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YEOK JONG

ARTIST REVIEW
9.3~11.5 오픈스페이스 배

리혁종은 1975년 출생했다. 홍익대에서 회화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문화기획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방랑기와 독학기를 거치면서 공공미술과 작가 커뮤니티 ‘가난뱅이모임’ 등에 참여하였다. 사적인 공공미술인 〈이카루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와 관련하여 개인전 2009년 〈목숨을 건 도약_이카루스, 생태주의와 자본주의 사이를 날다〉, 2010년 〈마이너스 자본주의 숍〉, 2011년 〈넝마철학조각가 리씨와 그 후원자들의 21세기〉를 발표하였다. 이후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의 한 지역인 도봉구 방학동에서 동료들과 지역기반 공동체 예술을 탐색 후 여러 지역의 창작공간을 순례하며 레지던시 표류기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의 개인전으로 2018년 〈자아제국의 박람회〉, 2019년 〈2 Piece_두 조각의 세계를 잇다〉를 발표했다. 작가는 아방가르드와 초기 공산주의 예술 이념 등을 참조하여 자본주의 바깥 또는 너머로의 새로운 예술론을 존재론적 문화론적으로 실험하며 써가고 있다. 2022년 올해 기획 초대전 〈부산물〉(9.3~11.5, 오픈스페이스 배)을 통해서 예술의 새로운 협력 기반을 모색하고 있으며, 2022년 11월 19일에 열릴 경기도 생생화화전에서 〈I’tems_예술/생존 게임을 활성화하는 장치들〉이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작자로서의 작가, 리혁종
진세영 | 공간 힘 큐레이터

리혁종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선보인 작업들로 이미 충분히 자신을 알린 작가다. 캠퍼스 건물 벽면에 작가 본인의 몸을 매달아 전시한 행위(〈역사 연구〉, 2003), 땅속에 묻히기를 자처한 일들(〈자기 설치1·2〉, 2003)이 시작이었다. 이 작업들은 당시 ‘엽기’ 게시판에 ‘짤’로 돌아다니는가 하면, 방송국의 취재를 타기도 한다. 당시 꽤 영향력 있는 인사로부터 협업 제의도 받았다고 한다.

나름대로 파격적인 퍼포먼스-설치-조각으로 주목을 한 차례 받았으나, 그 스포트라이트를 따라 직행했다면 내가 리혁종의 리뷰를 쓰는 호사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리혁종을 당시 ‘유망주’로 띄운 이 연작은 하필 미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졸업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미술(계)에 작별인사를 고하던 것이었다. 사회의 눈치 없는 시선을 뒤로하고 그는 방황과 우회로를 자연스레 택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보드게임방, 길거리 홍보, 사극 엑스트라 배우 일, 건축현장 막일꾼 생활을 전전하다가 어느 사이엔 한국과 중국 사이의 망망대해에 떠있는 대구잡이배에 올라타 있었다. 하지만 이 방황과 고난은 그가 다시 미술로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 리혁종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다소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후 작업들이 결코 고난을 피해 편안함을 찾아 돌아온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2007년, 인천 부평구청에서 열린 설치미술제 〈Ghost’s Pharmakon〉에서 선보인 그의 ‘복귀’ 작업은 주변 식당에서 조금씩 얻은 밥을 유리창에 알알이 붙인 작업, 〈날개 달린 사람〉이다. 고기잡이배의 노동에 비하자면 편한 것이라 하겠으나, ‘탁발’의 형식으로 밥을 얻으러 다니고 (작품에 쓰려고 한다며 식당 주인에게 미술을 설명했을 지난한 과정은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빌어온 밥의 쌀알 한 톨 한 톨을 정성스레 붙였을 노고를 생각하면 작가의 수고스러운 노동은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리혁종은 무엇을 위해 다시 돌아왔던 것인지……. 리혁종은 내게 그 작품이 빚어낸 풍경을 투명한 눈망울로 설명해준 적이 있다, 햇빛이 말라붙은 밥알을 통과하면서 빛이 공간에 굴절되었고, 아름답고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졌지요…….
그 후에 이어진 그의 작업 양상은 지역 내 커뮤니티 활동에 기반한 것으로 각종 만남·관계형성·부대낌·조율 등이 주를 이루었다. 미술과 한 차례 작별을 고하고 다시 돌아온 그였기에 그는 미술의 경계 지점에서 일종의 이방인 포지션을 자처한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하나가 미술의 자기 부정성이다. 리혁종 역시 ‘미술 개념 자체를 회의하는 미술’의 액션을 제법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리혁종에게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미술(계)-탈영토화 행위 자체에 있다고 보진 않는다. 리혁종은 나름대로 미술의 경계 지대를 정교하게 디뎌보고 지내보면서 (그는 실제로 텐트를 들고 다니며 생활하는 데에 제법 숙련된 사람이다) 나름대로 재영토화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마치 점 찍고 돌아왔다는 한국 드라마의 전설적인 복수 서사 전략 캐릭터처럼). 리혁종은 부정성을 그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과 투입 과정을 통해 재조직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커뮤니티 ‘아트’, 공공‘미술’ 등의 이름마저도 포기하고 아예 지역 공동체에서 난로를 만들거나, 지도를 만들거나 하는 시간을 보낸 바 있다. 현장과 상황에 따라 미술가임을 지우고 포기하거나, 혹은 때에 따라 작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작업으로 개입하거나 참여하는 등 구체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며 환경을 구성해오고 있단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 양상은 늘 번거로움과 고생스러움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이러한 경향성은 그가 주요한 주제로 삼고 있는 생태주의와 정치경제학이라는 두 가지와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요한 주제 의식으로 형성된다.
생태주의와 정치경제학이라는 거대한 말들이 갑작스레 끼어드는 게 아닌가 싶지만, 리혁종을 알아가는 중요한 열쇳말이다. 이 두 가지를 작가에게서 찾아내는 것은 그가 나고 자란 환경에서부터 읽어내도 되고, 대학 시절을 기점으로 하여도 무방할 정도다. 가령 대학 시절에 리혁종은 지인을 통해 《녹색평론》을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생태주의 사상을 미술 현장의 재료의 문제, 제작된 작품이 쓰레기가 되는 현상 등에 적용하며 골몰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작가에게 엄격한 윤리적 태도로 자리매김해 있는데, 버려진 목재 나무로 목각 작업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 있다. 정치경제학이란 주제는 좀 더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얽혀 있는데, 예술가라는 정체성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지위, 시장에서의 포지션 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9년의 전시 〈이카루스-목숨을 건 도약〉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된다.
작품이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건 도약’을 통해 비로소 작품을 시장에 내어놓는다는 마르크스의 서술을 통해, 리혁종은 작품의 경제적 가치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그 가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골몰하고 있다. 동시에 비자본적 사물을 가공하여 상품 작품을 만들고 거래하여 자본을 취득하고, 다시 그로부터 공동체를 형성, 도모하는 데 활용한다는 아이디어가 내재해 있다. 태양 가까이 날아서는 안 되는 이카루스의 날갯짓으로 시각적으로 제시된 작업은 욕망하되 불안정한 작가의 초상, 그리고 그 작가가 몸담은 시스템 속의 자연화된 구조원리를 충분히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성은 2010년의 〈자본주의 마이너스 숍〉, 2011년의 〈넝마철학 조각가 리씨와 그 후원자들의 21세기〉를 경유하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작품의 직접적인 판매 행위를 진행하거나, 인간-자연이란 이분법적 구도에 대한 목각-형상화를 통해 질문을 거듭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지속 속에서 앞서 언급했던 리혁종의 ‘재영토화’ 액션이 두드러지는데, 세계에 대한 리혁종의 감각적인 재구성으로 그의 작업에선 ‘개념도’나 ‘세계관’이 본격 등장하며, 복잡다단한 수준으로 그의 이력과 과거, 현재의 고민이 상호 연결, 확장된다.

〈영도자〉(사진 왼쪽)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 11분 19초 2022, 〈영도자 코스튬〉 그물, 그물니트 의상, 해안가에서 수집된 폐기물, 미역, 목각과 펠트, 천 가변크기 2022
〈자기 설치 시리즈 3_역사 연구〉 4시간 수행 2003
〈날개달린 사람〉 주변의 식당들에서 얻은 밥알을 유리창에 붙인 설치작업 부평구청 설치미술제 〈Ghost’s Pharmakon〉 설치 전경
〈우주농_약수와 소변의 사이클〉 서울 도봉구 방학동 우주농 텃밭 2012

생태주의 공작을 위한 은밀한 만남
지금 부산의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부산물〉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선상의 재점화가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전시의 기획자 김정훈은 리혁종의 ‘레지던시 표류기’ 시절의 동료로부터 리혁종에 대한 어떤 묘사를 전달받는다. 김정훈은 어떤 말을 들었기에 그 길로 리혁종을 찾게 된 것일까? 이 당시를 목격한 유경혜에 따르면 (갑자기 새로운 인명들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유경혜도 마찬가지로 배에서 일하는 기획자다), 자전거를 타며 생활, 인근 카페를 다니며, 그늘 좋은 벤치에서 나무 조각을 하는 작가가 있다? 그러니깐 이것은 아침에 낚시하고 오후에 양을 몰며 저녁에 비평을 한다는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일과 생활……. 오픈스페이스 배의 기획자들은 마침 새로운 항해를 모색하기 위해서 전시기획의 일상화, 공간 운영의 지속성, 새로운 노동으로 밀어붙여야 할 예술적 태도 등을 고민했고, 리혁종은 그런 맥락에서 적합한 도모자가 될 수 있었다. 때마침 한 지역에서의 레지던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배로부터 섭외를 받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서사의 시작인가. 리혁종은 부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품으며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또 갑자기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진행하는 ‘내-일의 항해’라는 영도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부산에 한 달 눌러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마침 부산비엔날레도 열린다.
기획자들과 리혁종은 그렇게 부산의 영도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비엔날레 현장을 기웃거리며, 작품과 각종 기록물을 옮겨와 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산비엔날레의 영도 전시장에서는 비엔날레가 열리기 전에 그곳에서 미리 작업을 선보이고 돌아오기도 했다(해당 작업은 〈부산물〉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수상한 업적을 쌓고 있는 이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우리가 해놓은 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리혁종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오픈스페이스 배의 2.0 체제를 선언하면서 발생한 것인데,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에 걸맞게, 그리고 역시나 복잡하고 어려운 부산-전시-현실 실정에 어울리게, 작가의 세계관엔 직관적이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심상이 양가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커뮤니티 아트, 생태주의와 정치경제학 등의 어휘로 상당한 축약을 통해서만 밝히는 것이 가능한 정도인데, 전시는 작가의 이력이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개미굴’ 같은 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 지역-현장에 침투력 높은 작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란 거듭 사후적으로, 이후로 갱신되는 문제로 불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발자취는 나비효과라는 비유가 무색할 정도다.
그러나/그러니 지금까지의, 오늘의 리혁종을 만나보려면 〈부산물〉만큼 적절한 전시가 없을 것이다. 이 전시야말로 리혁종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전시 자체가 일종의 지역-거점 기반형 전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종의 진지전 전술을 연상케 하는 것이 특색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지역으로 특파된 생태주의 공작자로서의 작가 리혁종이 거기에 있다는 말이다. 공작자로서의 작가라는 개념은 리혁종과 대화를 나누며 때론 흐릿하게, 때론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것 중 하나다. 공‘직’자로서의 작가라는 것도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점 하나 달리 찍으면 다른 캐릭터가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하방이나 위장취업 같은 오래된 시절의 실천 전략이 작가에게 계속, 더욱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창발을 마주할 표류를 기다리며
생태주의라는 사상, 일상-예술에 대한 경계 같은 말들은 새로운 워딩이 아니고, 또 그것이 통용되어온 세월에 따라 진부하거나, 온건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말들이 어떠한 무대에 올랐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령 한국에서 철학 전공자가 하이데거를 공부하고 데리다를 읽는 것은 제법 자연스러운 일이다. 슬로베니아에서 하이데거에 대한 논문을 썼던 슬라보예 지젝은 이후에 데리다 저작 번역작업까지 했는데, 슬로베니아 당국은 이로 지젝을 ‘위험한’ 철학자로 간주한다. 지젝은 결국 추방당해 프랑스로 갈 수밖에 없었고, 비로소 라캉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적인 철학자로 거듭난다.
오늘날 동시대미술의 현장에서 리혁종이 공작 활동을 더욱이 예리하게 펼쳐야 하는 맥락은 이런 지점에 있다. ‘배’에 올라타 동료들을 만들어나간 ‘부산 물’에서의 ‘항해’는 리혁종의 또 다른 작업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전환되는 표류 속에서, 과거에 불발되었을 미지의 다이너마이트에 다시금 불을 붙일 순간순간들을 호시탐탐 공작자로서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길 빈다. 내게도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리혁종의 작업들을 살펴보면서 문득 ‘신유물론’으로 명명되는 분야, 내가 지금껏 줄곧 미루어왔던 것이기도 한, 그것을 공부해봐야겠단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왠지 리혁종은 그쪽으로도 공부가 탄탄히 되어 있을 것 같다. 〈부산물〉의 아카이브 섹션에 마련된 그의 자료들은 비평가가 기존의 관습적인 비평 언어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다. 비평가에겐 아마 유령 같은 스산한 악몽이 될 것이다. 이미 작가 스스로 탁월한 정리와 정확한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원에서 비평가에겐 비평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할 것이다. 오픈스페이스 배의 아티스트 토크에서 리혁종을 독해하는 방식이 그리하여 ‘해체’였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 된다. 이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이 리혁종을 재영토화할 차례가 되었으면 싶다.

〈부산물〉 오픈스페이스 배 전시 전경
〈아카루스 프로젝트 재단화〉(사진 왼쪽) 패널 위에 아크릴, 유화, 폐목에 조각, 자연목 가변 설치 244×244cm 2021
〈이카루스의 비행_이카루스 프로젝트 개념도〉(사진 오른쪽) 폐합판 위에 유화 83×3×204cm 2021
〈이카루스 프로젝트〉회화, 조각, 자료 가변 설치 2019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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