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땅속 그물 이야기
2022.08.11. – 10.23. 아르코미술관
김주옥 | 전시기획, 미술비평

황선정 〈탄하무_ 춤의 시간들〉(사진 왼쪽)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 13분 2022

아르코미술관에서 기획한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땅속 그물 이야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오프라인 전시장에 들어서니 최근 2~3년 동안 많이 다루어진 전시 주제들이 총망라된 느낌과 함께 관련 담론들을 더 심화시켜 보려는 게 기획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환경, 생태계, 비인간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분법적 경계를 와해시키고자 하는 노력, 다수의 우주론을 따르며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들이 라투르, 해러웨이, 브라이도티 같은 이론가들의 의견에 빗대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담론들을 염두에 두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해러웨이식 발상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아르코미술관에서 기획한 바대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이 연출됐다. 사변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 짓기(worlding)’를 만들어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 인식과 예술적 실천 방법에 변화를 촉구한다는 기획 의도대로 말이다. 특히 제1전시실의 ‘미지와 야생’ 섹션에서는 마치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얼핏 보면 상관없을 것 같은 기술시대의 정신적 요소를 이야기하며 야생에서 있을법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간 속에 끌어들인다든지 시간성을 초월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함께 경험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때로는 믿고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감각하기 위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비물질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 디지털 기술 시스템을 사용하는 우리는 화면이나 액정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가시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제2전시실의 〈변이 세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보이는 것 저변에 깔려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사유하는 사변적 행위는 현실을 넘어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땅속 그물’이라는 단어를 전시 제목에 넣은 것도 아무래도 우리가 볼 수 없는 땅속에 그물처럼 얽혀있는 것들에 대해, 연결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로운 상상을 통해서 복잡하게 연결된 세계를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가상 전시 〈균사체의 정원〉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가상의 마이크로 세계를 나타낸다. 내가 땅속을 탐험하며 가상공간을 여행하는 설정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들을 또 다른 실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상상만이 아니라 그 상상적 요소를 감각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균사체의 정원〉은 〈통곰팡이균류의 정원〉, 〈자낭균류의 정원〉, 〈담자균류의 정원〉이라는 총 세 가지의 정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세 개의 정원은 현미경으로 무언가를 크게 보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로 들어갈수록 또 다른 세계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설정처럼 새로운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세계는 우리 인간의 현실 세계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층 그 표면 아래에서 반응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그 반응하는 것들이 더 깊은 땅속에 미세한 작용으로 그칠 수는 있지만 작은 반응이라도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을 확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작은 것들도 더 작은 세계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임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해석은 ‘올리곱티콘(oligopticon)’ 1과 비슷하다. 라투르가 만든 개념인 이 올리곱티콘은 그리스어 ‘oligo’와 ‘opticon’을 합친 단어인데 올리고는 소수, 지극히 작은 것들을 의미한다. 올리곱티콘은 전체를 조망한다는 의미의 판옵티콘(panopticon)과는 반대로 아주 미세한 것들을 고려해 보는 방식이다.2 그리고 어떤 구조 안에서 서로 얽혀있는 행위자들이 연결망을 형성한다는 측면에 주목한다. 세계는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많은 변이들 속에서 모든 존재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가변성을 갖는다.
라투르는 2004년 〈파리: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웹프로젝트를 만들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라는 도시는 대체로 에펠탑이 빛나고 있는 여행 엽서 이미지로 연상되지만 실제 도시는 그 이미지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것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하나의 도시는 우리가 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일깨워준다. 그의 프로젝트는 땅을 경계로 보이는 것과 땅속 보이지 않는 것들을 구분하며 땅속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마치 지하철 노선도와 같은 모습을 한다고 보았다. 땅속의 뿌리들이 잔뿌리를 내리고 새롭게 뻗어가는 복잡한 구조를 묘사하는 것이다.3
온라인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은 오프라인 전시장의 비가시적인 것의 가상화를 물질화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상화해서 풀어낸다. 상상의 가상화라 불러도 좋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은 가상화를 통해서 시각화되고 체험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런데 그 가상이 현실에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 이 체험을 이어나가다 보면 지금 체험하는 것을 통해 나는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고 지금 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1. 올리곱티콘은 부뤼노 라투르와 에밀리 에르망의《파리: 보이지 않는 도시(Paris: Ville Invisible)》(Paris: Les Empêcheurs de penser en rond et Le Seuil, 1998)에서 판옵티콘적이 아닌 새로운 보기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다
  2. 김주옥 〈올리곱티콘과 행위자 : 도시 공간 체험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사연구》 42 (2017, 12) pp.7~8
  3. 위의 글 pp.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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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K.(팩)과의 협력기획으로 제작된 온라인 전시 〈균사체의 정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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