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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

인간이 신을 보는 법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제작된, 〈손으로 만들지 않은 구세주〉 앞에 오늘의 불빛이 일렁인다. 시대를 초월해 전시실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맞는 구세주의 얼굴은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etos)’1 그 자체처럼 인간의 손을 초월하여 예술이라는 화폭에 현현한 신비롭고 엄숙한 종교 정신이다. ‘2020~2021 한  -  러 상호교류의 해’ 30주년을 맞아 개최된 전시는 2019년부터 약 3년간 이어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모스크바 러시아이콘박물관(Museum of Russian Icons, 이하 이콘박물관)의 긴밀한 협업으로 실현되었다. 동방정교회의 이콘(icon, ikona)은 신의 모습이 드러난 종교화이자 성물로 예수와 성모, 성인, 천사, 교회의 모습도 출현한다. 지역과 시대별로 차이가 있으나, 이콘 제작자들은 비잔틴 시대부터 이어진 양식과 기법에 따라 성화를 제작했으며 작업에 착수하기 전 금식하고 기도하는 엄격한 과정을 거쳤다.2

왼쪽 페이지 〈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 전시 전경
사진: 박홍순

기획소강당에 설치된 성화벽 모형 2021

〈손으로 만들지 않은 구세주〉
목재, 템페라 93.8×73.8×2.4cm 15세기 말~ 16세기 초 로스토프에서 제작
러시아이콘박물관 소장

콘솔레이션 홀에서 상영된 이콘화 영상

전시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로스토프(Rostov), 노브고로드(Novgorod), 프스코프(Pskov), 모스크바 지역에서 제작된 이콘의 발전 양상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성인들의 일화가 그려진 이콘들과 성화벽 및 성소를 소개하며, 지하 3층 콘솔레이션 홀의 미디어 월에서 거대한 규모로 이콘의 장엄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중 러시아 왕조의 전유물이던 이콘이 가정에 보급될 만큼 대중화되었던 18세기와 19세기 등장한 수호 성인 이콘에서는 사회 변혁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열망을 볼 수 있다. 또한 17세기부터 러시아에 흡수된 서양미술 양식은 전통적인 이콘 양식에도 변화를 주어, 이후 제작된 이콘에는 선원근법과 유화 기법에 기초한 인체와 배경 표현이 두드러진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에게 사랑받는 성인들의 일화를 담은 이콘과 성화벽(iconostasis)이 설치된 기획소강당 공간은 전시의 핵심이자 이콘의 제의적인 아우라를 회복하는 장소다. 최혜정 학예실장은, 이콘박물관에 전시된 성화벽의 사진과 러시아정교회 성당에 구현되어 있는 성화벽 양식을 바탕으로 이를 재제작했다고 밝혔다. 성화벽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성소와 회중을 구분하는 벽으로, 여기에서 이콘들은 예수의 서사 및 구 · 신약의 주요 사건을 전달한다. 지역과 성당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러시아 전통에 의하면 성화벽에는 성소로 통하며 수태고지와 최후의 심판이 묘사된 ‘왕의 문’이 있다. ‘성취의 단’이라 불리는 2단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마리아가, 왼쪽에는 세례 요한 및 성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단에는 교회에서 기념하는 축일 행사가, 4단에는 아담, 모세, 예수의 조상인 구약성서의 선조들이 나타난다. 전시된 성화벽 중앙에 위치한 왕의 문에는 이콘박물관이 소장한 이콘이 삽입되었으며, 예수의 성화 옆에 각 성당의 주보성인이 자리하는 전통에 따라, 전시된 성화벽에는 세례자 요한의 이콘이 배치되었다.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시로 열린 공간을 지향해온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천주교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예술적 정수를 초대하여 어두운 현재에 과거로부터 빛나던 북방의 염원을 불어넣는다.

〈미라의 성 니콜라이 (모자이스크)〉
목재, 템페라, 83.3×62.5×2.7cm 16세기 후반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제작

1. 최초의 이콘으로도 불리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구원자(Spasnerukotvorni)’는, 기독교 왕의 효시였던 에데싸의 아브가르 5세(Abgar Ⅴ)가 예수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해져왔다. 가령, 예수가 병의 치유를 청하는 특사를 보낸 아브가르 왕을 불쌍히 여겨 세수한 후 얼굴을 닦은 수건에 예수의 얼굴 형상이 남았고, 이후 아브가르 왕이 그 수건을 만진 후 치유된 사건은 여러 이콘화에서 반복됐다. Edited By Tatiana Smorodinskaya, Karen Evans - Romaine, Helena Goscilo 〈icon(ikona)〉 《Encyclopedia of Contemporary Russian Culture》 Routledge 2014 p.267

2. 앞의 책, p.267

조현아 기자
제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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