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공성훈 l 작가, 성균관대 교수
얼마 전에 모 케이블 방송에서 준비하고 있는 미술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하러 다녀왔습니다. 심사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별걸 다 하네’ 하며 회의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전시 지원과 레지던시 등 각종 공모
를 통해서 작가를 선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진 상태에서 방송에서는 좀 의심스러운 작가들(?)이 맹활
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보다는 치열하고 진지한 작가들이 매스미디어에서 제대로 된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
했습니다. 오디션이 작가로서 단지 출발점임을 유념한다면, 그런 작가들이 미술의 생태계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항상 그래 왔지만,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버티기’ ‘우기
기’ ‘쑤시기’가 그것입니다. ‘버티기’는 작가로서 먹고살면서 생존하는 것, ‘우기기’는 남이 자신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혹시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할 정도로 보여주라는 것, ‘쑤시기’는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방향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버티면 작가로 남
고 우기면 작가로서 알려지고 쑤시면 좋은 작가가 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나라를 막론하고 작가로서 버티는 일은 참 힘듭니다. 마치 추운 겨울에 짧은 이불 덮고 자는 것과 같아서 머리
를 덮으면 발이 시리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시립니다. 위에서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특히나 작가로서 버티는 환경이 많이 바
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지원제도 많이 생겨서 흔히들 젊은 작가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
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르바이트할 게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학원
이나 입시 화실에서 강사로 일하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입시학원의 강사 자리가 있지만
예전에 비해 전문화되어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청년층의 임금도 싸졌고요.
공모를 통해서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도 1년마다 이사 다니기 바쁩니다. 작가 레지던시 공간만 늘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작업실
지원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럭저럭 작품성을 평가받아 미술관급 전시나 국내 비엔날레에 참여해도 아티스트 피(artist fee)
가 없습니다. 큰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뭘 먹고 살라고 그러는지. 아티스트 피가 없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젊은 작가들 중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몇 개의 스타일에 한정되어 있고 지
속가능성도 불확실합니다. 그래도 미술계 자체는 참 공정해졌습니다. 아마 바둑계 다음으로 공정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줄 안서
도 됩니다.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까요. 대학의 권력이 줄고 상업과 기획의 힘이 커진 까닭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계의 히에라르키
(hierarchy)라고 할까 작가의 지위가 변한 느낌입니다. 앞서 말한 작가 오디션 프로그램 모집기간에 지원 여부를 놓고 젊은 작가들이
눈치를 본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습니다. 출연하고는 싶지만 미술계에서 나쁜 평판을 얻을까봐 망설인다는 거죠. 심지어 평론가에게
지원할지 말지 여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오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심사를 받습니다. 기회가 많아지고 공정해지고 그래서 좋아지긴 했지만 작가들이 남의 시선을 끊임
없이 의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경쟁에 익숙하다보니 서로서로가 개인화되고 ‘작가 커뮤니티’도 약화된 듯합니다. 예전에
는 작가들이 전시를 조직하고 이슈를 생산해내며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제도가 강해지다보니 작가들이 ‘Sleeping Beauty’처럼 자신
이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작가 없는 미술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론가도 저널도 갤러리
도 없어도 됩니다. 작가만 있으면 미술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계의 모두를 존재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
‘가 되는 것은 독립적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백이라는 말 대신 ‘Author’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작가가 세계에 대한 어
떤 독립적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독립적이려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필요하지만 동지가 필요합니다. 예술적 동지
말입니다.
젊은 작가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적이거나 예술적인 문제들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
라 구조적인 문제이고 연대해야 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사회 문제이든 미술계 문제이든 서로서로 공유해야 버티기 쉽습니다.
청춘에게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리고 작가라서 더 어려운 삶이지만 후배 작가분 모두 세계에 맞먹는 무게감을 지닌 예술가로서 성장
하시길 빌며 지면 관계상 군소리 그만 하고 이만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