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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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프로젝트 : 2017 ‘정선, 독일에서 그리다’

8.18~30 겸재정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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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저스크 〈정선, 가까이 다가섬 6〉(사진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80×10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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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독일에서 그리다〉는 독일작가단체 ‘쿤스트베어라인64(Kunstverein64)’에서 준비해온 ‘겸재정선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첫 전시이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작가-세바스찬 루드비히(Sebastian Ludwig), 우도 저스크(Prof. Udo Dziersk) 이광 – 3인은 한국 전통미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겸재 정선의 작품들이 자신들에게 미친 수용미학상의 지평을 탐구한다. 또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한국과 독일이 교류하며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의미와 전망을 타진하는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한다. 정선의 화업에 기대어 한국화의 오늘을 가늠해보고자 한 전시이다. 이러한 작업 실현의 폭과 깊이를 최대한 확대하기 위해 독일의 전통적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작가들은 2년여 동안 자신들 눈에 비친 겸재

정선을 예술적으로 제대로 이해, 평가하는 연구조사를 진행하며 작업해왔다. 출품된 작업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세바스찬 루드비히와 우도 저스크는 정선의 작품에서 느낀 미감과 본인들이 추구해온 미감과 정서를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 각자가 매력으로 느낀 정선 작품의 부분들을 전경으로, 그들이 이해한 한국화의 화면구성 원리를 후경으로 두었다. 사물이 던지는 메타포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하고 변용하여 그림 속 의미망을 구축하는 우도 저스크 교수에게 매혹적으로 다가간 정선의 그림 속 메타포는 ‘수묵’의 미적 기능과 표현적인 특징이었던 것 같다. 그는 수묵을 한국화 기법을 수용하는 일종의 매개체로 활용한다. 그래서 저스크의 작품에서 정선의 나무는 서양화의 표현법이 가미되어 묘사되었다. 즉 한국화의 전통적인 나무 표현방식이 그를 통해 서양화법적으로 전달되는 셈이다. 아마도 그가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한국화기법으로 나무를 그려야 한다면, 보여줬을 법한 도상이다. 세바스찬 루드비히 역시 자신이 해온 중층적 기표들의 몽타주 기법을 유지하며 몽타주가 형성되는 배경에 동양적 미감을 가미했다. 그와 함께 자신이 본래 지녀온 독일 특유의 강력한 구조적 역동성에 동양만의 평상심을 상징하는 은유들을 몽타주했다. 이는 한국화에 대한 그의 시각이 특정한 부분이 아닌 한국화라는 그림 자체가 갖고 있는 미감에 매료됐음을 의미한다. 한국화를 접하기 전 그는 독일의 전후 현대미술가에 불과했다. 저스크처럼 이미 작품에 동양적 미감이 녹아 있지는 않아도 그의 내면에는 동양적 미감에 끌리는 개인적 성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이번 작품은 매우 고혹적인 아우라로 한국화를 재해석하였다. 유일한 한국작가인 이광은 오히려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표현기질을 그대로 유지하되, 겸재 정선의 바위와 산세 표현기법을 반복해 분석하면서 정선의 기법을 자신의 표현기법으로 성공적으로 확보해낸 듯하다. 이광의 그림은 왠지 모를 불안함과 외로움이 배어있는 두 독일작가의 작품과 달리, 언제나 확신에 차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전처럼 뭔가 해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선 기법을 자기변용하면서 힘차게 표현했다.

이들 프로젝트에서 돋보이는 점은 동양화 / 서양화에 얽매이지 않는 미술 태도이다. 즉 한국화의 표현방법을 한국화의 ‘정신’이라 전제하는 태도이다. 한국화의 다양한 표현방법을 분석하여 그중 하나를 차용한다. 정선 그림에서 바위 위의 나무를 표현하는 방법을 아름답게 느껴 그것을 자신의 필치로 재창조하고 작품에 접목한다. ‘전통 한국화의 계승’은 한국화 재료를 쓰는 작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화단이든 외국회단이든 작가는 한국화의 전통 안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지점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해석, 접목함으로써 한국화의 명맥을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재료로써 한국화,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에도 일종의 미술정치적 권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한국화는 재료와 교육 받은 기법에 상관없이 한국작가들의 그림 전체를 대표하는 범주가 돼야 한다. 점차 그렇게 되겠지만, 우리에게 이제 오히려 서양화라는 범주는 사라져야 하고, 한국화라는 규정범주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중 전통 한국화의 기법을 차용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화(기존 서양화, 전통 한국화를 포괄하는)는 면면히 전진하고 계승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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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성원 |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