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조종성

이동시점은 상상의 발판

서울 한성대입구역 인근 갤러리 버튼에서 선보인 렌티큘러 작업은 동양화가로 알려진 조종성의 작업 면모에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렌티큘러에 엿보이는 집 형상의 구조물은 관람객의 움직임과 보는 각도에 따라 투명한 케이스가 씌워졌다 벗겨졌다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이 투명하기 때문에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규제와 개입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실상 조종성의 작업에서 이동시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서 마치 작가가 그림 속에 직접 들어가 산과 산 사이의 풍경을 거닐듯이 산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서 이동하고 상상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동시점 자체는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계속 변화하는 산세들을 하나로 모았다가 펼쳐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서양의 원근법이 고정된 장소에서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동양의 전통적인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를 담아낼 수 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전통은 조금 특별하다. 보통 한국화에서 전통을 말할 때 화법이나 색채, 문양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종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자연적인 지형과 기후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오히려 전통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거 산세를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던 다양한 시점이 오늘날에는 고층빌딩이나 엘리베이터 등 현대 건축물을 통해 경험하는 시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건축의 대표적인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 기와보다 남향집이 더 전통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지역적 특성상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지어도 남향집이 많다.”
사실 무엇이 동양적인지, 서양적인지 구분하기 애매모호해진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엔 우리의 전통보다는 서구의 문화, 그리고 현대적인 것이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조종성은 “자연 환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지역의 문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다”며 “역사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 간의 가치를 동등하게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시각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에는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건축 모형 뿐 아니라 집의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삶을 껴안은 장소인 집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좋은 경관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옆에 두고 보기 위해 경치가 뛰어난 곳에 정자를 짓지 않았던가?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집이라는 메타포는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시공간을 담아내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예술가이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종성은 고민이 많다. 우리의 삶에서 규제와 개입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와 그 잔재 청산 문제, 분단 이후 한국과 미국의 관계, 독재 권력과 지금의 정치 관계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견고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게 이동하며 숨은 시점을 포착해내고, 우리만의 시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슬비 기자

조종성은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회화과와 한성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상하이, 파리 등지에서 개최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5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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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agaINst space, len. 05>(사진 맨 왼쪽) 렌티큘러 45×45cm 2014 갤러리 버튼에서 열린 개인전<상자 안의 고양이>(6.5~26) 광경

 

[작가리뷰]오치균

오치균의 그림은 서정적이다. 질퍽한 물감의 물성이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화면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그것이 풍경이든 정물이든 마찬가지다. 거대 도시 뉴욕의 마천루와 뒷골목,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뉴멕시코 산타페와 탄가루로 뒤덮인 탄광촌 사북의 풍경이 그렇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색 열매가 별자리처럼 매달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오치균은 비로소 말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천착했던 회화의 근원은 바로 ‘빛’이었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됐노라고.
6월 11일부터 25일까지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오치균의 최근작을 볼 수 있다. 자연-야외에서의 빛과는 다르게 실내에서 포착된 빛과 색감의 향연은 오치균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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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 캔버스에 아크릴 50×73cm 2013

화가 오치균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이은주  미술비평

그의 그림은 늘 두꺼운 물감 덩어리들이 얹히고 또 얹혀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붓이 아닌 손으로 찍어 바르는 화면기법은 오치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물론, 물감을 여러 겹 덧바르고, 거친 마띠에르 효과를 드러내는 작업은 익히 알려진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하여, 국내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작가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치균의 화면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되, 손가락 끝으로 느끼는 감각은 3차원의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바르는 까닭에 그의 작품에서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흔들리는 풍경 속에서도, 정지된 사물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은 날카롭거나 매끈한 작업매체가 되지 못한다. 빛이 들추어내는 각각의 색 덩어리들에 의해서 형태가 드러날 뿐이다.
오치균의 작품들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을 재현하고 있지만, 시각보다는 촉각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재료를 다루는 그의 방법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사물을 어루만지면서 느끼게 되는 감촉을 손가락 끝에 담아 그대로 캔버스 위에 옮겨놓는 행위이다. 손에 전해지는 촉감을 그대로 재현하다 보니, 사물의 고유한 성질이 그대로 화면에 드러난다.
<뉴욕> 시리즈의 다양한 작품들이나, <사북> 풍경, <감> 시리즈, 이번 노화랑 전시에서 공개된 <빛>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에서는 두꺼운 물감 덩어리들이 화면을 구성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물감덩어리들은 모두 같은 표정이 아니다. 1986년 뉴욕생활이 시작되면서 뉴욕의 다양한 표정들을 담은 <뉴욕>시리즈 작품들-눈 내리는 겨울 풍경, 회색도시의 모습들, 뉴욕의 사람들-모두가 각각 다른 표정의 마티에르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감> 시리즈의 작품에서는 유난히도 푸른 늦가을, 하늘빛과 대조를 이루는 붉게 물든 감과 그 감들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의 꿈틀거림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마치 용틀임을 하듯 굽이굽이 뻗은 가지들, 여기저기 갈라진 두터운 나무껍질로 덮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대 시절, 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동학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동학사를 거쳐 계룡산을 넘어 갑사로 내려오는, 그런 여행을 몇 번 했었다. 특히 가을이 좋았다. 갑사 주변의 산과 들에는 감나무들이 즐비했는데, 잎을 모두 떨군 채 붉은 감들만 매달려 있는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갑사의 늦가을 정취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오치균의 감나무를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근처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에도 그런 감나무가 많았었나 보다. 작가는 대상에 몰입하면서 그것을 어루만지듯 물감을 바른 손가락 끝에서 사물의 감촉이 느껴질 때 비로소 화면에서 손을 뗀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빌리자면, “연필로 글씨를 쓰는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과 그의 손가락이 화폭에 남긴 흔적들에 각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중략)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물감을 으깰 때 재료가 육체와 섞이는 그 확실한 행복감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재료를 장악하고 그 재료를 육체화해서 재료를 마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만이 예술가인 것이다. 언어는 기호이고 또 개념인 것이어서, 나는 오치균이 색을 부리듯이 말을 부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을 대책없이 부러워한다. 손가락으로 색을 바르는 행위는 세계의 사물성과의 불화일 터인데, 그는 그 불화의 흔적을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이 모여서, 시간의 지속성,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낯선 색깔의 흐름을 보여줄 때 그의 화폭은 아름답고 강렬하다.” – 김훈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2008)> 중에서

 캔버스에 아크릴 108×162cm 2014

<작업실> 캔버스에 아크릴 108×162cm 2014

빛은 곧 생명이다
오치균이 1980년대 후반부터 그린 뉴욕의 다양한 풍경들, 2000년대 초부터 그린 사북의 풍경들, 그리고 함께 그려온 감나무 시리즈의 작품들에는 항상 빛이 존재했다. 이것은 의도적이기 보다는 야외에서 태양광이 뿜어내는 자연스러운 빛이었으리라. 그 빛들은 각각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마티에르 기법과 결합되어 조명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점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에서는 소소한 대상 안에 자신의 강한 의지를, 놓치고 싶지 않은 한 줄기 희망을,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빛은 희망이고 염원이다. 빛은 우주 만물의 존재를 알리는 하나의 광선이고, 생명체들이 살아가게 하는 자양분이고, 각 사물에 고유의 색을 부여하는 물감 같은 존재이다.
“그동안 내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빛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고 나면 항상 내 작품 속에서 상징 같은 것이 되어 있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들에서의 ‘빛’은 나의 신체적 장애와 심리적 불안 속에서 나온 의도된 빛이예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 작품을 봤어요. 촛불이라는 것은 희망과 염원을 담고 있죠. 하지만, 촛불은 작은 흔들림에도 꺼질 수 있는 아주 약하고 순간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 강하고 영원한 빛을 생각했어요. 심지어 나의 생명이 다해도 남아 있을 수 있는 빛, 영원히 잡아둘 수 있는 빛, 그 안에 내 희망과 의지를 담고 싶었던 거죠.”
그 후 오치균은 작은 공간에 잡아둘 수 있는 빛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빛이 시간적, 공간적 영향력을 가진 자연의 빛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사라지지 않는 인공의 빛으로 영원을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간절함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들이라서 작가는 더욱 집착하고 매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오치균의 작업에서 빛은 생명이다. 그것이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삶을 비추고 온기를 불어넣고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야 할 생명인 것이다.
오치균 작업실의 작은 전시 공간에는 새롭게 제작된 10여 점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이제 그의 대상은 넓고 푸른 바깥 풍경에서 좁고 어두운 실내 풍경으로 옮겨져 왔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한 줌의 빛이 실내의 작은 사물을 감싸고 있거나, 좁은 방구석에서 어둠을 드러내고 있는 작은 실내등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소재의 작업들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여러 시리즈 작업들을 접고 나온 전혀 새로운 작업은 아니다. 뉴욕 시리즈나 감나무, 사북 풍경들을 그렸을 때에도 그의 시선 한곳에서는 작은 사물들을 관찰하고 있었지만, 그 관심이 증폭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람들은 오치균하면 감나무 작가로 기억해요. 하지만, 난 감나무만 그린 건 아닙니다. 보통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거기에 몰입하게 되지만, 너무 빠져든다 싶으면 손을 놔요. 한 가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작품을 찍어내듯 그릴까봐 두렵고, 또 다른 걸 그리기가 너무 힘들어져요. 그런데 감나무 그림은 그린 기간이 좀 길어졌어요. 한 4~5년 정도. 감나무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것저것 관심가는 것들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감나무만 기억해요. 그러다가 작년 전시를 마치고 나서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나 자신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고, 나의 생명이 다하는 건가 두려웠죠. 나는 계속 작업을 하고 싶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외치고 싶은데, 작품을 할 수가 없었어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집 안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그 때 눈에 띈 것이 실내의 사물들이었어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한줄기 빛, 그것조차 허락지 않을 때는 좁은 구석을 비추는 작은 전등 빛이 아마도 작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빛을 받은 실내의 사물들에도 어김없이 작가의 손으로 문질러댄 물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물들 위에 쌓인 물감 덩어리들은 이전에 자연물들 위에 얹혀진 물감덩어리들과는 달리 사물의 단단함, 무정함, 절제된 느낌이 묻어난다. 이것은 그동안 관심을 가져오던 작은 사물들(그러나, 다른 작품들로 인해 관심을 받지 못했던)이 그의 삶과 맞닥뜨려 떨어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작업에서 담아낸 빛은 바깥 풍경 속에서, 감나무 위의 붉은 감에 비추어진 따뜻하고 부서질 듯한 눈부신 자연광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에서 담아낸 빛은 인공적이고 의도적인 빛이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도 그 작은 공간을 절대 떠날 것 같지 않은 확고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그보다도 더 인위적인 전등의 불빛은 사람들의 시야를 벗어난 구석진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들 모두 빛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 빛은 희망이고 생명이다. 빛은 우주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이 소소한 빛들은 어쩌면 작가에게 실낱같은 하나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빛을 비추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의지를 발산하고, 작가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의미가 담긴 빛이리라.●

오치균은 1956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뉴욕 브루클린 컬리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5년 백악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뉴욕으로 건너가 1987년 소호 핀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가나화랑, 부산 공간화랑, 갤러리 아트링크, 부산 도시갤러리, 갤러리 현대, 갤러리 H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캔버스에 아크릴 213×142cm 1993

<뉴욕> 캔버스에 아크릴 213×142cm 1993

 

[New Face 2014] 오희원

전시장의 이면과 마주하다

전시가 열리지 않는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없다. 관람객은 공간에 무엇인가 걸려있거나 설치되어 있는 곳에 들어감과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면서 완성된다. 그렇기에 작가는 텅 빈 공간에 자신의 무엇인가를 남겨 관람객의 방문을 기다린다. 그 남겨진 무엇이 바로 작품이다.
오희원은 텅 빈 전시장을 그린다. 그 공간은 이 세상에 없는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엄연히 현실에서 존재한다. 사간동, 통의동, 구기동 등등에 자리 잡은 대안공간이나 상업화랑의 전시장이다. 전시가 열리지 않는 공간을 그리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언뜻 전시가 열리지 않은 공간이 얼마나 쓸쓸한지에 대한 작가적 연민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아니면 그곳을 채우고 있는 공기와 빛의 흐름에 대한 담담한 관찰의 결과물로도 보인다. 그러나 전시가 열리지 않는 공간은 비록 그 기능을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권력이다.
오 작가에게 <Blind Site> 연작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제 개인의 시점에서 현재 미술계가 빠르게 제도화, 계급화하는 상황에서, 전시공간의 ‘권력화’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또한 과거처럼 보이는 담론적인 시간으로부터 진행됐던 하나의 신화로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공간으로서 미술권력은 꽤 많이 허물어졌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2010년 습작처럼 그리기 시작한 <Blind Site> 연작은 전시공간의 내부 모습을 그리지만, 장소의 둘레로부터 공간 내부를 향한 시선을 동반하며 출발한 작업입니다. (…) 실 공간의 기록이지만 가상의 세계로서 가시화된 공간작업은 ‘전시장’이란 대상을 인지하는 변화된 방식을 환기하면서, 현실의 사태를 반영하는 매개체로서 기능을 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전시장은 온전히 작가에 의해 재편집되어 표현되는데 이것은 “시간의 맥락과 큐브를 다르게 보는 시선”에 의한다.
작가가 근래 선보인 작업인 <Moving Tracking>은 특정 지역 전시공간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추적, 그것을 월별로 지도 위에 기록한 것이다. 이미 고정된 역사적 사건이라 그 과정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지나온 과거를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과거로부터 현재의 제(작가)가 놓인 또는 제가 바라보는 시대의 위치를 참조한 풍경의 상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전시공간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일종의 생태적 관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Blind Site>와 <Moving Tracking>을 연결하는 기제는 ‘시간’의 속성이 아닐까?  작가는 전자가 “과거라는 시간과 현재라는 시간, 현실과 가상, 시간의 연속성과 단절이란 상반된 흔적을 기록하는 매개체”로서의 시간이라면 후자는 마치 태그기능이 달린 과거의 시간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시간으로 새긴 작업”이라고 풀이했다.
현재 그는 날씨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데이터화되고, 어떤 징후로서의 날씨”는 앞의 작업과 어떤 맥락성을 일궈낼지 궁금해진다. 일상을 묻자 최근 요가를 시작했다면서 “자세의 중요성과 함께 신체가 정신에 미치는 메커니즘을 생각하면서 애어른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라는 다소 선문답 같은 말을 했다.

황석권 수석기자

오희원은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올해 첫 개인전 <White Void-공백의 반응>을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었다. 또한 <오늘의 살롱-TODAY’S SALON전>(2014), <PROJECT 72-1전>(2012~2013), <게걸음 : We are left, We are right>(2012) 등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Blind Site-Darksome

캔버스에 유채 89.4×130cm 2014

(왼쪽)  출판물(부분) 2014 특정 지역 전시공간의 생성과 소멸을 월(月) 간격으로 지도 위에 표시한 뒤, 이를 취합하여 서책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왼쪽) 출판물(부분) 2014 특정 지역 전시공간의 생성과 소멸을 월(月) 간격으로 지도 위에 표시한 뒤, 이를 취합하여 서책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New Face 2014] 민진영

유년의 기억, 그리고 집

어둡지 않지만 밝지 않다. 작가 민진영은 집, 공간, 빛, 어릴 적 기억 등에 중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집하면 마음을 놓고 푹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다. 재료로 사용되는 빛은 어둠과는 대비되는 감각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적인 소재와 재료를 사용함에도 민진영의 작품은 꽤나 이지적이고 차가운 면이 강하다. 개인의 유년시절 기억에 기반을 둔다는 그녀의 작품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꿈동산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집은 사실 상징적인 소재일 뿐 작가의 본질적 관심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이야기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최소단위의 공공집단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을 다루고 있다. 그들만이 알고 있고, 경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집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안락하고 행복한 추억과 영영 잊고 싶은 과거가 공존한다. 민진영의 집은 단단하고 굳건한 건축이라기보다는 비닐하우스, 텐트 등 입체적이고 가변적인 요소가 강하다. 불안전한 집에 대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가학적으로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다친 살을 부드러운 연고로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자신의 상처를 살며시 드러내다가 또다시 억누르기를 반복한다.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그녀의 감정은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어린 민진영을 떠올리게 한다. 강원도 삼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느 늦은 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을 얹고 산길을 건너는 떨리는 발걸음, 멀리 집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갈망하는 눈망울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어둠의 터널이 언젠가 끝나 밝은 빛의 세상이 오기를 열망하는 소녀의 바람이 작품과 작가에게서 나타난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이 ‘치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치부’라는 감정은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이면서 누군가 알아줘서 토닥여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설까. 작가는 유독 ‘상처’와 ‘어린아이’에 관심이 많다.이번 6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OCI에서 열리는 <민진영, 박경진전>에서 선보이는 신작에서 상처받고 치유가 필요한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불안한 심리의 어린이들이 미술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린 그림들을 모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예술작품이 아닌 심리치료의 방편으로 그린 그림에서 예술이 가진 치유의 감정을 공유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연민’이라고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공감 코드의 가장 적절하고 기본이 되는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개인사를 작품의 소재로 삼지만 작가가 말하는 연민은 단순히 자기연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상처를 받고 아물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연민이라는 관심으로 공감을 만들어내고 치유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주변에서 작품이 점점 밝아진다는 말을 듣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곧 태어날 둘째와 함께 앞으로는 길고 긴 마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어린잎 같이 여리고 따뜻한 연민으로 개인과 타인을 밝혀낼 작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임승현 기자

민진영은 198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2012년에는 신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 ‘2014 OCI YOUNG CREATIVES’에 선정되었다. 현재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

 혼합 재료 280×45×135cm 2009

<집을 읽다> 혼합 재료 280×45×135cm 2009

연약함, 위대함> 혼합 재료 365×146×80cm 2014

연약함, 위대함> 혼합 재료 365×146×80cm 2014

 

[스페셜 아티스트] 이진용-이것은 가방이 아니다

이것은 가방이 아니다

작가 이진용에게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는 스스로를 본질주의 작가(本質主義, Essentialist)라고 말한다.
비록 외형상 극사실회화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으며 그 그림은 머릿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 이진용의 이런 발언은 대상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그림을 구상회화라고 주장했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와 대척점에 있지만 일맥상통 한다. 5월 24일까지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 바톤에서 이진용의 대형 신작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손때 묻은 낡은 가방-그림은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축적과 감동을 작가 이진용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표현한 또 다른 차원의 추상회화로 읽힌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이진용은 가방과 책이라는 구체적인 사물과의 유사성 속에서 그것을 재현했다. 보는 이는 가방과 책을 모방한 그림을 통해 그 대상을 재인식한다. 그것은 거대한 벽화이기도 하고 캔버스로 이루어진 설치와도 같다. 한쪽 벽면 전체가 완전히 그림으로, 화면으로 직립해 있다. 다른 쪽 벽에는 책등을 보여주는 대형 화면이 가설되어 있다. 사각형의 캔버스 틀이 그 자체로 부풀어 올라 사물 자체가 되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배경 없이 그대로 사물이 되어 육박하는 그림은 자신의 존재감과 그 존재 위에 얹혀진 시간의 깊이와 세월의 연륜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본래의 크기보다 훨씬 커지는 데서 오는 압도감이 우선적으로 망막을 막아선다. 실제 여행용 가방과 오래된 책들이 놓여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다. 가죽 가방의 질감과 세부장식, 부착된 스티커 그리고 낡은 책등과 빛바랜 종이, 갈라지고 삭은 시간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고서의 상황성을 묘사한 그림은 탁월한 재현술에 기반을 둔다. 무척 잘 그려진 그림이다. 고영훈과 이석주의 책 그림, 강형구의 인물화, 이정웅의 붓그림 등을 연상시키는 놀라운 눈속임 기법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가는 가방과 책을 그렸기보다는 그 사물을 빌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힘, 그에 따라 변화하며 서서히 소멸해가는 존재의 허무, 비애 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보이는 대상의 묘사가 목적이 아니라 내용,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니타스적인 정물화의 흔적이 감지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물은 그 시간의 힘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것들이고 죽어가는 것들이다. 따라서 오래된 사물은 유한한 인간에게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존재다. 그것이 수집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진용은 오랜 세월동안 엄청난 사물들을 수집해왔다고 한다. 그가 그려낸 오래된 책과 가방 역시 그의 수집목록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하면 수집이란 심리적으로는 흥미요, 생리적으로는 성벽(性癖)이다. 수집은 물건을 향한 정애다.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는 그러한 정의, 기연(機緣)을 만드는 일이다.(야나기 무네요시,《  수집이야기》, 산처럼, 2008) 수집은 물건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 길이다. 무언가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척 인간적인 행위일 것이다. 수집은 합리적인 조치이기보다 훨씬 불가사의한 작동을 한다. 특정 사물을 편애하고 이를 모으는 사람은 수집하는 물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렘브란트는 명화를 모으는 데 가진 돈을 모두 탕진했다. 워홀 역시 대단한 컬렉터였다. 우리의 경우 김환기, 도상봉, 권옥연, 김종학 그리고 구본창, 현태준 등이 알려진 수집가/작가들이다. 특별한 골동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수집하고 여기에서 그 조용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귀 기울이고 그 사소한 것들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된 기호이나 감성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수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해나간 경우에 해당한다. 이진용 또한 대단한 수집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는 온갖 오래된 사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완상하면서 그것이 지닌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 아름다움은 오래된 물건의 피부에 서식하는 시간, 죽음의 자리다. 특히  정신과 물질을 담는 용기이자 전달 매체인 책과 가방이 주는 아름다움,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속에 배어있는 장인정신이 만들어내는 아우라에 매료된 그는 그러한 아우라를 그리고자 한다.
“제게 수집은 취미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 저는 옛사람들이 만든 물건에서 만져지는 장인정신과 그것들을 지녔던 사람들의 손길과 견뎌온 세월에서 무한한 감동과 전율을 느낍니다. … 이런 것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이자 역사겠지요. 저는 이런 것들의 소중함과 여기서 느끼는 감동과 에너지를 제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그가 수집한 물건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수집한 물건의 외형을 그대로 모방,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것들을 첨가 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억겁의 시간’과 그로부터 받은 ‘감동과 에너지’를 그림 밖으로 표출하고자 하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극사실적인 그림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강변한다.
“제 작품은 극사실주의가 아닙니다. 아니 사실주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습니다. 제가 가방을 그릴 때 그 가방은 제 머릿속에서 나옵니다. 제가 무수히 많은 오래된 가방에 축적된 시간을 보면서 받았던 감동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어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겁니다. … 저는 대상의 본질이나 사물의 진실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굳이 카테고리를 정하라면 저는 본질주의 작가(Essentialist)가 되고 싶습니다. … 저는 사물의 본질적인 무엇,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한 무엇 그리고  객관을 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이진용의 개인전 광경. 작가가 수집한 물건과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이진용의 개인전 광경. 작가가 수집한 물건과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기교와 철학이 겸비된 작가
주관을 부정한 객관의 세계를 그대로 응시하고자 하는 것, 동시에 그 객관의 세계에 상상력과 변형이라는 주관의 산물을 삽입하려는 시도로 이루어진, 주관/객관이 한자리에 서식하고 겹쳐지는 그리기!
흥미로운 것은 최근 극사실적인 그림에 대표적인 작가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그림을 극사실주의 혹은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보수적 기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상상력과 변형, 연출을 동원해 이전의 사실주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피상적으로는 대상과 닮아 보이는 그것이 실제로는 허구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짓의 세계,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것이다. 이는 강형구의 작가의 변(辯)과 매우 유사하다. 초상화의 경우 그 연출방식도 매우 흡사하다. 이진용의 그림은 실제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력의 산물이 된다. 수십 년간 수많은 책과 가방,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관계와 가치, 시간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기억들과 영상, 물리적 감촉에 대한 시각화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회화적 구상화’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과 가방의 이미지들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한 화가의 극단적인 추구의 결과인 셈이다. 가방과 책의 외형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극한의 탐구와 절제된 고도의 예술적 테크닉의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이진용에게 재현이란 단지 눈앞에 자리한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 그 자체로 귀결되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재현된 존재들로 인해 환기되는 정서나 느낌의 고양에 있다. 주어진 대상의 즉물적인 묘사 너머의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란 얘기다. 그러니 다분히 관념성이 강한 그림이다. 그가 그려낸 가방과 책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그가 상상해서 다시 연출한 가짜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기존 책과 가방을 참조해서 이루어진다. 사실 그 위에 슬그머니 허구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왜곡과 변형, 연출을 통해 리얼리티보다 더 실재적 효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시대 극사실주의를 기법으로 내세우는 작가들의 작업 알리바이로 작동된다.
“인간이 상상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 말입니다. 작품의 힘은 ‘경탄’에서 나오고 경탄은 무엇이 인간의 한계 밖에 있을 때 나옵니다. 그림에 대한 경탄은 이론이나 철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은 문자 그대로 시각예술(視覺藝術, Visual art)입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여전히 일루전/모방의 즐거움에 호소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물의 표면을 열심히 따라가보는 그리기이자 사물의 질감에 대한 편집증적 편애에 해당한다. 오로지 표면만을 애무하는 그리기는 회화의 본질적인 영역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는 사물의 감각적인 질감을 가지고 유희하는 일이고 그것들과 한 몸으로 접속되는 일이다. 새삼 미술행위가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관계되어 이루어지는 형국을 조망하고 그 눈속임에 기반을 둔 조형행위의 여러 상황을 통해 미술의 가장 오래된 본성을 부활시키고 있는 동시대 극사실적인 회화의 존재 이유 및 그 전략과 어법, 특성들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이진용의 이 같은 그림이 기존의 사실주의적 그림들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대회화로서 어떠한 의미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재현의 논리, 동일성의 법칙에서 빠져나온 비재현적 회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20세기 이후 회화는 사실상 그러한 재현의 논리로부터 달아나는 방법을 지속해서 모색해왔다. 중요한 것은 재현의 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단지 모방적인 회화의 닮은꼴을 변형하거나 약간 틀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물과 세계를 추인하는 재인과 상식, 그 특정한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도그마 자체를 문제시하는 선에서 풀려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

 

(왼쪽) 캔버스에 유채 131×194cm 2013 갤러리 바톤 전시광경

<Hardbacks #H1H05> (왼쪽) 캔버스에 유채 131×194cm 2013 갤러리 바톤 전시광경

 

이진용은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조현화랑, 박여숙화랑, LA Artcore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등에서 24회 개인전을 열었다. 부일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해 MBC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다.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김미루 – 미메시스의 능력 회복을 위하여

미메시스의 능력 회복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작가 김미루의 개인전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3.27~4.29)이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동안 도시, 돼지우리 속 누드 사진으로 충격을 던진 작가가 이번에는 사막에 몸을 던졌다. 여자의 벗은 몸을 금기시하는 모슬렘문화권의 이 사막은 옷을 입은 채로도 견디기 힘든 악조건이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영옥  이미지 비평, 연세대 문화학과 강사

하얀 스카프와 긴 장옷으로 머리와 몸을 감싼 한 여자가 사원 마당에 앉아 있다. 그녀 앞에는 우유가 가득 담겨 있는 함지박이 놓여 있다. 작은 몸의 쥐들이 함지박 둘레에 달라붙어 열심히 우유를 마시고 있다. 우유를 충분히 마신 쥐들은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가 손등을 타고 넘기도 한다. 소소하고 즐거운 놀이를 하듯이 쥐들의 움직임은 가볍고 발랄하다. 가끔씩 그녀 자신도 손바닥으로 우유를 길어 올려 입술을 축인다. 사원을 찾은 마을 주민들 중에 그녀를 여신으로 생각한 사람도 있다. 그녀 앞에서 절을 하거나 아이의 손을 이끌어 그녀의 옷자락을 만지게 한다. 그녀의 축복이 아이에게 가 닿기를 소망하면서. 이것은 아티스트 김미루가 만든 동영상의 장면이다. 그녀는 인도의 북부 비카네르에 있는 까르니마따 쥐 사원에 가서 쥐들과 함께 우유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원의 뜰은 고요하고 쥐들과 함께 우유를 마시고 쥐들의 사랑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평화롭다. 쥐들을 무서워하거나 더럽다고 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퍼포먼스가 꽤나 의아하고 기이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김미루가 어떤 아티스트인지 조금이라도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띨 수도 있으리라. 자신의 웹 홈페이지에서 김미루는 ‘쥐를 사랑하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실제로 쥐들은 그녀의 아티스트 경력에 중요한 키워드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키우며 돌본 동물이 쥐고, 쥐를 찾아 나선 걸음이 그녀를 지하 터널로 이끌었다.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언더그라운드 아트’ 작업은 그러니까 쥐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 Ted talk에서 자신의 언더그라운드 사진작업을 소개할 때 김미루는 쥐와의 이 인연을 가감 없이 전한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으로 사람들 앞에서 지하도시 탐험 여정을 설명하는 그녀는 매우 수줍어 한다. 다른 Ted 연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무대 위에서 큰 동작을 만들지도 드라마틱한 목소리 연기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거의 하나의 점처럼 제자리에 서서 가끔 비칠 듯 말 듯 미소를 띠며 일정한 톤으로 지하도시 탐험과 그 결과로 남겨진 사진들을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약간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수줍음을 타는 여자가 <Naked City Spleen>과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처럼 ‘대담한’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행했단 말인가. 그녀의 작업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말하는 방식,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그녀의 사진이 전하는 느낌들은 더 깊어지고 순전해진다.
김미루는 모든 동물에게 친화력을 느낀다. 그녀에게는 사람 또한 하나의 동물 종(animal species)일 뿐이다. 그녀가 쥐를 그리거나 찍을 때, 혹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와 함께 피부를 맞대고 엎드리거나 기면서 감정을 나눌 때, 쥐나 돼지는 ‘인간의 무엇’을 위한 은유가 아니다. 동물을 은유로 사용한 역사는 이제 너무나 오래되어 동물이 식구의 일종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과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람들 뇌리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동물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친화력’은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 그녀가 의과대학 학생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동물에 대해 그 어떤 ‘인본주의적’ 비유 관습이나 유사 생태주의적 감정을 갖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근원적이고 명료하다. 돼지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은 돼지 새끼를 해부하면서 얻은 지식, 즉 생명체로서 돼지가 인간과 매우 유사한 기관조직을 지녔다는 깨달음으로 더욱 깊어졌지만 그녀에게 인간이나 쥐, 돼지나 새, 꿀벌, 낙타 등은 모두 등가적인 가치를 지니는 종이다. 모두 동물세계의 서로 다른 구성원이다. 쥐와 돼지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인간들이 ‘더럽고 비천하다’고 낙인찍으며 가장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회피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녀는 쥐나 돼지를 ‘더럽고 비천함’ 혹은 ‘더럽고 비천한 존재로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김미루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내게  그녀의 이미지 작업에 깃든 매혹이나 영감의 많은 부분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녀의 지하세계 탐험 작업에서 쥐는 인간과 똑같이, 어쩌면 인간보다 더 오래, 인간보다 더 깊숙이 도심에 깃들어 살고 있는 도시의 거주민이다. 지상세계에서 상처받다 지하에 내려와 비로소 피난처를 발견한 노숙인이 그렇듯, 카타콤에 잠들어 있는 1300년 된 해골이 그렇듯, 폐허가 된 설탕공장 뜰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는 들개나 토끼들이 그렇듯, 하수구나 지하터널에 기거하는 쥐들도, 살아있는 유기체(a living organism)인 저 도시의 거주민이다. 해부학에서 훈련된 감각으로 도시의 피부 아래가, 도시의 보이지 않은 부분이, 도시의 무의식이 궁금한 그녀에게 쥐는 영리하고 친절한 동반자다. 인류의 역사는 무수히 많은 은유의 전략이나 전술에 기대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정한 예들을 알고 있다. 근대 후기에 서구 남성들은 (타이티로 간 고갱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비서구 여성들에게서 덜 오염되고 덜 왜곡된, 그만큼 더 원초적이고 순결한 자아의 은유를 찾았고, 탈근대에 동일성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타자성의 철학을 세우고자 했던 철학가들은 (니체나 데리다, 레비나스가 그랬듯이) 여성을 바로 그러한 비동일적인 타자성의 은유로 재발견했다. 마찬가지로 동물은 인간이 가장 빈번하게 은유로 불러내는 대상이다. 급속도로 추진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들은 동물들에게서 태곳적 인간의 원초적 동물성의 모습을 찾곤 했던 것이다. 언어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서 은유는 필연적이다. 모든 은유가 대상을 타자화한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은유는 궁극적으로 자아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혹은 반성적 자아의 보존을 위해 대상을 은밀하게 소비하고 타자화한다.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에서 벗은 몸으로 돼지와 함께 있는 그녀의 이미지들이 품은 아름다움이나 선한 충격은 김미루가 돼지에게, 돼지가 김미루에게 은유가 아닌 냄새와 촉감이 있는 몸으로 현전하기 때문이다. 철학가 김상봉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주체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꿈꾸는 관계이며, 이러한 관계를 정동적으로(affective) 감응케 하는 미학적 실천은 이토록 감응이 불가능해진 맹목적 자본합리성과 우울한 시물라크르의 시대에 윤리적 열림의 단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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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그리고 사막
도시 탐험가들에게 버려진 장소,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시간 속에서 저 홀로 스러져가고 황폐해져가는 장소는 놀이터고 명상과 정화의 사원이다. 사랑을 잃었을 때나 고립감이 심할 때, 소외와 우울로 힘들 때, 버려진 장소(deserted place)는 훌륭한 피난처가 되어준다고 김미루는 말한다. 도시 탐험 사진작업자들은 버려진 채 남겨진 장소를 그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기적인 미적 추구를 위해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화려한 성공과 미래를 약속했던, 그래서 한때는 사람들로 들끓었던 디트로이트 공장들에서처럼 폐허가 된 장소들은 도시의 이루지 못한 꿈의 역사를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희망과 꿈과 좌절이 부서져 나뒹구는 파편들처럼 그곳을 떠돈다. 그래서 폐허 자체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대신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하는 시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곳을 채웠던, 여전히 유령처럼 그곳을 감돌고 있는 집단적 소망과 심리적 애착의 숨결을 되살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녀는 버려진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이것이 진정한 기록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그 장소 안에서 장소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그녀가 <Naked City Spleen>과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사진작업을 하면서 옷을 벗은 까닭은 두 가지다. 옷을 벗음으로써 특정 개별성을 지시하는 문화적 요소를 지우고 보다 보편적인 자연의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관객들이 몸으로 그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벗은 몸은 이미지와 관람객 사이에 촉감적 매개를 가능케 하는  일종의 연결고리 혹은 통로가 된다. 비주얼 포인트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폐허의 경우 이 두 가지 요인은 폐허 자체의 이중적 의미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한때 기술문명과 역사의 발전, 소비문화의 화려함을 뽐내던 1900년대 초기의 공장들은 너무나 빨리 자연으로 되돌아가버린다. 김미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자연이 먹어버린다.” 거대한 구조물들이 그렇게 쉽게 금방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사람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동안 버려진 것들과 함께하다보니 새것이 얼마나 금방 낡은 것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겠더군요. 집, 사무실, 쇼핑몰, 교회, 등등…다들 금방 낡아버리죠.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우리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지 또 인간이 세월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절감했어요.”
이러한 깨달음은 그녀에게 숭고에 대한 느낌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녀가 폐허나 지하세계를 탐험하며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그 폐허 같은 공간들이 도시의 잊혀진 기억을 참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터널이 그렇듯이 한때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 지어졌던 구조물들이 지금은 도시민들의 일상으로부터 밀려나 완전히 잊혀져버린 추방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녀에게는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 장소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책임과, 그러한 장소를 안식처로 삼고 있는 추방자들의 삶을 기억할 책임은 하나로 겹쳐지며 그녀 사진의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구성한다. 그녀의 TED 연설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말하듯이 옷을 벗은 그녀가 없다면 그 사진들은 단지 아름답고 멜랑콜리한 폐허의 사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옷을 벗은 그녀가 있기에 그 사진들은 초현실주의적 매직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도시가 꾸었던 꿈이 어른거리고, 도시의 무의식에서 들려오는 어떤 웅얼거림이 함께 울린다. 벗은 도시의 우울. 근대 초기에 보들레르가 통렬히 감지하고 시로 표현했던 대도시의 우울은 이렇게 21세기 김미루의 폐허 사진에서 다시 한 번 멜랑콜리의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보들레르의 시 <백조>는 그녀의 사진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 일상의 산보 길에서 새로 생겨난 카루젤 광장을 맞닥뜨린 보들레르는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백조를 떠올린다. 그의 상상력 속에서 이 백조는 다시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될 앙드로마크를, 앙드로마크는 다시 유배당한 사람들, 패배자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비애를 삼키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숭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김미루는 버려진 장소, 폐허에 가서 숭고함을 느꼈다고 했다. 으스스해서 두렵고 무서우면서도 참을 수 없이 끌리는 매혹을 느끼면서, 그토록 찬란하고 거대했던 구조물이 그토록 빨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매우 작게 느껴졌다고 했다. 초월적인 것, 고양된 것, 형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숭고함은 재현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비판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칸트에게서 불가해한 자연의 무한함과 대결하는 고독한 주체의 원형적인 모습을 가리켰던 숭고함은 포스트모던에 와서는 지배적인 담론, 관습, 의미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지표로서 많은 이론가들을 매료시켰다. 김미루의 경우에 그러나 숭고함을 드러내는 자아는 위축된 보잘 것 없는 자아가 아니라 ‘자아 자체’를 더 이상 느끼지 않는, ‘범속한 몰아’, ‘범속한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자아다. 그녀의 경우 자아는 대결하지 않는다. 형언할 수 없는 것과 그것의 사진적 재현에서 오히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벗은 몸과 함께 몸적으로 구체화된다. 벗은 몸이 ‘덜’ 사적이고 ‘더’ 보편적이기에 옷을 벗었다는 그녀의 말은 탁월하게 이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자아나 주체는 물러선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 역시 단지 하나의 동물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숭고함이 어떤 ‘장소’로, ‘지상세계’의 억압에서 오히려 벗어난 ‘지하생활자’들의 평화로운 공존의 장소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초월적인 숭고한 힘과 고독한 대결을 벌이는 자아의 모습도 물리치고, 또한 친숙하고 틀에 박힌 기존의 관습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숭고함의 정취를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숭고함에 대한 그녀의 느낌은 자아를 내려놓고, 다시 말해 기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무위의 평화와 해방에 도달한다. 평화를 찾아 사막으로 간 낙타처럼.
폐허를 찾아, 사막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는 미루의 여정은 도피도 아니고 이전 시대로의 보수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후퇴도 아니며, 오히려 현존하는 사회질서를 모방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동일성의 세계에서 유사성의 세계로 옮겨감으로써 평화로운 위반을 실천하는 그녀만의 새로운 미학이다. ●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0

<NY 1>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0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1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1>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1

김미루는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톤햄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랑스어 낭만주의 문학과와 프랫 인스티튜트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 미국 제스타크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Naked City Spleen>을 시작으로 8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작가리뷰] 박찬용-투견에서 우상까지

투견에서 우상까지

폭력이 극화된 거친 세상. 작가 박찬용은 인간과 동물의 거칠고 예민한 폭력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투견> <서커스> <동굴의 우상>등은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대표작이다. 그의 예술적 여정을 종합적으로 볼 수있는 개인전이 파주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3월1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린다. 그간의 작업과 신작을 한눈에 보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우리시대의 모습을 살펴본다.

김영호  중앙대 교수

박찬용이 <투쟁 그 영원함>(가나아트스페이스, 2000)이라는 제하의 개인전을 통해 투견 조각을 처음 선보인 지도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선택한 견종 핏불(pitbull)은 인간에 의해 치밀하게 개량된 싸움개라는 점 외에도 인간을 칭하는 피플(people)과 비슷한 음을 지니고 있어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매체로 세인의 시선을 끌었다. 투견 시리즈 이후 박찬용은 서커스-박제-우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 속성으로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왔다. 이번 파주 출판도시에 자리 잡은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개인전은 동물조각가로서 그의 노정을 종합적으로 망라한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박찬용이 전시 콘셉트로 제시한 투견-서커스-박제-우상은 모두가 폭력, 욕망, 정복, 투쟁 따위로 대변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개인전은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근간으로 건축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알바루 시자가 설계)의 백색 공간과 그 안에 설치된 조각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조각가로서 예술노정 제1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 거대한 백색공간이 주는 영적 분위기를 장대한 시간을 머금은 동굴 콘셉트로 설정했고 <동굴의 우상>이라는 제명의 신작을 설치했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뿔을 가진 들소의 형상이며 길이와 높이가 각각 5.56m와 3.45m에 달하는 기념비적 작업이다. 제명이 <동굴의 우상>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이들 원시 짐승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거대한 힘에 대한 열망과 숭배의 심리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의 태도이다. 투견에서 우상으로 이어지는 박찬용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간의 작품 시리즈에 흐르는 의미들을 살펴보자.
우선 <투견 시리즈>는 박찬용이 동물조각가로서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결정지은 작업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2000년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인 투견 시리즈의 키워드는 ‘길든 폭력의 본성에 대한 성찰’로 요약될 수 있다. 근대사의 전환기를 살았던 마르크스가 ‘투쟁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선언한 이래 폭력이 역사발전의 수단으로 정당화되면서 수많은 만행이 저질러지기 시작했고, 국가에서 기업에 이르는 구성원들은 폭력을 혁명과 개혁 그리고 지배의 도구로 사용해왔다. 따지고 보면 폭력의 역사는 근대사 이전과 이후의 시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으며 길든 폭력성은 인간을 문명화시키는 수단이었고 그 배경에는 지배에 대한 욕망의 본성이 숨어 있다. 박찬용이 투견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폭력의 배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다. 투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우성인자 조합체인 핏불은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잔혹한 욕망의 대리자가 된다. 핏불이 인간의 투쟁 본능에 대한 욕망을 대신하는 생명체로 개량 보급되어왔듯이 박찬용은 핏불 조각을 통해 박제화된 욕망의 역사를 구현해낸다. 차가운 알루미늄 재질로 캐스팅하고 속이 텅 비어있는 조각붙임 형식을 통해 탄생한 투견은 실재를 넘어 폭력에 대한 광적인 찬미의 외침을 묵언으로 드러내고 있다.
<서커스 시리즈>는 2006년 개인전(한길아트스페이스)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박찬용이 시도해 온 투쟁본능을 상징과 알레고리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폭력의 속성은 강한 것에 대한 지배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향을 지닌다. 자신보다 강한 것을 무력으로 제압함으로써 스스로 강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다. 야수, 미녀, 난장이로 대변되는 서커스의 3대 구성요소는 투쟁본능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열광하는 대중심리를 드러낸다. 박찬용의 <서커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맹수, 조련사, 무희, 원숭이, 차력사 등이다. 그중 길든 호랑이와 곰은 언제든 도발의 위험을 지닌 맹수다. 조련사는 이 위험한 게임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강한 것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자극하며 채찍과 쇠사슬에 의해 위태롭게 유지되는 스릴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한편, 회색 알루미늄 재질의 조각으로 캐스팅된 난장이의 형상은 열등한 인간의 상징인 동시에 힘을 잃어버린 현대적 자아의 우울한 반영이다. 때로 차력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관객에게 열등한 것들에 대한 대립물로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케 하는 대리인과 다름 없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원숭이는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의 미메시스이며 그 앞에 서 있는 풍만한 몸매와 금발을 지닌 반라의 여성은 원숭이로 대변되는 진화론의 대립물로서 창조론의 상징인 이브의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박제 시리즈>는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박찬용의 작품경향으로 폭력성 고찰을 위한 새로운 버전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박제는 힘 쎈 것에 대한 열등한 것들의 도전’이다.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박제는 신비하고 강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 욕망이 실현된 산물’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벽에 걸린 극락조나 사자 그리고 호랑이 따위의 박제물들은 단순히 희귀 동물들의 사체를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의 역사를 끌어안고 있다. 조각가 박찬용의 손에 의해 태어난 박제물들은 실재 동물이 아니라 실재의 외형을 모방한 조형물이다. 그리고 이 재현의 과정에서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폭력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장치들을 개입시킨다. 가령 <박제-찬란한 아름다움>에서 사자의 갈기는 양가죽과 양털로 대체되어 있으며 때로는 소가죽과 말가죽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치는 약육강식의 법칙성 속에서 먹고 먹히는 생명들의 장엄한 순환의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각양각색의 조류에서 사자, 호랑이, 표범에 이르는 맹수의 박제물들은 귀하고 강한 것에 대한 정복의 욕망이자 승리의 표상이다. 박찬용이 성찰을 요구하는 지점은 바로 자연에 대한 승리의 전리품이 끌어안고 있는 생명과 폭력과 지배와 소유에 관한 것들이다.
욕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우상 시리즈>는 2012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작업으로서 박찬용의 동물조각이 절정에 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된 작품의 규모와 형식 그리고 이념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차원의 성과로 채워져 있어 보는 이를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2013년에 제작된 <동굴의 우상>은 이번 개인전의 백미로서 원시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들소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이다. 작가는 주술의 세계를 품은 거대한 들소의 형상에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 개념을 덧씌워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전개하고 있다. 주지하듯 베이컨은 인간을 편견으로 몰아넣는 우상을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등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 개념에서 온 것으로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개인적 편견을 말한다. 축성된 공간으로서 미술관에 자리 잡은 거대한 들소는 주술적 영험을 지닌 신상이자 동시에 그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성공회 신학자 몰(Moule)의 ‘우상숭배란 자기목적 때문에 신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결국 박찬용의 <우상 시리즈>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이자 인간적 관점, 개인적 소견, 언어적 제한, 철학적 사상 따위에 속박되어 빚어지는 판단의 오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상에서 보듯 박찬용의 동물조각은 인간의 고통과 폭력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대변하며 관객 앞에 제시되어 있다. 투견-서커스-박제-우상에 이르는 시리즈는 폭력의 기억과 욕망의 역사를 예술적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박찬용이 작업을 통해 제시하는 일관된 개념과 개성적 형식논리는 한국 현대조각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제공해준다. 또한 신생 미술관인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건축공간과 작가의 동물조각 시리즈 사이에 맺어진 상호관계의 적합성은 이번 개인전을 한국 현대조각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박찬용(2)

<서커스-막이 오르다> 합성수지에 채색 가변크기 2007

 합성수지 위에  아크릴   730×180×285cm 2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외부에 설치 전경

<동굴의 우상-코뿔소> 합성수지 위에 아크릴 730×180×285cm 2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외부에 설치 전경

박찬용은 1964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예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1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물과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하고 있으며 현재 파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2002년 송은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송은 문화재단, 분당 율동공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뉴페이스 2014] 장종완-비상식적인 현실과 비이상적인 천국

비상식적인 현실과 비이상적인 천국

작가 장종완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해 보인다. 하지만 스스로 개구지다고 말하듯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리하고 강한 눈에 장난기가 서서히 묻어난다. “어떻게 놀릴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비꼬아 풀어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작업이 출발한다는 작가는 비현실적일 만큼 완벽한 천국의 이미지에 해학과 풍자를 더한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천국의 진지하고 영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가 그리는 천국의 이미지는 연극무대와 비슷하다. 평소 작업을 연극무대라고 상정하는 작가는 윌링앤딜링에서 열리는 그의 세 번째 개인전 <황금이빨>(4.12~5.2)의 공간을 마치 하나의 연극무대처럼 연출했다. 막을 열고 입장한 전시장에서 회화작품과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는데 핀조명으로 작품을 비춰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연극무대의 이미지는 전체 공간뿐 아니라 각각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천국의 배경을 작가는 하나의 연극무대라고 상정하고 무대마다 다른 등장인물을 배치시킨다. 그곳에 등장하는 배우는 기이한 형상의 동·식물이다. 종말 이후의 세상이 아닐까 여겨질 만큼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 재난, 범죄 등이 새로운 형태로 발생한다. 작가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 운전기사에게서 받은 특정 종교의 홍보지에서 단박에 작품의 모티프를 찾아냈다. 비상식적인 일이 정신없이 일어나는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홍보지에 등장한 천국의 이미지는 비이상적으로 완벽했다. 이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함께 뛰어노는 초원의 모습은 우리의 세상을 풍자하는 회화처럼 느껴졌다. 평소 이발소 그림, 선전선동 포스터 등에 관심이 있던 작가에게 이러한 회화적 구조와 구성은 큰 영감이 되었다.

장종완(7)

·<가슴 훈훈한 이야기들> 종이 위에 색연필 23×32cm 2014

2012년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정하고 애니메이션, 회화로 연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황금이빨>은 작가가 꾸준히 고민하는 주제와 형식의 연장선이다. 불가능한 로맨스가 실재하는 새로운 세상과 황금이빨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상정하고 그의 과거의 모습인 고독한 양치기의 꿈을 다룬 작품이다. 이 양치기는 꿈에서 절대자가 되어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다스리며 궁극에는 새로운 세기를 창조하려 한다. 양치기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외친다.
암울하고 힘든 세상을 그리는 작가 자신의 현실은 어떨까. “별다른 재주가 없어서 작업한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니 나까지 힘들다고 하지 않겠다” 그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내용은 날카로웠다. 마치 부드럽지만 매서운, 그가 그린 연극무대처럼.

 나무, 프로젝터, 기계장치, 이빨조각 110×72×225cm 2014

<황금이빨> 나무, 프로젝터, 기계장치, 이빨조각 110×72×225cm 2014

Jang Jongwan장종완은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S.O.S(save our souls)>와 <Double meaning>, <Korea Tomorrow 2011>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임승현 기자

[뉴페이스 2014] 차미혜-세상의 모든 울림을 끌어안다

세상의 모든 울림을 끌어안다

우리의 눈은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망막에 품었다가 스치고 지나간다. 대안공간 풀에서 작가 한진과 2인전으로 열린 <회색의 바깥전> (4.11~5.31)에서 차미혜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놓치는 그러한 일상의 풍경을 미세하게 포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2채널로 구성된 영상작품 <무인칭을 위한 노래>(2013)는 탁자 다리에 비치는 햇빛의 머뭇거림, 누군가의 머릿결이 천천히 나부끼는 모습 등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법한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녀가 감싸 안은 풍경은 정지 화면 같지만 미묘하게 움직이며 연약하게 숨을 쉰다. 죽었지만 자신이 죽은지 모르는 화자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영상과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여러 시선이 교차하고 비껴가면서 누구의 시선인지 모호해지며 낯설고 심지어 비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미혜 2_Song_for_Zero_person

<무인칭을 위한 노래> 2채널 HD영상 HD 컬러 무음 8분45초 2013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무인칭이라면, 무인칭에 ‘대한’이 아니라 ‘위한’ 노래라고 한 것은 이를 애도하는 심정으로 모두가 다인칭이 되는 불완전하지만 가능한 영역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사운드는 없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 ‘노래’라고 제목을 붙였다. 차미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각자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물의 맥박과 같은 울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고.
16mm 필름으로 작업한 신작 <얼굴 없는 얼굴>은 꿈에서 본 얼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차미혜는 꿈의 안과 바깥을 넘나들며 추상적이면서도 반복되는 이미지를 ‘꿈의 후렴’이라 부르며 텍스트와 퍼포먼스 작업으로 확장시켰다. 작가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얼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단다. “예전에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질문을 했다면 지금은 나들과 너들, 타자의 얼굴들, 제가 가지는 여러 가지 얼굴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차미혜는 인터뷰 동안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표현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이 세상이 분명하다면 저는 아마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A 혹은 B보다는 A와 B 사이의 틈과 같은 모호한 부분들이 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이 부분에 잠재된 가능성을 보는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결코 개인적인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의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일단 작품으로 풀어내면 그것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통해 다른 경로로 각자의 경험과 기억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심 있는 꿈이나 기억과 같은 주제가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측면은 있지만 보편성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차미혜는 얼마 전 작업을 끝낸 <얼굴 없는 얼굴>에서 좀 더 나아가서 동시대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연극하는 자아를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퍼포먼스 광경 2014

<얼굴 없는 얼굴> 퍼포먼스 광경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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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없는 집> 시리즈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3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회색의 바깥> 전시광경

Cha Mihye
차미혜는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계원예대 시간예술과를 졸업했고 파리국립고등예술학교에서 영상예술을 전공했다. 2013년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첫 개인전 <울림, 지나칠 수 없는>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9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 출품해 아비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에 참여한 바 있다.

이슬비 기자

[스페셜 아티스트] 제여란 – 추상인가 형상인가

김원방 홍익대 교수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0년 가인갤러리와 대구 누오보갤러리, 2011년 조은숙갤러리, 2013년 스페이스 캔(베이징), 그리고 올해 1월에서 3월에 걸쳐 대구와 과천 두 군데의 <스페이스 K>에서 열린 개인전들을 통해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여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작업에 대한 미학적 논평을 먼저 꺼내기보다는, 제여란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어디 있던 작가’였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게 순서 같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녀 작업의 미학적 특징을 논할 것인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은 결코 일반적 의미의 ‘추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라는 자극적 표현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 옳은 표현이 아니며,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을 드러내려는 표현일 뿐이다. 여태껏 그녀가 어디로 떠나 칩거한 적은 결코 없다. 단지 이 떠다니는 안개 같은 미술계(라는 이름의 ‘집단적 욕망의 등록소’)가 이곳저곳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와 또다시 마주치고 그녀의 진가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젊은 세대의 미술인들에게는 제여란이란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사실 제여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암흑기부터 시작하여 오직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해 살아오면서, 미술 트렌드의 대세가 어느 쪽으로 가건 말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건 말건, “이제 세상 밖으로 좀 나오라”라는 무례하고 가식적인 조언을 듣건 말건, 20여 년의 긴 시간 내내 시장통이나 산 위의 작은 작업실에서 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도중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대부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취’보다는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칸막이 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술에 대한 도취는 줄어들고, ‘사회적 욕망’이 그를 광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라캉과 지젝이 연달아 논하듯이, ‘세상 속에서, 타인들의 눈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즉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은 ‘파티에서 주목받고픈 욕망’으로 압축된다. 인정이 이루어지는 ‘타인들의 머릿속’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처로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가가 꼭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불행한 초상이다.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처럼 예술에 도취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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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욕망만을 좇던 나머지, 제여란이라는 작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들이나 큐레이터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앞서 인정받은 작가를(얄팍한 트렌드 때문이건, 외국 큐레이터가 좋아한다는 후광 때문이건) ‘다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실은 미술관이나 큐레이터 자신도 그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변태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제여란은 그러한 ‘욕망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있던 작가인데, 지금이라도 미술계가 그를 점차 주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로 보인다.
이제 제여란의 작업 전개과정을 간략히 짚어보자. 제여란의 첫 개인전이 열린 곳은 1988년 윤갤러리였고, 좀 더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금은 없어진 동숭동 인공화랑에서의 1990년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미술계는 설치, 복합매체, 그리고 비디오를 위시한 테크놀로지 예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회화는,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무난한 미니멀풍 추상회화, 또는 잔재미를 추구한 포스트모던풍 아류회화(엔초 쿠치, 줄리앙 슈나벨 )나 팝아트 아류 등이 조금 살아남았을 뿐이다. 반면 밝은 곳에서조차 디테일 식별이 잘 안 되는 컴컴한 흑색톤, 용암처럼 솟구치는 물질덩어리, 환희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정조에 관객을 대면시키는 제여란의 그림은, 트렌드를 좇는 기획자나 무난한 그림 좋아하는 화상, 양자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전시활동의 감소가 그녀를 칩거한 것처럼 잘못 보이게 한 원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전시들은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놀라운 역량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이제 제여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이가 그녀의 작업을 편리하게 ‘추상화’라고 불러왔지만, 나는 결코 ‘추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점은 그녀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점이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화가 아니라, ‘형상성의 회화(painting of the Figural)’이다. 형상성의 회화는 ‘형상회화’ 또는 ‘구상회화’라고 부르는 성향, 즉 figurative painting과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형상(구상)회화는 재현적 지시기능을 지닌 ‘구체적 형상(figure)’을 내세운 것이고, 반대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는 그 재현적 형상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형상성의 ‘현존/부재’, 말하자면 ‘예/아니오의 변증법에 따라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이 미술사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레키쇼와 사이 톰블리에 대해 1970년대에 쓴 글에서, 그리고 또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형상성 철학에서, 1990년대 이후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존 레이크먼, 디디 위베르만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추상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회화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만 성립했고, 오직 ‘스타일’, 달리 말해 ‘형태학적 유형학’의 사고를 통해 구축된 ‘재현의 정치학’에 불과하다.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도상학적 전통은, 구체적 형상들이 실은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의해 포착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형상들은 사실 관람주체의 응시와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즉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의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여란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형상들의 기괴한(uncanny) 출현과 소멸과정’을 극대화한 회화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상한 공포의, 혹은 시선을 좌절시키는 재난적 힘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화에서, 형상의 출현/소멸을 통해 ‘응시’라는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강력히 드러내는 흔치 않은 회화의 사례이다. 질 들뢰즈가 형태의 오형화(誤讀化, catamorphose des formes), 또는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부른 것, 디디 위베르만이 ‘스스로 형상화하는 형상’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망치고 우연히 드러나는 형상들은 제여란뿐만 아니라,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에서 탁월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그의 회화를 지배하는 까닭 모를 ‘정신분열적 불안감’은 거기에 연유한다. 제여란의 회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잭슨 폴록이나 앵포르멜 회화처럼 혼란만으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고, 또는 반대로 칸딘스키 경우처럼 기호화된 코드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나타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하나의 상태 속에 결합시키는 것, 에로스도 타나토스도 아닌 것, 바로 ‘삶-죽음’을 하나의 사유 속에, 하나의 행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여란 자신도 그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 그녀는 작업 노트에서 “범주적 경계들을 어떤 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기”, “사물이 모든 그물을 빠져나오는… ”, “모든 사물의 자발적 방황운동” 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je3제여란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거나(형상회화) 또는 반대로 재현으로부터 도피하는것(추상회화)이 목적이 아니라, ‘형상들 자체가 연출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제여란의 회화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형상성의 회화’, 또는 들뢰즈적 의미의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제여란의 회화가 만약 전통적 추상회화라면, 왜 그 작품들은 수많은 ‘숲 같은 것’, ‘짐승이나 덤불 같은 것’, ‘폭포나 피의 분출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실은 바로 이 ‘무엇 무엇 같은 것’이야 말로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그것은 실은 차이의 출현, 즉 형상이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같은 것’은 동시에 ‘…같지 않은 것’과 동의어이다. 이것이 바로 기괴한(uncanny) 출현과정이며, 무슨 이미지이든 ‘형상 대 비형상’, ‘형상 대 배경’으로 구분해 내려는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하고, 회화를 인식론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도상학적, 지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는 회화인 것이다.
초기부터 제여란 회화는 어두운 숲 속, 습지, 심연, 폭포 등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심지어 재앙적인 느낌의 풍경으로 채워져왔다. 그것은 완결되어 형상을 갖추어가는 풍경을 급작스레 무너뜨리는 재앙과 트라우마의 풍경과 같으며, 바로 이 점이 제여란의 회화를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에 연관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경증적인 정조이다. 연극의 장르 구분을 빌리자면 분명 그것은 그리스 비극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급작스러운 비극적 운명, peripeteia). 물론 비극의 정의가 단지 눈물과 가련함의 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니체, 그리고 크리스테바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의 비극은 ‘내 안의 혹은 세계 속의 타자라는 괴물적 존재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승화의 힘’을 의미한다.
이번 스페이스 K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개인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미술계의 역동성? 그런 것은 없다. 욕망의 생태계는 실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증기처럼 휘발적이다.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의 도취’를 우선시해온 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미술계가 정말로 좀 더 역동적이 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일 수 있다. ●

제여란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기슭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