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리뷰]유휴열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작가 유휴열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신명난 生/놀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린 전시에는 1970년대 초기작부터 알루미늄을 이용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을 헤아리는 작가의 작업 여정에서 엄선된 작품 120여 점이 선보였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는 작가 유휴열이 몸담고 살아온 시간과 장소에 깃든 예술적 성취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195×260cm 2001∼2002

<추어나 푸돗던고>(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195×260cm 2001∼2002

예술이라는 놀이를 통한 삶의 관조와 유희

이태호  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우리나라 명산 중 하나인 모악산자락 밑에 작업실을 마련해놓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작가 유휴열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지역작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전형(典型)과 모범을 보이는 작가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미술실기대회를 휩쓸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가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꾸준하게 창작의욕을 불사르고 있는 점도 대단하거니와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거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더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유휴열의 작품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비단 방대한 양의 작품 숫자로부터 기인한 것만이 아니라 지난 50여 년 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변화무쌍한 작품 성향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유휴열은 타고난 재능과 예술가적인 기질, 그리고 여기에 성실함마저 겸비한 작가다. 작가는 모든 것을 작품으로 말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창작을 위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982년 전주 금하미술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1990년대 초반에 그가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조형세계는 이미 많은 평론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그 진가(眞價)를 인정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작품이 변화무쌍하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유휴열 작품의 이런 변화무쌍함은 그의 예술가적인 기질뿐만이 아니라 전위적(前衛的)인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과 더불어 실험정신으로부터 파생된 결과물이다. 삶과 창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고요한 수면을 견디지 못하고 끓어 넘치는 활화산과도 같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강렬한 색채와 역동성, 독특한 마티에르는 작품에 대한 열정의 분출과 다름없다. 이번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형식의 <유휴열의 生/놀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감각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감각 너머의 세계를 표현해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인간의 우울과 이상을 동시에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랭보가 감각을 활짝 열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처럼, 유휴열은 감각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감각 너머의 세계를 표현해내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전시 제목인 <유휴열의 生/놀이>는 이런 그의 작업들을 포괄하여 총망라하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화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휴열의 生/놀이>는 단순히 작가 개인적 삶과 인생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삶과 인생의 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나아가 우리 민족의 얼과 흥, 신명뿐만이 아니라 한(恨)까지 내포되어 있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화두이기 때문이다. 삶과 인생 자체를 하나의 놀이이자 축제로 인식하는 그는 이번 전시 <유휴열의 生/놀이>에서처럼, 작가 개인의 자의식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민중의 한(恨)과 욕망, 울분 등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승화시키면서 예술을 일종의 삶의 정화이자 축제로 펼쳐보인다. 필자는 이것을 ‘예술이라는 놀이를 통한 삶의 유희’로 정의하고 싶다. 따라서 <유휴열의 生/놀이>는 비단 연작의 제목이라기보다는 그의 예술적 화두에 가깝다.

 캔버스에 아크릴 227×908.5cm 2013~2014

<엄뫼, 모악> 캔버스에 아크릴 227×908.5cm 2013~2014

삶의 총체로서의 예술
그의 자유로운 정신은 필연적으로 전위적이고 다양한 실험들을 통하여 파생된 다양한 성향의 작품들로 귀결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고, 작품에서도 정형화되고 틀에 박힌 기존의 개념들을 해체하고 거부하면서 늘 새롭고 신선한 방향으로 정진(精進)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료 또한 마찬가지이다. 회화로부터 조각 및 설치작품으로 변화하는 작품의 성향뿐만이 아니라 회화물감, 흙과 도료, 한지와 합판, 돌, 수지, 알루미늄 등 재료 선택에서도 다양한 실험정신을 발현해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마치 카멜레온과도 같이 변화무쌍하다. 의미를 전달하는 모든 소통 과정에는 메시지 운반자로서의 매개수단 혹은 의미의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매체(medium)가 필요하다. 즉 모든 소통과정은 ‘매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체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위한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자 그 절차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가 된다. 예술작품과 표현 활동이 의미 소통의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 매개인자가 되는 기술적 보조수단과 물질적인 표현수단을 일차적으로 매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 의미의 매체가 표현을 위한 재료나 단순한 도구의 중성적 성격이었다고 한다면, 유휴열이 다양한 재료를 통해 다양한 작품의 성향을 보이는 이유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록 재료가 바뀌고 표현방식이 달라졌다 해도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자연적인 소재와 삶의 방식이 ‘놀이’라고 하는 예술적인 소재와 행위 자체로 전이되어 작품에 전착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놀이로서 살아있는 삶과 인생 그 자체이며, 그러한 재료들은 작가가 살아있음을 중개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작고하신 미술평론가 이일 선생은 유휴열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삶의 총체로서의 예술’이라고 정의하면서 그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인간의 아픔에 대한 진지한 공감, 삶에 대한 수용의 너그러움이 깔려있다고 하였다. 그 끈끈하고 너그러운 열기가 그의 작품에 인간적인 밀도를 지니게 한다는 것이다. 오광수 선생은 유휴열의 작품에서 음악성이 흘러넘쳐 가락과 리듬과 기운이 넘치고, 시각적인 대상이 쉽게 청각적인 것으로 전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의 작품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실세계를 예술이라는 놀이를 통하여 감각적으로 담아내는 부정형의 카오스(Chaos)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카오스 속에서도 질서와 법칙(Cannon)을 발견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 엿보이는 카오스적인 ‘무질서’는 다시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다가가 세계에 활력을 주면서 새로운 생명질서를 창조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엿볼 수 있는 생명의 원시성과 놀이를 통한 유희성의 회복은 다름 아닌, 물질문명에 물들어가는 인간존재에 대한 회복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휴머니스트(Hu- manist)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삶과 인생 자체를 ‘놀이’라고 하는 은유적인 언어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잠시 그의 화력(畵歷)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유휴열의 작품 시기는 크게 몇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그가 작업을 시작해서 다양한 탐색과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를 모색한 1970년대와 1980년대 후반, 다음으로는 1990년대 초반 흙을 주재료로 활용하여 <生/놀이> 연작이 제작되는 무렵부터 2004년 <추어나 푸돗던고> 연작에 이르는 유휴열 특유의 작업방식이 안착한 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루미늄 작업을 통해 빛과 놀이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면서 삶의 원형적 세계를 담아내는 최근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초기작에는 구상(具象)작품뿐만이 아니라 앵포르멜 형식의 추상작업, 1970년대 후반부터는 남관(南寬) 선생의 작품이 연상되는 반(半)추상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합판작업을 중심으로 일종의 탈(脫)캔버스 작품의 형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프랑크 스텔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해체주의적 비정형 회화작품이나 액션페인팅 및 독일 신표현주의 성향의 작품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휴열의 회화작품에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내면세계에 대한 강렬한 표현욕구와 자유분방한 붓 터치를 통한 독특한 마티에르, 색채구성 등은 미국의 액션페인팅이나 독일 신표현주의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유휴열의 작품이 언뜻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인 자기표출의 표현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과 인간적인 체험을 곱씹으며 그것을 오늘의 인간 조건의 차원으로 여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로써 풀어내지 못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서 풀어내는 일종의 한(恨)과 같은 것이 작품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1990년대 후반 판소리의 장단을 주제로 한 일련의 시리즈와 군무(群舞)의 춤사위를 주요 소재로 2000년대에 연작으로 제작되었던 <추어나 푸돗던고> 시리즈는 이 시기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데, 이때부터 다층적인 놀이 개념이 그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알루미늄을 재료로 활용한 작품들도 매우 신선하다. 그가 알루미늄이라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삶의 그것처럼 작품의 울림과 리듬이 빛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해와 달, 장생도, 토끼와 거북이, 꽃과 새, 만다라 등 우리의 민간신앙을 통해 전수되어 내려온 고대 이래의 신화적 세계나 불교적 세계 같은 삶의 원형적 세계를 지속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필자가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유휴열이 자신의 작품에서 던지고 있는 화두인 <生/놀이>는 작가의 인생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관조를 통한 투영(投影)이자 투각(透刻)이라고 말할 수 있다. 50년이란 내공 깊은 화력(畵歷)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예술을 삶의 정화이자 축제로 인식하는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삶의 유희성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해학,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함마저 담겨 있다. 유휴열의 작품에는 그의 모습과 심성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들의 희로애락 역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최근에 그린 대형작품 <모악산의 춘하추동>은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 또는 생로병사와도 많이 닮아있다. 그렇다! 유휴열의 그림은 우리의 모습, 우리네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네 서민들의 삶에 대한 한과 신명, 슬픔과 기쁨이 내포되어 있다. 원초적인 욕망, 삶과 인생에 대한 발산과 응어리진 마음을 물감과 몸짓을 통하여 표현하는 그의 작품들은 회화적 몸짓과 다름없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굴곡진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모악산처럼, 그는 어느새 모악산을 많이 닮아있었다. ●

유휴열은 1949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주대학교 미술교육과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전주 금하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40여 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전주 모악산 자락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왼쪽) 알루미늄, 자동차 도료 183×366cm 2013~2014  (오른쪽) 알루미늄 260×157cm 2006

<리듬>(왼쪽) 알루미늄, 자동차 도료 183×366cm 2013~2014 <律>(오른쪽) 알루미늄 260×157cm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