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A PORRAS-KIM

다중적 시선

ARTIST REVIEW

갈라 포라스-김은 1984년 태어났다.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로 LA와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UCLA에서 미술과 라틴아메리카학 학사 학위, CalArts 미술학 석사 학위, UCLA 라틴아메리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Entre lapsos de historias》 (국립멕시코대 현대미술관, 2023), 《Gala Porras-Kim: The weight of a patina of time》(UCLA 파울러 뮤지엄, 2023), 《Precipitation for an Arid Landscape》(아만트 재단, 2022), 《Open House: Gala Porras-Kim》(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2019) 등이 있으며, 제3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2021), 제13회 광주비엔날레(2021), 휘트니 비엔날레(2019),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2017), 해머뮤지엄(2016) 등을 비롯한 유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이 남긴 흔적이 현대의 맥락에서 재정의되는 구조와 방식을 탐구하는 갈라 포라스-김을 향한 국내외 미술계의 관심이 뜨겁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3》과 리움미술관 M1 프로젝트의 일환인 《갈라 포라스-김: 국보》에 동시에 참여하며 ‘뮤지엄’의 개념이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세분화된 한국에서 두 제도적 공간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선보이기도 했다. 문화 기관이 소장한 유물의 굴곡진 삶에서부터 해독 불가능한 언어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연구 대상과 관심사를 확장해 온 포라스-김이 앞으로는 어떤 예술적 상상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다중적 시선

임수영 | 미술사, 독립기획자

세 폭의 대형 드로잉으로 구성된 갈라 포라스-김의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2023)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유적지를 각기 다른 시점에서 포착한다1 흑연으로 빼곡히 채운 화면은 고인돌에 이미 오래전에 묻힌 사람의 시선에서 본 어둠을 연필로 묘사한 풍경은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고인돌의 현재 상황을 그리고 색연필로 채색한 드로잉은 오랜 시간동안 고인돌 표면에 자라고 있던 이끼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인 갈라포라스 김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선보인 이 신작은 세월에 따른 변화의 속도가 아닌, 시간의 흐름이 만드는 무게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신작의 제목이 같은 해에 작가의 모교이기도 한 UCLA 대학교 파울러 박물관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제목으로 동일하게 등장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2 유물이나 유해, 유적지 등 문명이 만들어 낸 흔적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보존, 분류, 전시, 설명하는 체계를 탐구해 온 그의 작업이 은유하는 무게는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고대의 오브제들이 현대의 문화 기관이나 문화유산의 시스템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구축되는 정보의 지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이 정보의 층위를 다중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포라스-김의 예술을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182.8cm 2023

영원한 삶
갈라포라스-김에게 사물은 살아있는 것으로, 나름의 삶이 있다. 그는 유독 기능과 의미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사물들에 집중한다. 그 이유는 생명과 죽음을 경외하며 제작된 고대 유물의 경우, 오랜 시간 매장되었다가 출토되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뮤지엄의 소장품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3 때로 이 소장품들은 대대적으로 복원되거나 박물관에서 퇴출당하고 유물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는 등 굴곡진 시간을 보낸다. 이렇듯 고대인들의 뜻과 무관하게 동시대적 필요와 욕구에 의해 옮겨지거나 정착하는 사물들을 추적하며 작가는 문화와 역사를 보존한다는 명분 아래 지금까지 의심받지 않았던 행위와 정책들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학제간 경계를 가로지르며 연구하고, 주요 연구 및 소장기관과 의견을 교류하며 관련 규정과 법을 모색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실천으로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려는 포라스-김의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소실되거나 변질된 유물의 (비)가시적 또는 (비)물질적 정보를 탐구하는 일은 마치 조각난 파편들을 하나의 형태로 맞춰보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은 날카로운 분석만큼 상상력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작가는뮤지엄이라는 제도적 기관을 비판이나 부정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작업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끌어들이고, 함께 고민하며 상상하는 협력자로 간주한다.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된 바 있는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 (降水)가 대표적이다. 하버드대 부속 피바디 박물관에는 고대 마야인들이 비의 신 '차크'가 머물다 가는 신성한 장소로 여긴 천연 동굴 '세노테(cenote)'에서 발견된 유물 3만여 점과 유해들이 소장되어 있다. 작가는 비의 신으로부터 멀어진 채, 건조한 환경에서 보존 및 전시되고 있던 소장품의 제의적인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떨어져 나온 먼지를 모아 코펄 나무에서 나온 수지와 섞어 새로운 오브제를 제작했다. 이 오브제를 전시하는 기관들은 유물이 비의 신과 다시 교신하게끔 먼지를 포함한 덩어리가 빗물과 만날 수 있는 설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가습 효과를 통해 '비를 내리게' 했다면, 다른 미술관 큐레이터가 주기적으로 물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또는 건물 천장을 뚫어 그사이로 실제 비가 떨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건조한 풍경'에 '강수'를 조성한 바 있다. [/av_textblock] [/av_one_full][av_one_full first min_height='' vertical_alignment='' space='' custom_margin='' margin='0px' padding='0px' border='' border_color='' radius='0px' background_color='' src='' background_position='top left' background_repeat='no-repeat' animation='' mobile_breaking='' mobile_display=''] [av_image src='https://monthlyart.com/wp-content/uploads/2024/05/104-109-작가_갈라-포라스-김-5.jpg' attachment='87394' attachment_size='full' align='center' styling='' hover='' link='' target='' caption='' font_size='' appearance='' overlay_opacity='0.4' overlay_color='#000000' overlay_text_color='#ffffff' animation='no-animation' custom_class='' admin_preview_bg=''][/av_image] [av_textblock size='' font_color='' color='' av-medium-font-size='' av-small-font-size='' av-mini-font-size='' custom_class='' admin_preview_bg='']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방법론으로서의 드로잉
연필이나 흑연 색연필을 이용한 드로잉은 갈라포라스-김을 대표하는 매체다.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활용 가능한 재료로 완성한 평면 작업을 전통적인 ‘유화’와 구분해 ‘드로잉’으로 간주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드로잉은 건축, 의학, 식물학, 고고학 등 미술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다학제적일 뿐만아니라 스케치나 습작 등을 아우르며 미완성 상태를 포용한다. 주로 실제 유물이나 사진을 바탕으로 세밀한 묘사를 하는 작가는 이 재현과정이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드로잉의 대상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고 고백한다.4 간과하기 십상인 유물들의 미세한 특징을 파악하며 그리는 수행적인 행위는 고도로 전문화된 예술가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적 사회의 주요한 가치로 부상한 즉각성(immediacy)에 대항하며 ‘느린 시간’을 확보하는 듯하다.5 이렇게 완성된 포라스-김의 드로잉은 고고학 도관을 연상시키는 흑백 소묘와 여러 사물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하고 채색한 버전으로 구분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각기 다른 형태와 성격, 크기의 사물들을 선반 위에 정렬하거나 병치하는 방식으로 색인 (indexing)하는데, 이는 책가도의 독특한 화면 구성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드로잉은 작가에게 배움의 수단이자 표현 매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정리하고 구조적 질문을 시각화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서부 멕시코 세라믹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연작을 포함해 각기 다른 지정학적 배경에서 출토되었지만, 최근 복원된 유물 11점을 한데 모은 작품이나 한때는 소장품이었으나 처분된 유물 14점을 선별해 그린 드로잉이 대표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리움미술관 전시 <갈라 포라스-김:국보>에서 선보인 <국보 530점>의 경우 남한과 북한이 각각 국보로 지정한 문화유산을 다시 합침으로써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주체가 각자의 논리와 필요에 따라 문화유산을 지정하고 관리해 왔음을 환기한다. 작가는 드로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계로 선반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유물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화면 속을 유영하도록 한다. 하지만 선반 위에 임의로 놓인 사물도 언제든지 꺼내 재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늘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국보 530점〉(부분) 종이에 색연필, 플래쉬 물감 각 181×300cm 2023
제공: 작가, 커먼웰스 앤 카운슬, 리움미술관

〈휘파람과 언어 변용〉(부분) 사운드, LP 앨범 30×30cm 2012
제공: 작가, 커먼웰스 앤 카운슬, 서울시립미술관

불/소통의 언어
언어는 갈라 포라스-김이 작업 초기부터 천착해 온 주제다. 그는 특히 판독 되지 않은 언어에 관심을 두고 우리가알수없는정보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작업을 통해 묻는다. 예컨대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래 과거를 위한 일>(2017)전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휘파람과 언어 변형>은 레코드판으로 제작된 사운드 작품으로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 선주민들이 사용하는 음조기반의 사포텍(zapotec) 언어를 다룬다.6 16세기부터 그들은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에 저항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사포텍어를 구사하며 휘파람으로 단어를 모방하고 자신들의 대화를 음악으로 위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 구전으로만 내려오다 멸종위기에 처한 사포텍어 휘파람으로 기록하는 시도를 통해 포라스-김은 작품이 동시대미술의 맥락에서 벗어나 인식론적 도구로도 가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학생 때 지역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면서 건설 현장에서 상당수의 멕시코 인부가 휘파람으로 사포텍어를 사용하는 것을 목격하며 흥미를 갖게 된 작가는 UCLA에서 라틴아메리카학으로 석사 과정을 밟으며 학문적 관심사를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아직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한 롱고롱고 문자에도 주목하며 2010년 초반부터 텍스트 연작을 지속하고 있다. 이스터섬에서 발견된 롱고롱고 서판에 새겨진 새의 부리, 나무, 태양의 상형 문자를 소묘로 재현하고, 각각의 문자를 분리한 후 새로운 형태로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보는 것이다.

‘그 사물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를 마음에 들어 할까?’ 한 인터뷰에서 포라스-김은 묻는다.7 뮤지엄 소장품이 소개 및 정보화되는 기존 방식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 질문은 기관에 실질적인 행동과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줄곧 기관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자신이 연구하며 발견한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노트 한 장 분량의 편지로 정리된 글은 포라스-김이 세계 유수의 뮤지엄과 소통하며 지속한 논의의 지점을 드러내며, 동시에 드로잉이나 설치로 구현된 연계 작품에 맥락을 더하기도 한다. 해독 불가능한 언어 그 자체에서 유물을 정보화하는 동시대 기관의 언어 체계로 탐구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죽은 자와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2022)은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한 신원 미확인 유해가 인간성이 박탈당한 채 분류코드로만 식별되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영혼과 소통하는 주술행위를 통해 고인에게 자신들의 유해가 박물관이 아닌 어디에 묻히기를 바라는지 묻고 마블링 기법으로 그 위치를 시각화한 이 지형도는 사후세계의 영혼들과 소통할수있는적합한 언어와 그 방법을 모색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갈라포라스-김의 예술적 실천은 어떻게 언어화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작품은 무수히 많은 조합이 가능한 문자로 존재하며 우리와 먼 후대가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내길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와 일부 매체에서는 작품의 원제인 ‘The Weight of a Patina of Time’을 ‘세월의 녹이 슬어가는 무게’ 또는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로 혼용하고 있지만, 본고에서는 미술관 가이드북에 명시된 국문 제목으로 통일했다
2 2023년 7월 9일부터 10월 29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갈라포라스-김이 지난 7년 동안 선보인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했다
3 본고에서 ‘뮤지엄’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뜻한다
Ricky Amadour An interview with Gala Porras-Kim Riot Material 2022. 1.5
Anna Kornbluh Against Anti-theory e-flux 2024. 2.9
6 사포택에 관한 작가의 연구는 다음 논문 참조. Gala Porras-Kim Whistling and Language Transfiguration: Zapotec Tones as Contemporary Art and Strategy for Resistance Hispanic American Historical Review 96 (2016) pp. 233-237
7 갈라포라스-김 (인터뷰: 사물의 사후세계와 행복에 관해) https://13thgwangjubiennale.org/ko/minds-rising/pomas-kim/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부분) 종이에 잉크, 마호가니 액자와 편지 248×184×5cm, 29.7×21cm 2022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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