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美術 RE-READ
‘한국화’를 절뚝이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왼쪽부터 1981년 『계간미술』 봄, 여름, 가을호에 편성된 ‘권말 보너스-동양화를 쉽게 아는 용어해설집 상·중·하’
2022년 하반기에는 ‘한국화’에 대한 논의가 개진되는 듯 보였다. 신진작가 및 기획자들이 주축이 되어 아직까지 어디에도 ‘착’ 붙지 못하고 떠도는 한국화의 탄생 배경과 그것이 어떻게 지금 미술 현장에 녹아들 수 있을지를 재고하는 자리가 두루 마련되면서 언뜻 비슷해보이는 ‘동양화와 한국화’의 범위, 지금 시점에서 한국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과거 한국화의 수용 과정도 의논되었다. 이에 기자는 ‘동양화 붐’이 한창이었던 1970년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 발행된 『계간미술』을 다시 살펴봤다.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컨템포러리 아트’에 익숙한 세대는 약 50년 전의 동양화 열풍과 그 안에서 대두된 한국화에 대한 논의를 잊힌 역사처럼 대하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시대의 논의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1976년 겨울, 『계간미술』 창간호 특집기사 제목은 ‘동양화, 현황과 전망’ 이었다. 이구열은 여기에 ‘동양화 부움은 계속될까’ 제하의 글을 싣고, 1970년대 동양화 열풍에 유명화가의 그림값이 5년간 약 10배 이상 상승했고, 구매층의 입수 경쟁이 치열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더불어, “우리의 전통회화 곧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현상은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매우 좋은 현상이다”라는 평을 담았다. 반면, 그는 한국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근대 이후 우리의 회화문화는 재래의 전통 화법으로서의 묵화·채색화와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유화·수채화의 두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에 와서는 그 모두가 한국화로서 존중돼야 정상이다.” 그는 덧붙여 ‘전통회화’이던 동양화가 국제적인 미술 사조 중 하나인 ‘현대 한국화’로 도약하려면 “고법 흉내나 모방의 안이한 낭만주의 또는 반시대적인 풍류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2년 후인 1978년 『계간미술』 8호에는 오광수의 글 ‘세계 속의 한국화-그 문제점과 전망’이 실렸다. 오광수는 당시 문공부가 한국미술 해외 홍보 목적으로 마련한 《현대한국회화 유럽 순회전》이 스웨덴, 네덜란드, 서독, 프랑스 4개국을 돌고 국내에 도착한 당시의 상황을 기술했다. 당시 한국의 ‘주체적인 미의식’을 해외에 알리기 바빴던 관 주도의 전시는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운보 김기창, 천경자, 산정 서세옥 등의 작품을 들고 나가 한국미술의 “국제에로의 진출”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해외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국내 미술계가 표했던 실망감에 대해, 오광수는 “이는 어디까지나 탐색전에 불과한 것”이라 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평가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다소 신경질일 정도로 민감했다는 것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뿌리깊은 사대근성”에서 벗어나 “현대 한국의 전통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유형이 국제적인 미술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신적·조형적인 반성의 계기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전술한 이구열의 주장과 유사한데, 전통회화 양식으로만 ‘다름’을 추구하며 세계적인 호의를 얻고자 했던 당시 미술계의 의식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두 필자의 글을 요약하면, ‘현대 한국 회화’, 혹은 ‘한국화’는 양식적인 특성을 뛰어넘어 독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개념을 담아내는 한국의 그림이어야 했다.
전통 재료를 사용한 그림을 한국화라고 할지, ‘한국 그림’ 모두를 한국화라고 할지, 아니면 아예 한국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지를 단칼에 결정하기에는 위로부터 만들어져 아래로 퍼진 ‘한국화’의 용례가 너무나 다양해져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한국화는 어쨌거나 기존 시각문화가 대중적으로 융성했던 시점에 국제화라는 새로운 열망이 더해져 탄생한 단어일 것이고, 그것을 절뚝이게 만든 건 콤플렉스에 의해 ‘빨리빨리’ 용어를 지어내기에 급급했던 시대적인 착오다. 그렇기에 ‘한국화’는 시각문화에 대한 지금의 열기에 취해 급하게 용어를 만들어내거나, 어떤 개념을 규정짓는 일을 오늘에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된다.
조현아 기자
1978년 『계간미술』 8호에 실린 오광수의 ‘세계 속의 한국화-그 문제점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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