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김지영_(주)김지영출판사

contents 2014.2. review | 김지영_(주)김지영출판사
마흔 살을 넘긴 한 늦깎이 신인작가가 개인전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출판사’를 차렸다. 물론 작가의 개념과 의도를 담은 미술전시지만, 작품들은 저마다 실제 출판물과 관련성을 띠고 있다. 대형마트의 총천연색 전단지를 이용해 만든 일종의 수산물도감인 <마트 어보(魚譜)>, 현실에서 기피 대상인 바퀴벌레를 소재로 작가가 직접 만든 색칠공부 책자<세계의 뒤편 색칠공부-바퀴벌레의 세계>(전시장에서 2000원에 실제 판매), 엄마의 부탁으로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를 한 글자씩 확대하여 드로잉으로 전환하고 다시 영상매체로 제작한 <엄마를 부탁해를 엄마가 부탁해>(총 282쪽 중 4쪽의 분량밖에 하지 못한 미완의 작업), 전시 기간에 관람객들이 임의로 옮겨놓는 바둑돌들의 형상을 매일 ‘기보(棋譜)’의 형태로 사진과 함께 기록하는 <생활바둑> 등이 대표적 작업이다. 이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브제나 매체로 제작되었으며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참조로 하여 특별한 예술적 재능보다는 오랜 노동의 축적으로 완성된 결과물들이다. 무엇보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소재를 진지하고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의도된 가벼움 이면에는 시각예술의 위기와 미술제도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관점이 담겨있다.
전시 설명문에서 작가는 전단지 수집이 취미라며 “선명하고 얇고 공짜인 그것들을 볼 때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이유가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말한다. 원본이 복제에 의해 아우라를 상실하고 사본과의 차이조차 무너진 지 오래인 오늘날, 예술가의 ‘독창적인(original)’ 창작에 의한 유일무이한 작품으로서 시각예술이 지니는 힘은 사실상 미약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창작의 기회마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는 것이, 또 설령 된다 하더라도 예술활동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회의가 작업의 계기라고 밝힌다. 그리고 출판물이라는 형식을 빌려, 다수에게 소비되는 대중예술이 오히려 저작권이라는 정당한 시스템을 통해 원작을 존중받는 것은 아닌지, 반면 여전히 많은 미술작가가 독창성과 원본의 신화를 떨치지 못하고 삶과 예술 사이의 간극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깊은 성찰은 한없이 가볍고 재기발랄하다. 무서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할까. ‘김지영출판사’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신혜영・미술비평

김지영 <생활 바둑>(사진 오른쪽) 가변설치 2013
사진・조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