 제목대로 여전히 변화하는 도시를 ‘소멸’로 오독하고 있지 않은지 되묻게 했다.

공감각 〈변화하는 도시, 다시 쓰이는 삶〉2025

상상의 힘을 가장 크게 발휘해야 하는 작업은 랩.WWW의 〈함께 짓는 도시〉(2025)다. 초록색 넓은 정사각형 단 위의 하얀 정사각형 면에 기하학적 도형들이 규칙을 파악하기 어렵게 곳곳에 세워져 있다. 공생의 언어를 실험해 왔다는 이들의 작업은 관람객이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기술을 통해 벽을 접거나 펼치며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벽을 사라지게 하는 것만으로 당장의 ‘공생-공존’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모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뛰놀며 서로의 벽을 허무는 모습은 다른 의미의 공존을 상상하게 했다.

소멸은 타자의 언어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전시가 부산의 현실을 얼마나 깊이 재현했는가’라는 질문에는 공감각의 몸-경험적 재구성, 만물상의 이동과 수집이 만든 돌봄의 리듬, 리슨투더시티가 드러낸 부동산 구조의 냉혹한 수치가 설득력 있게 응답했다. 이 작업들은 부산을 ‘배경’이 아니라 ‘조건’으로 다루었고, 관객이 스스로의 기억과 언어를 꺼내도록 만들었다. ‘예술/건축이 도약의 단서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제도 밖 관계를 도시의 설계 원리로 역전시키는 방식, 공감각이 감각의 전복으로 도시를 다시 쓰게 하는 방식, 만물상이 사물의 흔적을 돌봄의 단서로 전환하는 방식이 분명한 답을 보여 주었다. 즉, 이 전시는 ‘축소지향’이라는 개념을 단지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부 작업을 통해 실제로 감각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여러 파빌리온은 ‘축소’라는 개념을 ‘거리’로 치환해 물리적으로 구성했고, 관람객은 말 그대로 축소 도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연대와 돌봄은 동시대 미술에서 낯설지 않은 키워드이지만, 이를 전시장에서 ‘건축’이라는 프레임으로 비추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각은 새롭게 다가왔다.

인구 소멸은 문제가 아니라 현상이다. 그렇기에 ‘해소’라는 명목 아래 이를 가려 버리거나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리슨투더시티가 작업에서 언급한 ‘몫 없는 자’를 먼저 보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의 존재 자체를 응시하고 지지하는 일 말이다. 관념적 이상은 종종 허상에 불과하다. 소멸 지역과 그 이웃을 대상화거나, 맥락 없이 시각적 스펙터클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이웃은 머릿속에 상상으로 그린 그림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실재를 마주하는 일이 어렵고도 중요한 이유다. 이 전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부산의 이면, ‘소멸’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부산의 현실과 부산 사람들의 삶을 전시장이라는 한정적이고 정제된 공간 안으로 끌어당기는 실천적 시도라 할 수 있다.

2026년 3월호 (VOL.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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