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民畵이야기 1 에 보이는 백호. 그 고귀한 상징-上
호랑이의 장엄한 영화(靈化)가 새해를 영화시킨다
민화는 그동안 촘촘한 포위 막에 둘러싸여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미술작품은 어느 경우든 고차원의 정신세계이므로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정신적 성숙도와 함수관계(函數關係)를 갖습니다. 필자가 민화를 보고 경이를 느낀 것은 30대 초반 경주에서 조자용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였으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민화 전시장을 빠지지 않고 다니며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15년 전부터 필자는 고구려 벽화의 ‘영기문(靈氣文)’이란 조형언어를 처음으로 해독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주에 충만한 영기(靈氣)라는 것은 우주의 대기운의 대순환을 뜻하며, 그 보이지 않는 영기를 다양한 조형으로 표현한 무늬를 ‘영기문(靈氣文)’이라 하며 그 다양한 영기문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광경을 보고 ‘영기화생 (靈氣化生)’이란 용어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조형이어서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없었고 따라서 명칭도 없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필자는 전공인 조각은 물론 회화, 금속공예, 도자공예, 건축, 복식 등 조형미술의 모든 장르에 걸쳐 새로운 시각으로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에 한하지 않고 동양미술, 즉 일본, 중국, 인도미술은 물론 나아가 서양의 미술도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 민화작품들을 살펴왔으며 학문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요즈음, 비로소 민화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냈습니다. 그 마음은 단지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민화를 올바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사를 조감하였기에 생긴 것입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미술의 조형언어들을 해독하면서 마침내 필자의 이론의 보편성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우리나라 민화가 보이기 시작하여 얼마나 위대한 그림인지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필자는 세계미술 내지 인류의 미술을 해독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방대한 이론인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정립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1 이제는 민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백척간두에서 한발 나아가야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의 심정으로 감히 연재를 하려는 것입니다. 민화는 단지 우리나라 조선후기, 18~20세기에 걸친 서민들의 불가사의한 그림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본성, 인간의 무의식세계를 기적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임을 알았습니다. 즉 영기화생론으로 인류의 조형미술을 새로이 밝히는 과정에서 마침내 민화가 보였고, 우리가 원래 갖추었던 인간의 무의식을 무한히 확대할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말했지만, 바로 그 불가사의한 세계를 하나하나 밝히려 합니다. 그러므로 미술사학은 물론, 민속학, 사상사, 심리학 등 인문학점 관점에서 민화에 널리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민화는 모든 화목(畵目)에 걸쳐 있으나 ‘세화(歲畵)’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원래 임금이 새해를 맞이하여 신하들에게 내리기도 하고 신하가 임금에게 바치기도 하는 그림이지만, 서민들 사이에도 그런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화 가운데 하나인 ‘까치 호랑이(虎鵲圖)’에서도 그림 솜씨에 따라 궁궐 그림 내지 사대부 그림과 민화는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세화라고 해서 무조건 모두 민화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민화를 공부하면서 필자가 절실히 느낀 것은 바로 ‘민화양식(民畵樣式)’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민화양식을 완벽히 표현한 것이라면 한국회화사에서 마땅히 큰 비중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민화양식’은 앞으로 연재를 하면서 자연히 정립될 것입니다. 세화를 둘러싼 여러 설명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므로 이 글에서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바로 작품으로 다가가 영기화생론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류와 상징 추구를 이미 수없이 시도해 왔던 조자용, 김호연, 윤열수, 이명구, 정병모 등 선학들의 추구와 자료 집성이 없었다면 민화에 새로운 접근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필자의 글을 처음 대하는 독자들은 당황할지 모르지만 인내를 가지고 정독하고 그림 분석을 꼼꼼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의도로 연재를 하는지 차차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진주 호랑이>라고 불리는 호랑이의 조형에 대해 채색분석해보기로 합니다. 신재현(申在鉉)이라는 화가가 그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진주 호랑이>를 나름의 채색분석법에 따라 새로이 채색하면서 독자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 합니다. ‘채색분석법(彩色分析法)’이란 필자가 조형해석학(造形解釋學)이란 방법론을 창시하면서 영기화생론을 나름의 조형원리에 따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채색하여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진주 호랑이> 그림은 현재 4점 정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2 무늬들을 선으로 그려보면 매우 유려하고 역동적입니다. 필자가 찾아낸 제1 영기싹 영기문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켜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기문’이란 생명의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조형으로 ‘식물모양 영기문’이 있고 ‘동물모양 영기문’이 있는데 동물모양 영기문은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생성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줄무늬는 물론 호랑이의 줄무늬에서 유래하지만 그 무늬를 추상적이고 도식적으로 다른 고차원의 영기문으로 변형시켜 호랑이를 영화하는 동시에 호랑이라는 영수(靈獸)를 화생시키고 있습니다. 즉 그 다양한 영기문에서 호랑이가 영기화생(靈氣化生)하고 있습니다. ‘화생(化生)이란 말은 종교적으로 초자연적 탄생을 뜻합니다. 우선 꼬리 끝을 보면 동심원이 있는데 이것은 무량보주(無量寶珠)를 나타내며 간단히 말하면 가장 강력한 대 생명력을 함축하고 있는 영기문입니다. 보주는 보석이 아니고 영기가 충만한 우주를 압축한 것입니다. 즉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바로 꼬리의 맨 끝의 무량보주에서 화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꼬리와 몸에 걸쳐 공간에 따라 길고 짧은 추상적이고 도식적인 갖가지 다른 영기문이 감싸고 있습니다. 앞의 오른 다리 어깨에는 제1영기싹이 있어서 마치 태극무늬 같으며 그 주변에 빨간 색으로 칠한 짧은 영기문과 동심원의 무량보주들이 밀집하여 있는데, 이것은 영기를 힘껏 밀집시켜 다리를 화생시키려 함입니다.
그런 원리는 이미 고구려 벽화에서 밝혀냈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앞의 왼쪽 다리 어깨는 보이지 않으나 마찬가지로 갖가지 영기문이 밀집하여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다리의 발가락들은 모양이 ‘붕긋붕긋’합니다. 이런 형태 역시 사물을 영화시키는 한 방법입니다. 발이 이렇게 뭉게구름처럼 표현된 것은 그려진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호랑이의 조형을 ‘영기문의 집적(集積)’으로 표현하여 만물생성의 근원적인 존재로 영화시켰다는 것을 지방 화가는 놀랍게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뒤의 왼쪽 다리 무릎에도 제1 영기싹 영기문과 짧은 면으로 된 제1 영기싹 영기문이 밀집하여 다리가 화생하고 발은 역시 붕긋붕긋한 구름모양 영기문으로 영화시키고 있습니다. 얼굴은 포악대소상(暴惡大笑相)입니다. 큰 눈은 보주를 상징합니다. 눈썹에는 잘디잔 보주들이 보일 듯 말듯 하고 털이 강력하게 뻗쳐 있는데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입니다. 둥근 콧구멍도 보주입니다. 그 코에서 같은 간격으로 영기문들이 발산하며 등 뒤로 넘어갑니다. 코 양쪽으로 긴 수염이 날카롭게 뻗쳐나가 있는데 이 역시 영기가 힘차게 발산하는 모습입니다. 크게 벌린 입을 보면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아래로 솟구쳐 있는데 역시 제1 영기싹 영기문입니다. 용의 입모양은 바로 호랑이의 입에서 빌린 것입니다. 혀는 짧지만 역시 제1 영기싹 영기문을 입체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턱 아래의 빨간색 작은 보주가 중요합니다. 그 보주에서 제1 영기싹 영기문들이 파동을 치며 양쪽으로 퍼져 갑니다. 가슴이 유난히 둥글게 튀어나왔지요? 이 역시 가슴에 영기를 힘껏 불어넣은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보면 이 호랑이는 제1 영기싹의 온갖 변형과 보주로 이루어진 형태들의 집적으로서 영기문에서 호랑이가 화생하는 형상인데,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합니다.3 동물모양의 생성 과정은 꼬리부터 시작하여 머리에서 끝납니다.
호랑이,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조형
또 다른 <진주 호랑이> 그림을 살펴볼까요? 김세종 씨 소장 진주 호랑이 그림은, 똑같은 민화양식으로 그린 리움 소장 호랑이 그림의 제발에 쓰인 화가 신재현이 그린 것입니다. 제발(題跋)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랑이 머리 바로 옆에 ‘風聲聞於千里 吼蒼崖而石裂(호랑이의 바람소리 멀리 천리에 이르고, 드높은 절벽을 만나 으르렁 대니 절벽이 깨어져 열리네)’이란 글귀가 오른쪽에 조그맣게 있고, 왼쪽 구석에 ‘虎嘯南山 鳥鵲都會’ (호랑이가 으르렁 대면 까치무리가 모두 모여든다. 리움 소장품에는 鳥鵲 대신에 群鵲이라 쓰여 있다.)가 역시 까치 뒤에 조그맣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다룬 리움 소장 호랑이 그림에도 같은 제발이 있는데 반갑게도 ‘甲戌 元旦 申在鉉寫’라는 제발이 오른쪽 맨 위에 쓰여 있으나 도장은 없습니다. 즉 두 그림은 모두 신재현이라는 작가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고 그 화가는 다른 화가와 달리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하였음을 알 수 있어 비교해 보면 흥미가 있습니다. 그는 19세기에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화가라고 합니다.4 부분적으로 다르지만 똑같은 양식입니다. 귀는 더욱 뚜렷한 영기문으로 표현했고, 보주인 눈 위아래에서 면으로 된 제2 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으며, 턱밑의 보주, 앞다리 어깨와 뒷다리 무릎에 밀집하여 다리들을 화생시키고 있는 제1 영기싹 영기문과 무량보주들, 그리고 뭉게구름 같은 발들을 보면,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요, 영기문의 집적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꼬리는 실제 호랑이의 것보다 훨씬 길게 변형시켜 꼬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이 호랑이 줄무늬의 정체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요? 우리는 고구려 삼실총(三室塚)과 강서대묘(江西大墓)에서 사신(四神) 가운데 백호가 영기화생하는 조형을 살펴보고 민화의 호랑이와 같은 조형정신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실총의 천장에 그려진 작은 백호는 비록 작은 도상이지만, 백호가 청룡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현실의 동물이라면 상상의 산물인 용처럼 가늘고 길 수 없습니다. 역시 다리 네 군데에 영기문이 있고 등에는 줄무늬가 있는데, 그 줄무늬는 이미 현실의 호랑이의 줄무늬가 영화해서 영기문이 된 것이어서 불화의 조형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작은 백호의 이마에 빨간 보주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호랑이는 용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호랑이도 보주와 관계가 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민화 호랑이에도 몸에 보주가 많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호랑이의 줄무늬와 표범의 둥근 무늬가 차원을 달리하여 모두 영기문과 보주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서대묘의 백호를 보면 네 다리에 연이은 빨간 색의 제1 영기싹 영기문에서 다리가 화생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다시 다리에서 녹색의 털 같은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코 휘날리는 털이 아닙니다. 등에는 간략하게 줄무늬를 넣었습니다. 앞다리의 양 어깨 부분에 강력한 영기문이 밀집하여 있는 것은 다리를 제외한 몸을 화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까치 호랑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랑이이며 그 호랑이의 조형적 성격과 상징은 시대를 거슬러서 고구려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백호의 백색은 다만 오행사상에 따른 관념적인 것일 뿐, 실은 고구려 벽화에서 호랑이를 흰색으로 채색한 예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까치 호랑이 그림에 나타나는 호랑이는 현실의 호랑이가 아니요,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영화시킨 비현실적인 초자연적 존재로서 백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야 청룡도 반드시 청색으로 칠하지 않더라도 초자연적 존재와 같은 가치를 지니며 서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즉 세화의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백호이고 용은 신령스러운 청룡입니다. 사신 가운데의 백호와 청룡입니다. 사신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며 우주에 충만한 영기를 구상화한 것이지 사방의 수호신이 아닙니다.
새해 첫날에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인 용과 함께 대문을 장엄했다면 참으로 의미 깊은 그림입니다. 새로운 해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고차원의 영적(靈的)인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면, 새해가 생명력으로 가득 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면, 민화가 새로이 보일 것입니다. 조형을 분석해보면 단지 집의 수호신이나 벽사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하지 않은 무명화가, 실제로 이름을 남긴 화가도 있습니다만, 그 고차원의 조형 세계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떻게 고구려 벽화에 나타났던 조형들이 조선후기에 눈부시게 부활하는 것일까요? 과연 민화양식이란 무엇일까요? 왜 호랑이는 분노상을 띠는 것일까요? 학계에서는 왜 호랑이와 표범을 구별하지 않는가요?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주
1 필자가 정립하고 있는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라는 미술사학 내지 문화 전반에 걸친 방법론에 대하여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강우방, <제5장 영기화생론과 조형언어>, 《수월관음의 탄생》, 글항아리, 2013, pp.74~90.
2 이러한 화풍의 그림을 진주 지방의 화가 신재현이 여러 점 그려서 ‘진주 호랑이’라 부른다. 윤열수, 《민화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1995, p.24.
3 제1 영기싹, 제2 영기싹, 제3 영기싹 등이나 보주와의 관계 등 낮선 용어들이나 그 조형들이 지니는 엄청난 상징들은 충분히 파악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의 책이나 두 해 동안 신문에 연재한 ‘틀린 용어 바로잡기’를 필자의 홈페이지 www.kangwoobang.or.kr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강우방, 《한국미술의 탄생》, 솔, 2007. 이 저서는 모든 장르에 걸친 작품들을 영기-영기문-영기화생으로 풀어내므로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4 이명구, 《文字圖》, Leedia, 2005, p.164. 신재현은 19세기에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화가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甲戌년이면 1874년과 1814년이 떠오른다. 나이를 고려하면 1814년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