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4

인격화 또는 사물화, 미술제도의 문제

앞선 칼럼에서 나는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미학’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거기서 훨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썼다. 그 말은 사실 완곡어법이다.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말하자. 부리요의 관계미학은 자신이 특정 개념 및 형식적 유사성으로 범주화한 미술을 ‘관객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공존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예술’이라고 내세운 현대미술 담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범주의 것들이 언제든 ‘체험시장 (Erlebnismarkt)’1의 마케팅 전략에 들어맞는 초고가/초 희귀 미술체험상품이나 ‘가벼운 고급 예술(High Art Lite)’2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눈감은 미술온실 속 논변에 가깝다. 그러니 최근 7~8년 사이 한국 미술계의 젊은 작가나 큐레이터, 그리고 대형 미술기관들이 그러듯이, 해당 논리와 작품은 물론 엇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베스트셀러처럼 돌려가며 읊고, 매입하고, 전시하고, 따라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요컨대 ‘관계’란 특정 작가들의 작품과 미적 경향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면서 그로부터 유무형의 이익/권력/유명세를 얻어내거나, 미술에 대한 사회의 속물적 환상을 자극하는 데 쓰는 개념적 액세서리가 아니다. ‘관계’는 미술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기반을 두고 벌이는 행위인 한 근본적 요소이고, 미술이 하나의 인위적 사회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그로부터 책임과 권리와 의무와 역할이 정의되는 확실한 준거 중 하나다.
부리요의 책이 영문 번역되고 국제 미술계에서 반향을 일으킨 후 그에 대한 비판적 논쟁으로 나온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의 글 <적대와 관계미학>이 문제제기하는 핵심도 나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지금 우리의 형편에 비춰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비판은 이것이다. 부리요는 관계미학을 통해 일군의 작가와 작품을 앞선 시기의 미술과 분리하려 했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관계미술은 이전 세대가 꿈꿨던 거창한 미래의 유토피아 어젠다 대신 “이 세계에서 더 낫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경로라고 설파했다는 점이다.3 쉽게 말해 사회 개혁이나 역사 혁명 같은 멀고 거창한 목표 말고, 가까운 사람들과 취향에 맞는 사물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소우주의 현재화를 찬미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양극화의 미학, 미술경향의 문제>에서 짚은 것처럼 그런 상황은 더 거시적이고 더 막강하며 비가시적인 힘을 발휘하는 현행 패권 지형을 공고히 할 뿐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사회 전반이나 미술계의 현상처럼, 청년세대가 눈앞의 작은 이익과 발등의 불 끄기에 매이고, 지금 여기의 기분 전환에 급급해서는 진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다.
비숍의 논문은 부리요의 논리에 매우 정교하고 생산적인 비평 논쟁을 제공했다. 그러나 부리요의 책이 받은 관심과 끼친 영향에 견주면, 비숍의 비판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여러 이론가 사이에서는 중요한 텍스트로 회자됐지만, 부리요의 그것처럼 작가나 전시나 미술관 등지에서 폭발적인 지지와 유행, 심지어 물신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비숍의 비판적 논의보다 부리요의 동시대미술계 일부(작가, 큐레이터, 작품, 경향, 시스템)를 위한 비평적 에스컬레이팅이 훨씬 더 미술제도에 먹히는 것, 그 제도가 원하는 지적으로 세련됐으면서 직관적으로도 매력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관계미학》을 통해서는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타 작가와 큐레이터, 흥행을 열망하는 미술관의 전시기획에 부응하는 미술형태, 대중과 언론의 호기심이 꽂히는 아트 이벤트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비숍의 논쟁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제도란 이 같은 냉정한 생리와 계산법으로 작동한다. 이미 비숍이 인용했던 할 포스터의 솔직한 지적, 즉 혁신적인 공공미술이나 장소 특정적 작업들이 문화 정치적 프로모션과 근친하는 일이 미술계에서 비일비재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심지어 “제도는, 상황이 달랐더라면 그것이 집중 조명했을 작업에 그늘을 드리울 수도 있다. 즉 제도가 스펙터클이 되며, 문화 자본을 끌어들이고, 또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스타가 된다.”4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역시 문제는 다시 ‘관계’다. 그런데 이때 관계는 단지 심리적이고 주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며 객관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통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미술제도와 우리는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사람들은 대체로 제도를 두 가지 방식으로 대하는 것 같다. 하나는 인격화시켜서, 다른 하나는 사물화시켜서 말이다.
예를 들어 젊은 작가들을 뽑는 어떤 아트 레지던시 기관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거기서 일하거나 그 선정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 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지원자는 그런 사람들의 미적 지향이라든지 선호 경향 같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역대 선정자들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탐문한다. 나아가 여러 관계(인맥, 학맥, 친분 등등)를 통해서 좀 더 우위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실제로 그에 맞추려고 애쓰기도 한다. 다른 한편, 미술제도를 사물화하는 경우는 예컨대 국공립미술관의 관장이라는 중책을 ‘권력의 자리’로 물화시켜 능력과 자질과 인성과는 상관없이 처리할 때다.
또 특정 이익단체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공적 미술기관을 무고(誣告)하거나 집단행동으로 부당한 위력을 행사할 때다. 그럴 때 그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에 자리를 탐하는 자신의 능력 부족과 자질 및 인성의 궁핍함을 성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자신이 부당하게 대하는 그 기관 및 제도 안에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워지고,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이용가치만 셈해진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미술제도의 차원에서 그 제도의 구성원, 행위자, 관계자, 그리고 제도 밖의 주체를 일종의 사물처럼 비인격화해서 취급하거나, 인간적 관계들에 과도하게 의존해서 제도를 운용하는 경우다. 기계적인 잣대, 실체 없는 통계지표, 허수로 가득 찬 경력 조건으로 국제 행사의 주관자를 지명하고, 대표 작가를 선정하고, 공적 지원금을 나눠주기. 또는 시스템의 규정과 가치평가 기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알음알음과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행정을 집행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결국 책임지지 않기. 이런 사례들은 내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미술계에서 종종 겪거나 심지어 행위의 당사자들이기도 한 실제 상황이다. 우리와 미술제도의 관계는 현실에서 대략 인격 vs. 비인격, 인격 vs. 인격, 비인격 vs. 인격, 비인격 vs. 비인격 이런 양상으로 펼쳐지지만, 각각의 정도 차에 따라 무수한 변종의 관계가 가능하다. 아마도 미술계에 갓 진입한 젊은 작가(혹은 나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미술계 경험이 적은 이들)가 각종 미술제도에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그런 복잡다단하고 불규칙하며 모호한 관계 양상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계 현실은 충분히 어렵고 충분히 문제적이다. 하지만 가령 내게 유학 갔다 온 옛 학생이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여기는 다 연줄로 일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뭔가를 부탁해 올 때 무척 괴롭고 곤혹스럽다(그 괴로움과 곤혹감 때문에 답을 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함을 전한다. 미안합니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공개하는 곳에서 당연하다는 듯 ‘미술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가 빨라야 하고, 기관에 있는 사람들과 잘 알고 지내야 한다’고 선언할 때 뭔가 아주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제도를 이용하는 일이 눈치로 인격화되고, 인간관계가 기관을 통해 물화되는 미술계 현실에서 “예술작품의 구조가 사회적 관계를 생산한다는 부리요의 주장”5에 경도된 지금 여기 미술 전문가, 작품, 전시, 미술관교육, 아트 프로젝트는 얼마나 기이한가.
3월 25일 아트선재센터 1층에서는 사무소(samuso)가 기획한 ‘차고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사무소 옆 작은 주차장을 전시공간으로 내주는 ‘차고 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한 작가 16명/팀(이들은 선착순에서 밀려 전시 기회를 얻지 못했다)이 작품 발표를 한 그 행사에 묵묵히 3시간을 있었다. 그때 내가 경험하고, 이해하고, 생각한 것들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술제도란 미술관 건축물처럼 딱딱한 하드웨어도 아니고, 온갖 이글거리는 욕망과 자의적 이해관계로 쥐락펴락하는 주관성의 덩어리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술제도는 ‘선착순’을 또 다른 경쟁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끔찍한 대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과도한 경쟁이나 비생산적 우열 짓기를 극복할 다른 길로 이해하는 이에게는 언제라도 더 좋은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현재의 준거다.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1 독일 사회학자 게르하르트 슐체는 『체험사회』에서 동시대가 전사회적 체험합리성의 시대, 사회적 기제들이 거의 모두 경제적 목적에서 체험을 도구화/상품화하는 데 맞춰진 체험 지향적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체험시장’은 그 구체적 경제 제도다. Gerhard Schulze, 《Die Erlebnisgesellschaft: Kultursoziologie der Gegenwart》, Gampus, 1992.
2 스텔라브라스는 1990년대 미술, 특히 yBas의 미술이 “예술처럼 보이지만(…) 그 대체물로 작동하는 예술”이라며 이 명칭을 부여했다. Julian Stallabrass,《High Art Lite》, Verso, 1999, p. 2.
3 Claire Bishop, , 《October》, vol. 110(2004, Fall), pp. 51~80 중 54. 인용구는 부리요의 것이다.
4 Hal Foster, 《The Return of the Real》, 이영욱・조주연・최연희 역,《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3, p. 292.
5 Claire Bishop, 같은 글, p. 63.

위 한선정 <리본> 리본에 출력 가변설치 2012
2012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제27회 한선정 초대전> 전시장 입구에는 평론가, 기획자 등 한국 미술계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축하 메시지가 적혀 있는 리본이 전시됐다. 이 전시는 <아르코미술관 전문가성장프로그램>에 ‘선정’된 9명의 작가(곽이브, 김경호, 김진희, 박재환, 송유림, 신주영, 이수진, 장유정, 정주희)가 기획한 가상의 작가(한선정) 개인전을 빙자해 신진작가가 경험하고 바라본 공모, 전시, 비평 등 국내 미술 제도에 대한 풍자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