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아티스트] 제여란 – 추상인가 형상인가

김원방 홍익대 교수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0년 가인갤러리와 대구 누오보갤러리, 2011년 조은숙갤러리, 2013년 스페이스 캔(베이징), 그리고 올해 1월에서 3월에 걸쳐 대구와 과천 두 군데의 <스페이스 K>에서 열린 개인전들을 통해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여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작업에 대한 미학적 논평을 먼저 꺼내기보다는, 제여란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어디 있던 작가’였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게 순서 같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녀 작업의 미학적 특징을 논할 것인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은 결코 일반적 의미의 ‘추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라는 자극적 표현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 옳은 표현이 아니며,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을 드러내려는 표현일 뿐이다. 여태껏 그녀가 어디로 떠나 칩거한 적은 결코 없다. 단지 이 떠다니는 안개 같은 미술계(라는 이름의 ‘집단적 욕망의 등록소’)가 이곳저곳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와 또다시 마주치고 그녀의 진가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젊은 세대의 미술인들에게는 제여란이란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사실 제여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암흑기부터 시작하여 오직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해 살아오면서, 미술 트렌드의 대세가 어느 쪽으로 가건 말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건 말건, “이제 세상 밖으로 좀 나오라”라는 무례하고 가식적인 조언을 듣건 말건, 20여 년의 긴 시간 내내 시장통이나 산 위의 작은 작업실에서 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도중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대부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취’보다는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칸막이 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술에 대한 도취는 줄어들고, ‘사회적 욕망’이 그를 광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라캉과 지젝이 연달아 논하듯이, ‘세상 속에서, 타인들의 눈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즉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은 ‘파티에서 주목받고픈 욕망’으로 압축된다. 인정이 이루어지는 ‘타인들의 머릿속’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처로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가가 꼭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불행한 초상이다.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처럼 예술에 도취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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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욕망만을 좇던 나머지, 제여란이라는 작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들이나 큐레이터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앞서 인정받은 작가를(얄팍한 트렌드 때문이건, 외국 큐레이터가 좋아한다는 후광 때문이건) ‘다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실은 미술관이나 큐레이터 자신도 그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변태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제여란은 그러한 ‘욕망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있던 작가인데, 지금이라도 미술계가 그를 점차 주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로 보인다.
이제 제여란의 작업 전개과정을 간략히 짚어보자. 제여란의 첫 개인전이 열린 곳은 1988년 윤갤러리였고, 좀 더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금은 없어진 동숭동 인공화랑에서의 1990년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미술계는 설치, 복합매체, 그리고 비디오를 위시한 테크놀로지 예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회화는,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무난한 미니멀풍 추상회화, 또는 잔재미를 추구한 포스트모던풍 아류회화(엔초 쿠치, 줄리앙 슈나벨 )나 팝아트 아류 등이 조금 살아남았을 뿐이다. 반면 밝은 곳에서조차 디테일 식별이 잘 안 되는 컴컴한 흑색톤, 용암처럼 솟구치는 물질덩어리, 환희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정조에 관객을 대면시키는 제여란의 그림은, 트렌드를 좇는 기획자나 무난한 그림 좋아하는 화상, 양자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전시활동의 감소가 그녀를 칩거한 것처럼 잘못 보이게 한 원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전시들은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놀라운 역량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이제 제여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이가 그녀의 작업을 편리하게 ‘추상화’라고 불러왔지만, 나는 결코 ‘추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점은 그녀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점이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화가 아니라, ‘형상성의 회화(painting of the Figural)’이다. 형상성의 회화는 ‘형상회화’ 또는 ‘구상회화’라고 부르는 성향, 즉 figurative painting과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형상(구상)회화는 재현적 지시기능을 지닌 ‘구체적 형상(figure)’을 내세운 것이고, 반대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는 그 재현적 형상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형상성의 ‘현존/부재’, 말하자면 ‘예/아니오의 변증법에 따라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이 미술사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레키쇼와 사이 톰블리에 대해 1970년대에 쓴 글에서, 그리고 또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형상성 철학에서, 1990년대 이후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존 레이크먼, 디디 위베르만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추상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회화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만 성립했고, 오직 ‘스타일’, 달리 말해 ‘형태학적 유형학’의 사고를 통해 구축된 ‘재현의 정치학’에 불과하다.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도상학적 전통은, 구체적 형상들이 실은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의해 포착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형상들은 사실 관람주체의 응시와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즉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의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여란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형상들의 기괴한(uncanny) 출현과 소멸과정’을 극대화한 회화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상한 공포의, 혹은 시선을 좌절시키는 재난적 힘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화에서, 형상의 출현/소멸을 통해 ‘응시’라는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강력히 드러내는 흔치 않은 회화의 사례이다. 질 들뢰즈가 형태의 오형화(誤讀化, catamorphose des formes), 또는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부른 것, 디디 위베르만이 ‘스스로 형상화하는 형상’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망치고 우연히 드러나는 형상들은 제여란뿐만 아니라,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에서 탁월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그의 회화를 지배하는 까닭 모를 ‘정신분열적 불안감’은 거기에 연유한다. 제여란의 회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잭슨 폴록이나 앵포르멜 회화처럼 혼란만으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고, 또는 반대로 칸딘스키 경우처럼 기호화된 코드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나타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하나의 상태 속에 결합시키는 것, 에로스도 타나토스도 아닌 것, 바로 ‘삶-죽음’을 하나의 사유 속에, 하나의 행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여란 자신도 그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 그녀는 작업 노트에서 “범주적 경계들을 어떤 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기”, “사물이 모든 그물을 빠져나오는… ”, “모든 사물의 자발적 방황운동” 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je3제여란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거나(형상회화) 또는 반대로 재현으로부터 도피하는것(추상회화)이 목적이 아니라, ‘형상들 자체가 연출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제여란의 회화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형상성의 회화’, 또는 들뢰즈적 의미의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제여란의 회화가 만약 전통적 추상회화라면, 왜 그 작품들은 수많은 ‘숲 같은 것’, ‘짐승이나 덤불 같은 것’, ‘폭포나 피의 분출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실은 바로 이 ‘무엇 무엇 같은 것’이야 말로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그것은 실은 차이의 출현, 즉 형상이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같은 것’은 동시에 ‘…같지 않은 것’과 동의어이다. 이것이 바로 기괴한(uncanny) 출현과정이며, 무슨 이미지이든 ‘형상 대 비형상’, ‘형상 대 배경’으로 구분해 내려는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하고, 회화를 인식론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도상학적, 지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는 회화인 것이다.
초기부터 제여란 회화는 어두운 숲 속, 습지, 심연, 폭포 등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심지어 재앙적인 느낌의 풍경으로 채워져왔다. 그것은 완결되어 형상을 갖추어가는 풍경을 급작스레 무너뜨리는 재앙과 트라우마의 풍경과 같으며, 바로 이 점이 제여란의 회화를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에 연관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경증적인 정조이다. 연극의 장르 구분을 빌리자면 분명 그것은 그리스 비극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급작스러운 비극적 운명, peripeteia). 물론 비극의 정의가 단지 눈물과 가련함의 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니체, 그리고 크리스테바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의 비극은 ‘내 안의 혹은 세계 속의 타자라는 괴물적 존재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승화의 힘’을 의미한다.
이번 스페이스 K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개인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미술계의 역동성? 그런 것은 없다. 욕망의 생태계는 실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증기처럼 휘발적이다.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의 도취’를 우선시해온 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미술계가 정말로 좀 더 역동적이 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일 수 있다. ●

제여란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기슭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황인기 –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

정신영 미술비평

그간 0과 1로 재정의된 픽셀 산수화로 전통과 동시대의 성공적인 융합을 제시해 온 황인기는 마치 과거의 선인이나 문인들처럼 사회와 격리된 무위자연 속에서 회화의 방식과 역사에 대한 고민에 집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신작들은 그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다듬어진 이미지에 대한 거부,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신체적인 개입 결과물들을 통해,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발언 의지가 돋보이는 것들이었다. 전시 제목에 암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물질적 풍요의 일과성 매력에 대한 회고적 태도와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은 황인기의 작품 속에서 보다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우리를 압도한다.
프랑스의 패션하우스 루이비통이 만들어낸 가죽 가방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소지품을 넣고 이동하기 위한 가방이라는 본래 기능은 이미 부수적인 것이고 소비자에게는 이 제품을 소유하여 과시함으로써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스스로에게 이항시키는 것이 보다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해 온 루이비통은 자사 이미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 리처드 프린스나 최근에는 쿠사마 야요이 등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가방에 우월한 패션감각이나 재력 이상의 예술성마저 부여하는 전략을 취해 성공했다. 어깨에 매달린 루이비통 가방 속에는 지갑이나 전화, 열쇠 외에도 문화, 예술, 사회적 부가가치가 담겨있는 셈이다. 황인기는 아마도 루이비통 제품이 갖는 이러한 복합적 측면에 착안한 것 같다.

in2전시장에는 먼지나 얼룩으로 오염되어 찢기거나 일그러진 형태의 루이비통 가방 44개(전 작품의 제목은 전시명과 같음)가 날카로운 쇠갈고리에 걸려 진열되어 있다. 우리 사회와 소비자들이 이 가방들에 기꺼이 부여해 온 모든 누적된 비물질적인 가치들을 작가는 일말의 주저나 참을성 없이 단숨에 박탈하고 있다. 일렬로 늘어뜨려진 낡고 해체된 검은 덩어리들은 유럽 전통의 고급 상품으로서의 아우라를 잃고 가방 주인의 허영과 조바심과 함께 변질되어 가까이 가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흉물스럽게 변해 있다. 작가는 가공된 가죽에 지나지 않은 명품 가방들의 물리적 정체를 드러내 보인다.
84권의《 타임(TIME)》지를 동일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유리 선반 위에 진열한 설치는 1주일의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된 이 시사주간지들을 마치 고대 파피루스나 중세 수사본인 양 취급하고 있다. 먼지와 흙모래로 뒤덮인 책 표지들은 아마도 세계사의 한 시점에 우리와 공유했었을 그 1주일에 대해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표지를 장식해 온 수많은 사건이나 인물들도 이들이 뒤집어쓴 먼지보다 더 뿌옇고 흐릿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잠식되어 잊혀간다. 가슴에 새겨진 고백이나 문학작품 속 한 구절의 영속성에 비해 매순간 우리를 자극하는 최신의 시사정보란 인쇄된 얇디얇은 종이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일까. 미니멀 조각처럼 규칙적으로 나열된 우리 사회의 잊혀진 증언들은 스스로의 가벼움과 반복적 성질에 허탈해 지레 퇴색해버린 화석인 듯하다.
시간의 진행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작가가 2011년부터 의도적으로 부패시켜온 평면작품이다. 물감 대신 콩, 바나나 등의 식품으로 나무판 위에 그려진 유명 브랜드의 로고는 이제는 갈색과 흰색의 무기질적 가루로 변질되어 이미지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신성시되어야 할 캔버스 표면을 오물로 뒤덮는 방식은 단순한 파괴행위를 넘어선 자괴적인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앤디 워홀은 캔버스에 금속도료를 바른 후 소변으로 부식시킨 결과물을 작품으로(<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 제시해 그때까지의 작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각적, 개념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대량 생산, 소비가 미덕이던 찬란한 미국의 경제부흥에 발맞추어 각종 공산품과 스타들의 이미지를 섭렵해온 워홀에게 떠오른 소변이라는 소재이자 재료는 화려하고 지배적이던 물질문명에 대한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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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산을 거쳐 산출된 정교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까마득한 수의 플라스틱 블록을 하나하나 꽂아가며 이미지를 생산하던 황인기의 산수화 작업을 생각할 때, 부패라는 일종의 자연현상에 화면 구상을 내맡기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저항적인 태도의 분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대량 생산되는 완제품으로 뒤덮여 매끈한 인공적인 광택이 흐르는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가 말하는 ‘저속한 물질성(base materialism)’이 자리 잡는데, 이는 바타유의 이상주의와의 싸움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며, 황인기의 경우에도 그에게 기대되는 익숙한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궁극적 수단으로 사용된 듯 보인다.
in4지하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백색 천을 쓴 다섯 개의 부유하는 듯한 신체 지표이다. 중세의 카타콤과 같이 비밀스럽고 의식(儀式)적인 이 공간에서는 머리를 중심으로 향해 누운 인체의 흔적들이 순교자들의 석묘보다도 더 미련 가득히 무덤의 고요함을 깨고 주문을 되뇐다. 낮은 음성으로 반복되는 것은 7개 국어로 해석된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의 현대문명비판이라고 하는데, 역사시대로 진입하여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는 항상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 우려하고 회의하며 후회해왔다. 조상들의 미이라처럼 우리의 현재를 비난하고 우려하며 경고하는 이들의 불협화음이 어둡고 폐쇄적인 이 공간을 채워간다. 그럼에도 작품의 에너지가 결코 절망적이거나 자학적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팽팽히 당겨진 듯 고정된 5명의 존재가 주는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신체를 합성수지로 본떠 만든 복제된 형상 위에 천을 씌워 굳힌 이 구조물들은 말 그대로 작가 스스로의 허상이다. 예술가로서 세상만물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한 그가 흥미를 가진 것이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허상임은 겹겹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환영을 만드는 것과 나를 환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사이에는 교묘한 주체의 치환이 일어난다. 화면상에 이미지를 그려나가듯이 나의 유령을 만들며 작가는 유체이탈의 상태처럼 누워있는 나를 분명 몇 번이고 직시하며 개념적인 가사(假死)상태를 경험햇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나에 대한 발견, 즉, 자아에 대한 경외(境外)시는 라캉이 말하는 거울 속 이미지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과 같이 스스로의 부족과 미숙을 깨닫고 충족해가는 단서로 작용할 것이다. 소비사회의 허상뿐만 아닌, 마치 허물을 벗어놓은 듯한 스스로의 껍질을 제작하며 작가가 각성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전시에서 육체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한 극복의지가 그 어느때 보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전시된 작품들의 물리적인 위압감 때문이다. 무겁게 늘어뜨려진 44개의 가방을 비롯해 50여 개의 액자로 채워진 벽면, 수년치의 주간지들과 반복되는 인체형상, 전 3층에 걸친 의욕적인 인스톨레이션에서는 마치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작가와 같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적 욕심이 느껴지는데, 이는 전시 전체에 충만한 죽음에 대한 연상과 대조적이다. 작가는 디지털화된 시각표현을 주 매체로 삼던 때에 잠복해 있던 신체적, 물리적 감각이 올라오는 것을 참지 않은 결과라고 풀이한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충만한 창조적 에너지와 이를 선동하는 퇴화나 부식, 부패와 같은 비구조적이고 비정형적인 경향에 대한 관심은 황인기를 통해 한곳에 집약되어 그 작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갈 듯하다. ●

황인기는 1951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를 중퇴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충북 옥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한경우 – 정교한 계산, 절제된 귀결

반이정 미술비평

개인전 제목과 동명의 작품 (2014)는 언뜻, 의심할 수 없는 명제,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에 이른 데카르트의 근대적 사유를 차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의 얼굴 마담 격인 의 면모를 파편화된 시점들의 총합을 확인할 때 가늠할 수 있는 점에서, 확실한 명제에 도달하려던 데카르트의 세계관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작품의 정면은 암전된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흑백 비디오작품을 닮았다. 혹은 점증적인 흑백 채색을 나열한 추상회화의 전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근접 거리의 측면에서 바라본 작품은 백색 구조물을 비스듬한 각도로 나열한 입체 구조물로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비디오아트의 모니터나 추상회화의 캔버스 같은 평면작품을 수공으로 시늉한 입체작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위상을 얻는다. 작품이 놓인 전시공간의 위층에서 내려본 작품은, 영단어 ‘I MIND’의 3D 입체 텍스트로 작품 제목을 자기지시하는 개념미술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시장에선 내러티브를 제거한 환원주의적 추상예술에 충실한 외관이라면, 전시장 위층에서 본 작품은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을 명시하는 내러티브를 품은 작업으로 변신한다. (듣자하니 MIND를 동사형 ‘거절하다’로도 해석해 중의적으로 사용했단다. 그러니 데카르트적 사유와는 역시 무관한 셈이다)
복수의 상이한 존재들을 단수의 존재 속에 다시점으로 구현하는 기술은 한경우가 꾸준히 애용하는 시점 계산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 계산법이 적용된 단순한 원점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원형을 다면체 하나 속에 구현한 비디오 설치물 <Triangle, Circle, Squa- re>(2008)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시의 대표작 혹은 전시의 표제이기도 한 ‘I MIND’는 외관상 추상화, 비디오아트, 자기지시적 개념미술 등 상이한 매체의 예술 행위들을 하나의 백색 입체 조형물 안에 합체한 경우다. 이 같은 다층적 착시가 가능한 건 다시점에 대한 정교한 계산에서 비롯되며, 다시점 계산법은 한경우의 전작 대부분을 중의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한경우가 화단에서 흔히 만나는 미디어아트의 일반론으로부터 빗나가는 지점에는 항상 단순한 전략이 있다. 장황한 러닝타임으로 관람의 피로를 높이는 비디오 아트의 생리에 비추어, 한경우의 작업은 3~6분의 러닝타임에 압축적으로 담기기 일쑤이고 고정된 카메라를 쓰지만 화면에서 진행되는 극적인 반전 때문에 관전의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또 흔히 비디오아트가 시간예술의 매체성에 집착한 나머지 무거운 스토리텔링에 치우치는 반면, 한경우의 비디오아트는 수수께끼를 숨긴 평면회화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이를테면 눈속임회화, 트롱프뢰유(trompe-l’oeil)의 긴 전통을 따르되 뉴미디어로 변환시킨 경우에 해당된달까. 이 때문에 동일한 눈속임이지만 트롱프뢰유와 한경우가 걷는 노정은 정반대다. 정통 트롱프뢰유 그림이 캔버스 화면 안에 실물이 있는 것처럼 속이는 민첩한 수공 재현 능력에 의존한다면, 한경우의 눈속임은 모니터 화면 속에 예술이 있는 줄 알았는데, 종국에는 예술을 닮은 실물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귀결에 이르는 점에서 시점 계산의 능력에 의존한다. 거의 예외 없이 작가는 원근적으로 교란되게 배열된 일상 집기의 조합을 영상 촬영해서 흡사 평면을 보는 것인 양 오인하게 만든다.

일상으로 극적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응시의 집중력이 곧잘 흐트러지기 쉬운 비디오아트를 짧은 러닝타임으로 붙든 것만큼이나, 그가 집착하는 전략은 손쉬운 아이콘을 작품의 진입로에 두는 것이다. 이 대표 아이콘들은 미학적 중의법을 관철시킬 때도 유효하다. 초기작에 해당할 (2005)은 구시대 컬러TV의 화면 조정시간화면을, (2008)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2011)는 성조기를 썼는데 모두 익숙한 도상들이다. (2011)의 언덕은 필시 컴퓨터 운영체계 윈도의 철지난 버전 바탕화면을 차용한 것일 테다. TV 화면 조정시간화면, 윈도 바탕화면은 시각체험이 모니터로 수렴된 동시대에 피할 수 없는 화면이 되었고, 재스퍼 존스가 회화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평면성으로 일갈할 때 동원한 단골 아이콘이 성조기임을 감안한다면 몬드리안과 성조기는 시각예술 종사자라면 피할 수 없는 화면이다. 또 몬드리안과 재스퍼 존스가 결과적으로 평면성의 도그마에 일정 부분 관여한 선배 미술인이라면, 한경우는 선배의 평면미학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통해 세대 격차를 확인시킨다.
han3짧은 러닝타임과 미디어 시대의 도상들을 통해 미디어아트를 전에 없이 친숙하게 만들었다면, 한경우가 가장 자주 애용하는 화면 구도는 좌우대칭 또는 뉴미디어 데칼코마니다. (2006)의 4등분된 CCTV화면, 수면으로 집기들이 반사된 듯 착시를 일으키는 (2009)의 상하 대칭, (2012) 등은 모두 대칭구도 속에 착시기술을 숨긴 작품이다. 좌우대칭의 범주를 느슨하게 잡는다면 (2007)와 (2007)까지 대칭구도로 착시를 견인한 사례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도 좌우대칭의 불문율은 (2014)가 계승하고 있다. 로르샤흐 테스트란 우연적으로 발생한 좌우대칭 화면에서 피험자들이 발견하는 문맥을 분석하여 그들의 심리를 검사하는 심리 테스트이다. 로르샤흐 테스트 검사지가 우연적으로 형성된 좌우대칭 이미지인 반면 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좌우대칭 형상을 집어넣은 경우랄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랜 권위를 누린 도상을 차용해서 멋대로 문맥을 변형시킨 점에서, 몬드리안과 성조기(혹은 재스퍼 존스의 해석)의 미학을 멋대로 변형했던 선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로르샤흐 테스트는 심리분석 분야에서 긴 전성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이 검증 불가능한 것이라 피험자가 조작된 답을 내놓거나 실험자가 주관적 견해를 덧붙일 위험을 견제할 수 없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로르샤흐 테스트를 의사과학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회의주의도 완고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심리분석 영역에서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게 로르샤흐 테스트다. 검증 불가한 권위의 지속성, 모호한 해석에 대한 공동체의 묵인, 해당 분야에서의 장기집권 등 로르샤흐 테스트의 생리는 화단에서 추상미술이 겪은 전력과 닮은 데가 많다. 로르샤흐 테스트에서 피험자의 진술이나 실험자의 해석의 근거는 오로지 그들의 주관성일 뿐이다. 실제 로르샤흐 검사지에 우연히 찍힌 형상은 추상적이기도 구상적이기도 한 모양새인데, 그중 상당수는 성기의 모양새를 연상시키는 게 사실이다. 이 검사법을 고안한 헤르만 로르샤흐가 스위스 프로이트 학파 출신인 점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적 메타포를 연상시키는 로르샤흐 검사지는 왠지 특정한 답변으로 피험자들을 몰아가는 인상마저 준다. 로르샤흐 테스트를 둘러싼 심리학계의 회의야 어떻건, 한경우가 검정 비닐과 색채 비닐들을 인위적으로 구겨서 내놓은 좌우대칭 비닐의 절대 다수는 성기 모양을 띠고 있다. 아마 작정하고 성적 코드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형성한 걸 테다. 심리학계에서 장기집권 하면서도 끊임없이 권위를 의심받은 이 검사법의 약한 고리를 시각적 농담으로 고의로 부풀린 것이리라.
사진이건 입체건 비디오건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한경우가 당도하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무정부주의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재현된 예술이 일상으로 극적으로 귀환하는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그런 결말은 더러 화면 속에서 작가의 등장과 퇴장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성조기 화면은 한경우가 착용한 채 퇴장하는 별무늬 재킷으로, 화면조정시간은 집기들의 재배열을 통해 빨간색 캐비닛이라는 일상 사물로 환원되는 식이다. 예술이 사물로 둔갑하는 대반전은 언제나 원근감과 사물의 비율 사이를 정교하게 계산한 결과이다. 한편 현란한 예술이 일상 집기로 환원되는 여러 작품의 결말을 포함해서, 의 원점이 백색 구조물일 뿐인 점, 초기작 (2007)의 마무리가 검정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투 채널로 끝난다는 점 등, 결론과 본질이 언제나 절제된 표현으로 수렴된다. 이는 시감각 자극의 과잉시대에 응하는 작가적 태도의 확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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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달 끝난 전시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에서 초대 작가들 가운데 최소한 3명(이문호, 원서용, 한성필) 이상은 착시효과에서 기민한 안목을 발휘한 경우다. 그 점에서 한경우와 상통하는 부분도 크다. 일군의 주목받는 작가들이 착시의 변주에 집중하는 까닭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환영주의를 날로 강화시키는 뉴미디어 시대에 전업 시각예술가의 농담어린 응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한경우는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조소과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를 졸업했다. 총 4회의 개인전과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2> 등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리뷰] 김성연 – 불투명성, 불확정성이라는 감동

김만석 미술비평

‘감동’이라는 말은 생각외로 특별한 순간에만 발화하는 용법이 아닐 수 있다. 감동은 감각과 운동이 합쳐진 단어로, ‘마음’이나 ‘정서’의 변화나 이행을 포착하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이 말이 갖는 함의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할지 모른다. 특히 ‘동(動)’이 무거움(중력)과 (외부적) 힘이 적절한 기울기로 결합되어 있는 단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중력이 고정된 힘이라면, 그것에 외부적 힘들이 주어질 때 운동이 생성되는 것이니, 실상 삶은 곧 감동의 연속이고 감동의 지속이라고 해야 마땅할지 모른다. 우리가 감동을 특별한 순간이나 예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러므로 삶에서 ‘감동’을 형성하기 힘든 건 이 감동을 주체의 동력으로 삼을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기이한 조건들이 삶으로 급격하게 그리고 거부할 틈도 없이 구성되었음을 뜻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술적 행위와 실천들은 삶을 다시 감동의 연속으로 구성하는 것이어야 할 테고, 삶이 살 만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을 세계에 되돌려 주려는 악전고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성연이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돌아와 평면과 설치, 사진, 비디오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과 활동을 통해서 그리기 자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세계 형식, 도시적 삶과 풍경 등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재구성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를 경유하면서 치밀하게 배치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각각의 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그의 작업들이 갖는 무게는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작업 궤적을 일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김성연이 세계를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면서도 그 차가움이 외려, 그의 일상 삶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면, 그의 작업이 그토록 다양한 매체를 경유할 이유가 없었으며 지속적으로 동일한 대상의 ‘이면’을 다른 방식으로 포착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섬> 전시장 2층 공간에 배치된 영상작업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비디오로 촬영된 그의 일광작업실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 다채롭게 변주되는 것은 그 사소한 대상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일상적 지각 너머에 다르게 존재하는 거의 무한한 방식이 있음을 뜻한다. 세계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것이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이나 대상은 우리의 앎 바깥에 있으니 그것을 안정적으로 포착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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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되지 않은, 불완전성의 구축

따라서 세계를 고화질-디지털로 포획하여 미시적인 세계마저 시각적 반경 내로 회수하려는 현존 시스템의 지각능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이 그의 작업에 도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확실성을 의도적으로 결여하고 있으며 선명하거나 작은 세계를 고화질 카메라로 선명하게 확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불투명함을 강조하며 일상적 시지각의 무능력을 초점화한다. 3전시실에 설치된 작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즉, 불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체크무늬로 채색된 작은 형상들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시각적 ‘앎’과 그것이 갖는 욕망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달리 말해, 그에게서 이 세계는 ‘포장’된 것이고, 세계의 진면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이 세계를 포장하는가?
자본이 세계를 포장함으로써, 세계의 진면목이 감추어진다는 점에서, 김성연의 포장 연작은 상품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함축한다. 디자인이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이미지의 자율성을 획책함으로써 사물의 사물성이 상실되어 차갑게 변모해버렸다는 비판적 진단은 그의 평면작업이나 설치, 비디오작업들을 예민하게 만나는 데에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마치, 보르헤스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서 현실과 똑같은 크기의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는 제국의 우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불투명성이야말로 관계가 구성되는 기초이자 ‘우애’를 나누는 원리가 되며 삶이 서식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잘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계와 내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일 수 있다.
kim3ok도시는 김성연의 작업에서 가장 불투명한 공간이자 삶의 장소로 나타난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하고 이 이미지를 다시 그리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의 외관과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맨몸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산의 일부가 공룡으로 그려지거나 산복도로 마을의 옥상에 빨래와 파란 물통의 강렬한 색채가 남겨진 것은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사태에 대한 개입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비가시적인 체제로 내모는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기도 한다. <불꽃놀이>와 같은 영상작업에서 특히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다. 달리 말해, 쾌적하고 매끄러운 도시는 제 속살을 감추고 있으며 그 속에서 거주하는 존재들은 제 삶의 역사와 결을 유실한다는 것.
김성연의 작업들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불안정성을 구축하려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전시되는 ‘현재’로 완결되지 않고 항상 미래의 사태로 개방된다. 이는 자신의 작업이 전시되는 순간으로 종결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전시에서 다시 도입되면서 전시 방식을 항상 변용하고 변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는 작업 역시 불투명한 것으로 남겨져 있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행해야 할 것으로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면도 이런 태도로부터 비켜설 수 없으며 사진과 비디오작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성연의 작업은 항상 이행의 사태로 기입될 수밖에 없다. 같은 제목의 작업을 제시하더라도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다른 작업이 된다.
그러니까, 김성연은 하나의 텍스트가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선, 완결적인 구조를 갖기보다 지속적으로 형질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이 자신의 작업을 구성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작가로부터 소외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상기해보라. ‘소외’가 자본주의적 삶의 일반적인 양식이라면, 소외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술적으로 생산된 그것을 김성연은 지속적으로 돌보고 다듬는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역시 작업에 항상 밀착해 있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세계인식과 그 생산물 역시 세계인식의 방식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작업을 물신화하는 경향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 텍스트임을 주지시킨다.
그는 왜 이렇게 집요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작업과 세계를 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성곡미술관 2관 1전시실 전면에 전시된 새 떼가 망명하듯 파도와 바람을 거스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작업에서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야간비행/trans->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하는 새 혹은 새들은 무엇보다 그 자신으로 여겨진다. 자유를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그러하듯, 그는 자유로운 비행을 꿈꾸었고 서식지를 공중에 마련하려 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의 운동 속에서 미술적 실천이나 생산 그리고 어떤 결과물들을 결코 고정된 방식으로 두지 않으려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자신과 그의 정서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새로서 그의 비행이 어떤 비행이 될지, 그 불확정적인 행로가 무척 기대된다. ●

김성연은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뉴욕대 대학원(석사), 동명대대학원 시각디자인과(박사)를 졸업했다. 1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 및 타이베이, 일본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의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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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페이스 2014] 박영진 – 관계를 정의하기

관계를 정의하기

탁자 중앙에 끼워진 가로막은 나무로 만들어진 창살, 거울, 빈 나무프레임, 그림, 얼굴모양으로 깎여 있는 등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어떤 프레임을 끼고 대화를 하든 안하든 상관없다. 그저 이편과 저편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행위는 이른바 내 앞에 앉아있는 그 누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 박영진의 이 <마주하기로>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관계’다. 그런데 그는 그 ‘관계’에 대한 정의내리기에 주저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관계는 주변의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고, 다양한 확률 속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어느 한 ‘관계’도 그 정의가 겹치기가 어렵지요.” 그러나 정의되어 있지 않은 관계는 없다. 홀로 살 수 없는 ‘관계’의 연속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그렇다. 그렇기에 누군가와의 관계는 일상의 주된 내용이 된다. 하지만 이른바 ‘양방향성’을 근간으로 하는 관계맺기에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주관에 따라 관계를 정의한다. 박영진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접근한다.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좀 더 지속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방법 혹은 새로운 틀을 고민한 것일 수도 있겠고, 지금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작명(作名)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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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연작에는 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작가적 개입이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문화역서울284의 <온(溫)·기(技)전>에 출품한 <커피짐 (Coffeegym)>에서 앞서 언급한 <마주하기로>와 연작을 통해 보여줬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인 프로세스로 이어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커피짐>은 정말 적극적이고 제가 재밌어하는 표현인 ‘착한 작업’입니다. 누구나 너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카페를 이용해서 한번 대화를 해보는 것이지요. 다음 프로젝트를 물었다. “소박한 목표는 이루어졌어요. 앞으로는 적극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기보다 어떤 관계인가, 어떤 형식이어야 할까 등등 고민해야 될 문제가 많습니다.”
현재 박영진은 스터디 모임에 열심이다. 전공에 대한 거리가 아닌 다양한 사유의 깊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단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사회인으로서의 활동도 하고 있다. “직장 동료들의 삶을 내 삶과 비교해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감기에 들기보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고민되는 바는 언제 월급쟁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같은 월급쟁이이면서 기자에게 이렇게 되묻는 박영진은 “제가 문을 두드린다고 활짝 열어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바라는 미술판은 끊임없는 기회의 연속인 곳이면 좋겠다”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황석권 수석기자

[뉴 페이스 2014] 정지현 – 도시의 기억상실증에 대한 보고서

도시의 기억상실증에 대한 보고서

지금도 대한민국 국토 곳곳에서는 도시 재생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이 범람하고 있다. 한국은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으로 명명되지 않던가? 정지현의 사진작업은 재개발에 감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는 “재개발지역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철거민을 바라보는 연민 어린 시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피해자와 수혜자의 입장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재개발의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던 사람도 보상을 많이 받으면 어느새 승자가 되어버린다.
서울 토박이인 정지현은 아파트촌인 잠실에서 자랐다. 그는 잠실 일대가 아파트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서 20년 넘게 살던 곳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조차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공간에 대해 어떤 얘기도 없이 그저 우리 동네가 좋아진다, 땅값이 오른다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때부터 정지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속에서 일상의 공간이 얼마나 힘없이 부서져버리는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업도 2005년 당시 철거를 눈앞에 둔 1세대 아파트들을 기록한 것이다. “저는 사진가이지만 사진이라는 매체를 쓰는 데 분명한 당위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사라지는 것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것이 사진만이 할 수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3월 1일부터 31일까지 KT&G 상상마당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데몰리션 사이트>에 선보인 작업은 2011년부터 인천 루원시티와 안양 덕천지구의 변모상을 담은 것이다. 그는 한밤중에 감시망을 피해 곧 철거될 건물에 잠입해 내부 방 하나를 온통 빨갛게 칠했다. 이 같은 퍼포먼스는 철거로 처참하게 무너진 누군가의 삶의 공간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철거가 진행되면 그는 매일 현장을 찾아가 빨간 방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했다. 빨간 방이 해체된 광경은 마치 건물의 으스러진 심장 혹은 건물이 흘린 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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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의 사진은 종종 ‘도시화’,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로 읽히지만 무엇보다 그의 관심은 파편화된 도시 공간에 있다. 집 옆 공터도 접근 불가능하게 철판으로 가려놓으면 그곳은 어느새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과 도시의 재개발 사이의 단절을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관해 집중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재개발 현장에 주목하는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다. “도시에는 분명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데 제가 재개발이란 이슈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답답함이 있습니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는 3년 전부터 강원도 태백의 지역성에 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슬비 기자

[스페셜아티스트] 임상빈-달콤한 풍경의 씁쓸함, 씁쓸한 예술의 달콤함

 람다프린트 177.8×152.4cm 2009

<서양 조각-메트로폴리탄미술관> 람다프린트 177.8×152.4cm 2009

 람다프린트 177.8×152.4cm 2011

<한강> 람다프린트 177.8×152.4cm 2011

 람다프린트 68.6×177.8cm 2010

<페인팅-마리아> 람다프린트 68.6×177.8cm 2010

 람다프린트 152.4×203.2cm 2013

<하와이2> 람다프린트 152.4×203.2cm 2013

왼쪽 람다프린트 128.3×237.4cm 2012  오른쪽 람다프린트 121.9×190.5cm 2011

왼쪽<루브르 박물관 2> 람다프린트 128.3×237.4cm 2012
오른쪽<브루클린 미술관> 람다프린트 121.9×190.5cm 2011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임상빈의 주요 작업은 사진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과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화면에는 배경과 어 울리지 않는 커다란 안경이 등장하거나 위아래로 지나치게 늘어난 건물이 우뚝 솟아있으며, 커다란 벽면에는 무수히 많은 미술품이 걸 리기도 한다. 또 원근법에서 벗어난 어색한 구도라든지 광각렌즈로 본 것 같이 가장자리가 휜 구도라든지 사람의 시야를 비웃기라도 하 듯 좌우로 펼쳐진 파노라마 구도가 드러나며, 때론 화면이 인위적으 로 위아래 혹은 좌우로 구획되기도 한다. 더불어 작품에 등장하는 어 떤 사물과 풍경은 그림을 그린 것 같이 부드러운 질감과 테두리를 가 지고 있다. 분명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풍경을 작업의 소재로 선택하 지만, 그의 작업은 어딘지 어색하고 엉뚱하며, 심지어 초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본다는 것’이다. 무언 가를 보려면 당연히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 무언가를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임상빈은 그 무언가와 그것을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위치’도 주목한다. 사실 그 위치는 작가의 위치이다. 일찍이 시선과 관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보는 이의 위치를 암시할 수 있는 특정사물을 종종 작업에 포함시켰다. 백미러와 와이퍼를 통해 그가 차 안에 있다는 것을, 난간을 통해 그가 어딘가에 올라가 있다는 것 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왜곡된 도로, 인도, 축대 등을 통해서도 작 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는 멀리 있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 췄을 때 가까이 있는 사물이 왜곡되어 곡선처럼 보이는 현상을 활용 한 것이다.
게다가 임상빈은 한 위치에서 바라본 다양한 광경을 한 화면에 넣 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작가가 2층에 있다면, 화면 아랫부분에는 부 감법처럼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본 광경을 묘사하고, 화면 중간에는 평원법처럼 2층에서 정면을 바라본 광경을 배치한다. 화면 윗부분 에는 고원법처럼 2층에서 천장을 올려다본 광경을 표현했다. 그 결 과 각도의 시점이 결합된 스펙터클한 광경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그 광경이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위치가 더 핵심적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구조로 광대하고 역동적인 광경을 만들어내며 관찰자와 사물의 관계를 부 각시킨다. 이것은 사물(풍경)을 인식하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사물(풍경)을 인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드러낸다. 계속해서 임상빈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위치에 사람들의 욕 망과 심리를 담고자 했다. 그런 의도가 반영된 작품이 바로 시리즈이다. 이 연작의 소재는 맨해튼이다. 그런데 맨해튼 내부에서 맨해튼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강 너머에서 맨해튼을 바라 본 것이다. 그래서 맨해튼은 물 위에 떠 있는 환상의 섬처럼 보인다. 강 너머에서 맨해튼을 바라본 시선에는 맨해튼을 동경하고 갈망하 는 마음이 들어 있다. 이는 맨해튼에 속하지 못한 타자의 시선을 의 미한다. 비록 같은 미국인이더라도 맨해튼에 진정으로 소속된 사람 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시선은 동양인으로서 미국 주류 사회를 갈망한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작에서 임상빈은 어떤 한곳에서 맨해튼을 바라본 것이 아니 었다. 맨해튼의 어떤 지점을 타깃으로 설정한 후, 마치 타자의 시선 이 여러 개임을 암시하듯, 맨해튼 외부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합성하여 스펙터클한 맨해튼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맨해튼의 빌딩은 비교적 일정한 형태를 유 지하고 있었지만, 유동적인 강물과 하늘은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즉 건물이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진다면, 자연은 유동적이고 유기적이었다. 그런 자연의 특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임상빈은 ‘회화 적 텍스처’를 도입한다. 하늘을 표현할 경우, 먼저 카메라로 하늘을 찍고 이어서 하늘의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촬영한다. 이후 이 두 종류의 이미지를 컴퓨터에서 혼합하여 독창적인 하늘의 이미지를 고안한다. 사물의 윤곽을 표현함에 있어 회화적 텍스처로 부터 나오는 ‘soft edge’는 사물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비해, 사진으 로부터 나오는 ‘hard edge’는 사물을 차갑고 딱딱하게 만든다. 그는 이 두 요소를 다각도로 활용하여 섬세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연출한 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다분 히 회화가 포함된 사진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탐구는 미국 생활 이후에 비로소 진행되 었다. 작가의 고향이 서울이지만, 외국에 살다보니 서울에 있을 때 모르던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서울은 맨해튼에 비해 문화유 적이 많은데,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한국의 고궁이 매우 왜소하게 느 껴졌다고 한다. 이 건축물이 세워질 땐 대단히 웅장했을 것이다. 그 런데 현대의 눈 또는 서구의 눈에 이 건물들은 작고 초라하게 보일 수 있다. 즉 스펙터클은 상대적이다. 그리하여 그는 스펙터클을 보완 하기 위해 건물을 상하로 늘인다. 이것이 이른바 연작 이다. 흥미롭게도 이 아이디어는 인터넷에서 취한 것이다.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하면 이미지가 쭉 늘어날 때가 가 끔 있었는데, 이는 데이터 전송량이 적어서 순간적으로 디지털 시그 널에 에러가 났기 때문이다.
임상빈의 작업은 대부분 컴퓨터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그는 1990 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와는 거리가 꽤 멀던 사람이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군대에서 컴퓨터를 배웠고, 제대 후 본격적으 로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컴퓨터에서 이미지의 변형· 배치·구축은 회화에서보다 훨씬 용이하였다. 당시 그는 아날로그 와 디지털의 접목·변환·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했지만, 그렇다 고 그가 디지털 신봉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디지털의 한계를 경계하며 그 가능성을 다각도로 고민했다.
이미지의 왜곡과 변형은 이후 연작에서 잘 드러난다. 임상빈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모두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한 화 면에 배치했다. 예컨대 메트로폴리탄의 모던아트 섹션에 있는 모든 작품을 사진 찍고, 실제보다 훨씬 긴 벽과 마루에 모든 작품을 배열 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하면 한눈에 모든 컬렉션을 조 망할 수 있다. 미술관은 이 작품들을 소장해서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미술관이 소장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이 가치를 가졌 을 수도 있다. 하여튼 미술관은 이 미술품으로 인해 사람들과 자본을 끌어 모으며 문화권력을 형성했을 것이다. 그런 제반의 사정을 알면 이 작품들을 그저 감상적으로만 보기가 힘들다. 너무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측면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도시의 문화체육 시설(공원, 운동경기장, 도서관, 미술관 등)을 작업의 소재로 끌어들 인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 지만, 거꾸로 사람들의 루트와 행태를 분석하고 그곳에 이런 것을 지 어놓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모일 수밖에 없다.(이렇게 사람들이 모이 면 그 광경 또한 스펙터클하게 보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사람들 이 모여 사는 곳이 도시이지만, 도시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다. 이처럼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하고 충 돌하면서 만들어지며, 작가 역시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하고 충돌하 면서 작품을 제작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도시 풍경이 아니 라 미시적 힘들이 꿈틀대는 도시 풍경이다.

 람다프린트 177.8×101.6cm 2009

<강남> 람다프린트 177.8×101.6cm 2009

 2014 인기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담벼락에 어지럽게 씌여진 이름을 하나씩 읽어가는 작업이다.

<벽화 프로젝트> 2014 인기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담벼락에 어지럽게 씌여진 이름을 하나씩 읽어가는 작업이다.

이미지의 왜곡과 변형을 통한 실재의 표현

최근 임상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찍고 있다. 이과수폭포, 와이키키, 칸쿤, 발리 등. 그는 어딘가를 가보고 거기의 에너지를 경 험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곳에 대해 말해주고자 한다.(그의 이야기 를 들어보면 거기엔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 그중 이과수폭포 작업 을 보면, 그는 다양한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재구축하여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했다. 사실 이과수폭포 같은 광대한 자연과 에너지를 한 지점에서 포착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그는 화면 에 카약, 행글라이더, 물안경을 등장시키며 화자 중심의 이야기를 생 성해낸다. 마치 그가 카약을 타고 폭포를 뛰어내린 것처럼, 마치 행 글라이더를 타고 폭포 위를 날아다닌 것처럼, 마치 스노클링을 하며 물속을 헤엄쳐 다닌 것처럼. 물론 그가 실제로 이런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가서 직접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부 심과 우월의식을 심어준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건 개인적 성취이 건 유명한 관광지이건, 자신의 경험이 최고인 양, 그 경험에 자신의 해석을 첨가하여 자신만의 버전을 구성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과 장이 때론 공감을 주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 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과 심 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말 시작된 남극 프로젝트도 이와 비슷하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남극은 탐험가가 아니면 갈 수 없는 미지의 땅이었다. 그 런데 요즘에는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남극을 방문하여 안전하게 자 연의 숭고미를 느낄 수 있다. 이제 남극에까지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 이다. 작가는 작은 나무보트를 타고 이곳을 모험한 것처럼 자신을 그 려내고 있다. 역시 실제로는 그렇게 못 했어도. 남극을 둘러싼 이권 과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것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남극 풍경은 이미 우리에게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임상빈은 싱글채널 비디오와 사운드 설치작업 등도 병행하 고 있다. 한숨을 쉬며 인생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한숨 프로젝트>, 누 군가가 계속 작가의 이름을 부르는 <구애 프로젝트>, 연예기획사 담 장에 낙서를 읽는 <벽화 프로젝트>, 물/불/숲/바람 등 기본 요소를 그린 <창조 프로젝트>, 관객을 최면에 거는 <최면 프로젝트> 등이 해 당된다. 모두 미공개 작업으로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물으며 예술가 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다.
비록 이전 작품과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그가 예술 활동을 하며 겪었던 예술가의 기대, 욕망, 허영, 좌절, 자기만족, 자기최면 등을 솔 직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예술가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 적이고 완벽한 예술가가 아니다. 여러 사람과 만나고 관계하고 충돌 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처럼 어떤 때는 달콤하지만 어떤 때는 씁 쓸하다. ●

 2람다프린트 101.6×152.4cm 2014 실제 남극에서 촬영한 여러장의 빙하사진을 합성한 작품이다.

<남극-빙하 1> 2람다프린트 101.6×152.4cm 2014
실제 남극에서 촬영한 여러장의 빙하사진을 합성한 작품이다.

[작가리뷰] 박민준-디테일, 보고 읽는 회화를 위하여

 종이에 잉크, 수채물감, 금박 51×42cm(액자크기) 2013

종이에 잉크, 수채물감, 금박 51×42cm(액자크기) 2013

신혜영│미술비평

“그림을 본다”는 것은 “글을 읽는다”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지-시각성과 텍스트-서사성이 자연스럽게 짝 을 이루게 된 것은 사실상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호라티 우스의 ‘시는 회화와 같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시를 비롯한 문학에 서는 눈앞에 ‘보이듯’ 풍부한 회화적 묘사가 즐비하였고, 회화를 비 롯한 미술에는 ‘읽어내야’ 할 수많은 우의와 상징이 가득하였다. 그 러나 18세기 ‘순수예술’ 체제가 성립된 이후 20세기 중엽까지 모더 니즘 예술이 진보의 역사를 거듭하는 동안 미술은 문학과 철저히 멀어졌다.1재현, 서사, 참조 등 미술 본유의 것이 아닌 이른바 문학적 특 징들은 모더니즘 회화에서 모두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 한 미술의 비본유적 특징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보란듯이 부활 하여 오늘날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관객이 시각 외에 여러 다양한 감각으로 작품을 경험하고 나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 여러 겹의 숨은 의미를 읽어내고 자유롭 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박민준은 ‘볼거리’ 뿐 아니라 ‘읽을거리’가 있는 그림을 그린다. 그 의 그림에는 모더니즘 이후 회화에서 배제되어 온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과 사건의 서사, 미술사의 참조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 양의 고전주의(classism) 회화가2 있다. 작가는 전통적인 서양의 재 현회화 방식을 빌려와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넓은 의 미에서 고전주의 회화는 세밀하고 매끈한 붓질과 형태들의 질서 있 는 배치와 구성, 각 요소들 간의 균형과 통일감을 형식적 특징으로 하며, 내용적으로는 신화, 성서, 역사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 (emblem)과 우의(allegory)를 통해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것을 특 징으로 한다. 박민준 역시 형식과 내용 면에서 어느 정도 이러한 고 전주의 회화의 틀을 따르고 있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 요소들 이 작가의 철저한 계획 하에 최대한 매끈하게 올라가 있는 그의 그림 에는 아르고, 올림포스, 세이렌, 아누비스, 아리아드네, 이카로스, 크 로노스 등 고대 신화의 소재가 자주 사용되고 사자, 호랑이, 새, 도마 뱀, 당나귀 등의 동물을 통한 우의적 표현과 날개, 저울, 기둥, 휘장, 창, 후광, 고대 조각상 등의 도상이 흔히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소 재들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중층적으로 함의할 수 있 게 하기 위해 선택될 뿐, 고정된 전통적 의미의 상징과 우의가 우선 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아누비스>(2009)에서 자신 의 지식과 세계가 전부인양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들을 바라보는 절대적 존재가 곁에 있음을 말하고자, 죽은 자를 판단하는 고 대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를 가져온다. 그러나 자칼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모습으로 전해지는 아누비스는 작가의 손을 거치며 동물 의 머리털과 날개를 달고 사후 재판을 집행하기 위한 지팡이와 ‘진리 의 저울’이 손에 들려있는 모습으로 세심하게 변형되었다. 아누비스 의 신화가 그림의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하지만, 신화를 모르는 사 람들도 빛을 받은 채 공중에 떠 있는 비현실적 존재와 자신만의 세계 에 갇혀 있는 지상의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림의 주제를 어느 정 도 파악할 수 있다. 최근 개인전에 소개된 드로잉 중 <벌거벗은 임금 님을 위한 드로잉> (2013)에서 작가는 왕좌에 오른 한 마리의 침팬지 와 그 주위에서 왕을 향해 온갖 짓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하였 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스타 예술가와 그를 떠받치고 있는 예술 계의 풍토를 비판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림의 함의는 중층적이다. 동 화 『 벌거벗은 임금님』을 아는 대다수 사람들이 파악하는 그림의 표면적 이야기부터 유럽 회화에서 전통적으로 원숭이가 화가를 뜻하는 것3을 아는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는 작가가 말하려는 이야기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닮은 침팬지의 얼굴에서 전혀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제각기 다른 독해가 가능한 것 이다.
이렇듯 박민준에게 고전주의 회화란 따라야 할 본질적인 강령을 담은 하나의 사조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예술에 근접하기 위한 하 나의 방편이자 기준점이 된다. 작은 차이들이 모여 결국 큰 차이를 만드는 예술을 지향하는 그에게 ‘고전(classic)’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모범이 될 만한 가장 기본적인 예술이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하나의 사조가 지닌 형식을 고수하기 보다 는 필요에 따라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된 형식을 취해 왔다. 초기 작 업에는 극단적인 명암대비로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카라바조의 테 너브리즘(tenebrism)이 중심이 되었다. 당시 그림들에는 마치 암 흑의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듯 인물의 동작 및 표정과 서사 를 위한 중요한 사물들이 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후 작가는 전체 적으로 명암의 대비를 줄이고 배경과 주변 사물들까지 보다 세밀하 게 묘사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이전에 암흑으로 처리했던 배경은 고 전적인 양식의 계단과 창문, 패턴이 있는 천장과 바닥 등의 건축적 요소로 일일이 묘사하고, 인물 외에도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보다 많은 형태적 요소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화면 전체에 관람자의 시선을 고루 분산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 개의 타로 점궤를 인물 과 함께 표현한 회화 연작 (2010)와 그 일곱 점의 회화를 한 사 람의 여인과 함께 다시 하나의 회화에 재현한 (2010)가 대 표적이다. 세밀하게 재현된 그림들을 또 다른 그림 안에서 더욱 세밀 하게 재현하는 이 일련의 작업에서 작가는 풍부한 기호적 의미를 이끌 어내며 작품들 간의 상호텍스트성 또한 제시하고 있다. 유화만이 아니 다. 드로잉에서 그 세밀함은 또 다른 모습으로 빛을 발한다. 르네상스 시대 은필화(silverpoint)와 금박(gold leaf)기법을 비롯, 연필, 수채 물감, 오래된 다양한 펜촉에 찍은 잉크까지 여러 전통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종이에 그린 드로잉들은 가늘고 정밀한 선들과 그 선들이 만 들어 낸 전체적으로 가벼워진 화면으로부터 유화와는 또 다른 느낌 을 전한다. 문설주에 새겨진 부조의 작은 인물형상이나 사람의 머리 카락과 동물의 털까지 재현해낸 묘사력은 감탄의 경지에 이른다. 레 오나르도 다 빈치가 책으로 묶어낸 수많은 스케치와 판화 형식의 삽 화들이 그렇듯, 이후 유화로 옮겨질 스케치들과 그 자체 완결된 소묘 작업들은 박민준의 작업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그간 유 화에서 보여주던 완벽한 형식적 구성과 채색의 압박으로부터 숨통 을 트여준다.

 종이에 잉크, 수채물감, 금박 50×68cm(액자크기) 2013

종이에 잉크, 수채물감, 금박 50×68cm(액자크기) 2013

읽는 그림, 회화의 잠재력

이렇듯 점차 강화되어 온 ‘디테일’은 박민준 회화의 가장 두드러진 지점이자 고전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흔히 고전주의 회화 의 특징으로 원근법을 비롯한 균형잡힌 화면 구성을 꼽지만, 어떤 면 에서 디테일은 전체적인 화면의 구성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 중앙에 걸린 작은 거울이 나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에서 하단에 기울어진 해골처럼 그림 전반을 압도하는 고전주의 회화의 디테일의 사례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디테일은 현대회화로 올수록 화면을 전체적 으로 감상할 수 없게 만드는 장식적인 요소이자 저속한 것으로 평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예술가의 탁월함을 묘사력에서 찾지 않 게 되면서 디테일은 점차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앞서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고서도, 디테일은 화가가 전통과 규범 을 어기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부분이자, 보는 사람에게 더 풍 부한 의미와 더 큰 즐거움을 주는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프랑스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자신의 저서『 디테일』4을 통해 서양의 재현회화에서 디테일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다각도로 재조명한다. 아라스는 진정한 의미의 디테일은”그림 속에서 사건을 일으키며 강 력하게 시선을 붙들어 구성되어 있는 시선의 경로를 동요시키”며 ” 한 그림의 기쁨이 회화적 환희로 바뀌는 특권적 계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미지를 만드는 재현에 관련된 ‘도상적 디테일’과 재현과는 무관하게 회화의 현존을 나타내는 ‘회화적 디테일’을 구분한다. 그 두 가지 계기는 함께 작동하기도 하지만 구분되는 것으로, 디테일이 란 읽어낼 수 있는 기호의 의미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동시에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회화적 질료의 현존 자체로서의 가치를 지 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현회화에서의 디테일이야말로 회화가 사 진을 비롯한 다른 예술 매체들과 차별화되어 여전히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매체임을 방증하는 지점인 셈이다.
박민준의 회화에서 역시 디테일은 도상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의 계기 모두로 작동한다. 이야기의 중층적 의미와 그 자체 회화의 매체 적 특성이 디테일로부터 비롯되어, 그림을 보다 풍요롭게 읽게 해주 고 그 자체로 그림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은 것’ 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 작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가 고전주의 회화의 틀을 따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역사는 죽 고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는 단토의 말이나 “세상에서 이제 양식적 인 개혁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제임슨의 말처럼, 오늘날 예술은 역사적 진보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나간 모든 경향 및 사조를 자유롭 게 차용하고 전유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가는 새로운 양식의 압박에 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양식을 보는 사람에게 박민준 의 회화는 고전주의 회화의 답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무슨 이 야기를 하려 하는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작은 디테 일을 읽어내려는 사람에게 그의 그림은 큰 기쁨을 줄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 회화 이후 우리가 잠시 망각했던, 보는 그림뿐 아니라 읽는 그림으로서 변하지 않은 회화의 잠재력을 드러내며 그 자체로 동시 대 예술의 또 다른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

1독일의 비평가 레싱이 『라오콘 – 회화와 시의 경계에 관하여』(1776)에서 고대 그리스 조각상 라오콘을 통해 미술과 문학이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예술임을 역설한 이후, 모더니즘 미술 이론가 그린버그는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1940)에서 동일한 주제를 이어 받아 미술이 문학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시각성과 물질성을 추구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2 고전주의 미술은 흔히 18~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신(新)고전주의 미술을 지칭하지만, 여기에서는 빙켈만이 ‘고전 양식’으로 구분한 르네상스 회화와 이후 바로크 회화 및 신고전주의 회화까지를 포함한 광의의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3 화가-원숭이의 개념은 14세기 자연을 모방하는 화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는 의미에서 사용된 ‘예술은 자연의 원숭이(Ars simia naturae)’라는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4 다니엘 아라스, 『디테일-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 이윤영 역, 숲,
2003.(Daniel Arasse, Le Détail-Pour une Histore Rapprochée de la Peinture,
Editions Flammarion, Paris, 1996)

[작가리뷰] 김인배-몸으로 눈을 보다

이선영│미술비평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김인배의 <점 선 면을 제거하라 전>은 근대의 시각중심주의 문화에 대한 몸의 반란이라 할 만하다. 이 전시에서는 눈이 몸을 보기 보다는, 몸이 눈을 보는 역전이 일어 나기 때문이다. 점 선 면은 인간의 시각적 관념 속에만 존재할 뿐, 자 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점적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메를로 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현실의 시공간은 점이나 선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에서 ‘a=a’일 뿐인 근원적인 이성의 진리, 그 동일률은 사라지고, 모든 지 각은 운동으로 간주된다. 김인배에게도 선은 하나의 매체이며, 점 은 힘들의 중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오감 중 가장 관념적이 고 추상적인 감각인 시각은 점 선 면이라는 기하학적 요소를 좌표축 으로 설정하곤 한다. 이러한 좌표축이 사변철학의 바탕이다. 사변 철학은 ‘우리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해낼 수 있는, 일반적 관념들 의 정합적이고 논리적이며 필연적인 체계를 축조하려는 시도'(화 이트헤드)이다. 변화에 무력한 사변철학은 다원론적 실재들을 거 부하며, ‘유일한 가능성일 뿐인 필연성'(메를로 퐁티)을 신봉한다. 김인배의 작품에서 관념에 의해 고정된 시각을 교란하고 상대화 하는 몸은 코드화할 수 없는 자연의 대표로 호출되었다. 그의 작품 에서 몸은 대우주의 질서를 반향하는 소우주가 아니라, 뫼비우스 띠처럼 유동하는 피부 또는 살이다. 반인반수의 존재를 표현한 (2001~2011)나 남근적 여성상을 표 현한 (2009~2011) 등에 나타나듯이,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종(種)과 성(性)이 불확실해지는 존재는 김인배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몸은 태어난 본질 그대로 고정되지 않으며, 매번 다른 힘 이 관철되고 다른 규칙에 의해 배치되는 계열일 뿐이다. 그는 “분류, 이해, 논리는 정지시키기 위한 음모이다”(작가노트 중, 2011)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정점에 놓인 얼굴은 침해될 수 없는 신성한 질서가 아니라, 몸의 연장으로 간주되며 변화무쌍하게 취급 된다. 몸으로 대변되는 자연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타는 불확정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그러나 관념과 시각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몸이라고 해서, 경계를 넘나드는 살이나 체액들, 또는 사 물화와 파편화가 만연한 무정부주의적 향연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은 점 선 면으로 대표되는 관념적 시각을 해체하지만, 제의적인 공간이 연상될 만큼 엄격하고 정적이다. 어둑한 공간 속에 제단처럼 배치된 조상들은 관객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의 얼굴 (정체)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러 방향에서 관객을 주시하는 눈 없 는 얼굴들은 편재하는 신처럼 두려움과 경외감을 자아낸다. 어떤 강 력한 힘에 의해 늘어나고 갑작스레 잘린 조상들은 장기판의 말처럼 배치된다. 작품들은 어떤 조합에 의해 다양한 서사와 상상이 가능한 전략적 배열을 취한다. 인체라는 조각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 지 않는 그의 작품에는 정지 속에 움직임이, 정렬 속에 어긋나는 질 서들이 잠재한다. 첫 개인전 <차원의 경계에 서라>(2006)는 물론, <진심으로 이동하라>(2007)에도 드로잉과 조각 간의 호환성이 활 발했고, 드로잉을 조각화할 때 그 차원의 간격 속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2010년 뉴욕과 2011년 천안에서 발표한 처럼, 금속선으로 연속 동작 중의 인물들을 표현한 선조는 공간에 드로잉을 하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적 중간 과정 없 이 발포수지를 직접 쏘아 만든 하얀 조상 역시 회화적이다.
점 선 면을 제거한다고 하지만, 김인배의 작품들에 그것들이 없 지는 않다. 반(反)종교가 종교의 연장이듯, 금기의 위반이 성스러움 의 또 다른 측면이듯, 기하학적 공리로부터의 탈주는 또 다른 규칙 으로 대치될 뿐이다. 지하 전시장은 중심에 군림하는 거대한 좌상 좌우로 안면이 잘린 날카로운 상들이, 맨 앞쪽에는 얼굴 한가운데 모서리가 있는 상이 배치된다. 쨍하게 갈라진 이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낯선 각도뿐이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부위에 가해진 변형이 충격적이다. 여기에서는 일상적 차원에서는 들릴 수 없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날카롭게 변형된 머리가 두드러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은 거대한 집게처럼 가로로 죽 눌린 얼 굴의 조상이다. 그것의 양 손목은 잘린 채 둥근 구(球)가 대신한다. 전시장 한켠에 놓인 무채색 톤의 둥근 구들이 시계를 상징함을 염 두에 둘 때, 손 부위의 구는 불구라기보다는 시간을 지배하는 전능 한 존재자의 표시에 가깝다.

(사진 앞) FRP 가변설치 2013 (사진 뒤 왼쪽부터) 황동 0214

<빛>(사진 앞) FRP 가변설치 2013 <무거운 빛은 가볍다–폐허, 왕관, 기둥>(사진 뒤 왼쪽부터) 황동 0214

시선과 응시의 분열

죽음 같은 정지 속에도 분명한 시간성은 작가로 하여금 잠재적인 움직임을 보유한 도상(=구)을 끌어들이게 했다. 작가가 좋아한다 는 영상이나 음악은 그 자체가 시간성을 향유한다. 고전적 조각으 로부터 현대조각으로의 추이에서 주요 요소인 시간성은 2011년 천 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요동치는 정각에 만나요(Turbulent O’clock)전>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났다. 이 전시에서는 작품 처럼 투수의 연속 동작을 하나의 포즈에 압축시 키는가 하면, 작품 처럼 국부가 점점 붉어지는 발광체의 모 습으로 남성 토르소들을 정렬시키기도 했다. 시간의 축을 타고 벌 어지는 사건은 다름 아닌 변형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간적(그 래서 신적)인 두 부분인 얼굴과 손이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변형 된다. 거칠게 만들어진 거대한 몸뚱이는 가장 민감한 인간의 경계 를 폭력적으로 환기시킨다. 날을 드러내는 위협적인 상들 사이에 놓인 작은 황동 인체 한 쌍은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다. 어두운 공간 속 검은 조상들은 무의식의 풍경 같다. 이 깊은 암흑의 공간에서 황 동 빛은 흔들리는 작은 촛불 같은 위상을 가질 뿐이다. 무의식의 세 계에서 인간 이성은 극도로 상대화된다.
김인배의 작품은 정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스케일이나 밝기에 급 격한 차이를 두어 잠재적인 운동감을 부여한다. 어둠의 조상들에 둘러싸인 작은 황동색 인체들이나, 황동색 조상들의 따가운 시선에 검은 점으로 녹아버리는 듯한 인체가 그 예다. 후자에서, 머리와 팔 이 없는 인체는 크기가 매우 작아 침대가 거대하게 보인다. 침대 맞 은편에 놓인 황동색 두상들은 3위 일체를 이룬다. 왕관 모양의 머리 를 중심으로 들쑥날쑥한 기암괴석을 이고 있는 듯한 양쪽의 조상들 은 성스러운 색채와 숫자, 배치에도ㅁ불구하고 어떤 기관은 없고 어떤 기관은 과도하게 많은 괴물이다. 빛의 현현이기도 한 황동색 조상들은 머리 위 과도한 무게에 짓눌려, 흡사 무질서한 폐허 같다. 그러나 이 빛나는 괴물 트리오에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언어적 상징 같은 성스러운 질서의 면모가 있다. 검은 우주 속에 갇힌 작은 인간은, 위협적으로 쏟아지는 빛의 세례 때문에 공포와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이 존재의 본모습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눈이 없는 그 조상들은 보이기만 할 뿐 보지는 않는다. 심술궂은 이성과도 닮은 이 맹목적 시선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소원한 존재가 된 인간을 암흑 속의 작은 얼룩, 또는 <절대적인 소(素, prime)>(화이트헤드), 즉 점으로 축소시키려 한다.
마치 태양처럼, 인간에 앞서 존재하는 기호들의 스크린은 점 선 면처럼 인간의 관점을 앞서 규정한다. 인간은 이 외재적인 것들에 의해 결정되는 의미의 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황동 조 상들과 검은 인체의 만남은 응시(gaze)와 시선의 분열을 표현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배열은 응시를 유도하는 빛줄기 속에서 대상을 명 확히 바라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자크 라캉은《시선의 응시와 분열》 에서 응시가 시선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라캉에 의하면 응시 는 시야에서 우리가 발견할 것을 상징하며,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 로 갑작스럽게 접하게 되는 경험이다. 세계가 응시를 촉발시키는 그 순간 생소함 역시 시작된다. 나는 한곳만을 바라보지만 나는 모 든 방향에서 보인다. 시선과 응시의 분열에 의해 시각의 영역에 충 동이 나타난다. 환상에 불과한 궁극적인 응시의 지점들은 끝없는 욕망을 일으킨다. 전체적으로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정적인 구도 속에서, 또 다른 황동 빛 인체상은 특정 종교의 도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입방체 모양의 두상에 벌린 양팔의 손목은 절단된 채 바 비 인형의 작은 손으로 대체되었고, 남성의 성기는 다리 뒤로 빠져 있는 상태다. 눈이 없음, 팔목 잘림, 남근의 은폐 등은 거세를 연상시 킨다.
이 전시 속의 인체들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있지만, 불완전하다 못해 치명적으로 손상된 인간(=남성)은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질 서, 이성, 시각 등을 문제 삼는다. 그것들을 대변하는 점 선 면 같은 공리적 체계는 자연의 법칙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규칙이다. 규칙인 한 그것은 변형될 수 있고 변형되어야만 한다. 한시적 진리인 형식 적 체계는 절대적인 자기충족성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는 논증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다.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인간의 시각은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키곤 한다. 이러한 추상적 분 리에서 요동치는 육안의 차이와 다양한 시각성의 작동은 억제된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몸을 초월하는 시각적 인식론은 르네상스 시대 의 원근법부터 카메라의 시점까지 이어지며, 기계 눈의 시점이 일 반화된 현재에 이른다. 조너선 크래리는《 시각의 근대화》에서 이러 한 시각이 세계를 체계화된 불변적 상수들에 따라 구성하며, 또 그 러한 약호들로부터 어떤 불일치나 불규칙성도 축출한다고 지적한 다. 독특한 인체상을 통해서 몸의 명시적, 잠재적 움직임을 강조하 는 김인배의 작품들은 눈 없이, 또는 몸으로 본다. 몸이라는 불투명 한 층은 시각성에 내재된 가상적 투명성을 변형시킨다. 이 작품들 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는 ‘탈신체화된 시각성에 반대하여, 시각 적인 것을 육체화하려는'(로잘린드 크라우스) 현대조각의 흐름과 함께하는 것에 있다.●

왼쪽· 황동 Brass 60×16×45(h)cm 2014 오른쪽· FRP 130×75×138(h)cm 2013

왼쪽·<당기지 마시오> 황동 Brass 60×16×45(h)cm 2014 오른쪽·<겐다로크(Gendarloake)> FRP 130×75×138(h)cm 2013

김인배는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총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체 출품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뉴 페이스 2014] 김덕영-겉과 속, 표면과 이면

뉴 페이스 2014 김덕영 겉과 속, 표면과 이면_황석권

뉴 페이스 2014
김덕영
겉과 속, 표면과 이면_황석권

벽지가 떨어진 벽, 그 이면의 검은 테이프 마감, 전시장 가벽에 수없이 박힌 망치, 마치 후면에서 자동차가 들이받고 쳐들어온 사고 현장과도 같은 공간, 벽 모서리에 세워진 기둥 사이의 균열 등. 김덕영이 그간 , , , , , <색각검사표 작업> 등에서 보여준 바다. 일견 충격적이지만, 작가는 강렬함 속에 디테일을 감춰놓았다. 마치 자동차의 상향등 불빛에 일시적으로 시력이 마비돼 놓친 바를 다시 한 번 찾아보라는 식이다. 그의 초기작 <검은 파도> 연작은 이면에 숨은 그 무엇에 관심을 가진 그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간다. “나의 작업은 대상의 겉과 속, 표면과 이면, 껍데기와 알맹이와 같은 양면적 가치가 공존하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 노트 중) 그러한 태도는 지난 호《 월간미술》의 표지를 장식한 에서도 드러나는 바다. 언뜻 김덕영의 작업은 결과로서 존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결과가 아닌 망치가 벽에 박히는 과정에 있다. “망치는 도구(tool)죠. 무엇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 망치가 벽면에 박히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 작업을 생각했을 때는 망치를 관객이 직접 벽에 박거나 박힌 망치를 관객이 빼서 집어가는 이야기를 생각했다고.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만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고 한다. “벽체를 모티프로 하는 작업은 부서지고 변형되어 있지요. 그 안의 것이 ‘어떤 것’이라는 점이 결과로서 드러나게 한 작업입니다.” 그러니 연작은 힘을 가하는 ‘행위’에 집중하고 <Pang! Defensive Sffensive Space>는 그 결과물인 셈이다.
최근 끝난 <EX_AIR: 경험의 공기전>(창동창작센터, 1.24~2.14)에 출품했고, 지금은 작업의 모티프로 사용하는 ‘색약검사표’이지만 사실은 김덕영 작가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어 한 동안 방황(?)하게 만든 핸디캡이었다. 그런데 이전 김덕영의 작업과 맥락적으로 닿아있지 않을 것 같은 이 작업은 그의 말대로 “조금 다른 시선”이다. 작가는 ‘규정된 약점’을 ‘나의 시선이 갖는 차이’로 풀어낸 셈이다. 김덕영에게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묻자 “지금 어떤 일이 제게 일어나는 이 순간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작가는 앞으로 1년간 독일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창작센터에서 레지던스 프로 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일단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할 예정입니다.” 김덕영에게 앞으로도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길.

황석권 수석기자