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그리기, 감각의 재구성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그리기, 감각의 재구성

위 왼쪽・손승범 <어릿;한 지도자> 장지에 채색 163×262cm 2013
오른쪽・김현정 <고요한 숲의 계절> 캔버스에 유채 130.3×162.1cm 2013
아래・강호성 <우리 시대의 동화 신화 읽기> 비단에 채색 180×600cm 201

왼쪽 위・고권 <바람 센 날>
한지에 먹 채색 72×60cm 2013
오른쪽 위・홍수정 <Nymph Forest 2>
캔버스에 아크릴 90×90cm 2013
가운데・류노아 <고민상담 Friends>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3
아래・김보경 <그린리듬그래프> 가변크기
종이 위에 아크릴 나무 2012

위・이화평 <유린옐로우> 디지털프린트 100×240cm 2013
아래・김진욱 <4 color of bibim> 148cm(원형) 혼합재료 2013왼쪽페이지
왼쪽・이우성 <가장 빛나는 별> 캔버스에 과슈 130.3×162.2cm 2012
오른쪽・김희연 <정지한 낮> 리넨에 아크릴 193.9×372.8cm 2012

위 왼쪽・윤진초 <Reigen_burden>
모노타이프 프린트 30×21cm 2013
가운데・이단비 <관점을 달리하면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법칙적 드로잉 3>
crystal photo frame 50×60cm 2012
아래・김범종 <엮어내기>
종이에 먹 아크릴 380×280cm
가운데 왼쪽・장종완 <천개의 눈을 가진 밤>
캔버스에 유채 90.5×118cm 2012
오른쪽・전희경 <인간되기>
캔버스 위에 아크릴 116×91cm 2013
아래・배윤환 <Playground>
캔버스에 유채 파스텔 132×223cm 2013

위・이세준 <무한을 유한 속에
담는 방법&> 캔버스에 유채
183.3×738.1cm 10pcs 2013
가운데 왼쪽・김수민
<월화수목금금금>
캔버스에 종이컵 펜 아크릴
37.9×45.5cm 2013
오른쪽・신준민 <Dal-sung Park>
캔버스에 유채 181×227cm 2013
아래 왼쪽・윤향로 <299>
offset-printing 17×26×1cm 2013
오른쪽・조은주 <Empty Space>
162.2×130.3cm
장지에 혼합재료 2012

위 왼쪽・박종찬 <구영3길 81>
박스에 아크릴 가변설치 2012
오른쪽・김민주 <휴가(休家)>
장지에 먹과 채색 130×157cm 2012
가운데・이주리 <마지막 도시>
캔버스에 펜 아크릴 227×362cm 2013
아래・박기일 <Engine 9>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 2010

왼쪽 위・김혜나 <Duvet>
캔버스에 유채 162.1×130.3cm 2013
가운데・임영주 <신목167 East>
캔버스에 유채 73×91cm 2013
아래・구지윤 <일요일 오후>
캔버스에 유채 22×27.5cm 2013
오른쪽 위・김봄 <어떤 동네-개와 고양이>
종이에 아크릴릭 64×100cm_2012
가운데・조종성 <정물화된 풍경>
장지 위에 먹 66×62.5cm 2013
아래・빈우혁 <A man is standing near ofrest>
캔버스에 유채 차콜 240×330㎝ 2013

위・김해진 <옥상> 캔버스에 유채 24×33.5cm 2012
아래・오희원 <Blind Site : White Scene> 캔버스에 유채 89.4×130.3cm 2014
내가 신진이라는 ‘표현’을 피부의 체감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2006~2007년, 미술시장의 풍경 속에서였다. 보다 빨리, 먼저 “신진”을
찾아내야 한다는 미션은 최대 마진을 추구하는 화랑들의 전략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새로운 얼굴은 곧 어린 얼굴들이었고, 화랑들
중 일부는 작가와의 파트너십이 생기기도 전에 상품을 주문하듯이 그들의 취향(?)을 신진작가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생산
적이어야 둘의 관계를 단순한 ‘속도전’의 양상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장의 거품 뒤에는 갤러리에
대한 냉소가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이제 어린 작가들도 상업 화랑에서의 작품 발표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유통에 대해 터부
(taboo)시하는 작가들의 분위기는 안타까운 일면이기도 하다. 반면 이러한 불안은 젊은 작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직접 찾아 나서게 하
는 동기로 작용하면서 정부나 지자체, 기업에서 운영하는 여러 가지 작가지원제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아마 지원제도는 작
가들이 느끼기에는 더욱 비주체자로서의 확인과 허무함이 남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종적으로 본인이 혜택을 받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공모제도이다. 나는 프로그램에 선발된 작가가 지원제도와 혜택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작가들 중 누구도 작가지원제도의 순기능 자체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락의 패배감은 실체도 형체
도 확인되지 않은 음모와 부정의 유령을 좇게 만든다. 사실 사회 시스템에서 구성원 모두의 여건을 수용할 수 있는 절대의 값, 궁극의 구
현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다만 주최자가 기관의 철학을 굳건히 가지고 최대한 투명하게, 객관적인 과정으로 ‘최선’의 노
력하는 것이 건강한 제도의 할 일일 것이다. 더불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지평에서의 지원정책을 늘려가는 것이 당면한 숙제이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겪고 있는, 나와는 (세대적 측면에서) 그리 큰 차이도 없는 20~30대의 작가(우리)들은 흔히 일컬어지는
88만원 세대다. 그들은 해결이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주체성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거부하고 도망갈 수 있
는 것이 생활이 아니듯, 승자 독식의 사회상황을 목격하는 그/그녀는 작업과 동시에 사회와 노동에 대한 의식이 강해졌다. 한국미술사
에서 작가의 삶이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겠냐마는 개발도상국의 그림자 속에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무하게 끝난 기대를 반동에너
지 삼아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성장 통으로 치부하기에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이
고 다소 공통적인 패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다수의 경우 비슷한 입장과 철학을 가진 작가들의 연대로 이어지고, 연대가 잉태한
대안적인 주체로써 ‘컬렉티브’들이 태어났다. 굳이 전시 활동을 위한 물리적인 그룹이 아니더라도, 학연이나 또는 지리적 구역을 중심
으로 다수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협회들과는 달리 소규모이고 주체적이다.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네트워크를 ‘스스로’
찾아다닌다. 기획자가 되기도 하고, 공간을 운영하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매거진을 만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나 노동활동을 작업으
로 끌어오기도 한다. 협업과 연대의 목적이 미술계에 대한 냉소이거나 자조적인 현실인식이거나 미학적 구현을 위한 것이거나 간에,
비주체적인 염증을 동력 삼아 활동의 외연을 치열하게 넓혀가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연대들은 ‘따로, 또 같이’,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
복하면서 미술계에서 작가의 역할을 실감나게 만드는 활력이 되고 있다. 활동반경의 확장은 딱딱한 틀을 느슨하게 만드는 전략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술의 역사에서 작가의 가치가 사후 세대에까지 걸쳐 조명되는 경우를 보아왔지만, 지금의 작가(우리)의 운명은 살아생전에, 심지
어 학교를 마친 후 몇 년 안에 승부를 보아야 하는 경쟁, 검증을 마쳐야 하는 게임처럼 오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적어도 작가에게 작
업은 평생에 걸친 고민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진’은 타자에 의해 호출될 때 비로소 생겨나는 표현인가보다. (본인을 소개할 때 “저는 신진작가입니다”하는 작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표현’으로의 신진, 제도의 기준으로서 그것의 반대말이 ‘기성’이라면, 작가라는 말 속에 이미 숙명
적으로 지고 가야 하는 태도로서 ‘신진’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진세대들을 지켜본 입장을 짧은 글로 전한다는 것이
솔직히 망설여졌다. 순간적이거나 지엽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치면 어
느 순간 별 볼 것도 없는 내 얼굴을 새삼 들여다보는 거울보기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결론으로 허무하게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나의 동료인 그들이 영원히, 지금의 순간보다는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한 작가이기를 바란다. ●

[특별기획]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공성훈 l 작가, 성균관대 교수
얼마 전에 모 케이블 방송에서 준비하고 있는 미술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하러 다녀왔습니다. 심사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별걸 다 하네’ 하며 회의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전시 지원과 레지던시 등 각종 공모
를 통해서 작가를 선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진 상태에서 방송에서는 좀 의심스러운 작가들(?)이 맹활
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보다는 치열하고 진지한 작가들이 매스미디어에서 제대로 된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
했습니다. 오디션이 작가로서 단지 출발점임을 유념한다면, 그런 작가들이 미술의 생태계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항상 그래 왔지만,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버티기’ ‘우기
기’ ‘쑤시기’가 그것입니다. ‘버티기’는 작가로서 먹고살면서 생존하는 것, ‘우기기’는 남이 자신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혹시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할 정도로 보여주라는 것, ‘쑤시기’는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방향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버티면 작가로 남
고 우기면 작가로서 알려지고 쑤시면 좋은 작가가 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나라를 막론하고 작가로서 버티는 일은 참 힘듭니다. 마치 추운 겨울에 짧은 이불 덮고 자는 것과 같아서 머리
를 덮으면 발이 시리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시립니다. 위에서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특히나 작가로서 버티는 환경이 많이 바
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지원제도 많이 생겨서 흔히들 젊은 작가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
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르바이트할 게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학원
이나 입시 화실에서 강사로 일하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입시학원의 강사 자리가 있지만
예전에 비해 전문화되어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청년층의 임금도 싸졌고요.
공모를 통해서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도 1년마다 이사 다니기 바쁩니다. 작가 레지던시 공간만 늘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작업실
지원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럭저럭 작품성을 평가받아 미술관급 전시나 국내 비엔날레에 참여해도 아티스트 피(artist fee)
가 없습니다. 큰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뭘 먹고 살라고 그러는지. 아티스트 피가 없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젊은 작가들 중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몇 개의 스타일에 한정되어 있고 지
속가능성도 불확실합니다. 그래도 미술계 자체는 참 공정해졌습니다. 아마 바둑계 다음으로 공정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줄 안서
도 됩니다.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까요. 대학의 권력이 줄고 상업과 기획의 힘이 커진 까닭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계의 히에라르키
(hierarchy)라고 할까 작가의 지위가 변한 느낌입니다. 앞서 말한 작가 오디션 프로그램 모집기간에 지원 여부를 놓고 젊은 작가들이
눈치를 본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습니다. 출연하고는 싶지만 미술계에서 나쁜 평판을 얻을까봐 망설인다는 거죠. 심지어 평론가에게
지원할지 말지 여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오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심사를 받습니다. 기회가 많아지고 공정해지고 그래서 좋아지긴 했지만 작가들이 남의 시선을 끊임
없이 의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경쟁에 익숙하다보니 서로서로가 개인화되고 ‘작가 커뮤니티’도 약화된 듯합니다. 예전에
는 작가들이 전시를 조직하고 이슈를 생산해내며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제도가 강해지다보니 작가들이 ‘Sleeping Beauty’처럼 자신
이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작가 없는 미술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론가도 저널도 갤러리
도 없어도 됩니다. 작가만 있으면 미술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계의 모두를 존재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
‘가 되는 것은 독립적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백이라는 말 대신 ‘Author’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작가가 세계에 대한 어
떤 독립적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독립적이려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필요하지만 동지가 필요합니다. 예술적 동지
말입니다.
젊은 작가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적이거나 예술적인 문제들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
라 구조적인 문제이고 연대해야 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사회 문제이든 미술계 문제이든 서로서로 공유해야 버티기 쉽습니다.
청춘에게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리고 작가라서 더 어려운 삶이지만 후배 작가분 모두 세계에 맞먹는 무게감을 지닌 예술가로서 성장
하시길 빌며 지면 관계상 군소리 그만 하고 이만 총총…. ●

[특별기획]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한국의 미술은 지난 몇 십 년간 매우 압축된 역사를 경험했다. 소위 현대미술과 관련하여 한국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선전(鮮展)부터 1950~1960년대의 모더니즘 미술, 그리고 1970년대의 실험적 아방가르드와 1980년
대의 정치적 미술,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국제적 동시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이 보여준 궤
적은 매우 강렬하고 급진적인 것이었다. 나는 최근에 한국의 동시대미술이 199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
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 본질적으로 전 세계에 걸친 예술적, 창조적 동시성
(synchronism)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대미술은 전 세계의 지역(local)들이 상호 연결되면서 최
대한 동등하고 호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전제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미술이 한국 현지에서 국제
미술의 흐름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시작한 계기를 1995년의 <제1회 광주비엔날레>라고 본다면, 이후부터 본격적
인 동시대성이 추동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대성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
는 ‘젊은 작가들’에 대해 언급하려면 한국 현대미술의 ‘압축적 성장’과 ‘동시대성’이라는 이슈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압축적 성장과 동시대성은 미술만의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거론되어야 할 이슈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이란 이러한 압축적 변화와 동시대성을 대면하
면서 수많은 모순과 갈등, 압박과 가능성 등을 동시에 경험하는 연령적 ‘계층’이다.한국의 동시대미술은 역시 지난 15년 남짓한 기간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 수
가 늘었을 뿐 아니라 정보, 이동, 전시, 학술, 인프라, 프로그램 등에서 많은 지원과 신설이 이루어졌다. 특히 인프라 부
문에서 통신 인프라인 SNS와 세계 각국의 레지던시를 연결하는 공모체제가 구축된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
다. 우리는 전례 없이 많은 예술가가 배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시각예술가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도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만큼이나 인정제도 안에서는 커다란 경쟁적 상황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정도로 ‘교육 받은’ 관객과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
전시 상황에서 조우하게 되는 관객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마저 뛰어넘는 식견과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
므로 예술에 관한 한 과거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었던 ‘계몽적’ 태도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2014년을 벌써 한 달
가까이 보내면서 ‘젊은 세대’라는 화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동시대미술은 이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 문화 콘텐츠 생산국가가 되었다.
셋째, 모방이나 참조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양상이 그대로 전범이 되는 자발적 생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동시대 패러다임과 미술계 구조적 문제점
첫째로, 동시대미술은 앞서 말했듯이 세계 내에서 확보된 ‘동시대성’을 전제로 한다. 통신과 이동의 포화를 통해 이러
한 동시대성이 극대화되면 그때부터는 동시대성의 내부를 조직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유형의 창조적 생산을 이끌어
내는 노력이 시작된다. ‘공동체’란 이 과정에서 새롭게 규정되는 조직의 양태, 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다양한 레이어의 공동체들이 만들어질 것이며 예술가 및 예술 전문가들 역시 이 과정에서 강력한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즉 다가올 동시대성은 더욱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관심과 관점들에 의해 수많은 결절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81
(nods)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흥미로운 현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협업, 창업,
공유와 같은 키워드들이 예술가들에게 더욱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리라 생각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은 매우 독특한 문화적 파생물들을 생산하고 있는 다소 예
외적인 후기-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일본과 더불어 한국은 아시아에
서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강력한 문화 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콘
텐츠들은 보통 소모적이고 수준이 낮은 문화생산물들로 치부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적 생산구조가 미디어 및 산업과 결합해 이루어내는
파급력이 강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험적 파생물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나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필드를 넓힐 것이라고 생각한
다. 실제로 대학을 나와서 모든 졸업자가 재래적 의미의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선발의 규모가 크지 않
을 뿐 아니라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겠지만, 전통적인 예술 재래시장이
아닌 새로운 파생시장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어떻게 예측하고 가시화할 것인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관
객, 대중, 시민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은 국적일 뿐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해야 할 ‘그릇’이고 그것을 통해 삶의 최대치
를 구현해야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혹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서구
에 대해 가장 부러워한 것은 그들이 정말 ‘재밌게 논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들이 노는 방식을 따라
하고 모방해 온 것이다. 심지어 제 3세계의 미술, 음악, 인문대학에서는 제도적으로 서구가 발전시켜 온 ‘즐거움의 생
산’을 교육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위’로서 내면화했다. 결국 가장 잘 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여기서 ‘이긴다’는 표현은 내셔널리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승부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종속변수로서의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게 극복하는 것이며, 나아가 각자의 존재가 스스로 세계
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삶을 멋진 스타일로, 쿨한 태도로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를 압도적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멋진’ 문맥들로 보여주어야 한다. 예술가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에 초점을
두는 것은 답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본질적 과제다. 예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존을 훨씬
넘어서는 과제를 추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반면,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직면하는 주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각각의 개별 세대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불충분하다. 모든 세대는 가치부여(miseen-
valeur) 혹은 인정(recognition)의 시스템을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세대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거나 외부에
의해 몰인정의 상태에 놓일 것이다. 가치부여는 시선, 감탄, 선발, 비평적 인정, 토론, 유통, 재인정 등의 과정을 통해 조
금씩 공동체 내의 확신과 승인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이나 러시아처럼 모든
관심이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에 몰려있는 독특한 전방(前方) 국가형 사회다. 이념적 투쟁이 모든 화제의 중심이
된다. 따라서 가치가 이념적, 윤리적, 도덕적 가치로 수렴되는 상황 역시 가치의 분열을 초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젊은 세대’라는 화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동시대미술은 이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 문화 콘텐츠 생산국가가
되었다.
셋째, 모방이나 참조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양상이 그대로
전범이 되는 자발적 생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 이러한 가치를 내면적인 최고치로 받아들일지 불분명하기 때문이
다. 한국에서 예술의 가치부여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수립되어 있는 국가들에서와 달
리, 예술가들 스스로 자신들이 생산하고자 하는 가치를 규명하고 강요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예술적 가치 생산을 지원하고 따라잡는 재정적 선순
환구조가 부재한다. 그리고 선순환구조는 예술시장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
다. 나는 예술이 공공지원에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또한 예
술시장은 즐기는 시장이지 언제까지나 버텨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예술시
장이 답답한 콘텐츠들로 채워져 있다면 이것은 대학이나 현장을 통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흥
미로운 것인지에 대한 공감과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에는 답이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의 얼굴만 바라
보고 있을 수도 없다. ‘미술판’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수 십 혹은 백 개 이상의 서로 다른 ‘판’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
시아프>와 <공장미술제>는 서로 다른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울만 해도 문래동, 연희동, 상수동, 사간동, 평창동,
청담동 등은 전혀 다른 풍경의 판들을 만들어낸다. 한 사회의 미술은 이렇듯 다양한 ‘판’들이 연결되고 겹쳐져 있음으
로써 훨씬 풍요롭고 다양한 취향과 태도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문화와 역사, 지역과 계층, 교육적 출신성분과 또래
집단의 형성 과정, 시장의 특성과 제도적 지원 방식에 따라 이러한 판들은 전혀 다른 세계들을 만들어낸다. 20세기 초
파리 몽마르트르라는 작은 지역에는 약 500여 개의 서로 다른 집단이 상이한 판들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한국의 미술풍
경 안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다양하고 뜨거운 판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들이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들이 재정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수준 높고 흥미로운 예술이 범람하게 되
길 바란다.
1990년대 초에 홍대 앞의 바에서 매일 저녁 만나던 작가들이 생각난다. 이들은 지금 50대의 중진작가들이 되었으
며 여전히 바에서 만나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한 세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기회이자 즐거움이다.
나는 청년작가들 역시 그들만의 행복하고 흥미진진한 세대를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
서는 변화를 읽어내고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

[특별기획] 사적인 오진, 젊은 작가들에게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사적인 오진, 젊은 작가들에게
강홍구 l 작가
‘젊은 작가들에게’라고 쓰고 나니 낯설다. 나도 아직 철이 안 들었고 들 가망도 없는데, 뭔가 좀 아는 것처럼 쓰려니 그렇다. 하지만 생물
학적 나이는 도저히 속일 수 없어 오늘도 어깨가 아파 진단을 받으려 대학병원에 들렀다. 한데 충격이다. 몇 달 동안 다녔던 동네 병원에
서는 오십견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석회화 건염이 문제라고 했는데 대학병원에서는 명백한 오십견- 즉 회전근개 문제이니 한 달
동안 날마다 사우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오란다. 다시 한 번 놀랍다. 내가 체험한 동네 병원 오진율이 거의 70%에 육박한다. 잘 낫지
않아서 대학병원에 가면 견해가 다르고 처방과 치료는 간명하다. 절망적이고 우울하다. 동네 병원이라고 다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믿
고 싶은데 내 몸은 그렇다고 한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잡지사에서 내게 청탁한 글의 주제는 요즘 젊은 작가, 대체로 1980년부터 1990
년 사이에 태어난 작가들에 관해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동네병원일까, 대학 병원 수준일까? 아무래도 좋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오진이라도 할 수 없다고나 할까? 동네 병원 의사들도 나 같은 기분일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병이다. 시간이 지나도 치유될 가망이 별로 없는 병이다. 요즘 젊은 작가를 그냥 그들이라고 부
르자. 나이는 대강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대 후반쯤- 한 십년 보자. 전시장과 작업실에서 본 그들의 작업, 그림, 설치, 영상, 공모전, 심
사 경험, 기타 등등을 생각해본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품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작품처럼 보기
좋게 묶어내는 능력이 있다. 요는 포장 기술이 괜찮다. 그러나 포장을 풀어보면 별거 없다. 이때 별거는 내용이 심오하지 않다든지, 어
째서 사소한 문제를 다루고 있느냐는 질책이 아니다.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절실함이란 그 작가가 정말로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고,
해야만 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건방진 충고 하나 하자면 좋은 작가란- 잘나가는 작가 말고- 세상에 대해 진짜로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때
이야기란 물론 내용이나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사적이어도 좋고, 아니면 공적인 것이라도 상관없다. 아니면 내용 따위는 아예 배
제하고 미술에 관한 새로운 형식적 시도도 좋다. 미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작품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긴지 아닌지 금방 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작품을 왜 만들겠는가? 그리고 알 수 없다면 작업을 그만두
는 게 낫다.
다음으로는 기본적으로 작업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그랬
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차례 불어닥친 상업적 성공의 열풍이 잘 팔리는 작가들을 생산한 뒤 그러한 예가 일종의 모델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앞서 말한 포장 기술과 결합해 여러 가지 방식의 유행을 낳았다. 예를 들면 저주에 가까운 묘사 기술의 과시에서
부터, 현장과 사회와 개념을 그럴듯하게 어중간하게 묶는 프로젝트화, 사소한 트릭과 시시한 관념을 크게 확장한 빤한 설치와 일종의
알리바이로 동영상 활용하기, 전통적인 것과 디지털, IT 등을 적당히 한 다발로 묶기 등등. 이는 아마도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대한 아
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일처럼 보인다.
좋은 미술작품이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하는 작품의 장르에 관해 이게 도대체 뭔가, 관습적
인가 아닌가를 묻고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는 일상적 삶조차 창조적이려면 반드
시 창조적인 질문이 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그걸 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창조적인 것을 가르치는
기술은 없다. 단지 어느 게 창조적이 아닌지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 말고도 쓰면 뭐 좀 나오겠지만 더 이상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청탁시 요구받은 원고의 양도 거의 다 찼다. 글을 다시 읽어본
다. 이 두루뭉술, 애매모호한 진단은 어디에 해당될까? 내 스스로 늙어가는 환자인 주제에 잔소리를 해도 될까 하는 의심이 인다. 위에
서 말한 내용들은 오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 후진 세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길을 내는
것이다. 비록 그 길- 작업을 한다는 것이 결국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나더라도 숙명이기 때문에 하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
리라. 너무 올드패션이라고? 어쩌겠는가? 나도 낼모레 육십이다. 나이 먹는 것이 어쩔 수 없듯이 올드패션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불만이면 새로운 뭔가를 좀 보여다오. 충격받고 싶다. ●

[특별기획] 이 척박한 현실의 표층으로서의 젊은 작가들

contents 2013.11. Special Feature | 이 척박한 현실의 표층으로서의 젊은 작가들
이번호 《월간미술》에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 50인에게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작가를 각 4명씩
추천받아 그중에서 100명을 추려 소개한다. 미술대학과 대학원, 혹은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와 활동하는 연배
의 작가들인 셈이다. 아마 미술계에서 가장 젊고 신선한 얼굴들일 것이다. 물론 큐레이터들의 시각과 미술에 대한 입
장,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작가의 기준의 편차는 무척 클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추천을 받은 작가가 곧바로 한국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들을 추천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주체들의 시각이 어
떠한지, 또한 그들이 바라보는 젊은 작가들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데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전과 달리 전시기획자, 평론가들이 거의 모든 공모전, 지원제도, 각종 심사에 빈번하게 참여하면서 작
가를 선정하고 그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는 주체들이기에 이들의 시선,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여기
에는 전문성과 안목, 그리고 나름의 윤리성이 요구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작업을 잘 분별해서 보는 안목이 너무도 중
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특집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한눈에 보여주면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살펴보
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사실 오늘날 우리 미술계는 끊임없이 젊은 작가들을 주목해왔고 이들을 선
별해내면서 작업 기회를 부여하거나 언론에 소개하는 한편 각종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여러 종류의 지원제도를 통해
도움을 부여해왔다고 본다. 이전과 비교해서 현재 젊은 작가들의 작업환경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편이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 다양한 지원제도에 힘입어 곧바로 화단에 진출하거나 여러 전시, 아트페어 등에 참여하기가 용
이해진 측면도 있고 미술시장이 젊은 작가, 새로운 상품을 열심히 찾아내고 있기에 이미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
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자주 본다. 그런데 그것이 긍정적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지원제도 등
에 맞춰 작품과 활동이 제약되거나 그 틀에 순종적인 작업이 양산되는가 하면 시장의 상품성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작업의 내용도 획일적인가 하면 특정 스타일들이 양산되고 미술에 대한
인식의 협소함이나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주제의식 등도 빈번하게 접한다. 작업환경이란 것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
면 이 나라에서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젊은 작가들의 작업환경이 이전과 비교해 좋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작
업 또한 이전과 비교해 좋아졌냐 하면(비교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선뜻 그렇다 말하기도 어렵다. 오늘날 젊은 작
가들의 작업환경과 작업수준, 나아가 이들의 삶과 작업 활동을 어떻게 볼 것이냐. 결론적으로 오늘날 젊은 세대 작가
들은 문제적이다. 그것은 미술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삶이 워낙 팍팍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현재 한국에서 삶이 가장 어려운 세대는 단연 노년 세대이다.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160명꼴이란다.
물론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도 힘든 세대이다. 문제는 이 세대가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
(한윤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야흐로 후기자본주의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파생시킨 인간형이 이들 젊은 세대
에 고스란히 낙인 찍혀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한경쟁의 정글로 이루어졌고 이 한국적 특수성은 단 한 가지 룰에 입
각한 기이한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기실 경쟁이 아니라 사회 독점 계급을 생산해내고 정당화하는 도구
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들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
하고 괜찮은 일자리의 숫자는 줄어드는 현실에서 산다. 따라서 학벌사회의 승자이면서도 잉여 인간이 되고 있다. 이
들의 열패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 낭패감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자기학대로 이어지거나 현실을 비참하게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 루저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냉소가 되고 보수화
되고 정치나 사회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미술계를 예로 든다면
이전에는 유명 미술대학을 나오면 조교를 거쳐 대개 스승이 심사위원으로 포
진해 있는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자연스레 시간강사를 거쳐 지방대에 취업
하거나 머지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운이 좋으면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
이 순리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유학을 갔다 오면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은 필수고 심지어 실기 박사학위까지 반드시 요구되고 있다. 그
러다보니 외국 유학의 매력은 줄어드는 대신 죄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있
다. 유학을 마친 이들도 다시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형편이다. 지방
대 출신들은 한결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거쳐 학벌세탁을 한다. 그렇다
고 대학에 자리 잡아 쉽게 전임이 되거나 좋은 작업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과도한 학벌 경쟁, 그로인한 경제적
지출을 무릅쓰고 그들은 이 한국 사회 못지않은, 더욱 심한 무한경쟁의 미술계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 지위를 가
지려고 올인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열정과 욕망이 작업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경력 쌓기나 스펙 만들기라는
차원에서만 작동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라 할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하면서다. 내 주변에는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
다.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결혼을 꿈꾸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다.

불안의 세대와 파편화된 취향
결론적으로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청년세대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탐구하려면 한국 자
본주의의 현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특징, 즉 인터넷, 대중문화, 민족주의의 정치성, 취업난, 그리
고 파편화된 취향은 모두 한국의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 구조나 현실 역시 이 사회로
부터 강하게 견인되어 있다. 아울러 그것이 작업의 경향과 내용을 채우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
들은 미술, 미술계가 현실과 무관하다고 봐서는 결코 안된다. 작업이 안풀리는 것은 삶이 풀리지 않아서이다. 사회를,
미래를 총체적으로, 전망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작가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고민하고 미술계를, 자신의 작가로서의 삶을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 청년문제에 대해 말하는 지식인들은 새로운 자기계발 담론을 통해 ‘멘토’
역할이나 가볍기 그지없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과연 그런 말이 위안이고 치유이며 대안일까? 그것은 더없이 보
수적인 언사들이다. 그리고 이는 삶에 지친 젊은 세대들이 듣고 싶은 조언을 소비하는 차원에서 작동된다. 요즈음에
스님들이 그 치유의 언사를 쏟아낸다. 머지않아 우리 미술계에서도 스님의 말씀이 미술평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수사가 삶과 작업을 결코 대신해주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하면서다. 그리고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고립된 주체로 살아간다. 대
중문화와 인터넷은 파편화된 취향을 양산한다. 당연히 공동체의 공동 관심
사는 약화된다. 20~30대 작가들 역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파편화된
취향과 만성화된 불안의 세대’들이다. 이들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으며 작업
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욕망과 작업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욕
망, 그리고 부모세대가 요구하는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사
람이 되어야 한다는 집요한 요구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그래
서 무기력증과 우울함이 결합한 어떤 정신 상태로 내몰린 젊은 세대들이기
도 하다. 향후 한국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갈지, 이 사회와 현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과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느
낌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욕망을 갉아 먹는다. 미래가 없는, 없다고 여기는 세대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
은 세대이다. 미술 역시 전망과 확신,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권태로운 그리기, 강박적인 회화(일러스트 같은), 괴이하
고 음산한 상상력의 창궐, 작위적인 개념미술, 형식에 맞춘 작업의 (어거지 같은)담론들이 횡행한다. 심사를 하다보
면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 작업을 위한 설정을 너무 많이 두는 경향을 보게 된다.
개념미술의 잘못된 영향이라고 보는데 그 개념들이 한결같이 유사하고 상투적이다. 따라서 나는 심사에서 작가들
의 포트폴리오에 실린 작업노트를 읽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곤혹스럽다. 차라리 “그냥 그렸다”거나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그렸다”라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미술운동이란 새로운 미적 환경을 창조함으로써 ‘사회를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재
구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 그것을 새로운 미술이라고 말하며 이를 주도해나가는 작가를
젊은 작가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미술운동을 추동해나가는 젊은 작가들은 매 시기 기성의
언어와 관습을 가로질러가는 자리에 피어났다. 그래서 그들에게 신세대, 혹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 미의식, 새로운
미술 등의 수사를 붙여주었다. 그들은 이미 제도화된 미술언어를 구사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감수성의 소유자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술운동과 소통방법의 확장에 대한 시도를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에게 나름의 기대를 걸게 된다. 1990년대 초반 한국미술계는 이른바 ‘신세대’ 논의로 뜨
거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곳 미술계는 여전히 젊은 작가들에게 환호한다. 젊은 작가의 작품만이 가득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현재의 흐름은 이전의 ‘신세대미술운동’과는 어딘지 다르다. 기존 미술언어
와 제도에 저항하는 나름의 감수성과 미의식의 공유성도 없지는 않으나 오늘날 대다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은 이전으
로 되돌아가는 지극히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다. 더불어 달라진 삶의 환경,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의 삶, 그리고 이전과 다른 현재의 미술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의 흔적이 너무 엷어 보인다. 지금 젊은 작가들
의 작업이 과연 기존 미술계의 주류 언어를 문제시하고 달라진 미술개념을 구사하며 미술문화의 지형도 자체를 새롭
게 짜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시대를 관통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의지 아래 작가로서의 삶을 펼치고 있는 것일
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과 그들의 작업을 진정으로 젊은 작가, 새로운 미술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특별기획] NEW FACE 100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NEW FACE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