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미술은 이동한다_윤동희

미술은 이동한다

출판사 대표 윤동희

“회화는 이동한다.” 세계적인 출판사 리졸리(Rizzoli)에서 출간된 피터 도이그(Peter Doig) 화집에 서문을 쓴 리처드 쉬프(Richard Shiff, 오스틴 대학 모더니즘연구센터 디렉터)는 도이그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했다. 스코틀랜드, 트리니다드, 퀘벡, 온타리오에서 성장해 런던, 몬트리올, 트리니다드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최근에도 런던과 캐나다를 오가며 작업하며 뒤셀도르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화가의 지리적 ‘이동’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수정되는 회화의 개념적·기술적 ‘이동’을 간파한 것이다. 쉬프에 따르면 ‘이동’에는 뿌리가 없고, 안정적이지 않으며 그에 따라 인내가 필요한 부정적인 측면과 변화하는 삶의 조건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한 몸을 이룬다고 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drifter’를 피터 도이그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그의 시각은 미술 안팎을 오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미술이라는 우연 그리고 운명 그저 막연했다. 밀레니엄 맞이로 세상이 분주하던 시절, 1999년 여름, 낯선 곳에 도착했다. 《 월간미술》.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전문지. 대학시절 애독했던 잡지의 ‘기자(editor)’. 그때까지 미술은 내 시간의 바깥에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를 나와 중앙일보 7층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을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내가 있을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내내 이어졌다. 그래도 미술기자 생활은 즐거웠다. 가야 할 미술 현장도, 만나야 할 미술인들도, 써야 할 미술 담론도 넘쳐났다. 마치 미술기자를 하도록 각본이 짜인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질문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다음엔 뭘 해야 하는 거지?”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공부를 더해 학교에 자리 잡거나, 큐레이터를 하거나, 미술평론가로 살아가거나…….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 ‘다른’ 경로를 이야기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시대는 탈경계를 넘어 ‘초(超)’경계로 나아가는데 미술은 미술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디자인에 바탕을 두고 책을 만드는 사람. ‘안그라픽스’에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학원에서 시각문화를 공부한 직후였다. 실리콘밸리가 세상을 주도할 준비를 마쳤고, 로버트 라이시(부유한 노예), 다니엘 핑크(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세스 고딘(보랏빛 소가 온다), 말콤 글래드웰(티핑 포인트) 등의 ‘구루(Guru)’들이 새로운 삶과 노동, (기술)문화를 예견하고 있었다. 반면 미술은 젊은 작가 전성시대, 미술시장 전성시대, 한국형 팝아트 전성시대, 상업화랑 전성시대 등 난생 처음 찾아온 ‘호황’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술은 진짜 미술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960년대 이후 생산된 동시대미술은 그렇게 낡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미술로 향한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미술대학에서 미술 이론을 강의하고,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편집위원을 병행하고, 젊은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미술무크지.
《 debut(데뷰)》를 창간하며 버텼다.
장르의 경계, 분야의 이동 그리고 새로운 척도 미술기자 5년, 편집자 5년. 10년의 시간을 채우고 2007년 대형 출판사의 투자를 받아 ‘북노마드’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현재까지 130여 종의 책을 만들었다. 연예인 책으로 ‘대박’도 쳐봤고, 달콤한 (여행) 에세이로 지속 가능한 출판을 가능케 했고, 조금씩 미술, 디자인, 건축 곁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미술은 거품이 꺼진 미술시장을 빠져 나왔다. 많은 이가 위기라고 호들갑 떨었지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부터 다시 미술을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미술이 아닌 것으로 미술을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래픽디자인, 기술문화, 인문학, 고전 등의 화두가 문화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미학적 기능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틀을 형성했다.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제너럴그래픽스(문장현), ‘워크룸’(김형진 박활성 이경수), ‘슬기와 민’ ‘김영나’ 등은 인문학과 예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갈지를 아는 그래픽디자인의 ‘선수들’이었다. 그 곁에 전시 도록, 단행본 등의 형태로 문경원, 전준호, 정재호, 유근택, 이동기, 권오상, 문성식, 서용선, 김주현, 임근준, 정은영, 사사(44), 사무소(samuso), 플라토 등의 미술이 함께했다. ‘JOH&Company’의 조수용은 디자인을 플랫폼 삼아 기술문화(네이버), 건축(네이버 그린팩토리), 매거진(B), 외식문화(1호식)의 틀을 바꾸었다. 장르의 경계와 분야 사이의 이동은 새로운 장소와 척도에 적응하고 그것과 관계하게끔 영향을 미친다는 마리아 린드(Maria Lind, 스톡홀름 아트센터 관장)의 말이 옳았다는 것은 독립서점(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가가린, 포스트 포에틱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적응한 독립출판물들이 보여주었다. 이게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호기심으로 바꾸어버리는 대안적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술이 다른 영역과의 접점을 모색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렉스 콜스가 《 디자인과 미술》에서 정리한 대로 19세기 말 비평가 존 러스킨이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를 시작으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운동(소련의 구축주의,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데사우 바우하우스 등) 그리고 장소-기능-미술 양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호르헤 파르도, M/M, N55, 토비아스 레베르거, 슈퍼플렉스 등 미술을 디자인세계에 팔고, 디자인을 미술세계에 판매하는 예술가들의 실천으로 이어져왔다.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비평가인 키스 도르스트가 강조한 것처럼 미술과 다른 영역 사이의 경계는 단지 미술로부터 향하는 것이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예술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은 있었다.
자율과 대안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 최근 나는 또 다른 ‘일’을 저질렀다. 자율적-대안적 미술학교를 꿈꾸며 ‘a. school(에이스쿨)’이라는 소규모 미술학교를 꾸렸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미술대학(원)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협업을 실천하는 ‘art duo(아트 듀오)’, 외부 전문가들을 모시고 학생들의 작업을 깊이 있게 점검하는 ‘critic(크리틱)’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작가들에겐 기획전을 열어주고, 미술평론가가 인터뷰 또는 비평함으로써 미술무크지《 debut》에 소개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지라 a. school은 아직도 자유파행(自由爬行) 중이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드넓은 대지에서 이리저리 굽이치면서 흐를 그날을 기대하며 지속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미술이 현실이라는 실재와 대면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미술과 접속 가능한 또 다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정해온(coordinating)’ 지난 시간의 출발과 끝은 결국 미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의 영토에 머물 생각이 없다. 북노마드를 출판-디자인-미술-교육이 어우러진 ‘스튜디오’로 만들고 싶다. 물론 시대는 수상하기만 하다. 세상의 모든 분야는 ‘기업형’ 독과점에 넘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내겐 그 사이를 비집고 자율적인 생존을 이어가는 각양각색의 스튜디오문화가 미술, 출판, 디자인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이 있다. 나는 그 믿음을 믿으려 한다. 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궁극적인 디지털화로 인해 모든 분야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뀔 거라고 예견했다. 산업이든 예술이든 복제 가능한 것은 무료로 나눠주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유연성과 분권화, 열린 마음일 것이다. 자신이 속한 특정 분야에서 전형성에 머물기보다 그것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그의 말에 밑줄을 그어본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에드 루쉐는 “자신이 전문 사진가로 인식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구성을 만들려고 애쓴다”고 고백했다. 루쉐는 그렇게 함으로써 “눈에 띄는 스타일”을 이루어냈다. 이제 예술은 고유한 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요소들을 배치해야 한다. 내용보다 인기와 상업성으로 일관하는 미술, 출판, 디자인,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술의, 출판의, 디자인의, 기술의) ‘문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의심해야 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이것은 출판이 아니라고,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이다. ●

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안그라픽스,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세종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 인천가톨릭대, 동국대 대학원 등에서 미술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북노마드 대표, 미술학교 a. school(에이스쿨) 대표, 세종대 회화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특별기획]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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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d_title]영화는 굿의 확장된 개념[/bold_title]

s01_3냉전과 분단을 주제로 작업해왔는데 <신도안>, <파란만장>, <만신> 등 최근 작업은 지속해서 민속신앙과 무속을 다루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누구나 인생에 어려운 시기가 있듯이, <신도안>을 시작하기 전 몇 년은 생활도 고단하고 정신도 피폐했다. 물론 그전에도 종교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때는 절이나 산에서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 신도안에 대해 조사하면서, 한국의 종교문화에 끼친 근현대사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북한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최대 타자라고 생각했는데, 전통신앙이나 무속도 그에 못지않은 우리 사회의 무의식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민속신앙과 무속은 한국의 근대성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김금화 만신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금화 만신은 먼저 실향민으로 이북에서 내림굿을 받은 거의 마지막 큰 무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김금화 만신처럼 전통 굿에 뛰어나고 자태가 아름다운 분도 드물다. 그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 분단과 새마을운동을 지나면서 시대 변화와 가장 치열하고 직접적으로 만난 경우이며, 다른 어떤 무당보다도 그 역사를 의식하며 산 분이기도 하다. 새마을운동과 미신타파운동을 거치면서, 김금화 만신은 무속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았다. 이 영화는 그런 그녀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굿-코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말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만신>을 제작하다가, 1980년대 김인회 선생이 기록한 굿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이 영상을 보면, 굿이 완전히 코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코뮌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힘없는 사람들, 할머니, 아줌마, 아이, 환자들의 해방구이다. 해방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무당과 사람들이 함께 웃고 울고 춤추고 음식을 나누면서, 화해와 용서로 공동체를 다지는 것이다. 그래서 굿판에서는 다양한 금기 타파가 이루어진다. 지금 우리는 그런 문화를 상상하기 어렵다. 굿은 정치적 코뮌은 아니지만, 일제가 집중 감시했던 것처럼 문화적 통합력이 매우 강한, 권력이 충분히 싫어할 만한 공동체 문화였다.

<만신>은 기존의 단편 <그날>(2011)과 <갈림길>(2012) 두 편을 토대로 했지만 대중을 위해 더욱 친절하게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대중을 위해 친절하게 했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관객이 바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관객은 작가의 잘난 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불필요하게 어렵지 않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작가의 어려움이자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김금화 만신을 이용한 것이라면, 김금화 만신도 미디어와 논 것이다. 김금화에게 미디어는 다양한 무구 중 하나였다”라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무속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그리고 미디어 작가로서 고민은 무엇이었나? 신령과 전기, 무선(wireless)의 미디어와 영매 사이에는 이미지의 깊숙한 연결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현대의 온갖 무선 전파와 통화, 영상 등은 비가시적인 힘의 교류에 대한 인류의 오랜 열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와이파이는 염력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정보통신기술이 비록 전쟁기술이나 사회통제를 위해 더 많이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기술 이전에 주술이 있었다는 것, 주술이 기술로 연결되는 면은 충분히 흥미로운 연구거리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굿을 보지만, 거꾸로 굿을 영화로 확장한 것이라는 점을 관객이 생각했으면 했다. <만신>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설명에 그치는 과거 ‘재연’이 아니라, 드라마와 다큐가 어떤 살아있는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또 굿과 영화가 적극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영화적인 동기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 김새론이 걸립을 받는 장면, 특히 김금화 만신, 나아가 한국인을 고통스럽게 했던 죽은 쇠를 산 쇠로 만든다는 설정이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는 여러 가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압축해서 담으려 했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가 가장 연약하고 외로운 소녀 무당 ‘넘세’에 대한 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온갖 구박과 따돌림을 받는 넘세가 마을 사람들에게 무당으로 공인되는 반전이야말로, 여성잔혹사가 승리사로, 무당에 대한 천대가 공경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무속에 대한 우리 관념은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무당을 희화화하길 좋아하지만,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점집에 찾아 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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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104분 2013 (사진:(주)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만신> 스틸 컷 104분 2013 (사진:(주)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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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무속이 유효한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동시대 무속은 많이 부패했고, 미신적인 요소도 많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는 다른 종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화된 거대 종교의 부패상은 훨씬 규모도 크고 조직적이다. 성인의 가르침과 제도로서의 종교가 전혀 다른 것이듯, 전통무속의 가치와 무속의 실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무속은 한국과 아시아의 다신교이며, 가장 민중적인 종교문화이다. 그것의 동시대성도 다신적, 다원적 세계상과 민중성에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문명 전체에 위기를 느낄 때, 우리는 오래된 정신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무속만이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겠다. 선의 절대성과 생명의 신비, 우주에 대한 상상 등은 이성과 과학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속의 강점은 공동체적인 카타르시스와 화해의 윤리에 있는 것 같다. 무속은 속된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성스러움을 추구한다. 성속(聖俗)의 독특한 결합이 무속의 지혜고 매력이다. 그런 전통 무속문화가 앞으로 계속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술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술사의 흐름에서도 무속, 샤먼문화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 많은 것 같다.

박생광, 이우환, 백남준, 오윤, 민정기 등은 모두 무속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백남준은 자신이 무당이 되어 굿을 했고, 오윤은 굿만한 예술을 못한다고 한탄했다. 동시대에는 이불, 최정화, 윤동구, 배영환, 임흥순, 김상돈, 김해민 같은 작가들이 모두 굿과 무속에서 직간접으로 영향받았다. 나는 (주관적인 것으로 들리겠지만) 박이소의 어떤 작품에서도 무속의 기운을 느낀다.

이번 미디어비엔날레 주제가 ‘아시아 고딕’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들었다. 국제적인 행사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아시아 고딕’은 주제도 제목도 아니고, 전시의 흐름을 구성하는 키워드에 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제 중에 하나가 아시아의 원혼을 불러내 그들의 말을 듣겠다는 것이니까.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나도 궁금하다. 아직 주제들이 하나의 틀로 들어오진 못한 단계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또는 그것으로 표현되는 어떤 위기상황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지, 또 별다른 대안이 안보이는 암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용기나 열정을 끄집어 낼 수 있는지가 전시의 주 관심사이다. 아시아 작가가 반 이상 참여할 텐데, 그것은 아시아의 각 지역이 많은 경험/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성(性)’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아시아 공동체성에 대한 강조가 또 다른 타자를 양산하지는 않을까?

나는 ‘아시아성’에는 관심도 없고, 아시아성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시아 문화이론이나 동아시아 역사의 재구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화적 정체성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정체성보다는 유사성과 모순적인 복합성이 중요하다. 아시아는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는 복잡하고 애매한 흐름이다. 1950년대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라든지, ‘서구의 되감기'(평등이나 민주주의 같은 서구 근대의 진보적인 가치들을 더 급진화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아시아) 라는 이야기를 한다. 왕후이는 아시아나 동양이 서구의 상대개념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시아는 이미 서구이고, 동시에 서구가 아니다라는 식이다. 이런 시각은 이미 정체성 차원에서 동서 구분이나 닫힌 아시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매우 인류 보편적이다. 아시아 담론이 서구라는 타자를 발명할 것이라는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얘기에 걱정부터 하는 꼴이라고 본다. 아시아는 정치철학이나 문학비평 일부에서 논의된 것이 전부이다. 적어도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사실상 어떤 본격적인 얘기도 되어본 적이 없다. 트렌드라도 된다면 좋겠다. 나는 아시아 얘기를 자주 하면서도, 대만과 베트남에 올해 처음 가봤다. 독일에는 열 번도 넘게 갔는데 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미디어시티 서울 2014>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당면한 일이다. 다음 작업은 비엔날레 오픈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갑자기 다른 주제로 작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작업은 인기를 얻고 싶었던 나머지 깊이가 부족한 것이 많다. 다음에는 좀 더 깊이있는 작업을 하면서 인기도 끌고 싶다.

 

[bold_title]접신은 내 자신을 지우는 것[/bold_title]

오윤석  종이에 오일 스틱, 목탄 아크릴 190.5×140.5cm 2012

오윤석 종이에 오일 스틱, 목탄 아크릴 190.5×140.5cm 2012

오윤석 <4분33초(hidden memories-01) 싱글채널 비디오 4분33초 2012 삶이라는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내밀한 종교적 속성들과 관련하여 예술작품이 세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다.

오윤석 <4분33초(hidden memories-01) 싱글채널 비디오 4분33초 2012
삶이라는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내밀한 종교적 속성들과 관련하여 예술작품이 세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다.

s01_10샤먼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샤먼문화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보여지는 것이 많았다. 이 말할 수 없음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고 내성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것은 미술을 통해서 안정화되었고, 오랜 산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과 이후 작업을 통해서 텍스트로 드러나게 되었다.

작업에서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기 수행적이면서도, 어떤 제의적 요소가 있는 것 같은데, 특히 작업 <hidden memories-01>의 경우 접신(接神)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때가 되면 산에 가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작업장에 와서 그 기운을 느끼며 작업을 한다. 마치 주문처럼 음을 읊으면서 화면에 반복해서 쓰다보면 화면은 추상이 되고 결국 지워지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접근이 곧 지워버리는 것이며, 지워버리는 것이 접신이다.

샤먼문화는 오늘날 소외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문화든 탄압하고 왜곡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생명력 있게 살아남는 게 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모양만 변화했을 뿐 근본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생명력과 근본이 중요한 시대가 아닐까?

작업에 반영되진 않지만 관상이나 사주도 본다고 들었는데 따로 공부했나? 사주명리를 공부한 적은 없다. 그저 내 안에 것을 읽을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 자신의 질문에 무한 변형이 가능한 실험적인 자유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bold_title]시공간을 초월한 수평적 의식[/bold_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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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샤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계룡산 주변인 대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계룡산 주변에서 다양한 민족 종교들의 종교 의식과 무당들의 제의를 가끔씩 보아왔지만 특별히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익숙한 주변 체험 같은 그런 정도였다. 1980년대 당시 한국은 과도기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시기였다. 컬러TV 비디오 등 전자기기들이 등장했고 그것들을 통해 들어오는 매우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서양의 문화정보들 역시 혼란스러웠다. 아마 그 당시에 상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맥락에서 일련의 미디어작업을 해왔다.

오랫동안 작업에서 샤먼 개념을 적용했는데, 샤먼과 미디어를 어떻게 연결지어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미디어, 특히 TV매체는 무당들의 제의 절차와 많이 닮아있다고 본다. 무당들이 굿을 시작하기 전에 제단을 준비하고 촛불을 켜고 음식을 장만한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제례의식을 갖듯이 TV매체는 안테나를 세우고 전파를 맞추고 컬러를 조정하는 등 자신들의 기호에 맞춘다. TV채널을 조정할 때 많은 전파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무당들도 특정한 신과 연결하기 전에 많은 신이 들락거린다.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 굿을 할 때에는 무당은 자신을 도와줄 신과 직선적 채널을 맞춘다. 신으로부터 받는 비언어적 소통의 메시지를 무당이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의 언어와 행위로 변환시켜 명확하게 전달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 능력은 오롯이 무당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것은 마치 TV방송국에서 아주 선명한 컬러이미지 영상을 송출한다 하더라도 수신하는 TV가 흑백TV이면 흑백이미지가 나오고 컬러TV이면 컬러이미지가 나오는 것과 같다.

동시대 문화 중에서 샤먼문화와 맞닿아 있는 속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을 부리기도 하고 모시기도 하는 샤먼의식은 신과 인간이 동등하고 죽은 자와 산 자가 동등하다는 수평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 환경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수평적으로 의식을 주고받는 동시대 샤먼문화라고 생각한다.

위 김해민  싱글채널 비디오 47분 2013 화면 속에는 두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삶의 곡절과 판문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한 사람으로 각기 다른 시간대에 촬영된 두 모습이다. 그 두 인물은 각자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같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같거나 다른 표정을 보인다. 아래・김해민  3채널 비디오 6분 2011 카메라 촬영 기능인 포커스 인, 아웃 방식을 이용한 작업으로 3대의 모니터 화면 속 초점이 흐린 특정 남녀 영상이 서서히 선명해지면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상호간에 소통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진다.

위 김해민 <옛날 옛적에 판문점>
싱글채널 비디오 47분 2013 화면 속에는 두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삶의 곡절과 판문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한 사람으로 각기 다른 시간대에 촬영된 두 모습이다. 그 두 인물은 각자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같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같거나 다른 표정을 보인다.
아래・김해민 <삼촌과 이모> 3채널 비디오 6분 2011
카메라 촬영 기능인 포커스 인, 아웃 방식을 이용한 작업으로 3대의 모니터 화면 속 초점이 흐린 특정 남녀 영상이 서서히 선명해지면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상호간에 소통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진다.

 

[bold_title]샤먼은 타인의 전세계를 대신 젊어지는 사람[/bold_title]
s01_15작업을 ‘만다라’라고 표현한다. 어떤 이유에선가?

하나의 작품 안에 수십 개로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씩의 또 다른 작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각기 다른 염원을 품은 도형들과 형상들이 집적되어 만들어진 만다라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고려불화를 배우고 있다고 하던데.

재학 중에 둔황 막고굴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천년 이상 지속되는 동양 물감과 그것으로 표현된 형상들에 놀라고 염원을 담은 조각품인 불상들에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불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염원을 담은 작품’이란 화두가 생기기도 했다.

기이한 형상에서 출발해 곤충, 여신을 다룬 작업을 선보이는데 어떤 의미인가?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나 항상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부적응자다. 그 부적응하는 모습이 투영된 형상이 곤충이나 기형적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단군신화의 웅녀나 유화부인 등등 신화 속 여성 등장인물은 늘 아이를 낳고나면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곰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순간의 웅녀를 만든다든지, 여신의 제단을 그린다.

최근 선보이는 작업의 경향에 대해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내 얼굴의 전세계>처럼 얼굴의 이목구비 위에 전세계가 붙어 있는 작품을 제작했다. 나는 타인들의 존재가 얼굴들로서 내 안에 존재하는 것에 주목했다. 얼굴은 내가 볼 수 없으니, 제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내 얼굴은 타자를 향해 날아가서 존재한다. 내 얼굴과 타자의 얼굴에 무한한 시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마도 샤먼은 한 인간이지만, 타인의 전세계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피  혼합재료 140×140×270cm 2011 환대하는 문들을 매단 수많은 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마을이면서 한 사람의 거대한 여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피 <하늘달동네 여자> 혼합재료 140×140×270cm 2011
환대하는 문들을 매단 수많은 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마을이면서 한 사람의 거대한 여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피  혼합재료 240×80×180cm 2013 하나의 얼굴에 내가 일상에서 맞닥뜨린, 내 얼굴에 부딪힌 인물, 사물, 생각,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것이 형상을 입고 매달려 있다.

이피 <내 얼굴 위의 전세계> 혼합재료 240×80×180cm 2013
하나의 얼굴에 내가 일상에서 맞닥뜨린, 내 얼굴에 부딪힌 인물, 사물, 생각,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것이 형상을 입고 매달려 있다.

 

[bold_title]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bold_title]
s01_16작업에 표현된 여성이 모두 ‘바리데기’라고 했다.

내 작업에서 페미니스트아티스트그룹 ‘입김’을 떼놓을 수 없다. 8명으로 구성된 ‘입김’는 은폐되고 축소되었던 여성의 역사와 경험, 에로티시즘, 어머니, 여신들을 불러내어 여성주의 미술을 함께 기획하고 창작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모토로 결성된 그룹이다. ‘입김’에서의 활동은 곧 자아 찾기 여행이었고 내 안의 여신 불러내기였다. 이 여정에서 나는 바리데기를 만났다. 바리데기의 서사는 모든 여성의 주체적 욕망이 구술된 결정체다. 바리데기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에 버려진 딸이자, 자신을 버린 아비의 생명을 구하려 죽음의 강에서 생명수를 얻어온 딸이다. 죽음의 공간에서 아내가 되고 어미가 되어 다시 돌아온 딸이다. 그녀가 얻어온 생명수로 아비는 다시 생명을 얻었다. 죽음의 공간에서 다시 돌아온 바리데기는 소녀가 아닌 모든 어머니의 몸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몸이 된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린 아비를 구하듯 피 흘리는 모든 생명을 보듬고 껴안았다. 어머니의 몸은 이미 몸 안에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기에 타자의 상처와 고통을 나의 것처럼 아파하는 여성적 공감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의 씨를 만들고 자라게 하는 모성의 에너지가 흘러 다닌다. 내 작업의 소녀들은 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이다.

귀농의 경험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가?

처음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그저 서울의 주변지역으로 작업장을 이동한 것이라 생각했다. 농촌지역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수단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 농삿일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하나여서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인간의 삶과 일상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하루는 농작물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져 자연스럽게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졌다. 만물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황홀함은 내 작업의 에너지가 되었고 만물의 에너지가 땅 밑으로 들어가는 겨울의 침묵은 내 작업의 자양분이 되었다.

최근 여성의 얼굴과 몸에 검은 문자를 결합시킨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머리카락으로 표현된 문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한자(漢子)는 남성의 언어였고 지배 권력의 언어였다.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여성은 언어를 가질 수 없었고 드러낼 공간도 없었다. 남성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을 한자의 획들로 형상화한 것은 언어를 획득한 여성을 상징화한 것으로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체다. 검은 한자의 획들은 소녀에게 검은 대지가 되어 꽃들을 피우고 온갖 생명체들을 살게 한다. 부적과도 같은 상형문자의 머리카락들을 통해 여성의 언어체계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공생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 거대한 땅 덩어리로 표현된 머리카락에서 생명이 순환되는 역동적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류준화   181.8×227cm 2009 소녀들은 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들이다. 꽃은 욕망의 상처이자 치유의 흔적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에너지다. 물은 작가가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온 소재다. 여성의 몸 안에 이미 바다가 있다.

류준화 <따뜻한 물> 
181.8×227cm 2009
소녀들은 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들이다. 꽃은 욕망의 상처이자 치유의 흔적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에너지다. 물은 작가가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온 소재다. 여성의 몸 안에 이미 바다가 있다.

 

[bold_title]생명을 품는 여성들의 삶[/bold_title]
s01_19작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 페미니즘을 하나의 유행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예술 사조에는 유행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유행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작가마다 가는 길이 있다. 내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다. 처음에 그린 것이 나의 어머니, 그리고 시장의 어머니들이었다. 나의 고민과 관심사는 왜 저 여성들은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는가, 여성인 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만났다. 아직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고 우물을 파듯이 더 팔 것이다. 나는 정말 온전한 페미니스트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다.

2010년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워킹 맘마미아>에서 선보인 <블루룸>에서 ‘바리데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워킹 맘마미아전>의 주제는 ‘여성의 노동’이었다. 바로 바리데기를 떠올렸다. 원래부터 서사무가에 관심이 많았고 작업에 담고 싶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바리데기는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자 생명수를 얻으려 지하세계로 가는 일을 자청한다.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지하세계를 지키는 무장생의 아내가 되고 생명수도 구한다. 왕은 보답으로 나라의 반을 주겠다고 하지만 바리데기는 죽은 영혼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샤먼이다. 바리데기의 경우 노동의 대가가 바로 생명수다. 내침을 당하기도 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기도 하는 이 이야기 속 바리데기가 한국 여성의 근본적인 원형 같다. 물은 원래 무색이지만 삶과 저승을 가르는 물빛, 그리고 생명수가 푸르다는 것은 나에게 푸른 하늘처럼 넘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블루 룸>을 만들었다. 벽면을 종이 오리기로 장식했다. 예부터 전통 굿에는 종이 오리기 공예물이 장식됐다. ‘설경(說經)’이라고 해서 굿을 할 때 읊는 경(經)의 주요 내용을 종이에 문양으로 오려 넣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종이 오리기 장식은 <그린 룸>과 <화이트 룸>으로 이어진다.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화이트 룸>도 무속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사람들이 샤먼문화를 협소하게 해석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

버려진 사물에 대한 연민과 애착이 크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여성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지금은 물자가 너무 풍부해서 쉽게 버리지만, 나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를 살아서 무엇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사물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예전에 나의 할머니는 사람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설거지를 할 때도 하수도에 뜨거운 물을 그대로 못 버리게 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생명체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인류가 여기까지 생존해왔지만 인류 자체가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는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풀도 자연도 다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재환 선생이 내가 죽은 나무로 작업한 것을 보시고 처음부터 애미니즘적이라고 하셨다.

윤석남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0 작가는 여성의 일생을 역사와 현실로 조망하는 방 연작을 해왔다. 의 바닥에 구슬은 온갖 고생 끝에 생명수를 얻은 바리데기의 삶을 은유하며 동시에 부활과 희망을 상징한다.

윤석남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0 작가는 여성의 일생을 역사와 현실로 조망하는 방 연작을 해왔다.
의 바닥에 구슬은 온갖 고생 끝에 생명수를 얻은 바리데기의 삶을 은유하며 동시에 부활과 희망을 상징한다.

왼쪽・윤석남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흰색 꽃들은 죽은 자의 영혼에 바쳐진 애도의 꽃이자,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오른쪽・윤석남  혼합재료 102.5×54cm 2013 빛 바래고 쇠잔한 너와들은 작가의 손 작업을 거치면서 생기 넘치는 숨결을 부여 받는다.

왼쪽・윤석남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흰색 꽃들은 죽은 자의 영혼에 바쳐진 애도의 꽃이자,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오른쪽・윤석남
<너와 47. 새야 새야 파랑새야> 혼합재료 102.5×54cm 2013 빛 바래고 쇠잔한 너와들은 작가의 손 작업을 거치면서 생기 넘치는 숨결을 부여 받는다.

 

[bold_title]샤머니즘에 내재된 ‘통합의 에너지'[/bold_title]

s01_23지난해 가을 저서 《바리》를 출간했는데 그 배경을 말해달라.

내 몸 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서 10여 년 동안 꿈 그림을 그렸다. 총 1500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몇 개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하나의 주제가 바로 서사무가 ‘바리’와 그 맥락이 닿아 있음에 착안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정리도 하고 소통도 할 겸 이야기책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광주민주항쟁을 일종의 굿의 개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오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샤먼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미술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는 샤먼의 제의적(ritual)인 성격을 내보이는 것도 있다. 예술가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태고의 샤머니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인류의 보편적 문화 원형(아키타입)인 샤머니즘의 세계를 두리번거리며 흉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샤먼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과정을 통하여 샤먼의 지위와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찢어발겨 해체하여 제사상에 올려서 먼저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과정이 바로 샤먼이 하는 일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처받은 영혼들과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작업에서 몽타주적인 요소가 강한데 어떤 의미인가?

샤먼이 12개의 눈을 갖고 있듯이 예술가도 12개의 눈을 갖고 있다. 이 말의 뜻은 곧 예술가가 12개의 눈을 갖고 있어야 하듯이 ‘서사성’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의 서사를 갖고 있다. 즉 인연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물건이나 생명이 태어나기 전의 과거와 향후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와 그리고 상하좌우에 맺은 인연들 속에서 그 생명은 의미를 갖는다. 예술은 생명에 관한 동경과 존엄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샤먼과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신(神)이 들어있다. 즉 신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로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명과 신에 대한 서사적 관점이 바로 우리 식의 몽타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작업의 뿌리를 한국의 토착문화 신화, 설화, 샤머니즘 등에 두었다. 이같은 문화의 동시대적 유효성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토착문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문화의 원형은 모두 공동체의 구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신화나 설화 그리고 샤머니즘은 ‘통합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것에 반해서 권력은 무엇이든 관계를 ‘분리’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정치권력은 개인과 개인을 분리하고, 지역과 지역을 분리하고, 계층과 계층을 분리하는 것에 성공을 거두어야 권력을 강화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시대의 자본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몸짓을 키워야 하는 아귀 같은 숙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자본은 항상 배가 고파서 줄곧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틈이 벌어져서 고립되고 고독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자본의 시장은 넓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은 끊임없이 사람과 사람을 개별화, 파편화해 분리시켜 틈새를 넓히는 것에 무한정한 폭력을 행사한다. 이제 개인은 어찌할 수도 없는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권력과 자본이 ‘편리성’을 주장하면, 개인은 그 작은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이라도 과감하게 대가로 지불한다.

샤먼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다. 하늘과 땅은 각각 ‘원리’와 ‘방법’이다. 즉 원리와 방법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때 세상은 사기술과 기만이 판을 친다. 이럴 때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짝퉁샤먼도 자주 등장하여 허위로 가득한 주술을 설파한다. 그래서 올바른 의미의 샤먼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국가공동체가 이미 무너졌고, 민족공도체도 존재할 틈이 없다. 도시공동체는 물론이고 마을, 동네 공동체도 모두 무너졌다. 직장공동체와 학교공동체도 깨졌다. 심지어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가족공동체도 파괴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깨지고 바서진 관계망으로는 우리의 그 어떤 미래도 낙관할 수 없다. 자본의 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고스란히 우리의 맨몸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류의 원형적인 문화는 권력과 자본과 짝퉁샤먼에 의해서 분리되고 쪼개져버린 위와 아래, 좌와 우, 처음과 끝, 과거와 미래, 하늘과 땅, 육신과 영혼, 안과 밖을 어루만져 탁월한 차원에서 통합시켜나가는 일에 동시대의 유효성이 있다.

홍성담  캔버스에 유채 290×900cm 2003  여러 가지 이야기와 많은 상징으로 삶과 죽음, 선과 악도 결국 하나의 순환원리로 품어 안으며 문명의 쓰레기조차 생명의 원력으로 재생해내는 동북아시아적 상상력을 그린 작품이다.

홍성담 <신몽유도원도> 캔버스에 유채 290×900cm 2003
여러 가지 이야기와 많은 상징으로 삶과 죽음, 선과 악도 결국 하나의 순환원리로 품어 안으며 문명의 쓰레기조차 생명의 원력으로 재생해내는 동북아시아적 상상력을 그린 작품이다.

홍성담  석고 두상과 혼합재료 60×40×80cm 2013

홍성담 <총알_8> 석고 두상과 혼합재료 60×40×80cm 2013

홍성담  캔버스에 유채 194×400cm 2011

홍성담 <삽질소나타> 캔버스에 유채 194×400cm 2011

 

[bold_title]압도적인 무의식 세계에 대한 관심[/bold_title]
s01_26어떻게 토착종교와 무속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패턴과 문양들을 관찰하고 수집하던 때 각 문양에 어떤 주술적 의미가 있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토착종교에 우회적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속신앙에 대한 관심은 주재환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인간의 욕망이 돈과 자본의 배치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역의 믿음과 질서, 안녕을 도모하는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무교)가 어떻게 위협받고 대립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희망을 내면화하는지를 정화하는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 증후들의 진행 방향, 구축되는 방식들이 토착화된 종교와 민속으로 물러난 무속문화의 어떤 신앙이 뿌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최근엔 한(恨)의 정서나 샤머니즘의 분위기가 왜곡되고 폄하됐다가 밤의 어둠을 틈타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귀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원래 대량 생산되는 공업용품으로 작업을 해오셨고, 박스테이프의 경우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띈다. 무속신앙 역시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는데 혹시 이것이 작업과 관련성이 있나?

껍데기만 있는 텅빈 존재, 목적성이나 대상의 탐구가 아닌 경제적 관념의 잣대로 들이대는 가치척도에 대한 숭상이나 비하들이 내 작업에서 드러나는 색채를 만들었다. 무신들과 색채가 연관성이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적 형태와 작용들에 대해 탐구할 계획이다. 그리고 샤먼과 무속신앙에 관심있는 작가들과 교류하며 공부하는 모임도 함께 꾸려나갈 생각이다. 모든 종교의 우열을 떠나 인간을 구원하고 위안하는 혹은 잊게 하는 어떠한 형태의 지점들을 몸소 체험하고 그 속에서 웃고 울고 하는 그 알갱이를 시각적 형태의 사건으로 기획하고 싶다.

김형관  무신상, 테이프, 비닐, 애드벌룬, 가변크기 2012 문래예술공장에서 선보인 이 전 시는 컬러테이프와 무신상들을 서울의 지도 위에 재배열하여 조화롭고 건강한 그림자를 들여다본 것이었다. 개막식에서 무녀가 직접 굿을진 행했다.

김형관 <당신의 건강한 그림자> 무신상, 테이프, 비닐, 애드벌룬, 가변크기 2012 문래예술공장에서 선보인 이 전 시는 컬러테이프와 무신상들을 서울의 지도 위에 재배열하여 조화롭고 건강한 그림자를 들여다본 것이었다. 개막식에서 무녀가 직접 굿을진 행했다.

 

[bold_title]굿판을 만드는 ‘바라지꾼'[/bold_title]
s01_27<자락>을 왜 벽이 없으면 불가능한 부조 형태로 표현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일련의 작업들은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경계’를 뚜렷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인간의 지각기능 한계 너머에 있는 것을 예감하고 그것을 드러내 보고자 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배경(벽면)의 존재가 없이는 스스로 존립하기 어려운 ‘불온전한’ 것이어서 이러한 ‘불온전함’이 주변의 모든 상황과 관계 맺게 한다.

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샤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유학시절 ‘문화재 복원’이라는 수업에서 그들의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주술적 민속문화, 연금술과 신비주의적 전통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동양의 선(仙)과 도(道)사상과 유사한 면을 발견하고 시지각적 인식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겪게 된 문화 상황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민주화 이후 다량으로 유입되는 외래문화들이 국내 대중문화와 섞이고 저변에 억눌렸던 민속 문화가 부상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층위를 형성하고 서로 충돌하고 섞이면서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굿’음악을 원류로 하는 산조음악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전주 산조 예술제’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굿 판’에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미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굿’에 담겨 있는 내용과 형식은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화의 다중화현상을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샤먼의 행위가 실현되는 ‘굿판’을 만들어내는 여러 역할 중에 굿판의 공간과 미술적 장치를 실현하고 연구하는 ‘바라지꾼’이다. 오랜 세월 굿이 전수되면서 굿판의 절차와 형식이 갖추어지고 그 안에서 사용되는 오브제들의 이미지, 행위들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며 내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식과 의미를 생성시켜보고자 한다.

채우승  레진 파이버글래스 205×145cm 2012 오른쪽・채우승  레진 파이버글래스 81×148×10cm 2012 인물의 옷자락과 천 자락의 형태를 부조형식으로 제작했다. 그 자체만으로 완결되는 기존의 조각작품과는 달리 그것이 놓이는 상황과 공간과 관계하면서 비로소 제 기능을 하며 완결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채우승 <자락 012-11> 레진 파이버글래스 205×145cm 2012 오른쪽・채우승 <자락 012-9> 레진 파이버글래스
81×148×10cm 2012 인물의 옷자락과 천 자락의 형태를 부조형식으로 제작했다. 그 자체만으로 완결되는 기존의 조각작품과는 달리 그것이 놓이는 상황과 공간과 관계하면서 비로소 제 기능을 하며 완결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bold_title]한국 사회의 어둠, 그 어둠의 기원[/bold_title]
s01_30작업 초기부터 성과 속의 세계를 다루어왔지만 최근 작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 것 같다. 어떤생각이 반영된 것인가?

나는 왜 근작에서 한결같이 어둠 속의 존재를 포착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내가 다루어온 세계가 주로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최근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성과 정의보다는 광기와 일탈로 점철된 현실을 비웃고 패러디하고 공격해왔다. 그것은 주로 밤의 시간 못지않게 백주대낮에 벌어진 어두운 풍경이었고 벌거벗은 한국의 사회였다. 이제 현실에 대한 탐색은 대낮의 어둠의 기원인 어둠의 어둠 그 자체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팔레 드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학과 그 친구들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직접 분(扮)한 학은 어떤 존재인가?

생과 사 혹은 자연과 인간 혹은 영혼과 육신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영매(靈媒)이다.

작업에서 풍자, 유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어떤 점을 강조한 것인가?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상태인 중음신(中陰身)의 세계는 고통의 세계다. 살아생전 자기가 저지른 죄를 벌 받는 기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현실계(現實界)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즐거워 보인다. 중음신의 세계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 현실계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를 말해달라.

예술의 좀 더 근원적인 형태, 즉 주술적이고 치유적인 단계를 말하고 싶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하는 현실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처와 회한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그 중간자 즉 사제(司祭)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후천개벽(後天開闢)에 관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고 자연스럽게 지옥계에 관련된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조습  피그먼트 프린트 2013 생(生) 사(死)의 중간 중음신(中陰身)의 세계를 떠도는 길 잃은 군인들 에 대한 일종의 씻김굿이다.

조습 <보리밭> 피그먼트 프린트 2013 생(生) 사(死)의 중간 중음신(中陰身)의 세계를 떠도는 길 잃은 군인들 에 대한 일종의 씻김굿이다.

 

[bold_title]도깨비, 한국인 무의식의 원형[/bold_title]
s01_31평소 작업의 흐름을 설명할 때 ‘널뛰기’란 표현을 했다. 작업의 방향이 비선형적인 것 같은데, 작업의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가?

비선형의 널뛰기란 사제형의 단성어가 아니라 광대형의 다성어와 같은 뜻인데, 동어(同語)반복의 형식보다는 이어(異語)확산을 좋아하는 게 타고난 내 성격인 것 같다. 작업의 영감은 굴곡 많은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체화된 것들이 의식 밑에 쌓여 있다가 나도 모르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것을 시각화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책, 신문, 잡지와 영화에서 혹은 술자리 대화에서 건진 것들을 선별해서 제작할 때도 있다.

도깨비에 대한 작업을 종종 선보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도깨비는 어떤 존재인가?

라디오도 드물던 1940년대의 소년시절에 호롱불을 켠 방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웠는데, 도깨비 얘기가 나오면 무서워서 마당의 뒷간에 가기도 어려웠다. 합리, 계량, 속도를 축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에 구술전승의 보고였던 호롱불이 기억나서 2009년에는 도깨비를 소재로 전시도 열었다. 돌이켜보니 기대치에 못 미치는 범작이 다수였다. 지난해 작고하신 김열규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도깨비는 막히고, 닫히고, 굳어진 조선사회를 해방의 공간, 자유의 시공으로 유도한 장난꾼이며, 사이킥 에너지이자 가장 한국적인 그로테스크 그 자체이다. 한국인 무의식의 깊은 심연. 한국인이 창조한 대표적 허구. 신출귀몰한 초능력자. 일상의 규범, 합리, 논리의 범주 이탈. 다양한 불일치, 야성, 원시성, 충동성, 조야성. 축제적 희극과 웃음.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그것이다. 조선 개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한때 적막한 유배지에서 겪은 도깨비 체험담을 남겼다. 비인비귀비유비명역일물(非人非鬼非幽非明亦一物).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니지만 하나의 물건. ‘비’라는 동일음이 신령스러운 주문처럼 리듬을 타는 정체불명의 존재. 이것이 그가 겪은 도깨비 모습이다. 토착문화의 창조적 발견과 현재적 응용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인 무의식의 원형인 도깨비문화에 대한 깊고 넓은 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불편한 현실을 유쾌, 풍자, 블랙 유머로 풀어가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유머에 대한 정의는 수없이 많겠지만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 아닐까. 쓴맛을 웃음으로 감싸는 역설. 이것이 내 체질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현재 진행하는 작품은 어떤 방향인가?

온갖 도깨비가 허무맹랑한 놀이판을 벌이는 <이매망량(魑魅魍魎)>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주인 알렉산드르 세레브로프는 《우주와 지구와 인간》이라는 책에서 우주에 가 보고 가장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시대이면서도 아직도 인류가 작은 지구의 비좁은 육지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주를 비행하면서도 그 점이 정말 불가사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하겠지만, 지구촌 현실은 모든 분야에서 온갖 악귀들이 날뛰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모든 역사는 어처구니없는 우행(愚行)의 기록이란 말도 있겠는가. 이를 시정하려는 문예의 힘은 잔혹한 폭력 앞에선 무력하다.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왼쪽・주재환  캔버스에 아크릴 91×72.7cm 2013 온갖 착한 신과 나쁜 신이 휘돌아치는 와중에 휩싸여 방향을 잃은 현대인의 초상이다. 오른쪽・주재환  지도, 무신도, 스티커 29×44cm 2014 서울 마포 지역의 지도에 무신도와 자동차 스티커를 배열했다.

왼쪽・주재환 <바람의 길> 캔버스에 아크릴
91×72.7cm 2013 온갖 착한 신과 나쁜 신이 휘돌아치는 와중에 휩싸여 방향을 잃은 현대인의 초상이다.
오른쪽・주재환 <이매망량 02> 지도, 무신도, 스티커 29×44cm 2014 서울 마포 지역의 지도에 무신도와 자동차 스티커를 배열했다.

 

[bold_title]사라진 무명씨들에 대한 존재론적 관점[/bold_title]
s01_35초기에는 미술제도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최근 작업의 경우 제의적 요소가 강해진 것 같다.

10년 전 광주에서 미대를 막 졸업하고 상경해서 처음 접한 미술계는 학맥과 인맥으로 촘촘히 짜인 다가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퍼포먼스는 자신의 몸을 직접 작업의 주체와 도구로 활용하며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방편이었다. 초기 작품들은 개인사를 중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 미술계를 비롯한 제도와 구조가 주요 소재였다면, 최근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사회적 문제로 그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정오의 목욕>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진 무명씨들에 대한 존재론적 관심에서 출발한 일종의 씻김굿과 같은 퍼포먼스로, 물이라는 요소와 목욕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장소에 기록된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동시에, 일상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그 공간을 재해석해보고자 한 작업이다. 이전부터 지속해왔던 순환적 시간 속의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생각이 특정한 장소와 만나면서 제의적 요소가 강해진 것 같다.

특히 작업에서 작가의 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작가의 몸은 예술과 관객, 개인과 사회, 자신의 내적 자아와 주변 세계 사이에 위치하며, 양쪽 세계를 기민하게 느끼는 감각체인 동시에 둘을 잇고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양쪽의 역학관계를 새롭게 전복하는 기제다. <정오의 목욕>에서는 역사적 장소와 젊은 여성의 나체를 병치시켜 여성의 몸에 대한 현대 자본주의의 선정성을 역이용하고자 했다. 사전에 신문 등을 통해 퍼포먼스를 미리 알리고 SNS로 유포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를 통해 과거 이곳에서 언론이 통제되었던 반면 이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 연일 네이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등극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예능 방송들에서 섭외가 들어온다거나 정치적인 코드에서 해석되는 등 여러 구조적 필터를 거치는 가운데, 나의 몸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개인, 기억과 망각, 예술과 외설의 경계 지점에 위치했다.

예술가와 샤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사의 경계에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샤먼과 현실세계에 상상을 제시하는 예술은 존재에 대한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이라는 분명한 접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와 디지털 시대에 분열된 공동체 회복을 꾀하는 현대예술은 죽은 자의 세계뿐 아니라 산 자들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를 화합시키는 굿과 닮은꼴이다. 그러나 현대 예술가는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인 샤먼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특별하고 견고한 주재라기보다는 타인과 공유되는 공동의 유연한 매질로서, 분열된 사회의 간극을 메우고 연결하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모색한다. 샤머니즘적인 관점에서 현대예술은 특별하고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속에 깃든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진행하고 있나?

최근에는 기성 미디어의 토크쇼 형식으로 세대론, 하위 주체, 서브 컬처 등을 다룬 인터넷 방송 “재규어 에잇! 시즌2″를 제작했고, 지난 1월에는 인디 밴드들, 미술가들과 연대하여 한 동성애자의 HIV(에이즈)감염 확진 커밍아웃 전시와 파티를 만들었다.

흑표범  디지털 프린트150×100cm 2013 퍼포먼스 기록사진(사진 이설제)

흑표범 <거인> 디지털 프린트150×100cm 2013<정오의 목욕> 퍼포먼스 기록사진(사진 이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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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퍼포먼스 2013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동시에 광주를 넘어 한국 예술계 전체에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흑표범 <정오의 목욕> 퍼포먼스 2013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동시에 광주를 넘어 한국 예술계 전체에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bold_title]’Trans’.샤머니즘과 예술이 맞닿는 곳[/bold_title]
s01_38최근 샤먼문화와 관련된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2010년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 밤을 새워 땅을 팠고, 전염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 죽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돼지들을 모두 산 채로 묻었다. 돼지와 내가 맺은 인연이라곤 삼겹살 구이, 돈까스, 돼지 주물럭이 전부였지만, 나와 내 먹이의 서사는 스스로 그러한 생태계의 네트워크만은 아니었다. 상품 가치를 지닌 종(種)만을 진화시키고 나머지는 멸종시키는 새로운 진화론 ‘마트선택설’의 천라지망을 뚫어야 했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공정의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건너간 중음과 황천의 소리를 듣고 이승으로 통역할 수 있는 텔레커뮤니케이션 관음(觀音)의 천이통(天耳通)이 필요했다. 샤먼의 미디엄만이 두 세계를 가로질러 웜홀을 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동료 생명들에 대한 관음(觀音)을 위해 흰 옷 입고 관 메고 사람들과 구제역 매몰지로 찾아가 각자 관에 들어가 뚜껑 닫고 누웠다. 죽음을 통한 생의 연대, <죽음 항해자>(2011)가 본격적인 첫 샤먼작업이다.

아트보살 작가라는 콘셉트로 직접 사주를 풀이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벼가 생장하려면 따가운 볕과 질퍽한 물이 필요하다. 벼는 불과 물, 주역괘의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상을 가지고 있다. 사주(四柱)는 그 생명의 시공간을 읽어 욕망의 배치, 기운의 운용을 가린다. 사주를 보기 위해 마주 앉는 순간, 1초도 안 걸려서 우리는 솔직해진다. 처음 보는 나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욕망과 걱정거리를 말한다. 마술 같은 시공간이다. 나는 그 사람의 욕망과 기운의 배치를 읽고, 애정, 취업, 건강, 돈으로 범주화되는 욕망의 서사를 해제하여 풀이해준다. 이것은 범주화에 갇힌 욕망의 결계를 풀어 싱싱한 생산의 에너지로 트랜스하는 대화의 순간이다. 샤머니즘과 예술이 맞닿는 곳엔 가로질러 다른 상태로 옮겨간다는 의미의 ‘Trans’가 있다.

작업에서 작가의 몸과 감각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은데.

요즘 국궁(國弓), 활을 수련하고 있다. 활은 땅을 살피고 바람을 읽어 몸과 활과 살(矢) 삼재가 리듬을 타면 그 목소리가 과녁의 붉은 중심을 뚫는 것으로 천지간에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관중(貫中)으로 신이 하강한다는 의미에서 활은 점(占)이다. 점(占)은 몸이 이 세계와 일치감을 갖는 한 순간이다. 몸과 감각의 변화는 타자와의 소통 그 자체다. 자신을 비웠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수직적 유목을 하여 심해의 사유(思惟)에 닿기 위해 나는 샤머니즘을 빌고자 한다.

위・이수영  퍼포먼스 2013 백령도 인당수 가까이에 '효녀심청'은 죽음의 공포로 치마를 들어 올려 얼을굴 가린다. 그 옆, 이승의 것이 아닌 여인이 전쟁과 죽음의 바다에 쏘는 활이 겨냥하는 것이 증오인지 공포인지 모르겠다.

위・이수영 <최종병기 활> 퍼포먼스 2013 백령도 인당수 가까이에 ‘효녀심청’은 죽음의 공포로 치마를 들어 올려 얼을굴 가린다. 그 옆, 이승의 것이 아닌 여인이 전쟁과 죽음의 바다에 쏘는 활이 겨냥하는 것이 증오인지 공포인지 모르겠다.

이수영  퍼포먼스 2011 몽골 남고비 초원에서 바람 속에 누워있는 짐승들의 자유로운 사체를 만났다. 함께 자란 풀과 바람 속으로 다시 돌아간 그 영(靈)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래했다. 오른쪽・이수영 <고사리 접신> 퍼포먼스 2012 2억 년 전 중생대 사우로스들과의 우정을 기억하고 있는 고사리 영(靈)에 접신했다. 고사리 영은 내 몸을 빌려 233개 중생대 동료 생명의 이름을 공수했다. 그 이름 중에 당연히 인간은없 었다.

이수영 <풍장(風葬)> 퍼포먼스 2011 몽골 남고비 초원에서 바람 속에 누워있는 짐승들의 자유로운 사체를 만났다. 함께 자란 풀과 바람 속으로 다시 돌아간 그 영(靈)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래했다.
오른쪽・이수영 <고사리 접신> 퍼포먼스 2012 2억 년 전 중생대 사우로스들과의 우정을 기억하고 있는 고사리 영(靈)에 접신했다. 고사리 영은 내 몸을 빌려 233개 중생대 동료 생명의 이름을 공수했다. 그 이름 중에 당연히 인간은없 었다.

 

[bold_title]야만과 맹목을 해독하는 것[/bold_title]
s01_42작업을 보면 한국 근대화 속에서 유령이 된 존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분적으로 열감지카메라를 활용하는 시도도 그러한 맥락인가?

그렇다. 유령이 된 존재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고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뜻이다. 눈에 안 보인다고 제거된 것이 아니듯이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살아있음의 근거가 되는 체온에 대한 생각도 밀어붙였다. 운동성과 온도는 생명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공포이기도 하다. 사라져서 유령이 아니라 없지 않고 있어서 유령이라 부른다. 그건 위협적인 것이다. 열감지카메라는 안 보여서 위협적인 것을 색출하는 용도로 쓰인다. 바이러스로 인한 고열이나 건축물의 누수현상, 심야 국경지대 같은 곳에서 이동을 감시한다. 따라서 틈새를 벌리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유령이라면 내가 작품에 열감지카메라를 역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어떻게 전이되고 위협적인 것으로 돌아올 지에 대한 희망을 호출하려는 맥락에서다.

<뉴타운 고스트> <손의 무게> <국제 호출주파수> <불의 절벽1-마드리드> 등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 호출주파수<의 경우 목소리는 있지만 가사가 따로 없다. 어떤 의미의 노래인가?

그 작업도 돌아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권능에 대한 역설에서 시작했다. 주파수대역 때문에 안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일터에서 해고당하고 살던 곳에서 수시로 떠날 준비를 하며 아는 사람들과 느닷없이 헤어지는 일이 당연해진 시대다. 누구나 이 공포감과 상실감 속에서 단절을 체화하고 외면을 생존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 점점 더 집단적으로 사고하지만 점점 더 외롭게 내팽개쳐진다. 그런데 내가 작가로서 관심있는 부분은 이 외면의 ‘내면’이다. 외면은 연대하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에 무관심하며 고개를 돌리는 일이다. 기존 미술이 재현하고자 하는 것도 이 ‘얼굴의 바깥'(형상)이다. 그런데 한번 보고난 뒤 아무리 외면하려 애써도 뒤통수에 따라붙는 어떤 소리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요청하는 미술은 바로 이 외면의 안쪽에서 자라나고 생성되는 소리에 대한 상상이다. 집단적 신체를 갖지 못해도 전파되고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소리. 온도처럼 안 보이지만 구름처럼 바람처럼 어둠과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소리, 울음소리, 비명소리, 이들은 긴급하고 절박함에 가장 먼저 터져나가는 장소이자 새나가는 기체다. <국제호출주파수>는 지금 보이진 않아도 돌아오고 있는 것, 끈질기게, 똑같지 않게 되돌아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요청하는 프로젝트다. 노래는 누구도 침탈할 수 없는 새로운 장소를 생성해나간다. 가지처럼 펼쳐진 주파수는 장소 상실로 무기력해지기는커녕 가녀려서 위협적인 것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콧노래, 휘파람 소리가 그렇다. 내가 노래소리와 음악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숭고, 애도 등 거창한 개념은 거부하면서도 다양한 연대를 시도한다. 이때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작용은 어떻게 보는가?

공동체의 회복이나 연대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작업을 도구 삼아 모색하진 않았다. 미술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내 작업을 숭고와 애도로 해석하기엔 너무 큰 옷을 입히는 듯해서 그랬지 개념 자체를 거창한 것으로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도될 수 없는 존재들을 소환하고 미술계 안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지지세력이나 동료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혼자이고 뿌리도 논리도 없다. 그런 내가 무슨 연대를 해왔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 오늘날 연대의 의미가 짓밟히고 윤색돼 ‘다양한 연대’라는 말을 내뱉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작업은 이름없는 것과 불러내는 힘의 부단한 길항작용이 만들어낸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연대가 발생한다. 내가 시도하는 연대는 거기에 있고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작용이 야만과 맹목을 해독할 수 있다고 본다.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발지상주의가 불러낸 ‘한강의 기적’이라는 망령 때문에 <뉴타운 고스트>와 <SOS>를 할 때 역설적으로 망령을 불러내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고 나서 2009년 <포터블 키퍼> 비디오작업을 할 때 구체적으로 샤먼을 생각했다. 유령은 반추상적인 것이고 맞불을 놓는 것이니까. 사라지면 드러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때 희망과 공포가 반반이 된다. 그리고 샤먼은 이 반(半) 속에 있다. 난 이 반(半)이라는 ‘어중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내 작업은 어중간하고 내 언어도 어중간하다. 난 정확히 더 어중간을 추구할 생각이다. 샤먼은 그 어중간한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샤먼의 언어는 공식화될 수 없고 소수자이며 언제나 응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남준의 <거침없는 환희>보다 요제프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서 부활하는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시인으로서의 샤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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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사운드 영상설치 10분55초 2011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저녁 6시, 지역 재개발에 따른 강제 철거에 맞서 명동의 카페 '마리'에 모인 사람들이 음악가 무키무키만만수에게 먼저 노래를 배우고, 다시 거리로 나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의 노래는 특정 국가의 언어로 된 가사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민욱 <국제호출주파수> 사운드 영상설치 10분55초
2011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저녁 6시, 지역 재개발에 따른 강제 철거에 맞서 명동의 카페 ‘마리’에 모인 사람들이 음악가 무키무키만만수에게 먼저 노래를 배우고, 다시 거리로 나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의 노래는 특정 국가의 언어로 된 가사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민욱  HD 비디오 사운드 싱글채널 프로젝션 13분50초 2010 승객들을 가득 실은 특별한 관광버스 한 대가 4대강 공사장, 폐쇄된 선착장, 유령 아파트 단지 등을 순례한다. 허락되지 않는 공간과 사라질 풍경 일부를 적외선카메라로 포착했다.

임민욱 <손의 무게> HD 비디오 사운드 싱글채널 프로젝션 13분50초 2010 승객들을 가득 실은 특별한 관광버스 한 대가 4대강 공사장, 폐쇄된 선착장, 유령 아파트 단지 등을 순례한다. 허락되지 않는 공간과 사라질 풍경 일부를 적외선카메라로 포착했다.

[특별기획] 김남수ㅣ안무비평-오늘의 샤머니즘과 감흥으로서의 정치

김남수 ㅣ 안무비평

나는 한국민족의 조상들이 추운 북방의 삼림지대(Tagar)를 통과하 면서 형성된 무교(Shamanism)적 체질이 한국인의 정신과 육체에 스며있어, 그것이 한국예술의 특성을 좌우했다고 본다. –조요한, 《한국미의 조명》, 1999

감흥으로의 시작

굿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샤머니즘은 언캐니한 것 이다. 그것은 샤먼이 소위 작두를 타기 때문이다. 작두를 탄다는 것 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안된다. 작두 아래에는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물의 메타포이다. 그 우물 속에는 용신이 살 고 있다. 해수계에서 지상계로, 다시 천상계로 솟구쳐 오르는 용의 다이내믹한 승천을 촉발하는 것이 작두타기이다. 즉 용의 제물이자 용의 매개자인 셈이다. 용, 즉 ‘미르’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동 북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왔다. 샤머니즘은 그 가장 오래 된 신앙 형태를 ‘영원회귀의 신화'(엘리아데)로서 다시 한 번 재현하 는 제의인데, 그 제의는 재현의 일반적인 의미를 떠나서 항상 언캐 니하다. 거기에 기묘한 부분이 있다.
작두타기를 하는 것으로서 해수계-지상계-천상계가 연결될 때, ‘사 슬 세우기’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사슬’이란 DNA처럼 두 겹으로 꼬아진 매듭 구조인데, 상징적으로는 황룡과 청룡이 새끼꼬기를 하 듯이 사슬을 이루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이 두 마리 용의 새 끼꼬기 하는 승천이 김금화 만신의 태몽이기도 하다(김금화, 《비단 꽃 넘세》, 32쪽). 즉 그는 무당이 될 팔자였던 셈이다. 이렇게 ‘사슬 세 우기’가 이루어져야 굿판의 모든 사람이 소슬해진다.
이렇게 굿판의 모든 사람이 서서히 섬뜩하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을 때, ‘무감서기’가 가능해진다. ‘무감서기’란 샤먼 이 대감놀이를 진행하는 막간에 일반 사람들이 샤먼이 벗어둔 무복 을 챙겨입고 굿판에 올라서서 마치 샤먼처럼 춤추고 사설을 읊는 행 위이다. 한 많고 억울한 사람들이 ‘무감서기’에 많이 나서는데, 가령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신명이 오른 상태에서 시어머니를 패기도 한다는 것이다.(홍태한, 《서울굿의 다층성과 다양성》, 87쪽) 신이 들 어와서 자아가 망실된 상태라는 변명과 함께. 그런 사정 탓에 이 ‘무 감서기’라는 판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없다면, 민중의 신명은 오르지 않고 사회적인 굿판도 열릴 리 만무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슬 세우기’와 ‘무감서기’는 샤머니즘이 커뮤니티와 함 께 할 때, 주요한 수행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굿판을 보러 갔을 때, 대 체로 보게 되는 것이 이 두 부분이다. 현대예술의 동향과 연루될 만 한 샤머니즘의 감각을 말하고자 할 때는 이 부분의 탐문이 긴요하다 고 보고,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통상 쓰이는 ‘신명’, ‘무감’ 이란 말 대신에 ‘감흥(感興)’이란 개 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개념은 분명히 스피노자 이후 정치미학에 서 주목해온 ‘affect’의 주요 번역어 중에 하나인 ‘감응’에 대응하는 것이다. ‘감응’을 감정이나 정서의 에너지를 신체의 극한적 상태로 표출하거나 배치하는 것이라고 정의 한다면, 요제프 보이스가 말하 는 ‘사회적 조각’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인간의 노동 영 역 안에 어느 정도의 잠재적인 창조성이 존재한다.”(보이스) 그런데 이러한 상태가 ‘감흥’의 외적 표현이 될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감흥’ 을 제안하는 것에는 다른 출발이 있다.
‘사슬 세우기’와 같은 의례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로서 터줏대감 을 불러내는 것을 연상해보자. 어떤 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어 제의를 할 경우, 먼저 그 토지신을 안심시키고 진정시켜야 한다. 그 래서 땅에다 술을 붓는데, 토지신이 술에 취해서(!) 잠에서 깨어나 게 된다. “‘흥(興)’이라는 것은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 《주술이란 무엇인가》, 198쪽) 이렇 게 어떤 것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렇게 하여 샤먼의 몸속에 들어간 소위 ‘몸주대감 상태’가 된다. 즉 몸 의 주인인 대감신에 의한 대리보충 상태. 이때부터 샤먼이 노는 것 이 아니라 대감신이 놀게 된다. 놀이라는 것은 피동형이다. ‘흥’은 무 아 상태에서 타자가 개입되어 있는 상태에서 노는 것이다. 이 ‘흥’은 백남준에 의해 사르트르가 제시한 명제, 즉 “나는 나인 것으로 존재 하지 않으며, 나는 내가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 와 연결이 시도되었 다.(<실험TV 전시회 후주곡>, 1964). 곧바로 라캉의 명제로도 이어 졌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내가 생각지 도 못한 곳에 존재한다.”
‘감흥’이란 이런 식으로 ‘몸주대감’이라는 타자에 의해 대리보충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계 체험이자 전이 체험이다. 소위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제의성의 ‘문지방’ 체험이 바로 ‘감흥’ 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를 경계로 구분짓지만 동시에 연결되 어 있는 무차별지대로 인지하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사슬로 맺어주 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흥’이 없다면, ‘사슬 세우기’라는 해수계-지 상계-천상계 사이를 꿰뚫는 ‘감통’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대감굿의 시대

19세기부터 20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해둘 만한 것은 바로 굿의 세속화이다. 이것은 굿의 타락이 아니라 굿에 보다 많은 유흥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유흥성이 란 해학과 놀이의 감각이다. 가령, 재담과 발탈의 명인 박춘재는 ‘대 감굿’을 ‘대감놀이’로 변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전 굿판이 가장 간단하게 정리된 도식이었던 <무당내력>에는 미미하게 소개 됐던 대감거리가 어느덧 굿의 주류가 된 것이다. 12거리 중에 하나 였던 대감굿이 12거리 전체를 모두 접수한 셈이다. 그랬을 때, ‘대감 놀이’는 기존의 ‘씻김굿’ 체제와는 유다른 샤머니즘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할까.
가령, 강신의 춤(降神舞)이 여전히 역사의 억울함을 씻기며 신의 고뇌와 합일하는 춤인 데 반해, 유신의 춤(侑神舞)은 청정한 성화(聖 化)를 완료한 자가 신인합일된 상태에서 추는 놀이의 춤이다. 유신 의 춤은 신이 불행을 벗고 즐겁게 노는 것을 요구하는 신탁을 자주 보낸다. “한 예로 경성 주변의 <대감놀이>에서 형식화된 공수 중에 는, “뭐니뭐니 해도 내가 제일이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면 너희들은 살아날 수 없다. 내가 만족하게 놀도록 해줄 수 없느냐” 하고 말하고, 또한 신전 앞의 공양물을 흘겨보며,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내가 혼자 먹어도 배를 채울 수가 없지 않느냐, 산 좋고 물 맑고 놀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잘 놀게 해줄 날이 언제인고” 라며 기원자의 갖 가지 기원조차 귀찮아하며, 서둘러 신놀이 신악으로 들어갈 것을 요 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아키바 다카시,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 는 무당》, 140쪽)
이 ‘대감놀이’가 흥미로운 지점은 유흥성을 살리면서도 여전히 ‘감 흥’의 세계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유흥성 속에서 새로운 밀도를 가지게 된 영역을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그동안 중구난방으 로 흩어져 있던 신들의 이름들을 ‘대감’ –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에 의하면, ‘대감’이란 북방아시아의 천신을 의미하는 ‘텡그리(Tengri) ‘가 대가리>대갈(Taigar)>대감 등으로 변이된 용어이다 – 이란 호칭 으로 정리하면서 “욕심 많고 탐심 많은 터줏대감”의 캐릭터하에 인 간과의 교섭을 보다 긴밀하게 하고 있다. 그 호칭 정리 과정에서 “대 주로는 몸주대감 계주로는 직성대감”이란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것 이 바로 위에서 말한 ‘몸주대감 상태’라는, 즉 엑스터시(망아 상태)와 포제션(빙의 상태)이 결합된 타자적 상태 (대감신이 몸의 주인으로 들어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상태)를 직접 지목하는 부분이다. ‘직성 대감’이란 보통 웬만해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대감이라고 새기는 데, 그 우직한 성격과 기개를 느낄 수 있다. 또 일설에는 “인간의 복 과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서 몇 년마다 바뀌는 대감의 신격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칸트의 정언명제로서의 ‘별’처럼 하나의 윤리학적 기초가 될 만하다.
그러면서도 ‘감흥’의 수준은 여전한데, 이제 본격적으로 술이라 는 매개체가 개입한다. “왜 한국인은 인사불성 상태까지 술을 마실 까?”라는 것이 쓰쿠바대학 최길성 교수가 진지하게 제기하는 쟁점 이며, 이는 ‘대감놀이’에 임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할 수 도 있다. 밤의 문화로서 술을 상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탈혼망아에 대한 지향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홀로 빚어서 고독주요/ 둘이 빚어서 대화주로다/ 셋이 빚으니 공 론주로다/ 뚝 떨어졌구나 낙화주로다/ 함께 빚어서 백년주야 ‘대감놀이’의 소위 약주타령의 일부인데, 이 사설은 술을 빚는 과 정을 다루고 있다. 사람수가 많아질수록 계급장을 뗀 공론장으로 초 대된다는 의미가 이채롭다. 술로 가능한 탈현실적 현실이란 얘기인 데, 민주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지향의 결과이다. ‘대감놀이’의 차원을 현장에서 증언해주는 이는 바로 김금화 만신 인데, 그는 북미 인디언들과의 굿에서 이러한 소감을 남겼다. “서로 딛고 선 땅이 다르고,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굿으로 통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며 ‘맺어짐’이 아니고 무엇일 까.(…) 서로 섬기는 신은 달랐지만 어떤 힘이 나를 그 먼 미국까지 불 러들여 우리를 포옹하게 하였다. 종교와 인종을 넘어서 인디언들의 신과 나의 신령님이 만난 것이다.” ( 《비단꽃 넘세》 218~225쪽) ‘대감놀이’에 와서 샤머니즘은 타문화의 신을 ‘대감’으로 호칭하면서 굿의 유흥성 안에서 문화적으로 친교하고 어울릴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러한 문화와 문화의 교류로서 샤머니즘을 적 극적으로 표현한 또 다른 이는 바로 백남준이다. 그는 1984년 도쿄 소게쓰홀에서 벌어진 요제프 보이스와의 <코요테 콘서트> 이후, 관 객과의 대화에서 이러한 ‘대감놀이’의 정신을 보다 쉽게 표현한 바 있다. 전쟁에 지친 두 부족 사이에서 신들끼리 대화주를 나눌 수 있 고, 공론주를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 다보면 지칠 때도 되었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도 될 수 있는 게 인지상정이고 보면, 때로 전쟁을 쉬고, 이쪽 신(神)을 저쪽 신에게 나들이 보내서 의논도 해보고, 저쪽 신을 이쪽으로 초대해서 융숭한 대접을 드린 다음 돌려보내드리는 게 인간다운 예의라고 생각한다 는 것, 신은 인간보다 한 차원 높은 품격이니까 이것은 얼마든지 가 능하다는 것”(유준상, <내가 본 보이스와 백남준>, 《비디오 때 비디 오 땅》 도록, 1992)이라는 전제가 인간이성을 초월한 ‘대감’의 신격 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콘서트 직전에 펼쳐졌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일종의 ‘대 감놀이’라는 차원에서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막간에 보드빌쇼 처럼 진행되었던, 뉴욕의 견우와 파리의 직녀가 위성의 방송사고를 가장하여 전개했던 코미디 ‘견우직녀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또한 그 2년 후에 <바이바이 키플링>에서 우주왕복선의 스페이스와 분할화면으로 공존한 것은 채희아 (김금화 만신에게 내림굿을 받은 신딸) 만신의 굿판 장면이다. 미디어의 세계와 샤먼의 세계 사이를 사슬로 엮는다는 것이 백남준의 전략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다른 기 회에 이 부분을 다루기로 하겠다.
물정치의 본래적 의미
2010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는 브뤼노 라투르였다. 그는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 : 어떻게 사물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을 한 바 있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자 연, 기계, 동물) 사이의 하이브리드를 주장해 온 철학자인데, 그런 기 반 위에서 ‘물정치’라는 보다 확장된 정치 개념을 제안했다. 쉽게 말 해서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까지 개입해 있는 정치이다. 그런데 이러 한 정치는 어떻게 입구를 찾아들어가서 이해해야 할까.
우선 그가 찾아낸 것은 하이데거가 해석한 물(Thing)의 의미이 다. “‘Thing’이나 ‘Ding’이라는 오래된 단어는 예전의 의회(議會)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유럽에서 게르만이나 색슨족의 여러 의회는 여전히 이런 물의 의미와 어원의 오래된 뿌리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Thingstaatten’은 ‘물(Thing)’을 표시하기 위한 원형의 석재 구조물, 즉 스톤 헨지 같은 신전이었음을 예시한다. 그리고 보 다 단적으로 아이슬란드의 의회로서 ‘Althing’을 거론한다. 이 의회 는 대서양과 유럽의 지각표층 사이에 존재하는 황폐하고 장엄한 장 소인 단층선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Thingmen'(지금의 국 회의원들)은 바로 그 단층선 위에 놓인 테이블에서 나랏일을 논한 것이다. 이것이 물정치의 예라고 한다면, 이는 놀라운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왜? 바로 그 단층선의 균열 사이로 피어오르는 화산 연기 를 마시면서 진행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 고대 델포이 신전에서 무녀들이 지하의 화산 연기를 마셔서 ‘감흥’ 상태에서 언 어가 신과 함께 하여 신탁을 내렸다는 것과 직접 연관된다. 언어가 시적인 것은 바로 탈혼망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물정 치의 본래적 의미라면 어찌할 것인가.
브뤼노 라투르가 ‘물(Thing)’이라는 오래된 어원을 부활시키려 는 의도가 단순히 군중을 사회법칙에 따른 몽유 상태로 빠져들게 하 거나 공감의 공동체로 재규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들 자체가 잠정적이고 임시적인 (비)동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소를 호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물로 돌아가라!” 라고 외칠 때의 그 사 물이 바로 단층선 위라는 장소이자 쟁점이 되는 셈이다. 바야흐로 물정치는 샤머니즘적인 정치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샤머니 즘적인 정치의 귀환이 가능할까.
동아시아에서 이런 식의 라투르의 물정치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극 단적인 예로 은나라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은 현재에 이르러 동이 족의 샤머니즘적 정치를 진행한 결과라는 것이 정설이다. 대체로 “비 가 오겠습니까?” “적이 물러가겠습니까?”같은 사안들을 정치적 군 장이 묻고 신이 답하는 형식이다. 그런 문답에 개입하는 샤먼을 표현 하는 한자가 바로 ‘약(若)’이다. 갑골문이 완전히 샤머니즘의 기호학 임을 밝혀낸 석학 시라카와 시즈카에 의하면, 이 약은 “신에게 기도하 면서 춤추는 광란하는 무녀다.(…) 약이란 신이 승낙의 뜻을 표시하 는 것을 말한다.”(시라카와 시즈카, 《한자 백 가지 이야기》, 130쪽) 또한 이 약(若)이 젊은 무녀의 엑스터시 상태를 표시하는 글자라 는 사실은 ‘닉(匿)’의 글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 무녀들은 지하의 샘물이 끓어오르는 어둡고 으슥한 곳에서 신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무녀들의 모습을 이 ‘닉’에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동굴 속에서 몰래 행하는 주술 의례였을 것이다.”(같은 책, 132쪽)
이러한 정치적 감흥을 아예 처음부터 채택한 황해도의 초감흥굿 은 문화와 문화의 교류가 완성형인 굿이다. 초감흥굿은 감흥신령, 즉 신들의 수장을 초청하는 굿이다. 감흥신령이 나타나면, 모든 신 이 출현한다. 그랬을 때, 신들의 민주주의가 발동된다. 감흥신령은 단군, 즉 ‘텡그리’라는 천신의 신격인데, 그 신격이 주재하는 몽골의 쿠릴타이에서 만주와 조선의 화백에 이르는 신성한 의회라고 할 수 있다. 해수계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사슬을 바로 세우는 정치로서, 조요한 선생에 따르면 일찍이 이러한 감흥의 정치가 타이가 삼림지 대를 지나면서 충분히 발효되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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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개관을 위해 언제부터 준비했나? 2012년 12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을 정년퇴임하고 지난해 5월 박물관을 개관했다.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다. 20대 때부터 박물관을 열 생각을 하고 물건을 사 모았으니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샤먼이 돌아가실 때 물려받은 것도 있다. 소장품들은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물건, 신당에 모셔진 물건 등 기본적으로 샤먼문화를 구성하는 물품들로 무신도, 무신상, 신복, 신구, 창검, 굿 제기, 촛대, 향로, 지화, 설경, 굿문서, 악기, 점도구, 부적 등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내가 12년간 살던 집을 개조해서 꾸민 것이다.
샤먼문화는 현재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무속을 종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아니면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현재 정책적으로는 무속을 종교로 보지 않는다. 무속인을 신앙은 다 배제하고, 인간문화재로 지정해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사람들, 무형문화재 전승자의 역할로만 본다. 하지만 실제로 무속인에게 신앙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게 없으면 무속인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무속을 미신이다, 미개하다, 우리에겐 불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본다. 무속이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외면받고, 외래종교가 득세하는 꼴이다. 종교뿐 아니라 음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외래의 것으로 뒤덮여 있다. 서양의 방식이 편하고 위생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샤먼문화가 꿈틀 거릴 틈이 없다. 그럼에도 무속이 필요할 때에는 이용한다. 예를 들어 현재 판소리는 국가에서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다. 중요무형문화재라는 것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 문화재를 전승하는데 지원한다는 뜻이다. 판소리는 얼마 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등재했다. 그래서 정부는 판소리를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국제페스티벌에서도 선보였다. 근데 판소리의 기원을 살펴보면 무당이 굿소리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판소리의 뿌리는 샤먼문화다. 샤먼문화는 우리 민중예술의 뿌리다. 이걸 버리고 나서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겉모양만 가지고 떠드는 것이다. 들추면 미개하고 타파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눈 감고 아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샤먼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건은 아닌데,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의 샤먼문화는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샤먼문화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다 존재한다. 현재 지구상의 문화축을 크게 둘로 나누어 북에서 남으로 오는 북방설과 남에서 북으로 가는 남방설이 서로 교차한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시베리아 문화권이 북방문화의 시작이라면 히말라야 문화권이 남방문화의 정점이다. 시베리아와 히말라야축 이 양축이 있고, 그 중간에 몽골, 중국, 한국, 일본 등이 있다. 국수주의적 관점이 아니고, 샤먼문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다보니 히말라야의 샤먼문화와 시베리아 샤먼문화가 합쳐지는 정점이 한국으로 밝혀졌다. 신내림을 받고 공수를 하는 것이 북방의 시베리아 문화라면 남방의 히말라야 문화의 경우 아름다운 옷을 입고 노래, 춤, 무구 활용 등 의례를 중요하게 여기며 무당이 세습된다.
남방문화를 빼고 한국 남쪽의 세습무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양쪽에 문화가 다 들어와서 서로 습합된 면에서 정점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샤먼문화가 꽃을 피울 수밖에 없다. 영향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자생적인 샤먼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일찍이 역사학자 최남선은 샤먼문화가 한국에서 중국과 일본으로 퍼져 나갔다고 주장했다.

샤머니즘박물관 전시광경

샤머니즘박물관 전시광경

무속인들에게 정화를 위한 자기 수련 및 수행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경우 승려,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수련 과정을 거친다. 무속의 경우 본인이 신들렸다고 하면 신당 차려놓고 무당이 된다. 특별히 걸러지는 과정이 없다보니 콩가루가 많다. 얼마 전 뉴스에 인간문화재 이수자가 1회에 5000만 원짜리 굿을 해 사기를 친다는 내용이 나오더라. 엉터리 무당이 많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무당들은 자기 수양의 과정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 자기 수련을 통해 억제심, 절제심을 기르면 속된 말로 영(靈)빨을 더 잘 받는다고 한다. 기도를 하러 산이나 바다를 많이 찾는데 연구된 바는 없지만 신령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 산이나 바다, 즉 청정지역이다. 샤머니즘이 환경 문제, 생태와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판단에 의해 자기 수련을 한다. 무속은 관례화, 시스템화되지 않아서 한계가 있다. 사회에서 특정 종교들은 구조화된 종교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성직자들이 성직자답게 보이도록 그런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신명’, ‘흥’으로 보는데 그것이 다 굿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나? 굿이란 흥을 가지고 놀음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흥을 돋우어서 병을 고치다. 가라앉은 기를 살리게 하는 방법이 ‘흥’이고 ‘신바람’이다. ‘신바람’은 신께서 주신 바람, 영의 바람으로 우리가 터치할 수 없는 것이다. 힐링문화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샤먼문화에 내재된 것이다. 무당은 신을 부르는 사람이고 신을 잘 조절해 아픈 사람을 낫게 한다. 무속의 행위 자체가 흥을 붇돋우는 것이다.
샤먼과 예술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 얘기했듯이 샤먼의 역할은 흥을 북돋우는 데 있다. 그리고 해로운 기운은 막아내야 한다. 나쁜 기운을 잘 걸러내야 흥이 더욱 살아난다. 그리고 행여라도 차후에 끼칠지도 모를 해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학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정화해주는 것이다.

이슬비 기자

[특별기획] 김종길 l 미술비평 – 샤먼 리얼리즘, 흩어짐과 한 몸의 미학

김종길 l 미술비평

집안에 누가 아파요. 그럼 누굴 찾죠? 물론 의사나 약사 죠. 그런데 100년 전으로 올라가면 어땠을까요? 한의사 나 한약방? 물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샤먼을 찾기도 했 죠. 누가 아프다는 것은 반드시 몸의 신체적 병리현상으 로만 파악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이 작동한다고 보았기 때 문이죠. 그렇다면 그 ‘다른 무엇’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샤먼은 ‘아픈 그’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후경(後景)으로서의 영계를 살폈어요. 아픈 ‘그’는 오 직 그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어지 는 숱한 삶의 알고리즘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샤먼은 ‘그 ‘가 아니라 그와 그렇게 연결된 알고리즘의 다른 부분을 굿으로 풀어 서 ‘그’를 치유합니다. 이것은 외과적 수술이나 약리적 신체반응으로 낫게 되는 육체적, 혹은 물리적 치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일 뿐 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고 초월적인 몸의 치유현상이라 할 수 있지요. 최근 작가 박찬경은 ‘아시아 고딕’이란 개념을 유포시켰어요. 우 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개념을 탄생시킨 배경입니다. 그는 이렇 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근현대를 겪으면서 죽은 사람도 많고 원귀 도 많고, ‘상처’ 관념이 널리 퍼져있는 나라예요”라고. 이 말은 우리 삶의 후경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망가져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후경 이 병들었으니 그 후경의 표상현실인 전경(前景)이 온전할 리가 없 겠죠.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뒤에도 군부독재와 살인적인 파괴적 근 대화를 겪어야 했던 자본주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단지 현실 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너머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삶의 사회적 환경은 물론이요, 그 삶의 주체인 민 중의 의식과 태도조차 깡그리 지우고 주입하고 다시 부수고 세우기 를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몰아쳐 왔으니까요. 박찬경의 말을 다시 인용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지역문화, 전통문화를 이토록 더 낯설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 은 서구인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국적인 느낌은 아 니에요. 프로이트가 말하는 ‘운하임리히(unheimlich)’, ‘두려운 낯 설음’이라는 개념에 오히려 잘 맞아요. 그러니까 친숙하기도 하지만 뭔가 두렵고, 체험에 남아있지만 여전히 뭔가 이질적인 대상이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친숙한 것이 아주 잊어버릴 정도로 억압되었 을 때,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세계는 사실 공간만 동일 할 뿐 결코 동일적 장소성의 역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어요. 역사 부재의 상실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러므로 어쩌면 유령일지도 몰라요. 죽 어서 환생하지 못하고 영계를 떠도는 중음신(中陰身)들 이 현실의 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깊게 침윤되어 있어서 자주 사건의 주체로 부상하는 것도 그런 문제죠. 그러므로 억압된 것, 즉 트라우마로 되돌아온 부재와 상실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 하는 의문에서 우리는 21세기 예술가/예술의 의미 를 재사유할 수 있다고 봐요.
현실은 응어리진 사건들로 넘쳐나는 아수라판이에요. 아수라판 의 현실계는 온갖 상징이 유예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서 ‘돌상징(굳 어서 관념이 되는 상징)’이 되는 사건의 연속이죠. 그렇다면 이때 예 술가/예술은 어떤 태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인데, 저는 일민미술관에 등장했던 애니미즘의 이미지들처럼 ‘돌상징’에 국한 된 미학적 상징어가 아니라 미학전야(美學前夜)의 ‘활어(活語)’로 서 공수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경이 눈앞의 현 실이고 후경이 현실의 이면에 그림자처럼 투영된 세계일 때, 아수라 판은 전후경이 맞붙은 세계이니 그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는 오 직 샤먼밖에 없으니까 하는 이야기죠. 바로 그 샤먼이 21세기 예술 가의 예지적 정체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전경의 현실을 인식하는 것처럼 후경을 인식해서는 안 됩 니다. 하나의 후경에는 몇 개의 직선과 곡선, 나선형이 몽타주처럼 펼쳐져서 풍경을 이룹니다. 현실에서 투영된 초현실과 비현실의 상 징계가 황홀하게 생성되는 세계가 바로 후경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후경의 세계가 표상되어서 전경을 이룬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고 요. 둘은 어느 하나가 진실이거나 원본일 수 없는, 그러니까 어떠한 차이도 없는, 어미탯줄의 아이배꼽이니까요.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현실계의 전경을 가능케 하는 후경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주 체가 바로 예술가 샤먼, 샤먼 예술가인 것입니다. 샤먼 예술가들은 끊어지고 이어지는 시간들의 빈틈에서 삶의 진리를 엿봅니다. 후경 은 카오스로 가득하지만 그 가득함에 코스모스가 있습니다. 후경이 전경으로 잠시 건너올 때는, 후경의 힘이 전경으로 뻗칠 때는 샤먼 예술가들의 몸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과 소 름을 몰고 오는 노래와 접신의 공유 속으로 밀어 넣는 흥얼거림이 그들의 입에서 터지죠. 후경의 리얼리즘은 샤먼의 입에서 비로소 형 상화되고 그것은 그래서 ‘샤먼/리얼리즘’이 됩니다.
미(美)는 미의 개념이 섰을 때 미 자신이 스스로를 해체분열하는 지속적 생동(生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샤먼 예술 가들은 오랫동안 그런 미의 구조를 신앙에 가까운 정신성으로 유지 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도(石濤)가 자신의 화론에서, 아득한 옛 날에는 법(法:美)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큰 통나무조차 흩어지지 않 았는데, 통나무가 한 번 흩어지자 드디어 법이 섰다고 말한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미학은 ‘흩어짐’ 즉, 해체분열의 새로운 전위 를 통해서 탄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20세기 동아시아의 미학이 서구와 충돌하면서 크게 상실한 것은 화법이나 화구, 화인과 같은 형식적 틀거리가 아니라 석도가 말했듯 이 일획(一劃)에서 발생하는 한 번의 흩어짐 즉, 태박일산(太朴一散) 의 미학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20세기 초반, 서구미학이 물밀어들자 수백 수천의 역사를 견뎠던 그 미학정신은 일순간에 무 너져버렸어요. 그것은 과거가 되었고 ‘근대’를 표상하는 그 어떤 미 학 속에서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근대인들은 어두운 중세 의 그림자 속으로 그것을 밀어 넣은 뒤 돌상징으로 만들어버렸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서구 근대미학이 결코 돌 상징의 그런 고루한 것이 아니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보세요. 다다(Dada)의 미학이 추궁했고 플럭서스(Fluxus) 미학이 또한 현 실과 초월의 경계에서 가 닿고자 했던 그 미학들을. 그들은 동아시 아가 상실했던 샤먼 예술가들의 영혼을 불러들여서 온갖 ‘흩어짐’의 전위적 미학을 터뜨렸잖아요. 요제프 보이스는 물론이요, 백남준의 네오 샤먼적 리얼리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돌상징의 미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가서 새 칼을 담금질하듯 불로 달구질하여 시퍼렇게 벼렸던 자, 그 시퍼런 칼날 위에서 새로운 미 의 황홀과 우주를 집전하는 자의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정체성은 오 직 샤먼에게 있었어요. 샤먼은 최초의 미학자였고 미의 담지자였으 며 미의 대리자였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는 시의 운율로 최초의 텍 스트가 된 공수의 신화를 터뜨렸고, 그 텍스트를 바람에 흩트리면서 춤을 추었으며 청동거울과 북소리로 이 현실과 저 현실 너머의 영계 를 맞붙여 불렀어요. 문학이, 연극이, 미술이 자유자재로 미분하고 적분(微積分學, calculus)하는 이 카오스모스적 판타지의 세계야 말로 가장 순수한 미의 대학이지요. 이제 21세기는 대샤먼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대일지 몰라요. 인류가 처한 작금의 위험사회와 위기상 황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죠.
대샤먼의 시대에는 예술이 분파되지 않고 총화(總和)로 모이지 요. 그림이다 조각이다 사진이다 영상이다, 아니 문학이다 연극이다 미술이다를 구분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이미 많은 예술가에게서 그런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전시공간이 문학적 텍 스트가 되거나 소극장이 미술의 미디어 공간으로 돌변하는 것은 사 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일 따름입니다. 공간의 문제 혹은 장소 의 문제가 아니라 샤먼 예술가들의 마당이 굳이 공간개념의 한계를 갖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발현되는 것이기도 하죠. 그뿐만 아니 라 현실 속 사건의 현장으로 뛰어든 예술가들은 매우 직접적인 샤먼 예술 굿을 기획합니다. 미는 그곳에서 잉태하고 소진하고 부활하며 익어갈 뿐입니다. 미는 굿의 부산물이 아니라 굿의 응결로서의 눈물 이며 환희이며 소리일 것입니다. 고대 샤먼이 말과 춤으로서 육화 접신의 경지에 들었다면, 이 시대 샤먼 예술가는 창조적 미의 형상 으로서 육화 접신의 경지에 들 것입니다.
20세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미학은 신자유주의 나 초자본주의의 세계가 지향했던 제국주의 지배전략과 유사한 측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서구미학은 한순간에 각각이 고유하게 창조해왔던 균열된 세계의 파편들을 단일구조의 보편미학으로 평면화시켜버렸어요. 그들은 그들의 내부에서 미의 해체와 분열을 지속하면서 쉼 없는 파열음을 확산시켜왔지만, 역설 적으로 그들이 파종한 제3세계의 세계미학은 고루하기 짝이 없었 어요.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제3세계의 예술가들이 다시 단일구조 의 미학체계를 부수고 해체하면서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죠. 어 쩌면 세계미학이 다시 그렇게 균열을 일으키며 파편화된 상태의 천 변만화로서, 어떤 동시대성의 시차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 은 바로 지금일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육십사괘음양상생지도(六十四卦陰陽相生 之圖)>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주역》의 64괘를 이미지로 표현한 그 그림을 보면, 최근 자주 언급되는 자연 질서의 프랙탈 이미지를 떠 올리게 됩니다. 아니, 그 둘은 완전히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 다. 괘(卦)는 우주만물과 천지자연, 인간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샤먼 의 눈입니다. 64괘는 인간의 생로병사, 길흉화복의 사건들을 상징하 는 기호체계죠. 《계사전(繫辭傳)》을 보면, “역(易)은 천지를 본받은 것이기 때문에 천지의 도(道)를 두루 포섭해 다스릴 수가 있다”고 했어요. 들뢰즈도 그랬죠. 천변만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한 차이 없는 반복은 없기 때문에 반복은 차이의 반복일 뿐이라고. 아수라판 의 현실도 알고 보면 프랙탈이고, 64괘의 일부분일지 몰라요. 그러 나 64괘에서 숱한 삶의 총화를 읽어내듯이 동일한 사건은 결코 존재 하지 않고, 반복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샤먼 예술가의 미학 굿 판은 바로 그 프랙탈의 세계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세계의 사 건들을 미학적 사건으로 전유해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살풀이하는, 진오귀굿의 마당이 되어야 할 것이에요. 샤먼의 눈을 뜨세요! ●

[뉴 페이스 2014] 이화평-우울한 유토피아

〈파리맨〉 종이 위에 잉크 62x34cm 2013

〈파리맨〉 종이 위에 잉크 62x34cm 2013

세상을 이분법적 사고로 정의 내리면 그릇된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변증법적 정의가 반드시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은 아니다. 연약하지만 강하고 억세지만 여린 생명이 숨 쉬는 곳.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세계. 나와 너를 시원하게 인정한 ‘A+B’의 공간은 어떤 모습을 취할까. 현실과 관념, 기억과 경험 사이 어디쯤에 젊은 작가 이화평이 이야기하는 세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한다.
스토리텔링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는 이화평은 예술가와 연출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스토리는 종이 위에 펼쳐진다. 여느 매체보다 작업과 보존과정에 공을 들여야 하는 종이의 연약함은 작가에게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종이에 담은 이야기는 ‘물’이다. 이 테마는 그가 대학 재학 때부터 줄곧 다룬 주제다. 현대사회에서 물의 흐름과 멈춤은 수도꼭지로 손쉽게 조절된다. 그러나 그는 열악한 환경의 거주지에서 침수 상황을 겪으면서 개인이 조정할 수 없는 자연으로서의 물을 느꼈다. 생활 속에 침투한 물은 피부로 다가왔고 피하고 제거하려 해도 공기 중에 퍼져나가 공간을 잠식했다. 그곳에서 생겨난 벌레와 곰팡이는 액체가 낳은 생명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제주도에 위치한 감귤농장에서 마주한 물(빗물)은 탐스러운 과실을 생산했다. 이러한 기억과 경험의 조화가〈과일농장드로잉 시리즈〉에 온전히 나타나는데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면서 활기찬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작품 속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싱싱한 생명력을 품고 있지 않다. 풍요로움과 어둠이 혼재한다. 이런 표현에는 성인을 위한 잔혹동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
젊은 작가이기 때문일까. 기자가 만난 작가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파인아트의 고립성에서 탈피해 미술 장르의 무한한 파생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타 장르와의 접목을 고민하는 작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읽을 수 있는 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 공간을 자유로이 이동하듯 터치로 자신이 구현한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마치 물이 자연히 흐르듯 작가의 세계도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비단 작가만의 경험일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언어이며 위치는 아닐까.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모두를 부정했다면 그가 현실을 회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택일하는 사고 자체를 부정하고 양자를 조합한 세계를 그려냈다면? 선택을 강요하는 그 자체가 부조리이며 막힌 사고로 여길 수 있다. 어쩌면 작가 이화평이 그린 세상은 ‘빛 좋은 개살구’인지 모르겠다.

임승현 기자

 

[특별기획] 막연한 가치 전복하기, 암묵적인 동의 균열내기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막연한 가치 전복하기, 암묵적인 동의 균열내기

위・인세인박 <I need sex everyday _
steel, urethane paint, neon>
커스텀프린트 조명등 가변설치
125×150cm 2013
가운데・신정균 <옥류체로 쓰여진 노래>
나무 패널에 페인트 각 420×60cm
2013 (텍스트 출처-남자 아이돌 그룹
EXO의 노래 ‘으르렁’ 가사 중 일부)
아래・이병수 <스쿠아의 공격을
예술적으로 대처하는 7가지
방법(관악무브 협업)>
싱글채널비디오 4분 2013왼쪽 페이지
위・전미래 <Madame Jeon –
Home ground>
퍼포먼스 1시간 300m 금색 쇠사슬
2013 아트광주13 광경
아래 왼쪽・고재욱 <Die for-you can
sing but you can not>
혼합매체 185×185×185cm 2013
오른쪽・이미정 <명언짓기#6>
화선지 위에 먹 28×70cm 2011

[특별기획] 보는 것, 포착하는 것, 남은 것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보는 것, 포착하는 것, 남은 것

위 왼쪽・장규정 <언노운 디테일스 : 창가에서> HD 비디오 8분 2013
오른쪽・박승진 <지울 수 없다(not to rub out a mistak e)> HD 비디오 3분26초 2013
아래・송진희 <언니야 집에 가자> 생활비디오 채널 5분 2013

위・발렛파킹 <강 약 중간 약> 2011~2013
가운데・이진경 <쾌락의 정원> 비디오 6분11초 2011~2013
아래 왼쪽・김지선 <웰스틸링> 영상 2012
오른쪽・안성석 <OPEN PATH-관할 아닌 관할> VR server PC custom-made joystick sound 2013

위・차재민 <Trot Trio Waltz>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가운데・윤지원 <이것은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예술이 아니다>
컬러 디지털 비디오(스틸컷) 32분34초 2013
아래 왼쪽・함정식 <The Preyer> HD video 26분 2014
오른쪽・문소현 <텅> 싱글채널비디오 12분47초 2012

위・차미혜 <무인칭을 위한 노래>
2채널 HD 비디오 8분45초 2013
가운데・김지희 <Audition>
영상 29분6초 2013
오른쪽・강정석 <야간행>
HD 스테레오 44분38초 2013

[특별기획] 미디어에 대한 고민, 주체적인 시각을 위한 조건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미디어에 대한 고민, 주체적인 시각을 위한 조건

위・최준경 <The Urban Goddesses>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2010~2013
아래・정지현 <Demolition Site 06 Outside>
Pigment print 115×155cm 2013

왼쪽 위・이상재 <물방울, 비너스 #01>
Pigment print 72×54cm 2013
아래・원서용 <Umbrella>
C-print 160×130cm 2013
오른쪽 위・김형 <My family story in
the mirror>
Pigment Print 56×61cm 2013
가운데・류현민 <Measuring Horizon>
pigment ink 34×50cm 2013
아래・조규성 <#6>
Pigment Print Mounted on Plexiglas
120×150cm 2008

[특별기획] 공간 점유하기, 삶의 균형을 위해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공간 점유하기, 삶의 균형을 위해

위 왼쪽・정승혜 <Dear. 여린 과거를 지킨 강건한 당신을 위해>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3
오른쪽・조혜진 <나선형 기둥을 가진 종려나무>
인조 도시루 나무 석고 160×160×220cm 2013
아래・조재영 <Sculpture in the blank>
카드보드 인화지 작업실에서 옮겨온 물품 2013

위・이홍한 <354-77>
철 260×250×225cm 2013
가운데・이미래 <일본식 꽃꽂이 조각>
석고 시멘트 먹 단열재 나무 차간막 가변설치 2013
아래 왼쪽・이수진 <Lumizing Sequence>
목재 끈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오른쪽・김정은 <Where is your destination-waving
the green road> 지도 책 110×27×79cm 2011

김다움 <If someone hates u for no reason give that jerk a reason> 벽에 상감기법 드레멜 칼 퍼티 아크릴 가변크기 2014

아래 왼쪽・김종희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흰 회기 위에 회색 자수 삼각대
88×215cm 가변설치 2013
오른쪽 위・김상진 <Meditation>
목탁 스피커 방석 혼합재료
200×200×40cm 2013
아래・김덕영 <Making Crack
(Push or Pull)>
합판 각재나무 수성페인트
가변크기 2013

왼쪽 위・강준영 <Nostalgia+This is it>
glazed ceramic turntable
50×50×52cm 2010
아래・임유리 <삼십살의 캠프파이어>
waste wood magnifying glass stained
glass film bamboo blind grill butane
gas solid fuel fire extinguisher
가변크기 2013
오른쪽 위・추미림 <WWW. the
world where we live in>
혼합매체 설치 2011
가운데・정운 <하나의 검은
프레임과 하나의 흰 프레임>
IKEA 흰 나무 액자 검은 나무 액자
120×90cm 80×90cm 2011
아래・정문경 <Fort>
used clothes mixed media
300×300×270cm 2013

위 왼쪽・정효영 <Supersensible clash> needlework on artificial leather thread toys wood
wire hose table motors sensor LED light 110×65×170cm 2011
오른쪽・정기훈 <무동력 여행> 나무 부표 로프 천 105×210×220cm 싱글채널비디오 35초 2014
가운데・서영덕 <Meditation 11> Chain 50×40×70cm 2013
아래 왼쪽・오종원 <짓다> A4용지 가변설치 2012
가운데・민진영 <The green stairs 2> Fabric acrylic LED Lights 210×150×170cm 2013
오른쪽・오완석 <0+play> pemat installation 2013

왼쪽 위・이병찬 <Laputa, urban-creatures>
설치 2013 복합문화공간 에무 전시광경
가운데・최윤석 <올해의 질량 2012Mass
of the Year> 2012 한 해 동안 수집한 영수증
가변크기 2012~2013
아래・이수성 <낙원>
나무 250×250×120cm 2013
한국현대문학관 입구 설치광경
오른쪽 위・이지아 <명자>
오브제 설치 280×260cm 2012
가운데・김준명 <무제(playing god)>
세라믹 가변크기 2012
아래・권용철 <Chain Reaction_
The movement series_study00>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3

위・유화수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을 하는 작가>
나무 석고보드 장판 벽지 시트지 4×2.5×3m 2013~
가운데・강한별 <Dawn>
가변크기 설치 2013
아래 왼쪽・송유림 <When it turns to something awful>
복합매체 가변크기 2012
오른쪽・박영진 <마주하기로>
wood glass acrylic mirror 180×90×110cm 2012

왼쪽 위・윤하민 <누가 사냥을 하든지
간에_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드로잉 61×88cm 2012
아래・염지혜 <외국인(Solmier)>
싱글채널비디오 조각 3분39초
컬러 사운드 스틸 우레탄폼 빵 전등
오른쪽 위・김수환 <즐거운 나의 집>
영상 아크릴 채색 수집된 비닐
스티로폼 플라스틱 병 사운드 4분45초
245×520cm 2012
가운데・권동현 <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 #2>
디지털프린트 150×225cm 2012
아래・천성길 <풍선 코끼리>
합성수지 우레탄도료 2013

위・이종건 <Blue sky> Engraving on antique hardwood flooring enamel Paint 180×378.5×7cm 2013
아래・길종상가 <네(내) 편한세상>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 설치광경 2013
일반인과 달리 특정한 날짜와 시간개념의 기복이 심해, 며칠 동안 작품 제작하는 것도 모자라 단기간 아르바이트나 언제 잘릴지 모를
대학 강사, 새로운 작품을 끊임없이 구상하며 국내외 유수한 레지던시 공모에 응모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 이것이 나의 일상이
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몇 안되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갈라지는데, 이것은 매번 승자독식의 경쟁. 어느 한쪽
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이 험난한 길은 자연히 작가로서 인정받거나 작품전시에 기회를 받기 위해 미술제도권 내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할 것을 요구한다.
그 길에서 작품이 잘 팔리는 스타작가, 안 팔리는 작가, 미술교수이면서 작가, 기타 등등의 작가로 분류되고 선택된다. 7할은 네오룩과
같은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공모전과 전시 정보, 월간지에서 소개되는 현대미술 작품과 작가들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지만, 이 꿈은 좇
아 올라갈수록 허망하기만 하다. 선택된 작가가 아니라면 온갖 공모전과 레지던시 입주작가 선정 심사를 통과해 그 기회를 받아야 되는
데, 이럴 때는 과정 없이 잘 짜인 작업의 형태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마주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작업에 대한 오해를 받으면서,
결과야 좋든 나쁘든 유통기간(수혜기간)이라도 주목받고 싶어서 다시 지원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 젊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 현재 수만하은 젊은 작가가 어려운 처지에 중도포기해야
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러다간 젊은 작가의 씨가 말라버릴 지도 모른다. 나는 지방대를 나와서 예술의 중심인 서울로 편승하기 위하여
수많은 수도권 전시와 레지던시에 공모하여 젊은 작가로서의 기회를 얻고자 했다. 지난 2006~2007년 무렵, 대학원 재학 중에 운전의
경험을 표현한 <야간운전> 시리즈는 메이저 공모에 선정되며 작품이 하나, 둘 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에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르게 꺼지면서,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형편은 곧 어려워졌다. 그것은 유년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사하신 택시기사 직종이 한때
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보잘것없는 직업으로 몰락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제도
권 역시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보장받는 삶이란 로또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매번 갱신되는 예술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길을
택하려면, 작품을 판매하거나 각종 레지던시와 지원금을 받아 활동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젊은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
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어떤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까.
그래도 나는 이런 불안한 삶 속에서 젊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과거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선배 세대들은 진지함을 너머 참혹함 속에서 견뎌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현재의 풍경들은, 대다수가 미술판에서 기득권
행사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젊은 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돈 걱
정 없는 집에 태어나 작업하는 것,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돈과 권력이 있는 계층과 네트워크 파워를 갖추는 것, 어떻게든 SNS와
방송 출연으로 화제를 몰고 가며 활동하는 것뿐인가?
혹시 조용히 작업하면서 시스템이 붕괴되어 새날이 올 때까지
묵묵히 작품 활동을하면, 작가로서 정당한 생활을 유지하는 시
대를 맞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시대에 오직 작품으로
만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는 없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오늘날. 이런 사회 속에서 ‘예술
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물론 그럴 능력도 없겠
지만),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일개 작가로
서 사회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망상일까? 승자 독식의 구조가 아닌 공생의 관계로서 사회와 더
불어 예술의 길을 함께 찾아갈 수는 없을까? 그리고 내가 수혜를
입을 때 뒤에 있던 작가들과 후배들을 위해, 장차 내가 받은 것을
일부라도 돌려줘야 할 책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
홍원석 <멈춤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720×1000cm 가변설치 2013

[특별기획] NEW FACE 100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NEW FACE 100
동덕여대에서 <우수졸업작품전>을 개최하고 10회에 걸쳐 진행한 이유는 무
엇인가?

‘미술의 향방’이라는 첫 번째 전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제
막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주목해 앞으로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제시해보자는 것이었다. 동덕여대 회화과가 그 바탕을 제공하고 서울과 수도
권 대학이 협력관계에서 교류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우리 학생들만
내부적으로 주목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호를 개방해서 졸업생의 작품을 한자
리에서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을 학교 공식행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간에 커다란 부침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지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시를 계속하겠다는 교수들의 의지 덕분이다. 현실적
인 얘기를 하자면 큰 액수는 아니지만 매년 학교가 일정 정도 예산을 지원했
는데 올해는 공식적인 지원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학과 내부 재정으로 진행
한 것이다. 참여자들에게 따로 참가비도 받지 않고, 디스플레이도 우리과 교
수와 학생들이 다한다. 대규모 전시는 아니지만 전시를 준비하고 도록을 제작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0회에 걸쳐 전시를 지속하다보니 각 대학에서 관례적인 행사처럼 여기고,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전시
는 졸업생들이 모여 친목 도모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졸업전에 출품한 작품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 대학과 참여
학생부터 지지해주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9년에 열린 <공장미술제>를 비롯해 2000년 초 젊은 작가와 관련된 전시
가 쏟아졌다. <우수졸업작품전> 역시 당시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
나?

확실히 당시는 한국 현대미술계가 ‘영아티스트’, ‘신진작가’를 화두로 하
고 있을 때였다. 대학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기에 우리 대학은 동시대미술의 경향성에 반영한 것으로 본다.
1999/2000/2001년 이 시기는 어떻게 보면 미술의 골든 에이지였다. 미술
이라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로 에너지가 넘
쳤고 다들 그 흐름을 타는 데 바빴다. 이후부터 미술 개념보다 작가 지원기금, 레지던스, 미술시장 등 미술 제도가 우월해졌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원래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생겨났는데 지금은 이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
해 역설적으로 젊은 작가라는 자원이 필요해졌다.
요즘에는 정말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 전시의
특징이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날것 상태로 보여지는 첫 번째 무대. 그
게 이 전시의 큰 의의다. 각 대학의 졸업작품전도 있지만 각각 대학의 파편화
된 전시와 당대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이 전시는 다른 얘기다. 여기에서
대단한 스타 작가, 이머징 아티스트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공
모전에 해당할 것이다. 이 전시는 이름 자체도 노골적이다. 근데 이 상태에서
제대로 의미부여가 되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숙해질만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
하고 자신이 작가라고 떵떵거리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술계에서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하
는지, 작가들은 스스로 공부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작가들은 아시아프에 출
품하는 것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다방에서 전시하는 것을 똑같이 생각한다. 여
기 심사하는 사람들 역시 사람이 달라도 인식이 다르지 않다. 각각의 포지션
을 엄격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참여 작가들을 살펴보면 어떤 변화가 보이나.
이번 전시 도록에 그간
참여 작가 500여 명 중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근작을 담은 아카이브를 수록했
다. 시간이 지나서 작가로 남은 사람은 정말 소수다. 시간의 마모가 크다. 작
가들은 버텨야 한다. 전반적으로 미술대학 학생들이 가지는 감수성과 테크닉
좋고 자기주관적인 그림이라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술에 대
한 태도는 달라졌다고 본다. 그림이 사적인 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게 사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작업이 고백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노골적으로 솔직하고 소
박하다. 이것은 한국 사회 젊은 세대의 문화적 삶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성적
으로 매우 민감해졌고 의식의 장벽, 가치판단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창조적
상상력이 확장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에 자신의 누드나 일상을 노출하는 것
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예술가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것이 문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작업하는 것만큼이나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
아졌다.

지금만큼 예술과 사회가 동일화된 적이 없다. 문제는 예술과 삶이 너
무 밀착되어 있다보니 예술이 너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사는 것 자체, 생존
이 절체정명의 문제가 돼서 내가 자존감 가지고 산다는 것까지 삶이라면 예술
이 생계와 삶의 문제의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예술과 생계는 층위가 다른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인 세계가 있는가 하면 그게 전부가 아닌 삶을
선택한 쪽이 예술계인데, 생계문제로 모든 것을 재단하니 예술이 없어진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돈을 벌고 명성을 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고 명성을 쌓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문제다. 예술을 하다보니 명성이 쌓
이고 돈을 벌게 된 것과는 인과관계가 다르다.

이슬비 기자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설치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