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Fluid FormⅡ Arab Contemporary Art

유동체로 흐르는 그곳에 관하여

한국에는 아직 생소한 아랍지역의 정치・문화・사회적 변화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아랍현대미술전이 네모블루스퀘어(5.21~31)와 부산시립미술관(6.4~7.3)에서 열렸다. 독립큐레이터 김유연이 기획한 <Fluid Form II>가 그것. 이번 전시는 아랍문화에 대한 정형화를 시도하기보다 그들의 작품 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문화적 통찰력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면모에 주목한다.

이미솔  예술학

미지의 아랍세계. 신세기 벽두에 일어난 9・11 테러의 배후와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 남성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여성들이 깊이 베일을 두른 모습 등 아랍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최근에 많이 노출된 정보일 뿐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아랍어, 코란, 문명의 발상지, 각종 과학기술의 보고, 세계최대의 산유지,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로 장식된 사원들 그리고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이슬람교도 등 학교에서 배운 아랍의 이미지들이 연상된다. 그렇다면 아랍의 현대미술은 어떨까.
<아랍현대미술전 : Fluid Form(유동체) II>는 벌써 7회를 맞이한 아랍문화제 행사 중 하나로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한국-아랍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아랍문화제는 본 전시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진전 <수단 바아길>, 아랍영화제, 전 팔레스타인 총리의 초청강연, 주한아랍외교단의 특강, 그리고 일반인을 위한 강좌로 구성됐다.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아랍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누릴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Fluid Form II전> 은 서울의 네모블루스퀘어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아랍현대미술의 면면을 소개했다. ‘유동체’라는 제목으로 현재 급격한 확장과 변모를 겪고 있는 아랍세계와 작가들의 이야기를 유연하게 담고자 했으리라.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독립 기획자 김유연은 2010년 아랍 도시디자인 & 현대미술전 <Fluid Form I>으로 국내 최초 아랍현대미술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던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를 다룬다.)
사실 아랍은 우리에게 낯설기만한 세계는 아니다. 우리는 아랍과 활발하게  교류한 시기가 있었다. 중년 이상의 성인들은 기억할 것이다. 1970~1980년대 중동 건설 특수기에 한국 건설사의 많은 인력이 중동에서 활약했던 것을. 당시 우리 건설업체가 중동에서 발주한 공사의 90%를 수주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큰 산업적 교류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종교를 비롯하여 문화,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높지 않다. 하지만 <Fluid Form II전>을 보고 난 후라면, 최소한 터번을 두른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보더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아랍세계 여러 이슈를 다루면서도 ‘무섭거나 무겁지’ 않다.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석유로 축적한 재력을 통해 굵직한 미술행사들을 진행하기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에서는 1993년부터 ‘샤르자비엔날레’를 개최해 현대미술에 대한 후원을 이어왔다. 2000년대 후반에 문을 연 ‘아부다비 아트페어’와 2007년 ‘걸프 아트페어’로 시작한 아트두바이 아트페어 등은 세계로 문을 열고 있는 아랍 사회와 함께 촉망받는 미술 행사이다. 이렇게 21세기의 문턱에서 이미 아랍세계는 개방을 위한 전초전을 끝낸 상태였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아랍의 현대미술에 방점을 두었고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아랍의 봄’을 담론에 등장시키며 아랍권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선보인 바 있다. 2010년 말 소셜미디어를 채널로 집결하고 자유, 민주적 인식을 확대한 시위대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벌였으며 튀니지와 이집트 등지에서 혁명으로 표현되는 정권 교체를 이루기도 했고 이 움직임은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전례 없던 이 혁명의 물결도 그 세계에 온전한 해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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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FLUID FORM II> 전시광경  사마 알샤이비 <Muraqaba I>(맨 오른쪽) Diasec print 166×250cm 2014

아랍현대미술의 현주소
사우디아라비아의 작가 파이살 삼라는 ‘아랍의 봄’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아직도 여전한 가난과 속박, 실업 등 복잡한 상황을 고발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봄’으로 개념화하려는 일각에 의심을 품는다. 허풍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아랍연합의 22개국을 상징하는 22개의 풍선은 ‘아랍의 봄’이라고 지시되고, 부풀려 있고,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중동을 상징하는 모래가 이를 위태롭게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사우디 방송에서 일하기도 했던 작가는 사회가 당연한 듯 사용하는 언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면서 대중매체의 시각메커니즘과 소통에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영웅캐릭터가 등장하는 <청색에 대한 신화는 없다> 또한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허상을 드러내며, 퍼포먼스의 영상 스틸 컷을 전시한 <일그러진 현실>은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명확하다고 여겨온 정보들 속에서 진실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삼라의 <아랍의 봄>보다 먼저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정서적으로 금방 접근할 수 있었다. 지아드 안타의 영상작품이 그렇다. 터키행진곡을 연주하는 이 영상에서는 마땅히 들려야 할 피아노 연주는 침묵하고 건반을 내려치는 타격음만이 공격적으로 울리고 있다. 이에, 행진곡은 전쟁을 떠올리게 하고 타격음은 폭력적인 갈등을 자아낸다. 여기에서 시선을 돌리면 사딕 알프라지를 만나게 된다. 모국(이라크)에서 추방당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 <지식을 획득하는 단계>에는 무채색의 배경과 검은 ‘존재’가 등장한다. 세 번으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수그러드는 허리와 고개는 제목과 달리 겸손이 아닌 슬픔으로 여겨진다.
압둘낫세르 가렘(사우디아라비아)의 작품은 자신이 인식한 사회의 현실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렘은 <동식물 군락>, <콘크리트블록>을 통해 통제에 대한 불신을 떠오르게 하며, <수송 중>에서 그는 가득 메워진 아랍 문자와 아라베스크, 다이아몬드 가루 위에 활주로와 이륙하는 비행기를 두어 이중적인 국가의 권력(군사력)과 길을 제시한다. 한편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라에다 사데(팔레스타인)의 작품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진공청소기를 작동시키는 롱샷의 영상작품으로, 여성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변화를 향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의지 사이를 진동한다. 사마 알샤이비(팔레스타인/이라크)의 작품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서가 느껴진다. 수면에 완벽하게 반사-복제된, 현실과 유사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은 빼앗긴 땅, 혹은 전쟁으로 인한 결핍 앞에서 무기력한 갈망을 드러낸다.
모하메드 카젬(아랍에미리트)은 폭넓은 관심사를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관찰하고 오브제를 수집하거나 사진으로 작업한다. <나의 이웃>에서는 14장의 연작을 나열했다. 이는 그가 머물렀던 두바이의 풍경이다. 이주노동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두바이에서 그의 이웃들은 바쁜 일과 때문에 집에서는 잠만 잤던 모양이다. 빨랫줄 위에서 다 마른 채 방치되어 이곳저곳으로 쏠린 옷가지는 부재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이곳이 두바이인지, 뉴욕인지. 아니면 이탈리아의 한 주택가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오늘날 모든 도시가 지니는 공통의 초상을 옮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도시의 풍경을 드러낸 작품이 또 있다. 칼레드 자라르(팔레스타인)의 <팔레스타인의 삶과 일>이다. 하지만 이건 팔레스타인의 풍경에만 해당한다. 전시장 한쪽에 자리한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가까운 길을 두고 장벽을 돌아 집으로 가야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인 것이다. 전시장의 장벽에는 최단동선이 되는 지점에 예전 팔레스타인 지형의 구멍이 뚫려있어서 장벽의 해체와 영토 수복에 대한 열망을 전달한다.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둘러싼 벽의 높이는 8m. 길이는 700km에 이르며(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는 높이 3m, 길이 18km였다.) 조금씩 해체되거나 새로 축조되기도 한다. 자라르는 이 장벽을 조금씩 허물어 그 콘크리트로 축구공을 만들었다. 과정을 담은 영상에는 아무런 음악도 격렬한 언행도 없다. 청아한 끌과 정의 마찰음 뒤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찰 수 없는 축구공이 등장한다. 자라르의 화법은 격한 감정을 배제하고 다소 ‘쿨’하게 다가오는데, 이보다 더 ‘쿨’한 모로코의 작가 핫산 하자즈는 다소 유쾌한 화면에 거리의 예술가들을 담아서 <나의 록스타 I> 시리즈를 만들었다. 전부 퍼포먼스적인 촬영과정을 거치며 즐거워 보이지만, 자유분방하고 화려해 보이는 이들은 끝내 아랍의 전통문양 또는 캔으로 만들어진 액자(frame)로 둘러싸여 있다.
아랍문화는 과거 문명의 시작이자 중심으로 그 자체로서 찬란한 때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갈음되는) ‘서구’가 주도하는 현대사회는 그들의 틀로 아랍에 대한 재해석과 오해를 생산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틀을 매끄럽게 와해시키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쉬린 네샤트전>과는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슬람의 여성 작가가 드러내는 무거운 주제는 전시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익숙하고 중량감 있는 고민을 쥐여주지만, 이에 반해 <Fluid Form II전>은 다양한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아랍의 일면들을 통해 지금까지 직조되어 온 아랍의 이미지를 헤집어 놓는다. 넓은 전시공간에 펼쳐진 영상과 설치, 회화작품들은 저마다의 화법으로 여느 현대미술전과 ‘다르지 않은’ 유희를 제공한다. 그들이 가진 사회에 대한 고민, 규율과 억압에 기인한 고통, 혼란에 따른 불안, 미지에 대한 갈망, 그리고 세계에 대한 관찰은 여기 대한민국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아랍세계는 생각보다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거대한 유동체는 이제 주목을 요청하고 있다. ●

16.ANG27 Abdulnasser Gharem 'Flora & Fauna' 148 X 209 cm. Coriander Pigment Print on Photorag Paper with 4 Silkscreen Glazes Edition of 8 2013

압둘낫세르 가렘 <동식물 군락> 비디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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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살 삼라 <아랍의 봄> 22개의 풍선, 모래 200×200cm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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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현대미술전 : Fluid Form Ⅱ>을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김유연

“‘아랍의 봄’ 이후 아랍 현대미술의 가능성”

_MG_4318국내에선 아랍 현대미술이 아직 생소한 면이 많다. 왜 지금 아랍 현대미술을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아랍현대미술 전시가 최대 규모로 열렸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루브르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이 건설 중이기 때문에 예전과는 달리 전 세계적으로 아랍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다. 영국 브리티시 뮤지엄과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도 최근 현대미술까지 컬렉션 영역을 확장했으며, 뉴욕도 마찬가지다. 1993년부터 시작된 샤르자비엔날레는 지난 5년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속히 향상돼 아랍의 현대미술 중심으로 굉장히 좋은 작가들을 대거 소개하고 있다. 2009년부터 샤르자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에 두바이 아트페어도 함께 열려 시너지 효과가 크다. 아랍 현대미술은 컨텍스트 자체도 굉장히 다양하다. 2010년 ‘아랍의 봄’ 이후 작가들이 정치적 색채도 강해졌고, 다양한 시각을 확보함으로써 콘텐츠도 훨씬 풍부해졌다. 아랍의 봄 자체가 그동안 묻혀 있었던 지식인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민주화운동이었다. 한국의 1970년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멀티미디어의 역할이다. 하룻밤 만에 22개국에 급속히 전파되어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아랍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냥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민주화 경향으로서의 미술운동의 현주소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2010년에 열린 <아랍현대미술전 : 유동체>에 이어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2010년 전시에서는 아랍 현대미술과 도시 디자인에 주목해 역사, 사회, 정치, 도시환경 변화 등 현대 도시의 변화된 지형도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아랍 현대미술에 집중해 한곳에 멈추지 않고 유유히 이동하는 잠재적인 측면, 소용돌이처럼 정치・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점 등을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아랍의 현대미술가들은 대부분 다국적이며, 원래 부족국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목민처럼 작가들의 생각과 사고도 어느 한 국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철학과 사상도 깊이가 있다. 아랍 현대미술을 정의 내리고 정형화하기보다, 아랍 현대미술이 국내에 소개될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기획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시각이 콜라주되면 내용이 보다 풍부해진다.  한 사람의 큐레이터로서 나의 시각을 제안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이번에 소개된 작가 중에 생소한 작가가 많을 것이다. 현재 내전이 발생한 시리아 지역 작가도 다수 참여했다. 아랍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여러 갈래 중에서도 개념적이고 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이때 개념적이라 함은 굉장히 정치적이라는 뜻이다. 역사를 드러내거나 사회 정치적 이슈, 환경, 개인적 경험 등을 작업으로 표현할 때 자기 목소리가 강하면서, 여러 겹의 메타포에 의해 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이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에 이곳에는 전쟁이 계속 발발하는데 그런 아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인상 깊게 표현한 작업이 꽤 많다.
아랍 현대미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구 중심의 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서구에 의해, 자본에 의해 편향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측면에서 아랍 현대미술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제대로 살펴보려면 한 작가를 집중 조명해도 부족하며 22명의 60여 점을 통해 아랍 현대미술의 전체 흐름을 읽기는 아직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자체마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재로선 이들의 역사,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같은 전시일수록 누가 후원하고 누가 기획했는지 등 어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종속적인 취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독립큐레이터로 남아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어떻게 하면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는 나에게 늘 숙제로 남아 있다. 일단 서구적인 취향이라는 것은, 그 의도가 자기들의 이익 창출을 위한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시장도 그런 관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시장 중심으로 소개되는 주류 작가들보다 오히려 역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다. 서구적인 편향된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다.
아랍미술계의 주요 컬렉션 및 행사들이 엄청난 재정 능력을 갖춘 왕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샤르자비엔날레, 아트두바이와 같은 행사들이 어떠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나.
아랍 현대미술 작가들은 이에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한다. 카타르, 아부다비에 있는 여러 미술관들에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 앤디워홀 등 서구의 미술품들을 소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아랍현대미술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현재 두바이에 크리스티, 소더비 옥션 등이 설립돼 런던과 파리와 연결되어 있고, 글로벌한 움직임이 크다보니 이들 작가의 작품 가격도 당연히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어차피 시간문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가 중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작가가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다양한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싶다. 현재 하나바에서 제안받은 프로젝트가 있으며, 뉴욕에서 열릴 대규모 국제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15년 전 베를린에서 동북아 한자문화권을 중심으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퍼포먼스 보디 앤 아트’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적 있는데, 최근 10년간 변화된 면모를 새롭게 조명할 계획이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