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8th Berlin Biennale for Contemporary Art

비엔날레라는, 이제는 익숙한 형식의 전시행사는 논쟁과 그로 인한 담론 형성이 주된 목적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5월 29일 개막해 8월 3일까지 열리는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bb8)를 둘러싼 호불호의 논쟁이 격렬하다는 소식이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자제하고 지적이고 진지한 감상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 주로 출품된 이번 베를린비엔날레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섬세하게 변주된 다양한 층위의 담론

신원정  미술사

2년을 주기로 베를린 미술현장의 여름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의 한복판에는 바로 ‘베를린비엔날레’가 있다. 8회째를 맞은 올해의 비엔날레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최종 선정된 콜롬비아 출신 캐나다 큐레이터 후안 A. 가이탄이 제시한, 19세기 독일의 정치 및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코스모폴리탄인 빌헬름과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를 2014년의 베를린에서 재조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시 프로젝트 제안서는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난 5월 28일 개막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전시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례적인 전시공간이다. 베를린비엔날레에서 전시 장소의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행사 주관기관이자 도시의 심장부라 할 미테 지역에 자리한 쿤스트베르케 전시관 외에 어떤 다른 장소와 지역을 선택하는지가 비엔날레 총감독이 미리 하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기 때문이다. 올해 비엔날레는 쿤스트베르케 외에 서베를린 깊숙이 위치한 달렘 박물관과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데 미테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전의 비엔날레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달렘 박물관의 비엔날레 세션은 유명 작가를 다수 포함하고 있고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 의도에도 가장 잘 부합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근원지라 해도 무방할 만큼 달렘 박물관의 의미는 크다. 베를린과 포츠담의 경계선에 위치한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은 분단 시절 서베를린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손꼽혔지만 통일 후에는 변두리가 되어버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베를린 중심부의 전시기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베를린의 한복판에서 남서쪽 가장자리로 지축을 옮긴 이번 비엔날레는 미테나 크로이츠베르크처럼 화려하고 자유분방하며 소위 ‘핫’한 지역 대신 전원적이고 부유하며 보수적 분위기의 서베를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허름하고 훼손된 버려진 건물이나 가능한 한 뜻밖의 장소를 택해왔던 그간의 행보와는 달리 전통적인 박물관을 주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색적이다. 이번 전시 주제 또한 흥미롭다. 동서 냉전기간 높은 장벽이 도시 한복판을 관통했던 베를린은 독일 분단의 역사와 아픔의 흔적을 생생히 간직한 채 통일 후 조국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독일인들의 의지와 노력이 특히 건축적인 부분에서 열매를 맺은 도시이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당연하게도 베를린, 더 나아가 특히 치부를 포함하는 독일의 역사를 주요 테마로 삼았고 그래서 ‘베를린영화제’처럼 베를린비엔날레 역시 정치성이 기저를 이뤄왔다. 강한 정치성의 표방과 사회비판 성향은 그간 전 세계적인 비엔날레의 홍수 속에서도 베를린비엔날레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는 지난 회차의 비엔날레에서 그만 극단에 치우치고 말았다. 시위 운동가들이 쿤스트베르크 주전시실을 점령했던 제7회 베를린비엔날레는 정작 미술은 없고 정치만 보인다는 혹평을 받았고 심지어 비엔날레의 폐지가 거론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bb8 (43)
토넬 <무역> 특별 제작한 쿠바산 목재 액자 10점(왼쪽 벽); 드로잉 약 48점(오른쪽 벽); 가운데 책상 위 오브제, 그래픽, 작가의 책 3권과 사운드트랙, 쿠바산 금속바 위 텍스트, 종이 위 디지털 프린트 가변 크기 2014

전년 대회의 위기를 극복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2014년의 베를린비엔날레는 선동적인 외침 대신 섬세하게 변주된 다양한 층위의 담론으로 채워진 모습이다. 식민지 상황을 겪은 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5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글로벌리즘에 대한 비판적 조명과 포스트식민주의적 담론이다. 지적 유희로서의 현대미술 감상을 강조하는 큐레이터의 의도는 다수의 전시작에 드라마가 빠지고 담백함과 절제가 전시장 분위기의 주조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디오작업의 수가 준 대신 종이를 매체로 하는 소규모의 작품이 훨씬 많고, 수집과 아카이빙을 키워드로 하는 작업이 많은 것도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고 하겠다. 베를린 자유대학 캠퍼스에 인접한 달렘 박물관 건물에는 아시아미술관과 민속학박물관 그리고 유럽문화박물관까지 총 3개의 전시기관이 들어서 있다. 현대미술과 민속학적 유물을 융합시키려는 큐레이터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의 민속유물과 고미술품 사이에 끼어든 현대미술 작품들에서 위화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식물도감과 표본을 연상시키는 알베르토 바라야(Alberto Baraya)의 <비교 연구, 인조식물 표본>(2002~현재)에서는 18~19세기 새로운 종의 발견자들에 의한(또는 이들을 위한) 드로잉과 오늘날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상징하는 인조식물이 유리진열장 안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정교함 덕분에 마치 생화처럼 여겨지는 조화는 자연과 인공의 가상 대치를 통한 원본과 모조품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고무하고, 박물관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런 모조품이 갖는 가치에 대한 숙고를 촉진한다. 흔한 교통표지판처럼 여겨지는 베아트리스 곤잘레스(Beatriz González)의 설치작업 <특별한 사진들>(2014)은 자세히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픽토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간을 메고 홍수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나 사체를 나르는 사람 등 열악한 환경의 콜롬비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담겨 있다.
플래시 전구를 사용한 카르스텐 횔러(Carsten Höller)의 <7,8헤르츠>(2001/2014)는 달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장소 특정적인 작업 중 하나이다. 작가는 콜럼버스 미대륙 발견 이전 시대 금 골동품 전시실의 조명을 7과 8.6헤르츠 사이의 진동수로 깜박이도록 조작했다. 안구를 격렬히 자극하는 무한 스타카토의 섬광은 원래 박물관 소장품인 황금빛 미술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한편 기존의 전시품과 새 미술작품의 경계도 허물어 버린다. 작은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설치작업 <무제>(2014)는 그 전시실의 원래 주제였던 테마를 작가 개인의 작업으로 흡수해버렸다. 예전부터 벽에 설치되어 있었던 안내판 위 문구 ‘유럽의 영향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는 작가가 따로 첨가한, 현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예를 들어 세관을 통과하는 수입 과일들) 및 오브제(유명 상표의 운동화 등)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수준 높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중심부와 동떨어진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등한시되어 온 달렘 박물관을 베를린비엔날레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동시대미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새로운 담론 형성의 장을 마련한 비엔날레 총감독 후안 A. 가이탄의 용감한 시도에 대한 평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신진 작가가 중립적 화이트큐브가 아닌, 기존의 제도적 전시 공간에 자신의 작업을 채우는 경우 그는 과연 독자적인 색깔과 목소리를 살려낼 수 있을까.《  쥐트도이체차이퉁》의 비평가 카트린 로르히는 저명한 미술관에 전시할 기회를 얻었을 때 주최 측이 요구하는 규범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입장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현대미술과 민속 유물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성공적인 나머지 관람객이 자칫하면 상설전시품 속에 위화감 없이 섞여 있는 비엔날레 출품작을 간과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개인적으로 특히 아쉽게 느껴진 부분은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장을 다 돌고 났을 때 좋은 작품이 적지 않았음에도 딱히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작업이 떠오르지 않았던 점이다. 관심의 집중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인해 모든 혹은 여러 작품에 골고루 힘을 분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모든 작품이 비슷한 강도의 (희미한) 인상을 남기게 된 것은 전시기획자 입장에서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치열한 철학·정치·사회비판적 고민을 절제된 제스처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밀도 있게 풀어내려 한 제8회 베를린비엔날레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흥미롭게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호평과 혹평 그 어느 쪽이든 단편적인 평가에 그치지 않고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강점은 이런 모순성과 시끌벅적한 문제 제기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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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아비디 <펀랜드(카라치 연작 중)> HD 비디오, 칼라, 사운드(비디오 스틸) 2014  Courtesy Bani A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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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 수하일 <사색하는 주인공> 프로젝트 2013  Courtesy Mariam Suhail; GALLERYSK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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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베를린비엔날레 예술총감독 후안 A. 가이탄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바란다”

bb8 (2)이번 비엔날레는 특히 국제적, 다문화적으로 느껴진다. 참여 작가 선정기준은 무엇이었나.
일부는 예전에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된 작가들로 그들과는 그간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지적 토론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어 초대한 작가도 많다. 넓은 시각으로 전시에 어울리는 작업을 선정했기 때문에 선정된 작가들이 국제적인 면면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국가성이나 지역성 측면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개별 작가가 개인적 관심사와 흥미를 작업을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주요 전시장이 서베를린에 위치한 점은 이전 비엔날레와 완연히 차별되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이 된 미테 지역뿐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도시 전체로 전시의 포커스를 확장하고 싶었다. 하우스 암 발트제 전시관과 달렘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바탕으로 현재 미테 지역에서 보이는 18/19세기의 부흥운동과 같은 경향을 능가하는, 더 광대한 전망과 가능성을 창조하고 싶다.
달렘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비유럽권 미술품과 민속학적 컬렉션을 보유한 달렘 박물관은 매우 흥미로운 장소이다. 방문객들이 여느 미술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기 소장품에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비엔날레 전시 외에도 박물관 상설전을 구경하며 현대미술과 민속학적 유물 간의 전시 및 수용상의 차이점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거다.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를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방법은 현대미술이 전시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민속학적 유물들은 전시 기획상 좀 더 특별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상이한 두 대상이 한 장소에서 만나면서 발생하는 현상들, 예컨대 얼마나 이단적인 전시방법이 각각의 맥락에서 다르게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그때 사용된 장치들로 인해 미술품과 유물을 대하는 관람객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경험이다.
광활한 쿤트스베르케 미술관의 주전시실이 소규모 작품들로만 채워진 광경은 놀라움을 넘어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비록 개별 크기는 작지만 작품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거대한 군(群)을 이루는 모습을 보라! 우리는 논제라는 관점에서 미술작품에 접근했으며 또한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데 드는 시간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종이를 매체로 한 작업이 특히 많이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사회·정치적 비판의 목소리가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미술매체로는 드로잉만한 게 없다. 어떤 작업이든 시작 단계와 아이디어의 윤곽을 잡아가는 과정에 드로잉이 있다.
화려함과 스펙터클 대신 절제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택한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 특유의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대한 제스처와 시각적 이미지의 과잉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한국적인 모습이 아닐지? 내가 생각하는 독일의 정서는 좀 다르다. 이번 비엔날레는 지적이고 주의 깊은 감상을 요하는 작업들로 변주되었다. 이를 통해 대규모 전시에서 놓치기 쉬운, 느린 템포의 명상적이고 축약적인 미술에의 접근을 이루었다. 소비와 토털패키지적 체험을 추구하는 현대미술계의 자본주의적 욕구에 지나치게 부합하는 거대 제스처를 지양하는 전시가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였다.
관람객이 전시에서 어떤 인상을 받기를 바라는가.
이번 비엔날레는 미술이 현재 처한 응급상황을 조명하고 특히 예술의 비판적 역할과 기능, 즉 우리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발달시키고 촉진하는 길을 열어줄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다. 방문객들이 비엔날레라는 형식으로 열리는 전시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베를린비엔날레가 끝난 후 어떤 개인적인 계획이 있는가.
거의 2세기 동안 실종 상태인 고야의 머리를 찾는 탐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베를린 = 신원정 통신원

후안 A. 가이탄(Juan A. Gaitán, 1973년생)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과 밴쿠버 에밀리 카 미술디자인인스티튜트 출신의 작가 겸 미술사학자이다. 웨스트 프런트 협회 임원 및 밴쿠버 모리스 & 헬렌 벨킨 아트갤러리 객원 큐레이터(2006~2008), 로테르담의 비테 드 비트 현대미술센터 큐레이터(2009~2011),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아트 칼리지 겸임교수(2011~2012)를 거쳤다. 전시 기획 외에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온 그는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프랑스 댕케르크 노르파드칼레 현대미술 지방재단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