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영실: 잠깐 내려앉은 온기에 살갗이 한 겹 녹아내린다

2020. 4. 10 – 5. 9

에이라운지

a-lounge.kr


표영실, < 글썽 >, pencil and watercolor on paper, 25.5x28cm, 2019.

에이라운지는 내달 9일까지 표영실 개인전 <잠깐 내려앉은 온기에 살갗이 한 겹 녹아내린다>를 선보인다. 20여 년간 회화 위주 작업을 전시해온 표영실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그간 회화의 자양분이 되어온 드로잉 작업을 선보인다. 그가 드로잉을 선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동시에 회화가 지닌 틀을 해체해 새로운 장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점차적인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로서 민낯을 드러내 내면의 이정표로 삼고 관람객에게 보다 솔직한 언어로 다가가고자 한다.

표영실, < 무거운 초록 >, watercolor on paper, 28×25.3cm, 2020. 

드로잉은 물리적‧심리적 공간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정관념보다는 사물에 관한 직관으로서 폭넓은 생각과 인식 구조를 전달한다. 표영실은 2019~2020년에 그린 드로잉을 펼침으로써 시대적 현상의 표면이 아닌 수면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이행했던 ‘날 것’들을 전시장에 등장시킨다. 섬세한 감수성과 함께 유연한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표영실, < 기울기 >, pencil on paper, 38.5×28.5cm, 2019.

그의 드로잉은 그동안 회화로 보여준 형상과 유사하다. 하지만 미세한 감정의 떨림과 울림, 숨소리, 몸짓, 잠재된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점에서 회화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작가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적었다. 외면, 응시, 잠식, 애매, 침범, 상실, 망루, 모서리, 응달, 침식, 연약, 공백, 비참, 빈 곳, 손끝, 어둠, 집착 등 그의 작업 노트 및 작품 제목에서 발췌한 명사는 대체로 인간의 암울한 정서를 떠올리거나 생각으로 빠져들게끔 하는 단어다. 비슷하게 그의 드로잉은 자신의 자화상으로 대체되는 인물의 심리가 중심에 위치하며 이를 축으로 잠재된 기억에서 파생된 내밀한 조어가 무분별하게 연결되면서 전이되고 변형되며 해체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표영실, < 느슨한 구조 >, pencil and watercolor on paper, 28×23.5cm, 2019.

그의 드로잉은 연필 끝, 붓끝, 손끝이 지닌 예리한 감각의 결과로써 쉽게 해석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연속성을 지닌다. 이미지가 혼재한 심리적 도상이 그려지거나 어떤 상황극까지도 연상하게 한다. ‘결국 모든 실체는 구멍 나 있고 그것을 어루만지던 손길의 촉감만 남아 있다. 삶의 모양은 결국 그 같은 감각뿐일지도 모른다.’라고 쓴 작가 노트처럼, 그는 불쑥 튀어 오르는 감정을 형상으로 그려내기 위해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감각의 경지에서 그림을 이어나간다. 어긋나있거나 비틀어진 관계 속에서도 내밀한 감정을 예민하고 치밀하게 풀어내며 이러한 그의 능력은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끌어들인다. 표영실의 드로잉은 설명할 수 없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계획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언어화되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 고백하려는 침묵의 언어다.

자료제공 : 에이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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