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유근택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행복은 오늘에 없는가

다양한 실험을 모색해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작가 유근택의 개인전 <끝없는 내일>(11.6~12.28)이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유근택은 ‘지금’ ‘여기’의 실경에 주목해 구체적인 일상을 담은 한국의 진경을 과감없이 선보인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유근택의 작업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은 한국화(동양화) 영역의 리더 격인 중견작가의 ‘실험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다수의 눈이 역시나 비슷하다. ‘실험’이란 말은 신진이나 작가의 초기 경력을 소개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인데, 중견 중에서도 ‘고참’인 작가의 경우라 독특하다. 그런데 뭉근한 회오리가 몰아치며 무서운 힘을 내듯, 중견의 실험이나 명장의 혁신은 그 지긋한 영향력이 젊음의 순간적 변혁보다 큰 법이다. 더구나 그의 작업은 개인적 실험이라기보다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으로 보이기에.
유근택의 수묵채색 회화전이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작업한 회화 60여 점이 ‘끝없는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수송동 OCI미술관에 펼쳐 있다. 그의 실험이 더 진척된 게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선 “그를 굳이 한국화가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철없는 질문까지 들 정도다. 가까이 눈을 붙여 재료를 확인하지 않으면 거의 유화인 줄 안다. 그래서 우린 자문하게 된다. 어디까지 이어받고 무엇을 떨쳐내는 건가. 동시에 무엇을 들여오고 어디까지 열어두는 건가. 지금 우리가 관심 있게 볼 일은 유근택이 과감하게 밀고 가는 실험성의 내용 자체이다.
전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그의 <산수> 연작 10점은 가로 2.7m, 세로 1m 크기의 대작이다.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회화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현 기법이 유화를 닮아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별을 무색게 하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전통화의 재료와 매제를 유념치 않고 마주하는 이 풍경에서, 관람자는 동양과 서양을 모두 느낀다. 눈으로 보며 개인적으로 지각한 풍경이란 점에서 서양화의 시각을 지니고, 회화의 골격과 구조가 되는 먹선들이 전체 구성을 이루기에 한국화의 산수를 떠올린다. 더욱이 긴 폭의 전통 산수화를 수평으로 펼치는 파노라마 정경은 역시 동양적 시각구조이다.
그의 전시에서 확인하듯, 다양하게 전개되는 한국화의 표현언어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이다. 한지와 먹, 그리고 채색이란 재료의 기본은 살리되 그 외 템페라를 도입, 두꺼운 마티에르를 구사한다. 호분(胡粉)이야 한국화에서 본래 쓰는 것이지만, 이를 유화물감 쓰듯 겹치고 올려서 두껍게 표현하는 색채 구사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한 것이다. 이렇듯 표현의 이탈은 새로운 감성을 불러오고 시각적 효과는 확장된다.
미술의 창작은 과거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이를 현재에 맞게 바꿔야 하는 것이다. 유근택이 한국화 장르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과 과감히 버리는 것을 생각할 때, 흥미로운 건 그러한 취사선택이 대립적이거나 택일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의 수묵채색화는 실제 풍경에 기반을 둔 지극히 개인적 시각이란 점에 주목한다. 이는 서양 모더니즘에 근거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실사(實寫)는 이미, 또 언제나 심상(心象)의 투영이라는 동양미학의 태도를 지닌다. 양자는 전혀 다르지만, 유근택의 회화에서 무리 없이 섞인다. 객관의 묘사가 바로 심상의 표현인 동양적 태도는 그의 회화에서 세계를 보는 개인 주체의 서구적 시각과 자연스레 맞물린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유근택 회화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매듭’이 두드러지지 않고, 그 ‘충돌’이 유연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회화가 가진 ‘모호성(ambiguity)’의 실체라 여기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글을 살펴보면, 많은 비평가가 이 모호성을 주목했지만 이를 그의 그림이 지닌 표현기법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주의적 해석은 유근택 회화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모호함이 작가의 특징적 표현기법이함은 모호한 표현에 대한 단순한 묘사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가 동양화에 입문하여 습득하기 시작한 먹과 채색의 사용, 그리고 여기에 템페라와 호분 등으로 붓질한 뒤 주걱으로 뭉개어 초점을 흐리며 표면에서 동요하는 색채의 효과 등은 모호한 기법에 대해 묘사한 것일 뿐, 이 기법과 연관된 내용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다양한 실험을 통한 표현상의 모호성이 동양과 서양을 교섭하는 회화적 공간을 형성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호성이 가진 ‘중간 영역’의 특성 및 ‘독자적 공간성’은 그의 그림면(picture plane)에 확보된 이질성과의 완충지대와 다름없다. 때문에 그의 회화 표면층에서 벌어지는 동양과 서양의 충돌은 붓질의 완충작용을 통해 흔들리고 동요한다. 이러한 회화적 운동감은 모호한 공간의 층위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러한 문화 충돌이 순전히 호분과 템페라, 그리고 먹을 통해 이뤄지니 그 반복된 운필의 농밀한 색채 감각이 어느새 현대회화의 다채로운 표현언어를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의 모필사생(毛筆寫生)이 미키마우스며 피카추 인형, 그리고 자전거, 빨래, 변기를 그려내도 별반 어색하지 않다. 또 멋진 산수를 묘사하는 준법(皴法)으로 물 빠진 충주호나 황량한 돌산을 그리고, 아파트의 커튼 줄이나 실내의 화분 등 도심 속 평범한 일상을 그려도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거다. 한국화의 논법에 일상의 생활이 녹아들면서 그의 회화표면은 모호해진다.
이렇듯 회화의 문화교섭 과정에서 유근택이 과감히 버린 것이 있다면, 화가의 정신을 짓누르던 거대 서사이다. 그의 그림의 공간에선 한국화의 관념적 정신주의가 붕괴되고, 그 자리에 물질적 개인주의가 들어온다. 동경의 세계는 일상생활이 대치하고,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던 시적 공간에 실제 삶의 리얼리티가 그 민낯을 들이민다. 지극히 일상적인 개인의 체험은 이상적 세계와 동떨어진 채, 그 뒤죽박죽된 현실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갈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실제는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차라리, 현실의 긴장이 평정에의 동경을 밀착되게 요구하고, 지금의 혼란이 미래의 행복을 절실하게 불러온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그리는 그의 그림은 언제나 내일을 지향한다. 전시의 제목이 <끝없는 내일>인 이유이다.
따라서 작가가 회화 전면에 제시하는 소위 ‘일상’이란 그리 단순치 않다. 일상을 풍경에 녹일 때, 그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릴 때의 태도”로 임한다고 했다. 진경산수가 실생활의 진(眞)풍경으로 전환되는 셈이고, 그 내용은 예측불가하게 다양하며 복잡하게 된 거다. 한국화에서 동경했던 공통의 이상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긴장 등의 복합적 정서가 그림의 표면에서 맴돈다. 그래서 그의 일상의 모습은 확실한 내러티브가 아닌,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뭔가 숨은 느낌의 이야기다.
그렇듯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인 일상의 표현은 그의 회화를 구상과 추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구상의 외양을 갖춘 추상적 내용이 유근택 회화의 모호함의 실체일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이 회화의 평면에 일종의 ‘사이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인 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유근택 회화를 논하며,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나 혹은 “자립적 회화 공간”이라 명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언어, 재잘거림, 침묵, 때로는 소음>, 2005 도쿄 21+yo갤러리에서 열린 유근택 개인전 카탈로그 서문 참조) 여하튼 그가 확보한 회화면의 자립적 공간은 주체와 대상, 작가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선보인 <말하는 벽> 연작은 그것이 구상이긴 하나, 제시하는 내용은 알 수 없다. 스토리 라인은 미확정이다. 서울 경복궁 근처 옛 미국대사관저를 두른 높은 돌담장과 그 아래 모인 아이들 모습을 구체적 설명 없이 암시적으로 제시했다. 세밀하게 묘사된 사간동 돌담벼락에서 소곤거리는 아이들의 불안한 뒷모습과 벽의 세밀한 디테일이 묘하게 어울려 뭔가 숨은 일상의 비밀을 애매한 상태로 제시한다. 그림의 소재인 벽이 주는 단절감은 그 앞에 모인 아이들의 은밀한 소외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그러한 비밀스러운 정서와 복합적 감정이 얽혀 있어 이 그림의 ‘구상성’을 의심하게 된다. 요컨대, 유근택 그림의 모호성은 그것이 그의 표현기법뿐 아니라 내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최근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업들의 주제가 “지독하게 조여진 삶 속에서 또 다른 욕망과 꿈을 간직하며 인내하는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는 내용은 “서양문화가 스며들어와 동양문화와 충돌하는 개념”이며 “우리 삶이 뒤죽박죽된 비빔밥 같은 세상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시를 거듭 보면서 유근택이 자신의 작업에서 풀어내려는 화두는 결국 이질성에 대한 주체적 수용이란 생각이 굳어진다. 문화적 충돌의 회화적 대응에 보인 그의 표현언어는 대체로 상징과 은유를 활용하고, 때론 팝아트의 모티프와 포토몽타주의 기법을 쓰고, 그래서 신표현주의, 인상주의, 팝 회화, 초현실주의 같은 서구의 이름에 기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미적 태도는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관망’의 자세이다. 이것이 동양화의 재료에서가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그를 한국화가로 여길 수 있는 궁극적 특징이라 여긴다.

유근택 (9)

<말하는 벽>(맨 오른쪽) 한지에 수묵채색 184×209cm 2014

유근택 회화가 지닌 ‘모호성’의 의미
유근택이 깊은 고민과 실험 후 한국화의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제시한 때는 1991년 관훈미술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 1990년대 초이다. 작가로서의 성장 배경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친 수묵화운동과,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의 채색화운동이 있었다. 1984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 한국화 분야의 중심부에서 ‘현대화’에 대한 요구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그다.
1980년대 후반은 한국화단에서 서구미술의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때였다. 말하자면, 그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방식에 비해 전통과 관습에 매인 한국화의 경직성에 답답함이 더하고 비교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독일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퍼진 신표현주의의 거침없는 표현은 그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그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안젤름 키퍼나 바젤리츠 등의 화집이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그의 말마따나 산수화와 사군자를 관습적으로 배우던 한국화 분야의 예비 작가들에겐 “혼란”과 “갈등”이었다. 이러한 한국화단의 위기의식이 그에겐 ‘약’으로 작용한 듯하다.
유근택의 작업에서 중요한 변화는 1999~2000년의 <창밖을 나선 풍경> 연작과 <다섯 개의 정원> 연작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는 2001~2004년에 제작된 <풍경> 연작이나 <사라짐에 대한 경의> 연작으로 이어지며 유근택 회화의 뚜렷한 표현언어를 형성했다. 정원이나 수풀 등의 풍경에서 짧은 필획이 무수히 반복되며 현대적 산수화의 열린 가능성을 보였다. 파묵(破墨)과 선염(渲染)을 적절히 구사하며, 호분과 수묵으로 다양한 기법을 운용하는 그의 회화는 공간에 두꺼운 재질을 쌓아가며 중첩된 형상들 사이 잔잔한 운동과 흔들리는 율동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 운필의 동요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모호한 공간이다.
더불어 2000년대 초부터 자주 등장한 일상의 풍경을 팝의 감각으로 다룬 실내 정경의 그림들은 묘하게도 영국의 현대회화와 통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영국 북부의 풍경을 보고 그린 실경 회화의 자연스러움이나, 키타이(R.B Kitaj)의 팝아트 회화는 파스텔과 같이 흐릿한 기법과 몽타주 방식에서 예기치 않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동시대의 미적 유사성이 다른 문화의 코드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영국의 리얼리즘이 유근택 회화의 실제성과 통하는 면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생각으로 이번 전시의 <산수> 연작으로 돌아온다. 거울에 비친 반영인 듯, 아니면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호수 주변의 풍광과 수면에 비친 경치의 구분이 없다. 실제와 허상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동양화의 구성과 관조가 느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뚱하게도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마르셀 뒤샹 등의 작품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진풍경을 보이는 또 다른 풍경엔 서구의 이질적 기호들이 호수면을 부유한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맥도날드 로고, 그리고 디즈니 캐릭터와 같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아이콘들이다. 이질성은 어떻게든 수용될 일이다. 관건은 ‘비판적 거리감’을 확보하고, 관조하며 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내 삶을 위해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유근택의 회화처럼 말이다.
수묵채색을 기조로 하는 한국화의 대표 주자로서 유근택이 보여주는 오늘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관념적이고 보편적인 한국화의 코드를 끊고 대면하는 ‘지금, 여기’이기에, 비록 온갖 잡스러운 오브제가 난무하는 공간일지라도 그 모습을 관망하는 중심이 느껴진다. 이것이 남루한 오늘, 이 자리에서 꿈과 희망을 내일로 미루더라도 우리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이다. 끝없는 내일이 펼쳐진다 해도 현실의 문제를 껴안고 갈 수 있는 한국화의 자신감이다.●

유근택 (8)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관훈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베이징, 타이베이 등지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석남미술상(2000),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3), 하종현미술상(2009)을 수상했다. 현재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Artist Review] 남경민

이상한 방, 낯선 작업실

남경민은 자신이 동경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차용해 그들의 화실을 꾸몄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풍경 속에 머물다>(11.7~12.19)에서 그는 고전을 소재로 우리나라 옛 화가들의 방 안 풍경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꼼꼼한 소품 묘사와 눈길을 사로잡는 색상으로 재현과 상상의 혼합,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서술의 방식이 공존하는 그가 그린 방을 찾아가 본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현대란 역사적 연대기상의 고정된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되려는 노력의 표현’(서동욱)을 지칭한다. 현대미술 역시 그렇다. 진정한 현대미술이란 현재의 삶과 문화에 대응해 그것에 대한 올바른 사유에 바탕을 둔 미술적 행위일 것이다. 단지 동시대라는 시기에 국한된 미술행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현대미술은 현대라는 시기의 삶이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문제들에 미술이 밀착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삶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 있어야 삶을 밀고 나갈 수 있다. 현대미술은 그런 맥락 아래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전제로 한다. 다른 이의 삶과 생각과 마주치면서 비로소 한 미술가의 다양한 실험과 작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고정된, 절대적인 미술의 어법이란 없다. 미술이란 개념도 늘 변화의 과정 속에서 단련된다. 니체는 고정적 진리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진리의 나타남이란 ‘관점 수립의 문제’이다. 새로운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오며 그 기존의 가치를 비판에 부치는 것이 바로 ‘힘의 의지’다. 존재자들이란 힘의 외관이기에 힘의 의지는 존재자들이 서로 부정하지 않고 차이를 지닌 상태로 나타나게 해주는 요소이다.
니체에 따르면 존재자들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자를 부정하지도 않고, 다른 존재자와의 차이를 지닌 채 자신의 본성 가운데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를 이은 들뢰즈를 비롯 탈근대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었다. ‘나’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아우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생성’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를 알려면 “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외부와의 마주침이 없으면 사유와 생성과 변화는 없다. 변화의 계기는 낯선 기호와의 마주침에서 온다. 장자 (莊子)에 의하면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긴장된 균형, 판단 중지의 마음을 일컬어 ‘천균(天鈞)’이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문화의 시스템에 길든 익숙한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자 라캉 식으로 말하면 상징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니 작업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탈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자 진정한 새로움이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있다고 본다. 그럼 어떻게 타자를 만나지?
남경민은 자신이 동경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차용해 방을 꾸몄다. 과거 거장들과의 영혼의 교감을 꿈꾸었다고 한다. 작가가 그린 그들의 방, 작업실은 허구의 방이자 환영에 속한다. 미술사를 참고한 공간 연출인 셈이다. 방이란 사적인 공간이고 개인적인 기호와 취향을 반영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들로 방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단원과 혜원, 겸재 및 신사임당의 그림이 민화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 사이로 베르메르나 모네의 그림 등도 슬쩍 끼워져 있다. 서안과 거문고, 경대, 촛대와 서책을 비롯해 문방사우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공간은 그대로 선비들의 사랑방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조선시대로 우리들을 초대한다. 이전에는 서양 작가들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이번 근작은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작가에 의하면 동양을 잘 알고 싶다는 욕망, 그래야 서양 것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또한 동양화를 ‘현대화’ 하고자 하는 바람도 깃들어 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동양적인 것, 전통을 이해해야 나를 온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며 더불어 지금의 내 안에는 서양과 동양이 혼재하기에 그 둘의 혼융된 상태를 보여주는 화면이 결국 자신의 초상일 것이라는 말이다. 해서 그려진 그림은 시공을 초월하고 기존 자료를 자의적으로 배열해서 이룬 상상화다. 사실 역사란 상상될 수밖에 없다. 남겨진 제한된 유물과 단편적인 기록에 의거해 빈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 역사다. 작가는 조선시대 겸재나 단원이 거주하고 그림을 그리던 공간, 방 안을 상상해 그렸다. 당시의 물건들,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 사이로 낯선 존재들이 개입하고 침입한다. 허구적인 이 방 안 풍경의 연출은 정교한 기법에 힘입어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질하게 마감된, 비교적 커다란 화면에 빼곡하게 자리한 물건들, 화사한 색상으로 도포된 화면, 부분적인 음영 처리, 사라진 그림자, 원근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평면적인 화면, 창과 거울, 그림(액틀)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반영하면서 만들어진 복잡한 공간 연출 등이 눈에 띈다.

동・서양이 조화된 화실
최근 많은 작가가 이렇게 모방과 차용, 패러디 및 이질적인 양식의 공존, 낯선 기호의 충돌, 재현과 가상이 공존하는 묘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기존의 장르개념이나 확고하고 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자 ‘나’ 이외의 타자들을 적극 수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 미술의 융합, 원근법과 동양화기법의 절충, 고전의 패러디 등이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작업인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작업인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낯선 기호, 이질적인 양식의 공존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의 나비가 동영상으로 날아다니거나 전기의 <매화서옥도〉 속 주인공이 특정 캐릭터로 대체되거나 책가도를 사진으로, 민화를 플라스틱 오브제로 만들어내는 여러 작업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는 무척 곤혹스럽다. 이처럼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과 그 해석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고민 대신 원본(전통)의 자유로운 참조와 이에 대한 독창적 번역을 과감하게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전통이미지라는 텍스트는 고유한 의미를 발현하는 오리지널리티로서의 권위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원본의 무게가 탈각된, 언제든지 인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 중의 하나로 기능한다. 그저 여러 정보 중 하나가 된다. 그에 따라 이 복수적 텍스트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작가에 의해 조작 가능한 수많은 기표로 다루어지고 서로는 자유롭게 접합되고 연쇄된다. 우리 문화 속에 내장되어 온 시각적 텍스트들이 당대 텍스트들과 마구 뒤섞이면서 작품은 다차원의 공간으로 재영토화하고 그 의미는 무수하게 복수화되어 산개한다.
남경민의 그림 속에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기물과 당시의 그림들이 있는 방에 반복해서 날개, 날개가 담긴 투명 유리병, 화병에 꽂힌 꽃, 스노 볼, 해골, 나비, 손거울 등이 박혀있다. 일종의 알레고리 역할을 하는 도상들이다. 꽃, 해골, 불 켜진 초(꺼진 초), 하나뿐인 날개 등은 죽음, 덧없음 그리고 좌절을 상징하는 도상들일 것이다. 다분히 바니타스 정물화의 도상들을 연상시킨다. 모방해서 그린 그림들 역시 죽은 이들의 그림이다. 화사하고 환하고 명징하게 다가오는 그림 속 이미지들은 실은 부재와 죽음, 소멸 그리고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동되고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영향 받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장치들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 영향 받은 것들, 그로 인해 형성된 ‘나’를 재현한다. ‘나’는 이처럼 무수한 타자, 낯선 기호들로 직조되어 있다. 화가들은 미술사를 통해 접한 옛그림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다.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익힌다. 미술관과 화집을 통해 영향 받는 것이 화가다. 남경민은 화집 속의 그림들을 차용해서 방을 꾸몄다. 거장들의 작업실이고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다. 화면 가장자리에 그려진 커튼은 이곳이 연극무대처럼 가상으로 이루어졌음을 들여다보라는 배려다. 따라서 방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이미지는 저마다 의미를 지니며 서사적 역할을 한다. 단원과 겸재의 방은 그들이 그린 그림,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공간, 그들의 생애와 관련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안에 있는 그림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림 속 실제 풍경, 거울에 비친 장면 등이 모두 동일한 그림에서 파생되어 선회한다. 따라서 공간은 다층적인 공간, 열린 공간으로 무수히 확장되어 나가는 느낌을 준다. 실재와 가상이 놀이한다. 눈속임과 트릭이 교차한다. 작가는 이렇게 익숙하지만 한 공간에 공존하면서 낯섦을 유발시키는 기호들을 매끈하고 정교하게 그렸다. 유화로 그려지고 쓰여진 고서화와 한문글자는 익숙한 대상들을 무척 낯설게 한다.
남경민은 한 화면 안에 이른바 동양화와 서양화를 뒤섞었다. 특히 동양화가 유화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고전을 소재로 사실적인 기법(극사실에 유사한)의 그림을 그렸으며 실내를 그린 그림은 정물과 풍경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개별적인 소품들을 꼼꼼히 재현하고 장식한 그림이자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는 이들을 즐겁게 참여시키는 그런 그림이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이질적인 문화, 기호가 충돌하고 교차한다. 따라서 이 그림 안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고유한 것, 확고한 것, 단일한 중심은 부재하고 상이한 것들이 어우러져 완성된다. 차이를 지닌 것들이 모종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은 채 그들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한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익숙한 장면이고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어딘지‘언캐니’하다. 친근하면서도 낯선 느낌, 그러니까 원래 낯익은 것이지만 동시에 망각된 것이기에 의식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불안한 모호함에서 발생한 ‘낯익은 낯섦’이라고나 할까. 근대 이후 한국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갈등과 차이 속에서 어떻게 한국적인 현대미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이 ‘한국적 현대미술’ 혹은 ‘전통의 현대화’란 것이 문제적이다. 그것이 과연 실체 있는 것이 될 수 있나? 그 단어가 성립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전통의 현재화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전통에 기반을 둔 한국현대미술이란 것도 무척 애매보호하다. 이 ‘번역’의 문제를 가장 고통스럽게 인식한 이는 박이소였다. 그는 불가능한 두 영역의 순진한 조우 대신에 그 충돌, 차이, 마찰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이다.
남경민은 정보를 재배치하고 이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공들여 그린 ‘이상하면서도 예쁜’방을 만들었다. 자기를 이루는 ‘타자’들을 수집했다. 그러고는 이를 재배치했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차용과 가상의 연출은 보편적인 어법이 되었다. 이는 동시대미술의 주된 방법론이다. 그 사진·영상이미지의 매끈한 피부 또한 그렇게 이식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보들의 가상적 연출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감정이나 해석이 빠지면 그림은 공허해진다. 작가의 뜨거운 몸을 관통한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붓질의 맛이나 그림 전체의 회화적 느낌, 여운 등은 그곳에서 나온다. 그림은 한 작가의 몸이 만든다. 아니 몸을 관통해서 나온 것이 예술이다. 정보와 가상의 연출, 집요한 그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이 과연 전통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몸, 결이 어떻게 화면 위로 배어 나오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남경민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덕성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1999년 갤러리 담에서 열린 <창-드러남, 드러나지 않음>을 시작으로 총 9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제6회 송은미술대상전 우수상을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송은문화재단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Artist Review] 남계 이규선

남계 이규선(南溪 李奎鮮, 1938~2014)의 타계는 한국화 화단의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추상적 한국화 작업을 지속해 온 고인의 발자취는 한국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 보편성 획득이라고 평가받는다. 그의 전시를 기획했던 필자의 글을 통해 남계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文人畵를 지향했던 추상화가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사
지난 9월 26일, 한국화가 남계 이규선(南溪 李奎鮮, 1938~2014)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웠기에 주변의 아쉬움은 크기만 했다. 작품세계 이상으로 인망이 두터웠던 고인이었기에 미술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눈물을 훔쳤다. 올봄 고인의 전시를 기획했던 필자에게도 그의 부고는 충격이었다.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에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이규선은 20세기 한국화(韓國畵)의 추상적 흐름을 선도해온 대표적인 작가로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 년 동안 추상적 한국화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척해왔다. 그는 ‘동양의 미술은 전통적’이고, ‘서양의 미술은 현대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관점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이규선은 서양화로 미술계에 입문했고, 1950년대 후반 국전에서 서양화로 여러 차례 입선할 만큼 학습기에는 서양화에 주력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스승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과의 만남을 통해 문인화를 접한 뒤 동양화로 진로를 설정했고, 대학 졸업 이후 일신미술가협회(一新美術家協會), 한국화회(韓國畵會) 등 젊은 미술가들의 그룹 활동을 주도하며 한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규선이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는 한국의 미술가들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는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 그리고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화 작가들에게 더욱 직접적이고 첨예한 문제였다. 이규선 역시 이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작가가 전통적 방식으로 회귀하거나, 서구의 추상적 방법에 경도되었던 반면 이규선은 한국의 정체성 계승과 세계적인 보편성 획득이라는, 어쩌면 상반되고 이질적인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를 위한 그의 방법은 단순히 한국의 전통과 서구적 요소를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의 추상화풍 한국화의 단서는 이렇게 마련되었다.
사실 1950-60년대 한국화단은 “추상미술이야말로 진정 현대적인 미술의 형태이며, 참신한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추상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있을 만큼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이규선 역시 이러한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가장 두드러졌던 앵포르멜과는 거리를 두고, 기하학적 추상과 전통 문인화의 미의식 및 양식의 융합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노선을 걸었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기하학적인 구조와 절제된 선, 강렬한 색채와 먹의 대비를 이용해 한국화에서 추상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검은색과 다양한 밝은 색의 대비 및 발묵 효과를 이용해 자연의 물상들을 연상시키는 따뜻하고 유쾌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추상화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동양화의 핵심인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와 대비를 정갈하고 담백한 구성 속에 녹여낸 작품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전통문화의 정신적 뿌리에 대한 고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의 작품들은 이규선의 예술세계의 또 다른 국면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작품이 수묵 중심의 무채색 화면을 통해 동양의 정갈하고 고요한 미(美)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었다면, 2008년을 기점으로 한 작품은 밝고 맑은 색면을 검은색, 흰색의 색면과 함께 조화로운 비례의 수직구성 속에 배치함으로써 아름다운 삶과 자연을 노래하는 듯한 뉘앙스(nuance)를 느끼게 했다. 색채와 구성의 조화에 의한 화면의 아름다움은 작가 특유의 탁월한 감각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를 스스로의 낭만적이면서도 사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낸 것이었다. 이처럼 이규선은 일관성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추상적 예술 노선을 걸은 흔치 않은 작가였다. 종이와 먹이라는 전통적 재료를 통해 동양의 정신을 구현하면서도 서구적인 조형 감각을 흡수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적인 화면을 만들고자 노력한 그의 열정은 진지했다.
“바르고 나면 뿌옇게 되는 동양화 재료에 불만이 많아 신문지에 유화물감을 짜서 기름을 뺀 뒤 바르기도 하고, 한지를 떠가며 붙이는 콜라주 형식도 적용해보는 등 그림의 소재와 기법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어요. 그렇게 현대화에 동참하는 입장에서 앞서 나아가고자 했지만, 전통 문화의 정신적 뿌리가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했기에 먹과 화선지는 버리지 않으면서 동양화의 특징적인 것을 살리고자 했습니다”라는 그의 대학시절에 대한 회상은 동양화를 현대화하고 개량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지난 4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전시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전통적 화제(畵題)에 기초한 <시창청공도(詩窓淸供圖)>, <서창청공도(書窓淸供圖)> 연작 총 21점을 새롭게 그렸다. 신작들은 그가 선비의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환희를 화면에 재구성한 것이었다. 작품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전시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완성한 600호 사이즈의 대작 <시창청공도12>였다. 이규선은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 밤샘 작업을 거듭하며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76세의 나이로 쉽지 않았을 작업이었겠지만, 그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규선이 완성된 화면에서 창문 사이로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는 화가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과 환희 그 자체였다.
그의 예술세계에서 결론이 된 ‘시창청공도’와 ‘서창청공도’ 연작, 그리고 그간의 오랜 예술여정은 결국 그가 지향했던 것이 최초 자신을 한국화로 이끌었던 문인화(文人畵)였음을 말해준다. 사생(寫生)이 아닌 사의(寫意)의 추구, 에스키스(esquisse) 없는 즉흥적인 작화 방식, 작품 제작에 앞선 인성과 지식의 수양과 이에 대한 강조, 상업성과 거리를 두는 자세 등은 필자가 느끼기에 전통시대의 이상적인 문인화가 못지않은 것이었다. 이는 이규선이 오랜 시간 추구해온 작품세계가 단순히 ‘추상화’라는 범주에만 한정지을 수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앞으로 좀 더 긴 시간이 흘렀을 때 그의 작품세계가 21세기의 문인화로 평가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문득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만나기로 한 찻집에서 그는 부인을 대동한 모습이었다. 이제껏 원로작가를 만나면서 접해보지 못한 다소 낯선 상황이었기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이후 어디를 가든 항상 부부가 함께 하고,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은 한참 어린 필자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그러한 그의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은 전시준비 과정에서도 목격되었다. 전시 작품의 포장과 운송을 맡은 미술품 운송회사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친절한 배려의 말을 건네고, 또 식사까지 챙기는 모습은 뭇 예술가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격이 그 작품세계의 기반이 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마지막이 되어버린 지난 4월의 전시 이후,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던 그의 예술세계만큼이나 그리워질 따름이다. ●
이규선3
故 이규선(李奎鮮)은 193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61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국전 특선 및 문화공보부장관상, 국무총리상, 추천작가상(1968, 1970, 1972, 1975)을 수상했다. 1967년 서울 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2014년 13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인도 트리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역임했다.

[New Face 2014] 전희경

천국보다 낯선, 무릉도원보다 익숙한

전희경 작가의 캔버스는 일견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마치 산수화나 탱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단순히 양립할 수 없는 표현적 요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최근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겸재 내일의 작가상 2013 수상자-전희경>, 10.29~11.16)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대부분 이상향 즉 유토피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곳,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욕망의 배출구 등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동양화적인 표현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렇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동양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관찰이 유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색감이나 관심 분야(동양철학, 불교, 도교 등)를 연상시키는 요소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몇 번의 여행도 그 과정이었죠.”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서구의 천국보다는 동양의 무릉도원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 작가의 그간의 행보를 보면 스스로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몰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다. “‘자발적 유배’ 를 즐긴다고 할까요? 낯선 곳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저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에 있어요. 익숙한 관계와 환경에서는 자신이 더 견고해지지만, 나아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작업한 것이 바로 드로잉 연작이란다. 타이완의 외딴 지역인 타이둥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작업했다. 자신의 현재에 대한 반성을 타이완에서 생산되며 불두(佛頭)를 연상시키는 열대과일인 ‘스쟈(釋迦)’ 형상을 통해 드러냈다. 이른바 108번뇌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전 작가의 작업은 완전한 추상적 형태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점이라서 그럴겁니다. 구체적 형상의 이미지들은 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처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면 <산수화> 연작으로 오면서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상향을 그리는 데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이동이 정확한 이미지들을 배제하게 하고 점차 붓질과 색감 그리고 구도적 배치 등으로 화면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경을 연상시키는 ‘제3의 공간’을, 구상 혹은 추상에 치우치지 않고 그 경계에 선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전희경 작가의 작품에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공통된 형상이 있다. 보기에 따라 인체 장기 등을 연상시킨다. “이 이미지들의 시작은 <바디> 드로잉부터였습니다. 몸의 살들이 겹치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리다보니 머리와 팔다리 형상은 사라지고 살들의 모습만 남게 되었죠. 이 형상은 간극과 틈 사이에서 부유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전 작가는 최근 노년의 삶과 죽음을 그린 <아무르>라는 영화를 관심있게 봤다고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에 그의 캔버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의 이상향은 단순히 유토피아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삶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고요.”
공간을 압도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작가는 ‘버티기’가 삶의 강령이 되어버렸단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토대의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깨달았단다. “60줄이 넘으니 이제야 비로소 산이 세모로 보이신다는 어느 노(老)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저의 빈 그릇을 채울 수 있는 내공, 내공을 쌓는 일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황석권 수석기자

전희경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 부산을 비롯 타이베이 등지에서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겸재정선미술관 ‘내일의 작가’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겸재정선미술관 전시광경

겸재정선미술관 전시광경

[New Face 2014] 이병수

극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작가 이병수는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레지던스의 남극 방문 프로그램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프로그램이 무산되면서 그는 결국 남극에 가지 못했다. 지난 2년여간 그는 실제 장소이지만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진 남극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작업으로 풀어냈고, 최근 개인전을 선보였다. 서울 부암동 ‘공간291’ 에서 개최한 <메이드인 안타티카(Made in Antarctica)> (10.30~ 11.30)가 그것이다.
퍼포먼스 그룹 ‘관악무브’와 협업한 <스쿠아의 공격을 예술적으로 대처하는 7가지 방법>은 남극에서는 우리말로 도둑갈매기라 불리는 스쿠아가 사람들의 머리를 자주 공격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업이다. <해피캠퍼>는 머리에 하얀 통을 쓰고 외 줄에 의지해 이동하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퍼포먼스이지만 척박한 땅, 남극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와 유사한 방식의 훈련을 통해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한다.
작가는 남극이 가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검색을 통해서 실제 남극 관련 관광 상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만 있으면 남극기지까지 도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남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설치작업 <빙산의 일각>은 ‘exploration(탐험, 탐사)’의 도전적인 측면이 필연적으로 ‘exploitation(개발, 착취)’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을 두 개의 영어 단어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시작했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남극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가는 이러한 의문이 필연적으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남극을 ‘극지’, ‘가장자리’ 개념과 연결시켰다. “지난해부터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예술가야말로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밀려서 사회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고민은 지하 전시장에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된 <폐쇄된 위계>에서 잘 드러난다. 각자의 미션이 기재된 남극 연구원의 조직도가 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연상시킨다면 예술가는 어떤 특별한 미션 없이 가장자리에 밀려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병수는 지금까지 미학적 감수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비현실적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여 진지하게 수행해내고 이를 하나의 경험적 사건으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내왔다. <관악산 호랑이>, <희망을 찾아서> 등 프로젝트 개념의 기존 작업 역시 기교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예술과 사회의 관계와 동시대예술의 실천적인 측면을 우직하게 모색해온 결과다. 이병수는 “예술은 결국 극도로 물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역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도 남극처럼 통제되고 척박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로운 틈을 만드는 행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비 기자

이병수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서울대 우석홀에서 열린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언어놀이>(성곡미술관), <미래가 끝났을 때>(하이트컬렉션)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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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291에서 열린 개인전 광경 <빙산의 일각>(가운데) 철 구조물에 고무와 포맥스 124×183×10cm 2014

 

[Review] 사유의 부정정신을 덮는 무력감

사유의 부정정신을 덮는 무력감

무빙트리엔날레 9.27~10.26, 부산비엔날레 9.20~11.22

문화산업이 되어버린 전시, 비엔날레 또는 트리엔날레는 예술의 저항성을 해체하고 상품화하고 작가를 익명화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상품화로 이끌려가고 있다. 그곳에는 동일성의 욕망에 빠진 익명의 상품들이 있을 뿐 개별자의 다양한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없다. 동일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개별성이 사라진 예술은 이미 예술로서의 어떤 존재감도 가지지 못한다. 이 시대 유일한 사회적 저항인 예술조차 상품이 된 전시에 그토록 목을 매는 기획자와 작가는 누구일까. 그 자신을 상품화하고 몸값을 올리려는 작자들이 아닌지. 한 시대를 저항으로, 지식으로, 감성으로 만나는 조망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한 시대를 사유하는 자가 아니다. 그저 장사꾼들이 예술작품인 척하는 시늉에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기존 전시와 다른 길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무빙트리엔날레>는 저항의 한 형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전시라는 구조 안에서 행사를 하겠다는 발상은 현실 추수(現實 追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저항은 언제나 기성세력과 다른 의미 맥락과 전략의 전위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에 미치지 못했다. ‘전시’라는 형태에 집착하고 기존 어법으로 대항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빙트리엔날레>는 현실 추수와 현실 저항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런데 비하면 <부산비엔날레>는 전시라는 기존 시스템의 덕을 톡톡히 보는 입장이다. 비교할 수 없는 예산과 인력자원과 장소와 시간을 가지고 시작했고, 그 덕에 빠지지 않는 모양을 갖춘 셈이다. 이 대비야말로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그러나 전위적 작품들의 시도마저 정비된 공간에 들게 됨으로 순식간에 전위가 제도화되거나 예각이 무뎌지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공장 일부를 빌려서 한 전시를 비롯해 비엔날레 본전시와 특별전은 밋밋하고 무미했다. 또한 작가나 작품은 전시 전체의 맥락에 묻혀 개별성이 드러나지 않고 볼거리로 내몰려 각이 선 사유는 지워지고 재미와 신기함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떠안은 셈이다.
<무빙트리엔날레>는 <부산비엔날레>의 비민주적 전횡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고통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번 한 번이면 족하다. 그만한 대응도 없고 의미심장하게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그 대항적 힘을 확인하게 한 것도 여태껏 없었던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행사는 돋보이고 한국 현대미술사에 한 점, 바둑판의 화점에 돌을 놓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가 대항이 아니라 새로운 힘과 조직이 되고 또 다른 권력이 된다면 기존 <부산비엔날레>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이 하는 전시 운영과 이념은 새로울 게 없다. 그저 또 하나의 전시를 만들고, 작품은 볼거리로 제시되고 예술이 가진 부정 정신을 부각시키기보다 기획자들이 이 전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동의를 구하는 다급함만 보일 뿐이다. 문화연대로 힘을 보이려 한 탓인지 행사는 산만하고 더욱더 볼거리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규모나 작가군이 다르고 장소가 달라도 여전히 기존 전시조직이 보여주는 권력에의 유혹과 다르지 않다. 단순하게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전횡을 용인하는 제도적 미비에 대한 대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술과 조직이 행사하는 지배의 규정들에 벗어나는 일로부터”((이순예《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풀빛 2005 p.309) 개별 주체의 인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전시와 예술과 기획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시 유사한 행사를 기획하거나 이를 기화로 다른 힘을 규합하거나 대항이라는 이름의 유사 국제전을 기획하는 주체로 작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트리엔날레가 기존 조직의 미비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거나 불온한 의도로 만들어졌다거나 운영되었다는 지적이 아니다. 조직이란 언제나 같은 속성 안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조직 운영이 우선적이며 개별자의 배려보다 전체의 일관성, 동일성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예술이 가진 근원적 속성인 개별성은 기존 행사와 마찬가지로 동일화의 추세로 이끌려나갈 수밖에 없으며 정작 우리가 주장하고 안타까워하는 예술성과 예술가의 이미지는 상품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그것이 가난을 무릅쓰고 작업장을 지키고 인생을 거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자본이 개인의 감수성을 통제하는”(앞의 책 p.311) 이 시대에 그것에 대항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 등의 국제적 행사는 세계를 동질화하고 자본 예속으로서 제도에 종속되게 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물론이고 트리엔날레 역시 국제전이라는 규모가 요구하는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불문가지다. 예술은 이제 개별성의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에 대항한 한 시대의 사유로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자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전시 형국은 결국 예술마저 자본재로 만들거나 그저 볼거리를 제공하는 업자들만 양산할 뿐이다
전시 역시 작품과 작가의 개별성을 부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생산하지 못하고 그저 상품시장에 내놓은 다른 전략일 뿐이다. “예술은 사회적 이성의 타락에 맞섬으로써 존재 의의를 획득한다.”(앞의 책 p.330) 그렇다면 유사한 전략으로 상대를 닮은 쌍둥이를 낳는 것은 올바른 저항의 형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조직을 다듬기보다 다른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며, 상품화되는 세태에서 예술을 온전하게 작동시킬 수 있는 기획과 의지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개별성은 사회의 거짓에 참답게 저항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된다. 개별성이 참다울 수 있는 까닭은 아무리 사회가 거짓되더라도 개체가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모색을 하기 때문이다.”(앞의 책 p.340) 그래서 현실을 비동일성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은 당연히 예술의 몫이며 반성의 역할이어야 하는데 기존 비엔날레에서는 그런 기대가 불가능한 것 같고 트리엔날레 역시 그런 기대에 부응할 것 같지 않다. 아니 그 역시 자본의 한 축에 의해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우려는 개인의 무능이나 전횡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놓치는 데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술작품은 반드시 모든 시대에 유효한 가치는 아니다. 특정 시대의 환경이나 작품을 ‘소비’하는 바로 그 사회집단에만 유효한 가치를 전달한다”(오스틴 해링턴, 정우철 옮김《 예술과 사회이론》 이학사 2014 p.34) 이 말을 되씹을 수 있다면 이 두 행사는 정말 누가, 어느 집단이 ‘소비’하는 가치일까. 여행은 완성을 거부한다. 곧 떠나야 할 것이므로 가능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짐을 줄이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사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번쯤 나그네 길을 권하고 인생의 짐을 가능하면 가볍게 하기를 체험해보기 권한다.
<무빙트리엔날레>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다. 몇 군데로 흩어져 있는 전시 장소를 찾아 나서면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처음 본 연안부두의 작업들, 가방들은 그런 생각을 마구 쑤셔 넣고 마구 내놓는 그런 형용이고 보는 이의 인상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동 가능한 작품들, 이동 가능한 전시, 그것은 이동의 용이성 때문에 많은 것이 용납되고 허용되고 용서되는 것을 의미한다. 완성도도 전시 방법의 임의성도 우발적인 재치도 그렇다. 단조로운 소재, 가방을 가지고 무빙 워커(트랙)를 따라 전개된 볼거리들은 비슷비슷하고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기획자나 전시 주체의 시선은 분명하지만 작가도 개별적 작품도 드러나지 않는 그런 전시이자 연출이다. 그리고 흔히 비엔날레나 외국 작가가 많이 참가하는 전시에서 목격되는 ‘놓고, 달기’라는 가벼운 편의성, 현장에서 수집하고 버릴 수 있는 소재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공중에 매달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놓이고, 평면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산개의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 관리 차원에서 주저주저 수동적으로 연출되는 관람객 참여라는 단조로운 방법들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그리고 산만할 정도로 쌓아놓거나 평면으로 늘어놓기인데 무빙 트랙에 놓인 가방들 역시 이런 맥락의 재현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보는 것, 현장성도, 개입도 없는 ‘보기’의 맥락에서 전개된다. 그래서 일상은 친근한 일상이 아니고 생활은 삶으로서 생활이 아니라 ‘보기’의 거리를 가진, 모더니즘의 재연이다. 작품 보호라는 명분이 이를 정당화한다면 그 역시 모더니즘의 맥락일 뿐 일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다. 지저분한 것들의 성스러움으로 전도된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사물들일 뿐이다. 복병산도, 노인정의 전시도 그저 봐왔던 미디어일 뿐 장소에 적절하거나 생활에 치중했거나 이미 거주하는 것과의 괴리를 없앤 것도 아니고 허술하다. 기상청의 계단은 그저 계단일 뿐 그곳에서 전개된 작품은 그런 기대와 급경사의 노역을 전환시킬 만한 작품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 있을 뿐, 거기 있기 때문에 그곳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장소로서 전시공간을 배려한 설치라고 보긴 힘들다. 골목길로 이어지는 전시 장소로의 이동이 도리어 새로운 장소에 대한 새로운 경험, 다양한 곡절의 공간을 체험하는 삽상함으로 이어진다.
급진적 전시, <무빙트리엔날레>가 구성한 이 다급함은 순수니 권위니, 완결성이니 하는 것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완성도 거부하면서 질문할 뿐이다. 그러나 <무빙 트리엔날레>는 그저 말의 넘쳐남과 이미지의 궁핍을 보여줄 뿐이다. 시간, 장소, 예산상 어려움을 들어 몸을 피하고 싶다면 행사는 이미 처음부터 그른 것이다. 몸을 숨기지 말고 현상 자체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빙트리엔날레>가 ‘부패한 욕망’과 만나지지 않기를 바란다. 기존 행사에 대한 저항과 반발, 민주적 운영의 새로운 모색이 곧 그들이 내세운 대의와 운영의 정당성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동일시에 빠지거나 자위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적을 만난 꼴이다. 운영의 정당성은 때로 반드시 결실을 얻기 위해서 관료조직에 의존하는 데 너무 잘 길들어져 있는 부산비엔날레와 다른 논쟁점을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편집증적 징후로 여겨지는 전시 연출과 산만하고 상투적인 작품들은 격년으로 재연되는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맥락은 여느 전시, 여느 해와 다르지 않다. <광주비엔날레>나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베니스나 리옹 혹은 <휘트니비엔날레>나 <요코하마트리엔날레>를 눈여겨본 사람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뻔한 작품군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비엔날레는 그저 국제적 스탠더드일 뿐 어떤 전위적 의지도 없이 그저 상업화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닐까. 거대한 흐름에 역주행하는 개체성이야말로 예술의 역할이고 작가의 존재 이유지만 이 전시에서 작가는 없어지고 전시만 남은, 그런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판단될 것이다. 게다가 사회 비판이라는 다급함에 몰린 듯 제의적인 연출과 작품들이 눈에 띄지만 느슨하기만 하다. 죽음, 고발, 고통, 소외, 축제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민족지적 관습에 의해 이해되기보다 색다른 볼거리로 강요될 뿐이다. 특히 사진 기법으로 재연된 표현과 이를 이용한 설치작업은 현장의 리얼리티를 묘사하는데 효과적이지만 벽면을 구성해서 현실감을 더하고 제의를 재연하는 연출은 일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강압적 이해를 요구한다. 커다란 인화 가능성에 의한 작업들이지만 이미 낡은 내용이자 방법이다. 그런 것을 두고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거나 생활에 근접한다고 판단한다면 보는 이를 난처하게 할 뿐이다. 장애인을 엿보는 장치나 단골 메뉴가 된 인터뷰와 밋밋한 영상, 사진의 합성 역시 구태의연하고 식상하다.
음식상에 오른 사진작업이나 사진작업으로 가능한 활동사진 등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움직임을 얻고 그 움직임은 가상적 공간을 현실적 공간으로 번안하면서 새로운 실제, 가상실체를 만들고, 현실과 무관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저항의 의미를 새긴다. 그러나 이런 설치들과 구성은 영상기기를 사용하면서 폐쇄적인 공간을 반드시 요구하는 듯하고 그 요구만큼 현실과 거리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 폐쇄적 공간은 사적 공간을 요구하고 영화를 보듯 어두운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있으면서도 각자의 공간으로 여기는 장소를 만든다. 이런 맥락의 전시들은 소리, 영상과 더불어 이미 익숙하지만 분명 새로운 미술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한바탕 연극적인 소품들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예술과 삶의 거리는 그곳에서 또 한 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관조의 거리라고 말한다면 생활 속에 거주하기라는 언술은 자기모순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설치와 영상, 오디오를 이용하는 미디어작업은 전시장 안에 또 다른 방을 구성해야 하고 결국 인간을 철저하게 개인화시키고 전체적 맥락보다 개별적 만남을 만들고 총체성을 얻기 힘들게 한다. 전시 구성의 편의성이 전시의 특색이 되고 국제전의 한 경향을 주도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까운 것에서 거리를 만든다. 일상과 예술은 언제나 그런 정도의 거리에서 만나지 못한다. 혹 그것을 시각예술의 속성으로 거리를 확보하는 당연한 결과나 한계로 오인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시각이란 언제나 보는 이와 일정한 거리를 가질 때 제대로 보인다. 그 거리야말로 모더니즘의 온갖 장점과 문제점을 만든다. 삶과 유리된 예술, 상층부의 취향이 된 고가의 예술품, 그리고 전시공간의 제의성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거리란 볼거리로 취급되는 일상을 말하는 것이다. 일상의 거주는 거주가 아니라 언제나 볼거리의 거리를 만들어줄 뿐이다. 비엔날레의 이런 전시 구성은 상투적이다 못해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사유가 아니라 볼거리의 제공에 지나지 않으며, 영화를 보듯 전체 공간 안에서 개인적 공간, 개인적 만남으로 가능한 즐김의 형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삶의 사유가 아니라 개인적 즐거움을 유도하고 전체를 잃게 한다. 생활 속에 거주하기란 즐김 속으로 관객을 유도하고 고통조차 즐기게 한다. 관객은 소비자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받치고 있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비엔날레>나 <무빙트리엔날레> 모두 그저 국제적 양식의 스탠더드를 꿈꿀 뿐 어떤 새로운 사유도 찾아보기 힘들다. 볼거리로 제공된 것들을 즐기고 있으면 된다는 투다. 즐김은 스펙터클이고 스펙터클은 내용보다 현존하는 효과에 주목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예술은 오늘날 즐기는 것이 되고 말았다.
“즐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을 목격할 때조차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즐김의 근저에 있는 것은 무력감이다. 즐김은 사실 도피다. 그러나 그 도피는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잘못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마지막 남아 있는 저항의식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오락이 약속해주고 있는 해방이란 ‘부정성’을 의미하는 사유로부터의 해방이다.”(Th.w.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김유동 옮김《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 지성사 2001 p.219)

강선학·미술비평

부산 (156)

[Review] 류장복 – 투명하게 짙은

류장복 __ 투명하게 짙은

일민미술관 10.17~12.7

류장복의 긴 여행은 창에서 다시 시작된다. 철암과 한남동, 성미산을 두루 돌아본 작가는 이제 그의 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창을 통해 25편의 일상을 일기처럼 그리고 썼다. 창을 통해 보이는 그의 풍경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따라서 내일도 다를 수 있음을 상상한다. 같은 창밖의 각기 다른 풍경들은 작가의 기억에서 비롯된다. 짧고 간결한 내러이션을 통해 두툼하고 짙은 그의 기억들이 깊은 바닷속처럼 푸른 빛으로 펼쳐진 사이로 사건과 사고가 끼어들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이라면 다 알 수 있을 처절한 슬픔이다. 시커먼 탄가루가 흩날리는 철암의 슬픔과 하루하루 더디게 견디는 삶의 터전을 써내려 온 작가의 그림 같은 글씨가 더욱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창은 안과 밖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연결되는 통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검푸른 풍경은 우리의 눈을 현혹하여 흡사 그것이 진실로 존재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우리의 시지각 대부분은 기억에 의해 조작 혹은 지배된다. 해서 작가는 자신의 풍경이 기억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보여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대변할 또 다른 작가 자신을 창 바로 앞에 세워놓았다. 흡사 장난감처럼 보이는 그 장치들은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이미 그러함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연주하고 설명한다. 그렇게 이중의 창들의 낯익은 풍경을 쫓아가다 덜컥 그 빛이 너무 짙어 투명한 슬픔을 만난다.
창밖 풍경 사이사이 일기 같은 일상 속으로 치고 들어온 그 짙은 슬픔들은 희미하고 불안하다. 느닷없이 터진 눈물이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오히려 더 그칠 수 없었던 울음. 가슴에서 흐르는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은 깊은 슬픔들. 기억을 더듬어 찬찬히 바라보던 그 풍경 속에, 우리의 일상 속에 숨은 슬픔은 결코 우리의 순수한 기억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듯하다. 넋놓고 바라보던 풍경 위로 겹쳐지는 사건들을 따로 끄집어낼 수도 기억 저편으로 밀어놓을 수도 없었던 작가는 최대한 담백하고 객관적으로 툭 던져 놓았다. 그래서 더 눈에 들어온다. 그 객관적인 사건들을 통해 신기루에 현혹된 사막의 이방인처럼 우리는 감춰놓았던 기억들을 아무 대책없이 좇게 된다. 심연으로 빠져드는 뱃머리처럼, 손가락 사이를 뚫고 흐르는 눈물처럼, 멍하니 응시하는 언론인의 힘 풀린 동공처럼, 잔뜩 밀려오는 한낮의 식곤증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가자지구의 검은 연기처럼 우리는 작가의 기억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수상한 낌새들을 좇아 한 번 더 작가의 창너머 풍경들을 샅샅이 살피게 된다.

임대식·아터테인 대표

[Review] 김호득 – 그냥, 문득

김호득 __ 그냥, 문득

김종영미술관 10.17~12.5

북악산과 북한산이 맞닿는 곳에 있는 김종영미술관. 입구에 걸린 전시 플래카드에서 작가 김호득 특유의 검은 획이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생명력의 분출, 나아가 근원적 생명개념을 탐색하는 작가가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미증유한 수묵의 세계를 펼칠지 미술관 초입에서부터 궁금증이 발동한다.
미술관 입구에서 신관 ‘사미루’로 연결되는 투명유리로 된 중간지점에 한지로 된 격자무늬 구조물이 먹물로 채워진 수조(4×7m) 위에 4개의 납작한 돌을 디디고 부유하듯 사뿐히 세워져 있다. 이전의 수조작업은 어두운 공간에서 순백의 한지들이 점진적으로 수조를 향해 내려오면서 먹물 속으로 측량할 길 없는 깊이를 반영하게 했다. 작가는 이 수직의 심연을 창조의 계시처럼 제시했다. 이 작업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시간과 공간의 한 특별한 틈에 고립되어 있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어두움과 수직성 대신 밝음,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그리드를 보여주고 있어서 작품의 부분들이 건물 안과 밖의 여러 요소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바람에 실려온 늦가을 햇살은 한지 구조물에 반사되어 수조 속으로 떨어진다. 수면에 반사/투영된 작품과 건축공간의 여러 층위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고 있다. 산세와 계곡의 흐름에 순응하여 배치된 미술관 공간에 맞춰 건물의 안과 밖, 자연과 인공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이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좋은 시절,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곳, ‘사미루(四美樓)’의 의미를 공감하게 한다.
계단을 따라 관람자의 동선은 자연스레 <계곡변주> 연작, <글자> 연작과 풍경추상화로 구성된 1층 공간으로 연결된다. 이 세 종류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연과 합일한 자아라고 하겠다. 특히 두 폭으로 나란히 배치한 <물>은 언어와 이미지, 형상과 소리의 경계를 단숨에 허문다. 쏟아져 내리는 물은 스스로를 광폭하게 소유하고 점차 녹아들다가 마침내는 대자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나는 다섯 개의 큰 화면으로 이루어진 <계곡변주> 앞에서 수묵화의 현대화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김호득의 40여 년 필묵 운용이 정점을 찍는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앞으로 그가 전개할 수묵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계곡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 온전히 선에 의한 골조만 남았다. 가시적인 대상을 점진적으로 소멸시켜 대상의 내면으로 진입한 결과, 농담 없이 순수한 먹으로만 무위자연의 본질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광목천을 가르며 자유자재로 공간 유희를 하는 검은 획들은 계곡이선사하는 광시곡이 되어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3층으로 올라가면 브랑쿠시의 얼굴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 응축된 둥근 형상의 소품들이 눈에 띈다. 젊은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작가의 의식을 지배하는 화두였던 자신을 향한 헌신의 표상인 자아가 자리 잡고 있다. 계곡작업처럼, 작가 스스로 그림의 주제가 된 자화상에서도 이전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 대신 고뇌에 찬 인간의 정수를 정제해내게 되었다.
1년 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김호득은 세로로 아주 긴 ‘人’자 형상의 수묵화를 선보였다. 자코메티의 절망적인 존재로서 비물질화된 가느다랗고 긴 인간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에서도 주체는 작가 자신이다. 실존주의의 명제처럼, 김호득 또한 끊임없이 불안한 존재감과 싸우며 인간존재의 성찰로 나아가고 있다. <그냥, 문득>은 존재를 확인하는 찰나, 긴 기다림의 연장선상에서 건져올린 시간의 소중한 선물과 같은 것이다.

박소영·P.K. 아트비전 대표

[Review] 강승희

강승희

노화랑 11.12~27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시류에 치여 점차 그 존재감이 희석되는 대표적 장르가 판화다. 이런 시점에서 강승희의 이번 동판화 개인전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가장 전통적인 제작 방식인 드라이포인트 기법으로 제작된 100점의 작품엔 25년 이상 활동한 판화가로서의 전문적인 노하우가 담겨 있다. 작가 강승희는 판화장르가 미술대중화의 선봉에 섰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중반 전성기의 주역이다.
특히 제5회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1988)와 제10회 대한민국미술대전(1991)을 연이어 대상으로 석권한 이력은 그가 국내 판화계의 대표주자로서 얼마나 큰 주목을 받았는지 잘 보여준다. 더구나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줄곧 고수하면서도 표현 소재는 주변의 현실에서 찾았다. 이처럼 동시대적 감성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주제의식을 이어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강승희는 동판화 고유의 단색 톤을 고집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 역시 검은색의 향연이었다. 또 새벽풍경 일색이다. 새벽은 강 작가가 검은색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빛을 사로잡은 검은 장막이 아니라, 품었던 빛을 서서히 뿜어내는 새벽 기운의 색이다. 어둡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검은색은 아픔과 고독을 치유하는 힐링의 힘을 지녔다.
그런데 새벽풍경으로 포착된 장면들 중에 도심 언저리의 정경들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저 멀리 내려앉은 별꽃처럼 켜진 빌딩숲의 불빛들, 추수한 지 얼마 안 된 들판의 온기, 마치 사람처럼 고고하게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소나무나 자작나무들…. 이는 서울 도심을 떠나 인접한 김포시에 자리 잡은 작업실에서 만난 풍경들이다. 비록 탁 트인 김포평야 혹은 원경의 시원한 한강하류 강줄기라도 왠지 모르게 사람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이유 역시 작가의 숨은 의도인지 모른다.
제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강승희의 감성은 어쩌면 서울이란 대도시를 커다란 섬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은 아닐까.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에서의 고독,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과 인공의 불빛 속에서도 떨칠 수 없었던 외로움의 무게, 이 둘은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을 것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는 검은빛을 만나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그 어떤 아픔의 상처라도 부드럽게 감싸줄 것만 포근함을 지니게 된 것이다.
강승희의 작품이 보여주는 담백하고 섬세한 번짐의 매력은 수묵화 못지않은 호소력을 지녔다. 그 시각적인 표현들이 먹물과 여린 붓이 아니라, 강철 침으로 금속판을 긁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동판화 본연의 전통적인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노출부식 기법 이상의 작가적 노하우를 발휘한 회화적 독창성은 그를 지탱하는 중요한 경쟁력이다. 부식판화가 지닌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의 선에서 더없이 부드러운 감촉을 이끌어내는 서정적인 감수성이 일품이다.
강승희 판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 중에 탁월한 여백의 운용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화면을 장악한 색은 오로지 검은색이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빛을 발산하는 존재감이다. 어떤 작품은 백색이 여백인가 싶으면, 또 다른 작품은 흑색이 여백이다. 서로 반전과 충돌을 거듭하는 흑백의 묘한 여백 운용이 곧 작품의 생동감을 자아내는 에너지원인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감성이 녹아있다. 마치 자연의 너른 가슴에 안긴 도심은 외로운 고독의 섬이 아니라, 어느새 지친 현대인의 가장 평온한 쉼터가 됐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Review] 저온화상 –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저온화상 __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아트 스페이스 풀 11.6~12.7

실제 수신자가 많든 적든 매스미디어는 이름값하듯 다수를 향한다. 귀 기울이는 이가 많든 적든 길거리의 시위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그러나 그 둘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특히 후자가 예술가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트 스페이스 풀의 전시 <저온화상: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는 그 목소리의 차이를 서울의 작가 김동규와 홍콩의 수산 챈, 씨앤지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준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인 홍콩의 듀오 작가 씨앤지(클라라&검)는 끊임없이 거리로 나선다. 홍콩의 중국반환기념일에 길거리 약혼식을 올리고, 두 딸을 데리고 “우산 시위”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미디어에 포착되면, 검이 그 장면을 유화 드로잉으로 그린다. 그 그림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사진과 기사를 옮긴 것이지만, 거친 필치는 매스미디어가 표방하는 신속하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성격을 흐려버린다. 수산 챈은 민주화 시위의 장면들을 덤덤하고 소박한 드로잉과 글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행하는 신문이나 포스터 등의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자신만의 마이크로미디어를 만든다. 또 검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범죄자들의 모습을 드로잉에 담아 미디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장치가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 불온함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상황을 짚어낸다.
이렇게 홍콩 작가들이 미디어의 속성을 거스르며 미디어에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김동규는 그들 움직임의 특징을 언어 안에, 정확히 말하면 언어의 빈 틈 안에 오롯이 녹여 넣는다. 매스미디어가 재빨리, 또렷하게, 종종 정신을 어지럽힐 정도로 시끄러운 목소리로 다수의 귀를 사로잡는 것과 달리, 이들은 느리고, 때로는 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세상에 대해 읊조린다. 다수를 위한 세상의 큰 마디들을 비켜가는 이들의 표현방식을 김동규는 매끈하게 분절되지 않은 언어로 번역한다. 그는 <구순 협주곡>에서 광둥어로 된 문장을 읽고, 또 홍콩 작가들에게는 한국어로 발음하기 쉽지 않은 문장을 읽게 한다. 상대방의 언어로 읽은 문장은 느리고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잘 전달되지 않지만, 바로 그 비규범적인 언어의 사용이 울림을 만들고, 작위적이지 않은 연대를 엮어낸다.
사실 홍콩과 서울 두 도시의 시위대가 이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마디 없는 연대를 이미 읽어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공유한 노란 리본에서 드러난다. 거대 국가에 반환된 민주주의는 세월호 참사로 무너져내린 마음들만큼이나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작은 표지를 공유하여 길고 지루한 서로의 저항을 위로하려 한다. 김동규가 홍콩의 작가들을 만나기 전 세월호 유족들의 시위 현장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흔적인 <개나리부터 은행나무까지>는 종이가 찢어질만큼 격하게 그어놓은 볼펜 자국들로, 걸러지지 않은 격함이 자못 생경하다. 그러나 그 격함에 대한 영상 하나쯤 남겼을 법한 상황에서 별다른 기록도 없이, 스카치테이프로 조심조심 연결되어 모로 걸린 종이들은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발음들을 타고 울렁거린다.
낡은 LP판 튀는 소리처럼 이들의 낮은 목소리는 정해진 마디를 따르지 않지만 매끈한 소리들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도 가볍고 일시적인 빈티지 취향(요즘 “아시아”는 일부러 공장에서 만들어낸 빈티지 같다)에 머물지 않기를,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다그치게 된다.

안소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