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Gangwon International Biennale 2018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일원)이 2월 3일부터 3월 18일까지 강릉에서 열린다. 올해부터 명칭을 변경하고 국제 미술행사로 치러지는 〈강원국제비엔날레〉는 58명(팀) 작가의 작품 110여 점을 선보였다. 하나의 독보적 가치만으로는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한 주제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 어떻게 전시장에 구현됐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
⠀⠀⠀⠀⠀⠀⠀⠀⠀⠀⠀⠀⠀⠀⠀⠀⠀⠀⠀⠀⠀⠀⠀⠀⠀⠀⠀
개최 이유를 찾는 것이 당면과제가 된〈강원국제비엔날레〉
국내에서 국제미술행사가 열릴 때마다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비엔날레의 홍수” “비엔날레의 과잉” 말의 온도에서 느껴지듯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의 근원은 그간 국내에서 열린 숱한 비엔날레 행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실한 구성 등 여러 이유가 꼽히지만 미술이 시장의 시대로 접어든 마당에 비엔날레는 더 이상 동시대미술의 양상 혹은 미래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비엔날레는 그냥 열어야 하는 당위만 존재하는, 미술계 사교의 장이 되어 껍데기만 남았다는 극단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알려졌듯 〈강원국제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개최를 기념하여 열린 〈평창비엔날레〉를 확대한 국제규모의 미술 행사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비엔날레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강원국제비엔날레〉에 대해서도 당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비판을 최대한 유보해도〈강원국제비엔날레〉의 탄생 이유였던 평창올림픽 이후 행사의 존속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
이번 〈강원국제비엔날레〉 홍경한 예술총감독이 내세운 주제는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다. 일견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일면을 내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전시장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보면 세계를 움직이고 구조화한 가치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읽힌다. 즉 이른바 ‘선(善)’만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 그 대척점으로서 ‘악(惡)’은 세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된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월간미술》과의 인터뷰(2월호)에서 올림픽이라는 화려함의 이면에 숨은 위선의 양상을 설명하고 그 존재의 당위성을 설파하면서 그것이 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 강변했다.
그렇다면 이 주제가 과연 전시에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이번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알려진 바대로 주전시장인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와 인근에 세워진 가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우선 주전시장인 체험센터 내부로 들어가보자.
⠀⠀⠀⠀⠀⠀⠀⠀⠀⠀⠀⠀⠀⠀⠀⠀⠀⠀⠀⠀⠀⠀⠀⠀⠀⠀⠀
양아치는 〈가리왕, Tree Man, 孔雀夫人 Sings〉를 통해 욕망이 발하는 악의 극한적 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다. 영상과 설치로 구성된 그의 전시장은 욕망이 그것의 출현을 매개하거나 도움을 주는 대상을 만나 등장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실제로 벌어진 각종 재난과 정치적 사태를 배경으로 해 현실에 대한 응시를 이끌어낸 작업도 선보였다. 영상 다큐멘터리 작가 故 박종필은 〈잠수사〉를 통해 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야기한 세월호 이야기와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사를 담은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 등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침↑폼, 겐지 구보타, 에바&프랑코 마테스, 제이슨 웨이트가 참여한 큐레이터 그룹 Don’t Follow the Wind는 후쿠시마 지진 때 파괴된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해 폐쇄된 구역을 360도 영상으로 보여준다. ‘위기’에 대해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까맣게 벽면을 채운 대형 개미를 설치한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는 콜롬비아 내전으로 분리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두 개의 해골이 붙어있는 형태의 개미는 전 세계의 보편적 문제로 지적되는 이민자와 난민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
체험센터 뒤편의 공터에 컨테이너와 철제 구조물로 만든 임시 전시장은 의외의 효과를 자아냈다. 가공되지 않은 공간에 설치된 작업들은 체험센터의 말끔한 화이트 큐브와 극명한 대비를 이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한다는 점을 드러낸 전시주제에 맞추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프레스 오픈 당시 열린 심승욱의 〈안정화된 불안_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최수진의 퍼포먼스와 신제현의 〈해피밀〉 퍼포먼스도 극명한 효과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이 공간에는 이민자와 난민, 잊힌 산업세대로서 광부(鑛夫), 소통하기 힘든 비동일 언어권의 만남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부터 전쟁,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한 피해자의 현실, 공공미술의 문제 등 동시대미술이 그간 적극적으로 취해온 다양한 주제의 작업이 선보였다. 주제와 작업, 공간이 조화를 이뤄 전시기간이 끝나면 철거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래 보기 드물게 완성형의 전시장이었다.
⠀⠀⠀⠀⠀⠀⠀⠀⠀⠀⠀⠀⠀⠀⠀⠀⠀⠀⠀⠀⠀⠀⠀⠀⠀⠀⠀
전시장을 나서며 이제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숙고해야 할 과제는 개최의 지속여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행사 개최의 이유였던 올림픽이 종료되었다. 미술행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강릉에서 국제행사급의 미술행사를 지속할 이유를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전 〈평창비엔날레〉와 이번 비엔날레가 비평적으로, 운영 면에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주제와 전시형태가 상호 부합하는 나열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주효한 전략이었다고 보인다. 물론 작품의 배경과 그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전시 맥락에 엮을 수 없는 예외적인 사이트도 있었지만 전시의 맥락에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보인다. 이에 앞으로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새로운 개최의 계기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강릉 = 황석권 수석기자
⠀⠀⠀⠀⠀⠀⠀⠀⠀⠀⠀⠀⠀⠀⠀⠀⠀⠀⠀⠀⠀⠀⠀⠀⠀⠀⠀
⠀⠀⠀⠀⠀⠀⠀⠀⠀⠀⠀⠀⠀⠀⠀⠀⠀⠀⠀⠀⠀⠀⠀⠀⠀⠀⠀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