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S MoCA Building6 OPENED
: 새로운 공룡미술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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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 애덤스(North Adams)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MASS MoCA: Massachusetts Museum of Contemporary Art)이 지난 5월 ‘빌딩6’를 개관하고 미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으로 한 단계 재도약했다. 작품수집을 하지 않는 독특한 운영방침을 고수하는 MASS MoCA는 외진 곳에 있으면서도 올해만 20만 명에 육박하는 방문객을 끌어 모았다. MASS MoCA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솔 르윗, 제임스 터렐, 제니 홀저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이 10년 넘게 장기 전시된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 비밀을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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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룡미술관의 출현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이하 ‘매스 모카 (MASS MoCA: Masachuchetts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보스턴에서 서쪽 방향으로 2시간 30분가량 운전하면 도착하는 노스 애덤스라는 산속 작은 마을에 있다. 노스 애덤스는 1890년대 말 천을 염색하는 공장 26개가 들어섰던 곳이다. 그 건물 중 남아있는 25채가 매스 모카 전시장으로 하나씩 변신하고 있다. 인구 10만8000명의 작은 마을로 매스 모카가 다운타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매스 모카는 지난 5월 1만2000㎡의 전시면적을 갖춘 빌딩6을 오픈, 6만4750㎡의 캠퍼스에 12동의 빌딩, 약 2만3300㎡라는 어마어마한 전시 면적을 갖추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현대미술관과 뉴욕 주의 디아 비컨에 버금가는 초대형미술관으로 부상해 최근 매스컴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솔 르윗, 제임스 터렐, 제니 홀저,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리 앤더슨, 루이즈 부르주아 등 미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10년에서 25년까지 장기 전시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애호가들은 이제 매스 모카의 전시를 보지 않고는 이 작가들의 작품을 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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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젊은 작가들의 전시 역시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고 일년 내내 매주 퍼포먼스 아트와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로도 이름이 나있다. 록 밴드인 윌코(Wilco)가 2년에 한 번씩 여는 콘서트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청중이 몰려든다. 매스 모카는 2010년 1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아웃도어 콘서트 필드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미술관 외에는 특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장도, 사업체도, 상가도 없이 버려진 공장지대이던 이 산속 마을에 올해만 20만 명에 육박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매스 모카는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큰 전시미술관(수집은 하지 않는)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일까.
몇 년 전 풋볼 경기장만한 이곳 빌딩5 전시장에서 드넓은 들판에 눈이 내리듯 하얀 종이조각을 날렸던 앤 해밀턴의 전시를 보고 《월간미술》에 기고한 적이 있어 새 전시장이 궁금해졌다. 보스턴에서 가는 길은 여러 개의 주립 산림공원을 지나치므로 산속을 오르내리는 산중도로가 대부분이다. 매사추세츠 서쪽 버크셔 지역의 예쁜 마을들을 거치면서 북쪽으로 올라간 지난번 여행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버크셔(Birkshire)에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현대무용단 제이콥스 필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등을 비롯 다수의 문화예술단체의 서머 홈이 있고 탱글우드 음악제, 노먼 라크웰 미술관,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쓴 집, 예일음대의 노포크 체임버음악제, 각종 연극제 등이 여름 내내 열린다. 한때 여름이면 매사추세츠의 엘리트들이 모여들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버크셔에선 아직도 문화예술단체들이 여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 가장 북쪽에 클락 미술관(Clark Art Institute)과 윌리엄스 대학 미술관, 매스 모카가 위치해 있다.
노스 애덤스는 동쪽으로는 보스턴, 서쪽으로는 버크셔라는 풍부한 문화/예술/ 학자들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것이다. 특히 차로 20분 가량 떨어진 윌리엄스타운에 명문 윌리엄스 대학교가 있다. 아마 외딴 마을에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미술과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지역인들의 뜨거운 열정 없이는 대형미술관 설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매스 모카는 1999년 10여 년의 준비작업을 거쳐 개관하였다. 1986년 윌리엄스 대학 미술관 관장이던 토머스 클렌스(Thomas Klens)가 섬유회사에 이어 40여 년 동안 가동되던 스프라그(Sprague) 전기회사가 문을 닫자(1985년) 노스 애덤스 마을에 버려진 거대한 공장 건물들을 보며 그 자리에 현대미술관을 설립하는 꿈을 꾸었다. 클렌스는 당시 노스 애덤스의 시장, 존 바렛(John Barrett III)을 설득하였다.
당시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19세기에 지어진 28채의 빈 공장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다. 게다가 1988년 클렌스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관장직을 맡아 떠나면서 클렌스의 윌리엄스 대학 동료였던 조지프 톰슨(Joseph Thompson)에게 바톤을 넘겼다. 그 꿈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클렌스가 떠나기 직전 매사추세츠주가 미술관 설립을 위한 8억 달러의 예산을 승인한 것. 경제적인 밑받침이 톰슨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톰슨은 설립관장을 맡았고 주 예산에 매칭하는 기금 모금을 해나가면서 공장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해 나간 것이다. 클렌스를 멘토로 윌리엄스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현대미술관 관장 마이클 고반과 톰슨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간 든든한 동반자였다(고반은 이후 2003년 오픈한 디아 비컨의 설립을 맡았다). 톰슨은 아직도 관장직을 맡고 있으며 이번 빌딩6의 오픈까지 그동안 3번의 미술관 확장을 진두지휘하였다.
톰슨은 설립관장을 맡았고 주 예산에 매칭하는 기금 모금을 해나가면서 공장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해 나간 것이다. 클렌스를 멘토로 윌리엄스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현대미술관 관장 마이클 고반과 톰슨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간 든든한 동반자였다(고반은 이후 2003년 오픈한 디아 비컨의 설립을 맡았다). 톰슨은 아직도 관장직을 맡고 있으며 이번 빌딩6의 오픈까지 그동안 3번의 미술관 확장을 진두지휘하였다.
2008년 예일 대학 갤러리와 협력하여 빌딩7에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월 드로잉 회고전을 유치한 것은 지금의 매스 모카가 성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5년 동안 계속되는 이 전시에는 2504㎡에 이르는 3층짜리 빌딩 전체에 1969년 작부터 작가의 임종 직전인 2007년 작까지 르윗이 전 생애에 걸쳐 작업한 105점의 대형 월 드로잉이 전시되고 있다. 22명의 조수와 40여 명의 미술전공 학생이 6개월에 걸쳐 르윗의 도표 및 그 설명서를 보고 재현해낸 작품들이다. 현재 이 전시는 그의 작업을 가장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자리로 꼽히며 매스 모카에 관람객 수가 급작스럽게 그리고 꾸준히 증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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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꿈을현실로
55억 달러짜리 프로젝트인 빌딩6는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이 <갠즈펠드(Ganzfeld)> 등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9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매스 모카가 3250㎡를 향후 25년 동안 제공하면서 터렐의 커리어를 돌아볼 수 있는 그의 작은 개인 미술관이 생긴 셈이다. 1977년부터 약 40년째 애리조나에서 작업 중인 로덴 크레이터(Roden Crater)의 모델도 전시하고 있다.
제니 홀저와 로리 앤더슨의 작품은 15년 동안 전시된다. 텍스트 작업으로 잘 알려진 개념주의 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 1950~)의 대리석 벤치작업 20여 점은 빌딩6 주변 캠퍼스에 놓였다.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전쟁포로를 소재로 한 작업으로 포로 관련 정부문서에서 뽑아낸 글귀를 대리석 벤치에 새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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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모카의 첫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수혜자였던 멀티 미디어 아티스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1947~)은 그가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 오디오 기록 보관소, 헤드폰을 이용해 체험할 수 있는 버추얼 리얼리티 작품 등과 더불어 차콜 드로잉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또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천국의 지진(미로)(A Quake in Paradise(Labyrinth))>(1994)과 그의 조각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 Bourgeois, 1911~2010)의 <무제>(1999~2000)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15톤의 무게 때문에 작업실을 떠나지 못했던 대리석 조각이다.
작곡가 겸 음악운동가 거너 쇤벡(Gunner Schönbeck, 1917~2005)은 베닝턴 대학의 교수였다. 상자, 전선, 자동차 부품 등 생활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각종 물건으로 직접 악기를 만들었는데 이곳 빌딩6에 3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 세 작가의 작품은 2018년까지 전시된다.
매스 모카의 전시장은 공장 건물이라는 특성으로 넓은 공간, 높은 천장과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나무바닥 등 대작을 만드는 현대미술작가들이 선호하는 공간이다. 작가들은 창고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작품들을 기꺼이 꺼내 주었고 일부 작가들의 재단은 경제적인 지원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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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매스 모카는 미술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술관의 성공은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열정 그리고 지역정책이 그 관건이라는 것이다. 매스 모카는 윌리엄스 대학의 교수를 지낸 미술 전문인들과 쇠퇴해가는 지역을 살리려는 지역 리더들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 결과이다.
매스 모카가 새로운 도약을 꿈꿀 때마다 주 정부는 예산을 마련해 주었고 미술관은 그에 상응하는 기부금을 모으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예산으로 수준 높은 전시를 유치함으로써 미국에 또 하나의 멋진 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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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서상숙 |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