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TOPIC Björk
아이슬란드 출신 싱어 송 라이터인 뷔욕(Björk, 1965~)의 회고전이 뉴욕 MoMA에서 개막했다. 3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그녀가 20여 년 동안 발표한 8장의 앨범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앨범 커버 사진, 사운드, 영상, 악기, 오브제는 물론 의상까지 선보이는 이 전시는 그야말로 미술관에서 일견하는 한 음악가의 인생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술관이 호출한 음악가는 무엇을 보여주었나
서상숙 미술사
현재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 아트리움에서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팝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인 뷔욕Björk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단 하나의 음에서도 극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목소리를 가진 천재적인 가수’ ‘팝뮤직의 지평을 바꾸었으며 음악의 시각적인 프리젠테이션을 바꾸었다’는 등의 평을 듣는 뷔욕은 일렉트로니카,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의상,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한 아방가르드 뮤직비디오 등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팝음악계의 정상을 누린 가수다. 이 전시는 1965년 생으로 오는 11월 50세를 맞는 뷔욕의 첫번째 솔로 앨범 <데뷔Debut>(1993)로 시작해 올초 발매된 <버니큐라Vulnicura>(2015)까지 음악사를 돌아보는 중간 회고전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지난 2013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10년 넘게 함께 살았고 비디오 작업도 같이 한 예술적 동지였으며 딸 이사도라(13)를 낳아 키워 온 현대미술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와의 관계를 청산한 이후 그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한 새 앨범 <버니큐라>에 수록된 뮤직비디오, <검은 호수Blake Lake>가 이번 기획전에 소개 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았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앨범의 음원이 인터넷에 무단 유출되었고 뷔욕은 전시 개막 두 달 전 앨범을 발표해버림으로써 모마가 이 전시를 위해 기획했던 비디오의 상영은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Vulnicura’는 라틴어로 상처라는 뜻의 ‘vulnus’와 치유라는 뜻의 ‘cura’를 합친 말로 뷔욕이 만들었으며 사전에는 없다고 한다. 이 앨범에는 역시 잘 알려진 현대미술 작가와 사랑에 빠져 뷔욕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바니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때로부터 이별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에 만들어진 곡들이 차례로 수록돼 있다.
이 특별전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술관인 MoMA가 비판을 감수하고 팝가수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지난 3월 8일 전시 개막과 함께, 아니 그보다 앞서 3월 2일 프리뷰 직후 MoMA 전시사상 유례없는 혹평이 쏟아져 나와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필자 역시 프리뷰에 참석한 후 큐레이터인 클라우스 바이젠바흐Klaus Biesenbach(모마 P.S.1관장)가 그답지 않게 베테랑 큐레이터로서의 경력과 기획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술 큐레이팅을 전혀 모르는 뷔욕에게 전권을 넘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바이젠바흐에게 팝가수의 기획전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는 2012년 독일 테크노 음악그룹 크래프트워크Kraftwerk를 초대, 같은 장소인 아트리움에서 라디오 액티비티 등 매일 앨범 1개씩, 8일 연속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MoMA P.S.1에서 그들과 관련된 전시를 따로 마련하는 등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기 때문이다.
바이젠바흐는 2000년 뷔욕에게 전시를 제의했으나 “음악을 어떻게 미술작품처럼 벽에 걸 수 있겠느냐”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음악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조건하에 3년 전에야 성사되었으며 뷔욕이 이번 전시의 세세한 부분까지 참여했다”고 밝혔다. 모마는 이번 전시를 위해 아트리움에 가건물을 지었다. 2층짜리로 1층 전시장에서 2층 전시장으로 가려면 전시장을 나와 모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연결된 입구를 통해 2층전시장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이렇게 모두 3개의 임시전시실을 만들었는데 1층에는 2개의 전시장을 만들어 각각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있다. 새 작품인 <검은 호수>가 한쪽 방에서, 그리고 다른 한쪽 전시실에서는 뷔욕의 커리어를 모아놓은 32개의 비디오가 연속 상영되고 있다. 180도로 움직이는 렌즈가 설치된 스포츠 중계용 카메라 4세트를 이용해 찍은 <검은 호수>가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룸은 아이슬란드의 동굴에서 촬영한 이미지에 맞춰 6000개의 콘 모양 장식을 천장에 붙여 방음효과와 동굴 이미지를 연출하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뷔욕의 과욕? MoMA의 과신?
뷔욕은 디자이너에게 “인간의 내장 속에 들어간 듯한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전시장이 비디오 상영관이거나 오디오를 들으며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폐쇄되고 정체된 공간이어서 관객들은 비디오룸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걷고 스치면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2층 전시장에 마련된 <Songlines>는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1층 로비에서 시간이 찍힌 티켓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도 추운 뉴욕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밖에 줄 서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막상 티켓을 받아 들어간 전시장의 빈약함이다. 이미 비디오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뷔욕의 의상과 소품 등을 전시하고 있어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Songlines>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먼 길을 가면서 길을 찾기 위해 노래나 이야기 등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된 곳들을 묘사한 노랫길을 뜻한다.
MoMA는 이 전시장에 뷔욕의 25년 커리어를 대표하는 솔로 앨범 8장에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했다. 블루투스 신호를 이용해 장소를 인식하고 사람의 머리동작에 따라 작동하는 헤드폰을 끼고 아이패드를 목에 걸면 뷔욕의 음악과 아이슬란드 시인인 숀Sjon이 뷔욕에 관해 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오디오를 들으며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40분짜리 이 소프트웨어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짧고 좁은 이 전시장에서 40분 동안 뷔욕의 일생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즐기기는 힘들었다.
전시장에는 뷔욕의 신체를 3D로 스캔해 만든 실물 크기의 마네킹에 무대의상들이 입혀 있다. 200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 입고 나타나 조롱의 대상이 된 (가수 엘튼 존은 이에 대해 미국인은 유머가 없다고 일갈했다) 백조 드레스, 알렉산더 매퀸의 벨 드레스(2004), 후세인 샬라한의 에어메일 드레스(1999)등이다.
또 매튜 바니가 2001년 <베스퍼타인Vespertine> 앨범을 위해 제작한 뮤직박스와 라이브 슈즈, 크리스 커닝햄의 로봇(<All is Full of Love>), <메둘라Medulla>(2004), <볼타Volta>(2007) 등의 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 모자와 머리장식, 악보, 스케치북, 다이어리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뷔욕은 자신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며 때로는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악기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악기들은 1층 홀에 따로 전시돼 있다.
물론 뷔욕의 음악과 비디오는 한번 듣거나 보면 잊기 힘든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독특한 목소리와 거칠게 내뱉는 듯한 창법은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아이슬란드의 풍경과도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한다. 클래식 악기, 특히 현악기를 이용하는 센스가 뛰어나고 아이슬란드의 전래민요, 스스로 만든 악기 등을 믹싱하는 등 뷔욕은 거의 모든 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또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협업자들을 잘 선택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스, 데이비드 황, 크리스 커닝햄 등의 음악감독들이 바로 그들 중의 일부다. <베스퍼타인> 앨범에 참여한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여성 합창단이라든지 트랜스젠더인 앤토니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 등 그의 소리에 관한 감성은 다른 음악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뷔욕은 모마전 개막 전날인 3월 7일 카네기홀에서 <버니큐라> 앨범 월드투어를 시작했다. 모마에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뷔욕의 비디오와 라이브 무대를 보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그만큼 뷔욕의 창의성은 음악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통합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뷔욕의 비디오를 <피필로티 리스트전>(2008)처럼 아트리움의 큰벽에 상영하고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거나 앉을 수 (그리고 누울 수도 있었다) 있게 했더라면, <Songlines> 전시를 마리나 아브로비치전처럼 6층의 특별전시실에 따로 마련했더라면, 크리프트워크처럼 아트리움에서 콘서트를 하고 비디오와 의상 등은 모마 P.S.1에서 상영 전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꼬리를 이었다.
이번 뷔욕전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뷔욕은 MoMA의 제의에 ‘No, thanks’라고 거절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마는 아직 (뷔욕에 관한 전시를 할 만한)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할 일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을 잘 전시하는 것인데 그것에 실패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