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
문화제조창 본관 및 청주시 일원
2023. 9. 1 – 10.15
사진: 박홍순
김명진 <호르투스 탈리스만> 연작 2022
작가는 로스앤젤레스 주변에서 발견되는 희귀종 및 멸종위기종과 고대 식물 등에서 영향을 받아 원시적인 풍경을 그려왔다. 환경과 문화사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업하는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 도자 정원의 고대 식물과 숨은 올빼미를 형상화한 테라코타 양각 그릇을 출품했다
공예는 ‘생명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도자, 섬유, 유리, 목칠 등 공예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행사인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난 9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문화제조창 본관과 청주시 일원에서 열렸다. 올해로 13회차를 맞이하는 비엔날레의 주제는 ‘사물의 지도’, 부제는 ‘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다. 이는 ‘인간중심주의 공예론’에서 벗어나 인간 외의 존재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며, 이제껏 무분별하게 진행됐던 자원의 남획과 재료의 남용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강재영 예술감독은 환경 위기 시대에 ‘생명 사랑(biophilia)’과 ‘생태적 올바름(ecological correctness)’을 실천 윤리로 삼아 ‘자연과 노동과 예술적 생산’이 하나로 연결된 공예의 창의성과 가치를 조명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방점을 뒀다. 단순히 인간을 위한 도구적 측면에서 공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인간과 자연, 세계를 포괄하는 더 고차원적인 ‘사물(objets)’의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전시는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는 인간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대상으로써의 공예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출발해 현시대에 새로운 공예 정신을 제안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다. 이에 천연재료와 장인의 기술이 결집한 전통 공예가 어떤 모습으로 생명력 있게 현전하는지 살펴보자는 취지의 ‘생명 사랑의 공예’이다. 두 번째는 플라스틱 문명에 대한 반성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조명하는 ‘바이오플라스틱 공예’이며, 세 번째는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동시대 공예가들의 고민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디지털 공예’가 있다. 마지막은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자원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장으로써 ‘업사이클링 공예’이다.
본전시는 네 가지 섹션을 토대로 총 다섯 가지 테마(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 인간 – 자연 – 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 생명 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로 구성됐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본전시에서 가장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영역은 ‘공예가들의 실천들’일 테다. 숙고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무수한 시도 끝에 구현한 결과물일 테니 말이다. 4대째 내려오는 묘비 제작자 집안에서 태어난 제이든 무어(Jaydan Moore)가 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은쟁반 조각, 골동품 가게에서 진열된 페라나칸 도자를 수집해 지워내는 방식을 택한 한스탄(Hans Tan), 실험실 바깥에서는 거의 사용된 적 없었던 금속 슬래그, 레드 머그 등의 폐기물을 활용해 램프, 오브제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 더스댓(Studio ThusThat) 등의 사례는 단순히 장식적인 속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억과 상속, 진실성 등의 특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업사이클링 재료를 ‘잘’ 사용하는 것에 관한 질문을 끌어내고 있다
주밍순 (卓銘順) <뮤추얼리즘-의존성> 2022
주밍순이 중시하는 요소 중 하나는 사람과 기물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컵, 주전자 등 기물을 사용할 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온도와 영혼이 전해져 깃든다는 점에서 착안해 공생과 상호작용을 드러내기 위한 도자를 제작했고, 이를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전시장에 펼쳐냈다
제공: 청주공예비엔날레
한편, 본전시와 더불어 진행된 초대 국가 스페인관의 전시 《Soul+Matter》도 진행됐다. 스페인 공예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작업과 더불어, 지역의 기법과 소재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구현한 결과물과 현시대의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친환경적 재료를 사용한 작업 등이 소개됐다. 《청주국제공예공모전》도 함께 선보였다. 여기에는 공모전 파이널리스트 103명의 작업이 전시됐고, 작품공모 부문 대상작인 고혜정의〈소원들(The Wishes)〉도 포함됐다.
‘사물’로서 공예의 가치는 그것을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인 물질과 재료부터 기술의 전승으로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적 징검다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전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문제에서 기인한) 비록, 다수 비엔날레의 이른바 단골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2021 비엔날레의 주제가 도구와 노동 등 공예의 특성에 주안점을 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현시점에 등장해야 할 주제라고 여겨진다. 사유하고 고민하는 것을 넘어, 실천할 수 있는 공예의 가치는 이미 동시대에 급부상하고, 그 입지가 이미 방증하고 있기에. 공예의 실천적 가능성이 널리 알려지고, 그것이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며 확산하기를 바란다.
하도경 기자
토비어스 몰(Tobias Møhl)
〈네스트 보울 컬렉션〉(사진 왼쪽) 2012,〈블랙 트윌 컬렉션〉(사진 오른쪽) 2023
고전적인 베네치아 유리공예 기술과 스칸디나비아 미학을 결합해 작업하는 토비어스 몰은 서로 다른 두 색상의 유리를 융합해 한 덩어리로 만드는 인칼모(Incalmo) 기법과 녹인 유리를 가늘고 긴 가닥으로 늘이고 자른 다음, 뒤틀어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케인(Cane) 기법을 사용해 작업한 결과를 소개했다
이예림〈달 꽃 화병〉 2023
풍요로운 인상을 주는 이예림의 화병은 퇴폐와 사치를 은유한다. 작가는 재료가 변형되어 깨질 때까지 계속 유약을 바르고, 번조 (燔造) 를 반복하며, 유약을 추가한다. 전통적인 옹이 기법과 도자 기술을 토대로 유약의 중첩과 과장된 질감을 제시하며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를 탐구했다
제공: 청주공예비엔날레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전시 전경 2023
올해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는 총 54개국의 862명이 참가했으며, 최병훈 홍익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공예 분야 인사 6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금상은 박성훈의〈Void #12〉, 은상은 홍재경의〈생명, 세상 속으로〉와 이태훈의〈달빛 홑씨(Moonlight Dandelion Seeds〉가 선정됐다
공모전 최종 수상작인 고혜정의 〈The Wishes(소원들)〉 2023
3,000여 개에 달하는 민들레 꽃씨 모양의 금속 유닛을 이어 붙여 섬세하게 작업하는 작가는 수행적이면서도 노동집약적인 작업으로 ‘성실함’이라는 공예의 가치를 드러내 보였다
제공: 청주공예비엔날레
스튜디오 더스댓〈TC램프1〉 2021
‘폐기물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작업은 폐기물의 물질적 가치를 향한 깊이 있는 접근에서 탄생한다. 폐기물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사용 목적보다 커뮤니케이션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소재 문화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다. 소재의 내러티브를 재구성해 기업과 정부의 노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실험실 바깥에서 사용된 적 없는 소재인 레드 머드, 금속 슬래그 등을 매개했다
제공: 청주공예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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