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l NEW YORK

New Museum
Triennial 2021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 속에서 개최가 불확실했던 제5회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SOFT WATER HARD STONE〉이 3개월간의 전시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월 말 폐막했다. 미국에서 휘트니 비엔날레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내는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는 올해에도 새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세상에 선보였다.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신진작가 발굴에 중점을 둔 이번 전시에는 23개국, 40명의 작가 및 콜렉티브가 참여했고, 수공예적 작업방식과 모노톤의 차분함이 짙게 깔린 전시장에서 작가들은 계층갈등과 인종차별 등 사회정치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시 큐레이터인 자밀라 제임스의 언급대로 “벼랑 끝에서 어떻게 다시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있는지를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 전 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 소개하는 제5회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는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펜데믹으로 봉쇄되어 있는 ‘록다운 세대’ 작가들을 세상 밖으로 초대한 전시로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크다. 뉴 뮤지엄 입구에 설치된 Samara Scott 〈Gargoyle (Lonely Planet)〉 2021 사진:Suk Ganahl

21세기의 아르테 포베라

서상숙 l 미술사

오렌지색의 일인용 텐트가 벽에 기대어 세워진 콘크리트판 위에 설치되었고 안에는 전구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오렌지색 전선이 곱게 감겨 있다. 빛을 제공하고 안과 밖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다.

젠트리피케이션과 건물이 상징하는 사회적 계급을 주제로 작업하는 흑인 작가 크리스타 클락(Krista Clark, 1975~, 미국)의 작품 〈Annotations on Shelter 3〉(2021)이다. 이 단순한 텐트 작품은 오렌지색이 상징하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격리의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들어가 숨을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소외의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제5회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가 지난해 10월 전 세계를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무시무시한 역병, 코로나19 팬데믹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어렵게 열렸고 다행히 3개월이라는 전시 기간을 무사히 채우며 1월 말 폐막되었다.

지난 2020년 미술관들이 전례 없는 셧다운에 들어간 후 봄에 열리던 트리엔날레를 가을로 옮기고 과연 언제, 얼마간 문을 열 수 있을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운송될 수 있을지 등등 불확실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트리엔날레 2021전은 그야말로 “코로나 팬데믹전”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출품작 역시 그 재료와 방법, 그리고 메시지에 팬데믹 상황이 반영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해당 지역에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며 미국에서 휘트니 비엔날레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내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꼽힌다. 작가 대부분은 트리엔날레를 통해 처음으로 미국에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큐레이터들이 작업실을 방문한 전 세계 2500여 명의 작가 가운데 23개국, 40명의 작가와 콜렉티브가 선정되었다. 나이는 1975년생부터 1993년생까지로 제1회전 〈예수보다 어린(The generations: Younger Than Jesus)전〉은 33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두었으나 이번엔 나이보다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새로운 작가 발굴에 좀 더 중점을 뒀다.

전면 바닥에 한국작가 이강승의 삼베에 금실로 수를 놓은 작품 〈Untitled (Garden)〉(2018)이 놓였고 Julie Torentino의 살아있는 선인장 작업 〈Archive in Dirt〉(2019~)이 오른쪽에 보인다. 뒤쪽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나디아 발레리크 (Nadia Belerique, 1982~)의 작품 〈Holdings〉(2020~ongoing), 신시아 대니얼(Cynthia Daignault, 1978~)의 페인팅 〈As I Lay Dying〉(2021), 아르헨티나 가브리엘 차일리 (Gabriel Chaile, 1985~) 의 대형 점토 조각 〈Mama Luchona〉(2021), 에린 제인 넬슨(Erin Jane Nelson)의 도자 작업 시리즈(2021)가 벽에 전시되었다 사진: Suk Ganahl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1977)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 작가 게일 슈완느(Gaelle Choisne, 1985~)의 작품 〈Temple of Love–Love to Love〉(2021)의 부분. 비디오나 음식 등 일상생활에서 구한 갖가지 물건들을 조합, 설치하고 후각까지 자극하도록 만든 대형작업이다 사진: Suk Ganahl

한국 작가로는 이강승(1978~)과 캐나다 국적의 로리 강(Laurie Kang, 1985~) 두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강승은 에이즈로 숨진 미국, 영국, 한국의 퀴어운동가 세 명의 흔적을 모아 자수, 드로잉, 조각 등으로 만들어 역사 속에 묻힌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로리 강은 처리되지 않은 오렌지색 사진 필름과 메탈 트랙으로 전시장 중간에 벽을 세우듯 대형작 〈Great Shuttle〉(2020~2021)을 설치해 시간이 지나면서 필름이 변해가는 것을 통해 시간성 및 현장성이 드러나는 작업을 전시했다.

뉴욕 타임스의 미술비평 담당 홀랜드 코터(Holland Cotter) 기자는 이번 전시를 “코로나 봉쇄의 산물”이라며 “다양한 형태와 형식이 혼재하면서도 응집력이 있는 감성과 결을 갖춘 보기 드문 귀한 대규모 컨템포러리 서베이전”이라고 평했다.

뉴 뮤지엄 큐레이터인 마곳 노튼(Margot Norton)은 전시 카탈로그에서 “재료의 불안정함(instability)과 변성(transmutation)이 이번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밝히며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났던 미술운동, 아르테 포베라(가난한 미술)를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이번 트리엔날레는 보잘것없는 허름한 재료, 수공예적 작업방식, 어둡고 가라앉은 색의 모노 톤이 지배했다. 작가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변환시키지 않고 그대로 차용해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거친 작품이 많았고 소형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사진작업은 사라지고 회화 역시 극소수였다.
뉴 뮤지엄 입구의 유리벽 위에 설치된 영국 작가 사마라 스콧(Samara Scott, 1984~)의 〈이무깃돌(외로운 지구) (Gargoyle (Lonely Planet)〉 2021의 재료는 낡은 티셔츠, 담배꽁초, 부서진 액세서리 등으로 헤어젤, 섬유 유연제, 에너지 음료수 등을 써서 현장에서 유리 위에 붙인 콜라주 작업이다.

카일 로버트 어빙(Kahlil Robert Irving, 1992~, 미국)은 찻잔, 사진, 신문조각, 배달음식을 담았던 스티로폼 그릇, 반지 같은 쓰레기통에서 주웠을 법한 물건들을 흙과 뭉뚱그려 놓은 듯한 무정형의 도자조각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이민자인 캐나다 작가 나디아 발레리크(Nadia Belerique, 1982~)의 작품 〈소장고(Holdings)〉 (2020~)는 이민자들이 갖가지 물건들을 담아 고향으로 보낼 때 쓰는 흰 플라스틱 원형 통들을 쌓아 놓은 것이다. 대부분 비어있는 낡은 통들 안에는 인형, 고무장갑, 옷가지, 양말, 의자 등이 남아있어 이 통들이 어딘가에서 실종되어 수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한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살아있는 균을 직접 작품에 넣거나 유기체를 상징하는 작업들도 선보였다. 원형의 도자판에서 돌기가 솟아나고 표면에는 버섯이 자라거나 꽃이 피는 이미지를 접합한 에린 제인 넬슨(Erin Jane Nelson, 1989~, 미국)의 도자 작업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연상케 하며 전시 기간 플라스틱 막대 안에 곰팡이가 자라게 한 제스 판(Jess Fan, 1990~, 홍콩)의 조각 〈Networks〉(2021) 인간의 신체를 찍은 엑스레이 이미지를 시뮬레이션해 만든 케이트 쿠퍼(Kate Cooper, 1984~, 영국)의 비디오 작업 〈Somatic Aliasing〉(2021) 등이다.

계층 간의 갈등, 인종차별 등의 사회정치적 문제들도 주요 주제로 떠올랐다.
콩고 출신으로 노르웨이에서 성장한 작가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 1989~)는 3개의 비디오 패널에 망토를 걸친 흑인의 이미지가 검은색 배경 위에 반복적으로 점멸하면서 긴장감을 형성하는 작업 〈Pervasive Night〉(2021)을 출품했다.

캐나다 원주민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주제로 작업을 하는 제닌 프레이 느주트리(Jeneen Frei Njootli, 1988~)는 작가 몸무게만큼의 비즈를 미술관 안팎의 바닥 곳곳에 놓아두는 작업 〈Fighting for the title not to be pending〉(2020)을 출품했다. 비즈는 금이 간 전시장 바닥 콘크리트의 틈새를 메우기도 하고 미술관 계단 구석에 쌓여 있거나 미술관 앞 도로에도 놓였다. 이 작은 유리구슬들은 사람들의 신발에 붙거나 발길에 차이기도 하며 어딘가로 이동한다.

신시아 대니얼(Cynthia Daignault, 1978~, 미국) 의 페인팅 〈As I Lay Dying〉(2021)은 7개의 패널로 이루어졌다. 리넨에 오일로 〈목격자들의 나무들(witness trees)〉을 그린 흑백 그림 시리즈다. 앨링턴 국립묘지 근처에 남아있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나무들과 노예들을 매달아 린치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천사 떡갈나무(Angel Oak)’를 그린 것이다.

전시 제목인 “부드러운 물과 강한 돌”은 “부드러운 물방울이 지속해서 떨어지면 강한 돌에도 구멍이 뚫린다”는 브라질 속담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속어가 있다.

큐레이터들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작업하고 있는 가브리엘라 무레브 (Gabriella Mureb, 1985~)의 작업실 방문 중 들은 이 속담이 후에 전시 타이틀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무레브는 이번 트리엔날레에 모터가 부착된 기계에 알루미늄 막대를 장착하여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돌을 계속해서 치게 만든 〈기계 #4 (Machine #4 – stone (ground)〉 (2014~2017)을 출품했다. 높이 30cm의 작은 이 작품은 언젠가 돌에 구멍이 뚫리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큐레이터들의 세계여행으로 그 준비가 시작된다. 큐레이터들은 2018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작가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고 2020년 3월 미국은 국경을 굳게 닫아걸었다. 이들은 여행 도중 전례 없이 일정을 변경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정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시카고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자밀라 제임스(Jamillah James)는 카탈로그 에세이에서 “이 전시는 벼랑 끝에서 어떻게 다시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있는지를 말한다”면서 “그것은 한 번에 하나의 작은 몸짓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밝혀 어려운 시기에 작가들이 보여준 끈기와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트리엔날레에는 역사, 사회, 정치적 이슈를 다룬 작품들도 다수 출품되었다. 바닥에는 양탄자와 헤라클레스의 유적을 소재로 쓰면서 터키의 현재를 짚어보는 Hera Buyuktasciyan(1984~, 터키)의 작업이 있고, 왼쪽 벽에는 해변애서 금속 탐지기로 발견한 반지들과 소유자를 유추해 본 Rose Salane(1992~, 미국)의 개념작업, 중앙 벽에는 버려진 카드보드와 종이를 직접 녹여 만든 종이로 만든 Nickola Pottinger(1986~, 자메이카)의 작업, 오른쪽 벽에는 로마의 석관에 남아있는 머리 잃은 뮤즈들을 소재로 한 벽화에 가면을 설치한 Evgeny Antufiev(1986~, 러시아)의 작업이 있다 제공: New Museum 사진: Dario Lasagni

캐나다 작가 엠브라 웰만(Ambera Wellmann, 1982~) 의 대형 페인팅 〈섬광(Strobe)〉(2021)의 디테일. 화산이 터지고 불이 치솟아 오르는 땅에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고통스럽게 엉켜 있는 이 작품은 끈덕지게 지속되는 불확실한 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Suk Ganahl

이번 트리엔날레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버려지고 깨진 물건들을 모아 재료로 사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카힐 로버트 어빙(1992~)은 일상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도자기에 접합시켜 회화적 이미지를 주는 세라믹 작업 시리즈를 선보였다 사진: Suk Ganahl

미니멀하며 완성되지 않은 듯한 조각 작업을 하는 미국의 흑인 작가 크리스타 클락(Krista Clark, 1975~)의 오렌지 텐트 작업은 소외, 격리, 고독, 위험 등 현 상황을 견디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조용히 울린다 제공:New Museum 사진: Dario Lasa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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