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유근택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행복은 오늘에 없는가

다양한 실험을 모색해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작가 유근택의 개인전 <끝없는 내일>(11.6~12.28)이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유근택은 ‘지금’ ‘여기’의 실경에 주목해 구체적인 일상을 담은 한국의 진경을 과감없이 선보인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유근택의 작업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은 한국화(동양화) 영역의 리더 격인 중견작가의 ‘실험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다수의 눈이 역시나 비슷하다. ‘실험’이란 말은 신진이나 작가의 초기 경력을 소개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인데, 중견 중에서도 ‘고참’인 작가의 경우라 독특하다. 그런데 뭉근한 회오리가 몰아치며 무서운 힘을 내듯, 중견의 실험이나 명장의 혁신은 그 지긋한 영향력이 젊음의 순간적 변혁보다 큰 법이다. 더구나 그의 작업은 개인적 실험이라기보다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으로 보이기에.
유근택의 수묵채색 회화전이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작업한 회화 60여 점이 ‘끝없는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수송동 OCI미술관에 펼쳐 있다. 그의 실험이 더 진척된 게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선 “그를 굳이 한국화가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철없는 질문까지 들 정도다. 가까이 눈을 붙여 재료를 확인하지 않으면 거의 유화인 줄 안다. 그래서 우린 자문하게 된다. 어디까지 이어받고 무엇을 떨쳐내는 건가. 동시에 무엇을 들여오고 어디까지 열어두는 건가. 지금 우리가 관심 있게 볼 일은 유근택이 과감하게 밀고 가는 실험성의 내용 자체이다.
전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그의 <산수> 연작 10점은 가로 2.7m, 세로 1m 크기의 대작이다.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회화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현 기법이 유화를 닮아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별을 무색게 하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전통화의 재료와 매제를 유념치 않고 마주하는 이 풍경에서, 관람자는 동양과 서양을 모두 느낀다. 눈으로 보며 개인적으로 지각한 풍경이란 점에서 서양화의 시각을 지니고, 회화의 골격과 구조가 되는 먹선들이 전체 구성을 이루기에 한국화의 산수를 떠올린다. 더욱이 긴 폭의 전통 산수화를 수평으로 펼치는 파노라마 정경은 역시 동양적 시각구조이다.
그의 전시에서 확인하듯, 다양하게 전개되는 한국화의 표현언어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이다. 한지와 먹, 그리고 채색이란 재료의 기본은 살리되 그 외 템페라를 도입, 두꺼운 마티에르를 구사한다. 호분(胡粉)이야 한국화에서 본래 쓰는 것이지만, 이를 유화물감 쓰듯 겹치고 올려서 두껍게 표현하는 색채 구사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한 것이다. 이렇듯 표현의 이탈은 새로운 감성을 불러오고 시각적 효과는 확장된다.
미술의 창작은 과거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이를 현재에 맞게 바꿔야 하는 것이다. 유근택이 한국화 장르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과 과감히 버리는 것을 생각할 때, 흥미로운 건 그러한 취사선택이 대립적이거나 택일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의 수묵채색화는 실제 풍경에 기반을 둔 지극히 개인적 시각이란 점에 주목한다. 이는 서양 모더니즘에 근거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실사(實寫)는 이미, 또 언제나 심상(心象)의 투영이라는 동양미학의 태도를 지닌다. 양자는 전혀 다르지만, 유근택의 회화에서 무리 없이 섞인다. 객관의 묘사가 바로 심상의 표현인 동양적 태도는 그의 회화에서 세계를 보는 개인 주체의 서구적 시각과 자연스레 맞물린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유근택 회화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매듭’이 두드러지지 않고, 그 ‘충돌’이 유연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회화가 가진 ‘모호성(ambiguity)’의 실체라 여기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글을 살펴보면, 많은 비평가가 이 모호성을 주목했지만 이를 그의 그림이 지닌 표현기법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주의적 해석은 유근택 회화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모호함이 작가의 특징적 표현기법이함은 모호한 표현에 대한 단순한 묘사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가 동양화에 입문하여 습득하기 시작한 먹과 채색의 사용, 그리고 여기에 템페라와 호분 등으로 붓질한 뒤 주걱으로 뭉개어 초점을 흐리며 표면에서 동요하는 색채의 효과 등은 모호한 기법에 대해 묘사한 것일 뿐, 이 기법과 연관된 내용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다양한 실험을 통한 표현상의 모호성이 동양과 서양을 교섭하는 회화적 공간을 형성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호성이 가진 ‘중간 영역’의 특성 및 ‘독자적 공간성’은 그의 그림면(picture plane)에 확보된 이질성과의 완충지대와 다름없다. 때문에 그의 회화 표면층에서 벌어지는 동양과 서양의 충돌은 붓질의 완충작용을 통해 흔들리고 동요한다. 이러한 회화적 운동감은 모호한 공간의 층위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러한 문화 충돌이 순전히 호분과 템페라, 그리고 먹을 통해 이뤄지니 그 반복된 운필의 농밀한 색채 감각이 어느새 현대회화의 다채로운 표현언어를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의 모필사생(毛筆寫生)이 미키마우스며 피카추 인형, 그리고 자전거, 빨래, 변기를 그려내도 별반 어색하지 않다. 또 멋진 산수를 묘사하는 준법(皴法)으로 물 빠진 충주호나 황량한 돌산을 그리고, 아파트의 커튼 줄이나 실내의 화분 등 도심 속 평범한 일상을 그려도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거다. 한국화의 논법에 일상의 생활이 녹아들면서 그의 회화표면은 모호해진다.
이렇듯 회화의 문화교섭 과정에서 유근택이 과감히 버린 것이 있다면, 화가의 정신을 짓누르던 거대 서사이다. 그의 그림의 공간에선 한국화의 관념적 정신주의가 붕괴되고, 그 자리에 물질적 개인주의가 들어온다. 동경의 세계는 일상생활이 대치하고,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던 시적 공간에 실제 삶의 리얼리티가 그 민낯을 들이민다. 지극히 일상적인 개인의 체험은 이상적 세계와 동떨어진 채, 그 뒤죽박죽된 현실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갈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실제는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차라리, 현실의 긴장이 평정에의 동경을 밀착되게 요구하고, 지금의 혼란이 미래의 행복을 절실하게 불러온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그리는 그의 그림은 언제나 내일을 지향한다. 전시의 제목이 <끝없는 내일>인 이유이다.
따라서 작가가 회화 전면에 제시하는 소위 ‘일상’이란 그리 단순치 않다. 일상을 풍경에 녹일 때, 그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릴 때의 태도”로 임한다고 했다. 진경산수가 실생활의 진(眞)풍경으로 전환되는 셈이고, 그 내용은 예측불가하게 다양하며 복잡하게 된 거다. 한국화에서 동경했던 공통의 이상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긴장 등의 복합적 정서가 그림의 표면에서 맴돈다. 그래서 그의 일상의 모습은 확실한 내러티브가 아닌,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뭔가 숨은 느낌의 이야기다.
그렇듯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인 일상의 표현은 그의 회화를 구상과 추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구상의 외양을 갖춘 추상적 내용이 유근택 회화의 모호함의 실체일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이 회화의 평면에 일종의 ‘사이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인 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유근택 회화를 논하며,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나 혹은 “자립적 회화 공간”이라 명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언어, 재잘거림, 침묵, 때로는 소음>, 2005 도쿄 21+yo갤러리에서 열린 유근택 개인전 카탈로그 서문 참조) 여하튼 그가 확보한 회화면의 자립적 공간은 주체와 대상, 작가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선보인 <말하는 벽> 연작은 그것이 구상이긴 하나, 제시하는 내용은 알 수 없다. 스토리 라인은 미확정이다. 서울 경복궁 근처 옛 미국대사관저를 두른 높은 돌담장과 그 아래 모인 아이들 모습을 구체적 설명 없이 암시적으로 제시했다. 세밀하게 묘사된 사간동 돌담벼락에서 소곤거리는 아이들의 불안한 뒷모습과 벽의 세밀한 디테일이 묘하게 어울려 뭔가 숨은 일상의 비밀을 애매한 상태로 제시한다. 그림의 소재인 벽이 주는 단절감은 그 앞에 모인 아이들의 은밀한 소외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그러한 비밀스러운 정서와 복합적 감정이 얽혀 있어 이 그림의 ‘구상성’을 의심하게 된다. 요컨대, 유근택 그림의 모호성은 그것이 그의 표현기법뿐 아니라 내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최근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업들의 주제가 “지독하게 조여진 삶 속에서 또 다른 욕망과 꿈을 간직하며 인내하는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는 내용은 “서양문화가 스며들어와 동양문화와 충돌하는 개념”이며 “우리 삶이 뒤죽박죽된 비빔밥 같은 세상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시를 거듭 보면서 유근택이 자신의 작업에서 풀어내려는 화두는 결국 이질성에 대한 주체적 수용이란 생각이 굳어진다. 문화적 충돌의 회화적 대응에 보인 그의 표현언어는 대체로 상징과 은유를 활용하고, 때론 팝아트의 모티프와 포토몽타주의 기법을 쓰고, 그래서 신표현주의, 인상주의, 팝 회화, 초현실주의 같은 서구의 이름에 기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미적 태도는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관망’의 자세이다. 이것이 동양화의 재료에서가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그를 한국화가로 여길 수 있는 궁극적 특징이라 여긴다.

유근택 (9)

<말하는 벽>(맨 오른쪽) 한지에 수묵채색 184×209cm 2014

유근택 회화가 지닌 ‘모호성’의 의미
유근택이 깊은 고민과 실험 후 한국화의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제시한 때는 1991년 관훈미술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 1990년대 초이다. 작가로서의 성장 배경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친 수묵화운동과,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의 채색화운동이 있었다. 1984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 한국화 분야의 중심부에서 ‘현대화’에 대한 요구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그다.
1980년대 후반은 한국화단에서 서구미술의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때였다. 말하자면, 그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방식에 비해 전통과 관습에 매인 한국화의 경직성에 답답함이 더하고 비교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독일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퍼진 신표현주의의 거침없는 표현은 그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그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안젤름 키퍼나 바젤리츠 등의 화집이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그의 말마따나 산수화와 사군자를 관습적으로 배우던 한국화 분야의 예비 작가들에겐 “혼란”과 “갈등”이었다. 이러한 한국화단의 위기의식이 그에겐 ‘약’으로 작용한 듯하다.
유근택의 작업에서 중요한 변화는 1999~2000년의 <창밖을 나선 풍경> 연작과 <다섯 개의 정원> 연작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는 2001~2004년에 제작된 <풍경> 연작이나 <사라짐에 대한 경의> 연작으로 이어지며 유근택 회화의 뚜렷한 표현언어를 형성했다. 정원이나 수풀 등의 풍경에서 짧은 필획이 무수히 반복되며 현대적 산수화의 열린 가능성을 보였다. 파묵(破墨)과 선염(渲染)을 적절히 구사하며, 호분과 수묵으로 다양한 기법을 운용하는 그의 회화는 공간에 두꺼운 재질을 쌓아가며 중첩된 형상들 사이 잔잔한 운동과 흔들리는 율동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 운필의 동요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모호한 공간이다.
더불어 2000년대 초부터 자주 등장한 일상의 풍경을 팝의 감각으로 다룬 실내 정경의 그림들은 묘하게도 영국의 현대회화와 통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영국 북부의 풍경을 보고 그린 실경 회화의 자연스러움이나, 키타이(R.B Kitaj)의 팝아트 회화는 파스텔과 같이 흐릿한 기법과 몽타주 방식에서 예기치 않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동시대의 미적 유사성이 다른 문화의 코드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영국의 리얼리즘이 유근택 회화의 실제성과 통하는 면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생각으로 이번 전시의 <산수> 연작으로 돌아온다. 거울에 비친 반영인 듯, 아니면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호수 주변의 풍광과 수면에 비친 경치의 구분이 없다. 실제와 허상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동양화의 구성과 관조가 느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뚱하게도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마르셀 뒤샹 등의 작품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진풍경을 보이는 또 다른 풍경엔 서구의 이질적 기호들이 호수면을 부유한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맥도날드 로고, 그리고 디즈니 캐릭터와 같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아이콘들이다. 이질성은 어떻게든 수용될 일이다. 관건은 ‘비판적 거리감’을 확보하고, 관조하며 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내 삶을 위해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유근택의 회화처럼 말이다.
수묵채색을 기조로 하는 한국화의 대표 주자로서 유근택이 보여주는 오늘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관념적이고 보편적인 한국화의 코드를 끊고 대면하는 ‘지금, 여기’이기에, 비록 온갖 잡스러운 오브제가 난무하는 공간일지라도 그 모습을 관망하는 중심이 느껴진다. 이것이 남루한 오늘, 이 자리에서 꿈과 희망을 내일로 미루더라도 우리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이다. 끝없는 내일이 펼쳐진다 해도 현실의 문제를 껴안고 갈 수 있는 한국화의 자신감이다.●

유근택 (8)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관훈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베이징, 타이베이 등지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석남미술상(2000),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3), 하종현미술상(2009)을 수상했다. 현재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