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Minus
2022.08.05. – 09.25. 윤선갤러리
윤규홍 | 오픈스페이스 배 아트디렉터
한지석 〈깊은 주의〉(사진 왼쪽) 린넨에 유채 200×270cm 2017
박인성 〈film070〉, 〈film071〉(사진 오른쪽) 일포드 코튼 용지 위 피그먼트 프린트, 핀 고정 138×110cm 2022
박인성, 이창훈, 한지석의 〈마이너스〉는 세 개의 개인전을 한 장소에 묶어놓은 것 같은 삼인전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작가별로 모아놓은 작품 배열에서 다른 작가의 작업으로 다가설 때, 관람자가 그곳에 흐르는 새로운 공기에 적응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 관객들이 보기에 그렇게 친절한 전시는 아닌 덕분에, 작품을 받아들이는 첫인상의 범위는 넓고 자유롭다. 해석의 편차 구간을 넓게 둠으로써 참여 작가들의 작업 정보를 많이 가지지 않은 관람자들에게 착각을 일으키게끔 하는 설정이다. 일부러 잘못된 사실을 흘리는 박인성의 사진, 추상회화로 보이는 한지석의 사실 묘사 회화, 그리고 평범한 사물을 다르게 나타낸 이창훈의 설치와 영상 작업은 이 삼인전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세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시각적 속임수이다.
의도적으로 교란한 해석의 이중 코드화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며, 이 또한 〈마이너스〉 전을 바라보는 많은 시각 중 하나이다. 전시를 준비한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시는 제목 마이너스가 상징하는 그대로, 동시대 미술에서 덜어냄의 미를 강조했다. 기획자 이진명은 마이너스가 가지는 의미를 제시했다. 마이너스를 추상적 공간에서 절대적 공간으로, 미학적 영역에서 도덕적 영역으로, 서구 문화에서 동아시아 문화로 인식의 전환을 이루는 연산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서술은 미학과 미술사의 일정한 수준에 닿은 감상자 집단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비친다. 기획자의 의도는 전시로 펼친 상태를 설명하기보다 한 차원 격이 높은 해석을 시연하는 일에 맞추어졌다.
예술에서 뺄셈은 정치와 경제 또는 과학이나 법 제도에서 그런 것처럼, 결집의 긍정적 가치가 있다.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모자람이 결핍과 단점이 아니라 진보와 개선의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던 때는 서구에서 1750년부터 1850년에 걸친 모더니즘의 확립기이다. 역설적으로 양적인 면모의 급격한 팽창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반(反) 명제가 가진 효용에 눈을 뜬 사회는 자연스럽게 제도별로 더함과 뺌의 균형을 맞추어왔고, 그 과정은 근현대미술에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양상을 하나의 전시에 투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마이너스로 빠진 부분을 메우는 이론이 미술에서 수용이 가능하거나 통용되고 있을지라도, 대전제가 그 아래에 제시된 현실과 딱 들어맞을 수는 없다. 여기 세 명의 작가도 하나의 정언 명령 아래에서 창작 활동을 벌였을 리 없다.
박인성이 시도하는 작업은 사진이라는 발명술이 애당초 가졌던 기록 매체의 성격과 예술 잠재력에 앞서 품은 환상의 마력을 언급한다. 시각예술의 역사에 자신의 존재를 새길 여지를 찾는 작업은 예술의 역사를 정보 매체 발달사의 일부로 보려는 랜슬럿 호그벤(Lancelot Hogben) 식의 교양 과학적 전통과 맥이 닿는다. 언론 매체에 실린 사진 이미지를 그림에 옮기는 한지석의 회화는 추상 단색화로 오해받을 만한 기법을 진전시켜 왔다.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일과 잊고 싶은 일은 당파성에 의해 둘로 나뉜 쌍둥이이다. 작가는 이 양자를 중재하기 위해 숨김과 드러냄을 울트라마린 색조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 신작 “한강”을 포함하여 영상과 입체 작업을 선보인 이창훈은 모든 작업에 세계 내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시도했다. 압축은 조형의 텍스트가 되기 위해 여러 과정을 생략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압축은 걸러지고 남은 부분을 부각하기보다 빠진 부분에 담긴 진리나 아름다움과 윤리적 정당함을 각성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세 작가의 작업을 간략히 살피면, 그들 간에는 원칙이나 주제를 공유하기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사회과학의 제반 영역에서 다루는 비교문화론은 복수의 대상이 가진 동질성과 차이를 따로 분리하는 절차이다. 이런 솎아냄은 곧 전시의 주제에 다가선다. 우리는 모더니즘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와 부정도 모더니즘의 한 양상이란 점을 안다. 〈마이너스〉는 근대성의 꼭대기에서 미술을 조망하는 작가들과 기획자의 야심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전시다. 그것은 에드워드 실즈(Edward Shils)의 관점을 빌리자면, 지금의 범속한 미술 문화에 저항하여 진선미의 합일에 의한 고귀한(superior) 문화 생산물로 실현하려는 야심이다.
이창훈 〈1 frame〉(사진 왼쪽) 단채널 영상, 1프레임 반복재생 2011, 〈탑〉(사진 오른쪽) 공기포집기, 포집한 물, 그릇, 목재 가변크기 2021
※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전시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전시 관람에 관해서는 각 기관에 문의 바랍니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